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팅 웨딩-23화 (23/60)

23화

다음 날, 남태오는 아침 일찍부터 출근 준비를 했다.

그는 평소처럼 아침 식사 대신, 커피를 내려 마셨다.

곧 있으면 가정부가 출근할 테니, 여주에게 식사를 하라고 간단히 메모를 적었다.

현관으로 향하던 그는 거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늘 혼자서 지내던 넓은 펜트하우스 안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묘했다.

“……벌써 깼습니까? 더 자도 되는데.”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인기척이 났다.

차여주도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대표님. 회사로 출근하시는 길이세요?”

그녀는 천천히 걸어와서 인사를 했다.

“네. 차여주 씨는 잠은 좀 편히 잤습니까?”

남태오는 잠시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누군가와 아침부터 인사를 주고받는 것은 얼마 만이더라?

가정부 혹은 안 실장 이외의 사람.

그것도 며칠 전에야 알게 된 사람.

그 사람의 성별이 여자라는 것까지.

생각할수록 차여주와의 인연은 신기한 점이 있었다.

“네. 제가 원래 살던 방보다 더 넓고 쾌적해서 좋았어요.”

잠을 잘 잤다는 그 말대로, 여주의 안색은 어제보다 나았다.

그는 이곳에 대려다 놓길 잘했다는 생각을 또 했다.

“차여주 씨는 오늘 외출 계획 있습니까?”

“네. 대표님. 황금배 출판사 사장과는 오늘 만나 볼 생각입니다.”

그의 예상대로 차여주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힘들다고 주저앉는 것보다 움직이려는 그녀의 행동력이 마음에 들었다.

남태오는 제대로 선심을 쓰기로 했다.

“혼자 가지 말고 안 실장이랑 같이 가죠.”

“말씀은 감사하지만 대표님 보좌하시는 분인데 그럴 수야 없죠.”

“그래요. 그럼 저녁에 봅시다.”

“네. 잘 다녀오세요.”

“언제든 연락해요. 도움 필요할 때.”

남태오는 여유롭게 그 말을 전하고 나갔다.

여주는 문이 닫히고 나서야 자신이 저도 모르게 남태오 대표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도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늘 서재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원고와 씨름을 해야만 했다.

‘자, 이제 도지철 사장하고 약속을 잡아 볼까?’

현실 감각이 돌아오고, 여주는 차분해졌다.

황금배 출판사 사장과 약속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도지철 사장은 매출순으로 작가를 대하는 태도가 천지 차이인 것으로 유명했다.

도지성보다 잔머리를 굴리는 능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제 밥그릇 하나는 기가 막히게 챙길 줄 알았다.

한마디로 돈에 충성하고, 돈만 우러러보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러니 도지성보다 도지철 쪽이, 여주가 요리하기 쉽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모두 다 전생을 겪은 덕분이었다.

* * *

새벽, 기절했던 도지성은 시멘트 바닥에서 깨어났다.

차여주의 집 앞이었고, 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억을 했다.

“남태오 대표, 너 이 새끼가!”

도지성은 그길로 뉴콘텐츠 건물로 달려갔고, 대표실로 뛰어가려고 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비켜! 네가 대표 비서면 다야? 너네 대표하고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왔다니까?”

“진짜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경비 불렀습니다?”

하지만 비서의 철통 방어로 대표실 문 앞까지 갈 수도 없었다.

그래도 도지성은 물러나지 않았다.

제집 놔두고 도망가 버린 차여주가 지금 어딨는지 알아내야 했다.

“김 비서, 무슨 일입니까.”

문밖의 소란으로 대표실에서 남태오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죠! 차여주, 그 여자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용케 살아났네.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묻지?”

남태오가 가볍게 손목을 휘두르며 다가가자, 도지성이 지난밤의 기억을 떠올리고 흠칫했다.

“그, 그걸 대표님이 모르시면 말이 안 되죠! 어제 저녁에 둘이 같이 있는 거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도지성이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저 주먹에 제대로 맞았으니, 또 기절할 수는 없었기에 피하는 거였다.

“안다 한들, 내가 말해야 하는 이유가?”

남태오는 별 우스운 얘기를 다 듣는다는 듯, 비웃음을 날렸다.

“대표님. 진짜 이러실 겁니까? 차여주, 걔가 비밀로 해 달랬어요? 내가 바람 한 번 피웠다고 제대로 돌았나 본데, 걔요. 나 아니었으면 작가 못 했습니다? 걔, 보기보다 안 순진해요. 대표님도 조심하시라니까?”

도지성은 한껏 억울한 얼굴로 말하느라, 옆에 있던 김 비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저, 저기 그러시면 안 되는데.”

김 비서의 얼굴은 흙빛에서 똥빛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남태오 대표의 말끝이 짧아졌음을 감지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는 평소에는 아랫사람에게도 신사적으로 대했다.

그러나 일하는 와중에 방해를 받으면 야수로 돌변했다.

“김 비서, 잠시 나가 있도록.”

“하지만 대표님, 아직 점심시간이.”

“가서 맛점하고.”

