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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93화 (93/131)

< 93화 > 시녀와 도련님 (7)

"생크림 위에 딸기가 너무 적은 것 같은데....더 주세요!'

"그럴거면 그냥 딸기를 가져가서 먹는게 어떠냐?"

계속해서 딸기 토핑의 추가를 요구하는 헤일리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따로 그릇에 딸기를 담아주는 한스였지만 그럼에도 헤일리의 토핑 올리기는 끝이나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도 온갖 오두방정을 떠는 헤일리였지만 오늘따라 그 빈도가 더욱 심했다.

주방에서 계속 정신 없이 움직이는 헤일리의 모습에 한스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지만 그런 헤일리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지금 현재 헤일리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결국 마음씨 좋은 한스라고 해도 인내심의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계속되는 헤일리의 소음공해에 결국 참지 못한 한스는 헤일리를 멈춰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이 딸기는 모양이 별로 예쁘지 않네요! 탈락! 너도 탈락! 어쩔 수 없군요! 제가 새로 딸기들을 골라 씻어 가는 수 밖에..."

"지금 내 심미안을 의심하는 거냐? 다 똑같이 예쁜 모양이구만 무얼 못 생겨! 뻘짓 그만하고 이거나 가지고 방으로 돌아가!"

"그렇지만 아직 딸기가...."

"무슨 놈의 딸기! 아니 왜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는 걸 싫어하는게야?! 아가씨께 무슨 죄라도 진거냐?!!"

한스의 말에 입을 꾹 다무는 헤일리.

한스의 말대로 헤일리가 딱히 잘못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그녀가 방으로 돌아가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엘레나 때문은 맞았다. 아침에 엘레나와 나누었던 대화가 신경쓰여 그때 방에서 나온 이후로 엘레나에게 간 적이 없는 헤일리였다.

곧 다가올 디저트 시간에는 방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지금처럼 한스의 앞에서 온갖 생트집을 잡으며 시간을 늘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째깍- 째깍-

주방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귀에 거슬린다.

딸기를 아무리 부여잡고 있어봤자 딸기가 시간을 멈춰줄 수 는 없는 법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고 이를 피하는 방법 따위는 없다.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디저트 시간에 시계로부터 눈을 돌려보지만 귀에 들려오는 소리로부터 자유로울수는 없었다.

입을 다문 헤일리의 모습에 한스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방금 만든 딸기 쉐이크를 건내며 입을 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가 봐라. 이런건 원래 빠르게 해결해야지 뒤탈이 안 남아."

"뭔지 모르신다면서요..."

"원래 너희 나이때 어떤 고민이든 오래 질질 끌면 그게 더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러니 그만 주방에서 나가라."

아직 시간은 남아있었지만 계속되는 한스의 축객령에 결국 헤일리는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트레이에 한스가 건네준 디저트들을 싣고 이실리아 관으로 향한다. 평소에는 다리를 아프게 하는 이 긴 거리가 싫었지만 지금만은 저 멀리까지 뻗어있는 복도가 반가웠다.

"왜 하필 쉐이크로 주셔가지고..."

일부러 느리게 걷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트레이 위에 올려진 딸기 쉐이크에 올라간 얼음을 생각하면 발걸음을 늦추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노리고 건네준 의도가 다분하다만 그렇다고 한스의 선의를 생각하면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헤일리는 아침의 일을 떠올리며 트레이를 굴렸다.

오늘따라 마음이 더 싱숭생숭하기는 했으나 표정관리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거울을 보며 몇번이고 확인까지 마치고 나왔으니까. 거울에 비친 헤일리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 없는 활기찬 미소를 띄고 있었고 누가 보기에도 근심거리 하나 없는 철 없는 소녀의 얼굴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까지 꼼꼼히 확인을 하고 나왔는데도 엘레나에게 들켰다는 사실은 솔직히 헤일리로서도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엘레나의 성격 상 헤일리에게 고민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첫날 부터 그것을 해결하려 오늘과 같이 물어보았을 것이 뻔하니. 분명 첫날 속여 넘겼을 때와 지금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음에도 심란함이 극에 달했으 때 딱하고 알아차려주니 기쁘면서도 신기한 오묘한 감정이 든다.

물론 지금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엘레나의 말에 냉담하게 반응해버린 과거의 자신을 탓하고 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까지 반응할 일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엘레나가 얼마나 여린 성격인지 잘 알고 있는 헤일리였기에 더더욱 자신이 했던 행동에 신경이 쓰였다. 영주성에 온 이후로 많이 바뀐것을 체감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사람이 그 짧은 시간에 본바탕까지 바뀌지는 않았을 테니.

시간이 흐르다 보니 딸기 쉐이크를 담은 컵에 맺힌 물방울이 트레이 위를 적시기 시작했다.

쉐이크에 올라간 얼음이 녹는 것이 눈에 들어오니 헤일리는 밍기적 거리는 것을 포기하고 평소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달렸다.

한스의 말대로 너무 시간을 두었다가는 자신과 엘레나의 관계가 다 녹아버린 딸기 쉐이크와 같이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참에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고민을 전부 말해주는 것도 나름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결심을 하자 헤일리는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엘레나의 방 문 앞에 섰다.

