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사건은 언제나 동시에 (3)
환생을 함으로서 두번째로 경험하게 되는 학교 생활.
두번째 학교 생활이라고는 해도 살았던 세계가 달랐기에 분위기도 배우는 것도 이전에 겪었던 학창 시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학생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때의 향수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건 변함이 없다. 입학식을 치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달에 가까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친구가 생겨서 그런가. 확실히 가문에서 보내었던 날들과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큰 사건사고 없이 지나간 한달이었지만 그렇다고 평범했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원래 학교에 입학한 첫주는 적응기라고 해서 학생들이 학교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원래 커리큘럼 보다 널널하게 진행을 하는 것으로 학교 생활 중 가장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기였었지만 안타깝게도 기사학부는 다른 과와 다르게 그렇게 부드럽지 못했다.
학부 과목 중 기사론을 제외하면 전부 대련과 실습.
적응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고 싶은 것인지 기사학부 신입생들의 첫째 주 일주일은 느긋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오리엔테이션이 아닌 끝이 나지 않는 무한 대련으로 대체되었다.
나와 노엘, 라인하르트를 비롯하여 첫 수업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이들은 이후의 수업에서는 자율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후 수업에서 교수 주관하에 대련과 단련을 계속해야했다.
앞으로 있을 학교 생활 중 이 일주일이 가장 몸을 많이 구르게 되는 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혹독하게 굴리더라.
멀리 떨어져서 고통에 신음하는 급우들을 보고 있으면 괜시리 등골이 오싹해 진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나는...나는 여기서 고통 받는데 너희들은 왜!!!' 라고 소리 없는 비명이 들리는 듯 했다. 아무래도 기사학부에서 적응이라는건 학교가 아니라 실전을 의미하는게 아니었을까.
자율 훈련이라는 자유를 손에 넣은 우리들은 남들에 비해 비교적 시간이 널널했다.
각자가 정해둔 훈련을 끝내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으니. 확실히 교수님들의 채찍질에 강제로 훈련과 대련을 반복하고 있는 급우들이 보기에는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주일간 진행되었던 무한 대련은 교수진이 학생들을 평가하는 겸 훈련을 병행하는 것이었기에 앞서 훈련에서 열외된 이들, 속칭 자율반의 경우에는 평가가 이미 끝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이상 평가를 할 이유가 없기에 이러한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실력 지상주의.
오로지 실력만으로 우열을 나누었기에 그곳에 신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노엘이나 내가 뒤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교수진들은 가차없이 저 끝날 것 같지 않는 훈련의 수레바퀴에 집어 넣었을 것이다.
때문에 일찍히 훈련을 끝내고 자율반으로 넘어오는 학생들의 비율을 보면 대부분 평민 출신의 학생들이 많았다. 교수들이 신분 때문에 차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물론 평민 학생들이 자율반으로 넘어갈 수록 귀족 출신의 학생들도 이에 영향을 받았지만 말이다.
나는 자율반에 있는 동안 그곳의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대련을 했는데 이 행동에 대해서는 다들 놀라하는 눈치였다. 특히 라인하르트가 가장 크게 반응을 했는데 이 녀석은 내가 자율반에 있는 동안 항상 자신과 대련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라인하르트가 유독 데미안과 대련을 많이 하기는 했죠. 이제는 제 차례!!"
"아니, 노엘 너도."
"에엣!!"
물론 노엘과 라인하르트와 하는 대련은 얻을게 많다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과 하는 대련이 얻을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질과 양의 차이라고 해야하나.
당연한 말이지만 대련을 하게 되면 이기는 쪽은 나다. 오만해보여도 이게 사실이다.
라인하르트와 노엘이 상대여도 마찬가지.
두사람 다 매우 빠르게 쫓아오고 있지만 아직은 내가 더 위다. 천재라 불리우는 두 사람이 그러니 다른 아이들과 나의 격차는 얼마나 벌어져 있을까. 대련을 하지 않아도 내가 이길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승자의 위치에 서 있는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에는 뭐 하지만 대련에서 승리와 패배는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동기부여라면 모를까 대련의 주 목적은 대련을 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에 있는 것이지 승패를 가장 중요시해야 할 때는 목숨이 걸린 생사결을 제외하고는 없다.
더 많은 경험. 더 다양한 상대.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과정이고 경험이었으니까.
두 사람은 천재이기에 대련을 하는 매 순간마다 이전의 자신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직 까지는 내가 상정할 수 이내의 움직임이었다. 데이터가 너무 많이 쌓였다고 해야하나...내게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대가 필요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다 고만고만해 보이다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고만고만해 보이는 것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특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대련을 하려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경험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으니, 두 사람은 당분간 나와 대련을 못하게 된다는 것에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이 또한 내가 둘에게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한 훈련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벽이 있었으니, 이 벽이라는게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나를 자신들과 달리 보는 시선에 만들어진것이라 내가 먼저 다가가야만 했다.
그에 대한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만 그렇다고 다들 내가 신청 하는 대련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앞서 이야기 했듯 대련은 승패 관계없이 양쪽 모두가 가져가는 것이 있었으니 말이다. 실력이 있음을 검증받은 나와의 대련은 다른 아이들과의 대련보다 얻어갈 것이 많을 터이니 자존심이 매우 강한 다른 귀족가의 아이들도 모두 내 대련 요청에 승낙했다.
결과는 내가 원하던 대로였다.
이곳에 모인 수십명의 학생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경험할 수 있었다. 수준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도 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 보인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다 보니 나는 실력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폭도 이전보다 늘어나게 되었다.
노엘과 라인하르트 만큼은 아니어도 이전처럼 나를 어려워 하는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다. 서로 간의 말문이 트이고 조금이지만 대화가 오고가기 시작하니 나, 데미안이라는 인간이 자신들이 만들어 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때 먼저 다가갔기에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내게 먼저 말을 건내는 친구들이 생겼다.
