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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57화 (57/131)

< 57화 > 샛별 (14)

노엘 에스텔리아와 오르커스 에스텔리아.

그 둘의 방문에 놀라기는 하였지만 아주 생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황족이 직접 움직였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지, 한번은 사르함으로 황가에서 사람을 보낼 것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에델바이스와 크라우스 간의 약혼.

현재 대적할 수 있는 국가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제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권력을 자랑하는 두 대귀족의 약혼이다. 크라우스가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소가주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 다면 남부의 절반을 제국에서 가져와 따로 왕국을 선포해도 모자람이 없이 통솔이 가능한 가문이다.

그렇다면 에델바이스라고 다를까. 오히려 마법 없이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북부인 만큼 크라우스가 남부를 장악하는 것 보다 손 쉽게 북부를 손아귀에 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예시로, 주신인 알테어의 존재와 그간 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단결되어온 역사로 인해 따로 왕국이라도 선포했다가는 그대로 이단 취급 받을게 뻔하긴 하다만. 다시한번 말한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시, 비록 끝이 좋지는 않더라고 하더라도 두 가문이 제국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힘이라고 한들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법.

에스텔리아 황가에서는 분명 나와 엘레나의 약혼에 다른 뜻이 없는지 확인하러 올 터였다. 진실은 친구들 간의 취중담에서 시작된 약혼이다만 다른 이들에게는 어떠한 남다른 뜻이 있는 것 처럼 보일지도 모르니.

원작에서도 거의 언급 없이 지나간 일이기도 하였고 아버지와 요하임 공작에게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이것에 대해서 따로 걱정을 하고 있있는 않았다.

문제라고 한다면 오르커스와 노엘이 이곳으로 직접 왔다는 사실 하나 정도로랄까.

황제는 제국의 백작이지만 어찌보면 적진의 한복판일지도 모르는 곳에 황위계승 서열 1위의 황자와 황녀를 동시에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만약 그 둘이 인질로 잡히기라도 한다면 어찌 일을 감당하려고? 크라우스가 오랜시간 얌전히 지내왔다지만 내가 앞서 말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에 관해서는 황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보내더라도 적어도 한명은 황성에 남겨뒀어야 하는게 아닌가?

'친구를 만들라고....'

아버지가 내게 들려주신 진실이 내 귀를 훑고 지나갔다.

"뭔 개소리야..."

"데미안?"

"아무것도 아니에요. 엘레나."

속으로 한 말이었는데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다. 다행이도 이 말을 들은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앉은 엘레나 말고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엘레나의 의문어린 눈빛을 어물쩍 넘기고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오르커스와 노엘.

그 둘은 알폰스가 이곳에 도착하고 몇분 지나지 않아 만찬장으로 들어왔다.

오르커스는 만찬장에 들어서자 마자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눈을 맞췄는데, 몇초간 내 눈을 응시하더니 눈 웃음을 흘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제 딴에는 기분 좋으라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그 미소를 보자마자 속이 더부룩 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재수가 없다고 해야하나. 일단 별로 엮이고 싶은 인물상은 아니었다.

오르커스는 자리에 앉는 그 순간 까지 흔들림이 없는 사내였다.

앞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나. 그래서 그런 것인지 그는 소드 마스터라는 언제든 자신의 목을 떨굴 수 있는 남자를 앞에 두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아버지께 말을 건내었다.

그 옆에 앉은 노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이 지금 그녀의 기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검사인 노엘의 입장에서는 소드 마스터라는 것은 이상(理想)이나 다름 없는 존재이니.

그래도 오르커스라면 약간이나마 우리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감정을 숨기는 것이 매우 능숙하다.

하기야 오르커스는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무력이 아닌 방면에서 활약하는 캐릭터였으니 그렇게 쉽게 알 수 있을 거라 생각은 안 했다.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과 지금 오르커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원채 의심이 많은 녀석이니 분명 한번은 나를 떠보려 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이상한 꼬투리를 잡힌다면 앞으로 일이 어찌 꼬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눈 앞에 계시는 지금은 아니겠다만 나는 혹시 모를 오르커스의 질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버지와 오르커스의 대화는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형식적인 것과 같은 거라고 해야할까. 간단히 말을 몇마디 나눈 오르커스는 들어올때와 마찬가지로 내게 고개를 돌려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데미안 공자. 내가 알기로는 자네 나이가 나와 같다고 알고 있는데, 맞는가?"

"네. 전하. 올해로 열여섯 입니다."

