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오넬 공작가의 가정 교육 지침서
4권
Ⅹ. 공작가의 신혼 별장
XI. 용서받지 못할 죄
XII. 잊을 수 없는 밤
Epilogue 1-1. 르시엘
Epilogue 1-2. 에일레스
Epilogue 1-3. 레이든
Epilogue 2
Ⅹ. 공작가의 신혼 별장
“미라벨라, 떠날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최근 제법 활기를 띠었던 공작저의 분위기는 미라벨라의 데뷔탕트가 끝난 직후 다시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네 사람이 함께하는 아침 식탁. 개의치 않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간단한 식사를 끝낸 레이든이 문득 미라벨라를 건너다보았다.
“네, 오라버니. 말씀하신 대로 당장 필요한 건 다 챙겼어요.”
그다지 입맛이 없어 과일잼을 약간 얹은 흰 빵만 조금씩 먹고 있던 미라벨라가 얌전히 눈을 내리뜨고 답했다. 그녀는 요즘 들어 좋아하던 달콤한 디저트조차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원래도 가느다랗던 팔과 어깨에 더욱 살이 내려 가냘프게 보였다.
데뷔탕트 직후, 황실에서 파견된 황족들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와 황궁의가 함께 다녀갔다. 에펠 공국에 보낼 그녀의 초상화를 제작하고, 건강의 이상이나 다른 지병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것은 이제 1년가량 남은 국혼이 수면 아래에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뜻했다.
얼핏 듣기로는 이미 예물의 형식으로 주고받을 품목과 관세 면제 등의 사항까지 구체적으로 문서화하여 세세한 조건의 조율만 남았다는 것 같았다. 물론 에펠 공국의 풍속에 따라 국혼의 당사자 두 사람이 사전에 속궁합을 맞춰 보는 절차가 필수로 따르겠지만, 그가 만약 미라벨라와의 잠자리에 만족한다면 성혼은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에펠 공국의 후계자는 어떤 사람일까…….’
1년 안에 함께 밤을 보내고 남편이 될 사람이었지만 미라벨라는 그에 대해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니, 실은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미라벨라의 가슴은 이미 세 오라버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꽉 차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으니까.
복잡한 심경과는 별개로 적어도 겉으로는 비교적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그녀는 오라버니들에 대한 용서받지 못할 감정을 정리하려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비록 지금도 거의 매일 진행되고 있는 ‘그 교육’ 시간이면 오라버니들도 자신을 여자로 원하는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자꾸만 치솟아 괴로웠지만.
‘착각하지 마. 오라버니들은 그저 내가 에펠 공국의 후계자와 초야를 치를 때 서투르게 굴어 국혼을 그르칠까 봐 염려하시는 것뿐이야.’
아직 국혼이 치러지기까지는 약 1년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사이 조용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라벨라는 그렇게 생각하자 그나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저, 레이든 오라버니. 떠날 때 혹시 겨울옷도 가져가야 할까요?”
“그래, 미리 맞춘 건 전부 챙겨. 후에 필요한 게 생기면 따로 보내기로 하지.”
며칠 전, 레이든은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짐을 챙겨 외곽의 별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라 지시했다. 그는 수도의 날씨가 매섭고 저택 외벽의 공사가 필요해 겨울을 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그녀가 공작저에 온 다음 해에 지어진 별관은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신축이었고 미라벨라의 방은 가장 햇살이 잘 드는 3층에 있었으니까.
‘설마 오라버니께서 내 마음을 눈치채고…….’
미라벨라는 어쩌면 오라버니들에게 제 마음을 들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품은 그릇된 애정을 기민하게 눈치챈 오라버니들이, 결혼 전까지 집 밖으로 내쳐 미리 정을 떼려 드는 것이라고. 최근 그들이 먼저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미라벨라가 등장했을 때 이어지는 짧은 침묵이나 미묘한 분위기로 인해 그녀는 오빠들이 제게 뭔가를 감추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내년 가을까지는 쭉 그곳에 머물러야 할 거다.”
“……네.”
곱게 간 감자를 넣어 만든 따뜻한 치즈 그라탱을 막 한 스푼 뜨려던 미라벨라의 손이 멈칫했다. 그 말은, 이제 그녀가 다시 공작저로 돌아올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역시 내쳐지는 게 확실해.’
부드러운 선을 지닌 작은 얼굴 위로, 질 좋은 벨벳처럼 드리워진 촘촘한 속눈썹이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 냈다.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레이든이 물끄러미 응시했다.
“미라벨라, 왜 그런 표정이지? 수도의 겨울은 춥고 외풍이 심해 겨울을 나기에 좋지 않아. 네 건강을 위해서라도 조용한 별장에서 지내는 편이 나을 거다. 외진 곳이라도 마차로 두세 시간이면 가는 거리이니 우리가 교대로 들러 공부를 봐 줄 수 있고. 이제 기본적인 학습은 너 혼자서도 가능하지 않나.”
“…….”
“……건물 외벽 보수가 예정보다 일찍 끝나면 다시 공작저로 돌아올 수 있을 테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오라버니.”
순종적인 태도로 얌전히 답했지만, 미라벨라는 큰오라버니가 제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전처럼 오라버니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전부 믿을 정도로 이제 그녀는 어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더 묻지 못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우는 과정에서 필수 불가결한 신체 접촉이 따르겠지만, 단지 물리적인 행위일 뿐이다. 서로 마음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단순한 몸의 반응에 불과하지. 그러니 오라비와 살을 섞는 일이 부끄럽다 여기거나 죄책감을 느낄 것도 없어. 우리에게 있어서도 네게 다른 과목을 공부시키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일이니 마음 쓰지 마라.>
미라벨라는 처음 은밀한 가정 교육을 시작하기 전, 레이든이 했던 말을 상기했다.
세 오라버니에게 있어 그녀와의 관계는 오로지 지도를 위한 마음에도 없는 행위였다. 머리채를 잡아 구음을 가르치며 뚫어질 듯 내려다보던 집요한 눈빛은, 단지 철없는 여동생을 다잡아 남편에게 순종하는 법을 알려 주려는 엄격한 훈육에 불과했다. 망설이는 손을 직접 끌어와 후희를 가르쳤던 건 여동생이 사랑받는 결혼생활을 하길 바라는 오라비의 다정한 마음에서 비롯된 처사였을 텐데. 도톰해진 유두를 아기처럼 빨고 새하얀 젖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거친 숨을 토해 냈던 오라버니의 일그러진 낯 역시, 아무 의미 없는 순간적인 신체의 반응이었을 뿐이다.
