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팅 웨딩-1화 (1/60)

1화

세상은 그녀를 버렸다.

범죄 추리 소설의 대가.

데뷔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쥔.

자랑스러운 한국인.

한때는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고, 동경했다.

5년이었다.

19살 때부터 5년 동안 쉼 없이 쓰고 또 써냈다.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었던 장기 연재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남편의 배신이었다.

친하던 대학 동기의 배신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어긋났던 것일까.

두 사람의 아이인 지유가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부터?

아니면 박하나가 그녀의 것을 욕심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 여주 네 꼴 좀 봐. 그러게 내가 뭐랬어, 닥치고 글만 쓰랬지? 여자, 엄마 그딴 건 너랑 안 어울려. 너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해? 제발 주제 파악 좀 하고 우리 인생에서 껴져 줘. 넌 네 남편이 불쌍하지도 않아?”

박하나는 그녀와 같은 출판사 소속이었다.

존경하고 동경한다면서, 첫 만남에서 수줍게 말을 건네던 그녀였는데.

어떻게 그런 거칠고 험악한 말들을 쏟아 낼 수 있던 건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처음부터 얼굴이 두 개였던 거구나?

그렇구나.

처음부터 너는,

너희 두 연놈은 나를 속였던 거구나.

“내 아들, 지유 네가 죽였어! 너 같은 거랑 처음부터 결혼하고 애 낳는 게 아니었는데! 너 같은 건 그냥 돈벌이 소설이나 쓰는 나부랭이였는데. 내가 미쳤었던 거지.”

분명한 건 남편의 아들만이 아닌, 그녀의 아들이기도 했다는 것.

그러니까 그녀도 아프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녀의 배로 열 달이 넘게 품었던, 한 몸 같았던 아이였다.

그런 그녀의 아이를 앗아 간 건 잔인한 세상이었다.

“애초에 너 같은 거랑 엮이는 게 아니었다고! 재수 없는 년!”

재수 없는 년.

도지성은 화풀이를 할 때마다 그렇게 소리쳤다.

여주에게는 참 잔인한 세상이었다.

그녀가 고아로 이 세상에 난 것부터가 순탄치 못했다.

낳은 부모에게서, 고아원에서, 이 나라로부터 버려졌다.

쫓기듯 미국으로 입양 갔고 그녀는 남들처럼 살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양부모 역시 그녀를 학대했고, 그녀는 트라우마를 얻었다.

버려지고, 괴롭힘 당하고, 쑤셔지고, 할퀴어지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같은 인간이라는 동족을 혐오하게 된 것도 당연했다.

<제 아이를 죽인 희대의 살인마, 세계적인 소설가의 끔찍한 실체>

<소설적 상상이 아닌 자기 고백 아닌가, 인간이길 포기한 악마>

<그가 아니었던 그녀, 그것부터 문제였던 것인가>

<소설가 곤, 그녀는 분노 조절 장애, 인간 혐오의 실체였다.>

도지성과 박하나, 두 남녀는 증언과 입장 발표를 앞세웠다.

두 사람은 그녀의 유일한 지인이었으므로 신빙성이 있었다.

언론은 그들의 얘기를 앞다퉈 보도했고, 그녀에게는 연일이 파국이었다.

“후우.”

그녀의 입술이 처음으로 열렸지만, 한숨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녀가 세상을 등지려 했다.

아니, 이미 그녀는 독주를 삼킨 뒤였다.

그러니까 이미 등지는 중이었다.

“참 끈질긴 남자야.”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게 울려 대는 벨 소리에 그녀는 문을 열어 줬다.

이곳은 그녀 명의의 펜트하우스였고, 기자들조차 알지 못했다.

도지성 몰래 빼 둔 것은 아들 지유를 위한 거였는데.

결국, 생의 끝을 마주한 이 순간에야 이곳을 찾게 됐다.

“차여주 씨. 일단 나랑 얘기 좀 합시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이름은 남태오였고, 그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녀와 그리 친분이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시간이 늦었어요. 무슨 일이신가요.”

그녀는 여상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와 준 단 한 사람.

그런 의미로 고마웠다.

“당신, 아직 안 끝났어. 아직 안 늦었다고!”

“아니요. 이미…늦었어요.”

“잔말 말고 지금이라도 나랑 기자 회견 다시 합시다. 내가 도와줄 테니.”

쿨럭!

순간, 그녀의 가슴이 들썩이며 입가에서 붉은 핏물이 새어 나왔다.

와인의 달콤한 향이 퍼졌으나, 비릿한 향은 덮지 못했다.

“…늦었어요. 정말로.”

애써 웃으며 말하는데, 남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당신, 차여주 씨! 아직 안 늦었다고! 어째서!”

흥분했는지 목소리를 드높이는 남자였다.

어째서냐니, 우습게도 드는 생각은.

“어라. 대표님, 제 본명 알고 있었네요.”

늘 그녀를 곤 선생이라고만 부르더니.

혹은 글쟁이 나부랭이라고 그러더니.

독설만 내뱉던 그 잘난 입술이 오늘은 왜 저렇게 애타 보이는 거지?

