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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30화 (129/131)

〈 130화 〉 알고 보니 공학천재(4)

* * *

"혹시 리빙 아머(Living Armor)라고 들어 보았니?"

엘트먼이 내게 장갑을 보여주며 그리 말했다.

리빙 아머라. 처음 듣는 단어는 아니다. 그도 그럴게 게임이나 여러 서브컬처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었으니까. 리빙 아머는 이름 그대로 살아있는 갑옷을 말한다. 다만 살아있다는게 여러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보통 영혼이 깃들어 절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귀신들린 물건이라고.

"어우야..."

가까이서 살펴보려 하였다가 리빙 아머의 의미를 깨달은 내가 거리를 벌리자 엘트먼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그렇게 질색할 필요 없어. 여기에 귀신같은건 안 붙어 있으니까. 음, 정확히는 예전에는 붙어있었는데 이제는 없다고 해야지. 신전에서 정화까지 마친 물건이니까 걱정하지마."

"원래 붙어있었다는게 신경이 쓰이는데요."

"에헤이, 괜찮다니까."

확실히 장갑에서 사특한 기운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야 그런 위험한 물건을 저렇게 태연하게 꺼낼리가 없지. 다만 한때 귀신 들렸던 물건이라고 하니까 꺼림찍할 뿐이다. 장갑을 받아든 나는 이리저리 살피다가 다시 엘트먼에게 돌려 주었다. 처음 그가 보여주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장갑에서 특이한 점을 찾아 낼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이 안에 깃든 귀신이 이미 제령되었다면 이건 그냥 평범한 장갑 아닙니까?"

귀신이 없으면 그건 더이상 리빙 아머가 아니잖아.

내가 그리 묻자 엘트먼은 손에 마력을 움직여 다시 장갑을 착용하며 답했다.

"평범하지는 않잖아. 봐 이렇게 절로 달라 붙는다고. 이것 외에 딱히 무슨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리빙 아머라고 할 수 있지. 정확히는 인공적으로 내 입맛대로 만든 것이라고 해야할까."

"인공적으로?"

"그렇지. 일반적인 리빙 아머는 착용을 했다가 거기에 깃든 원념의 정신 오염에 당할 수 있거든. 그렇기에 대부분이 저주받은 장비 취급인 것이고. 이건 원념을 제거하고 그 빈 자리를 내 술식으로 대체한 물건이야. 그렇기에 원래 가지고 있던 다양한 기능은 사라졌지만 이렇게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지."

뭐, 가진 능력의 대부분을 제거해야 하는데서 이미 실패작인 셈이지만. 그리 중얼 거린 엘트먼은 장갑을 다시 잡동사니 더미에 던져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나 또한 그가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엘트먼은 이동하는 동안 계속해서 내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원래 저 물건은 마탑에서 연구용으로 받은 물건 이었어. 물건에 서린 원념을 제거하는 방법에 반드시 신성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마법적인 처리로도 강제로 원념과 사물을 분리 시킬 수 있지."

"그런데 방금 전에는 신전에서 정화를 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건 일이 다 끝난 다음의 일이고. 마탑은 이런 저주받은 물건을 돈 주고 사는 편이기에 판매자 입장에서는 신전에서 돈을 주고 정화할 바에는 그냥 파는 게 좋잖아. 이건 원념이 서리기 전까지는 그냥 평범한 물건에 지나지 않으니까."

어쨌든.

엘트먼은 연구실 구석에 놓여진 한 탁상 앞으로 나를 인도했다.

탁상은 어수선한 연구실의 다른 부분들과는 다르게 확실히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다량의 마력선들을 한 곳에 연결해둔 받침대와 그 위에 올려진 쓰임새를 알 수 없는 구체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다.

마력선을 따라 막대한 마력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한곳에 모여든 강대한 에너지들이 서로 반발을 일으키는게 아니라 조화롭게 일정한 패턴을 이루며 순환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그리 위협적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것은 또 아니었다.

이게 왜 리빙 아머 다음으로 보여주는 물건인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엘트먼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가 말하려던 주제에서 벗어난 물건은 아닐테다.

방금전의 장갑은 맛보기였고 이것이야 말로 진짜라는 얼굴을 한 채 이 구체를 보여준 엘트먼은 내게 아까하다만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막힘 없이 문답이 이어져서 그런걸까. 내게 말을 하는 엘트먼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아니면 그냥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고.

"여기서 집중을 해야 할 건 바로 '원념'이야. 사람의 영혼. 영적인 존재. 원래라면 아무런 능력도 없는 글러브에 기이한 능력을 부여 시켜준 요소. 참고로 제령 되기 이전의 장갑은 사용자의 힘을 증강 시켜주고 내구성의 강화, 사용자가 공격을 인지하지 못해도 자동으로 방어를 할 수 있는 유도 기능이 붙어 있었다."

"오. 유용한데요. 왜 제령했대?"

"대신 생명력을 어마무시하게 갈취해 가거든."

아하.

하기야. 그런 대가가 없다면 저주 받은 물건이 아니지.

"원념이 사라지자 장갑은 그러한 기능을 잃었지. 내가 술식으로 대체해서 만들어 놓은 기능도 원래는 장갑이 가졌던 능력 중 한 가지였어. 원념이 남긴 일종의 흔적이라고 해야 할까. 영적인 존재라고 해도 사람과 같이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일정한 패턴이 있거든.

