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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팅 웨딩-53화 (53/60)

53화

“이건 내 선물입니다.”

그가 채워 준 목걸이에는 9개의 사파이어가 박혀 있었다.

여주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선명한 빛깔에 감탄했고, 그 다음으로 섬세한 세공 방식에 놀랐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물건이 제게 와 있다는 것이었다.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선물을 쉽게 받아도 되는 걸까?

여주는 차마 물건을 만져 보지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남태오를 바라보았다.

“저, 고마워요. 태오 씨.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죠. 저는 선물을 준비하질 못했는데.”

난 정말 외식 겸 데이트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엄청난 선물을 받을 줄 알았다면 그녀도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괜찮아요.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은 이미 받았으니까.”

“정말요? 뭔데요?”

“차여주.”

“…….”

“당신이 이미 여기 내 옆에 있잖아.”

“하지만.”

그의 말에 여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신에게도 남태오의 존재 자체가 그러했다.

그녀가 그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남태오가 그녀의 목선을 따라 손가락으로 훑어 내리며 속삭였다.

“나한테는 차여주란 존재 자체가 이미 선물이라서.”

차가운 보석과 대조되는 남자의 열기가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여주의 입술이 떨리고, 가빠진 호흡이 점차 짙어졌다.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움직였지만 남태오의 진심 앞에서는 무슨 말이든 애매하다는 생각만 강해질 따름이었다.

“난 그래서 이미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남자가 오늘 아주 작정한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운치 있는 장소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여주는 심장이 저려 오는,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런 말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제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그만큼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저 대단한 남자한테 그렇게나 의미 있는 사람이 됐다니.

가진 것이 많고,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한 적 없는 남자였다.

그런 이가 지금 제게 구애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의 무게감이 한 겹, 한 겹 그녀의 마음에 쌓이자, 마음 한쪽에 쌓아 뒀던 방어벽 같던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저 남자는 빈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까처럼 농담을 던지면서 미소라도 띠면 좋으련만.

지금의 남태오는 진중한 목소리로, 너무나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목걸이를 다시 잘 정돈해 주고 있었다.

이건 반칙이야.

여주는 뒷머리를 갑자기 얻어맞은 것처럼,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남자의 진심을 제가 단번에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몰라도, 남태오의 입술이 또다시 움직였다.

“9는 소멸되지 않는 가장 완벽한 숫자라고 합니다.”

고대인들이 그렇게 의미 지은 숫자라고, 그래서 그런 의미가 담겼으면 해서 굳이 사파이어가 9개 박힌 것을 골랐다고 남태오가 설명했다.

소멸되지 않는 것.

전생에서 이미 한 번 소멸됐던 그녀에게, 그 단어가 움푹 파고들었다.

여주는 저 남자의 말을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태오 씨. 너무 고맙지만 저는 아직 수술이 남아 있고, 또 갑작스럽기도 한 이야기라서요.”

“압니다. 아는데, 평생 책임지고 싶은 여자는 차여주 씨가 처음이야.”

“저는, 태오 씨한테 마음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연애까지만이어도 충분하다고, 여주는 생각했었다.

저 남자가 계약 연애가 필요하다면,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런데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의 종착지는 결혼이었다.

아무리 조합을 해 봐도, 그것 말고는 나오지 않아서 여주는 그의 제안이 두려웠다.

덥썩 받아들이게 될까 봐.

만약 수술 결과가 까닥해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쩌면 저 남자에게 염치없는 짓일 수도 있었다.

“차여주 씨, 겁이 많아졌네. 물론 수술 잘될 거 알지만, 당신이 수술실 들어갈 때 내가 당신 법적 보호자 해 주고 싶어서 그래. 진심입니다.”

알아요. 당신의 진심이 뭔지는.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서 말하는 남자의 입김이 뜨거웠다.

“내가 지금 긴장을 해서, 몸에서 좀 열이 끓긴 하네.”

그가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주변의 조명이 분위기 있게 바뀌었다.

그것 역시 사전에 남태오가 안 실장에게 준비시켜 놓은 것이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겨진 것처럼, 기묘한 적막 속에서 그는 여주의 손을 제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한층 가까워진 두 사람의 호흡이 금방이라도 뒤섞일 것만 같았다.

“차여주 씨.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야 합니다.”

“네. 대표님.”

여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방금까지는 정중하게 고른 멘트. 진짜 내 진심은 이겁니다. 나는 단지 팬이 아니라, 차여주 씨의 남자가 되고 싶은 거야.”

여유롭던 남자의 눈빛에서 슬슬 초조함이 깃들어졌다.

