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선물이란 게 꼭
오르커스에게서 편지가 왔다.
내용은 약혼식에 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과 선물로는 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는 글이었는데 나는 답장으로 루덴의 관광 명소나 유명한 디저트 가게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보냈다.
내년에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루덴으로 올라가야 했으니 이런 건 아무래도 현지 사람을 통해 미리미리 알아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적어 넣은 디저트 가게에 대해서는 왠지 엘레나가 이미 속속들이 다 꿰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황실만이 아는 숨겨진 맛집. 뭐, 그런게 있을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루덴이라...."
나는 이 제국의 수도이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고 알려진 황도 루덴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그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원작 속 사건이 가장 많이 터지는 장소가 어디냐 하면 다름이 아니라 그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루덴이었기에 걱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절반이 내년 부터 들어가야 할 아카데미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그건 또 그것대로 걱정이다.
이번 레기온에서의 일로 시간대에 상관 없이 원작에서와 비슷한 사건이 터지는 것을 보니 과연 루덴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상상이 되지를 않는다.
어쩌면 걱정과는 정반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번 레기온에서의 사건. 마물들의 남부 습격은 원래는 이교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어난 일이라 원작에서는 이 사건의 주모자들을 완전히 박멸 시킬 만큼의 힘이 없었다.
앞서 워낙 많은 사건이 터져 황실의 전력이 분산되어 있었고 때문에 제국은 전체적으로 암흑기에 접어든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작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 되어버렸다.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 교세를 회복하고 있어야 할 교단이 움직였고 덕분에 우리는 원작보다 손쉽게 이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어부지리 격으로 황실에서 제국 전역의 물청소를 했기에 상당한 수의 이교도들이 쓸려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황도의 경계가 더 강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기에 어쩌면 정말로 나와 엘레나가 루덴에서 지내는 동안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아주 높은 건 아니고 그냥 그럴수도 있다는 정도. 솔직히 반쯤은 개인적인 희망에서 나온 소리였다.
나는 오랜만에 서랍에 넣어두고는 한동안 펼치지 않았던 책을 꺼내들었다. 연녹색 가죽으로 제본된 책은 오랫동안 건들지 않아서 그런지 꽤 많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전에는 시간 날 때마다 읽던 것이 엘레나를 만난 이후로는 꺼내든 적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한번 먼지를 털어주고 책을 펼치니 익숙한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삐뚤빼뚤한 글자로 정리되어 있는 설정들을 한번 읽어주고는 책장을 뒤로 넘겼다. 초반부만 그렇지 나머지는 반듯하게 적혀있어 눈이 아플 일은 없었다.
내 손이 멈춘 곳은 지난날 내가 적어둔 앞으로의 활동계획표였다.
계획표의 시작이 엘레나와의 파혼이었는데 그 부분은 내가 전날에 취소선을 대차게 그어나서 그런지 거의 종이가 찢겨질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하기야 처음부터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았으니 많이 당황했던것 같다.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밑에 건들지 않은 글자들을 읽어나갔다.
대충 소설 속 시간대에 맞춰 짜여진 행동요령들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현상황과 하나도 맞는게 없어 웃음만이 나왔다. 그때는 내 기억 속에서 나온 이 정보들을 상당히 맹신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이렇게 다시 한번 훑어보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대체 왜 반드시 소설의 흐름 그대로 이야기가 흘러 갈거라 믿고 있었던 걸까.
그 날 엘레나와의 약혼을 파혼했다 한들 그것 역시 소설 속 이야기와 다르게 흘러가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손에서 오러를 일으켜 책에 불을 붙였다. 검은 불에 휩쌓인 책은 흔적도 없이 원래 이곳에 없던 물건 처럼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어차피 책 속에 적어두었던 설정 정도야 이미 머릿속에 외워둔지 오래였기에 저것의 가치는 그녀를 만난 순간 부터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여태 없애지 않고 남겨두었던 이유는 내가 저 책에 적어둔 대로 미래가 흘러가고 나는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불타 사라지는 책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머리가 개운해 진 것 같았다. 딱히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그러한 마음이 들었다.
"슬슬 오늘 할 일을 해야지."
벽에 걸어둔 시계를 보니 주방장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
"오셨군요. 도련님. 준비는 전부 제가 해두었으니 도련님께서는 손 만 깨끗이 씻으시면 됩니다."
주방 문을 여니 깨끗해 보이는 순백의 요리복을 입은 짧은 콧수염의 남자가 나를 반겼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방에 걸려있는 식기에는 아직 물기가 묻어 있었다. 나는 세면대로 가 손을 씻어 물을 털어내고는 그가 건내는 장갑을 손에 꼈다.