그걸 혼자 착각하고 섣부른 애정을 키우다니. 데뷔탕트 무도회가 있던 날, 갑자기 서럽게 울어댔으니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지도.
심지어 미라벨라는 세 사람 모두를 사랑하고 있었다. 피를 나눈 오라비들에게 여자로서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몸의 모든 구멍으로 동시에 정액을 쏟아 주어야만 만족할 수 있다니. 제국 역사상 그 어떤 탕녀도 이토록 음란하지는 못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마음을 눈치챈 오라버니들은 이미 마음속 깊이 그녀를 끔찍하게 여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매일 교육에 앞서 그들이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의례적으로 들이켜는, 창자가 뒤집어질 정도로 쓰디쓴 맛이라는 피임용 차보다 훨씬 더. 하지만 자상한 오라버니들은, 직접적으로 화를 내거나 매를 드는 대신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자연스레 그녀를 멀리하려는 것이다.
“왜 더 안 먹고?”
식기 위를 맥없이 머무르던 손이 스푼을 그대로 내려놓는 걸 보고 맞은편에 앉은 에일레스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낮은 음조에는 여전히 다정한 염려가 묻어나 미라벨라의 마음은 아려 왔다.
“잘 먹어야지, 요새 좀 마른 거 같은데.”
“이거라도 더 마셔.”
옆자리의 르시엘이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한 손으로 손잡이가 달린 큰 유리병을 집어 들어 무뚝뚝하게 따라 주었다. 상큼한 향을 내는 과일과 비트를 착즙한 주스가 미라벨라의 잔에 가득 담겼다. 예쁜 빛을 내는 찰랑찰랑한 수면을 한동안 바라보았으나 왠지 목 안이 꽉 막힌 기분에 마실 수가 없었다.
“왜, 맛없어? 우유 줘?”
“……아니에요, 오라버니. 오늘은 정말 배가 고프지 않아서 이걸로 끝낼게요. 죄송해요.”
레이든은 그런 미라벨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를 일단 별장으로 떠나보내기로 결정한 건 그들의 계획 중 일부였다. 데뷔탕트를 무사히 치렀으니 한동안은 여러 귀족가에서 무도회나 각종 파티의 초대장이 날아들 터. 건강 문제로 인한 요양을 핑계 대어 어쩌면 또 있을지 모르는 황실에서의 방문이나 말 많은 사교계의 눈을 당분간 피하려는.
일반적인 혼사가 아닌 만큼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혼약이 중도에 어그러지면 양국 간 전쟁으로도 발발할 수 있는 문제였다. 게다가 황제의 명에 따라 철저히 교육하기로 한 미라벨라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보낼 수 없다는 건 함께 이 일을 계획한 황제를 기만하는 행위였다.
다행히 아직 1년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어 일말의 시도를 해 볼 여지는 있었다. 최근 세 사람은 모든 일들을 은밀하게 의논해 가며 준비 중이었다.
<에일레스, 그때 네가 말했던 약은 준비되어 가나?>
<곧. 벨에게 먹이기 전에 임상 실험을 거쳐야겠지만. 치유 마나와 마력석의 일정 성분 간 충돌을 이용한 거라 그걸 쓰면 서서히 근육에 힘이 사라질 거야. 아픈 사람처럼 여러 날을 자거나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테니 혹 황궁의가 방문해도 눈을 속일 수는 있겠지. 물론 복용을 중단하면 다른 후유증 없이 회복될 거고. 대신 혹시 모를 부작용을 고려해서 한 번에 용량을 많이 쓸 수 없기 때문에 두세 달은 꾸준히 먹여야 돼.>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르시엘, 네가 맡은 건?>
<뤽셀로 밀항시킬 배편은 다음 주 안으로 구해질 것 같아. 지낼 곳은 마련해 뒀고, 벨라를 돌봐 줄 믿을 만한 사람은 찾는 중.>
<좋아.>
일단 미라벨라의 병을 위장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외국으로 보내 숨겨 뒀다가 몇 년 후 안정을 찾은 뒤에 신분을 세탁하여 데려온다. 캄포 제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지금, 황제는 에펠 공국과의 협정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 1년 사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혼약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그 외의 다른 길을 찾거나, 대공비가 되길 원하는 다른 적합한 대역을 구하거나.
다만 미라벨라는 이 모든 계획을 몰라야만 했다.
만일 발각될 경우 심각한 황실 기만이 될 테니 가문의 존폐는 장담할 수 없다.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수도 있었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레이든은 모든 일을 자신의 책임하에 둘 생각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가주인 나는 책임을 피해 갈 수 없겠지만, 공신의 가문에 허용된 한 번의 면책권이 있으니 동생들은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라벨라는 황제 폐하께서 이미 가짜 공녀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니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만 당했을 뿐이라는 걸 분명히 하여 책임 소지에서 벗어나게 두는 게 좋겠지.’
그러니 최소한 이 일이 성공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도록 할 계획이었다.
“미라벨라, 분위기가 좀 변한 것 같군. 지난달 예산 승인 건을 보니 가을 옷도 같은 부티크에서 보내왔던데. 혹 디자이너가 바뀌었나?”
“아, 네. 제가 바꿔 달라고 했어요. 요즘 취향이, 조금 달라져서…….”
올 가을과 겨울의 모든 의상을 에펠 공국풍으로 맞춰 달라 주문한 건 그녀 나름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세 오라버니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떻게든 정리하기 위한.
“그래, 그런 옷도 잘 어울리는군.”
레이든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벨라가 얼굴을 살짝 붉히고 그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 먼저 올라가 볼게요, 오라버니.”
큰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가을 햇살이 어느덧 익숙해진 식당의 회칠된 벽면을 곱게 물들였다. 미라벨라는 문득 2년 전의 봄, 처음 공작저에 왔을 때 이 자리에서 발가벗겨졌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아직 낯설고 무섭기만 했던 오라버니들 앞에서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던…….
과거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된다 했던가. 당시에는 여린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던 일이 우습게도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만 느껴졌다.
