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샛별 (32)
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모두 사냥을 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남들과 같이 숲으로 들어간 노엘과 오르커스는 앞서 데미안에게 배운 것들을 토대로 거점을 잡았다.
그때의 경험 덕분인지 오르커스와 노엘은 자신들이 만족할 수 있을 만한 구역을 찾아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거점을 잡고 나자 노엘은 자신의 한껏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음! 일단 목표는 우승으로 하죠!"
"되겠냐."
노엘의 의기양양한 말에 오르커스는 곧바로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아무리 제 동생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같이 참가하는 이가 누군가. 바로 자신들에게 사냥하는 법을 알려준 데미안 아니던가.
물론 꼭 가르침을 받는 쪽이라고 하여 꼭 제자가 스승을 이기지 못할 건 없다만 오르커스는 노엘과 데미안 사이에 기량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노엘도 충분히 규격외의 천재가 맞았다만 데미안은 그 윗줄에 존재하는 녀석이었다.
"오라버니!!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시지 마시구요! 저희가 자리잡은 곳이 특별히 동물들이 많이 사는 곳일이지도 모르잖아요."
"명당 말이지? 음...글쎄다. 뭐, 일단 배운대로 하기는 했다만."
"확실해요!"
오르커스의 자조적인 말투에도 노엘의 기세는 전혀 꺽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뭐, 데미안 스스로도 사냥이라는 것이 꼭 실력이 좋다고 성공하는게 아니라 사냥꾼의 운이 크게 작용한다고도 했으니, 정말 자리만 잘 잡는다고 한다면 노엘의 말 처럼 실력의 간극을 매울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거라면 그 녀석이 우리보다 더 잘 하지 않을까.'
자신들에게 사냥에 대해 하나 부터 열까지 모두 알려 준 것이 데미안이었기에 지금 둘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데미안이 사용할 줄 안다고 봐야한다.
무엇보다 데미안은 이곳 남부 사람 아니던가. 이미 여러번 대회에 참가한 이력도 있고 적어도 자신들 보다 이 숲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은 확실했다.
어제 검은 용 기사단원들 사이에서 들리는 말을 듣자하니 올해 대회 만큼은 어찌된 일인지 데미안이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하였다.
연습 때 보여주었던 모습만 하더라도 압도적이었는데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조금 상황이 달라질지는 모르겠다만 규정상 반칙이기도 하고 딱히 사용한다 한들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저렇게 기대하고 있는데...장단 정도는 맞춰주도록 하자.'
우승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위권의 성적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괜히 논리적으로 반박해서 사기를 꺽을 바에는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노엘에게도 오르커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
애초에 논리적으로 따진다고 해서 노엘이 들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동생이 잔뜩 기대를 하고 있으니 오르커스는 오라비로서 의욕을 돋울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까보니 데미안은 우리와 같이 출발 한 것 같지는 않더라. 만약 우리가 먼저 데미안보다 좋은 자리를 잡은 거라면 확실히 우리에게도 승산은 있어."
"맞아요! 저희가 오면서 흔적들을 확인했을 때 여기 만큼이나 동물들의 동선이 겹쳐지는 곳은 없었어요. 아무리 데미안이라고 해도 자리를 잡는데 시간은 필요할테니까 우리가 더 유리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지 숲은 넓으니까. 뭐, 거점도 정했으니 간단하게 준비하고 사냥하는 걸로 하자. 밍기적 거리면 그만큼 자리를 일찍 잡은 이점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야."
어는 순간 부턴가 둘에게 있어 데미안을 이기는 것이 사냥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과 동일시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노엘도 오르커스도 그것이 딱히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재(武材)가 뛰어난 노엘의 눈에는 이곳에 와서 데미안 보다 뛰어난 사람을 본 건 크라우스의 가주인 아서를 제외하고는 없었으니 말이다. 오르커스에게 노엘과 같은 눈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생각은 같았다. 아예 문외한 보기에도 간혹 데미안이 보여주었던 것들은 무언가 다른 기사들에게서 보았던 것과 달랐으니.
"흐으으으으으으음."
노엘은 평소의 헤실헤실 웃던 얼굴을 잠시 멈추고 진지하게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음꽃을 피우며 오르커스에게 말했다.
"단순히 흔적이 많은 것이 아닌 육식동물의 발자국과 초식동물의 발자국이 섞여 있어요. 아마 산짐승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 이곳일 거에요. 그러니 이 장소에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쉬히 사냥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잡은 것 중 몇개를 미끼로 사용한다면 그걸로 맹수들을 불러 모을 수도 있을 거에요!!"
"아, 그러니?"
누가 보면 황녀가 아닌 평생 숲에서 사냥만 하다 산 아이인줄 알 정도로 노엘의 행동은 노련한 사냥꾼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만큼 노엘이 배운 것을 잘 흡수했다는 이야기였지만 오르커스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이러다 진짜 사냥꾼이 되겠다고 하면 어쩌지?'