남자의 이름은 한스 필로우.
내 전담 집사인 켄과 마찬가지로 크라우스에 고용된 사용인이며 오랫동안 우리 가문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크라우스의 주방장이다. 후덕한 인상에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인데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인심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귀에 들리는 바로는 영주성의 하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한스라고 할 정도였으니. 켄이 친절함과 노련함으로 인기가 있다면 한스는 켄의 친절함과 더불어 사람의 위장을 사로잡는 솜씨가 있었다. 나 역시 그가 해주는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그가 안내하는 대로 준비된 요리복을 걸치고는 조리대 앞에 섰다.
"깨끗하네요."
"주방은 언제나 청결해야 하니까요. 언제나 깨끗이 청소를 하기도 하지만 몇몇 도구들은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지금 도련님께서 입고 계신 요리복도 그러한 물건이랍니다."
완전한 순백색의 요리복에서는 오염의 흔적도 아무런 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깨끗한 옷을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향기라도 날 거라 생각했건만 세탁소에서 맡긴 옷을 찾았을 때의 향도 나지 않는 완전한 무취(無臭)였다.
잘 생각해보니 옷에서 좋은 향이 난다고 해서 요리에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음식을 즐기는데 있어 음식에서 나는 향도 맛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니 어떤것이든 너무 과한 냄새는 본연의 맛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프로의 도구는 옷부터 다르다는 것인가.
내가 옷의 냄새를 맡고 있으니 한스가 재밌는 것을 보았다는 듯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무 철딱서니 없게 행동한것 같아 그의 시선에 서둘러 소매를 아래로 내렸다.
켄도 그렇고 아무래도 어릴때 부터 봐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저들의 시선에는 많이 민감한 편이다. 내가 너무 어린아이 답지 않게 자라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으나 영주성의 사용인들 중 나이가 있는 켄과 마리아 그리고 한스 같은 경우에는 내가 가끔 어리숙한 행동을 하면 거기에 좋아라 달려든다.
나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스에게 이리 말했다.
"아무래도 이런 옷은 처음 입어봐서요."
"혹시 크기가 맞지 않으시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여벌의 옷 중 도련님의 체형에 맞을만 한걸 눈대중으로 가져온 것인지라. 불편하시더라도 오늘은 그 옷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도련님 전용으로 한벌 맞춰오도록 하겠습니다."
"어,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하자 한스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나중에 반드시 필요하시게 될겁니다."
자신감 넘치게 내게 말하는 한스의 말에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내게 요리 하는 것을 재미 붙이게 할 생각인 것 같다만 과연 그게 될까? 이번에 요리를 하는 것은 약간의 이벤트와 같은 느낌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한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내가 이후에도 요리를 계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나 보다.
원래 지금 이 시간대의 나는 연무장을 돌아다니면서 체력 단련을 하거나 소백작으로서의 업무를 보고 있어야 하지만 오늘 하루 만큼은 이곳에 오기 위해 일정을 비워두었다. 바로 그에게서 과자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였다.
단것을 잘 먹지 못하는 내가 과거 파티시에로 이름을 날렸던 한스에게 다과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이유야 달리 뭐가 있겠는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나 나름대로의 약혼 예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보통 예물이라고 하면 반지나 장신구와 같은 것을 준비하는데, 당연히 나 또한 약혼식 이후 준비해 두었던 반지와 목걸이를 엘레나에게 건내 주었다. 장신구를 보는데 있어 별로 뛰어난 안목을 가진 것은 아닌지라 그나마 그녀에게 가장 어울릴 것 같은 것을 기나긴 고심 끝에 골라온 것이었다.
다행히도 엘레나는 내가 골라온 것들을 마음에 들어했고 바로 다음날이 되자마자 나를 시내에 끌고가 그에 대한 보답을 해주었다.
"데미안은 너무 가문의 정복만 입고 다니는 것 같아요. 가지고 있는 다른 옷들도 전부 어두운 계열에 비슷한 양식의 것들만 있고 조금은 그 폭을 넓힐 필요가 있어요. 아, 마담. 여기 카탈로그에 나와 있는 양식들 전부 이 사람 체형에 맞춰서 한 벌씩 준비해 주시겠어요?"
"네? 에, 엘레나 그렇게 많이는...."