불현듯 오라버니를 따라 처음 가 본 음악회와 전시장, 난생처음 받아 본 생일 케이크, 가족과 함께했던 크리스마스처럼 사소하고 즐거운 추억들이 잇따라 떠올라 미라벨라는 마음이 무척 아파 왔다. 지난 2년간 세 오라버니들과 함께 만든 행복했던 기억들이, 훗날 얼마나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인가를 짐작하니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렵게만 느껴졌다.
처음으로 집이라 여겼던 유일한 공간. 공작저를 떠나면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르페르트 제국의 늦가을은 짧았다. 지금도 한낮의 햇살은 종종 따스하다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깃털 이불 속에서 뜨거운 물주머니를 꼭 안고 잠드는 계절이 찾아올 것이다.
최초로 가족에게 버려졌던 계절, 어머니가 성 루베이도 학원에 그녀를 맡기고 돌아오지 않았던 그해의 겨울은 자비 없는 추위를 함께 몰고 왔었다.
어쩐지 올해의 겨울은…… 그때보다 더 추울 것 같았다.
* * *
미라벨라가 지내게 된 곳은 제국 내에만 수십 개나 된다는 라이오넬 공작가 소유의 별장 중 하나였다. 불과 두세 시간 마차를 타고 달렸을 뿐인데 번화한 수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한적한 외곽지가 나타났다. 주위에도 자연 경관이 비교적 잘 보존된, 인적이 드문 지역에는 한산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벨라,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돌봐 줄 하녀도 없이…….”
“괜찮아요. 외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제 일은 혼자 다 할 수 있는걸요.”
“자주 올게, 벨. 혼자 잘 때 무섭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미라벨라, 필요한 게 있으면 뒤편의 하얀 지붕 집에 기거하는 관리인 부부에게 이야기하도록. 그들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들러 식사나 물품들을 챙겨 줄 거다.”
“네, 알겠습니다.”
이곳은 공작가의 별장 중에서도 규모가 아담한 편이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지만,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정비를 마치고 미라벨라가 도착하기 전에 모든 준비를 갖춰 놓았다. 다만 그녀가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다며 극구 사양했기 때문에, 상주하던 사용인들은 내보내고 근처에 사는 관리인 부부만 한 번씩 오가기로 했다. 늘 곁에서 시중을 들어 주던 로지나마저 일부러 데려오지 않았기에 그녀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차라리 잘됐어, 조용히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감정이 정리되기를, 예전처럼 세 오라버니들의 착한 여동생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미라벨라는 간절히 바랐다.
* * *
“……으응.”
아직 새벽별이 채 떠나지 않은 이른 시각. 별장의 넓은 침대에 혼자 잠들어 있던 미라벨라는, 묵직하게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에 기대어 어렴풋이 깨어났다. 왠지 유독 쓸쓸한 기분이 드는 밤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줄곧 잠을 설치다가 옆으로 웅크린 자세로 막 선잠에 들었을 무렵, 뒤에서부터 그녀를 덥석 끌어안은 누군가가 어깨와 목덜미 사이에 코를 박으며 자그마한 등에 제 몸을 밀착해 왔다. 잠결에 놀란 미라벨라가 너른 품 안에 완전히 갇힌 채 미약하게 팔다리를 바둥거렸다.
“으읏, 흐! 누, 누구…….”
“쉬이, 벨라. 있어 봐.”
“르, 르시엘 오라버니? 지금 시간이…….”
“근무 끝나고 바로 온 거야. 이렇게 좀 안고 있자…….”
눈을 감은 채 낮은 한숨처럼 흘려 내는 음성에는 다소의 피곤이 묻어났다. 르시엘은 부드러운 잔머리가 흐트러져 있는 가느다란 목덜미에 한참 얼굴을 묻고, 그대로 휴식을 취하듯 풋풋한 체향을 한껏 들이마셨다. 하, 겨우 이틀을 못 봤을 뿐인데 이 향기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오라버니, 이 새벽에 어떻게 오셨어요?”
“말 타고. 왜, 냄새 나? 방금 씻고 나왔는데.”
“아, 아니요.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요.”
“모레까지 쉬는 날이라 너랑 있으려고.”
상체를 완전히 탈의한 그에게서 따스한 체온과 함께,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청량한 향이 희미하게 풍겼다. 샤워를 마친 직후인지라 뺨과 귓가에 닿는 적갈색 머리카락은 아직 젖어 있어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다. 문득 빈틈없는 근육으로 짜인 두꺼운 팔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미라벨라는 바르작거리던 몸짓을 멈추고 르시엘의 너른 가슴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공작저를 떠나 별장에서 지내게 되면 오라버니들과 거의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은 빗나갔다. 마차로 세 시간 거리를 수시로 오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으나, 오라버니들은 틈날 때마다 그녀를 찾았다. 때로는 일을 마친 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찾아와 미라벨라의 얼굴만 보고 바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막상 헤아려 보면 오롯이 그녀 혼자 보낸 날보다 오라버니들 중 한 사람과 같이 있었던 날이 더 많았다. 특히 레이든은 공작저에 있을 때도 보통 휴일 없이 일하는 편이었지만, 미라벨라를 별장에 보내 놓은 뒤로는 최대한 시간을 내어 그녀와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보내려 하는 것 같았다.
“진짜 보고 싶었어, 벨라…….”
약간 잠에 취한 듯한 굵은 저음으로 르시엘이 속삭였다. 기분 좋은 고른 숨소리가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상체와 따스하고 믿음직스러운 체온. 그에 힘입어 깊은 잠에 빠져든 미라벨라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기분 좋게 푹 잘 수 있었다.
“읏, 오라버니! 이게 뭐예요!”
하지만 날이 밝은 뒤, 잠에서 깨어 제 모습을 확인한 미라벨라는 얼굴을 귀 끝까지 확 붉혔다. 분명 전날 밤, 상하의로 나뉜 하늘하늘한 리넨 잠옷을 입고 잠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누군가에 의해 웃통이 아예 벗겨져 있었다. 아이보리색 상의는 간 곳이 없고, 밑단에 작은 프릴이 달린 파자마 바지만 남아 있는 민망한 모습에 미라벨라가 다급히 두 팔을 교차하여 새하얀 알몸의 상체를 가렸다.
“왜, 무슨 일이야? 벨라.”
그녀와 똑같이 웃통을 벗은 르시엘이 숱 많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약간 풀어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얼굴을 붉힌 채 고스란히 드러난 제 앞가슴을 가리고 있는 미라벨라를 느른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속옷은 원래 없던데.”
