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화면을 바라보는 라울의 얼굴은 진지했다. 부상당한 처지면서 그가 쉬지 않고 움직이니 다른 이들은 피곤해 죽을 것 같으면서도 차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저 언제 라울이 되었다고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부근을 집중해서 조사해 봐라.”
“아, 네.”
졸려서 몽롱한 상태로 있던 군인은 황급히 라울이 지적한 곳을 확인했다. 그 손길이 굼떴다. 결국 라울이 직접 자판을 두드렸다. 빠르게 움직이는 라울의 손을 확인한 군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대단하다, 라고 중얼거렸다.
원하는 정보가 뜨는 걸 확인 후, 라울은 진지한 눈길로 화면을 살펴봤다. 유심히 살펴보기는 해도 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드존 건너편 지역이었다. 오염이 심하게 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들어갔으니 쉽사리 발견되지는 않을 터였다. 이런 걸로 확인하는 것도 어렵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찾을 수 있겠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다.
라울은 뒤를 돌아봤고 라우젝을 발견했다. 군복을 벗고 평소 즐겨 입는 하얀 예복을 입은 채로 사령관석에 서 있는 라우젝은 여유만만이었다. 라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함부로 이곳에 들어오지 마십시오.”
“난 여왕 폐하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받고 이리로 온 거야. 결과적으로 널 구출해냈지. 그런 내가 못 갈 곳이 어딨어. 지금 난 일시적으로 계급이 돌아온 상태고, 사령관이야. 그런 나를 그따위 눈초리로 바라보다니. 제정신이야?”
라우젝은 턱을 위로 살짝 들었다. ‘당장 눈 깔아.’ 그리 명령을 내리는 눈빛에도 라울의 시선은 고깝기만 했다. 라우젝은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그렇게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지 마. 그래도 나름 도움을 주려 찾아온 사람한테 말이야.”
“무슨 도움을 준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가진 통신 체계로는 레드존 깊숙이 들어간 그들을 찾기가 어려워. 다른 수를 쓰는 게 조금 더 현명하지.”
“다른 어떤 수를 말입니까?”
“매수, 같은 거?”
라울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라울의 성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우젝은 본인 할 말을 했다.
“들었어. 암시장에서 꽤나 화려하게 해 댔다지? 그래서야 곤란하지. 그 지역은 삼국이 암묵적으로 손을 뗀 장소야. 그런 곳에서 대놓고 활약을 하면 어쩌자는 건데. 덕분에 내가 대신해서 정중히 사과했어. 그리고 사람을 하나 살짝 붙여 뒀고 말이야.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차차 정보를 알아내서 이쪽으로 빼돌릴 거야.”
“저는 지금 당장 그들의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치울스와 알센이 움직이고 있다던데?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어. 다른 두 연방국이 나서서 놈들을 처리할 거야.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발칙한 것들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합동작전이 필요해. 결국 힘들이지 않고 놈들을 처단할 수 있을 거야.”
라울은 주변에 있는 이들을 주욱 훑어봤다. 다들 아닌 척해도 이쪽이 하는 말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이들은 들어선 안 되는 말들이었다. 그걸 왜 저렇게 경솔하게 입에 담는지 모르겠다. 작작 하라는 눈빛을 던져도 라우젝은 태연히 어깨를 으쓱인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그리 묻고 싶은 듯 눈을 깜박이는 것에 라울은 한숨을 쉬었다.
“주변 체크를 하고 있어라. 이상이 생기면 바로 부르도록.”
“네. 알겠습니다.”
라울은 밖으로 나갔다. 라우젝이 그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이 나가자 안에 있던 군인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다투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설령 다툰다 해도 이쪽이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라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게 최선이었다.
앞장서 걸어가던 라울은 방으로 들어갔다. 라우젝이 뒤따라 들어오고 문이 닫히자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 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모두에게 소문을 내실 겁니까.”
“너 여왕과 혼인을 할 마음은 있는 거냐.”
레드존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이었는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라울은 이상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묻는 겁니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묻는 거잖아. 피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 여왕과 혼인을 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야.”
이쪽을 응시하는 라우젝의 눈빛은 진지했다. 조금의 장난도 읽히질 않았다. 그제야 라울은 라우젝이 평소와 다른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그가 원하는 건 제대로 된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피해선 안 되었다.
“여왕과의 혼인은 저 말고도 다른 이가 할 수 있습니다.”
“그걸 다른 이들이 보고만 있을 것 같으냐. 모두가 원하는, 다른 연방국에 보여도 괜찮을 법한 왕통은 바로 너 라울이야. 너처럼 매력적인 인형을 누가 놓아주려 하겠어. 어림도 없지. 너는 결국 여왕과 혼인을 하게 될 거다. 모두가 축복하고 선망하는 성대한 국혼이 성사되겠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마기휼이 임신한 것 같더군.”
라울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닌 척하려 하는 게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건 마기휼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숨기고 싶어하는 상대가 거론을 하니 움찔하게 되는 거겠지.
라우젝은 재미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휘었다.
“재주도 좋아. 한 방에 끝냈네?”
“……저를 화나게 하시려는 겁니까.”
“현실을 알려주는 거지. 마기휼이 낳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어찌 될 것인지를 알려주려는 거야. 알려줄 것도 없나. 이미 넌 알고 있을 테니.”
빈정거리는 말에 라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움켜쥔 손이 당장 라우젝을 후려쳐도 하나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라울은 그런 어설픈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른 그는 단호히 말했다.
“전 여왕과 혼인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마기휼과 사시겠다? 그걸 다른 이들이 인정할 것 같으냐.”
