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불나방들 (1)
조지 헤니웨이가 실종된지 정확히 두달 하고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 루덴의 지하 하수도 배수구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실종으로 부터 두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던 것 치고는 시체의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했는데, 이는 그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에스텔리아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맡을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가 오물에 뒤덮힌 추례한 모습으로 발견되자 조용히 봄날을 보내고 있던 루덴은 당연 시끄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수배가 붙었던 범법자였지만 그 이전에 뛰어난 실력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마법사였다. 알려진 바로는 제 7계위 헤세드(Chesed)의 경지에 가까운 실력자. 그런 그가 제도의 하수구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으니 당연 그 파장은 클 수 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그가 정말로 7계위의 실력자였다면 그를 죽일 수 있는 이는 제국 내에서 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었기에. 한동안은 루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헤니웨이를 죽인 정체불명의 실력자의 정체에 관한 것으로 몰리었다.
온갖 추측과 가설이 나돌아 다녔지만 결국에 밝혀진 것은 어느 하나 없었다.
이러한 일을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쯤 되면 그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위치가 명확히 밝혀진 경우가 많았기에 사람들은 결국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비인이나 기인이사의 범행일 것이라고 결론 짓는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태워 줄 장작을 계속 넣어주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헤니웨이의 사망사건 역시 근거 없는 추측에서 발전이 없자 사람들도 점점 그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다.
다만 이 실력자의 정체를 밝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헤니웨이가 속해 있던 외신을 숭배하는 이교 집단. 자신들을 '진실된 밤'이라 칭하는 이들이었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이교도들의 조직 치고는 이들의 모임은 어느 음침한 비밀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여타 다른 평범한 클럽과 같이 한 샬롱의 방을 빌려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에 소속된 이들의 신분은 겉으로는 모두 지식인들이었으니 소규모 학회라 위장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테다.
워낙 괴짜들이 많은 부류가 지식인 층이니, 이런 모임이 한 둘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괜히 몰래 움직이다 꼬리를 잡힐 바에는 평범한 클럽으로 위장하는 편이 더 안정성이 높았기에 이러한 형태가 된 것이었다.
이들은 긴 나무 탁자에 둘러 앉아 심각한 얼굴로 현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남자가 탁자 위에 놓여진 신문 기사에 적힌 내용을 보고는 비어버린 상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배가 되었을 때 부터 불안하기는 했지만 설마...5주교가 죽었을 줄이야..."
그 말이 시발점이 되었던 걸까. 여태껏 조용히 진행되고 있던 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입을 연 남자의 건너편에 앉아있던 사내가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격분했다.
"대체 누가 죽인 것이지? 비록 5주교가 금제로 인해 신성력은 봉인 당했어도 무려 7계위의 실력자 아닌가!! 죽음에 몰린 상황에서 까지 금제를 유지했을 리는 없을테니 금제를 해금한 5주교의 기량이라면 능히 탑주와의 결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터. 대체 누가 이리 조용하게 5주교를 죽일 수 있단 말이오."
"...초월자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근래에 검성이 에스텔리아의 기사 학부장으로 취임했다지. 그라면 소리 소문도 없이 5주교를 처리 할 수 있었을 걸세."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거요? 검성이 어떤 인물인데!! 5주교가 본교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죽이지는 않았을 거요! 사지를 잘라서 정보를 얻어내는 편이 더 용이한데 굳이 왜 죽이겠소."
"하기야, 그가 알았다면 진작에 황군이 움직였겠지. 아직까지 조용한 것으로 보아 황실 측 인사는 아닌것 같아 보이는데...어렵군. 아니, 애초에 본교의 행사 때문에 죽음을 당한게 맞는 건지도 의심스럽군. 5주교의 개인적인 일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그, 애초에 처음 5주교가 수배되었을 때의 죄명도 공금횡령이었으니...."
사건을 들춰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진실에 도달했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현 상황에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이들이었다. 수배는 되었더라도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거라 생각했던 수장이 어느 날 죽은 채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구심점을 잃은 그들의 마음은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롭기 그지 없었다.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자신들의 신께 기도라도 하면서 신앙으로 버텨내었을 터지만 희미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던 신과의 줄은 끊어진지 오래다. 기존에 얻어내었던 신성력의 힘은 그대로 그들의 몸에 남아 있었지만 그 이상의 은혜는 그들에게 더는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헤니웨이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지 그까지 죽어버린 마당에 이들은 의지할 곳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이었다. 제 스스로 기둥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있다면 상황이 그나마 좋았으련만. 이곳에 있는 자들은 이미 의지하는 것에 익숙해져 다들 제 힘으로 설 마음이 없는 이들 뿐이었다.
벼량 끝까지 몰린 집단의 권력이 무슨 이득이 된다고. 지금 상황에서 기둥이 되겠다는 것은 그저 책임만을 요할 뿐이다.
"본단에 연락을 취하는 것이 어떠신지...? 5주교를 잃은 이상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오."
때문에 이런 한심한 말이 나오더라도 다들 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한 교도가 입을 열었다. 젊은 나이 때문인지 그의 발언권은 한참 뒷줄이었다만 우왕좌왕하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에 보다 못해 나선 것이었다.
