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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팅 웨딩-42화 (42/60)

42화

그리 좋은 얘기도 아닌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한 것일까?

하지만 이미 한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어, 서둘러 덧붙였다.

“저, 그치만 괜찮아요. 워낙 어릴 때부터 그래서 아예 부모님 얼굴도 모르니까요.”

“아니 여주 씨, 왜 이렇게 슬픈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요. 흑.”

하지만 여주가 덧붙인 말에 태희는 코를 훌쩍거리다가 눈물을 흘렸다.

어떡하지?

설마 진짜로 울 줄이야.

당황한 여주가 태희를 달래려고 손을 뻗었다.

“전 정말 괜찮은데……. 우, 울지 마세요. 언니.”

여주는 조심스레 태희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우는 아이도 못 달래던 여주였으니 우는 어른 달래는 재주가 있을 리 없었다.

“흐흑. 아니, 나도 울려고 우는 건 아닌데. 그냥 얘길 들으니까 여주 씨가 너무 불쌍하고, 나보다 일찍 철이 더 든 것 같아서 그래요. 나보다 어린데, 어우. 생각하니까 더 슬퍼요. 흐흑.”

“울지 마세요. 언니, 전 정말 괜찮아요. 네?”

회귀한 시간까지 따지면 벌써 오래전 일 같았다.

여주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태희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다 큰 어른이 우는 걸 보는 건 여주도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저를 위해 울어 주는 사람이라니, 기분이 생소했다.

“그, 그래요? 흐흑. 근데 나 원래 한번 울면 눈물이 잘 멈추지 않아요. ……여주 씨, 잠깐만 나 좀 안아 줄래요?”

“……제가요?”

“네. 누가 달래 주면 그래도 눈물이 들어가더라고요.”

“……네. 그래서 언니가 정말 괜찮으시다면요.”

커다란 두 눈이 빨개져서 안아 달라고 손을 뻗는 태희를 보던 여주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손을 뻗어 안아 줬다.

나이와 상관없이 태희는 여린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게 보였다.

브런치를 해 주겠다고 하면서, 언니라고 불러 달라고도 했다.

그저 오빠인 남태오와 사귄다는 말만 들었을 텐데.

아무런 편견 없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준 게 고마웠다.

“……응? 여주 씨, 다른 사람 안아 준 적 별로 없구나. 이렇게 안아야죠.”

어느새 코끝이 빨개진 태희가 여주를 더 확 끌어당기면서 킥킥거렸다.

그러고 보니 여주는 엉거주춤 손만 뻗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제가 남하고 원래 스킨십을 잘 안 해서요.”

얼떨결에 체구가 작은 여주가 태희한테 안겨 있는 모습이 됐다.

“흐음. 이러니까 우리 오빠랑 어떻게 연애하는지 너무 궁금하잖아요. 후우. 그치만 참아야겠지. 여주 씨 곤란하게 하지 말랬으니까.”

태희는 방금까지 울다가 또 웃다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 변화가 빨랐다.

겉모습뿐 아니라, 성격도 무표정한 남태오와는 전혀 달라 보였다.

“태오 씨가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럼요. 벌써부터 팔불출이에요. 완전.”

태희가 하는 말에 여주는 부끄러워졌다.

남태오와 서로 고백하고 연인 관계가 된 것이 실감이 났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오빠도 나 어렸을 때 울면, 가만히 있었거든요. 얼굴에는 어떻게 얘를 달래 줘야 하지? 그렇게 써 있었는데 방금 여주 씨 얼굴도 딱 그랬어요.”

“아, 아니 그 정도까지는.”

태희가 또 씨익 웃으면서 하는 말에 여주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언니. 이걸로 닦고 코도 푸세요.”

여주는 태희가 또 무슨 말로 사람을 놀래킬지 몰라, 얼른 휴지를 가져다줬다.

받아 들고 눈물을 닦아 내고 코를 팽 풀어 낸 태희가 머쓱해했다.

“아 정말, 이러니까 내가 언니라 아니라 꼭 여주 씨가 언니 같잖아요. 나 원래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아닌데.”

“……정말요?”

태희처럼 감수성 넘치는 사람은 처음 보는 여주가 되물었다.

그러자 태희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로요! 학교 다닐 때 내 별명이 얼음 공주였다니까요? 딱 한 번, 곤 작가님 영화 봤을 때는 결말이 너무 슬퍼서 눈물이. 아! 우리 얼른 브런치 먹으러 가요.”

태희가 여주의 손을 잡아끌고 주방으로 갔다.

여주는 잠깐이지만 태희가 했던 말을 다시금 되짚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곤 작가의 소설 중 영화로 만들어진 건 단편작인 ‘한몸’이었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출간과 동시에 판권 계약을 맺게 됐고, 단편 영화로 제작이 됐다.

전생에서도 그 작품은 독립 영화로 분류가 됐고, 상영관의 개수도 많지 않았다.

작품성은 인정받은 반면, 대중성은 그리 높지 않았었다.

곤 작가에게 유명세를 안겨 준 작품은, 현재 휴재 공지가 뜬 연재작 ‘진저리’였다.

‘그냥 어쩌다 우연히 접한 것이겠지.’

여주는 태희가 영화의 관객이지, 독자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남태오 대표가 곤 작가의 팬이라지만, 동생까지 그럴 리는 없었다.

