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65화 (65/131)

< 65화 > 샛별 (22)

남부 지역에서 매해마다 열리는 사냥 대회.

이번 대회의 개최지이자 지금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룬프라우드 산맥 접경 지역 영지 중 하나인 레기온. 이 대회는 어느 한 영지에서 계속해서 개최하는 것이 아닌 산맥 접경 지역의 영지들을 대상으로 매년마다 위치를 옮겨 개최하고 있다.

주요 참가자들이 귀족이기는 하다만 대회가 개최되는 영지에서는 민간인도 참여하는 큰 축제가 열리게 되니 대회를 개최하는 영지측에는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메리트가 존재하는 부분인 것이다.

남부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봄철 사냥 대회로 열리는 축제는 정통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인원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도 없고 말이지.

매년마다 대회 장소를 옮기는 것도 해수의 서식지를 고려한 여러가지 문제도 있지만 이러한 부분에서 나오는 이득을 어느 한곳이 독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도 있다. 원래 크라우스 가문이 남부에 처음 자리 잡았을 때는 이러한 것을 독자적으로 처리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만, 그것도 선대에서 바뀌어 지금처럼 이렇게 순환하는 식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이 레기온은 크라우스하고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영지이다. 남부에서 크라우스와 얽히지 않는 가문이 있겠냐만은, 레기온의 영주인 그레이엄 자작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특별하게도 크라우스 백작가와 봉신관계로 엮인 인물이었다.

크라우스의 소가주인 나와는 어릴적 부터 면식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인선을 보아하니 황제가 신경을 많이 쓴 듯 하다.

황실 기사단이 호위로 붙거나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만 여러가지 상황과 거기에 얽혀 있는 인물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오르커스와 관련된 일들이 크라우스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마치 아버지께서 완전히 통제가 가능한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처럼.

아버지와 황제간의 관계가 끈끈한 것도 있겠지만 이것은 황실이 그 만큼 크라우스라는 집단의 힘에 대해서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괜히 천년 제국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어쨌거나 레기온에는 늦지 않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성에서 말을 타는 것이 취미였다는 오르커스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그는 능숙하게 말을 몰았다. 말 위에 오랫동안 앉아있는 것은 처음이었을 테지만 워낙 발달된 몸을 가지고 있어, 이동하는 동안 오르커스에게서 불편해 보이는 듯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있다는 얼굴로 내 옆에서 말을 모는 오르커스의 모습이 기대한 것과는 달라 약간 아쉽기는 하였다만 그래도 혹시 몰라 준비했던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 둘의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다행인 점이었다.

성문을 지나 집결지인 영주성으로 향하는 길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끊이지를 않았다. 이는 매년 마다 있는 일이었지만 올해는 유독 심한 것이 내 옆에 오르커스가 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순금 같은 밝은 금발의 푸른 벽안.

어디 소설 속 주인공 후보 아니랄까, 오르커스의 외모는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다만 그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어깨에 금실로 박음질 되어 있는 황실의 문양과 오르커스의 외모를 보면 평소 귀족과 연이 없는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오르커스의 신분을 알아 보기에는 충분하였다.

"어째 성에 들어서기 전보다 어깨가 넓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뭐, 그렇다고 구부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것보다 그 흉악한 룬프라우드의 접경지라고 해서 조금 낙후되어 있을 줄 알았다만 꽤나 멀쩡한 도시로군."

"아무리 해수와 마물들이 넘쳐나는 산맥이라지만 그들이 성 안까지 들어오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저희가 이 곳으로 온 것이기도 하지요."

이 말에 오르커스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건 그렇군. 여태 노력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움직여야 겠는걸."

며칠전만 하더라도 자기는 마법사라고 뭐라 하던 녀석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오르커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차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가 우승을 노리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느정도 유의미한 실적만 올려도 그의 목적은 달성한 것일 테다.

1황자가 마법에 재능이 있다라는 것은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그의 목적은 사냥대회의 성적 보다는 참가에 의미를 둔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어느정도 면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여태 붙어서 지도를 한 것이었고 말이다.

나름 다재다능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겸 무인들로 구성된 남부의 영주들로 부터 호감을 얻어내는데 직접 대회에 참여를 하는 것이 제격일테니. 지금 오르커스의 실력을 생각해 본다면 그가 마법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들에게서 점수를 얻어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럼 누가 가르쳤는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는 오르커스가 노력을 한 것과 다행이도 그에게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재능이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게 검술에 흥미가 있었더라면 어느정도 실력있는 기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신의 혈통이라는게 알면 알수록 생각보다 다재다능한것 같다. 신성이라는 마나와는 다른 별개의 해괴한 힘도 사용할 수 있고 말이야.

그렇다고 뭐, 부럽다는 건 아니고.

안부럽다니까.

영주성으로 향하는 길에 별다른 트러블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 이미 많은 이들이 이곳에 드나들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듯 길을 내어주는 영지민들의 행동은 매우 능숙하였다. 황족의 등장에 놀란 것 같기는 하다만 그것은 오로지 그들의 눈에서만 나타났을 뿐 몸가짐은 정갈하기 그지없다.

아마도 사전에 어느정도 이야기가 되어 있던것 같은데...

오르커스는 생각보다 조용한 영지민들의 반응에 신기해 하였으나 사실 이는 그리 놀라워 할 일도 아니다.