"그러고 보니 새로운 옷에는 그에 맞는 악세사리도 필요하겠네요. 다음 가게는 데미안이 목걸이와 반지를 골라준 가게로 가는 게 좋겠네요. 그....브로치나 타이 핀 같은 것은 가능한 그것과 세트인 것으로...에헤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엘레나가 제국에 셋 밖에 없는 공작가의 자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카탈로그를 받자마자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전부 달라고 하는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크라우스 역시 에델바이스에 꿀리지 않는 명문가이고 재력이고 무력이고 부족한 부분이 없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밖으로 나가 내 스스로 무언가를 사는 경제관념은 여전히 전생의 그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소백작으로서 가문의 서류 작업을 하다보면 억대가 넘어가는 돈들이 움직이는 것을 쉬히 볼 수는 있어도 그게 현장에서 움직이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아무래도 현실감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당장에 내가 들고 다니는 수표책만 하더라도 충분히 엘레나의 행동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데 말이다.
아무튼 이것이 내가 지금 두번째 선물을 준비하는 이유였다.
선물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어제 준것에 비해 상당량의 선물을 받아버렸기에 무언가 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재력으로 승부하자니 그러다가는 단순히 사치가 되어 버릴 것 같아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길은 직접 만든 과자를 그녀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직접 만든 것을 선물 받는 다는 것은 받는 사람에게 있어 의미가 남다르니, 다시 생각해보아도 생각을 잘 한 것 같다.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조리대 위에 올려진 거품기 하나를 손에 집었다.
눈 앞에는 둥근 그릇에 층층히 쌓인 재료들이 보인다. 항상 누군가가 하는 것을 보기만 했지, 내가 직접 한다고 생각하니 간단한 작업임에도 가슴이 두근 거리는 것 같았다.
"음, 그럼 지금부터 이걸로 반죽을 만들어주면 되는 건가요?"
"네. 상당히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지만 도련님이라면 걱정 할 필요가 없지요. 제가 하는 것을 보고 그에 맞추어 저어 주시면 됩니다."
한스의 손이 움직이자 그릇 안의 재료들이 이리저리 뒤섞이기 시작한다. 나는 한스의 손을 보며 그것을 똑같이 따라하였다. 재료가 쌓여 뻑뻑한 것이 상당량의 힘을 요구했는데 나는 혹여 반죽이 그릇 밖으로 뛰쳐 나가는 것을 조심해야 했다.
눈 앞에 좋은 교보재가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힘을 조절하며 반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걸쭉해진 반죽을 짤주머니 안에 담고 판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적당히 크기를 맞춰가며 팬닝(panning)을 해주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 몸을 통제하는 대에 있어 도가 텄기에 나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팬닝을 끝맞쳤다.
올려진 반죽의 크기도 거의 비슷한 것이 마치 기계로 찍어낸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한스는 이를 보자마자 박수까지 치며 내 실력을 칭찬했다.
나 은근 재능이 있는 걸지도?
"아주 잘 하고 계십니다. 도련님께는 재능이 있어요. 이번에는 간단한 마카롱에서 끝나지만 다음에는..."
"한스. 속 다 보여요."
내 말에 한스는 멎쩍은 듯 미소를 지어 올렸다.
하마터면 한스의 립서비스에 넘어갈 뻔 했다. 판 위에 올려진 반죽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나서 생각을 다시하니 여태 내가 한것이라고는 반죽을 만들고 짠 것 밖에 없다는게 눈에 보였다. 그래도 성취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재능 운운하기에는 립서비스가 과하다.
십여분 정도가 지나자 판 위에 올려둔 반죽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온도조절이 가능한 마도구에 넣어 반죽을 구워주면 끝이었다. 온도를 달리하여 두번 예열해주고 나니 고소한 냄새와 함께 잘 구워진 과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한스의 특제 크림을 짤주머니로 완성된 과자 위에 둥글게 올려주고 반대편 과자를 쌓아올려주면 마카롱 완성이다.
생각보다 만들기 간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죽 굽고 크림 올리고 쌓으면 끝.
괜히 한스가 내게 마카롱 만들기를 권유한 것이 아니었다. 맛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크림은 한스가 만들었다지만 만드는 과정이 아주 단순했다. 시간이 남을 때면 한번 쯤은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모두 모양이 잘 잡혔군요.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단 것 잘 못먹는 다는 것 아시면서....그래도 만든 사람이 한번 쯤은 먹어봐야 겠죠."
나는 마카롱을 한입 베어물었다.
방금 막 구웠기에 마카롱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적당한 식감. 단점이라고 한다면 내 입맛에는 너무 달았다는 점 정도. 나쁘지 않았다.
한스도 한입 먹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싸인을 내렸다. 반죽을 굽는 과정에서 온도를 잘못 설정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큰 문제는 없었을 정도로 간단한 과자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건 그렇고 한 사람이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판이 컸던게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반죽을 짜는 것에 너무 재미를 붙인게 문제였던 걸까. 누가 봐도 후자다만 원래는 여섯개 정도로 만들려고 했던 것을 다 만들고 나니 그 개수가 세배로 늘어나 있었다. 그래도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은 못할 짓인 걸.
