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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18화 (118/131)

< 118화 > 악역영애 (4)

"왜...왜 이렇게 된거지...?"

레베카는 뼈가 시릴정도로 한기 어린 시선으로부터 등을 돌리며 이리 중얼거렸다.

레베카.

레베카 로즈.

요 근래 그녀의 이름은 아카데미 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름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하는 그녀 였으나 그리 좋아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이 입에 올라가는 경우가 경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름에서 부터 알 수 있다 싶이 그녀는 로즈 가문의 여식이었다.

로즈 가문.

흔히 들 제국에서 황실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가문들을 뽑으라면 크로멜, 에델바이스, 에르투웬 삼공가와 남부의 크라우스를 뽑을 테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국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각 방위를 수호하는 대가문의 힘은 일국의 왕에 준할 정도이지만 단순히 제국에 끼치는 영향력 하나만 본다면 제국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루덴, 그곳에서 군림하는 중앙귀족들의 손을 더 탈 수 밖에 없다.

그런 제국 권력의 중심지라고 할 수도 있는 곳이었기에 중앙정계는 항시 서로 먹고 먹히는 복마전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성의 성벽과 같이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있었다.

로즈 가문이 그러했다.

오랜 시간 혼란한 중앙 정계에서 쓰러지지 않고 입지를 다져왔으니 그 힘은 다른 귀족가에 비할바 없이 크다. 현 중앙 귀족계의 거두가 로즈 가의 가주였으니, 명실상부 로즈 가문은 제국을 떠 받치는 기둥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로즈 가의 가주 엘라이어 로즈가 아끼는 막내딸이 바로 레베카다.

삼녀라는 위치가 애매하기는 하지만 대귀족의 직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통이라면 추문이 돈다고 하더라고 그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 하며 언급하기를 꺼려야 하는데, 학생들이 이를 두려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대척점에 선 이가 바로 엘레나 에델바이스 였기 때문일 것이다.

"싫어..."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씹어보았지만 그런다고 이 마음이 날아갈리가 없다.

레베카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자신을 찌르는 엘레나의 시선도, 평상시라면 즐겼을 자신을 향한 다른 이들의 눈길도 모두 마주하기가 싫다.

레베카는 여태 살면서 이러한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그녀에게 그러한 사실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들만이 둘인 집안에 늦게 얻은 막내 딸이었으니 가족 모두가 그녀를 아꼈고 그런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자란 레베카는 부족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로 자랐다.

그렇기에 그런 것일까.

이러한 환경 때문인지 레베카는 다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소녀로 자라고 말았다.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고 모두가 그녀의 행동을 용인해주니 그녀를 바로 잡아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령 바른 말을 하는 이가 있더라도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이를 레베카가 자신의 곁에 두었을리가 없다.

원래 명문가에서 태어난 아이일 수록 가문의 권위를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레베카는 아예 가족들이 대놓고 편애하였으니 아예 그런 아이로 자라라고 판을 깔아 준 셈이다.

그 때 데미안에게 하였던 고백 역시 이러한 성격에서 나온 것이었다.

상대가 엘레나의 약혼자이기는 했지만 엘레나는 기본적으로 학부내에서 아주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었고 그녀가 보기에는 얼굴만 아름답지 목석이라 내심 데미안 쪽에서 엘레나를 질려 할것이라 여겼다.

데미안의 얼굴, 능력 모두 그녀의 취향에 부합했기에 될 대로 되란 식으로 고백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베카는 자신이 거절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문도 외모도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었기에, 아무리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삼녀라 언젠가는 가문 간의 우호를 위해 정략 결혼으로 팔려갈 몸. 그 크라우스 가주의 애인으로 들어와 정부를 재치고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안일하고 오만하게 행동한 결과가 이거다.

