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샛별 (3)
"....으엉?"
전신을 둘러싼 푹신한 감각에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연무장에서 빌헬름과 대련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침대 위인 걸까.
찌뿌둥한 몸을 겨우겨우 일으키며 곰곰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여기까지 오기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명확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빌헬름의 대련을 받아들이고 나를 향해 날아오는 그의 검을 쳐냈다는 것.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은 노이즈 낀 사진을 보는 것 처럼 흐릿하게만 느껴졌다.
"설마...나 대련하다 기절이라도 한 건가?"
당시 몸 상태를 생각해본다면 대련 도중에 기절했다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만. 그래도 마지막에 엘레나의 얼굴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건 또 어째서 일까?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둘러보았다. 방금 잠에서 일어났기에 약간 몸이 무겁기는 하였지만 어디 다친곳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신기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분명 대련 중에 기절했다면 새벽부터 그리 몸을 움직인 만큼 내가 입고 있던 셔츠는 땀에 절여져있어야 하건만 지금 내게 입혀진 셔츠는 방금이라도 갈아 입은 것과 같이 깨끗하기만 하다.
몸에서도 시큼한 땀 냄새의 흔적한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은은한 라벤더 향이 내 코를 간질인다.
내 몸에 짙게 남겨진 그 향을 맡자, 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곧바로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에 담가 씻긴 것도 아닌데 이렇게 깨끗하다니, 그야말로 마법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창 밖을 내다보니 이미 하늘에는 별과 달이 걸려있었다.
이거 완전히 하루를 다 날려버리고 말았군.
이 방에는 시계가 없어 정확한 시간을 알 수 는 없었지만 그래도 달의 위치를 보니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있었는지 어느정도 짐작이 갔다.
그렇기에 뜻하지 않게 하루 세끼를 모두 거르고 말았다. 텅 비어버린 배는 내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먹을 것을 달라 아우성이다. 지금이라면 엘레나가 건내주는 마카롱도 한입에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이미 저녁식사는 끝이난지 오래, 먹을 것이 남아있을지가 의문이다.
그래도 얌전히 방안에 앉아 배고픔을 참고 있는 것 보다는 주방이라도 한번 가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옷걸이에 걸려있는 외투를 들어 방을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내 준비가 무색하게도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켄이 방으로 들어왔다.
"지금 쯤이라면 일어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나직히 말하는 그의 한 손에는 나를 위해 준비한듯 빵을 담아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타이밍 좋게 들어오는 켄의 모습에 놀랄 수 도 있겠지만 이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적응이 되서 그런가. 내게 있어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나는 켄이 놓은 바구니에서 빵을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간이 늦은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입에 씹히는 빵의 촉감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질겅질겅 삥을 씹어대는 나의 모습이 웃긴지 켄은 피식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백작님 이외에는 처음이군요. 도련님께서 이토록 진이 빠지신건. 제 평생 도련님께서 백작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말입니다."
"켄. 저 아직 열여섯이에요. 그리고 진 건....지지는 않았어요. 아마 그럴 겁니다."
끝에서 말을 흐리는 나의 모습에 농담이라며 쿡쿡 웃는 켄. 능글맞게 웃는 그 얼굴에 뭐라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빌헬름과의 대련에 대한 기억이 깡그리 날아가 버렸으니 무어라 말하고 싶어도 말을 할수가 없었다.
빌헬름은 북부 뿐만 아니라 제국 전역에서 알아주는 기사 중 한 명이었기에 열여섯의 어린 소년이 대련에서 한합에 검이 날아가지 않은 것만 하여도 주변 이들의 찬사를 받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내게도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불투명한 기억들 사이에서도 뚜렷하게 남아있는 그의 검격.
마치 사나운 늑대가 내 목덜미를 노리는 것만 같았던 그 검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단숨에 목이 날아갈 것만 같았던 매서운 검이었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나는 내가 그에게 지지 않았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물론 그 때 그 순간에 느꼈던 감상이었기에 결과가 어찌났는지 확실한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진짜로 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분명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졌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내가 그와의 대련에서 졌다고 한다면 내 몸 어딘가에 구멍이라도 한군데 나거나 팔 한쪽이 덜렁거려야 정상이지, 이렇게 몸이 멀쩡한데 내가 졌을리가 있나.
