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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38화 (38/131)

< 38화 > 불청객 (3)

메로힘은 중앙에 세워진 여명의 탑과 겨울성을 중심으로 발달된 도시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얀 극지에 세워진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북부 최대 규모의 도시답게 그 규모는 여느 다른 대도시와 비교해보아도 꿀리지 않을 정도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은 그들의 삶의 장애물이 아닌 그저 주변의 풍경을 감미롭게 만들어주는 장치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마탑을 중심으로 발달된 도시이기에 그런 것일까.

메로힘에는 아까전 내가 보았던 자동적으로 켜지고 꺼지는 마력 가로등 이외에도 마탑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여러가지 물품들이 존재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시내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편의 시설들이었다.

이런 도시 곳곳에 놓여진 편의 시설들을 생각해본다면 메로힘은 단지 기후만 좀 추울 뿐이지 사르함이나 여타 다른 남부의 도시들에 비해 높은 생활 수준을 자랑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마탑에서 나오는 은혜 였기에 에델바이스가 아닌 다른 이가 이곳의 주인이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을 것이다.

메로힘의 시민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와 함께 거리를 거닐고 있는 엘레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에서 확고한 충성심이 깃들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포도 꿀사탕 하나랑 사과 소다사탕 하나."

"네에~"

그녀의 입에 물려있던 빙당호로가 중심을 유지하고 있던 막대기 하나만을 남기고 사라지자 나는 그녀에게 줄 새로운 단것을 찾아내었다. 정확히는 우리 곁을 지나가는 아이들이 물고 있던 사탕을 보면서 눈을 반짝이는 엘레나의 모습에 찾게 된 것이지만.

메로힘의 모든 단것들을 섭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엘레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탕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나로서는 그 사탕의 출처를 반드시 찾아내야만 했다.

가게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방금 전 지난 간 아이들이 왔던 방향으로 쭉 걸어가다 보니 얼마지나지 않아 방금 전 보았던 사탕을 팔고 있는 가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사탕을 팔고 있던 주인장은 내 옆에 서 있는 엘레나의 모습을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래 뜨더니 이내 나와 엘레나를 향해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기계에서 곧바로 사탕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기계장치에서 쭈욱 뽑혀나오는 보라색 덩어리를 주인장이 막대기로 몇 번 휘젓더니 곧 내가 알고 있었던 흔한 동글뱅이 막대사탕의 모양으로 변했다. 지난번에 사르함에서 솜사탕을 만드는 것이야 빙의 이전에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었기에 그렇다쳐도 사탕이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건 그렇고 역시 마탑이 있는 도시는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처음 야시장에 나왔을 때만 해도 이전에 엘레나와 함께 사르함의 거리를 돌아다녔을 때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예상과 달리 두 장소가 주는 느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주변을 둘러보면 거리에 들어선 노점들마다 가지각색의 기계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마탑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답게 마도공학의 보급율이 다른 도시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그 수준이 다르다.

그렇다고 사르함이 깡촌이라는 것은 아니다만, 그냥 서로가 지니고 있는 색채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굳이 비유해보자면 메로힘의 야시장의 모습은 내 기억속 현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현대사회에서 살았음에도 그간 사르함의 모습에 적응되어 버린 것인지 이런 메로힘의 모습은 내게 색다르게 다가왔다.

"자, 여기 주문하신 포도 꿀사탕 하나랑 사과 소다사탕 하나 나왔습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주문한 사탕이 모두 완성되었다.

과일색에 알맞게 포도는 진한 보라색, 사과는 연한 녹색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주인장에게서 건내받은 사탕들을 모두 엘레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엘레나. 여기."

"아, 고마워요."

엘레나는 내게 사탕을 받자마자 주저없이 보라색 사탕을 입에 물었다.

