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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07화 (107/131)

< 107화 > 수준 차이 (2)

"이걸 어찌해야 하나..."

검술학과 담당교수 렉스 모피어는 난감하다는 얼굴로 학과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끝에는 현 아카데미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인물들이 서로 검을 든 채 서있었다.

그들의 부모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인지 저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어딘가 익숙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이 지금의 그를 긴장케 하는 것이었기에 이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따위는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느낌을 잘 알고 있기에 원래의 목적보다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서 드는 걸 것이다.

대대로 에스텔리아 아카데미에 내려져 오는 전통대로 기사론과를 제외한 기사 학부의 학과들은 첫째날에 연무장에서 대련을 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인데, 담당 교수는 이 날 학생들의 대련을 보고 앞으로의 수업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입학하기 전 학생들에 대한 자료는 사전에 전부 받게 되지만 그것만 가지고 수업 과정을 결정하기에는 데이터가 너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교육자의 눈으로 직접 학생들의 실력을 보는 것 만큼 확실한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학부 공통의 교육과정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학생에 맞춰 그에 대한 올바른 지도를 하는 것도 명문이라 불리우는 아카데미에 몸을 담은 교육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사 학부의 전통은 딱히 흠 잡을 만한 구석이 없는 전통이었다.

학생들의 대련을 직접 눈에 담고도 이들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 할 만큼의 인물은 이 아카데미에 있지 않았으니. 첫날 부터 갑자기 칼을 섞으라는게 학생들에게 있어 갑작스러울 수 는 있어도 이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전 에스텔리아 아카데미의 졸업생이자 이제는 교수가 된 렉스 모피어도 이전의 교수들과 같이 이와 같은 생각으로 학생들을 교실이 아닌 연무장으로 불러 모았다.

은사의 손자, 전우의 아들. 마지막으로 주군의 자녀까지.

올해는 특이하게도 이런 요주의 인물들이 한꺼번에 대거 입학하게 되었지만 이에 대해서 렉스는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이걸 안일했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렉스 모피어가 상식적인 인간이었다고 해야하나. 그는 아직 자신이 눈으로 보지 못한 학생들을 이야기로만 전해 듣고 따로 특별한 취급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소문이야 듣기는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로 전해들었을 뿐이었으니.

물론 렉스도 아서를 비롯하여 천재라는 족속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기에 이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뿐. 그 이상의 것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당대의 소드 마스터를 두명이나 보아온 렉스였기에 그는 스스로가 일반적인 이들보다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어지간한 재능이 아니면 자신의 눈에 차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리 쉽게 넘겼던 것일 수 도 있다.

그리고 검술학과의 첫 수업이 열린 그날.

렉스는 이 셋을 눈에 담고 곧바로 이런 말을 속으로 내뱉었다.

'이건 좀 심한데...'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자라면 상대를 보는 것 만으로도 그가 하수인지 고수인지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은 괜한 헛말이 아니다.

이는 높은 탑과 같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과 같은 이치였기에 본인이 도달한 곳이 높으면 높을 수록 이러한 측정의 정밀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그리고 렉스 모피어는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격은 절대 낮은 편이 아니었는데, 제국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사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스무명 안에는 들지 않을까.라고 렉스는 자신을 평가했다.

이는 절대 과신이 아니었다.

지난 성전(聖戰)의 전쟁 영웅 출신으로서 지금 이 에스텔리아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렉스가 스스로에게 내린 이러한 평가에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저 셋을 보자마자 처음으로 입에 담은 말은 '이 녀석들은 왜 학교에 나오는 것이지?'였다.

아무리 천재라는 족속들이 불합리의 집합체라고는 하지만 렉스 역시 학창 시절에는 수재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의 출신이 평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정말 대단한 재능이었다. 여러 기반이 있는 귀족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없이 그들의 위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남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재능이 있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물론 아서 크라우스와 같은 '진짜' 한테는 못 미친다만 렉스가 본 이 셋은 그 당시의 아서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그 밑은 아니었다.

우선 라인하르트 크로멜.

