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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팅 웨딩-56화 (56/60)

56화

“네. 물론이죠.”

“그래요. 나 말고 다른 놈한테 이렇게 얌전히 예쁘게 안겨 있으면 안 돼요. 큰일 나.”

“……알고 있어요.”

남태오의 목소리를 듣는데 여주는 순간, 아랫배가 바짝 조여지는 걸 느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건 소름이었는데 남자의 목소리만으로도 이런 기묘한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만 있는 공간이 아니니 주의해야 했다.

“저, 태희 언니가 샵 같이 가주고 여기까지 데려다줬어요.”

“내가 그러라고 미리 부탁했어요.”

“아아.”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남들이 우리를 볼까 봐 그런가?”

남태오는 주변을 의식하는 여주의 반응이 귀여웠다.

실제로 그가 등장하자마자, 주변의 시선은 이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로지 눈앞의 여주만 잡아 먹을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여주의 손을 잡고 뺨을 간지럽혔는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기만 했다.

별다른 몸짓이 아니었는데도, 주변 여자들의 입에서는 묘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한마디로 남태오는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병풍 취급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낯설었던지, 옆에 있던 태희마저 입을 벌리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남태희, 정신 차리지?”

남태오가 동생 앞에서 두 손가락을 튕겨 따악, 소리를 냈다.

그러자 입을 헤 벌리고 있던 태희가 정신을 차렸다.

“와,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무슨 드라마 찍어? 대사가 무슨. 어디서 뭐 강의라도 듣고 왔어? 오빠, 진짜 남태오 맞아?”

“네 시력을 못 믿겠으면 안과라도 가 보든지.”

여주가 머쓱할 정도로 남태오의 반응은 시니컬하기 그지없었다.

보통의 남매 관계란 이 두 사람처럼 지내는 걸까?

다른 남매를 본 일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오늘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니 뭐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누가 보면 연애는 오빠 혼자만 하는 줄 알겠어. 안 그래, 여주 씨?”

동의를 구하는 태희에게 여주는 눈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매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을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여주 씨는 내 편이야, 임마.”

“와, 진짜 치사하다. 나도 우리 동구 씨 있거든. 지금 회사 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단 말이야. 말하다 보니까 너무 보고 싶다.”

“점심시간에 잠깐 보자고 하든지.”

“그럴까? 그래야겠다! 그러면 오빠, 나 가 볼게. 여주 씨도 다음에 또 봐요, 안녕!”

태희는 잠깐 통화만 할 생각이었는데, 남태오의 말에 아예 만나러 가기로 했다.

정말로 바로 가 버릴 줄은 몰랐는데.

여주가 손을 흔들면서도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태오 씨, 혹시 태희 언니 먼저 보내려고 그런 건 아니죠?”

“눈치챘네? 이런 건 또 빨라요.”

“……설마 했는데.”

설마 남태오가 동생한테도 질투를 할까 싶었는데, 설마가 맞았다.

거기다 이제 보니까 이 남자는 용케 주변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만.

여주는 특히 다른 여자들의 시선에 볼이 따끔거리려고 했다.

아무래도 남태오한테 전적으로 그 원인이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심하게 잘생겨도 피곤하겠다.’

오늘따라 그는 앞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겨서 훤칠한 이목구비를 드러냈다.

흠 잡을 곳 하나 없이 매끄럽게 이마에서부터 턱 끝까지 내려오는 옆선이 여러 번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괜시리 짜릿해지는 남자였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같은 자리에서는 위험한 것도 있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남태오가 제 동생에 관해서 몇 마디를 더 보탰다.

“태희 쟤랑 너무 어울려 다니지 마요. 아직도 어릴 때처럼 가십을 너무 좋아한다니까.”

“언니가 하는 말이 재밌어서 계속 듣고 있었어요.”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도 아니고, 아까 박 회장의 이야기라면 꽤 재밌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이었기에, 여주가 남태오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는 어려운 화제였다.

“내가 더 재밌게 해 줄게요. 이따 집에 가서.”

“아, 알겠으니까 조금만 떨어져 주세요. 저 지금 할아버님이랑 눈 마주쳤어요.”

여주의 말에 남태오가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마침 남 회장은 박 회장과 얘기하고 있었는데, 남태오더러 얼른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는 영 내키지 않았던지 쯧, 혀를 차고는 여주와 함께 그리로 갔다.

“그냥 간단하게 인사만 하면 됩니다. 내가 있으니까 긴장 안 해도 돼.”

“네. 태오 씨가 있으니까 긴장 안 해요.”

물론 여주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쯤 만나 보고 싶기도 했었다.

박하나의 부친인 박 회장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대체 어떤 부모 밑에서 자라면 그런 인성으로 자라난 걸까?

딱 그 정도의 호기심이었다.

* * *

“태오 너 이 녀석, 아까 눈 마주쳤으면서 계속 딴짓한 거 다 알아.”

“잘못 보셨겠죠. 저 아닙니다.”

