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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29화 (128/131)

〈 129화 〉 알고 보니 공학천재(3)

* * *

"레베카. 미안하지만 먼저 돌아가 있을래? 잠깐 잊은게 있는 것 같아서."

"어, 응."

엘레나와 마주한 것 때문인지 잔뜩 위축된 레베카가 쭈뼛쭈뼛 답했다. 얼마나 겁을 먹었으면 그 당당하던 레베카 로즈가 저리 되는 것일까. 전투 실습에서의 여파가 꽤 큰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회복이 다 되지 않고 있었으니.

미셸 역시 남부에서 그녀가 마물들을 어떻게 섬멸 하였는 지를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레베카의 행동 또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엘레나 에델바이스의 무력은 경이로울 정도이니, 이를 적으로서 만났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담이 큰 미셸이라고 해도 눈 앞이 깜깜해질 것이다. 전부터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그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까. 물을 엎지르고 생각하는 격이다만 후회가 안드는 것은 아니었다.

엘레나 에델바이스는 그녀가 소문으로 들었던 거와는 다르게 그리 유약하기만 한 소녀가 아니었으니. 애초에 제 주제에 남부의 안주인으로 내정된 소녀를 시험하려 한 것이 잘못이었다. 억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그렇다고 잘 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나중에 봐."

"알았어, 상회 건물에서 보자."

그렇게 레베카를 먼저 보내고 미셸은 연구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법으로 메시지를 보내었으니 그녀가 무시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밖으로 나올터였다.

물론 확신을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었기에 엘레나가 이리로 올 것이라고는 자신하지는 못하였지만 타고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왜인지 그녀라면 자신을 만나러 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셸의 느낌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미셸 양."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미셸의 귀를 울린다.

같은 여자라고 하여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절세의 미모의 소유자. 엘레나 에델바이스가 맑은 자안(??)에 그녀를 담고 있었다. 아무도 없이 이렇게 독대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던가. 미셸은 그녀가 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순간 넋을 잃은 체 엘레나를 바라볼 뻔 하였다.

보통은 주위에 다른 이들이 있어 비교가 되어 더 돋보이는게 정상일 터인데, 그녀는 홀로 있을 때가 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구름이 걷힌 후 밝게 빛을 보이는 만월을 올려다 보는 것만 같다.

집나간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미셸이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질투였다.

외모, 재능, 가문까지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다. 흠결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사람. 그렇기에 그 데미안 크라우스의 약혼자가 되었을 것이고 미래에 남부의 안주인이 되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셸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테다.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을 미셸은 마음 속 저 깊은 곳으로 내려보내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 그녀를 시험하러 하였던 건 한번이면 족했다. 이로 인해 지난 날 한번 실수를 했던 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

지금에 와서는 그저 한때의 미련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패배감과 질투의 감정은 저 멀리 날려 보내고는 자신이 왜 이곳에 서 있는 가를 떠올리며 엘레나에게 말을 걸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엘레나. 조금 갑작스러우시겠지만 반드시 해야할 말이 있어서요."

"방금 전에 있었던 자리에서는 하지 못할 말이었나요?"

엘레나의 대답에 미셸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답했다.

"저는 제 잘못을 다른 이들에게 떠들고 다닐 생각은 없답니다. 조금 가식적이게 느껴질지 몰라도 엘레나 에델바이스 양. 지난번 사냥대회에서 제가 당신께 하였던 행동과 말을 용서 받고 싶어요. 용서 해주시겠어요?"

"음, 어떤 걸 말이죠?"

"전부 다요. 그날 엘레나 양이 보았던 저의 모든 모습을 부디 기억에서 지워주세요. 제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요구를 받아 들일 테니 부디 선처를."

미셸은 엘레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엘레나는 그런 그녀를 지긋이 내려다 보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짧은 것도 아니다. 그날의 일들이 엘레나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그녀가 이교도가 아닌 회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가진 악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

남부 귀족 영애들의 텃세?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린아이의 앙탈과 같이 귀엽게 느껴질 뿐이다. 애초에 엘레나는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을 뿐더러 관심사 외의 것에는 전부 무관심 했으니 딱히 앙금이라고 해야할 건 없다. 그녀들 정도면 선을 넘지 않을 정도의 적당히 나선 것이었다.