연무장에 들어오는 순간 피부가 찌릿한 것이 렉스는 순간 검성이 이곳에 방문한 줄 알았다. 뒤늦게 그 기운의 진원지를 바라보고 서야 알아차렸을 정도로 약간의 격의 차이는 있어도 크로멜 특유의 뇌기가 검성과 같이 극성에 달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강자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갖추어 진 것인데 렉스의 눈에 그 경지마저 흐릿하게 보이니 그는 여기서 한 번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면서 강단을 보고 있는 어린 황녀 또한 속에 품고 있는 검기 만큼은 완성에 가깝도록 단련되어 있었다.

평생을 황성 안에서만 지냈던 그녀가 대체 어떻게 저런 걸 완성할 수 있었는지가 의문이다만 이것이 재능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렉스는 이미 알고 있다. 당대에 다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서를 뛰어넘는 재능이 벌써 두명이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진짜 저건 무슨 괴물이더냐.'

앞의 그 둘도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이다만 아직 한명이 더 남아있었다.

속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렉스는 무심코 학생을 향해 감히 괴물이라는 언사를 내뱉고 말았다. 물론 뜻은 칭찬에 가까웠지만 그의 성격상 보통은 학생에게 절대 쓸 일이 없는 단어 중 하나였다. 렉스는 애써 마음의 동요를 억누르며 찬찬히 데미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피는 못 속이는지 렉스의 기억 속의 아서와 데미안의 모습은 아주 똑같았다.

무심코 그가 지금의 자신을 교수가 아닌 학생이라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이는 겉모습의 영향도 있었지만 데미안이 풍기는 기운이 그 때의 아서를 보고 느끼었던 느낌과 아주 똑같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날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서 본인도 아니고 그 아들을 보고 이러한 느낌을 받다니. 신이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크라우스는 괴물들 뿐이군.'

렉스는 데미안을 그리 평하고는 다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었다.

여기서 딱히 그 이상의 평가가 필요할까. 어찌되었든 간에 저들은 지금 자신의 학생이었고 그는 저들의 지도자였다. 속으로 이 행동이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더라도 학생은 저 셋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수업은 진행되어야만 했다.

"그럼 다들 검을 들어라."

그리 말하는 렉스의 얼굴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

"어디 아프신가?"

나는 어딘가 불편해 보이시는 교수님의 얼굴에 그리 중얼거렸다. 처음 연무장에 들어올 때 뭐라 중얼거리시더니 그 이후로 표정이 바뀌지를 않고 있다. 원래 인상이 저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시선이 자꾸 내 쪽을 향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설마 또 아버지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지난번에 아델리아와 나누었던 대화 때문인지 렉스 모피어가 나를 보는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야기 속 창피를 당했다는 교수와는 다르게 아버지와 동년배로 보였기에 그럴리는 없을 테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강단에 눈을 향하고 있자, 그 순간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기이한 감각이 나를 스쳐지나간다.

"하긴, 지금 내가 이런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살기가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래도 이 둘은 지금 내가 다른 곳에 한눈을 파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렉스 모피어가 지도하는 검술 학과의 대련은 일반적으로 하는 일대일 대련이 아닌 학생들을 크게 네 방향으로 찢은 다음 서로 팀을 이루어 붙게 하는 팀전 형식의 대련이었다.

금방 급조된 팀에 조직력이 있을 리가 없지만 아마 그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팀원들 간의 조직력이 아닌 난전 속에서 벌어지는 결투로 학생들의 실력을 최대한 넓고 빠르게 보기 위함일 가능성이 컸다. 하기야 일대일 대련으로 한명 한명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 시야에 자신이 있다면야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내게 살기를 보내는 두 사람은 전부 다른 팀으로 찢어졌다.

그나마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헤일리가 내가 있는 팀에 속해 있다는 정도?

"다들 분위기 진짜 살벌하네. 노엘 전하도 지난번에 뵈었을 때만 해도 저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건 틀린 말이다. 노엘은 언제나 저랬어."

