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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16화 (116/131)

< 116화 > 악역영애 (2)

데미안이 자신의 눈 앞에서 고백을 받았을 때 엘레나는 순간 머리가 하애지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마음을 고백 받고 난 후 부터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여태껏 마음을 놓고 있던 엘레나에게 있어 눈 앞의 상황은 조금, 아니 많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 평생 많은 이들에게서 주목을 받아왔기에 사람들의 시선에 담긴 감정을 읽는데 있어 도가 튼 엘레나다.

평소 남들이 자신을, 데미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그녀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남들보다 뛰어난 외모는 자신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니, 하물며 성격까지 좋고 능력있는 그라면 이성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때문에 눈 앞의 상황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도 한번 쯤은 상상을 했었지만 설마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한 생각을 한 이유 역시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감정 때문이었다.

특출난 외모로 이성들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데미안만이 아니다.

예전 처럼 자존감이 없을 시절이라면 모를까, 엘레나는 충분히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이것이 자존을 넘어 자만까지 가는 단계는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의 평가를 수긍하는 정도까지는 되었다.

여자에게 있어 외모를 무기라고 한다면 엘레나의 얼굴은 명검 중의 명검이었다.

이는 자아도취가 아닌 전적으로 사람들의 평가가 그러했다.

사람이 호감을 얻는데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그것 역시 외모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모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호감을 얻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때문에 사교계에 참여하는 귀족가의 여식들이 가장 중요히 여기는 것이기도 하였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유행에 맞춰 보석과 어여쁜 드레스로 치장을 하는 것 모두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지만 엘레나, 그녀라면 그저 그런 드레스를 걸치는 것 만으로도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엘레나의 외모는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많은 여학생들의 마음을 베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에게 있어 관심이라는 것은 매우 달달한 열매다. 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다수의 이들은 많은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사교계를 경험했다는 것은 이미 그 열매를 몇번이고 집어 먹었다는 소리다.

아카데미는 연회장과 같이 모두가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작새가 될 필요가 없는 곳이었지만 거기에 중독된 아이들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는 연회에 빠져버린 귀족으로서 본능과 같은 것이었으니.

귀족들의 특례 입학이 가능한 에스텔리아 아카데미이니 당연 여학생들의 비중도 귀족의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아카데미에 입학할 나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사교계를 경험했던 이들이었기에 엘레나를 본 귀족가의 아이들은 선망과 동경을 품은과 동시에 짙은 패배의식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여자로서, 학생으로서 모든 관심은 엘레나에게로 향했으니.

감정을 읽는데 익숙한 엘레나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담긴 이러한 패배의식을 못 잡아냈을리가.

이성에게서 얻는 인기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반면 여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지는 열등감에는 눈길이 갔다. 데미안에게 호감이 있는 여학생이 있다 할지라도 자신이 곁에 있으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될 터이니, 데미안을 지킬 벽으로서의 가능성을 본 것이었다.

물론 데미안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고백을 받는다고 하여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는 그러한 믿음을 떠나서 개인적인 감정의 영역이었다. 자신의 것에 다른 이가 손을 대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하다.

그렇기에 벽을 세우고 원인이 될 만한 것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던대로 이 벽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

눈 앞의 상황을 보면 그것도 이제 끝인 것 같지만.

데미안의 앞에 선 소녀의 눈을 보니 대강 어떠한 생각으로 저런 말을 내뱉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귀족 가문 몇몇은 가주가 후처나 애인을 두기도 했으니 아마 그러한 목적으로 저리 말을 하였겠지. 크게 상식을 벗어난 행동은 아니었다. 아무리 데미안과 자신이 약혼 관계라 하더라도 귀족의 시선으로 보았을때는 약혼이라는 것은 그저 약속에 불과했다.

아무리 약혼을 했다 하더라도 혼인까지 가지 못하고 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도 그럴게 대게 약혼이라는 것은 정략 결혼의 용도로 사용하는게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중간에 가문의 세가 약해졌다던가 득이 되지 않는다 여겨지면 파토가 나는 것이 약혼이다.

엘레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과 데미안의 관계가 그저 그런 약혼 관계로 깎아내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태 어떠한 추억을 가지고 그와 어떤 감정을 나누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부외자가 알량한 마음 가짐으로 그와 자신의 사이에 들어오려 하다니. 역하기 그지 없다.

이리 불편해 하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엘레나가 당장 저 곳으로 달려가지 않는 이유는 소녀의 행동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귀족의 관점에서 보편적이었다는 것과 데미안이 선을 그음으로서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는 것에 있었다.

앞으로 저 소녀와 같은 생각으로 데미안에게 다가가는 이들에게 그녀들의 행동이 소용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엘레나 나름대로 소녀에게 주는 면죄부였다. 굳이 자신까지 손을 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다만.

하지만 데미안이 준 기회를 마다하고 다시금 그에게 손을 뻗으려 하자 엘레나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참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

사건이 마무리 된 이후 데미안이 달래주는 것으로 기분이 조금 풀리기는 했으나 그 날의 사건은 엘레나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있었다.

