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14화 (14/131)

< 14화 > 동생은 누나가 필요합니다. (2)

이 세상의 원작이 되는 소설 <공녀는 사랑받는다.>에서 데미안 크라우스는 악역이다. 그것도 초반부에 탈락하게 되는 악역. 한번 쓰러진 악역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보았던 소설의 전개에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중심인 독자의 입장에서 딱히 따로 서술하지 않는 이상 조연에 불과한 데미안은 엘레나의 본격적인 행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름 제국 3대 무가(武家)인 크라우스 백작가의 후계자라는 설정이 붙어있는 놈이다.

남주 후보들 중에 데미안과 같은 제국 3대 무가의 출신이자 후에 소드 마스터(Sword Master)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하늘의 검' 라인하르트 크로멜이 있었기에 당시 소드 마스터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음에도 라인하르트가 보여준 위용 탓인지 소드 마스터가 가주로 있는 크라우스 백작가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었다.

가주인 아서가 직접 엘레나와 요하임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사과를 하였지만 독자들은 '사실은 뒤에서 이를 갈며 복수할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후에 악역으로 등장할 듯.' 이라는 등의 추측들을 세우며 데미안의 재등장을 예상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크라우스라는 가문에서 망나니는 오직 데미안 크라우스. 이 한명 뿐이였다.

이후 이야기가 어느정도 전개되고 난 이후에 크라우스 백작가가 다시 등장을 하기는 한다. 알폰스 크라우스라는 소년을 통해서 말이다.

알폰스는 데미안을 대신하는 백작가의 새로운 후계자였으며 엘레나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크라우스 가문이 남부의 대영주이자 지배자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마냥 영지가 비옥하고 위치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크라우스가 이름 난 검술명가로서 순수하게 무력이 강하기 때문이 아닌 마수들이 들끓고 있는 룬프라우드 산맥의 수호자이었기 때문이다.

매년 마다 한번씩 산맥에 서식하고 있는 마수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향해 대규모 이동을 시작하는데 그 마수들의 행진으로 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가장 앞에 서서 지휘하는 것이 크라우스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소설 속에서 흑막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교도들이 나타나 그들에 의해 여태껏 유지되고 있던 전선이 붕괴되어 버린다. 이후 남부의 대부분이 몰락하고 아서 크라우스가 지키고 있는 사르함만이 최후의 보루로 남게 된다.

그런 사르함을 지원하기 위해 제국의 여러 가문이 지원을 가게 되는데, 그 중 하나에는 당연하게도 에델바이스 공작가도 있었고 지원온 인물 중에는 뛰어난 마법사로 성장한 엘레나가 있었다.

주인공이 행차함으로서 이미 그 이교도들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엘레나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남주 후보들에 의해 이교도들은 빠르게 처리 된다.

이때 알폰스는 크라우스 후계자의 위치에 서서 엘레나를 만나 과거 데미안이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하고 엘레나의 마수 토벌이 원할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로 등장했다.

독자들이 생각한 데미안의 복귀는 커녕 데미안 이 자식은 이름만 나올 뿐 알폰스의 말로는 행적조차 묘연한 상태였다. 그 말에 독자들은 데미안이 몬스터 웨이브의 원인아니냐, 쫄아서 튀었네 라며 말이 많았다.

그런 형을 둔 덕인지 알폰스의 등장은 반응이 괜찮았다.

자신의 형의 과오를 마치 자신의 일인 것 처럼 사과하였고, 토벌전 내내 행동 하나 하나가 영웅이라고 불리어도 좋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남주 후보냐며 호들갑 떠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 에피소드로서 크라우스 가문에 쓰레기는 데미안 크라우스 밖에 없다라는 것이 증명되어 버렸다. 이쯤 되면 데미안이라는 인간은 진짜 신이 엘레나에 대한 유일한 악의를 담아 만든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내 몸이 엘레나만 관련되면 그 모양 그 꼴인건가. 진짜 환장하겠네.

물론 지금은 내가 데미안이고 그런 착한 동생이 있다는 것에는 감사해 하고 있다. 예전에 주변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동생이라는 존재는 성별 할것 없이 크면 클수록 옛날에 있던 성격을 죄다 버리게 된다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미래를 알기에 그랬던 걸까.

