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불나방들(5)
* * *
하나 둘 골렘의 손에 잡혀가는 이교도들을 보며 엘트먼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계산은 앞날에 대한 것이 아닌 순수히 돈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의 손해, 앞으로의 이득. 아무리 엘트먼이 강하다고 해도 이러한 초인들의 전투에서 골렘의 손상이 아예 없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그는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었는데, 당연 손실 보다 이득이 많은 탓이었다.
사람을 단순히 돈으로 보길 망설였던 것도 잠시, 이러한 계산을 몇번 하다 보니 그들은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망설임을 버리니 이전에 느꼈던 거부감도 이제는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저들과 전투를 한번 치른 후였기에 그런걸지도 모른다.
"이제 얼추 끝이 난건가?"
흐흐흐....
오싹!
엘트먼의 혼잣말에 그에게 붙잡힌 이교도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저들을 보며 내뱉은 엘트먼의 목소리에는 이루 말하지 못할 광기와 같은 마력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목숨과는 전혀 다른 주제에서 나오는 것이기는 하여도 듣는 이로서는 구분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엘트먼의 손에 잡힌 이상 그가 직접 그들의 목숨을 취하지 않는다 하여도 이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제국의 황실이 가장 혐오하고 싫어하는 것이 바로 외신에 대한 숭배행위였으니.
마지막으로 항전하던 이가 골렘에게 잡히는 것으로 지금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는 엘트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흠..."
엘트먼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건물 내부를 한번 훑어보았다.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들의 전투는 살벌했고 그 여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래 이곳에 놓여있었던 가구나 내벽 같은 것들은 대부분 부서진 상황이었다. 바닥재와 벽지는 여기저기 흉지고 뜯겨져 외벽만 멀쩡하지 흉가가 따로 없다.
그렇게 일을 벌였음에도 용케 무너지지 않았구나.
건물 외벽에 결계가 쳐저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엘트먼은 이 사실에 내심 감탄했다.
지금 이 건물이 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저 결계가 멀쩡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결계의 완성도는 술자의 역량을 따라가는 법이었으니, 그만큼 이 결계를 설치한 인물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제법 힘을 주었다고는 생각했는데 의외로군. 뭐, 나야 좋은 일이지만."
엘트먼은 조금 흉이졌을 뿐이지 건재한 건물의 외벽을 바라보며 홀로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교 내에서 지위가 높다는 뜻이었고, 지위가 높으면 잡았을 때의 포상금도 그 만큼 많다.
어쩌면 여기에 있는 이들을 모두 모은 것보다 그 한명을 잡는 것에 걸린 포상금이 더 많을 지도 모를일이었으니 혹여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에 대한 걱정 보다는 그에 대한 기쁨이 더 컸다.
이런 엘트먼의 기대를 망치려는 것인지 그에게 붙잡힌 이교도 중 한명이 악을 쓰며 그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야 실컷 웃도록 해라. 곧 있으면 주교께서 오셔서 네 놈을 아주 박살을 내주실 테니 말이야!! 엘트먼 자네도 그 분의 실력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야 자네가 우리 보다 더 가까이 그 분과 지내지 않았나."
"아, 확실히 교수님은 뛰어난 마법사시지. 하지만 말이야. 반대로 그 역시 자네들과는 다르게 내 실력을 잘 알고 있으니 이렇게 나오지 않은 것 아닐까? 롬버튼 이 멍청한 놈아. 주위를 둘러봐라. 지금 너희들이 이 모양이 될 때까지 주교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녀석이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 정녕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거냐?"
엘트먼의 말에 시끄럽게 입을 놀리던 이교도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주교가 왜 이곳에 보이지 않는지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돈이 궁한 엘트먼이라고 하여도 제 목숨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확실한 계산 안에서 이루어진다. 신성력을 해방 했을 때의 주교와 그가 알고 있는 인물간의 차이는 존재 하겠지만 지금 이들이 전부 엘트먼의 손에 붙잡힌 것과 같이 그 정도의 오차는 예상하고 있었다.
주교 역시 그와의 차이를 알기에 이 처럼 자리를 피한 것일 테다. 할 말이 없어진 롬버튼은 비굴하게 고개를 내리깐채 엘트먼에게 말했다.
"사, 살려주게...이대로는 우리는 다 죽게 되네. 황실이 이교도들에게 얼마나 잔혹한지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 말에 얼음처럼 차갑기만 하던 그의 자줏빛 눈이 작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간의 정은 그들이 자신을 가두었을 때부터 전부 흘려보낸 엘트먼이었다. 그는 이전과 별 다름 없는 어조로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한 이교도, 롬버튼에게 답했다.
"그걸 알면. 그리하지 말았어야지."
"재, 재물이라면 원하는대로 주겠네. 살려만 주게나. 자네는 그리 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서 자네만 눈 감아 준다면...."
"B구역 227번지 4층."