워낙 몰입을 잘 하는 노엘이니 어느 순간 사냥꾼이 되겠다고 말해도 이상함이 없다. 하지만 이미 기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했으니 그녀의 성격 상 한번 다짐한 것을 바꿀 일을 없겠으나 그것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 정도는 남았다.
아무리 황가가 가진 위치에 비해 자유롭다고는 하나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있었다. 기사라면 모를까 산지기들이 하는 사냥꾼을 그것도 황녀가 하게 둘 수는 없는 법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오르커스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붙잡으며 단호히 말했다.
"사냥은 어디까지나 취미야. 알겠지?"
"네? 네."
갑작스런 오르커스의 말에 노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알겠다고 답하였다. 노엘도 사냥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 뿐이지 사냥꾼이 될 생각은 없었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르커스의 기우였을 뿐이다.
노엘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자 그제야 오르커스의 얼굴이 풀리었다.
"아무튼...그럼 미끼로는 미리 준비해온게 있으니 그걸 쓰도록 하자. 이 대회의 목적이 해수로 부터의 구조인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맹수 위주의 사냥을 해야겠으니 말이야."
대회가 사냥감의 양을 중시한다지만 그 취지가 있으니 토끼 100마리를 잡는 것 보다 범 한마리를 잡는 것이 대회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터였다.
오르커스는 준비해온 미끼를 둘로 나누어 노엘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가 미끼라 말한 것은 어떠한 약에 절인 고기 덩어리였는데 이는 다름 아닌 오르커스가 다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데미안에게 굴려지는 동안 사냥에 어느정도 재미가 붙은 그였기에 이런 것을 준비했던 것이었다.
'대회 규정에 마도구를 쓰지 말랬지 연금술을 이용한 미끼를 쓰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까.'
넘어서야 할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걸 실행하기 위한 계획도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었다. 우승을 목표로 하겠다는 노엘의 말이 마냥 허무맹랑 한 것은 아니란 것이었다.
노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째 오르커스 자신의 텐션도 점점 올라가는 것을 느끼었다. 아무래도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니 여태 속으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오르커스의 마음에도 불이 붙기 시작한 모양이다.
여전히 우승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는 했으나 그 이전부터 오르커스는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있어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오르커스는 어둠이 드리운 숲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노엘의 얼굴을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럼...시작해볼까?"
"네!"
***
우선 오르커스와 노엘이 선택한 자리는 노엘의 말대로 명당이나 다름 없었다.
미끼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캠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금세 사냥감을 찾을 수 있었고 잡은 사냥감을 캠프로 옮기는 와중에도 심심치 않게 숲 속을 뛰어다니는 동물들을 볼 수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종류가 다양하여 의도치 않게 해수와 더불어 다양한 동물들의 사체가 캠프에 쌓이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오르커스와 노엘은 말을 타며 사냥하지 않고 직접 발로 캠프 주위를 맴돌며 사냥하기로 결정하였다. 말 위에 올라타 바람을 느끼며 사냥 하는 것도 괜찮았지만 그들이 자리잡은 곳이 곧 숲의 길이었기에 숨어서 기습을 하는 편이 더 사냥의 효율이 좋았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오르커스는 캠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숨을 죽인채 풀 숲에 몸을 숨기고 있다.
자신의 몸에 잎이 스쳐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의 움직임은 최소화 한채 활의 시위를 당기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붙잡고 있는 오르커스의 손에 떨림은 보이지 않는다. 차가운 벽안은 눈 앞에 있는 사냥감만을 눈에 담고 있었다.
크르르르-
오르커스의 눈이 향하는 곳에는 범 한 마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 오르커스가 둔 미끼를 냄새를 통해 찾고 있는 것일 터였다.
몸 높이만 해도 건장한 성인 남성의 가슴팍까지의 길이를 지닌 대호였다.
그 크기와 생김새에 나오는 위압이 있을 터인데 하도 사람 같지 않은 녀석들 사이에 낑겨 있다 보니 오르커스에게 이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였다. 큰 몸집만큼 가진 힘도 상당할 것이었지만 지금 오르커스가 보기에는 움직이는 커다란 과녁에 지나지 않았다.
두려움이 없으니 시위를 놓아야 할 때를 놓치는 실수를 범할리 있나.
타고난 완력으로 인해 빠르게 쏘아진 화살은 정확히 범의 목을 꿰뚫었다. 하지만 마경이라 불리우는 룬프라우드에서 살아가는 해수가 그 한발로 인해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목에 화살이 박힌 범은 휘청거리기는 했으나 금세 앞발로 균형을 회복하고는 자신에 목에 화살을 박아넣은 오르커스에게로 시선을 돌리었다. 성난 범의 얼굴은 범인을 찾아내자 더욱 무섭게 변하였다. 입을 벌리며 드러나는 이빨은 위협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오르커스는 동요하지 않고 바로 등에서 새 화살을 꺼내어 매었다.
