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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9화 (19/131)

< 19화 > 동생은 누나가 필요합니다. (7)

크라우스 백작가의 영주성은 오늘따라 유난히 활기가 넘쳤다.

봄의 생기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성을 떠들썩하게 만들 수 는 없을 것이다.

지금 성이 이토록 분주해진 이유는 오랜만에 있는 성의 주인의 외출 때문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외출이 아닌 자신의 두아들을 데리고 함께 나들이를 간다는 소식 이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족간의 나들이가 뭔 대수라고 그리 요란스럽게 행동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영주성의 사용인들은 지난 몇년동안 이곳에서 일한 이들로서 크라우스 백작이 안주인이 죽고 난 후 자신의 막내아들을 밖으로 보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위로 하나 있는 아들 데미안은 열여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릴적 부터 지나치게 의젓하였었지만 이제 일곱살이 되는 알폰스는 귀여운 외모와 더불어 데미안과 달리 딱 그 나잇대의 어린 소년의 모습 때문에 성의 사용인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이 알폰스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었는데 여태껏 영주성 밖을 나가본적이 없는 알폰스의 처지를 가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크라우스 백작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가지 중요한 것은 지금 있을 나들이가 그들이 사랑하는 막내 도련님의 기념비적인 첫 바깥 구경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인지 모두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뭘 그리 자꾸 바퀴를 들여다 봐! 다른데 바쁜거 안보여?"

"야, 근데 아무리 그래도 불안하단 말이지. 이거 혹시라도 가다가 부러지면 어떡하냐."

"그거 때문에 바퀴들 아예 새로 다 갈아끼웠잖아."

"창고에 있던게 이미 삭은 거였으면? 그러고 보니 막내 도련님은 마차 타는 것이 이번이 처음 아니야? 혹시 타시다가 멀미라도 하시면 어떡해."

".....그냥 네가 내려가서 바퀴 새로 사와라. 나는 저 마차 시트를 손 보고 있을 테니."

한 두번이면 족할 마차를 계속해서 점검하고 있고 거기에 한 술 더 떠 혹여 타다가 멀미를 하시지는 않을까 싶어 기존의 마차 시트를 뜯어내고 아예 새로 깔아버리기도 하였다.

주방장은 전날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알폰스가 좋아할 음식들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들이의 호위를 위해 차출된 기사들은 그 어느때보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크라우스 가문의 나들이.

그 중심에는 데미안이 있었다.

***

그 날 엘레나와 대화한 이후 나는 며칠 동안 알폰스와 같이 시간을 보내려 노력해 보았다.

시간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태껏 공부와 단련에 쏟고 있던 시간을 약간만 줄이면 될 일이었다. 솔직히 내가 그 두가지의 쏟고 있는 시간은 과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기에 내게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미래의 벌어질 일들에 대한 불안감들은 나 자신을 그리 여유롭게 만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 정해진 이야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주인공이 아닌 데미안이라는 악역을 배정받은 나로서는 그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엘레나 에델바이스의 이야기' 바깥에 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에 대한 불안감들은 나를 계속해서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 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만족하지 못하였다. 엘레나를 만나기 전까지의 내 삶은 끊임 없이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햄스터와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것들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하지만 원작과는 달라진 엘레나와의 관계 덕분일까. 그녀와 보냈던 하루라는 짧은 시간은 나의 많은 것을 바꾸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나를 향해 웃어줄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나는 갑자기 떠오른 그 생각을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사실 이유는 그리 중요치 않다. 그녀가 내 곁에 있음으로 나는 나를 옭아매고 있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고 그 덕에 지금 동생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누님. 이 히아신스의 색. 꼭 누님의 눈동자 색과 같아 누님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머. 칭찬 고마워요. 알폰스."

물론 그렇게 생겨난 시간이 온전히 나와 알폰스 만의 시간은 아니었다.

현재 엘레나는 우리 영주성에 손님으로 온 상황.

그것도 크라우스 차기 가주의 약혼자라는 신분으로 온 것이다. 아직 반지를 서로 나눈 정식 약혼은 아니지만 현재 성에서 그녀는 차기 크라우스의 안주인 신분으로 대우 받고 있었다.

당연히 약혼 관계에 있는 만큼 나는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것은 알폰스와의 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번에 있던 식사 이후 둘의 관계는 많이 가까워졌는지 알폰스는 엘레나를 '누님'이라 부르며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일을 끝마치고 알폰스에게 가면 둘이서 먼저 이야기 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둘이 같이 웃으며 이야기 하는 모습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마음 쪽 한 구석에서는 동생을 빼앗긴것 같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물론 알폰스와의 거리도 이전보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만 그래도 서운한 것은 서운한거다.

어쩔 수 없나. 그동안 내가 동생에게 신경 써주지 못한 업보라고 생각하자.

우리는 지금 저번에 나와 엘레나가 걸었던 이실리아관의 화원에 있다. 백작가의 영주성에는 여러 화원이 있지만 히아신스가 심어져 있는 곳은 이실리아관 밖에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알폰스는 이실리아관에서 내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했다. 어머니의 일기장에 적혀 있는 일들을 하나 둘 씩 알폰스에게 말해줄 때면 나 또한 그 때의 기억에 잠기게 된다.

이전과 달리 나는 추억에 매몰되지 않았다.

단지 그때의 아름다웠던 나날을 그 자리에 없었던 동생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아닌 나, 데미안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나 또한 내가 신경쓰지 못했던 알폰스의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저는 어머니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어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족은 형님과 아버지 뿐이니까."

"그럼 이실리아관에는..."

"제가 이실리아관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간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어요. 그냥 언제나 형님과 아버지께서 저를 통해 보고 있는 누군가가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내 동생은 내 생각보다 상당히 어른스럽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게 일곱살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인지 의심될 정도다. 사실 알폰스도 나 처럼 빙의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쓰신 일기장을 보고, 또 이렇게 형님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도.....만약 어머니께서 저를 보신다면 어떤 말을 하실지 궁금해져요. 저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어보고 형님과 아버지께서 기억하고 있는 그 곳에 같이 있고 싶어요."

어쩌면 알폰스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 이전보다 더 어머니의 대한 그리움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폰스는 내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도 저는 괜찮아요. 저에게는 저를 이렇게 생각해주시는 형님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강하신 아버지도, 그리고 예쁘고 상냥하신 누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형님은 저를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행복한 아이에요."

비어진 어머니의 자리는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공백을 채울 추억은 앞으로 쌓아가면 된다. 다만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은 원래 악역이었던 나의 존재가 앞으로의 미래의, 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 다는 것이었다.

원작에서의 크라우스 가문은 데미안을 제외한다면 선역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행복했는지는 나는 모른다. 그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설 속 조연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가 데미안이고, 내가 크라우스의 차기 가주이자 그들의 가족이다.

나는 나의 가족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것을 떠올리자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이 다시금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감고 있던 눈을 떠 엘레나를 찾았다.

히아신스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알폰스와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언제 그랬냐는듯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그녀와의 파혼을 생각하던 내가 이런 꼴이 되다니 참으로 웃긴 일이다. 분명 언제가는 멀어질 것을 알고 있는데도 지금 나는 왜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녀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기에 그녀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보여주었던 엘레나 에델바이스 그녀의 모습에 이끌리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두가지 전부 다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돌리며 알폰스와 대화할 때와는 또 다른 얼굴을 하는 엘레나.

나는 그런 그녀에게 똑같이 웃어주며 말했다.

"엘레나. 지난번에 함께 피크닉을 가자고 했던거 기억하십니까."

이 불확실한 감정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내가 그녀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졌다는 것은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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