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36화 (36/131)

< 36화 > 불청객 (1)

여명의 탑 제 6서고.

그곳은 지식의 보고라고 불리우는 마탑의 서고 답게 유구한 대륙 마법계의 역사 만큼 무수히 많은 서적들이 보관되고 있었다.

특히나 마탑의 서고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그곳에 보관되고 있는 마도서의 취급에 대한 것은 당연코 빠질 수 없는 이야기였다.

현 마법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는 일곱명의 탑주들.

그들은 각각이 대마법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들을 지니고 있었지만 대마법사라고 불릴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 반드시 탑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재야에 조용히 묻혀 연구를 계속하는 이들도, 아니면 에스텔리아 아카데미의 마법부 학장 미트로스 제럴드 처럼 마탑이 아닌 다른 기관의 요직에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 마탑들이 언제나 마법계의 선구자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역사와 그 역사가 만들어낸 어마무시한 양의 마도서들이 그러한 이유였다.

마도서라는 것은 단순히 마법을 배우기 위해 그에 대한 술식이 적혀있는 책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마력이 담겨있지 않은 마법서로 분류된다.

마법이라는 학문은 그저 이적(異跡)을 행하기 위한 것이 아닌 '초월'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과 같다. 마도서는 마법사가 그 길을 걸으며 생겨나는 부산물에 가깝다.

초월을 향한 길을 걸으며 그들의 안에 있는 진실된 자아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혜를 다른 이들이 알 수 있도록 남긴 것을 마도서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마도서는 만들어지는 순간 부터 단순한 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니게 된다.

신(神)으로 가는 길의 대한 지혜가 담긴 물건을 그저 글자가 몇자 적혀있는 종이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만큼 단순히 읽는 것 만으로도 그 지식을 체화시켜 주는 마도서와 단순히 술식이 적혀있을 뿐인 마법서의 차이는 매우 컸다.

마탑은 기본적으로 마법을 연구하는 연구기관이다.

이는 그들을 마탑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 시켜준다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마법의 시조로 불리는 첫번째 일곱마탑의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후학을 위해 많은 마도서들을 남겼고 그것이 세월이 흘러 쌓이고 쌓여 지금과 같은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듯 '지혜'를 독점하고 있으니 마탑의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확고해질 수 밖에 없었다.

현재의 일곱탑주 이전에도 탑주들은 존재했었기에 역대 탑주들이 남긴 마도서는 마탑의 서고 중 하나에 보관되고 있었지만 열람은 오로지 탑주만이 가능 한 방식으로 엄중히 관리되고 있었다.

대마법사라 불린 이들이 남긴 마도서 답게 개중에는 단 한 번의 발현만 으로 나라 하나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의 대마법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였으니 그런 위험한 물건을 소홀하게 관리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여명의 탑의 제 6서고 역시 그런 위험한 마도서가 보관되고 있는 장소였다.

여명의 탑이 다루는 마법의 근본이 되는 것은 별의 힘을 빌려 발현하는 '성위마법'으로 제 6서고는 그러한 성위마법에 대한 마도서들이 보관되고 있는 장소였다.

역대 탑주들 또한 성위마법을 통달했기에 그들이 남긴 마도서 역시 제 6서고에 보관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었다.

물론 제 6서고에 전대 여명의 탑주들의 마도서가 보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열람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으니, 어찌보면 여명의 탑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기초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위마법에 대한 책들이 모인 제 6서고는 가장 친숙한 곳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마도서를 읽는 것 만으로 그에 대한 지혜를 온전히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담겨 있는 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달랐고 그렇기에 오늘도 마법이라는 학문에 미쳐있는 마법사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정신을 더 깨우치기 위해 제 6서고에서 수학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시선을 앗아간 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현 여명의 탑의 탑주 요하임 에델바이스와 그의 딸 엘레나 에델바이스였다.

하얀 외관 덕에 '백색의 탑'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여명의 탑의 주인이라는 것을 온몸을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 두 에델바이스의 머리카락은 새하얀 순백색이었다.