“인정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것 따위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다라. 괜한 객기를 부리는군. 너는―”
“전 형님이 아닙니다.”
내내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던 라우젝이었으나 그 순간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전 당신처럼 도망가지 않을 겁니다.”
“…….”
라우젝은 입을 다물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그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예상치 못하게 깊숙이 찔린 듯한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쁜 걸까. 다 이유가 있었다. 라울이 노골적으로 이런 적대감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네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눈빛과 태도였다.
라우젝의 입술 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요즘 어린것들은 왜 이렇게 건방진 거야.”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거라면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기휼에게 약을 줬어.”
막 몸을 돌리려던 라울이 주춤했다. 빠르게도 고개를 돌리는 그 얼굴이 굳어 있었다. 라우젝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이를 지우는 약이야.”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어떨지 몰라도 마기휼은 희생당하는 입장이야. 이런 상황에 마냥 휩쓸리게 둘 수는 없잖아.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을 제공했지.”
약을 먹어 아이를 지우면 마기휼은 자유가 된다. 굳이 이쪽으로 끌려들어 오지 않아도 되었다.
라울은 당장 라우젝의 멱살을 잡았다. 코앞으로 그 몸을 끌어당기고는 어금니를 악물고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당신, 정말 나랑 끝장을 보겠다는 건가!”
“너와 함께 있는 삶이 어떤지 알면서 마기휼을 붙잡아 두겠다고?”
조롱하고 비웃는 말에 라울이 주춤했다.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라우젝은 라울의 손목을 붙잡았다. 피하려는 듯 빼내려는 손목을 더 강하게 붙잡으며 라우젝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냥 우리끼리 있자. 그러는 편이 나아. 괴물들끼리 붙어서 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지금처럼 저택에서 시답잖은 짓거리나 하면서 생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괜한 사람 잡을 일도 없었다. 멀쩡한 사람 폐인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라울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는 거였다.
응시하는 라우젝의 눈빛은 당당했다. 하지만 라울은 그 시선을 피해버렸다. 고개를 돌린 라울 서둘러 멀어지는 걸 확인한 라우젝은 손을 들어 흐트러진 의복을 정리했다.
옷깃을 당겨서 원래의 위치에 둔 라우젝은 손바닥을 펼쳤다. 아직도 소년의 손이었다. 이 손은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그리고 10년 전에도 이런 모양이었다.
“……도망이라.”
중얼거린 라우젝은 손을 움켜쥐었다.
그 상태로 시선을 돌리는 그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집사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다른 때라면 이쯤에서 물러났을 거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그리할 수 없게끔 했다.
결국 집사는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뭐지.”라고 묻는 다소 쉰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식사를 하셔야지요.”
“나는 괜찮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
“점심도 드시지 않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런다. ……그보다 형님은 무얼 하고 계시지?”
“낮에 목욕을 하시고는 지금까지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래?”
조용해졌다. 대화는 여기까지. 더 할 말도 없다는 듯 구는 것에 집사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마기휼이 다시 오게 되었을 때에는 안도했다. 마기휼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저택 분위기를 좋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어제 저녁에는 두 사람이 술을 마시는 동안 큰 소리가 났다 들었다. 다툰 걸까. 마기휼은 모르는 척을 했지만 가휼의 이마가 찢어진 원인이 그일 거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레나도 저택에서 나가버렸다. 마기휼과 가휼의 사이가 틀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며 집사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때 바깥에서 하녀가 황급히 달려왔다.
“집사님! 집사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조용히 해라.”
지금 가휼의 상태가 안 좋은데 또 무슨 큰일인가 싶었다. 집사는 뛰어오는 하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하녀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선 다급히 말했다.
“라울 대령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누가 찾아왔다고?”
“라울 대령님이요. 지금 바깥에 계십니다.”
집사는 가만히 있었다.
라울? 그게 누구지? 잠시 생각을 하다 그 이름을 지닌 사내에 대한 모든 정보가 머릿속으로 모아졌다. 믿을 수 없었던 집사는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를 찾아온 거란 말이냐. 주인님이신가?”
“아니요. 마기휼 도련님을 찾으셨습니다.”
“그래? 큰일이군. 지금 도련님은 주무시고 계시는데.”
이쪽이 그리로 가서 마기휼을 깨울 여유는 없었다. 일단 하녀에게 마기휼의 방으로 가서 그를 깨우고 있으라는 말을 전한 집사는 다급히 움직였다. 한달음에 1층으로 내려가자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장신의 사내가 보였다.
하얀 피부에 조각 같은 외모. 그리고 긴 금빛 머리카락과 보석을 박아 놓은 듯한 녹안. 체격도 좋고 풍기는 분위기가 말도 못할 정도로 고압적이었다. ‘나는 너희와는 종 자체가 다르다.’ 그리 어필을 하는 듯한 그 모습에 집사는 계단을 내려오다 말고 멈춰 섰다.
아래에 모여 있던 이들이 빨리 오라는 듯 눈짓을 하자 그제야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던 집사는 라울에게 다가갔다.
라울은 다가오는 집사를 바라봤다. 무뚝뚝한 시선에 집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 저택의 집사인 오르곤이라고 합니다.”
“안제크가의 라울이라 하네. 지금 마기휼을 만나 볼 수 있나?”
“물론입니다. 지금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20분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모시고 내려올 테니 일단 응접실로 가서 기다리시면―”
“내가 직접 가서 만나 보겠다.”
주절주절 이어지는 집사의 말은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라울은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빠르게도 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에 집사는 놀라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급히 라울의 뒤를 쫓았다.
