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22화 (122/131)

< 122화 > 불나방들 (3)

「이교도 중 한명이 황군과 접촉.

엘트먼 에델바이스의 신변을 확보하고 있다고 함.

조사 결과 그들이 위장한 학회 중 엘트먼 에델바이스가 학회원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발견됨.

엘트먼 에델바이스가 연구실을 떠난지 5시간 째 돌아오지 않고 있음. 금일은 정기 학회 일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

"미친...."

내가 왠만해서는 입 밖으로 욕을 내뱉는 성격은 아니다만 엘트먼이 이교도에게 구금되어 있다는 전서의 내용을 확인하니 평소와 같이 속에서 내지르는 것 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떻게든 화를 밖으로 배출해내야지 내가 화병에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고들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하늘도 참으로 무심하시지. 이교도 소탕이 순항 중이라고 기뻐한지가 언젠데 곧바로 내게 이러한 시련을 내려주시다니 말이다. 어쩐지 일이 너무 순순히 풀리는가 싶더니만 후일담을 볼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본편이라고 생각했던게 설마 서막이었을 줄이야. 뒷통수가 아려온다.

"아, 뒷골 땡겨."

대체 왜 엘트먼이 이교도들과 엮이게 된 걸까.

속으로 그리 물으면서도 그 이유가 짐작이 아예가지 않는 것은 또 아닌지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그가 이교도들에게 붙잡힌 것은 어느 정도 나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과실을 따져본다면 100 대 0은 아니고 한 40 대 60 정도? 50 대 50이면 모르겠는데 반올림 하기에는 참으로 애매한 비율이다.

원작에서 이런 이벤트는 일어난 적이 없다. 정확히는 그녀의 가족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맞는 말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은 주인공인 엘레나 한 명이면 충분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 외에 그녀의 가족이 해를 당하는 상황은 일어난 적이 없다.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흔들리지 않는 엘레나의 조력자였으니, 그런 이들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작가가 허락할리 없다.

다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현실이었고 현실에는 정해진 결말이나 운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선택에 의한 인과관계만이 존재 할 뿐, 때문에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다. 원인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결과도 존재한다.

지금 엘트먼이 처한 상황의 원인은 내가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선택 역시 영향을 주었겠지만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내 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녀석들이 벌이고 내가 그 벌들이 모여사는 벌집을 제거하려는 사람이라 한다면 엘트먼은 때마침 그 주위를 지나가고 있다 벌에 쏘인 사람 정도가 되겠다. 내 잘못은 아닌데 어쩐지 내게도 잘못이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원작의 비틀림은 물론이고 황군이 이리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된 이유가 전부 나로 인함이었으니 현 상황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을레야 없다.

루덴 내부에 이교도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정도의 사건이었던 헤니웨이 건이 이렇게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한번에 너무 많은 메인스토리들을 스킵 시킨 건 욕심이었을까.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는게 이런건가 보다.

"평소에는 연구실 말고 어디 나가지도 않는 인간이 왜 하필 그때 시내로 나가가지고는."

답답한 마음에 엘트먼의 탓을 해보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건 나도 알고 있다. 잘못은 일을 벌인 이교도들에게 있지 우리는 그저 녀석들의 행동에 당한 피해자일 뿐이다. 나는 손에 힘을 줘 구겨진 전서를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았다.

아무리 다시 본다고 해도 전서에 적힌 내용이 바뀔리는 없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보았다

거기에는 엘트먼이 잡힌 장소가 어디인지 적혀 있었다. 황군은 이들의 요구대로 잠시 그곳의 경계를 풀었으니 그를 구할려면 이들의 협상에 따르던지 내가 직접 움직이던지 해야할 것이다. 저 이교도 놈들이 협상을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끝낼 가능성은 없으니 사실상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는 셈이다.

"...오랜만에 밤 산책이나 좀 할까."

나는 검과 옷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하였다. 기숙사에 통금시간이 없다는 것만이 내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라니...눈물이 난다.

황군에 심은 비선이 내게 먼저 사실을 알려줘서 그렇지, 조금만 있으면 요하임 공작과 엘레나에게도 소식이 전해질 터였다. 그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들에게 걱정거리가 될 것은 내가 미리 치워두겠다고 이곳에 오기 전 나, 자신과 약속했으니까.

그렇게 각오를 다진 나는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기숙사를 떠났다.

내 뒤에서 푸른 깃의 새가 쫓아오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이를 알아차린 것은 흑의로 몸을 가린 엘레나가 내 앞에 나타난 후였다.