그 날 있었던 일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꽤 멀리 퍼져나가 데미안을 향한 시선이 조금 줄고, 더불어 그녀를 보는 시선에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상당히 유의미한 변화였음에도 엘레나는 그다지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

"으으으....설마 이런 것 까지 있었을 줄이야."

지금 엘레나의 눈 앞에는 깔끔하게 봉인이 된 편지봉투 몇 통이 놓여 있었다. 엘레나는 이를 보며 눈살을 찌뿌렸는데 당연하게도 여기에 있는 편지 모두 그녀가 직접 쓴 것이 아니었다. 그 사건 이후 저기압이 된 엘레나의 눈치를 본 헤일리가 건내준 것이다.

그녀의 앞에 놓여진 편지들은 모두 받는 사람이 데미안 크라우스로 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정상적인 편지였다면 발신인이 누군지도 적혀 있거나 밀랍의 봉인에 가문의 문양이 찍혀 있어야 했지만 발신인은 공란이었고 밀랍의 봉인 또한 가문의 문양이 아닌 하트 문양이 하나 찍혀 있는 것이 전부였다.

굳이 봉인을 뜯지 않아도 안에 든 내용을 알 것 같은 것이 엘레나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엘레나는 서늘한 눈으로 이를 가져온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진작에 말 안해줬어."

"아, 아니. 몇 통 안되기도 했고 이제와서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좀 된 것들이라...."

"...."

"죄, 죄송합니다앗!! 괜히 걱정하게 만들기 싫어서 그랬어!!!"

눈에 힘을 주자 헤일리가 바로 잘못을 빌며 안겨왔다. 이에 엘레나는 한숨을 쉬며 헤일리를 받아냈다.

"데미안은 이것들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거야?"

"아마도? 나도 전부 우연찮게 발견한 것들이라서. 그, 만약에 그가 안다고 하더라도..."

"알아. 걱정 안해."

그냥 기분이 나쁠 뿐이지.

연서라...엘레나도 이전의 삶에서도 지금도 몇번이고 받아보았던 것들이었다.

이전에는 여기에 담겨진 마음이 부담스러워 거절도 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했다면 지금은 보이는 족족 태워버리고 있다만, 생각해보면 진작에 그의 입에서 이것에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왔어야 했는데 지금 보니 헤일리가 중간에 가로채서 보질 못한 모양이다.

데미안이 기사학부의 중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능력도 다른 누구보다 출중하고 남들을 이끄는 것 또한 잘 하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의 리더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괜히 외신과의 전쟁에서 엘레나가 아닌 그가 구심점이 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번 몰래 수업을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모두가 그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이 어린아이들 사이에 선 어른과 같아 보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닐테다. 그 역시 지금이 두번째 삶을 사는 것이니 어른이라면 어른이었다.

다만 이전의 삶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따스했는데 전이 잔뜩 군기가 잡힌 기사들을 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정말로 친한 친구들을 모아 놓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 달라진 분위기가 싫은 것은 아니다만 어째선지 이 연서의 원인에 그의 달라진 분위기 또한 포함되었을 것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흥."

엘레나는 마력을 일으켜 편지들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재도 날리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편지들을 보고 헤일리는 동정심 비스무리한 감정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불에 타 사라지는 편지들을 보며 엘레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대체 왜....임자가 있는 사람에게 자꾸 이런 것들을 보내는 거야..."

"그, 엘레나도 매번 받잖아."

"그러니까!! 난 데미안 꺼고 데미안은 내 껀데!! 왜 다들 알면서 이런걸 보내는 거냐고!!!"

결국 쌓여있던 것이 터져버린 것일까.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의 입에서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투정 어린 엘레나의 말에 헤일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거세게 방 전체에 퍼져나가는 그녀의 마력은 흉포했지만 벌개진 얼굴로 삐져있는 엘레나를 보니 절로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간 충격이 상당했는지 이전이라면 부끄러워서 제 입으로 담지 못할 낯간지러운 말을 담기 시작했으니. 이걸 후에 알려주면 어떻게 될까. 사과처럼 붉게 변할 엘레나의 얼굴이 상상되는 헤일리였다.

"이대로는 안되겠어. 대책이 필요해."

따스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헤일리를 뒤로 한채 엘레나는 진지한 얼굴로 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 일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어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태까지의 현상을 유지하기만 해도 엘레나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터 였지만 엘레나는 최대한 그 기간을 줄이고 싶었다. 그런 기분 나쁜 경험은 한번이면 충분하니.

사실 그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기에 엘레나는 얼른 이 불안감을 날려보내고 싶었다.

과거의 기억까지 뒤져가며 방법을 찾은 끝에 엘레나는 어느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 기억.

다른 게 아니라 그녀의 지난 인생에서 남들에게 연서를 받지 않고 남들의 끈적한 시선 또한 없었던 시절의 것이었다. 그런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만...존재했다. 그랬던 적이.

"데미안..."

평소와는 다르게 그 이름을 부르는데 무거운 감정이 묻어났다.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그녀가 뱉은 말은 같은 이름이면서도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이었으니.

첫번째.

자신이 회귀를 시작하기 이전의 기억 속에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그가 아닌 데미안 크라우스의 약혼자였던 시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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