“흐, 왜, 제 옷을…….”
잠들기 전, 속옷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걸 후회하며 미라벨라가 항의했다. 부드러운 젖가슴은 밤새 누군가의 손을 탄 흔적이 역력했다. 흰 살결 여기저기에 커다란 손자국이 붉게 남았고, 유두는 한참 괴롭힘당한 것처럼 새빨갛게 부어 거의 작은 앵두만 해져 있었다. 팔에 스친 유두 끄트머리가 문득 따끔따끔해서 그녀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며칠째 잠을 설쳤더니, 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게 푹 잠든 모양이었다.
“만지라고 속에 뭐 안 입은 거 아니야?”
“아니에요! 저는 그냥 잘 때 불편해서…….”
“여기까지 말 타고 왔더니 땀이 좀 났길래 내 셔츠는 씻으면서 빨았거든. 혼자 웃통 까고 있으면 부끄러우니까, 오늘 나랑 같이 이러고 있자.”
“으…….”
햇볕에 그을린 두꺼운 근육질의 상체를 떳떳하게 드러낸 르시엘이,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느다란 팔 사이로 보이는 부드러운 살결에 그의 음험한 시선이 닿더니 서서히 짙어졌다. 토실토실하게 살찐 귀여운 두 개의 유방에는 밤사이 새겨진 잇자국과 잔뜩 물고 빨린 흔적이 가득했다.
“르시엘 오라버니! 제 잠옷 주세요, 얼른요.”
“음, 실은 그거 이제 못 입게 됐어. 내가 다른 데 좀 썼거든.”
“그게 무슨…….”
“아니, 하다가 잠든 거면 계속하겠는데, 그래도 처음부터 자던 사람한테 박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지.”
제가 싸지른 희뿌연 씨물로 푹 절은 여동생의 잠옷 상의를, 차마 도로 입으라 내어 주지 못한 건 어딘가 삐뚤어진 르시엘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하읏!”
덥석.
먹잇감을 노리는 초원의 맹수처럼 민첩하게 다가든 그가, 미라벨라의 두 팔을 한 손으로 손쉽게 잡아 올렸다. 알몸의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나며 부드러운 무게감을 지닌 둥근 원추형의 젖가슴이 사랑스럽게 흔들렸다. 그는 창밖에서 스며드는 아침 햇살 아래 사랑스럽게 노출된 여성의 정점을 그대로 입 속에 넣었다.
“으응, 흐, 읏……!”
그는 도도록한 분홍빛 꼭지뿐만 아니라 그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싼 유륜과 봉긋한 살까지도 한 번에 입에 넣고 쭉 빨아들였다. 배고픈 아기가 젖을 빠는 것처럼 한참을 그렇게 한 뒤에야 만족한 듯 입가를 핥으며 미라벨라를 풀어 주었다. 그녀는 다급히 시트를 끌어당겨 오라버니의 타액으로 흠뻑 젖은 젖가슴을 가렸다.
“흐으, 정말.”
“억울하면 너도 내 거 빨아.”
“읏, 싫어요, 오라버니……!”
그녀의 허벅지보다 더 두꺼운 팔이 어깨를 강하게 휘어 감는가 싶더니, 미라벨라는 순식간에 르시엘의 품으로 끌려들어 갔다. 쇳덩이처럼 다부진 가슴 근육이 뺨을 짓눌렀고, 단단한 갈색 유두가 부드러운 입술을 스쳤다. 미라벨라가 필사적으로 도리질하며 고개를 겨우 들자,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가 위험한 빛을 띠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도망쳐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미라벨라가 슬금슬금 손을 뒤로 짚고 엉덩이걸음으로 물러나려 하는데, 때마침 침실 문이 열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뭐 해?”
“흣, 에일레스 오라버니?”
막 미라벨라를 덮치려던 르시엘이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켜 문 쪽을 돌아보았다.
“에일레스? 지금 온 거야? 일하러 간 줄 알았는데.”
“어. 이클립스가 시작돼서, 이번 주는 쭉 쉬려고.”
“아, 벌써 그렇게 됐나.”
르시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날짜를 헤아렸다.
이클립스, 마나의 사용이 금지된 시기.
이는 태양과 달과 지구가 일직선을 이루는 날, 일식이 일어나는 시기의 앞뒤 나흘간의 기간을 통틀어 일컬었다. 마나의 힘은 본디 자연에 존재했으며, 마도사란 그것을 흡수하고 자신이 타고난 마나와 결합하여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태양이 가려진 이클립스 기간에는 자연으로부터 마나를 흡수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클립스가 진행되는 동안 마도사들은 마법을 쓸 수 없었고, 두통을 앓거나 다소 예민해지기도 하는 등 다양한 증상을 겪기도 했다. 이 시기에 복용하는 약도 따로 존재할 정도였으니 당연하지만 마탑 아카데미도 휴교였다.
“에일레스, 몸은 괜찮아?”
“나쁘지 않아, 약은 아까 먹었고. 그리고 마법만 안 쓰면 되는 건데 뭐.”
에일레스는 다시 문 쪽으로 향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참, 레이가 저녁때나 내일 올 거야. 급한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출발한다고 했으니까.”
“알겠어.”
그가 뒤돌아선 틈을 타, 르시엘이 미라벨라를 붙잡고 작은 입술을 집어삼킬 듯 제 것을 꾹 눌렀다.
“둘 다 그만 나와, 밥 먹고 놀아.”
언뜻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에일레스가 말했다.
* * *
한적하고 아담한 별장은 본디 오래전, 새로운 공작 부부의 신혼 별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다. 최근의 풍조는 좀 달라졌다 하나, 과거에는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가문의 별장 중 조용한 곳을 찾아 며칠간 머무는 관례가 있었다. 갓 탄생한 부부가 축하해 준 하객들에게 직접 감사 카드를 쓰거나 건실한 미래의 계획을 세워 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겉으로 드러난 명목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처음으로 색사를 경험한, 혈기 왕성한 젊은 신혼부부는 자제하지 못하고 한동안 그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먼 여행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한쪽이 과로로 쓰러지는 경우가 속출하게 되자 만들어진 절차였다. 차라리 가문의 주치의에게 진료받을 수 있는 가까운 별장에서 할 만큼 하고 체력을 보강한 뒤 출발하라는 선진들의 배려였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이 별장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계획이라고는 가족계획이 다였던 것이다.
