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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04화 (104/131)

< 104화 > 입학 (3)

막시밀리안은 짧게 인사를 하고 단상을 내려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니 그제야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가 녹는 것 같다. 그야말로 폭풍같은 노인이었다. 잠깐 등장한 것 정도로 대강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차라리 황제가 이리 등장했어도 방금전 보다는 덜 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누가 검성이 학부장으로 취임 할거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는 나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력이 뛰어난 인물을 교수로 채용하는 경우는 흔히들 있는 일이지만 그가 누구인가. 그는 검성(劍聖)이다.

대륙 전체에 단 다섯명 밖에 없는 소드 마스터이자 그 중 정점을 차지하는 제국제일검.

국가 비대칭 전력이, 동시에 전 크로멜 공작으로 권력의 정점에 섰었던 사내가 이제와서 교단에 오를 것이라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겠냔 말이다. 말년에 갑자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이건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라인하르트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냐?"

"잠시 놀란 것 뿐이다. 분명 며칠전 부터 루덴으로 가신다는 말은 하셨지만 폐하를 알현하러 가신다는 줄 알았지 설마 아카데미에 오실 줄은....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듣자하니 가족들에게도 별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생각 없이 납득이 되었는데, 막시밀리안도 라인하르트와 같은 과라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건 또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강당은 검성이 남긴 여파로 조용했지만 기사학부의 학생들은 그 정적 속에서 조심스레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저...정말 검성께서 우리 학부장이 되어 주시는 건가?"

"잘만하면 검성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지도 몰라..!!"

"오..오오오오오!!"

처음에는 막시밀리안이 내뿜는 위압에 압도되었을 뿐이지 대체적으로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기사 학부에 입학했다는 것은 이들 또한 무(武)를 숭상하는 무인이라는 소리. 그 말인 즉슨 이들에게 있어 제국 최고의 검사에게서 지도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게 된 현상황은 그야말로 기연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그러니 다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수 밖에.

가르침을 받기만 한다면 작지만 그 검성과의 연이 생긴다는 소리다. 이를 싫어하는 이가 과연 세상에서 몇이나 될까. 매일 같이 아버지에게 지도를 받던 나도 흥미가 생기는데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그 마음이 클까.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막시밀리안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입학식은 폐식을 앞두고 있었기에 분위기가 어느정도 진정된것 같자 진행자의 마지막 말과 함께 식은 막을 내렸다. 강당을 나가면서 한번 막시밀리안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그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상황이였다.

역시 마스터는 마스터인가.

기감에는 상당히 자신이 있는 편이었는데 아무런 흔적도 잡지 못하고 정말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하기야 애초에 감지할 수 있었다면 그가 단상에 올라설 때 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즉흥적인 행동이었기에 여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식이 끝났으니 나는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건물 밖으로 나와 중앙 분수대로 향했다.

아카데미 측에서 식이 끝나고 나서의 행동 사항은 딱히 고지된 것이 없었고, 기숙사와 입학 전 준비가 필수 되는 것 또한 이미 식이 시작되기 전에 처리를 해둔 상황이었기에 이제와서 내가 따로 건들여야 할 건 없다.

이는 헤일리와 엘레나도 마찬가지. 남은 시간은 그야말로 자유시간인 셈이다.

신기하게도 이 에스텔리아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학생들의 자유를 위해 통금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시간 또한 널널하다. 아무래도 이는 주인공의 행동에 제한을 두지 않기 위한 설정이겠다만 덕분에 엘레나와의 시간에 많은 제약이 사라졌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애초에 학생의 거주지 자체가 꼭 기숙사가 아닌 학구 내에만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지 상관 없었으니. 나중에 학구 내에서 건물을 하나 따로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는 라인하르트 또한 동행하고 있다.

내가 대강당을 나오고 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내 뒤를 따라오고 있던데...처음에는 대강당 밖으로 나가는 길의 방향이 같은 줄 만 알았다만. 건물을 나오고 나서도 내 뒤에 서 있는게, 이 녀석은 그냥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었음을 알았다.

말 할 타이밍을 놓쳤을 뿐더러 이제와서 왜 따라오는 거냐고 묻기에는 서로가 무안해질 것 같아 그냥 같이 동행하는 걸로 하였다. 어차피 이후에는 다같이 학구를 둘러볼 생각이었던지라 한 명 정도는 추가 되어도 상관 없을 테다.

이 참에 다들 친구 한 명 사귀는 셈 치지 뭐.

아카데미를 다니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 이렇게 미리 친분을 쌓아두어서 나쁠 건 없다. 소통에 약간의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라인하르트라는 인물 자체는 괜찮은 편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이 녀석. 같이 어울릴 친구가 없어서 날 따라오는 것 같아 내버려둘 수 가 없다.

