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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50화 (50/131)

< 50화 > 샛별 (7)

에스텔리아 아카데미는 크게 두가지의 컬리지로 나뉘어 진다.

기사학부와 마법학부.

똑같이 초월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지만 마도(魔道)와 무도(武道)라는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이들인 만큼 이 둘이 서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타 학부의 이가 다른 컬리지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학부들간의 합동 과제라던지, 아카데미에서 내려오는 과제들을 수행하려면 서로 소속된 곳이 다르다 하더라도 타 학부의 학생들이 서로 모여야 할 일들은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한 마법학부의 학생이 기사학부의 건물로 들어서자 모든 기사학부의 학생들의 눈길이 그곳으로 쏠렸다.

눈과 같이 새하얀 머리카락과 자수정을 닮은 투명한 자색 눈동자.

이러한 외모를 가진 이는 현재 에스텔리아 아카데미에서 단 한명 만이 존재했다. 제국에서 에르투웬과 쌍벽을 이루는 마법명가. 에델바이스 공작가의 혈족이 가지는 특징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엘레나 에델바이스. 그러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소녀는 자신을 향한 수많은 시선들을 뒤로 한채 기사학부의 건물을 거닐고 있었다.

마법학부의 학생이 이곳에 온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이는 그러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엘레나, 그녀가 어째서 기사학부에 들린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엘레나는 자신을 향한 시선들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금 이곳에 있을지도 모를 한 사람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엘레나는 괜시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어봤자 교수님에게 붙잡혀 가는 것 말고 무어가 있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엘레나와 지금 그녀가 찾고 있는 데미안은 며칠 전 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숨어든 이교도와 격전을 치룬 후 였다.

그러니 절로 경계심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모이던 장소에서 기다려 보았지만 그는 몇분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지 못한다면 못간다고 미리 연락을 하는 데미안이었기에, 아무런 말 없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에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혹시라도 이전처럼 이교도에게 습격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아니, 그럴리는 없겠지만...'

엘레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어 그러한 가정을 부정하였다.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주변이 너무 조용했으니. 분명 그녀가 알고 있는 그였다면 자신에게 생긴 이변을 알리기 위해 어떻게든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들었을 테니. 설령 변수가 생겼더라 하더라도 사전에 같이 움직이겠다고 약속했던 만큼 데미안이 혼자서 움직일 리는 없다.

그러니 그가 자리에 나오지 못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저, 혹시 기사학부 1학년. 데미안 크라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결국 엘레나는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기사학부 학생 한명을 붙잡아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래 그녀의 질문을 받은 학생은 당황한것 같았지만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해 줄 수는 있었다.

"데미안...? 아. 데미안 크라우스. 그 녀석이라면 아까전에 오르커스 황자님과 본관 정원으로 가던데. 그런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그렇군요. 대답 감사합니다."

대답을 들은 엘레나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학생을 뒤로한채 곧바로 그가 있다는 본관 정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방금전 학생의 대답으로 답은 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엘레나는 여전히 데미안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걱정에서 시작된 것이 맞았지만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데미안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사실 엘레나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걱정되서 찾으러 왔다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엘레나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박탈감이었다. 자신의 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듯한 느낌.

웃기는 소리이다.

데미안과 한 약속은 언제든 시간이 맞지 않으면 취소 될 수 있는 정도의 약속이었다. 반드시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기적으로 상황에 대해 보고를 할 뿐인 그런 형식적이고 일적인 만남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거짓은 없다는 것을 엘레나는 잘 알고 있었다. 온전히 자신과 그의 시간이었어야 할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가시지를 않는다.

어쩌면 그 상대가 오르커스이기에 더더욱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겠다.

그 역시 마법학부였으니, 그런 그가 일부러 데미안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오르커스가 그에게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꺼낼지는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엘레나는 달리는 내내 속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었다.

원래라면 이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만남이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는 빈번했으니. 이런 반응을 낼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도회에서 데미안이 노엘과 춤을 춘 이후로, 그때부터 무언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로 그와 단 둘이 있게 되는 그 시간에 집착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전과 같은 장소, 같은 행동,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다른 이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다.

이미 한번 시간을 되돌렸던 몸이지만 이전의 삶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느껴본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엘레나는 이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원인이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어찌해야 할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곧바로 화원에 서 있는 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데미안의 옆에서 서 있는 오르커스의 햇빛에 반짝이는 찬란한 금발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토록 찾던 데미안이 눈에 들어오자 엘레나는 숨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둘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래서..."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니 둘의 대화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한다. 굳이 마법으로 청력을 키우지 않아도 데미안에게 말을 거는 오르커스의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들어올 정도로 충분했다.