"그럼 지금부터 마법학부의 전투 실습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계열의 마법을 쓰든 간에 평가에는 지장이 없을 테니 되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가며 승리하시길."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시작 선언이 레베카에게는 사형 선고와 같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당당하게 다 이겨주겠다고 말을 했을지도 몰랐을 상황이다만 지금은 아니다. 격이 다른 상대가 그녀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으니 지금 레베카가 걱정해야 할 것은 생과 사의 문제였다.

"아, 부상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작 전에 앞서 보호 마법을 걸어두었으니 일정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모두 장외로 이동하시게 될 겁니다. 사제 분들도 계시니 모두 마음 놓고 최선을 다해 싸워주세요."

퍽이나.

교수는 안전하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본능은 지금이 목숨의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 날 화원에서 엘레나와 눈을 마주했을 때 레베카는 눈빛 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였다. 그날 보았던 그 자줏빛 눈은 지금까지 계속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약간은 기분이 풀린 것 같아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섭기는 매한가지다.

레베카는 제발 그녀와 만나지 않고 이 시간이 끝나가기를 빌었다. 어차피 다들 한 번씩 번갈아 가며 대련을 해야하는 방식이기에 언젠가는 만나게 될 테지만 아직은 아니되었다.

"전투라!!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야겠군!"

"아하하하...이런 건 처음이라 조금 두근 거리기는 하네요."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점이라고 한다면 이번 세대의 천재가 그녀 만이 아니라는 점일까. 그 잔악무도한 이교의 추기경과 접전을 벌여 승리했다고 알려진 오르커스 1황자와 공간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에르투웬 가의 떠오르는 신성(新星). 리처드 에르투웬 또한 이번 실습에 참여했다.

엘레나와 더불어 평소 다른 학생들에 비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그녀를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보호 마법과 사제들을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학생 개인의 체력 소모가 심하면 결국 실습에서 빠져야 했으니, 앞에 있는 리처드와 오르커스와의 대련에서 엘레나가 리타이어 하는 것. 그것만이 레베카가 살 길이었다.

***

레베카의 바램대로 오르커스와 리처드는 다른 학생들을 압도적인 실력차로 찍어 눌렀다.

오르커스가 불러낸 화염은 마치 잠시 지상에 내려온 태양과 같았고 리처드가 소환해낸 정령들의 위용 역시 대단했다. 엉망이 되어버린 실습장의 대부분의 지분이 그 둘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엘레나 또한 그 둘과 같이 전적은 화려했는데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는 별로 크게 임팩트를 줄 만한 것은 없었다. 이를 효율적이라고 해야하나. 최대한 적은 마법의 조합으로 딱 상대가 리타이어할 정도의 피해를 주는 것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압도적이라고는 하나 두 사람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빛이 바랬다.

그러한 모습 때문에 다시 한번 레베카의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지만 오르커스와 엘레나의 전투가 시작되자 그러한 기대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오! 이번 상대는 엘레나인건가!! 그때 나는 안타깝게도 보지 못했지만 남부 사태 때 본진에서 마법으로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다. 궁술에서는 졌어도 마법사로서는 질 생각이 없으니까 서로 최선을...."

"스으으읍...."

"...엘레나?"

"후우우우..."

"저기 엘레나? 지금 자네 눈이 좀, 아니 매우 무섭네만."

"시작하시죠."

"아, 응."

실습 상대로 오르커스가 상대편에 서자 이전 까지만 해도 고요한 호수와 같던 엘레나의 기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그곳에 있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을 앞 둔 것과 같은 긴장감이 실습대 위에 무겁게 깔리는 그녀의 마력으로 인해 형성되고 있었다.

그녀의 약혼자인 데미안과 오르커스 황자는 매우 절친한 사이라고 하던데, 개인적인 감정이라도 있는 걸까. 레베카는 지금 오르커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담긴 감정이 자신을 바라 볼 때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먼저 가도록 하지."

엘레나의 기세에 오르커스 역시 마음을 굳혔는지 그의 목소리에서 이전과 같은 장난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앞서 하였던 선언대로 선공을 가져간 것은 오르커스였다.