이렇듯 한달간의 학교 생활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학교생활 그 자체였다. 큰 사건사고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지만 매일이 특별한 이 시간.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새로히 맞이하는 학창생활을 이전보다 몇배는 즐겁게 보내었다.
이대로 쭉 1년이, 아니 졸업 때까지 이와 같은 날들이 이어졌으면 좋으려만.
오르커스가 나를 불렀다.
***
오르커스가 나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전에 한번 말을 꺼내려다 말았던걸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한달 동안 여기에 대해서 아무말도 없기에 잊혀진건가 싶기도 했지만 오늘 오르커스가 내게 내민것을 보니 왜 한달 동안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오르커스가 내게 보여준 것은 어떠한 문서였다.
무언가에 얇게 코팅된 종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가까이서 살펴보면 사특한 기운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담겨 있는 신성은 달라도 오르커스가 보낸 편지와 비슷한 느낌이 났는데 원래 성법이 걸려 있는 것을 이 녀석이 풀어낸듯 하다.
아마 외부인이 보게 되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던가와 같은 술법이 걸려있던게 아닐까 싶다.
거기에 적힌 글들은 대게 생체 실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키메라가 실존하는 이 세상에서도 건들이지 말아야할 인간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단순 가설이 아니라 실험 후 경과를 적어둔 일지였기에 실수로라도 이런 걸 남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녀석은 내게 이걸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부터 이 문서의 원래 주인이 지금 어찌 되었는지 까지 전부 말해주었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이거...함정일까?"
오르커스의 질문에 나는 섣불리 답할 수가 없었다.
문서를 얻는 과정이 너무 쉬웠기에 그런걸까.
오르커스는 이 문서가 헤니웨이 교수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물건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얻는 과정이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결계를 뚫고 연구실로 들어갔다고 해도 문서가 담긴 서랍함의 열쇠가 가져가기 좋게 책상 위에 떡하니 놓여져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본인이 가지고 있던가 아니면 어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었더라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대놓고 놓여 있으니 이런 의심이 안들레야 안 들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라도 그 때 오르커스의 입장이었다면 이게 함정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내가 그 조지 헤니웨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허술하다고?'
마법학부도 아닌 내가 마법학부 교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딱 두가지 경우 밖에 없다. 아군이거나 아니면 적이거나. 그 중 조지 헤니웨이는 후자에 속했다. 엘레나가 2학년이 되어 데미안에게서 벗어나고 학창시절을 즐기려고 할 때 딱 타이밍 좋게 등장하는 악역이 바로 헤니웨이 교수였다.
갑자기 2학년 되서 타락한것도 아니고 이교도에서 꽤 오랫동안 심어놓은 프락치라 지금 시점에서 이 사람이 사실 선량한 사람이었다와 같은 전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원작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순서는 딱히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이미 남부에서의 전례가 있었으니 말이다.
조지 헤니웨이는 지금 현재 휴직계를 쓰고 잠적한 상태이다.
입학식이 있던 날 바로 낸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신원확인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건 또 이것대로 수상하게 느껴진다. 오르커스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데 한달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도 이 수상한 헤니웨이의 행적을 특정하고 상황을 확인하는데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결과 오르커스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시나리오는 이 헤니웨이 교수가 억울하게 누명을 받고 잡히지 않기 위해 잠적. 현재는 누군가에 쫒기고 있는 상황이고 범인은 이 아카데미 안에 있다... 정도 인것 같은데. 정황이 딱 그 짝이라 여기에 대해서 딱히 뭐라 반박을 못하겠다.
그렇다고 내가 사실 그런거 다 필요없고 이 녀석이 범인임. 이라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오르커스에게 말했다.
"그냥 수배 때리고 잡자."
"어?"
"억울해 하면 잡고 나서 풀어주면 되는 거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수상하기는 한데 이럴 때는 그냥 정석대로 하는게 편할 것 같다. 우리가 잡는다고 바로 처형할 것도 아니잖아?"
"수배령이 내려지면 오히려 헤니웨이 교수 쪽이 더 숨으려고 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기는 뭐하잖아. 니 추측대로라면 수배령이 내려지든 말든 헤니웨이 교수는 현재 도망자 신세라고. 그렇다면 차라리 수배령 때리고 우리가 먼저 잡는게 편해."
내 말에 오르커스는 어느정도 납득하는 눈치였다. 뭐, 수배령을 내린다고 순순히 잡힐 것 같지는 않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보여주기 식의 대처 정도는 필요했다.
'죽었나?'
오르커스에게 말은 안했지만 나는 솔직히 조지 헤니웨이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꼬리 자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티가 많이 나고, 그의 비밀을 아는 누군가가 일을 벌인 것이라 생각이 되는데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야 내가 알고 있는 것도 원작을 보고 왔기에 그런것이지 원래는 일이 터질 때까지 아무도 몰랐어야 정상이다.
물론 내가 읽은 것은 소설이었기에 독자인 내게 주어지는 정보는 매우 한정적인 것이었으니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조지 헤니웨이의 비밀을 알고 있던 인물이 있었을지. 아니면 나 처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던가.
그렇다고 해서 원작에서도 움직이지 않았던 인물이 딱 지금 시점에서 움직인 것은 이해가 되지 않다만.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어쨌건 원작의 악역이 한 명 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해야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니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분이 좋은 건 또 아니었는데 뭔가 이 사건이 앞으로 있을 내 학창 생활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걸 알려주는 신호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드는 오한과 함께 근시일 내에 무슨 일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에이, 설마..."
나는 애써 고개를 흔들어 보았지만 그런 불길한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