남 회장이 쥐어박는 시늉을 하자, 남태오가 가볍게 몸을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박 회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박 회장은 가까이 다가온 남태오를 한참 쳐다보았다.

볼 때마다 탐이 나던 남 회장의 손자였다.

어릴 때도 본 적이 있었지만, 생김새며 언행이며 완벽했다.

그도 양심이 있어서 사윗감으로 내 달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훌륭한 자태는 눈이 즐거웠다.

“못 지냈네. 갈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좋은 일이라도 하고, 형님 얼굴도 볼 겸 와 봤어. 그런데 옆에 아가씨는 누구신가?”

박 회장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 남태오가 옆에 있던 여자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그 잠깐마저도 손끝에서 남자의 소유욕이 묻어났다.

박 회장의 가느다란 눈이 예리하게 그걸 잡아냈다.

“저랑 결혼할 차여주 씨입니다.”

“……차여주. 이름이 참…… 정말로 예쁜 이름이구나.”

박 회장이 잠시 멈칫하더니, 두 눈에 힘을 줬다.

멀리서 봐서 긴가민가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차여주가 맞았다.

그동안 비서를 시켜서 찾도록 했었지만, 행방불명됐다는 말만 들었다.

거기다 출판사에서 사내 연애를 했던 남자 역시, 얼마 전에 사고사했다는 것까지 듣고 나서는 이번 생에서는 못 만날 줄 알았다.

그런데 남 회장의 자선 사업 파티에서 차여주를 보게 될 줄이야.

등잔 밑이 어두워도 너무나 어두웠던 것이다.

박 회장은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목에 힘을 바짝 줘야 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차여주 양은 지금 무슨 일을 합니까?”

그는 남태오랑 결혼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많았다.

출판사에서 일했다던데,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인지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남 회장의 손자랑 이어진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초면인 점을 감안해, 상식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여주 씨는 지금 개인 사정으로 일을 쉬고 있습니다.”

남태오가 적당히 예의 바르게 여주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 회장이 박 회장에 대해 설명했다.

“여주 양, 여기는 N유업 박 회장이라고 나랑은 알고 지낸 지가 30년이 넘었지.”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군요. 둘이 아주 선남선녀라 잘 어울리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요.”

그는 평범한 덕담을 건네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차화련의 딸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랐지만, 막상 보니까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박 회장은 이어서 남 회장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속 안의 말을 모두 털어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 적당히 말을 풀었다.

“……저는 갈수록 형님이 부럽네요.”

“뭐라고? 언제는 자식 먼저 앞세운 처지라서 안됐다고 하더니.”

“사람 팔자 모르는 거라고, 저도 얼마 전에 자식 하나 앞세웠습니다.”

“……그랬던가? 본처 자식은 아닐 테고.”

“예. 사고사로 죽었다더군요.”

“어쩌다가? 안됐구만. 나이도 젊을 텐데.”

“예. 지금 보니까 딱 형님 예비 손주 며느리, 차여주 씨 또래였어요. 글 쓰는 재주가 좀 있어서 책도 냈었는데, 얼마 전에 밤길을 걷다가 뺑소니로 그만…….”

“저런, 저런!”

박 회장이 박하나를 두고 하는 말에, 남 회장은 혀를 끌끌 찼다.

그 역시 겪어 본 바,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건 부모로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박 회장의 말을 듣게 된 차여주가 순간, 신음을 흘렸지만 귀가 어두웠던 두 사람은 미처 듣지 못했다.

* * *

행사가 끝이 날 무렵, 여주는 로비에서 잠시 서 있었다.

남태오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박 회장이 잠시 그를 불러서 보자고 했으니, 사업 관련 이야기를 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남 회장은 화장실을 간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잠깐이라도 혼자가 되고 싶었던 여주는 근처 소파에 잠시 앉았다.

‘정말로, 박하나가 죽었다고?’

그녀는 어쩐지 박하나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박 회장이 딸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지만, 교통사고였다니.

그러고 보니 도지성의 죽음도 화제 사고라고 들었었다.

뉴스를 틀 때마다 한동안, 도지문 회장의 소식과 엮여 나왔었다.

물류 센터에서 그 말고는 사상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다.

마치 누가 짜 놓기라도 한 것처럼 둘 다 사고로 죽다니 말이다.

‘전생에서는 인과응보가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때는 그녀의 아이가 사고를 당해서 죽었고, 그 충격으로 그녀는 자살을 했었다.

정말로 하늘이 그녀를 도와 그들에게 벌을 내린 것일까?

박하나와 도지성, 그 둘은 결코 자살을 할 인간이 아니었다.

둘 다 죽음을 당한 셈이니.

그야말로 엄청난 우연의 일치였다.

‘어쩌면 나비 효과일지도 모르지.’

여주는 박하나의 임신 진단서를 도지성의 가족들에게 보낼 때, 이미 각오를 다졌었다.

그로 인해 도지성이 얼마나 파문을 겪게 될지는, 그의 평소 행실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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