그는 별 다른 영창 없이 손을 휘둘러 마력을 조작하는 것으로 실습대를 가득 채울 정도의 화염 폭풍을 불러내었다. 처음 부터 진심으로 갈 생각인지 실습대와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음에도 넘실거리는 화염에서 전해져 오는 그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

모두가 그 불꽃에 압도되었지만 정작 그 화염 폭풍을 불러일으킨 오르커스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화염 폭풍에 삼켜진 엘레나는 실습대 밖으로 이동되지 않았으니, 이는 그녀가 아직 멀쩡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탁-

바닥을 가볍게 치는 소리가 실습대 전체에 울려퍼졌다. 주위의 소음이 얼마나 심한데 이런 작은 소리는 묻힐만도 하였지만 마력이 담겨져 있었는지 그곳에 있던 모두가 이 소리를 들을 수 가 있었다.

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폭풍의 중심에서 강대한 마력 파장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딱히 이러타 한 저항도 못해보고 화염 폭풍은 마력 파장에 밀려 사라져 갔다. 실습대의 바닥에 미미하게 타오르고 있는 잔불 만이 그러한 마법이 펼쳐졌다는 유일한 증거가 되었다.

폭풍의 중심지였던 곳에는 엘레나, 오롯이 그녀만이 홀로 고고하게 서 있다.

폭풍을 물리친 엘레나는 곧바로 별다른 술식을 전개하지 않는 대신 기사들이나 취할 법한 자세를 취했다. 다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해 하던 순간 일순간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마력으로 눈을 강화하고 있었음에도 모두가 그녀의 움직임을 놓쳤는데 엘레나는 어느순간 오르커스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이에 오르커스는 당황하지 않고 미리 손에 준비해 두었던 술식을 전개했다.

그녀가 폭풍을 물리기 전부터 오르커스는 미리 자신의 머리 위에 불의 화살들을 만들어둔 상태였고 엘레나가 자신의 바로 앞에서 나타나자 미리 손에 걸어둔 술식인 고온의 열에너지를 집약 시켜 놓은 레이저를 내보냈다.

레이저가 닿은 곳은 곧바로 녹아내리는 것이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어차피 닿지 않으면 될 일.

엘레나는 능숙한 체술로 오르커스의 손을 빠르게 쳐내 빛의 경로를 바꾸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불의 화살들이 그녀를 향해 쏟아져 내렸지만 그녀 역시 마법사 였다.

"「리플렉트(reflect)」"

정확히 엘레나와 오르커스만을 포함시킨 곳에서만 공간의 왜곡이 일어난다. 불의 화살은 공간의 왜곡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처박혔다. 준비했던 수단이 모두 파훼된 셈. 여기서 오르커스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무언가를 더 해보려고 해도 멱살까지 잡힌 마당에 공격을 준비하기는 커녕 엘레나의 공격이 자신의 몸을 때리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았다. 그러니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려고 손을 들려는 순간...

"내가 졌..."

"「스트렝스(Strength)」, 「엑셀러레이션(acceleration)」"

"어? 아니, 잠깐. 내가 졌다니...악!!!!"

강화 마법이 걸린 엘레나의 주먹이 오르커스를 내려쳤다.

찰진 타격음이 실습대 위를 가득 매운다. 오르커스의 항복선언은 이에 묻혀 들려오지 않았다. 오르커스가 기절을 해 실습대 밖으로 송환이 되서야 엘레나의 주먹질이 멈추었다. 한껏 주먹을 휘두른 그녀는 어딘가 후련해 보였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감탄할 이는 없었다.

레베카는 덤덤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

"엘레나 대단해!! 대체 왜 마법사를 했던거야?!"

"아무리 마법으로 강화를 했다고는 하나 저 몸놀림은...예사롭지 않군. 크라우스에서는 약혼자도 단련시키는 전통이 있는 건가?"

"나도 몰라. 묻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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