"엘레나?"

"저도 오라버니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데미안. 어서 오라버니를 구하러 가도록 하죠."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파랑이가 왜. 대체 언제부터...설마 엘레나. 절 염탐..."

"어서 가죠!!"

엘레나???

***

엘트먼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그는 어릴적 부터 신화와 같은 옛 이야기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내용이 재미있기도 하였고 상상의 세계가 현실이 되는 것 같기 때문도 있었다.

신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전설과 신화는 단순히 사람들의 상상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실제의 기록이었으니. 과거 이 땅에서 그가 상상하는 풍경이 실제로 펼쳐졌다는 사실은 엘트먼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에델바이스에 태어난 것은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일곱 마탑이었고 그는 그곳의 후계자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그는 틈만 나면 마탑의 서고에서 책을 읽었는데, 이는 마법에 대한 탐구가 아닌 지난 날의 기록들을 찾아 읽는 것에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터 뛰어난 마법적 성취를 자랑한 천재라 불린 이들 중 한 명이었지만 그는 천재라고 하기보다는 노력하는 수재에 가까웠다. 노력의 방향이 약간 초점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의 마법적 성취는 순전히 과거의 기록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기 위한 어린 아이의 노력에서 나온 결과였다.

엘트먼은 마법에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에델바이스 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고유마법에 대한 흥미가 없었다.

별의 마력을 운용하는 성위마법은 배우고 싶어도 그 자질을 타고 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하는 기술이었다만 엘트먼은 이에 대한 자질을 타고났음에도 미래에 성위마법의 대가, 차기 에델바이스의 가주가 되어야 할 그의 관심 분야는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오래전 옛 이야기들을 찾아 읽었을 때 부터 엘트먼 에델바이스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신이 직접 세상을 통치하던 신화시대의 이야기 부터 옛 왕조들의 욕심으로 시작된 외신들과의 전쟁. 뇌신의 팔을 베어낸 검사. 용을 죽인 영웅의 전설. 별들을 움직인 최초의 마법사와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 등 이 땅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존재했지만 그 수많은 이야기들 중 엘트먼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옛 거인들과 그에 대항하는 마법사의 이야기였다.

"우와아아아아아..."

과거 이 땅에 산을 움직이는 거대한 거인이 존재했을 때 어떤 한 마법사가 그에 대항하기 위해 거인과 비견될 만한 거대한 골렘을 만들어 대적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읽고 나서 부터 엘트먼은 그 이야깃 속 마법사와 같이 제 손으로 그런 골렘을 만들어 내는 것이 꿈이 되었다.

이에 비견될 만한 업적이 성위마법사(史)에 없는 것은 아니다만, 사람이 무언가에 꽂히는데 있어 그 업적의 위대함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여러 계기들 중 하나가 될 뿐이지 그에 대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거대한 거인을 쓰러뜨렸다는 것에 좋아라 했다면 엘트먼은 마법사가 아닌 기사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런 괴물들과의 무용담은 마법사보다 기사가 더 많으니. 엘트먼이 이 이야기를 좋아한 것은 거인을 쓰러뜨린 것이 그 거인 만큼이나 거대한 골렘이었기에 그런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산 보다 더 거대한 크기의 골렘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그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어갈 수록 엘트먼은 물 만난 스펀지 마냥 이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만큼이나 엘트먼에게 골렘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골렘.

그것이 미래의 한 대마법사의 진로를 바꾸었다.

"아버지!!! 저 연금술사가 되겠습니다!!"

"당장 나가!!! 이 자식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요하임이 이를 허락해 줄리가 없었다.

그의 가문 에델바이스는 성위마법의 총본산이라 불리우는 여명의 탑의 주인이었고 엘트먼은 그곳의 차기 후계자였다. 그런데 그 후계자가 타 학파의 마법사가 되겠다고 하니 요하임의 뒷골이 당길 수 밖에.

하지만 엘트먼은 그런 요하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졸업 후 끝내 황금의 탑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패기 넘치는 젊은 마법사의 열정은 아버지의 반대 만으로는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 토라진 요하임이 엘트먼에게서 에델바이스의 후계자로서의 지원을 모두 거두었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신이 물려받을 작위와 권한 모두 동생이 가져가도 좋았다. 그만큼 아끼는 동생이기도 하였고 그녀야 말로 진정 여명의 탑주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것을 엘트먼은 남들보다 일찍히 알고 있었다.