듣던 대로, 아니 그 이상인 사내였다. 이렇게 잘생긴 사내라니. 마치 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예술 작품 같았다. 조금 더 정중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취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보다 지금 마기휼은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일까. 잠옷을 입고 있는 건 아니겠지? 흐트러진 차림으로 라울과 마주치게 할 순 없었다. 마기휼은 이 저택의 장남이었다. 안제크가의 가주와 만나는 일인데 격식을 차린 모습이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집사는 마기휼의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하녀를 발견하고는 눈을 감았다. 큰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집사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있던 하녀는 라울을 확인하고는 딸꾹질을 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하녀는 수줍은 듯 눈을 내리뜨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집사는 안색을 굳혔다. 왜 깨우지 못하고 있었던 거냐는 타박에 하녀는 고개를 조금 더 수그렸다.
“여기가 마기휼의 방인가?”
물음에 집사는 급히 라울을 올려다봤다.
“그렇습니다. 큰도련님의 방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주무시는 것 같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가 먼저 들어가서 깨우고 정돈된 모습으로 만나보실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
“되었으니 너희는 모두 물러나 있어라.”
본인이 할 말만을 한 라울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를 막을 새도 없었다. 문이 닫히는 걸 멍하니 바라보던 집사는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냈다.
정말 긴장했다. 저런 대단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라니. 저런 존재의 아래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강심장일까. 그리 생각을 하며 집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으로 들어가자 마기휼 특유의 체취가 맡아졌다. 그 내음을 깊이 들이킨 라울은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리고 방 한쪽에 위치한 침대를 하나 발견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존재는 등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체형을 보는 순간 그가 마기휼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라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리로 향했다.
침대 앞으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마기휼은 베개를 끌어안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색색거리며 숨을 토해 내는 얼굴이 편안했다. 지친 듯 단잠에 빠진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라울의 눈빛이 점점 깊어진다. 라울은 침대에 한 손을 대고는 마기휼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정수리 부근에 입술이 닿으려던 찰나, 마기휼이 눈을 떴다.
“……왔어?”
묻는 목소리에는 졸린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던 건가. 그리 생각하는 동안 마기휼이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앉은 마기휼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대충 늘어뜨린 채로 위를 올려다보는 얼굴이 멍했다. 라울은 굽힌 허리를 세웠다.
얼굴에 닿는 라울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기휼은 고개를 돌려 라울을 쳐다봤다. ‘뭐?’라고 묻는 눈빛에 라울이 입을 열었다.
“라우젝이 약을 줬다고 들었다.”
“줬지. 지금이라도 개미지옥에서 빠져나가라면서 줬어. 그걸 먹으면 아무 일 없이 아이만 지울 수 있다고 하더군.”
“먹었나?”
“먹었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대답에 라울은 눈을 감았다.
그는 손을 움켜쥐었다. 전신으로 힘이 들어간다.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가 그 주변으로 응축되었다. 저 상태로는 이쪽을 한 대 쳐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듯싶었다. 마기휼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그런 라울을 올려다봤다.
라울은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천천히 내쉬었다. 동시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순간을 마기휼은 놓치지 않았다. 바라보는 눈동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를 지워버렸다 해서 이쪽을 증오하거나 죽이고 싶어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냥 괜찮았다.
아마도 라울은 평소대로 이쪽을 대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아이를 지운 행위에 대해서 비난이나 원망을 하지 않을 터였다.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겠지.
레드존에 있었을 때 라울이 자신의 손목을 붙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그 뜨거움을 상기하며 마기휼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뱉어버렸어.”
라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되물었다.
“뭐?”
바보 같은 반응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라울이 저런 모습을 보이니 신선했다. 마기휼은 웃었다.
“뱉어버렸다고. 실제로는 혀끝에만 살짝 닿았어. 그리고 뱉어버렸지. 이제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갑자기 화가 나서 욕조 물을 전부 다 바닥에 뿌려버렸거든. 욕조가 의외로 무거워서 힘들었지.”
말을 하는 도중 더 웃음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무표정이 된 마기휼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눈을 내리뜨는 모습이 기운 없어 보였다. 양손을 드나 싶더니 이내 축 늘어뜨린다. 고개를 숙인 채로 침대 끝을 바라보나 싶던 마기휼은 중얼거렸다.
“아이는 내 아이야. 내가 키울 거야.”
라울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내색을 했으나 마기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개를 든 그는 웃는 얼굴이었다.
“너는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떻게 알아서 하겠다는 거냐. 떠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못 할 것도 없지. 어렵게 낳은 아이를 남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어?”
낳기는 한다. 그리고 자신이 키울 거다. 라울을 절반만 닮으면 외모는 괜찮을 거고, 성격도 무게감이 있겠지. 거기에다가 내 생존력을 가르쳐주면 걱정할 게 없었다.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잘 자랄 수 있었다.
무조건 강하게. 야생으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내가 너와 아이를 지켜내지 못할 인간으로 보이나.”
잠시 동안 혼자 생각을 하며 현실 도피에 빠져들어 갔던 마기휼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가만히 있나 싶던 마기휼은 라울을 올려다봤다.
아아, 정말 화가 난 얼굴이다.
하지만 노려보기만 하고 말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는 손을 들지 않을 거다. 정말 바른 생활 사나이라니까. 아닌 척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배려심 있고, 다정하고, 그리고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자신만 아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거면 됐다. 그 우월감만으로도 충분했다.
마기휼은 웃었다. 왠지 모를 애달픔이 풍기는 미소에 라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넌 나랑은 달라.”
라울의 미간 사이로 주름이 만들어진다. 불쾌한 얼굴이었다.
“뭐가 다르다는 거지?”
