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알고 보니 공학천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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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Artificial Intelligenced의 약자로 직역하면 인공지능. 즉,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성을 뜻한다. 엘트먼이 내게 소개하기로는 인공정령, A.E(Artificial Elemental)라고 했지만 본질적으로 이 둘은 같은 개념이었으니 둘 사이의 차이는 없다.
굳이 차이점이라고 해봐야 마법으로 만들어 진 것과 과학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 정도? 아무래도 과학이 더 발전한 시대에서 살고온 나로서는 A.I라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다. 뭐, 명칭이야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세계에 완성된 형태의 인공지능이 있다는 것이지.
한 때 21세기 초기를 뒤흔들었던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적 요소이자 이후 중반기에 들어서는 현대인의 삶에서 땔래야 땔 수가 없게 될 정도로 가까워진 필수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그러니 내게 있어 인공지능의 존재 자체는 익숙하다면야 익숙한 기술이기는 하다만 나는 엘트먼이 보여준 인공지능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빙 아머에서 시작해서 이어진 결과물이라고 보기에는 체감상 갑자기 몇세기는 뛰어넘긴 발명품이 튀어 나온 느낌이었으니까 말이지.
이 시대의 생활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곳은 과학이 그리 발전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첨단과학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이 튀어나오니 당연이 놀랄 수 밖에. 생각해보면 이것도 이곳이 마법이라는 신비로운 학문과 신이 태초부터 존재하였던 곳이었기에 가능한 일인건가.
'그러고 보면 이건 과학 기술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하네.'
전생에서 인공지능은 엄연히 마법이 아닌 과학의 산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 반대이다. 애초에 붙은 이름도 인공정령이고.
전생의 세상이 과학이 발전하고 마법의 발달이 미미했다면 여기는 반대로 마법이 발달하고 과학의 발전이 미미한 세상. 총량만 같다면 다음 테크가 열리는 게임도 아니고 대체 이게 뭐람.
극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더니 이것이야 말로 만류귀종(????)이 아닐까?
엘트먼의 인공정령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이것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배고프다고 투덜거리는 인공정령을 다시 받침대 위에 올려 놓더니 이것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잭. 지금하고 있는 연산을 잠시 멈추고 넷으로 이동해봐."
[네에~]
늘어지는 목소리로 답하는 인공정령, 잭. 처음 말을 했을 때보다는 덜 기계음 같은, 사람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 신경이 쏠리는 건 잭의 말끔해진 목소리가 아닌 엘트먼이 말한 한 단어였다.
넷(net).
넷이라니...설마 네트워크를 말하는 건가?
정신체인 인공정령이 물질적으로 이동을 한다는 개념이란게 있을 리 없으니 엘트먼이 말한 저 넷이라는 건 당연 가상공간을 말하는 것일테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인공지능이 있으면 당연히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역시 존재해야할텐데 말이다.
실제로 엘트먼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연구실 내부에 흐르고 있는 마력의 흐름이 아주 미세하게 변하였다. 온갖 기물이 존재하는 마법사의 연구실이기에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떠올리니 내 감각이 이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밀조밀 모인 마력은 연구실 근처를 떠나가질 않고 있었다. 아마도 그 작은 영역이 엘트먼이 구축한 통신망의 영역일테지만 이것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를 놀라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맙소사. 도대체 이 인간은 이 좁은 연구실에서 혼자 뭘 만들어내고 있던 거지?
엘트먼이 손을 뻗자 이전에 잡동사니 더미에 던져놓은 장갑이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아까전까지만 해도 저것을 실패작이라고 부른 엘트먼이었지만 인공정령을 깨운 후에 장갑을 다시 꺼내든 엘트먼의 얼굴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동생,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봐. 있는 힘껏 아주 쌔게. 오러를 운용해도 괜찮으니까."
"네?"
"얼른, 걱정할 필요 없어. 진짜 재밌는 걸 보여줄 테니까."
자신있게 대답하는 엘트먼. 그럼에도 나는 주먹을 휘두르기를 망설였다.
처음 엘트먼이 장갑을 보여주었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 그가 착용하고 있는 장갑은 어딘가 그 느낌이 달랐다. 때문에 그가 무엇을 믿고 그리 답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가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알겠지만 나 역시 일반적인 수준의 기사학부 생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일부러 힘을 빼자니 엘트먼이 이를 눈치챌것 같았다.