애초에 사람의 영이었으니 당연한 일인가? 아무튼. 비워진 부분을 어느 정도 채워 넣은 셈이지만 그래도 장갑 자체에 마법을 부여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거 까지 밖에 복구를 하지 못한거야. 미스릴이나 마력 전도율이 높은 금속으로 만들었으면 모를까. 저건 그냥 흔하디 흔한 잡철로 만든 물건이었으니. 그런데 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마법으로 원념을 대체할 수 없는 것 말입니까."

"그렇지."

내 말에 정답이라며 엘트먼이 박수를 쳤다.

확실히.

내가 마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어도 몇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이 세상에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고 각각의 물질마다 그 용량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장인들이 물건을 만들 때 더 마력을 많이 머금을 수 있는 소재를 원하는 것이고 기사들이 그러한 소재로 만들어진 무구를 원하는 것이다. 기사라면 자신의 오러를 더 많이 머금을 수 있는 검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고 장인이라고 하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전부 담을 수 있는 소재를 원하는 것이 당연했으니.

물론 기사야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다면 이러한 경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지만 장인의 경우는 다르다. 소재의 특성은 경지와는 무관한 그 분야의 근본적인 문제에 속했으니까. 무인으로 비유하자면 기(?) 이전에 단전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엘트먼이 말 해준 리빙 아머의 기능은 확실히 일개 잡철로 된 장갑이 지니기에는 너무 많았다. 소재가 담아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성능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게도 문제를 낸 엘트먼이 해결해 주었다.

"예로 부터 영()이 깃든 물건은 마도구보다 취급이 좋았다. 너도 기사이니 에고 소드(Ego Sword)에 대해 알고 있지? 그런 자의식을 지닌 검들이 다른 검들보다 좋은 취급을 받는 이유가 뭔지 알아?

그 이유는 사물에 깃든 영이 행하는 모든 행동이 사람이 만들어낸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술식 보다 더 뛰어난 신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육신이라는 껍데기가 아닌 순수한 영이 행하는 행동 자체는 그 어떠한 마법보다 자연스럽고 진리에 닿아있지.

물론 영혼에도 격의 차이라는게 있어 아무리 영의 상태라고 해도 저보다 뛰어난 영혼을 지닌 이의 앞에서는 태양 앞 반딧불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지금 여기서 중요히 여겨야 하는 건 영이 가진 능력이지."

"소재의 한계치를 뛰어넘게 해줄 수 있는 힘."

"맞아. 옛날 부터 많은 마법사들이 이 힘 때문에 물질에 영을 부여해 물질이 가진 한계를 뛰어 넘고자 했다. 뭐, 영이 물질에 강신(??)한다 하여도 가지게 되는 능력은 완전히 랜덤이고 가지각색이었으니 금방 주류에서 밀려났지만 말이야 무엇보다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었겠군요. 영을 다룬다는 게 반드시 적법한 절차 내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 황실이 이를 두고 봤을리가 없죠."

"그렇지. 동물이라면 모를까 지식에 미친 마법사들이 어디 선을 지켰겠어. 다만 영이라는 것이 꼭 사람이나 동물 이런 것들만 있는게 아니잖아?"

"정령이군요."

"오, 답이 아주 바로바로 나오는 걸?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 해도 되겠어. 그래. 다음으로 마법사들이 손을 댄건 정령이었어."

"하지만 정령은 그렇게 물건에 함부로 강신 시킬 수 없는 존재 아닙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람의 영 보다 그게 더 위험해 보이는데요."

아무리 약한 정령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정령이라는 것은 자연의 의지가 구현화 된 것이기에 자칫 잘못 다루다가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자연상태로 깃들게 되는 것이라면 모를까 더군다나 인위적으로 물질에 강신 시키는 행위를 정령이 허락할리가 만무하다.

아니나다를까 내 말이 맞다며 엘트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섭리를 거스를 수 있는 대마법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행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커서 정령을 이용한다는 행위도 금지되었다."

엘트먼의 손이 탁상에 놓이 구체로 간다. 받침대에서 구체를 꺼내든 엘트먼은 제 손에 마력을 일으키며 구체에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체가 엘트먼의 손 위에서 한 바퀴 빙그르 돌더니 구체에 새겨진 회로를 따라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선이 빛으로 모두 이어졌을 때 마치 방금 눈을 뜬 것 처럼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구체의 정 중앙 한가운데 눈으로 보이는 빨간 점이 두 개 생겨났다.

뭐지?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하X?

"하지만 말이야. 정령이라는게 자연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의지를 가지게 되어서 탄생한 존재 잖아? 그러니 자연이 지닌 성질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말이야.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에너지에 의지를 부여하게 된다면 어떨까. 오로지 마법의 연산을 보조해주기 위한 정신체의 탄생. 그건 과연 불가능 한 것일까?"

답은 NO 다.

엘트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구체의 빨간 점이 불규칙 적으로 반짝이며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배고파요.]

비록 처음으로 내 뱉은 말이 이런 것이기는 했지만 나는 저것이 내뱉은 저 단어에 일반적인 코딩으로는 절대로 담을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이 담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아주 짜증나 보였거든. 표정이라고 할게 없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감정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사고를 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독립된 객체로서 존재한다는 증거나 마찬가지.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이건...

"아아...이것은 인공정령(Artificial Elemental)이라는 것이다."

완벽하게 완성된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소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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