한 번도 거리를 둔 적이 없었던 헤일리와 엘레나의 사이였기에 헤일리는 문 뒤의 그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미 결단을 내렸으니 이제는 정말 직진 뿐이다.

헤일리는 문을 열고 엘레나를 불렀다.

"아가씨! 디저트 시간이에요!!"

목소리는 일부러 크게, 얼굴의 표정 관리도 완벽하다.

우선은 디저트로 시작해서 천천히 자신의 고민을 말하는 것이 헤일리의 계획이었다. 말을 이끌어 가는데에는 자신이 있었고 만약 분위기가 어색하다면 이를 풀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헤일리의 생각은 엘레나의 방에 발을 들인 순간 부터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헤일리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엘레나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기도 했으나 이를 먼저 알아야 어떻게 말을 이어나갈지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 안에 들어온 헤일리를 반겨주는 것은 암막으로 빛을 가려 어두워진 엘레나의 방이었다. 이 방에 유일하다 싶이한 빛은 의자에 앉은 채 헤일리를 바라보고 있는 엘레나의 자색 안광이 전부였다.

확인하고자 하는 엘레나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고 그저 자줏빛 안광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제아무리 헤일리라고 몸이 절로 굳을 수 밖에 없다.

"어서와 헤일리."

방의 분위기 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성이 들려왔지만 그럼에도 안심은 되지 않는다. 엘레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 소리가 공포심을 자극한다.

"저...아가씨? 혹시 지금 화나셨어요?"

"화? 아니 그럴리가. 내가 헤일리에게 화를 왜 내겠어."

"그렇다면 지금 이건 뭔데?! 나...나, 갑자기 몸이 안 움직여! 엘레나 솔직히 말해! 아침에 고민 안 말해줬다고 지금 삐진거지? 그런거지?"

"아니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좀 지나자 어둠에 적응한 눈이 엘레나의 얼굴을 담아내었다.

누가 보아도 삐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뾰로퉁한 표정의 엘레나가 헤일리와 마주 서 있다. 같은 여자가 보아도 순간 귀엽다고 생각할만한 그 모습 덕분에 방금전까지 전신에 감돌던 긴장감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여전히 당황스러운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 였다.

아침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갑자기 이렇게 삐치게 된걸까?

어찌되었든 지금 상황이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기에 곧바로 입을 열려던 헤일리였지만 그마저도 엘레나에게 순서를 빼았기고 말았다.

"내가 바보였어. 조금만 생각을 더 했더라면 충분히 눈치 챌 수 있는 거 였는데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그거 하나 눈치를 못 챘었을 수 가 있지?"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읍?!"

난데없이 자책을 하는 엘레나의 말에 뭐라 말을 하였지만 지금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인지 엘레나가 슬쩍 눈길을 주더니 소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미안 헤일리. 지금 부터 상당히 중요한 작업을 진행할거라 소리는 최대한 적은게 좋거든. 데미안 말씀드린 약들을 가져와 주시겠어요?"

"아, 네."

언제 부터 지켜보고 있었는지 방 한 쪽에서 데미안이 앨레나의 말에 이쪽으로 걸어나왔다.

같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무심코 도움의 눈빛을 보내보았지만 아니나다를까 데미안은 측은한 얼굴로 헤일리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데미안의 손에는 한 눈에 보아도 귀해 보이는 약병이 두개 들려 있었다. 각각 붉은 빛과 푸른 빛을 내는 것이 처음에는 약을 담은 병의 색이 그런 줄 알았지만 속에서 찰랑거리는 모습을 보자 그것이 약 자체가 가진 고유의 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레나가 손 짓을 하자 약병이 열리며 상반된 색의 두 영약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가느다란 선으로 변한 두 약은 마치 실을 엮어 내는 것 처럼 하나의 선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뭐라 말 할 수 없는 기이한 문양을 그려내는 것이 상당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마법을 시전하려는 것 까지는 알겠는데 마법에 대해 겉핡기 정도의 지식 밖에 없는 헤일리 로서는 지금 엘레나가 어떠한 술식을 전개하는지 까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허공을 수 놓은 기이한 문양의 집합체가 저 술식이 얼마나 난도 있는 술식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어느세 액체 상태였던 두 약은 하나의 단환과 같이 변했다. 엘레나는 이것을 헤일리에게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걸 먹으면 조금 졸릴거야. 미안 헤일리. 진작에 알아 주지 못해서."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당장이라도 엘레나에게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가득인 헤일리였지만 계속 입을 움직여 보아도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약이 입에 들어감과 동시에 엘레나의 말대로 몸을 풀어주는 나른함이 전신을 덮쳤다. 잠이 온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몸 내부에서 부터 천천히 퍼져나가는 산뜻한 기운이 계속해서 의식의 스위치를 건드렸다.

눈꺼풀은 이미 완전히 닫히 상태. 때문에 앞을 볼 수 는 없었지만 몸을 구속하고 있던 힘이 풀려지는 것과 동시에 가까이서 맡아지는 라벤더 향기에 엘레나가 자신을 받았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미안...정말 미안해. 헤일리..."

