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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의 악당이 되었습니다-3화 (3/131)

< 3화 > 파혼을 위하여 (3)

"읏, 으으으...."

지금 엘레나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나와 엘레나 사이에 놓여진 탁자 위에는 비어있는 찻잔과 과자 부스러기 같은게 남아있는 접시 두개 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 듯 나는 단것을 잘 먹지 못한다. 케이크 조각을 또 작게 잘라 하나를 겨우 먹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접시 위에 있던 것들 까지 깨끗히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뭐긴 뭐야. 지금 여기 있는 아가씨가 다 먹은거지.

혹시 햄스터가 해바라기 씨를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햄스터에게 씨앗을 주면 그 작은 입으로 옴뇸뇸거리며 씨를 잘게 갉아먹는데 그 모습이 계속해서 씨를 주고 싶을 만큼 아주 귀엽다. 내게 있어 엘레나 에델바이스는 햄스터였다.

이세계가 만화였다면 과자를 먹는 그녀의 옆에는 옴뇸뇸- 이라는 효과음이 붙어있을게 분명하다. 포크로 과자를 하나씩 집어서 천천히 먹는데 그 모습이 꼭 작은 소동물을 연상시킨다.

그 귀여운 모습에 나는 옛날, 햄스터에게 해바라기 씨를 주었던 것 처럼 내 접시 위에 올려논 디저트들도 그녀의 접시 위에 올려 놓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채 그저 행복한 얼굴로 자신의 접시 위에 올려진 디저트를 즐기었을 뿐이다.

이후 뒤늦게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린 엘레나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게 현 상황이다.

"영애는 제가 생각한것 보다 단것들을 많이 좋아하시나 보군요. 미리 준비를 해두기를 잘했나 봅니다."

"으으으읏! 그, 고마워요...분명 공자님도 많이 좋아하시던 것들이었을 텐데 저에게 다 양보해 주시고...제, 제가 다음번에 올때는 저희 영지에 유명한 파르페 가게가 있는데 거기 있는거 종류별로 하나씩 꼭 가져올게요!"

아니, 괜찮은데. 나 그렇게 단거 못먹어...

많이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아보였지만 그래도 확실히 아까전의 경직된 채 아무말도 못하고 있던것 보다는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보다 이것들을 마음에 들어하시니 저희 주방장에게 말해주면 아주 좋아하겠군요. 더 드시고 싶으시다면 언제나 말 해주세요."

"정말요?"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엘레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가 지금 껏 본 그 어느때 보다 기뻐했다. 그 여파로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이상한 감정은 덤이다.

디저트가 주는 포만감과 만족감의 영향이었을까, 그녀의 모습은 아까전에 안절부절 못한채 찻잔만 만지고 있던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는지 생각이 들 정도로 밝아졌다. 어쩌면 똑같이 단걸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찾아서 그런걸지도.

이거 괜히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나.

어쨌든 이건 좋은 현상이다. 이제는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아까 그 상태 그대로였다면 아마 내가 그녀의 의견을 듣는 것은 오늘 밤을 꼬박 새더라도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아마, 나 혼자만 이야기하다가 끝냈겠지.

나는 서로간의 소통을 원했지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내가 이 자리를 통해서 바라는 것은 그녀와 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 약혼의 성사를 무효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간의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인 대화가 필요한 것이 었고. 솔직히 단순히 파혼을 하려고 한다면 그냥 내가 그녀에게 믿도 끝도 없이 '우리 파혼합시다.' 라고 말 하면 성사될 일이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잘 못 하고 남들에게 끌려가는 경향이 있으니 원작의 데미안과는 달리 약혼 대신 파혼해달라고 말한다면 아마 그녀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는 해도 얼떨떨해 하면서 내 뜻대로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이게 괜한 과민반응 일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녀에게 악영향을 줄 것 같은 방법은 최대한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기는 기본적으로 내가 읽던 소설속 세상이다. 그리고 소설이라는 것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그말은 즉슨 그녀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모든 소설이 그런것은 아니고 장르나 작가의 성향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내가 읽었던 <공녀는 사랑받는다.>의 이야기는 엘레나 에델바이스를 중심적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소설이었다.

이건 단순히 내 생각에 불가하지만 만약 내가 한 어떠한 행동이 그녀에게 악영향을 주었을 때 이 세상이 나를 그녀에 대한 악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이건 증명되지 않은 나 혼자 만의 망상에 불가할 뿐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불행을 겪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녀를 사랑하는 남주 후보 놈에게 뒤질 수도 있고 어느 모종의 사건으로 크라우스 백작가가 멸문당한다던지 뭐, 이런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최대한 그녀와 원만하게 끝을 보는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파혼만 된다면 그녀가 나를 만날 일도 없고 어차피 원작이 시작되면 옛 약혼자, 아니지 과거의 지인은 생각도 안 날 만큼 사건이 벌어질 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자동적으로 그녀의 이야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된다.

무엇보다 그녀와 가까이 지내면 지낼 수록 내 몸이 자꾸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다.

지난 5년간 내 말을 아주 잘 따라준 몸이었다만 그녀와 만난 순간부터 어딘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감정. 정신적인 부분에서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엇나가려는 경향이 생겼다.