“많이 다르지. 넌 나하고 달리 높은 곳에까지 가야 하는 사람이잖아. 난 그런 네 발목을 붙잡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네 애첩 같은 것도 되고 싶지는 않아. 난 그냥 나답게 살아갈 거야. 어디를 가도 적응 잘 하는 성격이니까 분명 잘 살 수 있을 거야. 누가 날 찾지만 않으면 말이지.”
아이도 생겼겠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버리고 싶었다. 즉흥적일 수도 있고 도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똑바로 마주치긴 죽어도 싫었다. 내 아이를 남이 가지고 가는 건 죽어도 못 보겠다. 그 자리에서 피 토할지도 모른다면서 마기휼은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죄책감을 갖지도 마. 괜찮을 거야.”
“그런 얼굴을 한 주제에 뭐가 괜찮다는 거지?”
웃는 마기휼의 입술 꼬리가 움찔하고 떨렸다. 눈을 댕그랗게 뜬 마기휼을 내려다보며 라울은 중얼거렸다.
“왜 다들 그렇게 제멋대로들 말을 하는 거지.”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렇게 해야만 괜찮아질 거라고. 그리해야만 하는 거라고.
어째서 그러는 거지? 왜 나에게 묻지도 않고 저들 좋을 대로 결정을 내리는 거지. 라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왜 내 생각을 묻지 않고 멋대로 결정만을 내리는 거지?”
그런 말을 들음으로 인해 내가 어떤 기분이 들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건가. 네가 가버리고 난 후에, 내가 정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라울의 눈동자가 점점 굳어진다. 화가 났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 얼굴이 무섭게 여겨지는 건 아니었다.
왜일까. 마기휼은 안쓰럽기만 했다. 그만큼 잘난 사람이니 따로 혼자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막상 알게 되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강해 보이는 건 분명한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네가 걱정이 되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굳어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너를, 네가 잘되기를 바라니까 그러는 거야. 애정이 없으면 이런 말도 안 하고 번거롭게 아이를 낳을 생각도 안 하지.”
이상한 놈팽이의 아이였다면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바로 약을 먹었을 거다. 눈 딱 감고 하루를 버티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약이 혀끝에 닿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나 기피하던 임신인데 약을 뱉어 내버렸다. 그리고 마기휼은 한동안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잠을 못 자서 멍한 상태라고는 해도 그런 짓을 하려 했던 스스로에게 환멸 비스무리한 걸 느끼기도 했다. 그런 걸 봤을 때 이 아이는 포기할 수 없었다.
“마기휼. 내가 너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다른 생각을 하던 마기휼은 눈을 끔벅였다. 방금 무슨 말을 들었지?
마기휼은 고개를 들어 라울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돌 같은 라울이 보였다. 뭔가를 결심한 듯 잔뜩 경직된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우습게도 긴장이 풀려버렸다. 마기휼은 어깨를 으쓱였다.
“없었어. 하지만 난 했지.”
멋없는 고백이긴 했지만 분명해 말했다. 네가 좋다, 라고 말이다.
이쪽이 한 말을 믿을 수 없는 듯, 라울의 안색은 여전히 굳은 채였다. 그걸 본 마기휼은 왜 이러냐는 듯 재차 말했다.
“했어. 네가 못 들었지만.”
“사랑한다.”
그냥 농담으로, 가볍게 넘어가려 했던 상황이 한순간에 변했다.
마기휼은 라울을 올려다봤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그리 묻는 얼굴을 하는 마기휼을 내려다보는 라울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그가 재차 말했다.
“마기휼.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마기휼은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듯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더니 손을 들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손을 내리나 싶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고개를 든 마기휼은 웃었다. 난감한 듯 보이지만 기쁜 것도 같았다. 갈색 피부 위로 홍조가 서렸다. 굉장히 어색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끼며 마기휼은 웃었다.
“그게 뭐야. 뭐가 그렇게 딱딱한 건데.”
두 번 더 사랑한다는 말 들으면 큰일 나겠네.
웃으면서 마기휼은 라울을 바라봤다.
말을 하는 내내 계속해서 라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혹여라도 그 속에서 다른 걸 발견해내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염려와 달리 라울의 눈동자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다. 마냥 똑바르게 바라보는 눈빛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래. 넌 정말로 날 사랑하고 있는 거로구나.
실은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자신이 움직이거나 어떤 행동을 취할 때마다 라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을 하려나 싶어 숨을 죽인 채로 빤히 바라보는 그 시선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앙큼하게 즐겼던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겠지. 라울과 자신이 이런 관계일 것이라고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라울은 자신을 좋아하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마기휼은 라울 쪽으로 양팔을 뻗었다.
“안아줘봐.”
라울은 망설임 없이 마기휼을 끌어안았다. 강하게 안아 오는 단단한 팔을 느끼며 마기휼은 눈을 감았다. 기분 좋은 듯 입가로 미소가 걸렸다.
라울은 마기휼의 머리카락 속으로 코를 묻었다. 고개를 까닥이며 그의 체취를 더 깊숙이 들이마셨다. 마기휼을 끌어안은 채로 천천히 뒤로 몸을 물렸다. 마기휼이 침대에 누워 위쪽을 바라봤다. 눈을 깜박이자 그 근처로 입술이 닿는다. 마기휼의 이마에 입술을 댄 채로 라울은 온전히 그에게 체중을 실었다.
라울의 등을 끌어안고 있던 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매끄럽고 단단한 허리를 쓰다듬던 손이 왼쪽 옆구리를 더듬는다. 손끝 아래로 붕대가 만져졌다.
“괜찮아?”