"5주교의 연구실과 가택은 현재 봉쇄 상태에 들어가 있습니다. 맹약 때문에 저희에 관한 것은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지만 5주교가 구상하고 있던 계획은 황실의 손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본단과 연락을 취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입니다. 회담 일수를 줄이도록 합시다. 의심을 살 수 있으니 바로 파토내지는 말고 천천히, 길게, 마치 권태기가 온 부부사이와 같이 말입니다."
"흩어지자고?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알겠다만 지금이야 말로 모이고 단결할 때 아닌가. 아직 황실이 미처 다 파악하지 못했을 때 빠지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일세. 우린 본단의 도움이 필요해."
"....본단에서도 현 상황을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신문에 대서득필 되지 않았습니까. 괜히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되려 본단이 저희를 자르려고 할 겁니다. 기다리도록 하죠. 그리고 살 길이라고 하셨습니까? 대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준비는 이미 다들 각오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살 길이라니!!! 지금 그게 말이 되...."
목소리를 점점 키우던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말에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화를 내지도, 막지도 않는다. 현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 조용히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행동은 마치 그가 하는 말이 전부 맞다고 수긍하는 듯 했다.
신과의 교감이 사라지니 처음에는 굳건했던 신앙심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껏 목청을 높이던 젊은 교도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만 그럼에도 이런 한심한 모습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속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 이, 이런 배교자들.!!!"
"그만."
분위기가 험악해지려고 하자 가장 상석에 가까이 앉은 사내가 이를 막아섰다. 그는 사내를 손을 들어 멈춰 세우더니 잔뜩 힘이 빠진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오늘은...이만하는 걸로 합시다. 아직은 다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음 모임은 원래의 일정보다 일주일 뒤에 하는 것으로 하지요. 자네도 그동안 머리 좀 식히게. 말이 너무 심했어."
"네..."
그렇게 회담은 끝이 났다.
상석에 가까운 순서대로 방을 나갔고 결국 방 안에 남은 사람은 아까 전 목소리를 높이던 젊은 교도 한 명 뿐이었다. 그는 잠시 동안 비어있는 중앙의 의자를 바라보다 문 밖으로 나섰다. 책임을 피한 겁쟁이는 그들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
"비가 오려나 보군."
거리를 걷던 청년은 구름 낀 회색빛 하늘을 보고는 그리 중얼거렸다.
회담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청년의 기분은 저 하늘처럼 우중충하기 그지 없었다. 구름으로 꽉 막힌 하늘의 모습이 한치 앞도 모르게 된 자신의 인생과 같아 보인다. 하늘에서 물방울이 하나 둘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이자 청년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청년이 속도를 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은 완전히 빗방울에 젖어들었다. 가볍게 내리고 지나갈 비는 아닌지 물줄기는 점점 거세져 갔고 그에 따라 청년의 몸도 점차 무거워져 갔다. 따로 우의를 챙기거나 한 것이 아니라 비에 완전히 젖은 의복은 무거운 짐으로 변해 있었다.
이깟 물 좀 묻었다고 힘들어할 그가 아니다만 회담에서 무거운 돌을 삼키고 왔기 때문일까. 지금은 이 조차도 매우 갑갑하게 느껴졌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을 품은 채 그는 더 빠르게 거리를 질주했다.
집으로 가는 길. 저 멀리 솟은 연금성(練金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곳이자 이제는 무너뜨려야 할 곳. 저곳에서 나온 이후로 거탑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에는 기이한 열망과 함께 목표를 향한 힘이 담겨 있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지금은 목표를 두고 좌절한 사람의 어두운 눈만이 반짝이는 황금 거탑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헉...허억..."
집 문 앞에 도착한 그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땅을 내려다 보았다.
마나 유저인 그에게 있어 고작 이 정도의 거리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이루 말 할 수 없는 갑갑함 때문에 숨이 막혀온다. 가슴 한가운데에 말뚝이 박힌 것 같아 이를 뽑아내고 싶은데 이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돌아오자 고요한 정적과 어둠이 그를 반긴다.
빗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에 그는 그제야 안도감을 느끼며 편히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는 무거워진 외투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자신의 서재를 향해 걸어갔다.
대충 아무 책 한 권 집어 들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잠이 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물에 젖은 그의 몸은 물기를 닦아낼 필요가 있어 보였지만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그에게는 지금 완전한 외부와의 단절이 필요했다.
서재로 향하는 복도에는 진한 커피향이 깔려 있었다.
청년은 이에 살짝 눈살을 찌뿌리며 향을 지워냈다. 반갑게 찾아온 잠이 이 향기 때문에 달아나지 않도록 말이다. 서재에 가까이 다가갈 수록 향이 진해지는 것 같았지만 청년은 그리로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손짓 한번이면 지울 수 있기에 다시 발을 돌리기는 싫었다.
서재의 문을 연 그는 바로 눈 앞에 들어온 책장에서 바로 책 한 권을 뽑아 의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여러가지로 한계에 몰려있던 터라 굳이 수면제 역할을 할 책은 필요가 없어 보였지만 그렇든 말든 그는 책을 잡고 있었다.
이제 의자에 앉기만 하면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의자에 먼저 온 선객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늦었군."
그 한마디에 죽어가던 청년의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 쉴때 마다 깊은 커피향이 코 속으로 들어온다. 이걸 왜 여태까지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 농도가 짙었는데 지금은 이에 대한 답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용의 눈동자에 그는 전신이 얼어 붙은 것 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