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프롤로그.
1장. 젠장. 차라리 겜판이나 읽을걸.
2장. 랭킹 1위를 빼앗아 버렸다.
3장.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의 태양은 뜬다.
4장. 취직과 던전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프롤로그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양판소든, 현판소든, 퓨판소든, 겜판이든. 어쨌든 판타지나 무협, 로판 같은 소설을 보며 아, 나도 이런 세계에서 살아 보고 싶다. 라는 생각 한 번쯤 하지 않는가!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안 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야! 그 정도도 없는 감수성으로 어떻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
자신 있게 정상적인 사람들을 매도하며 열변했다.
아니, 그럴 맛으로 보는 거지. 딱 머리 비우고, 딴 세상 좀 빠졌다, 출근길 러시아워라는 현실을 도피하고!
적어도 내가 판소를 보는 건 거의 대부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나는 불량 독자였다.
작가의 의도, 주제? 는 개뿔.
그런 게 뭔 상관이야. 적당히 재미있고, 집중시킬 수 있는 필력과 그럴싸한 소재면 시간 때우기 딱 좋았다. 작가님께 대단히 죄송한 이야기지만, 내게 소설은 딱 그 정도 의미였다.
그래서 이렇게 벌을 받는 걸까.
“……이거 실화냐.”
지금의 현재의 상태를 표현하자면, 제정신이 아니라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끼이이이이악―
“와우. 마치 글로 쓴 것만 같은, 이 클리셰의 정석 같은 울음소리…….”
아. 진짜 울고 싶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장담컨대 윤지호 방년 25세 인생. 이렇게 엄마를 간절히 찾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개 같은 팀장 새끼가 ‘지호 씨는 왜 이렇게 특출한 구석이 없어요?’라는, 별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빙빙 돌리며 장장 세 시간 동안 나를 깔 때도 이렇게 엄마를 찾진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당장 엄마가 무지무지 혜자스러운 맘스터치를 갈기며 개꿈 꾸지 말라고 일갈해 주었으면 했다.
한 대라도 맞자마자 능력치 상관없이 치사율 85%에 다다르는, 한 대라도 날아올라치면 무조건 반경 10m 외로 튀어야 하는, 그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가 간절했다.
어머님, 어머님.
이 불효녀. 평소에 그렇게 불효를 많이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
“이 미친년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악―! 어, 엄마?!”
방금 염원했던 그 혜자로운 맘스터치가 진짜로 등짝을 강타했다.
순간 별이 보였다.
“그래. 아직은 네 엄마가 보이긴 하나 보네. 이 개만도 못한 딸아! 여기가 어디라고 그렇게 멍을 때려대?! 이 엄마보다 먼저 가려고 아주 정화수를 떠 놨나! 괴수가 나타나면 헌터가 오기 전까지 대피소로 피신해야 한다는 거 몰라?! 아이고, 내가 이런 것도 딸년이라고……!”
“아. 아파―! 엄마. 살살 좀…….”
아니, 그런 수칙 같은 건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어디서 많이 보긴 한 거 같아.
그나저나,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아는데?!
이 와중에 안 그래도 온전치 않은 정신이 가출하는 것을 느끼며 힘없이 엄마의 억척스러운 손에 몸을 맡겼다.
질질 끌려 가며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끼이이익―
붉게 변한 하늘. 그 위로 날아다니는 영화에서 본 것 같았던 익룡 비슷하게 생긴 징그러운 거대한 생물체.
크아아아아―!
도로와 건물에 원수라도 진 건지 아주 자유롭게 깨부수며 다가오고 있는 못생기고 징그러운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괴물.
위이잉― 위이잉―
그 근처로 드론 비슷한, 매우 비싼 최첨단 기계로 보이는 것들이 날아다녔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광경이었다.
여기서, 주인공은 항상 극적인 타이밍에 등장한다는 클리셰까지 훌륭히 재연되었다.
번쩍―!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그 빛 사이에서 한 인영이 신비롭게 등장해 칼로 단칼에 괴수를 베어 버렸다.
진짜 소설에서 읽어 보기만 했던 묘사 그대로 괴수가 반으로 쫙― 갈라졌다.
쿠웅―!
처음 보는 생생한 해부 광경에 눈살이 찌푸려질 만도 하건만, 하루에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쿵― 하고 떨어지는 사체 소리에 놀라기만 했지 징그럽다는 생각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자신은 놀라서 그렇다 치지만 다른 일반, 평범한 쫄보 소시민이라면 징그러워할 법도 한데 모두가 사체가 떨어지는 소리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꺄아― 헌터가 왔어, 우린 이제 살았다!”
“헌터님! 저것들 다 죽여 주세요!”
“다 발라버려!”
이상한 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
자신 빼고 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건가.
어찌 됐든,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5년 동안 아무도 말해 주지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던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엄마한테 맞은 등은 더럽게 아파 쓸데없이 현실성만 부여하고 있었다.
“……크읍, 이런 젠장할. 흑.”
결국 나는 그렇게 부정하려 했던 것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응? 얘가 갑자기 쥐약을 처먹었나. 갑자기 정상인처럼 울고 그래. 너도 산 게 기쁘긴 하지? 으이구. 집 가자. 딸.”
“크읍. 으음마가…… 흑…… 즈이리로 나으라빠……. 크읍.”
진심으로 절규라도 하고 싶었다.
“얘가 뭐라는 거야.”
제발 누가 꿈이라고 말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