여기서 매정하게 '앞으로 나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하하.' 이러고 가버리면 뭔가 불쌍하잖아. 원작에서도 항상 혼자 다니던 녀석이라, 이번 동행은 라인하르트에게 있어서도 좋은 만남이 될 것 같기에 그러는 것도 있었다.

약속장소로 잡았던 분수대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인구밀도가 늘어난 느낌이다. 처음에는 아카데미 본관 건물로 향하는 대로 중앙에 위치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게 이유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와! 데미안!!"

분수대 앞에 서 있던 노엘이 나를 발견하더니 번쩍 손을 들어 내 이름을 불렀다.

분수대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닌 엘레나와 헤일리, 오르커스도 함께 있었기에 누가봐도 눈에 띄는 조합이었다. 이러니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리지. 아까 단상 위에 섰을 때 나와 엘레나의 위치를 확인했던 그녀였기에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노엘의 인사에 대답하기 앞서 뭐라 답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 어려운 고민은 아니었다. 그냥 경어로 답할지 아니면 평어로 답할지의 문제였다.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당연히 경어를 사용해야하는게 맞다만, 뭔가 노엘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또 그렇게 답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안녕. 노엘. 오늘도 해맑구나."

내가 사석에서 처럼 평어를 사용하자 노엘을 비롯하여 주변에 있던 이들의 몸이 일순간 멈추었다.

아무리 내가 권세 있는 가문의 후계자라 해도 노엘은 황족이었으니 예의를 지키는게 맞았으니. 내 뒤에 서 있던 라인하르트도 방금 전 내가 한 말을 듣고는 눈에 띄게 몸이 굳어 버렸다.

뭐, 이런 주변의 반응과는 다르게 당사자는 마음에 든 것 같다만. 내가 허물없이 대하자 노엘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눈을 반짝이며 내게 답했다.

"!!!..응! 데미안은 오늘도 몸에서 커피 냄새가 나네!"

"그건 뭔가 별로 듣기 좋지 않은데..."

"하지만 사실인걸."

내가 고개를 돌려 라인하르트에게 물으니 녀석은 '조금...'이라고 아주 작게 답했다. 진짜인가 보네.

"크로멜 공자도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전하께서도 잘 지내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라인하르트는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노엘이 기뻐하는 걸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무얼 말하고 싶은지 짐작이 간다.

당장 숨기는 방법도 있었다만 앞으로 아카데미에서 이렇게 다 같이 다닐 걸 생각해보면 미리 알려두는 편이 더 좋지 않은가 싶었다. 어차피 상황가려 경어와 평어를 나눈다 한들 노엘이나 오르커스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남들에게 다 까발릴 위인들이고 말이다.

노엘과 같이 서 있던 오르커스도 지금의 상황을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오르커스는 라인하르트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얼굴 굳히기 말게. 라인하르트. 우리는 원래 이러니까. 그러고 보니 아까 입학식에서 둘이 같이 앉아있더군. 원래 안면식이 있던 사이였는가? 이런건 미리 말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섭섭한걸."

"맞아요! 섭섭해요!!"

"아니, 저는..."

노엘과 오르커스의 동시 공격에 정신을 못차리는 라인하르트.

뼛속까지 기사인 이 녀석은 충성의 대상인 황족에게는 한 없이 약해지는 터라 뭐라 반박도 제대로 못하고 털리기 시작했다. 오르커스와 노엘의 얼굴을 보니 사정이 어찌된 건지 다 알고 있는 눈치이다. 그냥 재미로 놀리고 있는 거구만.

두 사람의 장난을 끝낸건 다름 아닌 엘레나의 등장이었다.

빤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엘레나가 갑자기 나와 라인하르트 사이로 오더니 내게 붙었다. 엘레나가 무어라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이리로 온 것 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엘레나는 라인하르트를 한번 흘겨 보더니 그에게 짧은 인사를 건냈다.

"엘레나 에델바이스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아, 네. 라인하르트 크로멜 입니다."

라인하르트는 나와 엘레나를 번갈아 보더니 내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조금 옆으로 거리를 벌리었다. 이는 일종의 배려였다. 나와 그녀가 무슨 관계인지 알아차린 것 같았으니까. 다만 나는 평소와는 조금 달라보이는 엘레나의 행동에 그녀에게 작게 속삭였다.

"엘레나. 혹시 어디 불편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전혀요. 아, 말 없이 갑자기 붙은 거 때문에 그런가요?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다 보니까 조금 피곤해졌나 봐요. 보급하는 거에요. 보급."

그러면서 엘레나는 내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더 쥐었다.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힘을 준다고 해봤자 얼마나 된다고. 다만 엘레나가 이상하게 라인하르트를 경계하는 것 같아 그게 조금 의문이었을 뿐이다.

본인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럼 아닌 거겠지. 아마 단순한 착각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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