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막간
어제 엘레나는 데미안과 함께 이전에 약속했었던 나들이를 나갔었다.
이전에 데미안에게 꽃을 좋아한다고 말해서 그런지 데미안이 고른 장소는 데이지가 잔뜩 피어난 한 언덕이었다. 그곳은 데이지 뿐만 아니라 넓고 탁 트여있는 풍경 덕에 사르함에서도 영주성에 있는 화원에 꿀리지 않는다고 알려진 명소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엘레나가 그 언덕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 본 풍경은 가슴을 뻥 뚫어주는 것 같은 상쾌함을 가져다 주었었다. 그 아래로 피어난 데이지의 하얀 꽃잎들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모습은 이실리아관의 있는 화원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전에 약속했던 디저트도 매트도 모두 준비해둔 데미안이었다.
그렇게 단 둘이 그 장소에 오붓이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면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이 완성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있던것은 엘레나와 데미안 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음? 아버지 여기에 와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럼 여기가 내 영지인데 한번도 안 와 봤겠냐. 물론 조금 오래되기는 했지만 말이야. 생각해보면 내가 너희 어머니에게 처음 마음을 전한 곳도 이곳이었지."
"와! 정말이에요?"
"...의외네요. 전 당연히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략혼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어머니께서 아버지랑 결혼하실 이유가 없는데 말이죠."
"나한테는 분명 아들이 두놈이 있었는데 내 착각이었던건가. 어째 알폰스 저 아이만 내 아들인 것 같구나."
데미안의 아버지 아서 크라우스 백작과 동생 알폰스 크라우스.
그 둘 또한 이 나들이에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던 걸까라고 엘레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데미안의 이런 행동은 자신이 지난번에 말했던 말 때문이라는 결과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가족과의 시간.
분명 엘레나는 그것이 데미안에게 부족하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의 데미안은 이전 보다 더 알폰스와 많은 시간을 보내었고 엘레나가 보기에도 요즘 그 둘의 사이는 이전보다 확실히 가까워 진 것이 느껴졌다.
이전의 삶에서도 알폰스와 데미안의 우애가 두터웠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둘의 관계에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알폰스와 데미안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을 수 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전과 같은 관계를 반복하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은 엘레나에게 있어 큰 성취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이런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변화는 지금 이 삶이 엘레나가 겪었던 그 어떠한 시간선과도 동일한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변화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알폰스와 데미안의 관계 뿐만 아니라, 엘레나 에델바이스와 데미안 크라우스의 사이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데미안이 엘레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처음 만났었던 그 때와는 달리,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 벽을 치며 다가오지를 않던 데미안이 오히려 스스로 조금씩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작은 변화 하나가 그녀가 이번 회귀를 통해 느낄수 있었던 가장 큰 기쁨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시아버지와 도련님과 함께하는 나들이를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만.
데미안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엘레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가족을 잃었을 때, 그녀가 가족을 잃었을 때 서로 그 아픔을 나누었기에 그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속이 좁지는 않다.
그래도, 그래도 약혼자와 한 약속인데...
괜히 이상한 생각을 하지 말자고 스스로 몇번이나 되내였던 엘레나였지만 그래도 그때의 분위기와 약속을 생각하면 당연히 단 둘이 가자고 말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주위에 히아신스 향기가 가득하던 그곳에서 그가 말했다.
'엘레나. 지난번에 함께 피크닉을 가자고 했던거 기억하십니까.'
'아, 네! 물론이죠.'
'좋은 장소 한곳이 떠올라서 그런데...'
'좋아요!'
데미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좋다며 답을 내놓은 엘레나. 그 모습에 데미안은 고맙다며 작게 웃으며 말했고 그것을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알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폰스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웃어보았지만 데미안의 눈을 속일 수 는 없었다.
'알폰스.'
'아, 형님. 그, 두분이서 조심히 다녀오세..'
'너도 같이가자.'
'네?' '엣.'
'물론 아버지도. 생각해보니까 알폰스 너는 성 밖을 나가본적이 없었지. 이참에 가족 모두가 다같이 나들이를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어떠니?'
'조, 좋아요!! 자, 잠깐!! 형님 저 바로 준비하러 갈게요!!'
'어? 알폰스? 아직 아버지께 이야기 안했....가버렸네. 그럼 저도 아버지께 이야기하러 가야겠네요. 엘레나. 방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네에.....'
데미안의 사소한 행동들이 얼마나 엘레나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지는 엘레나 본인도 잘 알고 있다만 그래도 이 때 데미안의 말에 머릿속의 든 생각들을 다시 떠올려 보면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어쩌면 그때 피크닉을 가자고 약속을 하던 때에도 데미안은 데이트 신청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나들이를 나가자고 한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때 약속이라 말하면서 알폰스와 크라우스 백작을 불렀을리 없으니 말이다.