그는 여주의 반응을 준비했던 멘트도 떨어져 가는 마당에, 그만 던져 버리기로 했다.

좀 더 직설적으로 제가 원하는 것을 표현해 내서라도, 차여주의 침착함을 벗겨 내고 싶었다.

고작 수술을 핑계로 이제 와서 제게서 도망치겠다는 건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미 그는 차여주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독자로 만족하려고 했었는데, 욕심이 계속 나더라고. 처음부터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래, 정말 솔직히 말하지. 나는 당신이 작가로서 행복하길 바라지 않아. 여자로서, 한 개인으로 행복하길 바라. 그리고 그걸, 나는 해 줄 수 있어. 당신이 성공한 작가가 아니어도 돼. 그냥 차여주면, 그러면 돼.”

말을 끝낸 남태오가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울리려고 하는 건 아니었는데, 여주의 눈가가 젖어 들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거절 당하는 건가?

그러면서도 손을 뻗어 여주의 눈가를 닦아 주려고 했다.

“곤란한데. 울리는 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라.”

“좋아서, 오늘은 좋아서 우는 거예요. 정말 기뻐서도 눈물이 나오는 거였네요.”

여주가 울다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말로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망설임은 저 남자의 탓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저 남자의 옆자리에 서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선물보다도 더 값진, 남태오의 진심을 말로 듣게 됐다.

정말이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 있는 여자가 있을까?

여주는 제 안에 이미 죽어 버린 줄로만 알았던 여심이 이미 뒤흔들렸음을 인정했다.

저 남자가 쥐고 흔들어 놓았고, 놓아주지 않는 이상.

그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니 이 프러포즈를 거절하는 게 더 도리가 아닐 테지.

“태오 씨도 참. 제가 만약 그래서 정말 글을 더 이상 안 쓰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해요.”

“그래도 상관없어. 당신 하나쯤, 내가 먹여 살리는 건 일도 아니야.”

“고마워요. 그렇지만 저도 태오 씨한테 자랑스러운 아내가 되고 싶어요.”

여주의 말에 그가 그제야 평소의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회장님께선 올해 안에 결혼 날짜 잡으시라던데.”

“그렇게 빨리요?”

“성질이 급한 거, 내가 회장님 닮았나 봐.”

남태오는 기세를 몰아 당장이라도 식장으로 갈 분위기였다.

현실적으로 가능했다면 그는 그대로 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여주가 자그맣게 묻는 말에 당장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저기, 근데 이 다음에는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아까 바라던 대로 룸으로 바로 올라가면 될 일인데?”

프러포즈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었다.

물론 여주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도, 한 번으로 포기할 남태오가 아니었지만.

그 역시 자꾸만 입가가 길게 늘어진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고 나긋하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음험한지, 이참에 확인해 봐요.”

이내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테라스를 벗어났다.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박하나는 외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방 안에만 있었다.

도지성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였다.

돈 좀 빌려 달라고 부재중 전화가 남겨진 것을 끝으로 그는 연락이 없었다.

그의 부친인 도지문 회장이 죽었다는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녀의 엄마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 놓고 세상의 온갖 소식을 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그녀의 엄마가 들어섰다.

“얘, 하나야! 글쎄, 경기도 외곽에 택배 물류 센터에서 화재 사고가 났었다더라.”

“그게 뭐가 어쨌다고? 그걸 나한테 왜 얘기하는 건데?”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던 박하나가 날을 세웠다.

“너는 안타깝지도 않아? 심지어 화재 사고로 죽은 사람이 한 명이었대.”

“그러니까 그게 뭐 어쨌다고.”

박하나는 재수 없게 뭔 그런 뉴스를 보고 있냐고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쯤 하면 딸의 눈치를 보고 물러갔을 테지만, 그녀의 엄마는 계속해서 뉴스의 내용을 전달했다.

화재 사고의 시신 한 구가 신원 미상이었는데, 그게 밝혀져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겨 줬다면서 말이다.

“그 시신이 글쎄, 얼마전에 그 뭐더라. 뭔 황금 출판사? 무슨 대단한 회장이 죽었다고 했잖아? 그 회장 아들이었다더라.”

“뭐? 그게 정말이야? 황금 출판사 확실해?”

박하나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리모컨을 뺏어 거실로 달려가 텔레비전의 음향을 끝까지 키웠다.

기자는 속보라면서 뭐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얼마 전, 타계한 황금 출판사 도지문 회장의 소식이 안타까움을 줬는데요. 경기도 외곽 지역의 물류 센터 화재 사고 소식을 전해 드리면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드리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원 미상의 시신 하나만 화재 사고로 죽었는데, 그게 도지문 회장의 차남으로 밝혀져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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