"!!!!"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자네들의 비자금이라던지 가진 재산의 출처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네. 그렇게 말 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다 챙길 생각이었어. 어차피 이제 남은 재산도 별로 없지 않은가. 그동안 후원해주고 말벗이 되어줘서 고맙네. 덕분에 외롭지 않게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었어. 다 자네들 덕이야."
엘트먼의 감사 인사에 그들은 잠시 넋을 잃고 뭐라 말을 하지 못하다가 이내 체념을 한 것인지 끝에 가서는 그를 헐뜯기 시작했다. 엘트먼은 더 이상 그들의 말을 귀에 담지 않았다. 저들과는 할 말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잘 있게나."
그는 마지막 인사를 건넨 후 자신이 데려온 골렘 중 하나에게 감시를 맡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아직 그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학회장, 주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가 아직은 이 건물 안에 있음을 엘트먼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황군이 결계를 뚫고 들이닥칠 때까지는 최대한 시간을 벌어 볼 생각이었겠지. 자신을 피해 밖으로 나가는 것 보다는 아직은 이 건물 안에 몸을 숨기는 편이 더 안전했으니.
하지만 그가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혹여 방금 전의 전투로 그가 도망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었다면 엘트먼의 입장에서는 일이 상당히 귀찮게 꼬여 버리게 된다.
"서둘러야겠군."
그는 이전에 살펴 보았던 건물의 구조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
"끝난건가?"
등불 하나 두지 않은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그리 중얼거렸다.
건물 전체를 울리던 진동은 더 이상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들의 전투가 끝이 났다는 뜻이 렸다. 사내는 전투가 일어나고 부터 계속 이곳에 있었음에도 주저 없이 밖으로 향하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누가 이겼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승자가 누구인지는 그에게 있어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건물 내 소란을 감지한 황군이 곧 이리로 들이닥칠 것이고 사내는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을 벌어 주었으면 했다만...뭐 되었다. 이 정도면 선방 한 편이지."
위에서 날뛰고 있을 엘트먼을 생각하며 그는 문을 열어 젖혔다. 그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를 아카데미로 불러 자신의 연구를 돕도록 만든 것이 그였으니 말이다.
엘트먼을 아카데미로 불러들인 연금학과의 교수. 필리푸스 파르켈, 그가 바로 이 건물의 주인이었다.
나름 그 분야에서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했던 그 였음에도 엘트먼의 재능은 상상이상의 것이었다. 황금의 탑주를 제외하면 모두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했던 사내에게 질투라는 감정을 불어넣게 만들 정도의 재능이었으니.
그렇게 엘트먼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그였으니 굳이 그와 맞서서 손해를 감수할 생각은 없었다. 이길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그의 목적은 어디 까지나 생존이었으니 쓸데없는 힘의 소모는 그로선 그리 탐탁치 않은 일이었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네. 엘트먼 에델바이스. 자네의 노고는 잊지 않겠네."
천장을 바라보며 그리 혼잣말을 중얼거린 사내는 문 너머의 계단을 올랐다. 지금과 같은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 놓은 탈출구였다. 비록 루덴을 떠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금 이 자리만 벗어나면 살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있다.
당분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교단의 지원이 온다. 그때까지만 숨 죽여 숨어있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건 그래도 조금 아깝기는 하군. 아카데미의 교수라는 직함. 꽤나 마음에 드는 자리였는데 말이지."
파르켈은 그렇게 아쉬움을 토로하며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제 마음대로 실력 있는 학생들을 연구에 운용할 수 있다는 것과 가만히 있어도 절로 연구에 대한 지원이 들어온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편한 자리였다만 이제는 다 옛일이다. 지금은 그저 도망자에 불과하니. 살기 위해서는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길고 긴 계단의 끝이 보인다.
출구의 문을 여니 시원한 밤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위가 뻥 뚫린 골목을 보니 좁고 긴 통로를 걷느랴 생긴 갑갑함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출구는 건물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 황군도 곧바로 추격을 하지는 못할 터, 이제 미리 준비해 둔 안가로 이동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보세요. 데미안. 여기로 나올거라 제가 말했죠?"
"확실히 그가 있는 곳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었군요."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의 등장에 그가 몸을 떨었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한 쌍의 남녀가 골목에 서 있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하얀 은발의 소녀와 어둠 속에서 금색빛을 내는 용안을 가진 소년. 제국 내에서 저런 특징을 가진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앞에 나타난 둘의 정체를 안 파르켈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은색의 소녀가 그런 그를 보며 작게 웃더니 옆의 소년에게 말했다.
"데미안. 약속."
"...."
"약속."
"...알았어요."
소녀의 강요에 마지못해 답하는 소년. 이를 지켜보고 있던 파르켈로서는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문답이었지만 그에 대한 생각은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가 두 사람의 대화 이후에 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새하얀 빛줄기 밖에 없었으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