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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팅 웨딩-10화 (10/60)

10화

도지성은 차여주의 남자니까.

그러니까 질려서 버릴 때 버리더라도, 한 번은 제대로 가져 보고 싶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박하나의 얼굴이 벨 소리에 일그러졌다.

“엄마, 왜 또! 회장님이 다른 여자한테 간 것 같다고? 이제 좀 익숙해질 때 됐지 않았어? 아씨, 소리 지르지 좀 마. 귀 아파! 엄마가 사모님한테 했던 짓 생각해 봐. 뭐, 그래서 내가 태어난 거 아니냐고? 알겠어, 알았다고! 이번주에 회장님 찾아뵈면 될 거 아냐. 끊어.”

듣는 사람도 없는데도, 한껏 소리를 낮춰 통화를 했다.

그녀는 반쪽짜리 재벌이었다.

남들은 그녀더러 금수저 물고 태어났다지만…….

속사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걸 감추기 위해서, 오늘도 화려한 명품으로 둘렀다.

‘두고 봐. 내가 그깟 배경 없이도 성공한다는 거 보여 줄 테니까.’

* * *

“오늘 어디 피서 갑니까.”

“네? 아닌데요.”

여주는 약속된 카페 룸으로 갔고, 남태오는 먼저 와 있었다.

인사하기도 전에 받은 질문은 좀 특이했다.

“시력이 안 좋은 편입니까.”

“아닙니다. 보통인데요.”

그는 넙죽넙죽 대답을 잘하는 여자를 빤히 봤다.

살면서 옷을 저렇게 못 입는 여자는 처음 봤다.

저 싸구려 호텔 벽지 같은 꽃무늬 가디건은 왜 걸친 건가?

빨간 뿔테 안경은 또 왜 쓴 거지?

그녀 나름대로 지적으로 보이려고 쓴 것임을, 그가 알 리 없었다.

남태오의 눈에는 패션 테러범이 따로 없었다.

지금 그녀는 눈이 아프게 요란했다.

차라리 지난번 초코 자국 묻힌 블라우스가 백배는 나았다.

‘참자. 저 망할 가디건, 참자.’

상대는 무려 곤 작가의 어시였다.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그의 미적 감각으로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 안구 테러하러 왔습니까.”

“……대표님. 말씀이 좀 심하신 거 아닌가요?”

“내가 심하다?”

“네. 대표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될뿐더러 제가 테러라니요.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여주의 얼굴은 살짝 빨갰다.

안구 테러라니!

단어 자체에서 오는 느낌만으로 굉장히 쪽팔렸다.

어쩐지 여기 올 때까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더라니!

그녀도 자신이 옷을 못 입는다는 건 알았다.

꾸며 본 적이 없으니 서툴렀을 테지만, 그래도 테러라니!

“그럼 그 뿔테 안경부터 벗습니다. 실시.”

“……네. 알겠습니다. 실시.”

상대는 그녀의 비즈니스 상대가 될 남자였다.

지적으로 보이려고 쓰고 왔다는 말은 고이 넣어 뒀다.

“훨씬 낫군요.”

여주가 안경을 벗자 그가 그제야 눈을 맞췄다.

‘어쩐지 계속 눈을 피하는 것 같더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

원래 저 남자의 원칙이었다.

근데 그걸 잠시 무시할 정도로 그녀의 스타일이 처참했다는 거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냐고 묻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병원에는 왜 갔던 겁니까?”

그녀보다 남태오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저기, 제가 병원 간 거는 어떻게 아셨어요?”

“지나가다 봤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혹시…… 어디 아프세요?”

그녀는 나름대로 제 팬에 대한 염려였다.

“지인 병문안차 갔습니다.”

“아, 네. 그럼 다행이네요.”

“난 건강합니다.”

“네. 좋으시겠어요. ……아. 비꼰 게 아니라 정말 부러워서.”

사교성 없는 게 이렇게 티가 나는구나.

원래도 타인을 잘 못 대하는 그녀였다.

잘해 보려고 내뱉다가 괜히 더 어색해지는 식이었다.

거기다 저 남자 앞에서 유독 긴장까지 하니까 더 말이 꼬였다.

아니, 제발 비호감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디 아픕니까.”

“그냥 좀……. 그보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 편집장, 많이 바쁩니까.”

“네. 처리하실 업무가 많아서 오늘은 제가 대신 나오게 됐습니다.”

남태오는 딱히 의심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여주는 그가 도지성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감지하길 바랐다.

“혹 곤 선생께 무슨 일 있습니까.”

“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바라던 질문이었으나 그녀는 모른 척 되물었다.

“선생께서는 건강하십니까.”

그렇게 묻는 남자의 눈빛이 정말 너무 진심이었다.

‘진짜 팬은 팬인 모양이야.’

그녀는 어차피 알려질 일이니, 먼저 알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도지성보다는 그녀가 말하는 게 유리했다.