귀족 사회에서는 여전히 정략혼이 주를 이루었으나, 혼인 전까지 자유연애를 즐기는 풍조가 확산되고 초야가 실제 초야가 아니게 되면서 이 풍습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명목상의 별장은 대부분 보존되어 찾는 사람이 없다 해도 사용인들을 통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관리되었다. 사실 충분한 재력을 갖춘 명문가 입장에서 별장 한두 개쯤 더 유지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기도 했고.
늘 고요했던 라이오넬 공작가의 신혼 별장은 오랜만에 그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비록 이곳을 찾은 사람이 공작 부부는 아니고…… 남매였지만.
“으응, 흐읏……!”
아직 날이 저물기까지는 한참이 남은 시각. 거실 벽면의 커다란 시곗바늘이 4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낯 뜨거운 정사를 치르기엔 여러모로 이른 때였다. 하지만 앤티크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별장의 가장 큰 침실 안에서는 한참 전부터 어딘가 야릇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흐읍, 아흐, 오라버니!”
“큭! 벨라, 눈 뜨고 나 좀 봐, 후으.”
“읏, 처, 천천히 해야, 아, 하읏……!”
젖은 살이 마찰하는 음란한 소음과 열에 달떠 색색거리는 숨소리, 포효하는 신음과 억눌린 듯한 굵은 목소리의 한숨. 의자 끝에 걸터앉은 르시엘이 작은 몸을 잡아채듯 번쩍 안아 들고 여동생을 제 무릎에 앉혔다. 서로 마주 본 자세가 되면서 두툼한 근육으로 짜인 단단한 가슴이 미라벨라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뒤편으로 언뜻 보이는 바닥 위에도 역력한 정사의 흔적.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말끔했던 카펫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젖어 있는 걸 발견하자 미라벨라는 얼굴을 붉혔다. 심지어 그 위에 난잡하게 굴러다니는 몇 가닥의 음모는 두 사람만의 것도 아니었다.
“후, 어딜 봐, 벨라.”
“읏! 거, 거기 누르면 너무, 이상, 하으……!”
흉기처럼 길게 솟구친 제 굵은 성기 위로 여동생을 작은 몸을 푹 주저앉히며 고개를 돌린 르시엘이 창밖을 힐끗 보았다. 이클립스가 가까워진 시기라서인지 아침까지 맑았던 하늘은 제법 어둑어둑하게 흐려져 있었다.
오후 내내 이어진 과격한 색사는 점심때가 막 지났을 즈음 시작되었다. 세 사람이 함께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미라벨라가 꼼지락거리며 덮개가 달린 라탄 바구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벨라, 뭐 해?>
<저, 실은…… 잠옷을 만들고 있어요, 오라버니.>
목을 늘이며 들여다보는 르시엘에게 미라벨라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답했다. 그녀는 도톰하고 부드러운 옷감 위에 색실로 자수를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잠옷? 갑자기 왜?>
<오라버니들도 곧 결혼하셔야 하니까 부부가 함께 입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원래는 떠나기 전에 선물로 드리려 했는데, 제가 바느질은 좀 서툴다 보니 미리 조금씩 만들고 있어요.>
<……이게 우리 거라고?>
<네, 새언니 되실 분의 이니셜을 아직 몰라서 자수는 그냥 혼인을 축복하는 문구로 골랐어요. 제가 떠나기 전에 약혼이라도 하시면 좋을 텐데…….>
<하. 이봐, 벨라.>
순간, 미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고 미라벨라는 멈칫했다.
‘왜 갑자기 저렇게 무서운 눈으로 날 보시지?’
그녀가 자수를 시작한 건 언젠가 로지나가 해 준 조언이 떠올라서였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움직이는 게 마음 가라앉히는 데 최고거든요, 아가씨. 그래서 전 뭔가 심란한 일이 있을 땐 자수를 놓거나 천 조각을 꿰매어 작은 소품을 만들곤 해요.>
다행히 미라벨라는 손재주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녀는 오라버니들에 대한 사랑을 어쩌지 못해 가슴앓이를 할 때마다 바늘꽂이나 손수건, 책갈피 등을 만들던 것을 시작으로, 별장에 온 뒤로는 직접 골라 온 옷감으로 잠옷을 만들고 있었다. 많은 물건 중 하필 신혼부부를 위한 잠옷을 선택한 건, 혈육인 오라버니들을 이성으로 여기고 사랑한다는 죄책감에서 기인했다. 제 마음을 눈치채고 별장으로 내쳤으면서도, 혼자 있는 걸 걱정하여 자주 찾아와 주는 다정함이 더 미안하고 고마웠다.
오라버니들이 언젠가 다른 여인을 아내로 맞아 한 침실을 사용하게 될 미래를 떠올리면 당장에라도 들고 있는 옷감을 눈물로 다 적실 수 있을 만큼 서글펐지만……. 한 땀 한 땀 천을 꿰맬 때마다 그녀는, 제 마음을 뾰족한 바늘로 찌르며 고해 성사조차 할 수 없을 음란한 죄악을 스스로 벌주고 있는 거였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 이 잠옷을 완성시켜 마침내 바늘을 내려놓는 날에는, 그 사랑도 가슴 한편에 깊게 파묻고 한 방울도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꿰매어 단지 착하기만 한 여동생을 연기할 수 있기를.
갑자기 미묘하게 뒤틀린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미라벨라는 만들던 잠옷을 펼쳐 들며 오라버니들을 돌아보았다.