"그렇다면 자네 역시 나와 같은 해에 아카데미에 들어가겠군. 아, 혹시 아카데미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나? 하기야 노엘에게 들은 바, 자네 정도의 실력자라면 굳이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만."

"과찬이시군요. 아카데미에는 입학할 생각입니다."

오르커스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스텔리아 아카데미. 황실의 이름을 딴 곳인 만큼 엄격히 학생을 가려 받는 곳이지만 제국의 귀족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고등 교육기관.

물론 어디까지나 자격이 주어질 뿐이지 반드시 입학을 해야한다는 법은 없다만 어떠한 사정이 있지는 않고서야 대부분 귀족가의 자제들은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 그 이유로는 인맥을 만들기 위함도 있고, 아니면 재능이 있는 인재를 자신의 가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나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니까.

"대체 왜? 그대가 그곳에서 배울것이 뭐가 있다고?"

오르커스는 나의 답에 의문을 재기하며 재차 질문 하였다. 황성에서 구를대로 구른 그가 귀족들이 아카데미에 입학이 필수가 아님에도 필수적으로 입학하는 이유를 모를 것 같지는 않다만.

나는 둘이 만찬장에 오기전 아버지께서 내게 하셨던 말을 떠올리며 그에게 이렇게 답하였다.

"아카데미에 다니는 이유가 반드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도 있겠군요."

그리고 다시 나와 눈이 마주친 오르커스. 그는 내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눈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니 지금 이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다행이게도 이에 관해서는 별 문제 없이 넘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보다 그거 하지마. 재수 없어.

"그렇지. 아카데미에서 얻는 것은 학업만이 아니지. 백작.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미리 이야기 해 두었는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지금 말 해두는 게 좋겠군."

뭐지. 또 무언가가 남아있는 건가?

오르커스는 다시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뜻 모를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뜻을 알고 계신 것인지 오르커스의 물음에 즉각적으로 답하시고는 내게는 아무말 없이 미소로 답하셨다. 그 미소를 보자 다시금 이전에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신 말이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설마.

"내 듣자하니 며칠 뒤에 남부에서 사냥대회가 열린다고 들었네. 황가에서 남부로 시찰을 나오지 않은지도 꽤 되었고 하니 폐하께서 이번 기회에 대회에 참가하는 겸 시찰을 병행하라고 명하시더군."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황제의 말은 진심이었나 보다.

사냥대회까지 앞으로 일주일하고 나흘. 적어도 그 이상은 저 두 남매가 크라우스에 머물 것은 확정이나 다름 없다는 소리였다. 하루 아침에 친구가 되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이곳에 머무는 시간을 사냥대회에 참가시킨다는 목적으로 늘려 버린거 아닌가.

대체 뭘 믿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황제에게는 아버지와 요하임 공작의 행동을 제한 할 수 있는 수단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게 말을 건내는 오르커스의 얼굴이 어딘가 씁쓸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자신있는 분야는 노엘과는 달리 마법쪽에 특화 되어 있었으니, 사냥대회에 마법사가 참가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만은 지금 봄철에 열리는 사냥대회는 마물이 아닌 동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무가들간의 순수하게 무예를 겨루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즉,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그 역시 활을 들던지, 병장기를 손에 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내게 한가지 걱정이 있는데. 그, 내가 사냥이란걸 한번도 해 본적이 없어서 말일세. 그래서..."

"와아아아아아!!!!"

오르커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만찬장을 울리는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오르커스에서 그 옆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소리가 멎자, 만찬장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말에 환호성을 지른 이는 다름아닌 오르커스와 같이 이곳에 온 노엘이었으니까.

찰나의 기쁨에서 벗어난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자신에게로 쏠린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숙이곤 말했다.

"아, 앗. 죄송해요...그, 너무 기뻐서..."

아니, 뭔데. 거기서 왜 당신이 그런 반응을 하시는 겁니까?

이 둘 분명 같이 오지 않았나. 왜 반응이 서로 다른거지?

노엘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오르커스를 바라보았다. 이전처럼 시선이 맞닿자 이번에 그는 곧바로 내 눈을 피하더니 이내 허허로히 웃으며 내 시선을 흘려넘겼다. 다만 귀끝이 빨개진 것이 노엘의 이런 반응은 오르커스 또한 부끄러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전 일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그는 웃음소리를 길게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가 끝나갈때 쯤, 그는 무언가 미처 말하지 못한게 생각이라도 난 건지, 아니면 화제를 바꾸기 위해서인지 모르게 다시금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 그...약혼 축하하네. 데미안 공자. 엘레나 공녀."

"...감사합니다."

참, 빨리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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