결국 라인하르트와 노엘과 대련하던 때의 수준으로 힘을 주기로 내면의 나와 타협을 한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엘트먼의 요구대로 그 주먹에 오러를 불어 넣었다. 계속 머뭇거리던 내가 순순히 오러를 운용하자 이를 느낀 엘트먼이 미소를 지었다.
"자! 와라!!"
"그럼...갑니다?"
나는 정확히 엘트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물론 내가 어디를 때리고 말을 하고 주먹을 휘두른 것이 아니었으니 엘트먼은 이를 모를 것이었다. 주먹은 아주 정석적이게 이렇다 할 변주 없이 직선적인 투로를 그리며 뻗어나갔지만 투로가 단순하더라도 그 속도가 매우 빠르면 투로를 보고 타격점을 인지하는 것 보다 맞는 것이 먼저가 된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빠른 주먹.
공기를 가르는 소리보다 빠른 권격이 엘트먼을 향해 내질러졌다.
서둘리 반응하지 않으면 천재 마법사든 뭐든 그대로 주먹에 머리를 꿰뚫릴 것이다. 하지만 엘트먼의 눈은 여전히 내 주먹이 아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주먹을 내지른지 못 알아차린 것 같은데, 순간 코 앞에서 주먹을 멈춰야 하나 생각이 들려는 와중 무언가가 내 주먹을 막아섰다.
탕!
"어흑! 뭐, 뭐야?"
맑은 금속음과 함께 당혹감을 동반한 작은 신음소리가 연구실에 울려퍼졌다.
신음소리의 주인은 주먹을 막아낸 엘트먼이었다.
그의 손이, 아니 정확히는 그가 끼고 있는 장갑이 내 주먹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격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건지 엘트먼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경지에 오른 무인이 오러를 담아 제대로 내지른 권격을 정면으로 부딪히고도 손의 원형이 남아있는게 어딘가.
그것도 잡철로 만들어진 장갑을 끼고 벌인 행위라는 걸 생각 하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오."
나는 내 주먹을 막아낸 엘트먼, 정확히는 그가 착용하고 있는 장갑을 바라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엘트먼은 내 공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만 그가 착용한 장갑이 내 주먹에 반응하여 움직였다. 아마, 엘트먼이 앞서 말했었던 인공정령의 보조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엘트먼이 끼고 있는 장갑도 주먹을 막아낸 손바닥 부분의 철판이 약간 휘어진 것을 빼고는 멀쩡한 것이 엘트먼이 말했던 원념이 깃들어 있었던 시절의 장갑의 기능을 발휘한 것 같았다. 엘트먼의 말대로 인공정령이 원념의 역할을 대체한 것이다.
"오. 이걸 막네. 그럼 이번에는...."
"그, 그만!! 이, 이정도면 충분히 보여준것 같다. 그렇지? 어?"
내가 다시 주먹을 들려고 하자 엘트먼이 허겁지겁 이를 말렸다. 아직까지 장갑을 부여잡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통증이 덜 가셨나 보다.
쩝, 아쉽네. 이번에야 말로 진심으로 할려고 했는데.
"아야야....부,분명 보호마법은 정상적으로 펼쳐졌는데 이 뭔..."
엘트먼은 장갑을 벗어던지고 퉁퉁 부어오른 손을 부여잡으며 뭐라 꿍얼거리다가 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를 멎쩍게 웃어 넘겼다. 뭐라 말을 할 수 없는게, 주먹으로 치라고 한 것은 본인이었으니 엘트먼이 방금 일에 대해서 내게 말을 하는 일은 없었다.
[와, 방금껀 진짜 저 아니었으면 죽었겠는데요.]
"....잭, 얼음 주머니 좀 손에 올려다 줘."
[네.]
장갑과 연결되어 있던건지 장갑에서 잭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엘트먼의 명령을 내리자 갑자기 연구실 한구석에 조용히 있던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얼음 주머니를 만들어서 그의 손 위에 올려다 주었다.
인공지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렇기에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잊고 있었던 전생을 떠올리게 만드는 광경에 그만 시선을 빼았기고 말았다. 엘트먼은 이를 내가 인공지능의 멋짐에 넋을 잃은 것이라 생각을 한 모양이다만.
"골렘까지 자율적으로 조종이 가능한 모양이네요."
"당연한걸! 애초에 인공정령을 만들게 된 것도 전부 그 때문이었으니까 말이야!!"