다만 그렇기에 엘레나는 둘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자네는 엘레나 공녀. 그녀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지?"

오르커스의 말을 듣자 엘레나는 가슴이 날카로운 비수에 찔린 것만 같았다. 자신이 회귀 이후 처음으로 바꾸어낸 운명. 하지만 그것이 지금 가장 되돌리고 싶었던 일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

그때는 이유가 있었다고 당장이라도 오르커스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뭐라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엘레나의 가슴을 난도질 하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괴로운 사실은 지금 오르커스가 하고 있는 말에 데미안이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어진 오르커스의 말이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엘레나의 마음에 쐐기를 박는다.

"그렇다면 데미안. 방금 그런 질문을 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노엘과 약혼을 하는 건 어떻겠는가?"

오르커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말을 듣자 엘레나는 뒷말도 듣지 않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벗어났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세상으로 도망을 쳤다.

그가 오르커스의 말에 무어라 답을 하였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다.

***

"구면이군. 그렇지 않은가? 엘레나 공녀."

따사롭게 내려쬐는 햇살에 오르커스의 금빛 머리가 반짝인다.

구면이라. 회귀 이전의 만남을 생각하면 확실히 구면은 맞다. 하지만 그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리는 없었으니 그가 말하는 것은 내가 크라우스 가문에 오기전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것일테다.

꽤나 오래전의 기억이었지만 그 기억은 다른 기억들과는 달리 전혀 빛바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 인생에 있어 첫번째 변환점이나 다름없는 이 기억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보석과도 같았다.

헤일리는 갑작스러운 오르커스의 등장에 굳어버려 미처 예를 취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방금 전 까지만 하여도 잠이 들것 같이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 앞에 황자가 등장 해버렸으니 뒤로 고꾸라지지 않은 것만 하여도 잘 한 것이었다.

나는 헤일리의 앞에 서, 그녀를 오르커스의 시야에서 가리고는 조심스레 인사를 올렸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본녀와의 만남을 잊지 않고 있어 주시다니 영광이옵니다."

오르커스는 나의 대답이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예법에 틀린 것은 없을 텐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변화를 눈치챘는지 금세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며 능청스래 답했다.

"하하. 이거 미안하군. 햇살이 너무 강해서 말일세."

그러니 방금 전의 일도 없던 것으로 하지. 라고 덧붙이며 말하는 오르커스. 역시, 방금 전 내가 그의 얼굴을 보고 눈살을 찌뿌린 것을 그가 못 봤을 리 없었다.

나 역시 그의 말에 가벼운 미소로 넘기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 이거 축하 인사 부터 해야했던가. 약혼 축하하네. 엘레나 공녀. 비록 아바마마께서 하시는 축복은 아니지만 그대들의 앞날에 행복이 있기를 축복하겠네."

오르커스의 손에서 튀어나온 빛이 곧 이어 복도의 위에 가루가 되어 흩뿌려진다. 따스한 태양의 따스한 온기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외신의 신성 탓일까, 아니면 축복의 주체가 오르커스 이기에 그런 것일까. 분명 강대한 신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축복을 받았을 때 만큼이나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의 선의에 감사를 표했다.

"그럴리가요. 축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다시금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뭔가 내가 웃을 때마다 저러는 것 같은데 이건 착각일까? 오르커스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는지 약간은 민망한 기색을 띄우며 창가를 바라보며 답했다.

"음...정말이지 오늘따라 햇살이 눈부시구만...'

태양의 신성을 가진 이가 햇살 탓을 하다니. 정말로 이것만큼이나 궁색한 변명이 따로 없었다.

화제를 바꾸려는 것인지 헛기침을 하는 오르커스.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린 그는 이전과는 달리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그건 그렇고 그대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데미안 공자도 이곳에 있다는 소리이겠지?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아까전 나와 대화 할때와는 달리 그의 행방을 묻는 오르커스의 얼굴에는 약간이나마 그림자가 낀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굳이 그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질문에 작게 고개를 저어 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 분께서 어디로 가셨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대충 어디에 있을지 짐작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알폰스를 찾으러 갔다는 사실 밖에 모르는 것 또한 맞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그리 답하자 오르커스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이거 일났군..' 이라며 작게 중얼 거리고는 내게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건내며 다시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가 모습을 감추자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정신이 다시든 헤일리에게 말했다.

"헤일리. 먼저 방에 가 있을래? 나는 잠시 어디 좀 들렸다가 돌아올게."

"네? 아가씨 어디 가시려고 그러세요?"

"연무장."

나는 그리 말하고는 곧장 성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리로 가는 발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을 건것 처럼 가볍기만 하다.

아무래도 오랜 친구와의 재회는 생각보다 빠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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