내 눈 앞에 엘레나 에델바이스라는 경계대상이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 평소처럼 마음 놓고 행동을 했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면 나는 꼼짝 없이 그 감정에 지배당했을게 분명하다.

다행인 점인 것은 그것이 엘레나의 한해서만 일어난 다는 점일까.

통제되지 않는 감정에 의한 행동은 광증이나 다름없다. 물론 통제를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다. 곰팡이 마냥 자꾸 튀어나오는게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방해해 거슬릴 뿐 집중만 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이렇게 여러군데로 신경을 쓰다가는 언젠가는 정신질환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때부터는 진짜배기 정신병자가 되는 거다.

나는 정신병자가 되기 싫었고 이 광증에 의해 그녀에게 피해를 줘 패망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그러니 뭐가 어떻게 되었든 본능대로 사는 짐승이 될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녀와 가까워 져서는 안된다.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고 나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음, 에델바이스 영애. 실례지만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아, 예! 물론이에요! 그럼 저도 데미안 공자님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죠?"

"네. 물론입니다. 구두지만 일단은 약혼자이니 욕만 아니면 아무렇게나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야, 약혼....네. 저희 그, 약혼했었죠."

엘레나는 지금 나와 자신이 어떤 관계이고 어떻게 이자리에 있는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음, 마음은 이해한다만 이렇게 당사자 눈앞에서 시무룩해 하니까 좀 그러네.

그냥 이대로 묶어서 어디 못가게 방에...

꽉ㅡ

어허 마구니야 물러가라. 누구를 SM 플레이어로 만들려고.

이 때려죽일 광기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구나. 덕분에 내 허벅지만 고생이다.

엘레나가 저리 시무룩해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결혼은 일생에 단 한번 있는 것.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결혼에 어떤 로망을 가지고 있을 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정략혼과는 달리 나와 그녀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지금 이 약혼을 유지해 정식으로 약혼을 맺을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되돌아가는지 말이다.

난 당연코 후자를 선택할 것이고 방금전의 반응을 보아 하니 그녀 또한 그걸 원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엘레나의 성격상 그것을 내 앞에서 말 할 수 있을리는 없으니 내가 그녀가 스스로 말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만 한다.

"엘레나. 지금 당신의 기분이 어떨지는 이해가 됩니다. 생판 남이나 다름 없는 저와 약혼이라니 그야 꺼려하는게 당연하겠죠."

"앗. 그, 그렇지는 않아요!"

"굳이 그렇게 말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엣."

정곡을 찔렀는지 경직된 표정을 보여주는 엘레나.

얼굴에 그렇게 다 드러나는데 그걸 믿겠냐.

"저, 지금 그 뜻은 데미안 공자께서는 저와의 약혼이 싫으시다는..."

"아니요. 그럴리가요. 제가 영애와의 약혼을 싫어할리 있겠습니까. 영애와의 혼인은 제국의 모든 남자들의 꿈과도 같은 일인걸요."

나야 당연히 좋지. 이게 만약에 원작이 없는 세계였다면 나는 지금 이자리에서 공중제비 3바퀴를 돌았을 거다. 성격 좋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미인을 아내로 둔다는데 싫어할 녀석이 어디있겠어.

문제는 여기가 정해진 이야기가 있는 소설 속의 세계라는 것이었고 그 이야기 속에 나와 그녀의 이별은 필수 불가결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운명을 가진 우리의 약혼이 정상적으로 이어질리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라고는 최대한 원작과는 다르게 이 관계를 끝내는게 전부였다.

나는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결혼의 가치관을 담아 최대한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말을 골라가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오로지 저만을 위한 행복 보다는 저와 함께할 반려 또한 행복할 결혼을 원합니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엘레나 아델바이스. 지금 당신은 저를 사랑하고 있나요?"

"그건..."

직설적인 나의 질문에 말을 흐리며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

이건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오늘 지금 이 자리가 초면이었고 이전부터 편지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적도 없는 관계이니 그녀가 심각한 금사빠가 아니고서야 나를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꼭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혼 생활이 불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그러셨고 다른 가문들 역시 그러하겠죠. 하지만 저희는 그분들과 다르게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은?"

"한 평생을 함께할 반려를 한번도 말 섞은 적 없는 타인으로 선택하라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아무리 귀족들간에 정략혼이 유행이라지만 저희 둘의 관계는 단순한 정략혼이 아니지 않습니까. 엘레나양과 저에게는 집안의 강요로 맺어졌던 다른 분들과는 달리 서로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당신이 잘 알지도 모르는 타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엘레나 에델바이스.

이 약혼은 누군간에 의해 치뤄지는 것이 아닌 너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니 너가 가장 원하는 답을 선택해라.

나는 그리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던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엘레나 양이 어떤 답을 내놓든 간에 그것을 존중 할 것입니다. 부디 부담가지지 마시고 이야기 해주세요. 지금 저희의 만남은 약혼 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이 약혼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말하기 위한 자리이니까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마저도 망설이며 말하지 못할 그녀에게 나는 선택을 강요했다.

이내 그녀는 나의 말에 마음을 다 잡은듯 결심한 얼굴을 비추며 내게 말했다.

"그러면 저희 약혼 할래요? 정식으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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