스스로 움직이는 골렘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던진 말이었다만 엘트먼의 반응은 엄청났다. 마치 이것이 여태까지의 이야기의 종점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그새 손의 고통은 잊어버린 것인지 엘트먼은 인공정령을 이리저리 다루며 허공에 불투명한 창을 띄웠다.
그곳에는 인간형 골렘에 대한 각종 자료가 적혀있었는데, 솔직히 내가 마법사가 아닌지라 그곳에 적힌 내용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힘들었다. 다만 그곳에 그려진 그림들은 엘트먼이 말하는 내용을 시각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게 만드는데는 도움이 되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골렘을 조종하는 것은 단순히 술식을 정교하게 만든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거든. 미리 몇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해두고 그에 대한 결과값을 미리 입력해두는 건 반복작업에 동원되는 골렘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세밀하고 정밀한 작업은 술자 본인이 직접 조종을 해야 가능하지. 특히 인간형 골렘의 경우는 더더욱."
"일반적인 마도구에 비해 골렘은 여러가지로 복잡한가 보죠? 하기야 사람의 움직임을 완벽히 담아낼 수 있는 장치이니 당연한 말이겠네요."
"동생은 육체를 다루는 기사인 만큼 우리의 몸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 졌는지 아주 잘 알거야. 단순히 두 발로 걷게 만드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할게 많은데. 인간의 몸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을 모두 술식으로 담아내려면 골렘의 전신을 미스릴로 만들어도 부족해."
"하지만 인공정령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것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존재니까."
"보조적인 부분에서 골렘의 몸에 술식을 새기는 것은 불가피 하지만 대신에 인공정령이 있다면 그에 필요한 허용량이 매우 줄어들지. 이것이 나 대신 연산을 해주고 생각을 해주니까. 정신체의 좋은 점은 몸에 걸린 리미터가 없다는 거야. 인공정령은 몇 가지 제약이 있지만 적어도 연산력에 한해서는 고위계의 마법사와 대등한 정도다. 사실상 고위 마법사 한명 분의 뇌를 오로지 골렘의 연산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기사가 마나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이라면 마법사는 마나로 지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이다. 그러니 그들의 지적 능력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교를 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굳이 비교를 하려고 한다면 엘트먼의 말대로 초 하이테크놀로지의 인공지능 정도는 돼줘야지.
"이 정도 능력 조차 없으면 '그걸' 움직일 수 없으니 말이야..."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는 엘트먼. 하지만 내 뛰어난 청력은 이를 똑똑히 잡아내었다.
엘트먼은 인공정령을 만든 이유가 골렘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저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 이유를 앨트먼이 내게 보여주고 있는 시각 자료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어쩌면 엘트먼이 일부러 내게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 중 단 하나밖에 없던 골렘의 설계도. 그것이 그가 인공정령을 만들어 낸 이유였다.
그 설계도를 보고 난 후 이번만큼은 첨단 기술에 익숙해진 나도 경악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에 적혀있는 치수의 규격이 상상이상으로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규격만이라면 모를까 정확히 그 크기에 상정한 시험값이 옆에 나열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실제 건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설계도가 분명했다.
그는 거대 로봇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아니, 하고 있다!!
물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다면 거구의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 다들 알 것이다. 로봇의 몸체가 커지면 커질수록 로봇이 견뎌야 할 하중과 반발력이 커지기에 이를 모두 버틸 수 있는 재료와 로봇의 움직임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게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전생에서는 이를 나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특수 합금의 개발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마법과 검의 세계인 이곳에 그런 첨단기술은 존재하지 않았고 엘트먼에게는 오로지 마법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이제야 설명이 되는군. 그렇기에 엘트먼은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고도의 연산력으로 골렘의 모든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인공정령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전생에서는 거대 로봇을 건조 할 수 있는 기술은 충분했음에도 결국 실현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거대 로봇은 실용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마물을 죽이는데 강력한 초인만 있으면 되었지 쓸 데 없이 예산을 잡아먹는 괴물은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때 아쉽지 않았냐고 하면 이는 거짓말 일 테다.
결국 대의를 위해서 포기를 했어야 했지만 이는 남자로서의 문제였다.
고개를 돌려 엘트먼을 바라보니 그는 아무 말 없이 웃고 있었다. 왠지 내게 '나와 같이 이거 만들지 않을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기분탓인 걸까.
"형님, 혹시 연구비가 부족하거나 그러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