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30/30)

외전.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유지한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서면으로 휴식을 선언하고 나타나지 않자, 당연히 대한민국은 뒤집어졌다.

「“유지한 헌터가 잠정 휴식을 선언했습니다.”」

「“이번 게이트로 인한 후유증과 그간 추적된 피로와 내상을 이유로 들고 있으며…….”」

「“유지한 헌터의 휴식 선언으로 현재 많은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의 휴식 선언으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감 증폭과 동시에 범죄율 증가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건 그가 그동안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

한 사람의 휴식이 뭐 그리 별거라고 이렇게 야단법석인지.

유지한은 사람이 아닌가.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유지한 헌터는 복귀 일정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영구적인 후유증으로 인해 이대로 은퇴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며.”」

원체 사람이 아닌 취급을 받기는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취급이었다. 더불어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그를 대신할 사람이 있었기에 사실 저렇게까지 난리를 부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느 때였다면 이대로 편히 푹 계속 쉬어도 된다고, 자신들이 주는 휴식도 아니면서 주는 척 배짱까지 부렸겠지. 인간은 나태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생물이니까.

「“현재 여론은 유지한 헌터가 그동안 받아 온 사회적인 핍박과 불이익에 관해서 열띤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이번에도 똑같이. 고작, 유지한 하나 쉰다고 이렇게 나라 망한 것처럼 굴며 서로를 물어뜯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할 사람이, 그들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면.

「“윤지호 헌터가 인류의 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이면서 유지한 헌터까지 활동 중지를 선언함으로 인해 세계에서 대우가 최악이라고 여겨지는 대한민국 헌터계가 처음으로 변화의 조짐을…….”」

「“헌터 협회는 이 현상을 묵과하지 않고 시대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고작 한 사람의 행보로 이렇게까지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우스웠다. 인간도 짐승이라 생존 본능이 있긴 한지 바짝 엎드릴 줄 알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아니, 이 경우는 개기지도 못하게 얄짤없이 짓밟아서 덤빌 생각조차 못 하게 일말의 가능성조차 말살해버린 그녀를 존경해야 할 것 같았다. 유지한을 포함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내 아들이 여자 하나는 정말 기막히게 잘 잡았군.”

그 지랄을 떨면서도 잡을 가치가 있었다. 확실히.

오히려 그 정도 난리를 친 걸로 잡혀준 것이 용하다고 해야 하나.

절대 무슨 짓을 해도,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왜 하필 그런 사람한테 끌렸냐고 물으면 정말 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 마음을 넘치도록 이해했다.

“이런 것도 유전인가.”

자신도 같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니까.

똑같은 늪에 빠져 인생을 바쳤기에 그는 제 아들을 차마 나무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 늪에 기꺼이 빠져, 아직도 빠져나오길 원치 않고 있었기에. 그런 주제에 제 아들보고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내로남불이 아닌가. 그 정도 양심은 있었다.

물론 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때, 썩 행복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불행한 인생이라 평하겠지만…….

그래도 그는 그녀를 선택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뭐.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잡음 없는 순탄한 인생이었겠지만, 그런 삶을 조금도 원하지 않았다. 분명 가시밭길이었지만, 그녀를 선택한 것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 또 쓸데없는 생각하지.”

“……들켰나?”

남이 볼 때는 헛소리라 치부하겠지만.

보란 듯이 장성규가 한숨을 내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와아. 진짜 네 아들은 진짜 네 아들이다. 생긴 것부터 여자까지. 어떻게 그렇게 똑같냐.”

이런 거는 좀 달라도 되는데.

눈이 그렇게 천장 위에 달려 있으면 힘들지 않냐고.

왜 부자가 다 눈이 에베레스트에 달려 있냐고. 진짜 그냥 살면 평생 누릴 거 다 누리고 살 금수저 인생들 주제에 더럽게 피곤하게 산다고 장성규가 비서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마음껏 입을 털었다.

평생을 봐 오고, 같이 고생을 했으니 이 정도 발언은 당연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다 맞는 말이었고. 때문에 그는 기분이 상하기보다, 오히려 저 막말에 숨겨진 친구의 걱정에 만족스러워하며 장성규에게 물었다.

“현재 진행은?”

“정부에서 저거 묻어본다고 연예인 스캔들에, 자기 파벌 버림패 파문에 별짓을 다 하고 있는데도 안 묻히는 중이다. 저게 묻히는 게 더 이상하지.”

자신들을 평생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았던 희생양의 부재였다.

그 자리를 대체해 줄 사람은 그 전철을 밟을 생각이 없었고, 남겨진 당연히 공석. 그리고 비어 버린 유지한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힘도 부족했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헌터들도 움직이고 있어. 우리나라가 헌터를 그렇게 박대하고 폭리를 취했으니 이 호재를 놓칠 수가 없겠지.”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건 이들이 변화를 추구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안 그래도 패닉인데 그들까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승을 부려서 한창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그것 역시 그는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다.

“아주 좋군.”

드디어 변화의 순간이 오고 있었다.

비로소, 내 아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이.

“……이화연 씨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 유재환과 함께 일을 진행해왔기에 어느 정도 상황을 알고 있는 장성규가 불안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런 얼굴을 보며 재환은 그 불안을 안심시켜 주는 것이 아닌, 다른 답을 내놓았다.

“우리의 준비는 끝났나?”