지금은 전과 다르게 칼에 날이 들었을 뿐이지.

"그럼 다들 시작해라."

렉스의 시작 선언이 떨어지자 헤일리는 곧바로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자리를 뜬 것이었다. 그래도 옆에 있었다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무 말 없이 바로 몸을 빼는 헤일리의 모습에 약간 서운함 감정이 들었다.

캉-!

아직 주변에 있던 학생들과의 거리가 벌어지기도 전에 내 손에 든 검에 불꽃이 튀었다.

나는 처음 시작 선언을 했던 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두 사람이 선언과 동시에 내게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가히 초인이라 불리는 이들 답게 백여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거리 쯤이야 이 둘에게 있어 한 호흡이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2 대 1은 치사한거 아닌가?"

"....?"

"앗!!"

내 검에 가로 막힌 검들의 주인이 이 말에 서로 옆을 바라 보았다.

온 신경을 전부 내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런지 서로 합공이 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눈치다. 약간 당황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검에 힘을 주어 둘을 멀리 날려 보냈다.

서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떨어졌기에 나는 먼저 라인하르트를 향해 발을 놀렸다. 일단 선약은 선약이었으니 이 순서가 맞으리랴.

라인하르트는 땅에 발이 닿기도 전에 내 공격에 대한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기습을 막아내었다. 아주 잠깐 검을 맞댄 것이었지만 녀석이 얼마나 검이라는 무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연 미래의 검성이랄까.

나와 라인하르트는 한번 검이 부딪친 이후로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계속해서 검을 맞대었다.

이전의 삶을 더했을 때 분명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의 양이 더 클 터인데 라인하르트가 가지고 있는 재능 때문인지 유효타를 넣기가 상당히 쉽지가 않았다.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만 이는 기본적으로 깔린 신체 능력에서 오는 것이었기에 라인하르트 본인이 지닌 기술에 있어서는 흠잡을 곳이 없다.

"흡!"

라인하르트가 한번 깊게 숨을 들이 쉬고 검을 휘두르자 그가 휘두른 검로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인다.

찰나의 시간 동안 잠깐 반짝이는 뇌광과 같은 속도의 검격이 한순간에 몸으로 파고들어 온다. 다만 그 이전에 반응한 것은 내 예민한 감각이었기에 나는 몸이 검로에 닿기 전에 서둘러 몸을 돌려 이를 피해냈다. 이때 몇합은 감에 따라 검으로 막아냈는데 검을 타고 들어오는 뇌기가 아주 짜릿하다.

내가 몸을 돌려 피해내자 그와 동시에 라인하르트도 몸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나는 중간에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수그렸다.

이대로 검을 휘두르면 그대로 라인하르트의 검로에 따라 유효타를 허용하게 될 터였지만 라인하르트의 검이 내 몸에 닿기 전 그 앞에 놓인 노엘의 검에 가로막히게 되었다.

"왜 치사하게 둘만 노는 거에요!!"

한번 떨어져 나갔다고 바로 다른 상대를 찾을 노엘이 아니다. 나는 노엘의 방어로 비어버린 라인하르트의 복부를 그대로 장력을 가득 담은 장법으로 가격해 저 멀리 날려보내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적당한 틈이 보이니 바로 치고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얼떨결에 이번에는 나와 노엘의 합공이 된 셈이다.

"나이스 어시스..."

"치사해!!"

"트!"

공격의 성공으로 노엘에게 말을 건내려고 하자 노엘은 곧바로 신성력을 뿜어내며 내게 검을 휘둘렀다. 방금 이것으로 잠시 라인하르트로 표적이 바뀌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까전 내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그녀의 검에 맞는 것은 나였던걸 생각해 보면 여전히 노엘의 표적은 나 였던 모양이다.

내가 노엘보다 아래에 있었기에 나는 장법을 내질렀던 팔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노엘의 팔을 올려쳐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검로에서 내 머리를 빗겨나가게 만들 수 있었다.

라인하르트를 떨어뜨리니 이번에는 노엘이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는다.

어지럽네 어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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