<평소에 입으시던 옷과 사이즈를 거의 맞추긴 했는데, 그래도 몸에 편한 쪽이 좋으니까……. 혹시 잘 맞는지 한번 보시겠어요?>
<그러지, 뭐.>
<엇, 그, 그냥 옷 위에만 걸쳐 보셔도 괜찮아요!>
르시엘이 무표정한 얼굴로 셔츠를 훌렁 벗어 던지자, 당황한 미라벨라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렇게 맨몸에 입어 보실 필요까지는…….>
<왜, 이왕이면 정확히 확인하는 게 낫지. 아래도 벗을까?>
<아, 아니요! 오라버니…….>
단숨에 상의를 탈의한 르시엘이 다소 험악한 눈길로 제 여동생을 내려다보았다. 눈앞에 드러난 두꺼운 근육질의 상체를 올려다본 미라벨라가 급하게 도리질을 했다. 그녀는 심상치 않게 흐르는 긴장감을 감지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탁, 소파에 앉아 읽고 있던 책을 소리 나게 덮어 버린 에일레스가 서늘해진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벨. 우리한테 줄 결혼 선물을 미리 만들고 있다는 뜻이지?>
<……네, 맞아요. 혹시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걸로 바꿀까요?>
<지금 네 오라비들의 결혼 문제에 참견하기보다는, 네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제가 해야 할 일이요?>
후, 에일레스가 창밖을 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라벨라를 보내지 않으려는 그들의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짙은 불안감은 늘 기저에 깔려 있었지만, 세 사람 중 누구도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표현하지는 않았다. 안전을 위해 그녀에겐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 해도 내심 마음이 통했을 거라, 서로 같은 감정일 거라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던 걸까.
태양 빛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황금안이 다소 날카로운 빛을 띠고 사랑하는 여동생을 응시했다.
<……요즘 교육이 뜸했지, 벨. 주기가 된 것 같은데, 시작했어?>
<아, 아직이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미라벨라가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답했다. 둘째 오라버니는 평소 무척 다정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누구보다 집요해지는 편이었다. 어차피 월경이 시작되었다고 둘러대도 직접 확인할 게 분명했고,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나면 더 호되게 당할 뿐이니까.
<그래, 그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에일레스가 긴 다리를 움직여 가까이 다가왔다.
<흐, 읏, 오라버니……!>
자그마한 비명과 함께 단단한 팔에 붙잡힌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미라벨라를 번쩍 안아 든 그는 자연스럽게 방으로 향했고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 르시엘이 뒤를 따라 문을 닫았다.
탁.
그 후 늦은 오후가 되도록, 방음이 잘 되는 나무로 만들어진 두꺼운 침실 문 안에서는 다급하게 느껴지는 열에 달뜬 신음과 더는 못 하겠다고 울먹이며 비는 가냘픈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왔다.
* * *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없이 흔들리던 미라벨라는 어지러운 눈을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점심을 먹은 뒤 두 오라버니에게 붙잡혀 침실에 갇힌 지도 벌써 몇 시간째. 이곳은 신혼부부를 위한 공작가의 별장에서도 가장 큰 메인 침실로, 침대가 있는 내실과 바깥의 응접실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안쪽의 내실에 놓인 사주식 침대는 고급스러운 수입산 목재를 공수하여 만든 것으로 적어도 다섯 사람은 함께 누워도 비좁지 않을 만큼 넓었고, 특별히 신경 써 제작한 침구 역시 무척 포근했다.
“……흐읍! 읏.”
하지만 미라벨라는 지금 내실의 푹신한 침대가 아닌 그 밖에 있었다. 응접실 한가운데의 1인용 의자에 걸터앉은 르시엘의 무릎 위에. 아니, 앉았다기보다는 사실 누워 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와 알몸으로 마주 보고 포개어 앉은 자세에서, 상체가 거의 일직선이 되도록 몸이 완전히 뒤로 넘어가 있었으니까.
“아흐윽, 아……! 오라버니, 잠깐만요! 흐읏!”
퍽, 퍽! 넓은 방 안 가득 울려 퍼지는, 맨살이 요란하게 맞부딪히며 마찰하는 음란한 효과음. 르시엘은 제 위에 눕다시피 한 미라벨라의 가느다란 허리를 한 손으로만 붙잡고 지지한 채 한창 삽입하는 중이었다. 허리를 깊게 쳐올릴 때마다 몸을 반으로 가르는 듯한 강렬한 감각에 흐읍, 흡! 밭은 숨소리가 거듭 터져 나왔다. 탄탄한 근육질의 허리를 사이에 두고 활짝 벌어진 두 다리가 공중에 뜬 채 애처롭게 달랑거렸다. 새하얀 젖가슴이 나란히 발딱 일어선 분홍빛 유두를 매달고 몸 위에서 흔들리는 모양이 색스러웠다.
“으흑! 무서워요, 오라버니……! 떨어질, 것 같아서, 하으…… 흣!”
머리와 등이 완전히 공중에 떠 있었기에 미라벨라는 자연히 겁을 먹었다. 울먹이며 가느다란 팔을 앞으로 뻗었으나 그녀의 작은 손으로 르시엘을 붙잡는 건 무리였다. 일단 그의 팔은 너무 두꺼웠고, 빈틈없이 꽉 짜인 근육으로 이루어져 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단단했으니까. 그 와중에 음부를 꿰뚫고 들어와 푹, 푹 들쑤시며 끝까지 들이치는 뜨겁고 거대한 성기에 미라벨라는 숨도 못 쉴 만큼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흑, 으응! 읏…….”
“걱정 마, 벨라. 후욱, 내가 꽉 잡고 있으니까.”
르시엘은 두꺼운 근육질의 한 팔만으로 강한 근력을 이용하여 제 여동생을 잡고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를 한 손으로 지지하고 퍽퍽 박으며,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는 클리토리스를 애무했다. 이미 여러 차례 절정을 맞아 민감하게 부푼 음핵이 굳은살 밴 단단한 손끝에 짓눌릴 때마다 비좁은 내벽이 그의 물건을 더욱더 콱콱 조였다. 반쯤은 울음 섞인 가쁜 숨소리가 르시엘의 귓가에 듣기 좋게 울렸다.
퍽, 퍽퍽!
레이든과 에일레스의 것도 평균을 무시하는 압도적인 크기였으나, 르시엘의 성기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게 커다랬다. 흉기 같은 게 좁다란 질구를 한 번에 꿰뚫고 자궁 경부까지 치받으며 밀고 들어올 때마다 눈이 커지고 숨이 틀어막혔다. 묵직한 쇠기둥이 아래에 처박히는 듯한 압박감에 미라벨라는 매번 할 때마다 몸이 둘로 쪼개지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아흐윽!”
“큭…….”
두툼한 근육질 가슴이 크게 들썩이고, 그의 등이 강하게 수축하며 잠시 동안 슬쩍 떨렸다. 동시에 깊은 절정을 맞아 쉴 새 없이 경련하는 질 안에 르시엘이 허리를 털어 남은 정액까지 후련하게 짜냈다. 그는 질펀하게 사정한 뒤에도 잠시 그대로 자세를 유지했다. 르시엘은 바로 빼지 않고 아직 발기가 풀리지 않은 좆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귀두로 부푼 내벽을 쿡쿡 찌르고 두어 번 크게 휘저었다. 어디선가 질척질척한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흐윽, 제발 그만, 오라버니……! 오늘은, 흣, 그만해요…….”
