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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팅 웨딩-31화 (31/60)

31화

박하나와 도지성은 쇼핑 타운의 음식점을 찾았다.

그들은 식사를 하며, 아까 하던 대화를 마저 나눴다.

“아까 남 대표 얘기 말이야. 박하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간 거 아니야? 그 남자가 뭐가 부족해서 차여주랑 그러겠어?”

“자기가 남 대표한테 차여주를 곤 작가 어시로 속였다면서요. 그러니까 차여주가 그걸 기회로 남 대표한테 신임을 좀 얻었겠죠.”

“그렇다고 해도 차여주가 무슨 남자 꼬시는 재주가 있어서…….”

도지성은 박하나가 한 얘기를 믿고 싶지 않은 건지, 계속해서 부정했다.

박하나는 그러든 말든, 제가 하고 싶은 본론을 꺼냈다.

“근데 자기, 분명히 해 두고 싶은데요. 내가 차여주 찾는 거 도와주면 자기는 나한테 뭘 해 줄 건데요?”

“……박하나. 혹시 우리 관계를 말하는 거라면.”

“아니. 촌스럽게 그딴 얘기 하지 말고요. 사실은 나도 자기의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죠.”

박하나는 임신 얘기를 꺼냈을 때, 이미 도지성에게 정이 떨어졌다.

뻔뻔하게 저희 관계를 입에 올리는 도지성에게 코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서 말했다.

“내 도움? 어떤 거?”

“지금은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우리 박 회장님을 좀 만나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거동이 불편하셔서 그 집 안에 들어가야 돼요.”

“그럼 박하나 네가 직접 들어가면 되는 일 아냐?”

“내가 사정이 있어서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어요. 나 대신 들어가서 말을 전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아아. 그런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지.”

“만약 잘되면 당신 몫으로도 좀 떼어 줄게요.”

박하나는 집안에서 밉보인 신세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도지성이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될수록 피곤할 뿐이었다.

그저 적당히 도지성을 부려 먹고 돈 좀 쥐어 줄 생각이었다.

도지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으로 또 확인했다.

“박하나. 근데 너, 진짜 임신은 아닌 거지? 그렇지?”

“왜? 설마 이제 와서 아쉬워서 그래요?”

“아니. 절대. 그럴 리가. 난 그냥 네 몸 상태가 걱정돼서.”

“걱정 마요. 절대 임신 아니니까.”

박하나는 웃음기를 싹 빼고 말했다.

만약 박 회장과 딜을 하게 된다면, 자신은 도지성과 급이 달라질 것이다.

입지가 달라진다면 그때 가서 도지성을 버릴 생각이었다.

어차피 도지성은 차여주를 상대할 만한 레벨이 아니었다.

‘차여주 네가 행복해지는 건 아주 잠깐이야.’

박하나에게게 잠깐의 불장난 수준은 이미 끝났다.

* * *

여주는 퇴근한 태오의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그가 둘이서만 할 얘기가 있다며, 외식을 권유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검색한 쇼핑 타운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여기는 코스 요리가 잘 나와 있다고 하네요. 주방장 특선 추천 메뉴도 아주 좋다고 하고요. 대표님께서는 뭐든 잘 드신다고 하셨으니…….”

어색한 침묵을 이겨 보려 여주는 블로그 리뷰들을 읊고 있었다.

이상하게 태오와 단둘이 있으면, 긴장하게 되고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그게 어색하거나 싫지는 않으니 묘했다.

그저 사업상 비즈니스 상대라고 생각하면 될 텐데.

숨 쉬는 것조차 그를 의식하게 되니…….

여주는 그런 스스로가 낯설기만 했다.

“차여주 씨. 나는 특선 메뉴가…….”

태오는 한참 운전대를 잡고 여주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 톤은 낮고 잔잔해 듣고 있으면 편안했다.

그런데,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창밖만 보고 있었다.

“차여주 씨?”

신호가 멈춘 사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박하나와 도지성, 두 남녀가 보였다.

꼭 붙어 있는 그 바퀴벌레 한 쌍을 본 그의 얼굴도 따라 굳었다.

빠아앙!

그의 손바닥 아래, 클랙슨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순간, 그는 오직 차여주의 시선을 제게 돌려 놓는 것만 생각했다.

“대, 대표님.”

눈이 커다래진 채, 그를 돌아보는 여주였다.

아몬드형의 깊다랗고 이지적인 갈색빛 동공과 마주한 순간, 그는 깨달았다.

저 여자의 시선을 오롯이 제게만 붙잡아 두고 싶었다는 것을.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 순간, 태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차여주의 커다란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주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대표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차여주 씨만 원한다면 내가 해 주고 싶어서.”

“대표님. 저는…….”

“도착할 때까지 한번 생각해 봐요.”