묻는 말에 라울은 대답 대신 마기휼의 뺨에 이를 세웠다. 따끔한 통증에 마기휼은 인상을 썼다.
고개를 떨어뜨린 라울은 마기휼을 내려다봤다.
“큰 소리 나도 나는 모른다.”
이마를 댄 채로 속삭이는 말에 마기휼은 눈을 내리떴다. 보랏빛 눈동자 속으로 장난스러움이 반짝거렸다. 대답을 하지는 않아도 웃고 있었다. 그 눈빛이 의미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노골적이지 않으나 분명한 유혹에 이끌려 라울은 마기휼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자마자 떨어지고 다시 닿았다. 몇 번이나 그런 입맞춤을 반복하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조금 더 깊은 키스를 했다. 마기휼의 입을 벌리고 그 사이로 혀를 밀어 넣는다. 말캉한 혀가 입 안으로 들어와 천장과 혀를 쓸어내렸다. 치아 사이사이를 더듬는 느낌에 마기휼은 라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입을 조금 더 벌리며 라울의 혀를 휘어 감았다. 마주 닿은 입술 사이로 질척한 음향이 만들어졌다. 뜨거운 숨결이 서로에게 닿았다. 눈을 감은 두 사람은 정신없이 키스에 매달렸다. 입 안에 고인 타액을 삼키며 마기휼은 라울의 머리를 감쌌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라울은 마기휼에게 더 몸을 붙이며 하반신을 슬슬 비볐다. 이미 단단하게 발기된 성기가 느껴졌다. 그 노골적인 감각에 마기휼은 뜨거운 신음을 토해 냈다.
미치도록 흥분이 된다. 마기휼은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기다렸다는 듯 그 사이로 라울의 하반신이 맞닿았다. 그리고 비벼 댔다. 속옷과 바지를 입은 라울과 달리 마기휼은 얇은 가운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 비벼 대는 움직임에 가운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발기가 된 성기가 드러났다. 성기는 라울의 하반신이 누르고 비비는 동안 점점 커졌다. 뜨거운 열이 퍼진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상대가 라울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너무도 흥분이 되었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아―”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마기휼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뜨거운 것이 하반신에 퍼졌다. 라울이 비벼 대는 것만으로도 사정을 해버렸다. 너무 빠른 것 같아 순간 민망하기도 했다. 얼굴을 붉힌 채로 아랫입술을 깨물자 라울이 그 위로 입술을 댄다. 그리고 마기휼의 몸을 더듬었다.
커다란 손이 몸 위를 움직인다. 더듬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가운 속으로 들어간 손이 가슴에 닿았을 때 마기휼은 몸을 움츠렸다. 거부하려는 건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어깨를 위로 들며 몸을 비틀려 했다. 라울은 그런 어깨에 이를 세웠다. 피부를 누르는 날카로운 통증에 재차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마기휼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라울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라울은 마기휼의 팔을 잡아끌었다. 일으켜져 자리에 앉은 상태가 된 마기휼에게 입을 맞추며 옷을 벗었다. 한 겹, 한 겹 벗겨질 때마다 라울의 단단한 육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왼쪽 허리에 붙어 있는 거즈도 말이다. 마기휼은 그것에 손을 댔다. 바지를 벗으려던 라울이 행동을 멈추고 마기휼을 바라봤다. 마기휼의 손가락이 라울의 옆구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거 다 나은 거 아니지?”
“어제 저녁에 상처를 지져버렸다.”
“……뭐?”
“그편이 통증 감소에는 훨씬 더 효과가 있다.”
마기휼은 입을 살짝 벌렸다. 이 독한 놈. 그걸 어찌 참고 견디어냈단 말인가. 물론 라울이라면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리할 순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아팠을 텐데. 그리고 상처도 남을 테고.
라울은 마기휼의 손을 옆으로 치워 내고 재차 그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에서 떨어진 입이 턱과 목과 가슴으로 점점이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뒤로 몸이 밀려났다. 침대에 양 팔꿈치를 댄 채로 마기휼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중얼거렸다.
“하다가 다시 찢어지는 거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지금 멈출 수는 없지.”
중얼거린 라울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성기를 붙잡는 손길에 소름이 돋았다. 입을 벌린 마기휼이 아, 하고 짧은 신음을 토해 냈다. 그가 내는 소리에 집중하며 라울은 손바닥 가득히 마기휼이 뿌린 정액을 묻혔다. 그리고 조금 더 손을 내렸다. 엉덩이 아래로 들어가는 손을 느끼며 마기휼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에 와서 몸을 사리는 건 우스운 짓이었다. 마기휼은 허리를 들썩였고 덕분에 라울의 손이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주름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마기휼은 숨을 삼켰다. 그걸 들은 라울이 눈동자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처음에 했을 때 아팠나.”
마기휼은 웃었다.
“그때 내가 아파하는 것 같았어?”
처음에는 물론 힘들었지만 하면 할수록 좋아졌다. 나중에는 라울에게 매달려 더 적극적으로 허리를 흔들기까지 했다. 괜한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마기휼은 다리를 더 크게 벌렸다.
애초에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라울의 앞이기 때문에 뭘 보여도 상관없다는 느낌이었다. 거리낌 없이 음부를 노출하는 마기휼의 대담함에 편승되어 라울도 더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주름을 열고 그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고개를 젖힌 마기휼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푹신한 침대에 눕는 마기휼의 위로 엎드리며 라울은 손가락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내벽의 주름을 조심스레 벌리며 끝까지 손가락이 들어왔다. 쿡쿡. 하고 내부를 쑤시는 감각에 마기휼은 입술을 깨물었다. 미간 사이로 선명한 주름이 만들어져 있었다. 라울은 그런 작은 표정의 변화도 놓치지 않고 더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정액의 도움을 받아 두 개에서 세 개로 점차 손가락이 늘어났다.