“후으, 힘들어?”
기분 좋게 나른해진 표정으로 눈을 내리뜨며, 그가 울먹이는 미라벨라를 훑었다. 발그레한 홍조가 깃든 뺨과 제 손자국이 보란 듯이 남아 있는 둥근 젖가슴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았다. 희뿌연 액체가 엉겨 붙어 눈앞이 흐릿한 속눈썹을 깜빡이며 그녀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은 그럼 이만…….”
르시엘은 이미 몇 번이나 싸지른 뒤였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지만, 미라벨라가 자꾸 힘들다며 울고 앙탈하니 오늘은 이쯤에서 봐주자 싶었다. 그는 정말 그때까지만 해도 이만 쉬라고 말하며 제 좆 기둥을 잡아 빼 줄 생각이었다는 뜻이다.
“힘들어요, 흑! 으응, 오라버니 건, 하으…… 너, 너무 커서…….”
“젠장, 벨라! 크, 진짜 그만하라는 거 맞아?”
아주 약간 수그러들었던 르시엘의 물건은 미라벨라가 무심결에 한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크기를 확 부풀렸다. 아까보다 더 힘을 받아 묵직해진 크고 굵은 성기가 여린 점막을 짓누르며 터질 듯 꽉 들어찼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달아나고 싶어 바들바들 떠는 미라벨라를 다잡아 그가 낮게 윽박질렀다.
“솔직히 말해, 어? 너 밤새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아흑! 아니에요, 오라버니……! 어, 억울해요!”
“애를 왜 울려, 또.”
그때 침실과 연결된 바깥 테라스의 문이 열리고 에일레스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서는 그에게서 그가 피우는 여송연의 옅은 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뼈대가 곧고 아름다운 나신 위에 가운 하나만 걸친 에일레스는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손만 씻고 되돌아왔다. 테라스로 나가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 주듯, 섬세하고 긴 눈매가 기분 좋게 상쾌했다. 느슨해진 가운의 매듭 사이로 탄탄하고 슬림한 근육이 균형 있게 잡힌 훤칠한 상체가 엿보였다.
“흐윽, 에일레스 오라버니! 흑…….”
“무슨 그런 자세로 해? 벨이 무서워하잖아.”
“아, 젠장, 안 되겠다.”
어느새 터질 듯 부푼 좆을 주체하지 못한 르시엘이 낮은 신음과도 같은 한숨을 길게 내뱉더니 미라벨라를 마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씬한 허리를 붙잡아 추켜올리자 기다란 성기가 굴곡진 내벽을 죽 훑고 빠져나가며 입구 쪽에 큼지막한 귀두만 턱 걸렸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그가 씩 웃으며 작은 몸을 번쩍 들어 기립한 제 성기 위로 푹 꽂듯이 내려 앉혔다.
“하윽, 흐아……!”
여린 점막을 통과하며 단번에 끝까지 꿰뚫리는 자극에 머리가 다 울렸다. 자세 탓에 삽입이 깊어질 수밖에 없어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미라벨라는 마치 두꺼운 작살에 꿰인 작은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그저 할딱이고 있었다. 공중에 뜬 채 어쩔 줄을 모르고 바둥대는 새하얀 두 다리를 르시엘이 잡아 올려 제 허리에 안정적으로 감게 했다. 바닥으로 추락할까 봐 겁을 먹은 미라벨라가 그의 단단한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큽, 그러면 너무 조이잖아, 벨라. 움직일까? 괜찮겠어?”
“흐읏, 오라버니……! 자, 잠깐만요, 아흐…….”
아래가 터질 듯한 육중한 삽입감과 잔뜩 예민해진 내벽을 꽉 채워 짓누르는 자극에 미라벨라가 색색거리며 겨우 답했다. 새하얀 알몸의 뒷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인 채 르시엘의 품에 안겨 있는 그녀의 등 뒤에는 에일레스가 서 있었다.
모처럼 사정을 봐주어 아직 허리를 움직이진 않고 있었으나, 지금 부끄러운 곳 안쪽에는 막내 오라버니의 굵직한 성기가 뿌리까지 깊게 처박혀 있다. 동그란 엉덩이 사이에 묵직하고 검붉은 기둥이 밑동만 남기고 푹 심어져 있는 음란한 광경이 그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을 게 분명했다. 르시엘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고 활짝 벌어져 있는 두 다리와 흐트러진 채 엉겨 있는 그들의 음모까지도 전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새하얗고 예쁜 엉덩이가 부끄러움으로 작게 들썩거렸다. 사실 그런 모습이 더욱더 야릇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으윽, 벨라! 뭐야, 그렇게 움직이면 어떻게, 참으라고, 크…….”
“에, 일레스 오라버니…… 흑, 보지 마세요……!”
“아무것도 안 봤어, 벨.”
미라벨라의 소중한 부분에 아까부터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에일레스가 자상하게 말했다. 그 유혹적인 광경을 관음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중심은 묵직하게 기립하여 날렵하고 탄탄한 복근 위로 두툼한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이질적인 육중한 성기가 고르지 않은 핏대를 잔뜩 세우고, 얇은 가운 위로 흉흉한 부피감을 드러냈다. 침대 옆 탁자로 다가간 그가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왔다.
“왜, 보지 보여 주는 게 창피해서 그래? 아니면 보지가 자지 먹는 게 부끄러워?”
“하읏! 오, 오라버니……! 제발 그런 말 좀, 으응! 진짜 싫어요…….”
“벨, 그렇게 귀엽게 앙탈 부리면 내가 어떡해야 하지?”
에일레스가 낮은 웃음을 터트리며 뒤로 돌아왔다. 그는 르시엘에게 매달리듯 안겨 있는 미라벨라의 새뽀얀 엉덩이를 양쪽으로 벌렸다.
“정말 싫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헷갈릴 거라 생각 안 해?”
“……으으응!”