제 6서고에 엘레나가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만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외모는 사람들의 이목을 한곳으로 끌어모았고 그것은 마법에 미쳐있는 마법사라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동안 메로힘을 떠나있었던 엘레나였기에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이 이목을 끈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탑주인 요하임까지 대동하고 있으니 절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잠시 엘레나와 요하임이 책을 꺼내들자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엘레나와 요하임이 어떠한 지위에 있든 이곳에 온 이상 그들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 였을테니. 그것을 알기에 그들은 더이상 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자신들의 손에 들려있는 마도서를 하나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정신을 쏟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엘레나는 이곳에서 그들처럼 지혜를 구할 생각이 없었다.

이는 그녀가 마법이라는 학문에 흥미가 없어서가 아닌 이미 이곳에 있는 모든 마법을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회귀'를 하여 시간이 되돌아간다고 하여도 그녀의 정신마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엘레나. 밤하늘의 떠 있는 별들은 모두 저 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그 이름에는 힘이 깃들어 있고. 성위마법이란 이를 이용하여...."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요하임의 입에서 흘러 나온다. 그럼에도 엘레나가 이곳에서 요하임에게 마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이유는 모두 그녀가 요하임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엘레나가 요하임에게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은 그저 외로워하는 아버지를 위해 급하게 만들어낸 핑계에 불과했다.

원래 그녀의 계획대로 라면 지금쯤 데미안과 함께 겨울성을 걸으며 그에게 겨울성에 깃든 자신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야 했을 테지만 그 이전에 요하임이 자신과 데미안을 데리고 어딘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전에 짜두었던 계획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으니 엘레나는 급히 요하임을 멈출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해야만 하였다.

"여명의 탑에 쳐져있는 결계 역시 별의 힘을 이용한 것이지. 그것들이 무슨 별인지 알고 있니?"

"헥스, 리겔, 듀로아 세가지요."

"잘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른..."

하지만 엘레나는 그저 핑계에서 비롯된 일에 불과했던 요하임과의 수업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점점 마음에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세번의 삶을 사는 동안 엘레나가 요하임에게 딱히 가르침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그녀는 요하임을 능가하는 천재였고 마탑에 있는 마도서들은 읽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그녀의 것으로 온전히 만드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그녀에게도 스승이라는 존재가 생기게 되었지만 그것이 요하임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엘레나에게 있어서도 아버지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미 요하임이 지니고 있는 그 이상의 지식을 지니고 있는 엘레나였기에 그가 건내는 질문은 그녀에게 있어 문제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녀는 기쁜 얼굴로 요하임의 말에 답했다.

요하임 역시 자신이 내는 문제에 환한 미소와 함께 답해주는 딸을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엘레나가 마지막 답까지 막힘 없이 말하자 그는 작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역시 내 딸이야. 모르는 것을 하나도 막힘 없이 술술 답할 수가 있다니, 이거 세기의 천재가 따로 없구나. 그래서 궁금한게 뭐라고 했지?"

"앗!...그, 그러니까.."

요하임의 말에 엘레나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답하는 것을 즐기다 보니 모르는 척 하는 것도 까먹은채 술술 답해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요하임은 당황하는 엘레나를 보며 웃고만 있을 뿐. 딱히 이 일로 그녀를 꾸짖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다시 접어 책장에 넣고는 엘레나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나 그 녀석이 좋더냐?"

"......네."

요하임의 말에 엘레나는 옅게 얼굴을 붉히며 작게 답했다.

그 모습을 본 요하임은 아무말 없이 엘레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 애정어린 손길에 엘레나는 요하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자신의 머리를 내주었다.

"너는 어릴적 부터 말이 별로 없는 아이였지. 그리 잘 웃지도 않고 말이야. 그 때문에 나와 아델라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었는지....그런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어릴적 부터 자신의 감정에 대한 표현이 적었던 엘레나였기에 요하임은 잠깐 사이에 밝게 변해버린 딸아이의 모습이 낯설기는 해도 보기에 좋았다.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해준 데미안에게 감사인사라도 전하고 싶을 정도였다.