아직 데미안과 함께 있던 시간도 얼마되지 않았으니 데미안이 엘레나보다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는 하다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 서운한 마음을 완전히 지워낼 수 는 없었다.
약혼녀인데 동생한테 밀린다는 것의 패배감이란, 그래도 이전에는 애초에 저울에 올려질 기회도 없던걸 생각하면 이걸 좋아해야하는 것인지 말아야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엘레나였다.
"아가씨. 언제까지 누워계실 거에요."
"헤일리....나 오늘 여기서 꼼짝도 안할거야. 오늘은 그냥 이불 속에서 살래."
초월을 경험한 적이 있는 엘레나라고는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크라우스 가문의 피크닉을 다녀온 그 다음날 엘레나는 실망감, 기쁨, 부끄러움 등 여러 감정의 영향으로 인해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녀의 전속 하녀인 헤일리는 삐진 어린애 처럼 이불속에서 꿈틀 거리는 모습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계속해서 그녀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려 하였다.
물론 엘레나는 마음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다만 헤일리가 방을 나가지 않고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이불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헤일리. 왜 짐을 정리하고 있는 거야?"
"아, 이거요? 오늘 아가씨 방을 옮긴다고 해서 말이죠. 여기는 손님방이잖아요. 아직 정식으로 약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가주님께서 아가씨와 데미안 공자님의 관계를 보고 그냥 손님방에서 지내게 할 수 는 없었던 모양이에요."
"어? 그러면 나는 이제 어느 방에서 지내게 되는 거지?"
"그건..."
똑똑-
헤일리가 말을 꺼내기 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일리는 노크 소리에 일어나실 자신의 주인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엘레나는 정말 오늘 하루 종일 침대에 있을 것 처럼 이불을 푹 덮은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헤일리는 한숨을 쉬며 방문을 살짝 열었고 그 자그만한 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인 데미안의 전속 집사 켄이었다.
"켄 아저씨. 안녕하세요."
"헤일리. 아가씨는?"
"아가씨께서는...음, 어제 있었던 피크닉이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자리에서 일어나시지 못하시네요."
"이런...도련님께서 아가씨를 찾으시던데. 아마 오늘 방을 옮기는 것 때문에 같이 시내에 나가시려고 하셨던 모양이야. 안타깝구만. 도련님께는 내가 잘 말해두겠ㄴ.."
"켄. 어디로 가면 되나요?"
갑자기 활짝 열리는 문.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나온 것은 엘레나였다.
순백색 머리카락은 방금 말린 것 처럼 뽀송뽀송 했고 옷차림 또한 미리 준비라도 해두었던 것 처럼 단정하기 그지 없었다. 방금전까지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헤일리는 그런 엘레나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켄은 그저 갑자기 나타난 엘레나의 모습에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을 뿐이었다.
"아가씨..."
헤일리는 알고 있다. 지금 저건 엘레나가 마법으로 이루어낸 일이라는 것을.
여태까지 쓰고 있지 않았을 뿐이지만 저 정도의 기적을 부릴 수 있는 실력이 아가씨에게 있다는 사실을 헤일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자신이 몇시간에 걸쳐 만드는 모습을 한순간에 마법으로 해내는 모습에 헤일리는 또 다시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유가 그 때문이기를 빌었다.
***
달리고 있는 마차의 안.
어제와 똑같은 마차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이 나와 그 단 둘 뿐이라는 점일것이다.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아마 웃고 있을게 분명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우중충했던 기분이 지금 그와 단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햇빛이 들어오는 것 같다. 애써 기쁘지 않은척, 멀쩡한 척 하려고 하여도 내 얼굴은 솔직하기만 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요즘 고민이 있을 만한 일이 있었나? 알폰스와 관련된 문제는 어제를 끝으로 완전히 풀렸을 텐데 어째서 그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어제 헤어질때만 해도 그 어느때보다 활짝 웃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나의 시선을 눈치채고 나를 바라보자 얼굴빛이 더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설마 그 원인이 나인가?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려고 할때 먼저 입을 연것은 그였다.
"미안해요. 엘레나."
갑작스러운 그의 사과에 잠깐 사고가 정지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성을 되찾는 것은 빛보다 빨랐으며 하늘에 닿은 나의 지성은 그가 어째서 나에게 사과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원인을 곧바로 찾아내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도 나오는 뻔한 이유였다.
"어제 일 때문에 많이 피곤해 하셨다고 켄에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약속을 이용해 저희 가족일에 끌어들이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그럼 그렇지.
