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8화 (18/131)

< 18화 > 동생은 누나가 필요합니다. (6)

어둡다.

세상을 밝혀주던 황금빛 태양은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더 이상 이전처럼 세상을 밝혀주고 있지 않았다.

무너져 내린 일곱 마탑의 탑주들 중 살아남은 넷이 만들어낸 '희망의 빛'이 현재 이 세상을 밝혀주고 있는 유일한 빛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ㅡ!!

소름끼치는 괴성이 온 세상에 울려퍼진다.

세상의 어둠에 몸을 숨긴채 다가오는 이계의 마물들이 내는 소리였다. 듣기만 하여도 마음속의 공포라는 감정을 자극하게 하는 그것들의 울음소리는 많은 이들에게 있어 절망을 안겨주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마물의 불길해 보이는 붉은빛 안광 뿐이었다.

초인(超人)이라 불리우는 기사가 셋은 붙어야 승리를 생각할 수 있는 그것들이 거대한 군세를 이루며 어느 한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곳은 과거 사르함이라 불리던 곳.

크라우스라는 이름 아래에 무궁한 번영을 누리던 황금의 땅이었다. 외신들의 침공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성벽과 부러진 성의 첨탑이 현재 이곳이 어떻게 변해 버렸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이제 이곳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 되었지만 저 괴물들은 그것과 관계 없이 저곳에 인간들이 살았었다는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은건지 흉포한 울음소리를 내며 먼지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마물들의 돌격에 이미 반쯤 부서진 성벽은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쉽게 허물어졌다.

집은 물론이고 바닥에 깔려있는 벽돌길 까지.

이전에 이곳의 주인이었던 이들이 남겼던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진다.

그렇게 완벽하게 폐허로 변해버린 사르함에 남아있는 곳은 단 하나.

과거 크라우스 가문이 기거했던 부러진 첨탑의 영주성 만이 그것들에 의해 부서지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가장 맛있는 것을 나중에 먹기 위해 남겨두고 있는 것처럼 그것들은 영주성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부수고 나서야 성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개체를 필두로 마물들이 영주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한쪽 눈에 베어진 상처가 있는 대장은 잠시 성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꼭 사람이 웃는 것을 흉내내려는 것처럼 기괴하게 얼굴 근육을 움직였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위에 떠 있는 검은 태양을 올려다 보았다.

검게 변해 버린 태양이 내뿜고 있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본능적인 혐오감을 일으키지만 이들에게 그 빛은 자신들의 신이 내리는 축복과 같았다.

그렇게 자신을 비춰주는 태양빛을 전신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은 자신의 부하에게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라 명령을 내리기 위해 주둥이를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끼우우우우ㅇ....

그 어느 마물이 내었던 소리보다 크고 우렁찼지만 그 울음소리가 끝까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검게 물들어 버린 세상에 금빛 선 하나가 그어졌다.

대장의 목을 정확히 지나간 그 선은 곧 세계를 왜곡하기 시작했고 선이 지나간 모든 것들이 처음 부터 그러하였던 것 처럼 세상에 그려진 선을 경계 삼아 둘로 나뉘어졌다.

대장의 머리가 떨어진 그 자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광경에 전혀 놀라지 않은듯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한 채로 여전히 남아있는 마물들의 무리를 향해 손에 들린 검 한자루를 치켜 세우고는 그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런지 일을 벌인 마물들 조차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그것들에게 공포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파괴 밖에 모르는 그것들은 자신들을 죽이러 오는 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 뿐이었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남자의 눈동자와 같은 색의 황금빛 오러를 담은 검은 별다른 무리 없이 마물들을 베어 넘겼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을 이리저리 주유하는 용과 같아, 마치 한마리의 용이 지상에 내려와 마물들을 씹어먹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이곳에서의 그들은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마물의 목이 베어질 쯤 하늘에서 새하얀 빛무리가 내려왔다.

그 빛을 타고 내려온 별빛을 품은 여자는 남자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

"데미안!!! 갑자기 사라지더니 이곳에는 왜...."

그녀는 자신의 발밑을 적시고 있는 피바다를 보자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말 그대로 마물들의 시체와 피가 산과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을 부르는 그녀를 보더니 그제서야 여태껏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던 가면을 벗어던졌다.

"미안 엘레나."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만 같은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곧바로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마물들의 피와 달리 아직도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붉은색의 액체가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원래라면 이정도의 적에게 피를 흘릴 그가 아니었지만 지금 그가 서 있는 이 장소가 계속해서 그의 마음을 흔들어댔을 것이다. 사르함이 무너질 때 죽은 이들의 얼굴을 잊지 못한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흔한 위로의 말 한마디 조차 건내주지 못했다.