그런 우연이 존재할 리 없잖아.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방으로 갔을 때, 태희는 냉장고에 고개를 반쯤 처박고 있었다.

“역시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니까. 나는 베이컨을 꼭 넣어서 먹는데, 여주 씨는요?”

“저는 뭐든 다 잘 먹어요.”

“흐응. 그렇구나.”

뒤에서 본 태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 재료들을 꺼내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봐도, 아래에서부터 봐도 참 길고 늘씬했다.

저건 태오 씨랑 똑 닮았네.

얼굴은 안 닮았다고 해도, 남매가 아주 길쭉길쭉하니 보기 좋았다.

여주는 슬금 옆으로 다가가서 꺼내 놓은 재료 중 달걀을 집어 들었다.

“저, 계란 프라이부터 할까요?”

유일하게 자신 있는 메뉴기도 했지만, 가만히 있기는 싫었다.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후라이팬과 도마, 올리브유를 꺼내 놓았다.

한 번씩 주방에 올 때마다 혹시 몰라 봐 둔 것이었는데, 그러길 잘한 것 같았다.

“하긴, 뭐가 어디 있는지는 이제 나보다 여주 씨가 더 잘 알고 있겠다. 그래요. 여주 씨가 프라이 하면 나는 채소를 좀 씻어야지.”

태희가 엄지를 척 세우더니 앞치마를 가져와서 여주에게 직접 입혀 줬다.

둘이 입고 나니까 마치 커플처럼 앞치마가 똑같았다.

여주가 힐끗 보고는 놀라워했다.

“앞치마가…… 커플이네요. 우와.”

여주가 이런 물건이 있다는 것을 신기해하는데, 태희는 다른 느낌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어? 이거 커플이에요? 오빠랑 같이 입으려고 산 거? 어떡해. 여주 씨, 혹시 오빠가 아직 이 앞치마 입은 적 없다고는 말하지 마요.”

태희가 정색하고 하는 말에 여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기억으로는 태오 씨가 입은 적 없는 것 같아요. 언니, 왜 그러세요?”

“아니, 왠지 내가 이거 먼저 입었다고 하면, 그 인간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커플템이잖아요, 어쨌든.”

앞치마가 그렇게 의미 있는 물건이었던가?

남태오가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던 여주가 태희를 안심시켜 줬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화려한 패턴이 언니랑 잘 어울려요.”

“그, 그래요? 하긴 내가 옷발이 좀 잘 받긴 하는데. 여주 씨도 귀여워요.”

“저한테는 좀 많이 기네요.”

태희한테는 허벅지까지 오는 앞치마가 여주한테는 종아리까지 내려왔다.

앞치마가 아니라 무슨 치마를 걸친 것처럼, 키 차이가 확실히 두드러졌다.

역시나 길쭉길쭉한 느낌은 나지 않는구나.

여주가 미련 없이, 마침 계란 프라이가 타기 직전에 후라이팬을 뒤집었다.

* * *

식사가 끝나고 태희는 재밌는 책을 추천해 주겠다며 여주를 거실로 끌고 갔다.

여주는 설마 곤 작가 책은 아니겠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따라갔다.

“여주 씨, 이거 정말 재밌어요. 한번 속는 셈 치고 읽어 봐요. 이 작가 소설들이 우리 오빠한테도 통했다니까?”

하지만 태희가 가방에서 꺼낸 책 표지는 너무나 낯이 익었다.

왜 아니겠는가.

여주가 쓴 책이 맞았다.

무엇보다 오빠한테도 통했다는 태희의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여주는 우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어보기로 했다.

“이게…… 무슨 소설인데요?”

“추리 범죄 소설인데, 작가 이름도 좀 특이해요. 곤이라고. 여주 씨도 출판사에서 일한다니까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아, 네.”

나를 출판사에서 일하는 직원 정도로 알고 있구나.

“나처럼 책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재밌게 읽었으니까 이 작가 앞으로 더 크게 잘될걸요? 난 정말 팬이라서 팬 카페까지 가입했거든요.”

태희가 설레발치며 하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가만, 태희도 곤 작가의 팬이라고?

아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전생에서는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던 팬들이 현생에서는 이렇게 있었다니.

물론 그녀가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 그랬지만, 지금 보니까 세상이 참 좁았다.

‘태오 씨랑 사귀지 않았다면 태희 언니랑 만날 일도 없었겠지.’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도 참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어지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 작가가 팬 카페도 있어요? 아직 엄청 유명하지도 않을 텐데……”

사실 여주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었다.

전생에서도 출판사 측에서 말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요! 얼마 전에 휴재 공지 떴는데 팬 카페 회원들 모두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요. 아니, 연재 중에 갑자기 휴재 때리는 게 어딨어요. 그것도 무려 두 달씩이나! 그동안에 우리는 무슨 재미로 살라고. 여주 씨가 생각해도 진짜 이거 너무한 거 맞죠?”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주먹까지 휘두르는 태희에게 여주는 움찔했다.

“그, 그래도 작가한테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럴 거라고 믿고 있지만…….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어요.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여주 씨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이해할걸요. 여주 씨니까 말하는 건데, 솔직히 작가님 어딨는지 알면 납치해서 어디 가둬 놓고 글만 쓰게 하고 싶어요.”

나, 납치를 해?

감금하고 글만 쓰라고?

진심 어린 협박에 여주는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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