이미 여러번 사냥에 성공했음에도 오르커스의 화살통은 비워지기는 커녕 이전 보다 더 많은 화살들이 들어있었다. 잡은 족족 화살을 수거 했던 것도 있지만 활로 사냥하는 것을 그만둔 노엘이 전부 자신의 화살을 오르커스에게 몰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오르커스는 범이 자신을 바라보자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언제든 자신에게로 달려들 수 있는 범을 눈 앞에 둔채 오르커스는 정면을 향해 다시 시위를 당기었다. 누구에게 배웠다 싶이 정면에서 어디를 맞히면 녀석이 절명할지 알고 있었기에 오르커스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범은 오르커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반면 오르커스는 시위를 당기기만 했지 당장 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주 잠깐의 대치.
생각이라는 걸 할 틈도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범이 발을 멈춘 그 순간 오르커스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알고 있었다.
범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르커스를 향해 달려들었고 범의 발이 땅에서 떨어진 그 때 오르커스의 화살이 발사되었다. 오르커스는 화살을 쏘자마자 고개를 숙였고 범은 오르커스의 고개너머로 넘어가 그대로 뒤에 있던 나무에 부딪쳤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에서 나뭇잎이 흩날린다.
이후의 소리는 없었다. 나무에 머리를 박은 범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르커스가 다시 고개를 올리며 범의 머리를 살펴보자 녀석의 미간에 정확히 화살 한 대가 꽃여 있었다. 이를 확인하고 나니 오르커스는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희열감에 휩쌓였다.
"아즈아아아아!!!"
"오라버니!!"
"방금 봤어?! 봤냐고! 이야! 이게 되네?!"
나무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엘이 내려와 오르커스에게로 달려갔다. 그런 노엘에게 손가락으로 쓰러진 범을 가리키며 소리치는 오르커스. 흥분이 주체가 안 되는지 감정을 숨기는데 있어 귀재인 그의 얼굴에는 지금의 감정이 똑똑히 드러나 있었다.
"노엘."
"네! 오라버니!"
"이 정도면 충분히 우승...노려도 되지 않을까?"
"물론!!"
오르커스의 말에 노엘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가망 없다고 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싶었지만 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그리 말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자리가 좋으니 사냥감들이 몰려드는 것은 물론이요. 원래 실력이 뛰어난 노엘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오르커스가 사냥에서 상상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여태 잡은 것들로만 해도 캠프의 공간을 가득 채웠는데 모든 것이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의 결과였다.
특히 오르커스는 자신의 전문인 마법이 아닌 활로 저만한 범을 잡았다는 기쁨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마법을 사용했다면 손가락 까딱하는 것 만으로도 저 범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겠다만 똑같이 범을 잡아도 그 느낌이 달랐다.
마법 없이 사냥을 하다보니 성공하면 성공할 수 록 오르커스 본인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만큼 올라갔다. 실제로 짧은 시간안에 실력이 눈에 띄게 는 편이니 그 정도의 자존감은 가져도 좋다만 평소의 오르커스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감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되었다.
여기서 절정을 찍은 것이 활로 방금의 범을 잡아낸 것이었다.
아까의 일은 오르커스 스스로가 생각해도 방금 범을 잡는 것은 예술이라 말 함에 있어 모자람이 없었다. 오죽하면 노엘이 오르커스를 칭찬하러 왔겠는가.
만약 평소처럼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았다면 지금 자신의 실력에 있어 우승을 논하거나 하는 말은 삼가했을 테지만 여태까지의 사냥에 대한 성공으로 극심한 자아도취에 빠진 오르커스는 완전히 노엘에게 감화되어 있었다.
서로 의견이 척척 맞은 적은 있어도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성격에 옮은 적이 없는 것이 두 남매인데, 처음으로 둘의 성격이 똑같이 변해 버리고 만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상극의 성격을 가진 둘이 하나가 될 정도로 공통된 취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브레이크 역할을 하던 녀석이 완전 맛이 가버렸다는 소리이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노엘. 어서 사체를 캠프로 치우도록 하자. 아직 내게 화살이 많이 남았다."
아까전 까지만 해도 동생이 사냥꾼하겠다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던 녀석이 반대로 사냥꾼이 되게 생겼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니 오르커스가 황제가 아닌 사냥꾼을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없었다.
"헤헤헤..."
노엘은 활을 들고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오르커스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되었건 그간 모든 것이 상극이었던 형제와 처음으로 공통된 취미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저 기분이 좋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숲을 가득 채우던 두 사람의 웃음소리도 곧 끝을 맺었다.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동시에 웃기를 그만두었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자 숲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게 변했다. 항상 들렸던 동물들의 발자국 소리도 새들의 지저귐도 전부 깨끗하게 지워져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세상에서 소리를 지워낸 것 처럼 말이다.
범의 사체를 들어 올릴려던 노엘의 손은 멈추었고 흥에 취해있던 오르커스의 눈에는 다시 차가운 이성이 깃들었다.
노엘과 오르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자리에 그대로 서서 눈을 굴려 숲을 살피었다. 어둠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텐데, 두 사람의 눈에는 대체 무엇이 보이는 걸까. 둘의 눈동자는 숲의 어둠 속에 숨은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그렇게 어지럽게 시선이 얽히고 있다, 어느 순간 둘의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와 동시에 숲에서 뻗어나간 어둠이 두 사람을 덮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