가까이에 있는 헤일리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매우 작은 목소리의 엘레나의 사과가 들려온다.

그 모습에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몸은 기분 좋은 나른함에 지배 당해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목 정도. 간신히 고개를 돌려 엘레나에게 가까이 붙이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그래서 대체 뭔데?!

정신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했다.

***

"해결은 잘 되었을까?"

해가 떨어진 새벽.

알폰스는 여태까지와 다름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였다. 데미안에게 새벽에 몰래 단련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말해버렸지만 그렇다고 새벽 훈련을 빼 먹을 생각은 없었다.

이미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가 되어버린지 오래였기에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잠들어 있던 몸을 조금씩 깨워나갔다.

데미안에게 헤일리에 대해 말을 한 이후 알폰스는 그날 헤일리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언제나 엘레나의 곁에 있기에 찾으려 한다면야 쉽게 위치를 알 수 있는 그녀였지만 그날 만큼은 영주성 어디에서도 헤일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용인들이 말하길 숙소에 있다는 말에 금세 불안을 꺼뜨릴 수 있었지만 지금 알폰스의 고민은 그것이 아니었다.

"너무 내 멋대로 행동한건가..."

헤일리가 알폰스에게 자신의 체질에 대해 설명할때 아무렇지도 않게 말 해 주었지만 그것은 엄연히 헤일리에게 있어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과 같은 것이었다.

단순히 돕고 싶다는 충동적인 생각하에 데미안에게 말해 버린 것, 이 때문에 헤일리의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알폰스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체질에 관한 문제야 당시 데미안의 표정을 떠올려본다면 무언가 방법이 있는 것 같으니 그리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만약 이번 일로 헤일리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그것이 문제이지.

물론 그렇다고 알폰스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알폰스의 머릿속 가장 1순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헤일리의 체질 개선이었으니 말이다. 걱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야 데미안에게 비밀을 말하기 전 이미 몇번이고 고려했던 것이었다.

나갈 채비를 끝 마치고 바깥으로 향했다.

헤일리가 연무장에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데미안이 비밀을 털어놓은 당일 바로 움직인 것 같으니, 아마 오늘 보이지 않은 것도 체질에 관련된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머리카락을 건들이는 바람에 무심결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이 걷히며 밝게 빛을 내는 달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유난히 달빛이 밝아 구태여 안력을 높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적당히 길을 밝혀주는 달빛을 따라 길을 걸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주위의 조용한 분위기 덕분인지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았다.

눈에 들어온 연무장에는 이전과 같은 램프의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사람 마음이 참으로 이상한게 없을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쉬움이 든다. 정작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었던 것은 어제 하루 뿐이었음에도 그동안 새벽에 나왔던 날들에 언제나 헤일리가 있었던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어둠이 드리운 연무장을 향해 발걸음을 계속한다.

다시 구름이 달빛을 거둬가니 앞을 보기 위해서는 안력을 강화해야만 했다.

"어?"

달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아있어야 할 연무장에 무언가 알폰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달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주 미약한 빛의 선이 연무장의 위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알폰스가 저 빛의 정체가 검에 맺힌 오러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달빛을 닮은 오러가 그려내는 눈에 익은 검로에 알폰스는 서둘러 연무장을 향해 달렸다.

희미한 잔영을 남기며 빛무리를 뿜어내고 있는 연무장의 중심지에는 언제나 처럼 헤일리가 서 있었다.

이전처럼 숨길 이유도 필요도 없었기에 알폰스는 자신의 존재를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

힘찬 발걸음 소리를 들은 것인지 검무를 추고 있던 헤일리가 알폰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눈을 돌렸다. 오러가 없다면 전혀 보이지 않을 어둠 속에서 정확히 자신과 눈을 마주하는 헤일리의 모습에 알폰스는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알폰스!!"

산뜻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헤일리의 모습에 순간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매우 잠깐 동안의 일이었다. 머리회전이 상당히 빠른 알폰스였기에 어째서 자신을 평소의 호칭이 아닌 이름 그대로 부르는 것인지에 대한 의아함이 머리를 채웠다.

"너가 불었구나아아!!"

"으야아아아아!!"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 곧바로 알폰스의 볼을 쭈욱 늘리는 헤일리.

이유야 하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당연히 비밀을 분 것에 대한 응징이었다.

알폰스는 헤일리에게 볼을 붙잡힌 채로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들리는 목소리에 장난기가 느껴졌음에도 이번에는 꼭 반드시 얼굴을 확인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를 올려 헤일리의 얼굴을 확인하자 알폰스는 방금전 까지 지르던 비명도 멈춘채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언제 걷힌지 모를 구름 사이에서 빛을 내고 있는 달빛을 배경으로 삼은 헤일리의 얼굴은 분명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가식이나 꾸며진 것이 아닌 그 순수한 미소에 알폰스는 양 볼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잊은 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웃어?!"

"으야아아아아! 자, 잘못했어요!!"

이후에 느껴지는 고통은 별개의 것이었다만, 그래도 가슴을 가득 채운 행복감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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