“아……. 그게 사실은요. 선생님께서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십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휴재 공지를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녀는 저 남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좀 긴장했다.

“이름이 뭡니까?”

그런데 남자는 이름을 물었다.

“차, 차여주입니다.”

당황한 여주가 대답했다.

“그래요. 차여주 씨.”

“네.”

“그렇게 될 때까지 뭐 했습니까?”

“……저는.”

“형편없군요.”

신랄하게 내뱉는 말에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 깜빡하고 있었다.

저 남자, 엄청 까칠하고 차가웠다.

무섭기까지 했는데, 티를 낸 적은 없었다.

“선생을 잘 보좌하는 게 그쪽 일 아닙니까.”

“…….”

“자격 미달입니다.”

그래요. 뭐 내가 내 몸에 죄인이었으니까요.

그건 맞는 거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라 그녀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꼭 야단맞는 사람처럼 살짝 고개도 숙인 채로.

“입 달고 변명도 안 합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그쪽한테 뭐라고 하겠어요.

여주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속으로 말했다.

남자는 의사보다 더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그래 놓고 한가하게 그 꽃무늬 가디건 입고 나올 정신이 들었다니.”

“…….”

“보기보다 철면피군.”

명백한 비난조에 그녀는 귓볼까지 달아올랐다.

방금 전까지는 어디 안 아프냐고 물어봐 주더니!

이제는 또 한가해 보인다는 식이었다.

거기다 꽃무늬 가디건!

아무리 저쪽이 갑이라지만,

그녀의 옷부터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그, 저…… 오늘은 선생님께서 바깥바람 좀 쐬고 오라 하셨어요. 제가 한가하게 정신줄 놓고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뭡니까.”

“이 꽃무늬 가디건은 죄가 없어요!”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망했다, 망했어.

여주는 제 입을 꼬매 버리고 싶었다.

어째서 저 남자 앞에서는 이놈의 주둥이가 날뛰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쪽이랑은 다시 안 봤으면 싶은데.”

남태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디긴 다리가 소파를 벗어나려고 했다.

저 남자에게 미련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쉬운 건 그녀였으니 하는 수 없었다.

“자, 잠시만요!”

그녀는 염치 불구하고 손을 뻗어 그의 다리를 잡았다.

“뭡니까.”

“서, 선생님께서는 정말 많이 안 좋으세요. 최소 두 달은 휴재를 하신댔어요.”

“무슨.”

저 남자가 관심 있는 건 곤 작가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정보를 일부 흘리는 수밖에.

그것만이 꽃무늬 가디건으로 하락한 신뢰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사실입니까.”

“네. 극비 사항입니다만 사실이에요.”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 겁니까?”

“최소 두 달은 집필을 못 하실 거라고, 병원에서는 수술도 해야 한다고요.”

여주는 간결하게 정리하며 말끝을 흐렸다.

“맙소사.”

그 말에 남태오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도 편집장은 별말이 없던데.”

옳거니! 드디어 그녀가 원하던 전개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전적으로 저를 믿고 계십니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긴 그렇지만 편집장님과는 오랜 시간 꾸준히 마찰이 있었습니다.”

“단지 상사라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의리와 신뢰를 중요시하는 분이라 건강을 회복하고 나면, 조만간 출판사를 옮기실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과정이 최대한 원활하고 잡음이 없길 바라시지요.”

“사실입니까?”

남태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부 그녀에게서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녀의 태도는 흠잡을 데 없이 진지했다.

방금 전, 그의 안구를 테러하던 여자는 어디 가고 조리 있게 말 잘하는 모습이었다.

저래서 곤 선생의 어시를 하나 싶을 정도로.

“네. 앞으로 제 남은 어시 인생 걸고 약속드립니다. 그러니 대표님께서도 저를 믿어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연락하죠. 내가 확인하고 나서.”

정말이라면, 앞으로 많은 것이 달라질 테다.

황금배 출판사에 그동안 투자했던 건들은 모두 곤 작가가 있었기에 했던 것들이다.

진행 중인 것도, 진행 예정인 사업 건들이 전부…….

“네. 부디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믿음이란 건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했고,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태오와 그럴 만큼 시간이 없었다.

단시간에 신뢰를 쌓아 올리려면, 그가 필요로 할 만한 정보를 줘야 했다.

사람은 결국 이해관계보다는 손익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법이다.

남태오, 그 역시 사업가 아닌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닫히는 문 사이로 짤막하게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 실장. 황금배 출판. 투자금 선지급 결정 보류시켜.”

문이 닫히고, 여주는 감탄사를 낮게 흘렸다.

역시 자금줄을 흔들면, 도지성은 알아서 쫓아갈 것이다.

도지성이 뭐라고 말하든, 변명이 되겠지.

그녀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다시 문이 열렸다.

“차여주 씨, 그 가디건…… 또 입고 나올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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