어린날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러 서고로 데려온 동생이 처음 보는 마법서의 주문을 자신보다 능숙하게 펼치는 것은 엘트먼에게 있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자신보다 더 적격한 후계자를 알고 있었으니. 이 또한 엘트먼이 걱정 없이 황금의 탑으로 적을 옮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신의 동생은 골렘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었을까.

마법에 있어 천재 중의 천재라 할 수 있는 그녀가 같이 연구를 도와주었다면 연구에 더 많은 진전이 있었을 텐데. 그것이 엘트먼이 에델바이스에 가지는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황금의 탑에서 수학하는 동안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배움에 있어 즐거움을 느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 체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얻는 기쁨은 그동안 누려왔던 그 어떤 것 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엘트먼의 그 달콤한 꿈도 결국에는 냉혹한 현실의 벽에 깨질 수 밖에 없었다.

엘트먼은 유능한 마법사였고 황금의 탑에서도 최연소로 수석 연금술사라는 직함을 달 정도로 신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잘 준비된 연구환경과 같은 분야에 뜻을 가진 동료들. 그야말로 그가 원하는 최적의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맞지 않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어..어째서 다들 이 거대함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바로 현 황금의 탑에서 골렘에 대한 기조가 기존의 것 보다 더 작고 정밀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골렘이라는 것이었다. 엘트먼이 원하는 거대한 골렘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 수록 마법은 과거보다 발전하였고 이 또한 그에 따른 변화였다.

과거의 골렘이 그 크기에서 나오는 물리력에 중점을 두었다면 현재의 골렘은 보다 정밀하고 완벽한 동작의 수행. 현 시대에서 아주 거대한 골렘의 존재는 그저 다른 이들의 공격에 집중 타겟팅이 되는 샌드백 밖에 되지를 못하니 말이다.

물론 실용성을 따진다 하더라고 어느 정도의 크기까지 골렘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이해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엘트먼이 생각하는 만큼의 골렘이 커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커진느 크기도 효율의 나름대로지 엘트먼이 원하는 골렘의 크기는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였으니.

산과 같이 거대한 몸체를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막대한 마력이 드는데 거기서 그 몸에 오는 부하를 버티는데 필요한 술식과 각종 부가적인 기능이 추가적으로 더해짐으로서 들 마력까지 생각한다면 거기에 들 마력으로 대마법 몇발 빠르게 연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효율이 대체 뭐가 중요하냐고!!!"

물론 엘트먼에게 그런 사실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애시당초 거대한 골렘의 운용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엘트먼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태 꿈만을 위해서 자신이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달려온 그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 효율과 비효율의 차이는 앞에 한 글자가 추가되었을 뿐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니라는 거다.

악재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엘트먼이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생각한 엘레나의 약혼이 성사되어 버린것이다. 대체 어떤 빌어먹을 놈이 자신의 여동생을 채간건지 그에 대한 분노도 들었지만 엘레나의 약혼 상대가 크라우스의 후계자라는 것에 엘트먼은 더욱 분노했다.

그가 크라우스에 딱히 악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지, 그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 용을 죽인 영웅의 전설이 내려오는 가문이 바로 크라우스였으니 말이다.

다만 엘레나가 크라우스의 후계자와 약혼을 했다는 건 그로서는 별로 좋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에델바이스의 주인이 되어야 할 엘레나가 크라우스의 안주인이 되게 생겼으니 요하임이 엘트먼을 압박할 수 있는 이유가 생겨 버린 것이다. 그동안 강력한 보호 주문이 되어 주었던 '가문은 엘레나가 이으면 되지 않습니까?'가 효력을 잃게 생겨버렸다.

결국 엘트먼은 최연소 수석 연금술사라는 직함을 얻어냈음에도 탑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더는 그곳에 뿌리 내릴 수가 없었으니, 아무리 꿈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위한 선택을 했는데, 그런 그가 다음으로 선택한 길은 다름아닌 에스텔리아 아카데미의 교수직이었다.

정교수는 아니었지만 그곳의 연금학 교수로부터 자신의 생각에 대해 긍정적이다 라는 답변을 받았고 자유로운 연구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으니 여태 그 어떤 조건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거기에 에스텔리아의 교수직은 명예 있는 자리였지만 특정 학파의 마탑에서 뿌리 내리는 것과는 경우가 달랐으니 가주직을 물려 받을 때 까지 가지는 신분으로서는 부족함이 없다.