다행히도 사탕의 맛은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켰는지 그녀는 입에 문 사탕을 오물거리며 한참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방금전까지도 달달한 것을 계속 입에 물고 있었는데 저 달아 보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넣다니, 단것을 잘 먹지 못하는 내가 다른 이들에게 혀가 어디 잘못된것 아니냐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하였지만 이런 엘레나의 모습을 보니 그녀 역시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잘못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후 엘레나는 만족했다는 표정과 함께 입에 물고 있었던 사탕을 바깥으로 꺼내었다.

그녀는 신나 보이는 얼굴로 내게 방금전 맛보았던 맛의 대한 감상을 말해주기 위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만 나는 엘레나의 얼굴과 마주하자 마자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흣!"

그녀의 입가는 하얀 도화지에 물감을 풀어버린 것 같이 사탕의 색과 같은 보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몇몇 사탕들은 색소가 그대로 혀에 묻는 경우가 있다던데 방금전 엘레나가 먹었던 것이 그러한 종류의 사탕이었나 보다.

"데미안? 갑자기 왜 웃으시는거에요?"

엘레나는 갑자기 웃고 있는 나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굳이 내가 그녀의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와 똑같은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아이가 우리의 옆을 지나갔으니 말이다.

그 아이는 아까전 우리가 이 사탕을 사도록 인도하였던 아이였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아까전의 깨끗했던 모습과는 달리 아이의 입가도 엘레나처럼 물고 있던 사탕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엘레나는 서둘러 자신의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데미안...."

"네? 왜 그러시죠?"

엘레나가 원망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당당했다.

내가 그녀를 이 사탕 가게로 데리고 간것은 사실이지만 먼저 그 사탕을 먹고 싶다고 한것은 그녀였으니까.

물론 말로는 하지 않고 눈빛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뼛속까지 파고들던 북풍은 어느 순간부터 아까와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따스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녀가 내뿜고 있는 마력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녀의 감정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인지 어느새 우리의 발밑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의 그녀를 놀렸다가는 주변이 어찌 변할지 모르니 나는 데미안에 빙의 된 이후부터 습관처럼 지니고 있던 손수건을 꺼내었다.

"가만히 있으세요."

보라빛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 밑으로 내렸다. 혹여 살이 쓸리지는 않을까 싶어 나는 그 어느때보다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며 그녀의 입에 묻어있는 색을 지워냈다.

손수건이 고급품이라 그런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잘지워지는 색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게도 엘레나의 입가에 묻어있던 얼룩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지워졌다. 손수건이야 당연하게도 그녀에게서 물든 보라빛 얼룩이 묻기야 했지만 애초에 그런 용도로 있는 물건이었으니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고, 고마워요..."

손수건으로 그녀에게 묻은 얼룩을 지워낸 후에도 그녀의 얼굴은 이전과는 다른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싫은 것인지 엘레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내 손에 들려있는 손수건을 보았는지 순식간에 그 손수건을 내게서 낚아채 자신의 손으로 가져갔다.

"저, 저 때문에 얼룩이 묻고 말았네요! 금방 닦아 드리도록 할게요!"

"네?"

허둥지둥 말하는 엘레나의 모습에 나는 잠시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손수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자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을 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자! 이제 깨끗해졌어요!!!"

내게 깨끗하게 표백된 손수건을 거내는 엘레나.

그래. 엘레나는 마법사였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런 「클린」같은 저위계의 마법은 영창도 없이 발현해 낼 수 있는 실력이 아주 뛰어난 마법사였다.

내가 멍하니 그녀가 건낸 손수건을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를 떠올린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기라도 하는것인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겉에 걸치고 있던 두꺼운 외투를 다시금 여매었다.

다만 어째서인지 내 주변에 부는 바람은 따뜻하기만 하였다.

***

우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피해 근처에 있는 어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맞으며 거리를 걷는 것 또한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는 일이었지만 만약 우리가 거리를 계속해서 걸어다녔다면 거리는 녹아내린 눈이 다시 얼어붙어 미끄러운 빙판길로 채워졌을 것이다.