그도 내가 그와 단둘이 피크닉을 가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알폰스와 크라우스 백작과 같이 갔던 것은 순전히 그들이 그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알폰스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그날 바로 아버지에게 달려갔던 것 처럼 그는 언제나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일을 우선시 하니 말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아니에요. 어제는 저도 즐거웠는걸요."
즐겁기는 했다. 돌아오고나서 계속 꽁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약 그가 나를 두고 알폰스와 크라우스 백작하고만 피크닉을 떠났더라면 많이 섭섭해 했을 것이다.
마음이라는게 참 갈대 같다. 이러면 또 저쪽으로 흔들리고 저러면 또 이쪽으로 흔들리게 된다.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나? 이전의 나는 좀 더 똑 부러지고 흔들림 없는 아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럴까.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 기분 좋은 질문을 속으로 계속 반복하였다.
여전히 잘못했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니 무언가 속에서 간질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를 그의 바로 옆으로 옮기고는 손을 들어 그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그는 내 이름을 불렀고
"에에레냐아?"
"풉."
나는 늘어지는 그의 발음을 듣고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금 이게 그가 나를 놀릴때 느끼던 감정인가. 왜 그가 이런 행동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볼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었다.
"데미안. 저는 정말 괜찮아요. 저 또한 당신의 가족이 아닌가요."
영주성에서 지내면서 모두에게 한번씩은 했었던 말.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이리 말해본적이 없었다.
나의 말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전처럼 부정은 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맞아요. 엘레나. 당신은 제 약혼자 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식도, 반지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의 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
마차의 도착지는 사르함의 중심지 한가운데 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모이는 것이 느껴진다. 과거에 수 없이 많이 받아본 사람들의 시선이었지만 거기에 담겨있는 감정이, 곁에 있는 이가 있으니 이전과는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다.
나와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도심을 누비고 다녔다.
길가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도 사서 먹어보고 떠돌이 음악가의 거리 공연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총 세번의 삶을 사는 동안 나는 이곳 사르함의 거리를 제대로 즐겨본적이 한번 도 없었다.
첫번째는 데미안에 의해 1년 내내 영주성에서 지내야만 했었고 두번째는 나 스스로 이곳을 떠났었다. 다시 사르함에 왔을 때의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 가깝거나 이미 치열한 전장으로 변해버린 후 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리의 사람들의 미소는 영원할 것이고 지금 나와 거리를 걷고 있는 그와의 시간 또한 변치 않을 것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우리는 어느 순간 부터 한 공방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으로 자신을 인도한 것은 다름 아닌 그였다.
"데미안 여기는?"
"아, 이제 방을 옮기게 되셨으니 새로운 가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엘레나의 취향에 맞추어 고르시면 됩니다."
"네?"
"크라우스에는 한가지 전통이 있습니다. 안주인을 떠나보낸 이실리아관의 남은 물건들은 몇가지를 제외하고 정리를 합니다. 원래라면 어머니께서 떠나셨을 때 정리를 시작했어야 했지만 저 때문에 아버지께서 건들이시지 않고 계셨습니다만."
"그런데 왜 제가 가구를....?"
"헤일리에게 못 들으셨습니까. 이제부터 그곳의 주인은 당신입니다."
?????
한순간에 영주성에 딸려있는 별채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아니, 언젠가는 될 생각이었고 그곳에서 그와 함께 사는 상상도 여러번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주인이 되었다고 들으니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분명 기쁘다는 감정을 느끼고는 있지만 감정이 상황의 변화를 따라잡지를 못하고 있다.
"엘레나. 당신이 그러셨지요. 우리는 '가족' 이라고. 어젯밤 아버지와 이야기는 이미 끝내두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까지 앞으로 1년 정도 남았으니 옷 또한 골라두는 것이 좋겠군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가구를 고르고 난 뒤에는 곧바로 의복점으로 가도록 하죠."
아이러니 하게도 복잡했던 머리를 정리하게 만들어준 것은 그의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두 내가 원하던 일들 아닌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공방에 발을 들이려는 순간 머리 속에 번개가 치며 그동안 내가 한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락...안했어요."
"네?"
"아버지께 연락하는 거 잊고 있었어요..."
그동안 그와 다시 만났다는 것에 심취해 이곳에 있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이틀의 한번은 연락해야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야 자신은 저번 삶에서 약혼은 하지 않고 그대로 공작저로 돌아왔으니 첫번째 삶에서 들었던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것도 첫번째 삶에서 아카데미에 가기전 데미안이 자신을 공작저로 보내지 않으려 영주성에서 감시했었던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잊어버릴 뻔한 기억이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영주성으로 돌아온 그날 밤.
크라우스 백작의 통신구를 통해 공작저로 돌아오라고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