어느덧 땀으로 범벅이 된 마기휼은 라울에게 매달렸다. 다리 사이로 들어가 있는 라울의 팔을 붙잡으며 먼저 애원을 했다.
“이건 그만하고…….”
아픔이 있었지만 쾌감도 있었다. 그리고 마기휼은 라울이 얼마나 거칠게 자신을 원했던지를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감각을 원했다. 손가락으로는 부족했다. 괴로운 듯, 인상을 쓴 채로 바라보는 마기휼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라울도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빼내고 마기휼의 다리를 벌렸다. 날씬한 두 다리가 크게 벌려지고 라울의 손에 잡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위로 들려진 은밀한 부위를 화인한 라울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중심을 갖다 댔다.
주름에 닿아 두어 번 비비는 감각에 소름이 돋았다. 마기휼은 입을 막았다. 탁월한 판단이었다. 라울의 귀두가 주름을 벌리고 파고드는 순간 소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오는 소리는 모두 손바닥 안에 막혔다. 고통으로 인해 마기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이 보이는데도 라울은 멈출 수 없었다. 지금은 자신의 욕망이 우선이었다. 일단은 채우고 싶었다. 마기휼을 안고 싶었다. 그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라울이 들어왔을 때 마기휼은 녹초가 되었다. 할딱거리며 눈을 질끈 감은 그는 눈물을 흘렸다. 마음 같아서야 그걸 닦아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과 달리 욕망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라울은 허리를 움직였다.
“아! 윽―!”
손으로 입을 막아도 나오는 소리는 어찌할 수 없었다.
라울의 굵직한 물건이 아직은 단단하게 죄이는 내벽을 가로질러 갔다. 배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와 능숙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물건에 소름이 돋았다. 라울이 깊숙이 찔러 넣을 때마다 마기휼의 입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끝까지 뽑아냈다가 한번에 밀어 넣자 마기휼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허리를 뒤틀면서 반사적으로 벗어나려는 걸 붙잡으며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다리가 접혀져 가슴까지 올라갔다. 그 상태로 계속해서 라울을 받아들여야 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라울을 바라보며 마기휼은 눈물에 젖은 애원을 했다.
“처, 천천히 해―.”
“마기휼.”
“아읏!”
지끈하고 몸으로 힘이 들어갔다. 소름이 돋아 순간적으로 이상한 소리를 토해 낼 뻔했다. 왜 그런 건가 싶어 원인을 찾고 싶어도 계속해서 몸속으로 파고드는 뜨거운 물건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재차 마기휼, 하고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불길이 지펴진다.
라울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쾌감에 차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이름을 말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미칠 것 같았다. 성기가 빨딱 서고 바로 사정해버릴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에 흔들리는 와중에도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망연자실해 있는 동안 라울이 뜨거운 한숨을 토해 냈다.
“마기휼,”
“부, 부르지 마!”
손으로 귀를 막고 싶었다. 요동을 치는 내벽이 느껴졌는지 라울이 몇 번이고 이름을 불렀다. 마기휼. 마기휼. 그렇게 이름을 부르는 동안 마기휼은 얼굴이 토마토처럼 익어버렸다. 온통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양손을 들었지만 헛된 몸부림이었다.
뜨거운 열기를 품은 물건이 끝도 없이 파고 들어왔다. 붉은 속살이 벌름거리며 라울의 튼실한 물건을 계속해서 받아먹었다. 결합으로 인해 흘러나오는 난잡한 음향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 뜨겁고 음란하게 얽히는 육체에 맞물려 마기휼의 성기가 재차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서 정액이 질질 흘러나왔다.
크게 벌려진 허벅지 안쪽이 당겨 덜덜 떨렸다. 라울이 파고 들 때마다 몸이 제멋대로 들썩였다. 견딜 수 없었다. 더는 힘들었다.
마기휼은 땀에 젖은 라울의 등에 양팔을 둘렀다. 이렇게나 괴롭게 하는 사람이 라울인데, 지금은 매달릴 존재가 그밖에 없었다. 손톱을 세워 라울의 땀에 젖은 등에 박아 넣으며 마기휼은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요동치는 몸은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라울은 마기휼의 몸을 끌어안았다. 마기휼의 입을 막았다. 턱 끝까지 숨이 차 힘겹게 헐떡거리고 있던 마기휼은 라울이 입술을 막자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나왔다. 허억- 하고 토해 내는 탄식과도 같은 한숨은 온전히 라울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레드존의 파급력은 엄청나서 잘 움직이던 군함 한 대가 순식간에 병신이 되었다. 어찌어찌 복구를 하기는 했지만 이차적인 기능이 마비되어서 복구를 하느니 차라리 동력을 떼서 다른 군함에 다는 편이 더 효율적일 정도였다. 즉, 라울이 타고 다니던 군함은 이대로 고물 신세였다.
“하여튼 무모하다니까.”
라우젝은 판을 다 뜯어낸 본체 부분을 확인하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사용을 해보려 했지만 모두가 고개를 젓는다. 할 수 없다. 그리 판단을 내린 군함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
라우젝은 턱짓을 했다.
“중요 기관을 모두 해체해라.”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군인이 다른 곳으로 가는 걸 확인한 라우젝은 턱을 문질렀다. 사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뜯어내야 했다. 그래야 이쪽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빠른 걸음을 옮기는 라우젝의 곁으로 한 군인이 다가섰다. 라우젝은 그를 흘겨봤다.