"하하. 평소에도 이 정도는 드시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아가씨라면."
"그러다가 잘 못하면 병 걸려요. 원래 엘레나에게 주려고 생각했던 여섯개는 그대로 건네주돼 나머지는 다른 분들께도 나눠드려야 겠네요."
방금 전 나와 한스가 먹은 두개를 빼더라도 남은 개수는 10개.
알폰스에게 3개 아버지께 1개. 켄, 마리아, 헤일리에게 각각 두개 씩 나눠준다고 한다면야 얼추 수가 맞는다. 나는 한스에게 봉지를 받아 포장을 끝낸 후 엘레나에게 마카롱을 건내주기 위해 이실리아 관으로 걸어갔다.
"아! 데미안 도련님!"
때마침 가는 길에 헤일리와 맞딱뜨렸다.
그녀가 내가 향하는 방향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엘레나는 지금 방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헤일리는 나를 잠시 훑어보더니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평소와는 달리 매우 밝은 색상의 옷이네요! 검은색과 완전히 반대되는 흰색도 매우 잘 어울리세요. 이게 어제 아가씨께서 골라주신 옷인가요?"
"맞습니다. 잘 어울린다니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했더니 도련님께서 들고 계신 봉지에서 나오는 것이 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아가씨께서 주방에 한번 다녀오라고 하셨는데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이야. 차는 방 안에 준비되어 있으니 도련님만 모셔가면 되겠네요~"
이실리아 관에서 본관의 주방까지 거리가 있다보니 헤일리는 본관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나는 헤일리와 함께 엘레나의 방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녀에게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봉지 하나를 건내주었다.
"이건?"
"이번에 엘레나에게 줄려고 만든 마카롱을 만들어 보았는데 한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이 만든 것 같아 남은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거든요. 그것은 헤일리의 몫입니다."
"와! 도련님께서 직접 만드셨다고요?! 그것도 아가씨를 위해서!! 이거. 상당히 귀한 물건이군요. 보통 도련님들은 직접 과자를 만들거나 하시지는 않잖아요?"
"글쎄요. 꼭 그렇지 만은 않지 아닐까요?"
"흠흠, 냄새는 완벽하군요. 하지만 냄새와는 다르게 맛은 혹시 모르니 한번 판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카롱을 입에 문 헤일리는 조용히 엄지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무슨 기미상궁에게 검사를 받는 것 같네.
엘레나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헤일리에게 오케이 판정을 받은 후 나는 자신감에 힘 입어 거침없이 엘레나의 방으로 향했다. 이 시간대에 내가 그녀의 방에 오는 것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에 엘레나는 놀나는 기색 없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나를 환대했다.
"역시 흰색도 잘 어울리시네요. 데미안. 그런데 손에 든 봉지는 뭔가요? 뭔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선물입니다."
엘레나는 내게 건내 받은 봉지를 열어 보았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분홍빛의 마카롱 두개. 나와 그녀가 티타임을 가지면 언제나 주방에서 내오는 마카롱과 같은 것이었기에 엘레나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헤일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마카롱. 데미안 도련님이 아가씨께 드릴려고 직접 만드신거래요!"
"네?"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크림은 한스가 만들어 둔 것을 그대로 쓰기는 했지만 껍데기는 제가 만든 것이기는 합니다."
"저, 정말 이걸 데미안이 만들었다고요?!"
이 말을 들으니 엘레나의 얼굴은 처음 내 말을 들었을 때의 헤일리와 똑같이 변해있었다. 그렇게 까지 믿기지 않은 걸까. 엘레나는 잠시 나와 마카롱을 번갈아 바라 보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띈 얼굴로 내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정말 고마워요. 데미안. 두고두고 아껴서 먹도록 할게요."
" 아니 그러면 안 되죠. 그러다가는 다 상해버릴 껄요."
"하지만! 이거 여섯개 밖에 없는데 이 아까운 걸 어떻게 다 먹을 수가 있어요!! 보존 마법을 걸어두면 적어도 1년은 보관할 수 있으니까...."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엘레나의 말을 들으니 아까전 한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 꼭 요리복이 필요하게 될거라고 그리 자신만만하더니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걸까.
그래도 처음 마카롱을 받았을 때 기뻐하던 엘레나의 얼굴을 떠올려 보니 결국 그의 말대로 될 예정이었나 보다.
"그럼 나중에 제가 또 만들어 드리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마카롱에 마법 걸려는거 당장 멈추세요."
그렇게 약속을 하고 나서야 엘레나가 마카롱에 마법을 걸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한스에게 배우게 되는 것은 마카롱만이 아니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