"옛 시대의 타이탄(Titan)이라. 내 어릴적 꿈이 바로 그와 같은 골렘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네. 이거 같은 뜻을 가진 동지를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구만. 어떤가. 자네도 함께하지 않겠는가?"

"물론입니다! 계약서!! 당장 계약서 부터 씁시다!"

때문에 이 결정까지 요하임은 엘트먼에게 뭐라 할 수 없었고 아들의 마지막 발버둥을 용인해 주었다.

먼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던 선배와 그의 뜻에 찬동하는 후원자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엘트먼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원래 부터 지독한 연구광이었던 그는 그 도원향에 흠뻑 빠져 밥과 잠을 제외하면 오로지 연구만을 계속했다.

있는 창고에서 인심 난다고 엘트먼 마음에 여유가 생긴 엘트먼의 눈에는 이제 다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엘레나를 데려간 것에 악감정 밖에 들지 않았던 동생의 약혼자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을 듣고 나니 나름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비록 시한부 이기는 해도 달콤한 꿈 속에 다시금 빠질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은 그거면 되었다.

***

"으...으음..? 여기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 안. 그곳에서 엘트먼이 눈을 떴다. 귀를 울리는 이명에 잠시 머리가 지끈 거렸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뿐. 엘트먼이 체내의 마력을 돌리기 시작하니 머리의 두통은 금세 가라앉았다.

몸에 갑갑함이 느껴지기에 시선을 돌려보니 자신의 몸을 묶고 있는 검은 사슬이 눈에 보였다. 그것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구속구였음을 엘트먼은 어렵지 않게 알아 볼 수 있었다.

사슬을 보니 기절하기 전 있었던 일들이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엘트먼 경. 그간의 시간은 즐거웠네. 안타깝지만 인질이 되어 주어야 겠어.'

같은 뜻을 가진 동지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가졌던 학회에서 자신이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을. 범인은 그를 제외한 학회원들 전원. 그들 전원이 이교도들이었으니 이유야 듣지 않아도 알 만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음에도 그의 마음 속 한편에는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한 명 당 1억."

마법의 주문을 외워 마음을 진정 시킨 엘트먼은 사슬을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거, 아주 단단히 준비를 해왔나 보군."

마법사에게 있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르는 것이 아님에도 그의 목소리는 여유롭기 그지 없다. 그를 이곳에 가둔 사람이 보았다면 머리를 너무 쌔게 맞아 어떻게 된게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른 다만, 엘트먼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엘트먼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 방에 있는 것이 자신 혼자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한 이름을 불렀다.

"미니언(Minion)."

엘트먼의 부름에 아주 작은 인형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그가 마법으로 불러낸 것이 아닌 엘트먼의 주변에 있던 인형이 그의 말에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엘트먼은 이 작은 인형을 지긋이 내려보다 그것에게 명령했다.

"풀어."

엘트먼의 명령에 미니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갑의 열쇠 구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묶고 있던 사슬이 하나 둘 엘트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법을 시전하는데 있어 아무런 장애가 없음을 확인한 엘트먼은 바닥에 손을 대고는 어느 한 마법을 펼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력의 유동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는 엘트먼이 만들어낸 색적 계열의 마법 중 하나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이라. 학회 건물인가. 인원은 그대로. 총 15어...아니, 총 열 다섯명이군. 문제 없겠어."

탐색을 끝낸 엘트먼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인원 전부가 그대로 건물에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기쁨이었다. 한 명도 놓쳐서는 안되었다. 그랬다가는 황실에 받아낼 수 있는 보수가 줄어들 테니.

엘트먼은 잠시 자신의 이런 모습에 모멸감을 느꼈지만 그 보수로 이번에 새로 고안한 회로를 만들 생각을 하니 그런 기분은 햇볕 아래 눈 녹듯 금세 사라져 갔다. 평소에 받던 대로 저들이 주는 후원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다.

"자이언트(Giant). 블레이드(Blade). 고스트(Ghost)..."

아공간에서 자신의 골렘들을 꺼내는 엘트먼의 눈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란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학회장은 꽤 실력이 있어 보였지. 교단 내에서도 급이 높은 인물이려나. 그랬으면 좋겠군."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역대 이교도들에게 붙은 현상금의 액수만이 떠오를 뿐이다.

엘트먼 에델바이스.

가문의 지원이 끊긴 이 천재 연금술사는 누구보다 돈이 필요한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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