그가 가족을 잃어 괴로워하는 것 처럼 그들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빼낼 수 없을 만큼 깊이 박혀있었다.

"돌아가요."

그녀는 남자의 손을 잡아 이끌며 그렇게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

살면서 겪는 몇몇 상황은 이미 과거에 한번 겪어보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이 이미 현재를 한번 살고 과거로 돌아온 회귀자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있어 그가 피를 흘리는 모습은 떠올리기 가장 싫었던 기억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자신이 걸어갈 미래에는 이전과 같은 절망적인 미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함과 죄책감을 지울 수 는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잠깐 이성을 잃었나 보다.

그저 살짝 베인 정도의 상처인데 무슨 죽을 병에 걸린 환자를 본것 마냥 흥분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그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는 저기저 구석에 처박아둔 이성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채 그대로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이후 제정신을 차리고 다음 기회를 기다려보았지만 그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그의 장난이었을 뿐이었다.

"뎨미아아아야안...."

"응? 왜 그래요? 엘레나?"

"뵬 그마아아안.."

자신의 원망어린 눈빛에 그제야 그는 자신의 볼을 주무르는 것을 그만 두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자신을 과거의 기억에서 건져내어준 그 미소와 손길을 자신이 싫어할리 없었다. 다만 기대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것이라 그런지 실망감이 조금 컸을 뿐이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계속 만지작 거리던 내 볼을 살짝 쓰다듬어 주고는 내가 가져온 것들을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며 나와 그가 앉을 자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리가 모두 준비되자 나는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조용히 준비해온 마카롱을 입에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저녁식사에 참가하지 못했네요. 괜히 제가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에요. 미리 켄이 알려주어서 기다리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그 덕분에 알폰스 도련님과 조금 친해질 수 있었거든요."

"알폰스..?"

알폰스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의 얼굴이 미세하기 굳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알폰스의 대한 문제를 완전히 풀지 못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 저 얼굴이 자신과 알폰스가 단둘이 있었다는 것에 질투하는 것이 었다면 하는 실 없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끓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그에게 물었다.

"오늘 이실리아관에서의 일 때문에 그런가요?"

"....네? 아, 네. 그렇죠.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가 얼마나 알폰스에게 부족한 형이었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좋은 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잘 감이 오지 않네요."

"그렇다면 평소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요?"

"평소처럼이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는 데미안. 그 모습에 숨이 턱하고 막혀온다. 나는 서둘러 준비된 홍차를 입에 넣고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솔직히 나는 그가 형으로써 못난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가문이라면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골육상쟁을 벌이기도 하는데 그에 비하면 둘의 관계는 매우 우애가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저 이 형제는 서로를 너무 아끼는 나머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큰 것 뿐이다.

"네. 평소처럼. 알폰스 도련님은 절대 데미안을 미워하고 있지 않아요. 오히려 형을 매우 좋아하던걸요. 그러니 행동보다는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데미안.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내 말에 그는 잠시 멍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미소로 화답했다.

"시간이 부족....그런가. 조언 고마워요. 엘레나."

그의 얼굴이 풀리는 것을 보니 나 또한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마카롱 하나를 입에 넣을까 하는 순간 내 생각보다 먼저 마카롱을 내 입에 넣어주는 그의 손이 있었다.

무의식에 그만 코 앞의 마카롱을 베어물고 말았지만 그가 내게 먹여준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 얼굴이 뜨거워져 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곧바로 그의 얼굴을 살폈지만 그는 그것이 당연한 일을 했다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래. 이제 이걸로 가슴 졸일 때는 지났지. 그만 익숙해 지도록 하자. 엘레나 에델바이스.

아무리 그의 앞에 서기만 하면 한없이 약해진다고는 하나 자신은 인류 역사상 최고(最高)의 위치에 오른 대마법사였다. 감정의 동요 따위 잠깐 정신을 집중하면 금방 잠잠히 만들 수 있다.

나는 언제 얼굴을 붉혔냐는 듯 자연스럽게 그가 들고 있는 마카롱을 갉아 먹었다. 아무래도 내가 계속 부끄러워 하니 그가 이런 장난을 즐기는 것 같다. 싫지는 않다만 언제까지고 그에게 휘둘릴 수 만은 없는 법. 나는 그가 했던것처럼 무표정을 고수하며 마카롱을 온전히 입에 넣었다.

그렇게 마카롱을 입에 넣을때 내 입술이 그의 손가락을 스쳐 지나갔다.

이리 행동하면 분명 그도 당황했을 테지. 이전의 나였다면 감히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었을 대담한 행동이었다.

나는 속으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더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어째선지 내 생각과는 달리 그는 매우 만족스러웠다는 느낌의 얇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