“네! 대표님. 맛점하겠습니다.”

남태오가 카드를 지갑 채로 던져 주자, 김 비서는 이때다 싶어 달아났다.

김 비서가 사라지자 두 남자밖에 남지 않았다.

“당신. 인간 이하인 건, 아나?”

태오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도지성은 비즈니스 상대로도, 인간적으로도 최악이었다.

그나마 대체가 가능한 인력이니 다행인 수준이랄까.

남태오는 이미 오전에, 황금배 출판사 사장과도 통화를 해서 투자금 관련해서 말을 끝냈다.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면서 사장은 죽는소리만 해 댔다.

“인간 이하요? 나 도지성이 인간 이하라고 말하셨습니까, 지금?”

“이봐, 도 편집장. 경고하는데, 그냥 조용히 물러나.”

태오로서는 상대를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굳이 나온 것은 경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차여주 그 여자에게는, 그가 아니면 이런 일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남태오 대표님!”

“다시는 차여주, 그 여자 앞에 나타나지도 말고.”

남태오는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단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아님을, 도지성도 알아들었다.

그는 남태오의 기세에 눌려 위축됐다.

“하, 뭐 이런 그지 같은……. 내가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면요? 대표님께서 뭘 어쩌시려고?”

하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도지성은 기를 쓰고 반박했다.

“나머지는 그쪽 사장한테 가서 듣도록.”

그 말과 함께 대표실의 문이 닫혔다.

도지성은 사장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번뜩 머릿속으로 뭔가가 스쳐갔다.

‘설마, 도지철 그 자식이 이 기회에 날 제끼려고?’

그러고 보니 형인 도지철이 그를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선투자금 지급 건으로 들들 볶아야 하는데, 조용했다.

설마, 나를 빼놓고 이미 남 대표와 둘이서 얘기를 끝냈다?

그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씨 망할!”

도지성이 그 자리에서 바로 도지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며칠 동안 차여주의 대필 작가를 구한답시고 신경 쓰느라, 회사 일은 잠시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벌어진 일이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빨리 파악해야 했다.

도지성은 바로 도지철의 비서에게로 연락했다.

“어, 난데 사장님 계시지? 연결해 봐.”

- 죄송하지만 편집장님. 사장님께서는 방금 막 외출하셨습니다.

“외출? 방에서 고스톱이나 치는 게 다인 인간이 뭔 외출을 한다고!”

- 정말입니다. 아까 점심 약속이 잡히셨거든요.

“점심 약속? 누구랑? 거짓말이면 죽을 줄 알아.”

-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출판사 직원으로 여자였어요.

“그럼 그 여자 이름이 뭔데? 아 빨리!”

- 차 씨였어요. 편집장님. 그 이상은 정말 몰라요.

전화가 끊기고, 도지성은 기가 찬 웃음을 뱉어 냈다.

“하! 차여주, 이게 진짜 앙큼하게 구네?”

차씨 성을 가진 직원도 드물었지만, 사장인 도지철에게 먼저 연락해서 약속을 잡을 만한 배포를 가진 여자라면.

며칠 전부터 제정신이 아닌 차여주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도지성은 그 자리에서 바로 차여주의 위치를 조회했다.

웃기게도 차여주는 계속 집에만 있는 것으로 떴다.

어플의 오류거나, 차여주가 뭔가 조작을 했거나!

“차여주, 너 죽었어.”

도지성은 바로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도지철, 그 욕심 많은 놈이 차여주와 단둘이 만나는 걸 막아야 했다.

안 그러면 그가 지금껏 편집장으로서 둘 사이가 가까워지는 걸 막으려고 도지철을 차단했던 게 헛수고가 된다.

“얘는 하필 바쁠 때 계속 전화를 하고 난리야.”

아까부터 박하나가 그를 찾는 부재중 전화가 쌓여 갔다.

그는 벨 소리를 무시하고 서둘러 출판사 주변 음식점을 돌기로 했다.

* * *

그 시각, 여주는 카페에서 황금배 출판사 사장과 만났다.

식당에서 볼까 하다가, 혹시나 도지성이 알고 바로 나타날까 봐 일부러 카페로 갔다.

주변 회사들의 사원들로 붐비는 카페마다 돌아다니면서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차여주 씨. 회식 자리에도 늘 안 나오더니, 웬일로 사장인 나를 다 보자고 했을까?”

과거나 현재나 도지철은 여전했다.

특유의 능글거리는 말투와, 느끼한 눈빛으로 그녀를 흘낏거렸다.

“도지철 사장님.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전 오늘 이 자리에 출판사 직원이 아니라 작가로 나온 겁니다.”

여주는 뱀 같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전생의 시댁 식구 중 하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생에서도 그는 황금배 출판사 사장으로서, 그녀가 곤 작가란 것을 아는 소수에 속했다.

도지성과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 밝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차여주 씨가 작가로 나왔다니? 에이! 도지성이랑 일하는 게 많이 힘든가 보네. 어시 말고 작가를 하고 싶어 하고, 뭐 나한테 잘만 보이면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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