하지만 그걸 켄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니 나는 입을 꾹 다물고는 바구니에 담겨진 빵을 마저 씹어 넘겼다.
딱딱하기는 하여도 켄이 가져온 차를 마시며 먹으니 그래도 목구멍으로 넘길만은 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빵이 가득 담겨 있던 바구니는 그 바닥을 드러내었다.
어느정도 허기가 가라앉자 나는 다시금 검게 물든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완벽히 하늘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별들이 내가 얼마의 시간들을 의미없이 흘려보내었는지 알려준다.
그런 별들의 모습에 엘레나와 함께 보내었을 지도 모를 시간을 그냥 잠으로 흘려보내었다 생각하니 갑자기 아쉬움이 몰려든다.
이제 메로힘에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길어야 이틀 정도일까.
최대한 많이 이곳에서 그녀와의 추억을 가지고 싶었던 나에게 있어 시간을 이렇게 낭비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오히려 이곳에 온 후 신경써야할 일들이 산더미 처럼 늘어난 것만 같은데.... 세상 참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아직도 내 몸에서는 그녀가 남긴 라벤더 향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전보다 배는 예민해진 감각이 계속해서 그녀의 향기를 잡아줘,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도 엘레나의 얼굴을 자꾸만 떠오르게 만들고 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내 곁을 계속 맴돌고 있는 라벤더 향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방 한구석에 놓여진 작은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며 옷가지를 가지런히 고치고는 문을 열었다. 그런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랄만도 한데 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아 말했다.
"그리 서두르실 것 없으십니다. 아가씨께서는 아직 잠에 드시지 않으셨으니."
"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정곡을 찔러내는 켄의 말에 나는 소스라치며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온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늙은 집사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하면 평소에 실수하지 않을 것도 하게 되지요. 보세요. 지금도 브로치가 삐뚤어져 있지 않습니까?"
"아..."
켄의 말대로 거울을 다시한번 들여다보니 타이의 브로치가 약간 기울어진 것이 보였다.
그 외에도 옷의 구겨짐이나 다른 자잘한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천히 하나씩 되짚어가며 옷가지를 다시 한번 정돈하자 켄은 잔잔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였다.
"도련님. 아가씨를 만나신다면 굳이 핑계를 대시지 마시고 솔직히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내도록 하세요. 그게 더 좋을 겁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켄."
아주 그냥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구만.
켄의 조언에 나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답하고는 문 밖을 나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만이 유일하게 길을 밝히고 있다. 그 어둠이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속도를 올리지 않고 처음과 같은 보폭을 유지하였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자에 맞춰 걷자 조금은 흥분이 가라앉는 것 같다.
빛이 보인다.
사방이 어두웠기에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은 더욱 눈에 띄었다. 빛을 눈에 담자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은 온전히 평온을 되찾았다. 다행히도 켄의 말대로 아직 그녀는 잠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방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
잠이 오지 않는다.
평소대로였다면 지금 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어째선지 눈이 감겨지지가 않았다. 무언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던 것 같은데 그것을 그냥 흘려넘긴 것만 같다.
답답한 마음에 발코니로 나와 조용히 겨울성의 밑에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 보았다.
이전의 삶에서 부터 수없이 많이 보았던 광경이건만 곧 사르함으로 떠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걸까, 한동안 이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쉽네..."
말은 그렇게 하기는 하였지만 이는 눈 앞의 풍경을 보지 못한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이제는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한게 되어버린 그의 부재였다.
아쉽다.
지금 내 옆에 있지 않은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왜 내가 잠에 들지 못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깊이 고민 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냥 오늘 하루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이었으니까.
그 사실에 나는 난간에 기대어 작게 웃음을 흘리었다.
처음에는 그의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던 내가 지금은 단지 하루 동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걸로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그 사실에 여태껏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던 이전과는 달리 그와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나 또한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가 지금 곁에 없다는 것의 아쉬움은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있었지만 내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가지를 않았다. 지금 이 마음이 그만큼 그와 함께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졌다는 증거나 마찬가지 였으니.
『삐이이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작은 파랑새 한마리가 손 위에 내려 앉았다.
고운 푸른빛 깃털을 가진 파랑새는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파랑새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준 후 다시 하늘을 향해 날려보내주었다.