유독 유동인구가 많은 오늘 밤이었으니 실제로 일어났다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겠지.

"엘레나. 괜찮..."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을 멈추었다. 아직까지 내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마 진정이 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보였다. 이럴때 말을 거는 것은 괜한 부끄럼만을 더해줄 뿐이니 말이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앉고는 나는 내가 들어온 곳이 어떤 곳인지 한번 둘러보기로 하였다.

밖에서 보기에 대충 분위기가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들어온 것인지라 정작 이곳이 무슨 가게였는지는 확인을 하지 못했었다. 그래도 진열되어 있는 책들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 이곳은 서점이면서 동시에 카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때마침 종업원으로 보이는 이가 우리에게 다가와 메뉴판을 건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엘레나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이전의 상태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내게 메뉴판을 건내주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감정 조절에 능숙하다는 것은 세계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 보다.

예상한대로 메뉴판에 적혀있는 것들은 대부분 디저트들로 간단한 먹거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엘레나가 계속 달달한 사탕류를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번 입가심을 해줄 필요가 있었으니 마침 잘 된 일이었다.

"로즈마리 하나. 엘레나는....재스민 하나. 그리고 팬케이크 하나로 부탁합니다."

고개를 살짝 들어올려 겨우 메뉴판을 확인한 엘레나는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켰다. 다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창가를 바라보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조차 내게는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주문을 들은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자리를 뜨자 나는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창가를 통해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았다. 눈은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다면 연락용 수정구를 통해 겨울성에 연락을 취해야 했다만 아직은 이 시간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까 주변을 둘러보니까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있는 것 같던데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실래요?"

엘레나는 나의 말에 아무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그녀는 내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였지만 내가 건낸 손을 살며시 잡고는 내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책들이 빽빽히 꽂혀있는 책장 앞에 도착하자 엘레나는 위에서 아래까지 한번 훑어보더니 곧바로 다음 블럭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핏보면 대충 둘러보는 것 같았어도 아마 그녀는 그 블럭에 꽂혀있던 책들의 제목을 그 짧은 시간안에 모두 확인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엘레나와 같은 재주는 없었기에 그녀의 반대편에 서서 천천히 책들을 살펴보았다.

한, 블럭의 절반쯤 살펴봤을 때일까. 그녀는 벌써 이 곳에 있는 책들을 다 확인한 것인지 다음 책장을 살펴보러 내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아마 그녀가 이곳에 있는 책들을 한번 다 둘러보는 것이 내가 이 블럭의 책들을 둘러보는 것보다 빠르지 않을까.

아무래도 한 줄만 더 둘러보고 그녀의 곁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이대로 그녀와 떨어져 있는다면 같이 둘러보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눈 앞에 놓여진 책들의 제목을 하나씩 읽어가고 있을때, 어떤 얇은 책의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매우 얇고 낡아있었기에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 정도 였지만 그 책에 적혀있는 제목이 내 머릿속의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내었다.

<설원의 용.>

드래곤에 관한 전설이야 여러가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이곳의 위치가 메로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의 제목은 내 머릿속에 있는 원작의 지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 책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것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탓일까. 언제나 날카로웠어야 할 감각은 무뎌져 있었고 나는 이 책을 향해 다가오는 또다른 기척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앗.""어."

나 말고 다른 이 역시 이 책을 집으려고 했는지 나는 어떤 사람과 손을 부딪치고 말았다.

동시에 그 손과 닿는 순간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감각이 내 전신을 찌르는 것을 느꼈다.

이는 정전기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이 몸에 새겨진 본능적인 거부감이었으며 동시에 묘한 동질감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서둘리 고개를 돌려 손의 주인을 찾았다.

나와 손이 맞닿은 사람 역시 나와 같은 느낌을 느낀 것인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 본것 처럼 매우 익숙한 눈동자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내 앞에 선 존재는 매우 황당하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너 뭐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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