데미안 같은 쓰레기를 형으로 두고도 알아서 잘 컸다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어쩌면 나는 안심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직 그 아이가 열살도 안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채 말이다.

***

나와 엘레나의 머리 위에 걸려있는 초상화.

그 그림 안에는 한 여인이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연한 갈색빛을 띄는 머리카락에 에메랄드를 닮은 녹안(綠眼). 자리에 있는 것 만으로도 편안한 느낌은 주는 그녀의 분위기가 그림 속에 잘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색을 가진 어린 소년이 지금 내 앞에서 떨고 있다.

주위를 한번 둘러 보았다. 사용인도 없이 온것인지 우리 외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길을 잃어버린 걸 수 도 있다. 크라우스 영주성은 그 크기가 엄청나니 어린아이가 길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수행원을 곁에 두는 것이다.

복도에 장식되어 있는 갑옷들만 보아도 그렇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 하여도 그것에 깔려 넘어졌다가는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대체 시종들은 어딜가고 알폰스를 혼자둔거란 말인가. 미래에 어떻게 자라든 간에 지금 알폰스는 이제 일곱살이 된 어린아이였다.

그 때문인지 무심코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혀, 형...그게에..."

그런 내 얼굴을 보자 말을 흐리는 알폰스의 손에는 무언가 하나 쥐어져 있었다.

어린아이의 작은 손에 다 가려질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황금으로 된 반짝 거리는 금줄이 알폰스의 손 틈 사이로 흘러나온다. 금줄에 걸려 있는 것은 우리 가문의 문양이 조각된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천이 내려가 있는 어머니의 초상화, 어머니의 흔적이 가득한 이실리아관. 그리고 알폰스의 손에 들려있는 로켓.

그제야 지금 일이 어찌 된것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구겨졌던 이마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다가 무릎을 꿇어 알폰스와 눈높이를 맟춘 후 말했다.

"알폰스. 시종들도 없이 혼자 여기에 오면 어떡해. 그러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미안해..."

"항상 이 시간에 여기에 온거야?"

"...."

알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긍정의 의미라는 것은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실리아관에 가는 시간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날이 아니었고 말이다. 만약 엘레나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이실리아관은 비어있는 것이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알폰스는 사용인 없이, 내 눈을 피해 이실리아관에 가고 있었던 걸까.

이실리아관이 딱히 금지된 곳은 아닌데 말이다.

'아버지.'

사실 거기에 대한 답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이 가고 있었다. 가문 내에서 알폰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서 있는 엘레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나와 눈을 맞추었다.

엘레나가 싱긋 웃으며 알폰스에게 인사를 건냈다.

"어제 저녁에 뵈었죠. 엘레나 에델바이스라고 해요."

엘레나의 인사에 침묵을 고수하던 알폰스는 결국 입을 열었다. 알폰스도 아직 어리지만 귀족의 예법을 배우고 있으니 레이디의 인사를 말 없이 무시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 알폰스 크라우스 입니다. 그리고...저, 그냥 알폰스라고 불러도 돼요. 형ㅇ..형님의 약혼자시니까요."

"네. 알겠어요. 알폰스 도련님."

마지막에 부드럽게 미소짓는 엘레나의 모습에 그만 알폰스의 귀가 빨개지고 말았다.

역시 미모의 힘은 대단하다. 단숨에 알폰스를 무너뜨렸어.

나는 알폰스의 손을 잡아 쥐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엘레나. 아무래도 알폰스를 방으로 데려다 주어야 할것 같네요. 아쉽지만 오늘 이실리아관 탐방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도록 하죠."

"음, 아쉽지만 그래야 할 것 같네요. 그러면 내일 다시하는 걸로 할까요?"

"죄송합니다...괜히 저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알폰스의 머리를 살짝 쓸어주었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내 쪽이었다. 알폰스는 내가 오늘 있던 일에 대해 물어볼까봐 계속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대화해야 할 상대는 알폰스가 아니었다.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다시금 머리가 지끈 거린다. 엘레나와의 약혼에 이어 이번에는 알폰스라니. 크라우스 가문의 문제는 나만 있는게 아니었단 말인가?

마치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처럼 여태 내게 일어났어야할 사건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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