"스승님."
누가 저 새를 보고 저것이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라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골렘 마법의 대가이자 대마법사라고 불리우는 황금의 탑 탑주라고 할지라도 저렇게 정교한 마법 생물은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옛 스승이 보내온 저 새는 귀여운 외관과는 달리 어지간한 마법사는 간단히 때려눕힐 능력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을 위협하려 저것을 보내었으리라고는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삶에서도 본 이 파랑새는 그저 약속을 이행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그녀가 보내온 도구와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찾을 수 없겠지만."
나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파랑새를 향해 중얼거렸다.
용의 알은 용맥(龍脈)에서 흐르는 대지의 마력을 먹으며 성장한다.
그렇기에 여명의 탑이 세워지기 이전에 그녀는 자신의 알을 이곳에 흐르는 용맥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위에 탑이 세워지고 탑의 마법사들이 그녀의 알을 꺼내어 마탑의 비고 어딘가에 보관하는 것으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어느정도 마력을 먹기 이전 까지는 티가 나지 않는 것이 용의 알이었으니, 당시 그것을 발견한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저 마력을 흡수하는 돌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알을 찾으려면 그 방대한 비고를 전부 샅샅이 털어내는 수 밖에 없지만 5년만 기다린다면 알은 착실히 주위의 마력을 잡아먹으며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를 위한 것이 바로 이 파랑새이다. 알의 마력을 탐지한 순간 이 새는 나를 알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알과 정신으로 이어진 테이아는 정확히 알이 깨어날 시기를 알 수 는 없었어도 어림짐작은 가능하였기에 내게 이 새를 보내온 것이었다. 물론, 이미 몇차례 시간을 돌린 나는 알이 언제 깨어날지 정확히 알고 있다만.
테이아와의 약속을 되새기니 그 날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테이아와의 약속을 맺을 때 그가 매우 당황스런 얼굴을 지었었는데. 그야 그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그것은 나와 스승님과의 인연을 시작하는 계기였으니 놀랄일도 아니다만 만약 그가 나의 회귀에 대해서 알았다면 그렇게 까지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들은 수도 없이 많을텐데...기대되네."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런걸 원작파괴라고 하던가?
이전에는 그와 운명을 바꾸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지금은 가만히만 있어도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는 그가 원작이라 알고 있는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앞으로 뒤바뀌어 버린 미래에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상상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킨다.
주변 풍경이라도 보고 있으면 괜찮아 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효과가 없는 것 같다. 홀로 생각을 해보아도 아까와 같이 어떻게든 그와 관련된 주제로 이어지게 된다.
적어도 자기전에 그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아야 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똑 똑-
그리 마음을 먹은 순간,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본능일까.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문이 열리지 않았음에도 문 앞에 누가 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들어오세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지금의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도록 목소리를 조절하며 말한다.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그가 방으로 들어온다. 내 얼굴을 비추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분명 용의 것이었지만 거기서 그와 같은 날카로움은 없었다.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금안은 태양에 가까웠다.
나를 본 그는 작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밤이 늦었는데 왜 아직까지 안 주무시고 계셨나요?"
당신 생각이 나서...라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잠이 잘 오지 않아서요. 데미안은요? 왜 늦은 시간에 여기에 오신 건가요?"
에둘러 그리 말하고는 나는 되려 그에게 물었다. 늦은 시간 까지 잠을 자고 있지 않은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사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의 대답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분명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방의 불을 보고 들어왔을게 틀림 없었으니.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나의 질문에 잠시 눈을 피하던 그는 이내 작게 미소 짓고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발코니로 나와 내 옆에 선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더니 내게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잠에서 일어나니 그냥,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었어요. 엘레나."
귓가를 스치듯 지나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귀를 녹인다.
예상에서 한참은 벗어난 그의 답은 잠시간 내 이성을 증발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전처럼 그의 말 한 마디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백치로 변하지 않는다.
불어오는 바람에 올라오는 열을 식히며 비어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면서도 거세게 뛰어오는 그의 맥박에 나는 더욱 힘을 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을 잡은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며칠 뒤 사르함으로 떠나게 되면 더는 이와 같은 하늘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아쉽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남부에서 올려다 보는 하늘 역시 분명 이와 같이 아름다울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그에게 기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