Epilogue
새해가 되었지만 날은 여전히 차가웠다. 겨울은 이제 막 뜨거워진 이들과 달리 길고 길었다.
“일은 저택에서 하시지.”
“답답해. 계속 저택에서 했잖아. 그리고 위험한 시기는 지났댔어.”
태영은 뚱한 얼굴로 차체를 툭툭 두드렸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은재는 결국 피식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태영이 고개 숙여 입 맞추었다. 제 뺨을 간질이는 손가락과 반지의 촉감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숨을 뱉었다.
후우…… 긴 숨이 뺨을 맞댄 채 터져 나왔다. 태영은 그 상태로 쪽쪽거리는 소리를 냈다. 차가워진 은재의 뺨이 콧대를 짓눌렀다.
“금방 오세요.”
“알았어.”
“몸 안 좋아지면 더 빨리 오세요. 저 이제 각인해서 다 느껴져요.”
“……그래, 알았어.”
너도. 태영이는 은재의 배에 입술을 대고 문지르다 이내 뺨까지 비벼 댔다. 은재는 복슬거리는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웃었다.
“우리 귤이한테 안부 전해 주세요.”
“그럴게.”
“얌전하게 있으면 아빠가 직접 책 읽어 준다고 하세요. 그럼 말 잘 들을 거예요.”
태영이는 문을 직접 닫아 주며 은재의 나직한 웃음소리를 만끽했다. 은재는 창문을 내려 태영에게 재차 손을 흔들어주었다.
금방 돌아오는 일정이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은재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만큼은 이 창문을 넘어 태영의 뺨을 붙잡아 키스를 해 주고 싶지만, 그저 창문 사이로 눈을 맞추기만 했다. 그것으로도 온몸이 떨릴 정도의 감정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 작은 태영이가 아가 태영이 만나러 가도 되냐고도 물어봐 주세요.”
“…….”
“아셨죠?”
“……책 읽어 준다면서.”
“그렇게 재워야 귤이가 아빠랑 만나는 거죠.”
그리고 속삭이는 말에는 뺨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은재는 태영의 손가락에 걸린 반지를 보며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배를 문질렀다.
……금방 다녀오자. 아직도 입을 열어 말하는 건 어색했지만 속으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한참 배를 문질러 데워 주곤 옆에 챙긴 서류를 확인했다.
[재원 복지 재단]
얼마 전 태영이 설립한 복지 재단이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문화 재단과 같은 이름이었다. 왜 재원인가 했는데, 민 회장과 은재의 이름에서 글자를 하나씩 따온 것이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복지 재단을 하고 싶었다고 언젠가 태영이 말했다.
오늘 일은 별거 아니었다. 재원 복지 재단과 이전 은재가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보육원을 연결시켜 주면 끝이었다. 겸사겸사 보육원도 짧게 둘러보고.
문화 재단 쪽 일이 있어 오늘 함께 나서지 못한 태영은 대신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 그 깍두기 알파 조심하세요. 알파들은 금방 크거든요.]
[사랑해요.]
그 글자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고 따뜻해졌다. 은재는 동일한 내용을 답장으로 보내다 끝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은재가 타고 있던 차가 저택 입구쯤에서 돌연 멈춰 섰다. 천천히 배웅을 할 겸하여 길을 따라 걷던 태영은 차가 갑작스레 멈추고, 또 은재가 내리는 것을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러 벌어져 있던 거리를 좁혀 달려가 은재를 끌어안았다.
“왜요. 어디 안 좋으세요? 놓고 간 거 있으세요?”
다소 놀란 듯한 얼굴에 은재가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절 끌어안고 있는 이의 허리를 조심스레 껴안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조금 늦게 가도…… 괜찮을 것 같아서.”
태영은 큰 숨을 터뜨리며 은재의 정수리를 턱으로 간질였다. 이윽고 그 위에 입술을 묻으며 더 세게 제 연인을 조여 안았다.
나날이 이들의 로맨스는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