오히려 미셸이 앞장 서서 선을 그어 놓았기에 따른 영애들이 이를 넘지 못했음을 엘레나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 이런 미셸의 사과는 그녀에게 있어 뜬끔 없을 뿐더러 갑작스런 헤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냥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이렇게 꼭 확인을 하는 것은 그녀가 남부에 적을 둔 상단의 여식이기 때문일 것이고 엘레나가 데미안의 약혼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회장에서 만났을 때와 행동을 달리 하는 이유는 엘레나의 자리를 미셸이 받아들였기에 그런것 일테다. 애초에 그 자리가 다른 이의 인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만.

미셸의 사과를 받은 엘레나는 고저 없는 평탄한 어조로 답했다.

"그날 미셸 양이 다른 영애들이 선을 넘지 않도록 자제 시킨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이건 딱히 용서를 받을 만한 일이 아닌것 같네요."

별다른 추긍 없이 넘어가겠다는 엘레나의 말에 미셸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럼 이것으로 미셸 양의 용건은 전부 끝이 난 것이네요. 아까 편지를 써 주신다고 하셨지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엘레나와 미셸의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대화의 주도권은 처음 부터 엘레나에게 있을 뿐더러 그녀에게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마음이 없었으니 미셸은 그저 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뒤로 물러났다.

구구절절하게 변명을 할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엘레나가 이렇게 쉽게 사과를 받아줄 것이라 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조금 얼떨떨한 미셸이었지만 이어지는 엘레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아, 앞으로 크라우스와 관련해서 프랑크 상단의 용건은 그 편지에 적어주시면 되겠네요. 아니면 저를 찾아오도록 하세요. 앞으로 자주 얼굴을 뵙게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익숙해져야지요. 그럼."

자색의 맑은 안광은 빛내는 눈을 마주하자 미셸은 그녀의 눈이 자신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연 이 느낌은 그저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멀어지는 엘레나를 바라보며 미셸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 엘레나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처음 미셸을 연구실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레베카라면 모를까 그녀는 엘레나의 심기를 거슬리는 짓을 한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회장에서의 일이라고 해봐야 그리 신경 쓸 정도로 선을 넘은 일도 아니었고 말이다.

다만 그녀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따로 불러 내었을 때, 엘레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이전에는 비추지 않았던 체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에 대한 체념인가는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미셸의 모습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과거에 그를 포기했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그리 만든 것은 자신일테지만 말이다.

죄책감은 없었다. 자신은 그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후우우..."

깊게 숨을 내쉬며 애써 과거의 기억을 날려 보낸다.

제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만히 만 있었던 엘레나 에델바이스는 이제 없다. 그러니 과거가 반복될 일도 없을 것이다. 후회와 한탄은 한번이면 족하다.

"돌아가야지...그의 곁으로.."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심력을 소모하고 말았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은 당연하게도 데미안의 얼굴이다. 자신을 보며 웃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벌써 부터 회복이 되는 것 같았지만 어찌 상상이 현실과 같을 수가 있나. 엘레나는 연구실로 향하는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손길. 그의 목소리, 체취, 마음. 어느 하나 다른 이에게 내줄 수 없는 그녀 만의 보물이다.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만 마음이 달아오른 그녀에게 있어 그마저도 멀게 느껴졌다. 걷되 걷는 것이 아닌 속도로 복도를 달린 그녀는 나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연구실로 돌아왔다.

"데미안..."

문고리를 잡으며 문을 열려는 순간 때 아닌 탄성이 그녀를 멈춰 세우고 말았다.

오오오오오오오­!!!

?

아직 문을 열지 않았음에도 그의 감탄 어린 환호 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열어보자 그곳에는 엘트먼이 든 구체를 바라보며 환호하는 데미안이 있었다.

"아아...이것은 인공정령(Artificial Elemental)이라는 것이다."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우와아아아아아아!!

"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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