“라울은 아직 안 돌아온 건가.”
“그렇습니다. 어디에 계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갈 곳이야 빤하지.”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 이쪽의 조언은 듣지 않기로 한 거냐. 당장은 네 마음에 솔직해지고 싶은 거겠지. 나와는 다르게 너는 도망가지 않을 거라며 호언장담을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건 다 어린 날의 치기일 뿐이었다. 곧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될 터였다.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았는데.
“사령관님. 여기에 계셨군요.”
계단 위에서 얼굴을 내민 군인은 라우젝을 발견하자마자 살았다는 얼굴이 되었다. 황급히 계단을 내려온 그는 라울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라우젝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은밀히 연락이 왔습니다만, 어찌할까요?”
“위치는?”
“로노베 상공에 도달했다 합니다.”
“빠르군.”
지나치게 빨랐다. 하지만 또 그런 게 그녀다웠다. 보고 받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녀가 직접 움직여 상황을 파악하는 편이 일 진행에 수월하다고 판단을 내린 거겠지.
라우젝의 입가로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방 안은 아직 정사의 여운에 젖어 있었다. 강하고 길게 두 방 시원하게 날렸다는 느낌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곤노곤했다. 언제 또 이런 식으로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라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로 마기휼은 그에게 안겨 있었다. 딱 1달 전만 해도 다른 사내의 품에 이런 식으로 안겨 있을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이리되어버렸다. 의외로 거부감은 적었다. 그저 편안하기만 했다. 나른한 얼굴로 있던 마기휼은 손가락을 들어 라울의 가슴을 더듬었다.
정말 딱딱했다. 배 근육도 장난 아니었지. 이쪽도 나름 근육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라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운동은 하는 것 같지도 않더만 언제 또 이렇게 몸을 관리했던 건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복근을 더듬으려니 라울이 그런 마기휼의 손을 붙잡았다.
“6살인 여동생이 네 동생의 아이였던 거냐.”
마기휼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하여튼 무드 없는 놈. 하필이면 이럴 때 저런 걸 묻냐. 하지만 이런 때이기 때문에 물을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
마기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었어.”
“그러면 뭐였지? 계모가 그와 내연의 관계라도 되었던 건가.”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가휼과 레나가 관계를 가졌다. 그걸 아버지가 알아버렸고, 그 후로 엉망진창인 상황이 발생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가휼을 쫓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가휼, 그 작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느꼈을 원망을 생각하자 주춤하게 된다. 열 손가락 안 아픈 곳이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 더 아픈 손가락은 있기 마련이었다.
마기휼은 사내지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었고, 그 불완전한 몸 때문에 더더욱 부모님의 관심을 받았다. 언제나 늘 부모님의 가운데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가휼은 그걸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그저 빨리 철이 드는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다. 가휼은 어려서부터 이미 부모의 관심을 포기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너무도 사랑해서 새로 들인 아내를 제대로 돌봐줄 수 없었다. 아이를 낳긴 했지만 그 후로 남편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녀가 가휼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어머니와 자신이 사라진 이 저택이 얼마나 적막했을 것인가. 그 속에서 둘은 서로에게 의지했을 거다.
사랑받고 싶고 여자로서의 행복을 느끼고 싶었을 여자.
이제 막 사내가 되어 가는, 애정이 결핍된 청년.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원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일까. 자신과 관련이 된 일이 아니었다면 ‘어쩔 수 없네. 불장난 화끈하게 하는 거지.’라고 웃고 넘겼을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충격을 받고 도박에 빠져들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리된 원인이 그 두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움켜쥔 손으로 힘이 들어간다.
마기휼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걸 확인한 라울이 마기휼의 뺨에 손가락을 댔다.
“어떻게 하고 싶나.”
“모르겠어.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솔직한 말이겠네.”
무책임하게도 말이다. 난 정말 왜 이럴까.
하지만 가휼이 원하는 것처럼 그를 죽일 수 없었다. 때려잡을 수도 없었다. 레나 그녀를 끌고 와 왜 그랬냐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를 비난하고 가휼을 두들겨 패버린다 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시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레이라. 그 어린아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는 그 아이를, 밤마다 엄마를 찾는 그 어린애를 어쩌란 말인가. 자신이 이 저택에 없으면 누가 그 아이를 보살필 수 있을까. 두려움에 질려 매달려 오던 손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눈을 감은 마기휼의 얼굴이 파리했다. 지나치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런 그를 위로해줄 방법은 딱히 알지 못했다. 가만히 있다가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기휼의 몸을 끌어안고 이마에 입술을 댔다. 입을 맞추면서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이윽고 입술을 깨물자 마기휼이 웃었다. 기운 없는 웃음이었다. 라울은 마기휼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자.”
마기휼은 당황했다. 그렇게 하고 또 한다고?
만류를 하려 했지만 몸을 더듬는 손길은 분명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몸을 쓰다듬는 손길에 마기휼은 신음을 토해 냈다. 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몸이 달아오르게 된다.
라울의 손이 내려갔다. 은근슬쩍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손길을 느끼며 마기휼은 재차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자신만 당하는 건 싫다고 생각한 건지 라울에게 다리를 감았다. 안겨 오는 몸을 마다하지 않고 라울은 손을 내려 탱탱한 엉덩이를 주물렀다. 그리고 그 엉덩이 사이에 숨겨져 있던 주름을 벌리고 그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읍.”
아랫입술을 깨물며 소리를 참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흘러나왔다. 몇 번의 관계를 통해 질척하게 젖은 그곳으로 손가락 두 개가 깊숙이 들어왔다. 젖고 부드럽게 풀려 있었기 때문에 삽입이 수월했다.