여주의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을 보며 태오는 운전대를 잡았다.

신호가 바뀌고 그의 얼굴은 덤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수란 말을 꺼내는 순간, 그는 제가 원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차여주에게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든 이들을 응징하고 싶다.

입을 꾹 다무는 여주를 보고 태오는 주먹을 꾹 쥐고 다짐했다.

그는 차여주, 저 여자를 웃게 해 주고 싶다.

이게 일반적인 남녀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그가 쥔 권력을 휘둘러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의 사업과도 그리 상관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대단하네. 나한테 이 정도 의욕을 끌어내다니.’

이 감정들이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뭘까 싶었다.

남태오가 제 마음을 확실히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 * *

‘혹시 아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여주와 태오는 예약해 둔 룸으로 들어갔다.

태오가 잠시 업무 전화를 받으러 간 동안,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복수라니. 대체 그런 말을, 저 남자가 왜?’

그 단어는 전생에서든, 현생에서든 오로지 그녀만의 것이었다.

그녀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듯 쓸 수 있는 그런 단어였다.

그런데, 남태오 대표에게 설마 그 단어를 듣게 될 줄이야…….

평생, 남에게 당하고는 살아 본 적도 없었을 남자였다.

애초에 남에게 그대로 당하고 있을 남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뭘까.

‘혹시 나를 동정하는 건가?’

이제껏 봐 온 남태오는 남을 쉽게 동정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동정이라면, 그녀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그 말을 꺼낸 의도를 생각하느라 그녀는 정작 아까 봤던 바퀴벌레 한 쌍을 잊어버렸다.

호텔에서 봤을 때보다는 화가 나지 않았다.

단지, 아직까지도 그 둘이 붙어 다니는 게 신기해서 쳐다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제 반응을 남태오는 어떻게 해석했던지, 복수라는 말을 했다.

“먼저 식사하고 있어도 됐는데.”

그때 통화를 끝낸 태오가 돌아왔다.

“그럴 수는 없죠. 대표님이랑 동행했는데.”

음식은 좀 전에 나왔지만, 여주는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자리에 앉더니, 어서 먹자고 손짓했다.

코스 요리가 모두 나오고 두 사람이 배를 채웠을 때쯤, 그가 말했다.

“아까 내가 한 말, 진심입니다.”

“네?”

“제대로 들은 건지, 싶어서.”

“네. 대표님 말씀, 제대로 들었고 생각 중입니다.”

“그럼 됐습니다.”

태오가 먼저 그 얘기를 다시 꺼내자, 여주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이 알고 있는 건 남태오란 남자의 대외적인 모습이었다.

그가 어떤 사내인지 제대로 알고 있다 말할 수 없었다.

이참에 그의 속뜻을 알아보고 싶었다.

“실례지만…… 대표님께서는 저 같은 여자 처음 보시나요?”

“무슨 뜻입니까?”

“제가 지금 좀 막다른 골목인 건 맞아요. 그래서 혹시나 저를 좀 불쌍하게 여기시는 건가, 생각이 들어서요.”

그녀는 꼭 남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덤덤했다.

지켜보는 태오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내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대표님께선.”

예상을 빗나간 그의 대답에 여주가 당황했다.

저렇게 쉽게 인정하다니!

여주는 누군가의 동정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이런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불쌍해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

“그래서 내가 주는 도움 좀 받으면, 차여주 씨 자존심이 꺾인다든지 그럽니까?”

“그건…… 아니지만.”

여주는 태오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름대로 주제 파악을 잘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그녀가 자존심만 내세우는 걸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런 거 따지면 그건 진짜 절박한 게 아니거든.”

태오가 식사를 마쳤는지, 냅킨으로 입가를 우아하게 닦아 냈다.

차여주에게 설명할 일은 없겠지만, 그도 과거에 절박했던 때가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제 몫의 삶의 무게를 견뎌 내야 한다.

정말 사람이 절박해지면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매달리게 된다.

“맞는 말씀이세요.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거든요.”

“그 말은, 내가 쉽게 주워 먹으면 안 되는 아무거나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걸요. 저야 피해 당사자이지만, 대표님께서는 아무 관계가 없으시잖아요.”

여주는 꿋꿋이 제 의견을 내세웠다.

이쪽은 무려 인생 2회차였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더군다나 남태오에게는 오히려 그녀가 빚을 갚아야 할 입장이었다.

여태껏 도움 받는 것도 익숙하지 않는데.

어떻게 복수까지 도와 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요. 아직까진 우리가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이번에도 남태오는 순순히 인정해 보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으로 깍지를 끼기까지, 여주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아직까진?

마치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쪽으로든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 관계부터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하는데.”

그녀를 빤히 보던 그가 입술을 뗐다.

“차여주 씨. 나, 남자로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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