그는 장성규가 바라는 답을 줄 수 없었으니까.

“……그래. 네가 없어도 회사는, 아니. 넌 이게 중요하지 않지. 네 아들에게 어떤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다 준비는 마쳤어. 네가 지한이를 가졌을 때부터 준비한 것이니 실수는 없을 거다.”

이날만을 기다린 것처럼,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재환은 지한이 복중에 생겼을 때부터 오늘을 준비했다.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 준비였다.

어떤 실패도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했다.

제 유일한 자식은 유지한밖에 없었으면서, 유지한이 아닌 다른 자식들은 자식으로도 생각지 않으며 오로지 유지한만을 끔찍이 아끼면서도. 일찌감치 호적에서 제외시키고 유산 처리를 마친 것도 그 이유였다.

고작 자신 따위가, 제 아들의 길을 막지 않기 위해.

가진 게 없는 아비도 아니고, 자식에게 줄 것이 넘치도록 많은 아비가 할 생각은 아니지만, 지한의 경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하는 게 옳았기에 장성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래서 이화연이 싫었다. 인간적으로는 이화연에게 호감도 있었고, 존경도 했지만 친구의 연인으로는 정말 싫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인간을, 더욱이 평생을 같이한 친구가 그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그런 친구의 마음을 알면서도 재환은 웃었다.

“드디어 우리도 끝이군.”

“……꼭 그래야 하냐?”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 주는 것이 하나 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장성규는 ‘이미 니들 인생을 바쳐서 해 주는데 뭐가 해 주는 것이 없냐.’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 넘겼다.

그들은 제 아들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고,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은 지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제가 가진 전부를 아들에게 주는 부모였지만, 결국 처음부터 훌륭한 부모이지 못했다.

양쪽 다 그렇기에는 너무나 많은 짐을 짊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남들처럼 평범한 애정을 주지도, 가족이 되어 주지도 못했다.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비틀린 선물밖에 줄 수 없는 걸까.

왜 너희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울화통이 치밀어올랐지만, 성규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도 자식이 있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넘치도록 보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평생을 함께해, 영광이었습니다. 회장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존경과 경의를 담아.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웠다. 장성규.”

평생을 바쳐 온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은 한 마디였다.

* * *

뚜벅뚜벅―

재환은 원목으로 된 복도를 홀로 고요히 걸었다. 이제는 수행원도, 결계도. 아무것도 없었다. 때문에 재환은 고요히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수십 년간 걸었던 복도였다.

처음. 한눈에 영혼을 뺏겨버린 순간부터 이 복도를 걷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결실을 소망했다.

‘아들이야. 영웅이 될 너와 나의 아이.’

‘……그래.’

결실을 얻으면 만족할 거라 여겼던 하찮은 나날도 있었다.

‘이 아이의 엄마니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줄 거야.’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해도?’

‘……물론.’

결실을 얻었음에도 온전히 그녀를 가질 수 없어 분노하기도 했다. 우습게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건 똑같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며 숨기는 것에 능숙해졌다는 것뿐.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그는 20대의 어느 날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이제는 숨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처럼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왔네. 머저리.”

“당연하지.”

너를 온전히 가질 수 있으니까.

아닌 척 점잔을 떨기는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열망에 숨이 꺼져가면서도 이화연이 미소를 지었다.

“……오지 말라니까.”

“아무리 네 말이라도 그건 들어줄 수 없는데.”

“풋. 언제는 내 말을 잘 들었나.”

정작 들으라는 건 죽어라 안 들었으면서.

나긋한 미소였다. 드디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온전히 이화연으로서 짓는 미소에 유재환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며 이화연이 말했다.

“우리 아들은 이제 자유야.”

“그래.”

“……우리가 노력한 보람이 있지?”

“물론. 준비는 다 끝맞춰 놨어. 아비로서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런 건 제대로 해 놔야지.”

유재환이 화연의 손에 입을 맞추며 나긋하게 대답했다. 조금의 흔들림 없는 그 눈에, 화연의 눈이 흔들렸다.

“……정말 나랑 같이 갈 거야?”

너는 그러지 않아도 돼.

어차피 대가는 자신만 치르고 끝내도 되는 것이다. 굳이 그까지 치를 필요가 없었다. 그 말에 오히려 재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나와의 거래를 잊으면 곤란하지.”

“…….”

“약속했잖아.”

“바보.”

이화연의 눈에서 눈물 한 자락이 떨어져 내렸다.

이제 대가의 시간이었다. 유지한이 사용한, 도를 넘은 힘의 페널티를 이화연이 감당했으니 이제 그녀는 여기까지였다. 그러니, 이제. 약속을 이행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해. 유재환.”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말과 동시에 이화연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주 잡은 손에 강하게 힘을 준 채로.

그 손을 강하게 맞잡으며 유재환 역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래. 무엇이든 감당해. 나도 적극 도와줄게. 무엇이든 할게.’

‘뭐? 넌 그럴 필요가…….’

‘대신.’

‘……?’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들은 말 역시.

인생에서 더없이 만족스러운 말이었다.

세상 어떤 것보다 사랑스러운 말이었다.

‘마지막은 나와 함께해. 이화연.’

너무나 만족스러운 마지막이었다. 이런 종막도 괜찮지 않은가.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자부했다.

“사랑해. 이화연.”

그렇게 그는 비로소 제 사랑을 손에 넣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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