'엘레나의 눈가에 물자국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곧바로 빙옥에 가둬버려야지.'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것은 있었다만.

"지금쯤이면 녀석도 데미안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겠지. 이제 그만 돌아가자꾸나. 밖에 나가려면 또 준비를 해야할테니."

요하임이 그리 말하자 엘레나는 그 어느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서둘리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였다.

스스로도 엘레나가 저리 반응할 것을 알고 있었던 요하임이었지만 막상 눈으로 직접 보니 입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환하게 웃는 엘레나의 모습에 기쁘면서도 저 모습이 자신이 아닌 데미안에 의한 것을 생각하니 입가에 쓴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

"아버지도 참. 이미 알고 계셨으면서....."

대체 언제부터 눈치채신 것일까.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일지도.

겉으로는 세상 그 누구보다 진중해 보이시는 아버지시지만 속에는 장난끼 가득한 소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의 성격상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말하지 않으신게 틀림 없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간단한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어느순간 부터인지 아버지와의 대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데미안과의 시간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 밖에 없었지만 그 사람이 아버지였기에 그런 것일까. 막상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에 대한 아쉬움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가려져 있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 뿐이지 자신에게 있어 이 겨울성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곳에서의 끊어졌던 인연들과 재회했다는 사실들을 떠올려본다면 그것 역시 그를 향한 마음 만큼이나 소중한 것들이었다.

실제로 사르함에서 그와 나들이를 나갔을 때와 같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겨울성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자신의 몸을 감싸안는 이 편안함에 마음이 묘하게 들떠 있었다.

그렇기에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걸까.

평소라면 그와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얼굴을 붉히며 굳어버리는 내가 여태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그리도 쉽게 꺼낼 수 있었던 이유들이 이곳이 자신에게 있어 가장 편안한 장소였기에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속으로 그를 계속 생각하고 있던 탓인지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와 만난 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던 측은한 아버지의 눈빛은 아직까지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자동적으로 그리 되는 걸 어쩌겠는가. 아무리 아버지께서 그런 눈빛으로 보아도 그를 향한 마음을 숨기는 것이란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이었다. 숨기는 것은 이전의 삶에서 했던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보다 그는 괜찮으려나..."

오늘 조찬이 끝나고 아버지에게 들은 말에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이 떠올리니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가 버렸다.

아마 지금 그의 상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때 자리를 떠나는 자신을 향해 보내오던 그의 눈빛은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를 연상케 하여 귀여웠었는데 말이다.

프란츠의 성격을 알기에 그가 속으로 걱정하고 있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연회에서 아버지가 말하신 불청객이 누구인지는 이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프란츠 에르투웬이 펼치는 공간격리의 결계가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아버지도 눈치챈 것을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을리 없었다.

그와 에르투웬 공작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큰 걱정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에르투웬 공작과 크라우스 백작의 분위기와 성격은 상당히 비슷했으니 말이다.

그에게 말을 꺼내던 아버지께서 웃고계셨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아버지 역시 그가 에르투웬 공작에게 시달릴 것을 이미 알고 있으셨던 것 같다.

"엘레나아...."

아니나 다를까 지금 막 자신의 눈에 들어온 그의 모습은 추욱 늘어져 있는 것이 마치 슬라임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대체 어찌 시달렸기에 그가 저리 진이 빠진것일까. 그것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저 웃으며 그를 맞아주기로 하자.

무엇보다 이렇게 축 늘어진 그의 모습을 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서둘러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데미안 왜 그런 모습.....어..어.어어..."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는 내 예상과 다르게 그의 앞에 서는 순간 내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건내기도 전에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품에 안더니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사여왔다.

갑작스레 전신을 감싸안는 그의 온기와 더불어 귓가에 파고드는 미성에 순간적으로 사고가 마비되었다. 분명 그가 이렇게 안아주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건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자신의 머릿속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의 온기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가 내게 안겨왔는지에 대한 생각은 불가능했다.

이성이라는 것은 이미 지워져 하얗게 표백되어 버린 나의 머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본능에 따라 조금 더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 품 속으로 파고드는 것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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