그녀는 남자의 표정과 행동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당신을, 당신을…… 그러려고 얼마나…… 얼마나.”

“미안해요. 대표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요.”

독한 약의 기운이 점점 퍼져 가자, 웃을 수 없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느꼈을 그 고통!

그 통증을 느끼기 위해 최대한 고통스럽게 제조해 달라고 주문을 넣어 뒀다.

덕분에, 그녀는 지금 온몸이 조각나고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점점 조여 오다 숨이 끊겼겠구나, 내 아이도.

“아, 알잖아요. 어차피 세상이 바라는 건 내 자살이죠.”

그녀가 숨을 헐떡거렸다.

그게 소설가인 곤의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팬들마저 종용하지 않았던가.

대중에게는 그녀의 인생보다, 소설가로서의 인생이 더 강력하게 각인돼 있었다.

소설가로서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그녀에게 이런 선택을 하도록 그들은 바랐다.

그 간절한 바람을, 그녀로서는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믿었어? 그런 것들 때문에 당신의 목숨을, 안 돼!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나는 아직 당신한테…….”

“그동안 고마웠어요. 남태오 씨.”

그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 마지막 예의겠지.

“안 돼! 망할! 왜 구급차는 오질 않아!”

“사, 사실, 사실은…….”

희미하게 끊어지는 말들은 문장이 되지 못했다.

입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한 말들은.

‘내 아이, 지유가 죽고 나서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몰랐는데 나, 그 아이 꽤 사랑했더라고요. 엄마로서 내가 더 살아갈 자격이 없어. 그러니까, 이제라도 속죄해야 해.’

하지만 이 말을 들어 줄 사람은 당신이 아니었다.

이 말을 해 줄 아이도 더 이상 세상에 없다.

“차여주! 망할 이, 이 독한 여자야!”

그녀의 숨이 끊어졌다.

그녀의 나이, 올해로 불과 스물다섯이었다.

생일을 불과 하루 남겨 두고 스스로 자택에서 비관적인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은 남편도, 친구도 아닌.

남태오라는 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가 자살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또한 왜 아무도 그 사업가 말고는, 그녀를 지켜 주지 않았는지 의심하지 않았다.

그 당시 국민 정서로는, 그저 죽어 마땅한 여자였다.

그 시기의 국민들 대다수의 분노는 소설가 곤이 끝내 생을 마감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유일한 가족인 도지성 뜻대로 부검 역시 진행되지 않았다.

그녀는 고아였다.

모든 재산과 저작권은 남편이자, 편집자였던 도지성에게로 양도됐다.

그는 그녀의 장례식을 치르고 한 달도 채 안 되어 소설가 박하나와 재혼했다.

재벌가의 미모의 소설가와 능력 좋은 편집자의 만남을 사람들은 축복했다.

모두에게서 소설가 곤, 아니 차여주란 한 여자는 잊혀지는 듯했다.

그렇게 영영…….

* * *

여주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의 검사실 안이었다.

피를 뽑고 소변을 받아 오라는 간호사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핸드폰 진동이 느껴지고, 습관적으로 받았다.

- 여주야. 오늘 원고 마감은 제대로 끝내고 외출한 거야?

그건, 도지성의 목소리였다.

‘헉.’

그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틀림없는 그, 도지성이었다.

그녀를 재촉하는 느릿한 말투.

귀에 진물 나게 듣던 그 목소리.

정말이지 지겨웠지만, 지금만큼은 눈물 나게 반가웠다.

“……끝냈어요. 확인은 하고 전화하는 거예요?”

그녀는 최대한 덤덤하게 목소리를 냈다.

병원에 왔다는 걸 도지성이 알아서는 곤란했다.

기억대로라면, 오늘은 그녀가 도지성의 전화를 받고 검사 도중에 뛰쳐나간 날이었다.

고작 담당 편집자인 그의 말 한마디에!

확인해 본다던 도지성은 바로 끊지 않았다.

- 그건 그렇고 여주 너, 너무 안주하는 거 아냐?

그래, 저 말이었다!

너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는 거 아니냐, 몰아붙이던 한마디.

소설가 곤으로서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그녀를 언제나 채찍질했던 그 말.

이렇게 되살아나서 들으니까 기분이 묘했다.

“그럴 리가요. 원고 상태가 별로면, 오후에 들어가서 고치죠.”

그녀는 순순히 원고 상태의 질이 좋지 않을 거라고 둘러말했다.

도지성의 말에 따지고 들어 봤자, 그녀의 시간만 흘렀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몰라도 지금의 시간은 1분 1초가 소중했다.

- 그래. 내가 다 당신 위해서 하는 말인 거 알지?

“네. 알죠. 당신 마음.”

- 그래. 너무 늦지 않게 집에 돌아가. 이건 예비 남편으로서 하는 걱정이다.

“……알겠어요.”

도지성은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

아마 오늘 오전에 써 둔 원고는 그리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당시 그녀는 심리 상태가 무척 불안정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과거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아직 도지성과 결혼 전이었다!

이건 하늘이 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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