오르커스와 노엘이 남부에 온지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남부에 자리잡은 귀족들 중 아직까지 그들의 방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시기도 시기이고 하니 황자와 황녀가 대회에 참가할 것 또한 유추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로 흘러들어간 정보는 자연스래 아래로 전달이 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소문이든 뭐든 어떠한 형태로든 말이다.

어쩌면 황실의 방문에 신경을 쓴 그레이엄 자작이 영지민들에게 직접 공고를 하였을 수도 있고.

조용히 예를 표하는 영지민들을 뒤로하고 오르커스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까 빵집 앞에 서 있던 남자 봤는가? 모자를 썼을 때는 몰랐는데 내가 지나가자 모자를 가슴에 가져가며 예를 표하더군. 그런데 설마 머리가 벗겨져 있었을 줄이야. 요즘 모자에는 털 까지 붙여서 만드는 건가?"

이 녀석이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가.

오르커스가 바뀐것인지 아니면 책이 녀석의 성격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오르커스의 말에 옅게 미소를 흘리며 답하였다.

"어쩐지 갑자기 눈이 부시더라."

"그렇지?"

***

영주성에 들어서자 익숙한 가문들의 문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모두 대회에 참가하기로 하였던 가문들의 것이었다. 보통은 대회 당일날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아무래도 황자와 황녀가 온다는 소리에 다들 일찍 몸을 움직인 모양이다.

눈에 익은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성의 주인인 그레이엄 자작과 그의 옆에는 아버지와 알폰스가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오르커스를 향해 예를 표하자 나는 곧바로 말에서 내려 아버지께 인사를 건내었다.

"다들 일찍 도착한 것 같더군요. 저희가 가장 늦은 겁니까?"

"그건 아니다만. 아직 두 가문 정도가 도착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래도 연락을 받아보니 오늘 안에는 도착을 할 것 같더구나."

아버지의 말씀에 늦는 가문이 어딘지 짐작이 갔다. 그 둘이 늦장을 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늦는 이유는 단순히 레기온과 그들이 거주하는 영지간의 거리 차이가 크기 때문이겠지.

오르커스도 그에 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것 같아 보였다. 말에서 내린 오르커스는 아버지와 자작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어느정도 인사치레가 끝나가는 것 같자 나는 엘레나를 에스코트 하기 위해 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발 늦은 상황이었다.

마차에서는 노엘과 엘레나가 서로 손을 잡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기사와도 같이 제복을 갖춰 입은 노엘이 먼저 내려 엘레나의 손을 받아 내는 것 까지, 에스코트를 하는 노엘에게는 흠 잡을 부분이 없었다.

다만 어째서 황녀가 엘레나를 에스코트 하고 있냐만은...

난데없이 노엘에게 역할을 뺏겨버리기는 하였다만 나는 개의치 않고 둘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봤는지 거리가 가까워 질수록 변하는 엘레나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 눈을 마주쳤을 때 따스한 온풍이 불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라 해야하나?

귀여워.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이 말을 간신히 목구멍으로 집어 삼키고는 엘레나와 시선을 바로 맞추며 입을 열었다.

"두분 모두 이동하시는데 불편한 부분은 없으셨습니까."

"아, 데미안."

계속 엘레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던 모양인지 노엘은 내가 말을 걸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엘레나의 상태가 평소와는 달랐으니 그녀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미소가 지어질 일이다.

"보시다 싶이. 아주 편하게 있을 수 있었어요."

"그럼 다행이군요."

노엘은 답하였지만 엘레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있었지만 감정이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된것은 아닌지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가 거센 파도를 만난 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평소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다름아닌 그녀였을 텐데.

그 가벼운 입맞춤 한번으로 저렇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할 뿐이다.

"엘레나."

나는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먼저 노엘과 맞잡고 있는 손부터 내 쪽으로 양도 받아야 할것 같다.

내가 손을 뻗어 엘레나의 손을 붙잡자 그와 동시에 그녀의 온기와 떨림이 즉각적으로 전해져 온다. 반사적인 것인지 엘레나는 어느세 잡고 있던 노엘의 손을 놓아주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맥박이 빨라짐을 느낀다. 이것이 내 것일지 아니면 그녀의 것일지 구분을 할 수 는 없었다.

엘레나는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볍게 떨리는 입술이 벌려지며 그녀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속삭인다.

"데, 데미안..."

"네."

이 다음에 그녀가 뭐라 말할지는 내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는 그러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 만큼이나 내 심장도 계속해서 흔들린다.

다시금 그녀의 입이 열리었을 때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그녀의 입술에 시선을 때지 않았다. 언제든 엘레나를 이쪽으로 끌어들일 준비를 하면서 나는 전신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불필요한 행동이 되었다만은.

"자, 잠시...물 좀 마시고 올게요!!"

"네, 네?"

갑작스런 엘레나의 말에 내가 다시금 그녀에게 되물었을 때 엘레나의 손은 이미 내 손을 빠져나간 뒤였다. 내가 다시 그녀를 찾았을 때 엘레나는 내게서 멀찍히 멀어져 기사단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잠시 멍한 눈으로 엘레나가 달려나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자, 뒤에서 이질적인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휘휘-"

저게 휫파람이야? 아니면 그냥 입으로 내는 소리야?

귀를 어지럽히는 소음에 뒤를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모를 오르커스와 아버지가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으려만, 아무말 없이 눈빛만 보내오는 둘의 모습에 내 마음은 더욱 심란해져 갔다.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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