안으로 들어간 손가락을 내벽이 감쌌다. 물컹한 느낌에 마기휼은 신음을 흘리며 라울에게 매달렸다. 라울은 마기휼 쪽으로 몸을 돌려 날씬한 두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이미 손가락이 들어가 있는 곳을 허벅지로 비벼 마찰하자 마기휼의 신음이 한결 깊어졌다.
눈을 감은 마기휼은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렸다. 앓는 소리에 라울이 마기휼의 눈꺼풀 위로 입을 맞췄다. 손가락을 빼낸 그는 마기휼을 똑바로 눕히고 그의 위로 올라탔다. 엉덩이 볼기 한쪽을 잡고는 속삭였다.
“허리 들어봐.”
이미 할 준비에 들어가 있었던 마기휼은 거부하는 일 없이 순순히 허리를 들었다. 그 사이로 베개가 넣어지고 엉덩이가 위로 뜬 상태가 되었다. 벌려진 다리 사이로 라울이 자리를 잡자 마기휼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허리를 감았다.
성이 난 성기를 붙잡고 마기휼의 주름에 대고는 두어 번 비비자 신음이 한결 깊어진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애달픈 듯도 싶었다. 흥분으로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라울은 천천히 마기휼의 안으로 들어갔다.
“으읏―”
굵직한 부분이 힘겹게 내벽을 벌리며 안으로, 진입했다. 이미 해서 풀어 둔 장소라 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할딱거리는 마기휼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라울은 더 깊이 허리를 디밀었다.
내벽이 더 크게 벌어지고 듬직한 것이 몸속을 가득 채웠다. 끝까지 밀어 넣어 라울의 고환이 눌린다. 다리가 벌어져 허벅지 안쪽이 당기면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지금 당장은 라울을 품고 있는 만족감이 너무도 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졌다. 마기휼은 손을 내렸다. 배꼽 부근을 더듬다가 그 부위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그럴지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을 하려 해도 힘들었다. 의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때때로 마기휼은 지나치게 라울을 흥분시켰다.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이나 이마에 달라붙은 색스러운 모습을 한 채로 마기휼은 눈을 내리떴다. 라울의 것을 잔뜩 삼킨 자신의 아래를 살피나 싶던 마기휼은 이를 보이며 웃었다.
“굉장한데?”
아이처럼 웃는 얼굴에 자극 받는다. 라울은 마기휼의 허리를 붙잡고 움직였다. 끝까지 빠져나갔던 성기가 남김없이 안으로 삽입되었다.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파고들자 마기휼의 몸이 자지러졌다. 충격을 받은 듯 허리를 감고 있던 다리가 풀릴 정도였다. 마기휼이 다시 허리를 감기도 전에 라울은 욕심껏 허리를 흔들었다.
거센 움직임에 맞춰 침대가 들썩거렸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로 섞이는 살 내음과 묘한 마찰음. 그리고 신음이 뒤죽박죽으로 섞였다. 몸 위로 라울이 올라오자 기다렸다는 듯 마기휼의 양손이 튼실한 그의 엉덩이를 잡았다. 끌어당기자 기다렸다는 듯 더 깊고, 강하게 박혀 왔다.
머리끝까지 지잉- 하고 울리는 감각에 마기휼의 고개가 젖혀졌다. 뜨겁게 마찰된 내벽이 쓰라렸다. 미칠 것 같았다. 슬슬 무리가 오는 것을 느끼고 소극적으로 움직이자 라울이 마기휼 쪽으로 몸을 내렸다. 방향이 틀어져 성기의 뭉툭한 부분이 미묘한 곳을 자극하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
라울의 단단한 육체에 눌린 마기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떨리는 숨결이 토해져 나오고 그 몸이 파들파들 떨린다. 전신으로 퍼지는 쾌감에 견딜 수 없어 마기휼은 허리를 뒤틀었다. 그 허리를 단단히 죄며 라울은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마기휼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몇 번이나 박아 넣더니 마지막에는 전체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사정했다. 몸속으로 화악 퍼지는 감각에 마기휼은 눈을 크게 떴다. 할딱거리며 거친 숨을 토해 내는 마기휼의 배 부근으로 그가 토해 낸 것들이 묻어 있었다.
라울의 허리에 감긴 다리가 뻣뻣해졌다. 파들거리고 떨리던 다리는 이내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기운 없이 늘어진 다리를 쓰다듬던 라울의 손이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틈도 없이 성기를 물고 있는 주름에 손가락을 댔다. 두어 번 움직이나 싶던 성기가 빠져나가고 안을 가득 채웠던 정액이 흘러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으로 그걸 막자 마기휼이 웃었다.
정액이 나오지 않게 해서 뭘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라울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마기휼은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뭐야. 그러지 마.”
마기휼은 라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라울의 입가로 미소가 걸렸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이쪽을 바라보는 사내를 확인한 마기휼은 숨을 들이켰다.
이 녀석, 지금 본인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웃다니. 혹 모른다. 10년에 딱 한 번 웃는 얼굴을 지금 본 것일지도―.
진지하게 의심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마기휼은 라울의 얼굴이 내려오자 눈을 감았다. 이제는 익숙한 입술이 닿았다. 그 입술이 입을 맞추고 안으로 혀를 밀어 넣자 바로 입을 벌렸다.
라울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격렬한 행위 뒤에 늘어진 채로 있었던 마기휼의 날씬한 몸이 라울에게 휘감겼다.
그 몸을 감싸 안은 채로 라울은 즐기는 듯, 길고 긴 입맞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