그가 서슴없이 손을 대자 옅은 분홍빛 주름으로 둘러싸인 미라벨라의 작은 애널이 반사적으로 조여들었다. 힘주지 마, 에일레스가 주사를 놓기 전처럼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소리 나게 때려서 힘을 빼게 했다. 미라벨라는 공중에 붕 뜬 자세가 자칫하면 떨어질까 무서워 차마 돌아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뒤에서 둥근 통을 돌려 뚜껑을 여는 소리가 났다.
“아흐…… 읏, 흐읍!”
부드러운 질감의 차가운 크림이 음부 전체와 애널에 처덕처덕 발라졌다. 르시엘의 것을 받아 내느라 빠듯하게 열려 있는 질 입구와 음핵, 여린 음순 사이사이와 회음에도 빠짐없이. 처음에는 서늘하다가 공기와 접촉하는 즉시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최음 크림의 느낌을 떠올리자 미라벨라는 몸서리가 쳐졌다.
오래지 않아 크림을 바른 미라벨라의 아랫도리 전체가 죄다 홧홧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 감각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무언가가 뒷구멍을 벌리고 쑥 파고들어 왔다. 좁은 공간 안에 효율적으로 밀어 넣을 수 있도록 끝이 갸름한 달걀 모양으로 된 애널 플러그였다.
“이러니까 꼭 꼬리가 달린 것 같네.”
“읍, 아흑! 오라버니…….”
몸 안에 들어갈 부분의 맨 끝에는 귀여운 벨벳 리본이 달려 있었다. 으응! 응! 달걀 모양의 애널 플러그가 뒤쪽에 삽입되는 동안 미라벨라는 무의미한 저항을 하며 끙끙거렸다. 갸름한 달걀 모양의 장난감이 가장 부끄러운 구멍 안쪽으로 전부 파묻히자, 정확히 가운데에 커다란 리본만 빠져나온 창피한 모습이 되었다. 마치 엉덩이 중앙에 리본 꼬리가 달린 것처럼.
심지어 벨벳 리본 양 끝에는 각각 방울 장식이 달려 있어, 그녀가 볼기짝을 움직일 때마다 아기 고양이가 이동하는 것 같은 딸랑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라벨라는 작은 숨을 색색거리며 둔부를 들썩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안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애널 플러그가 주는 자극을 참기 어려웠다. 필사적으로 참아 내느라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으흑, 오, 라버니……! 아래가 너무, 하읏, 아흐으…….”
하지만 아무리 버텨 보려 해도 무리였다. 최고의 효과를 자랑하는 최음 크림을 듬뿍 바른 탓에 민감한 부위가 죄다 미칠 듯이 화끈거렸다. 뜨겁게 달아오른 음핵과 르시엘의 성기를 물고 있는 질구는 물론이고, 한창 진동 중인 플러그가 깊숙이 박힌 애널 안쪽에도 야릇한 감각이 잔뜩 몰렸다.
“하, 벨라……. 이러다 좆이 쭈글쭈글해지겠어.”
“흐윽, 그, 그런 말 하는 거 싫어요…… 으응!”
“온천에 갈 필요가 없겠는데? 후, 좆 마개 빼 주면 줄줄 쏟아지겠네.”
촉촉하고 따스한 점막에 두툼한 귀두 끝머리를 꾹 눌러 비비며 르시엘이 감탄했다. 함빡 배어나는 더운 물기와 성기 표면에 밀착하는 부드러운 점막이 온천물에 몸을 담근 것보다 더 황홀했다. 수치심을 부채질하는 말에 눈가가 발갛게 되었지만 미라벨라 역시 제 안에 그득 고인 음란한 애액을 느낄 수 있었다.
벌컥.
그때, 굳게 닫힌 방문이 열리고 레이든이 들어섰다. 무감한 얼굴을 한 그가 잠시 이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레이, 왔어?”
“오, 오라버니, 오셨어요…… 흐읍.”
르시엘의 강한 팔에 양쪽 허벅지를 붙잡혀 공중에 들린 채 미라벨라가 조그만 소리로 인사했다. 음부에는 굵직한 성기가, 애널에는 진동 중인 플러그가 꽂힌 채로. 문득 그녀는 제 아래의 바닥에 고여 있는 음란하고 작은 물웅덩이에 시선이 갔다. 며칠 만에 대하는 큰오라버니와 인사를 나누기엔 적절하지 않은 창피한 모습에 미라벨라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레이 형.”
“와, 같이 해.”
하지만 레이든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았을 뿐, 그대로 지나쳐 침실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레이든, 안 할 거야?”
“생각 없어.”
“왜, 피곤해?”
“어.”
반듯한 미간이 슬쩍 찌푸려져 있어, 르시엘의 어깨 너머로 그와 눈이 마주친 미라벨라가 흠칫했다. 미라벨라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내실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으나, 아래에서 느껴지는 벅찬 자극에 더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자극적인 희열을 이기지 못해 훌쩍이는 미라벨라의 엉덩이 사이로 에일레스의 커다란 손이 쑥 들어왔다. 그는 쾌감이 몰려 새빨개진 작은 소음순을 쓰다듬고, 르시엘의 굵은 성기가 뿌리 밑동까지 푹 박혀 든 질 입구에 손끝을 가져갔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팽팽한 결합부를 더듬어 보는 손길에 귀여운 리본을 매단 엉덩이가 바짝 굳었다.
“읏, 하으, 거기 만지면…… 으응!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이럴 땐 좋다고 해야지, 벨.”
“하윽, 오라버니! 그렇게, 하지 마세요! 정말 찢어질 것 같아요……!”
“내 생각엔 문제없을 것 같은데. 괜찮은지 한번 보기만 하자, 응?”
“아흐, 아, 안 돼요…….”
최음 크림으로 감각이 극대화된 미라벨라는 작은 터치에도 온몸이 전율했다. 르시엘의 성기를 뿌리까지 머금고 한껏 열려 팽팽해진 입구를 빙 둘러 가며 애무하던 에일레스의 긴 손가락이, 어느 순간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 했다.
“오, 오라버니? 읏!!”
그는 도저히 뭐가 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던 타이트한 구멍 언저리에 틈을 벌리며 한참 공을 들였다. 좁다란 질구 아래쪽에 밀어 넣은 중지를 구부리며 공간을 늘리고, 다른 손으로 부드러운 회음부를 마사지하듯 문지르며 풀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꾹.
한 손으로 가운의 매듭을 풀어 훤칠하고 아름다운 나신을 그대로 드러낸 에일레스가, 요도구에서 미끈한 선액을 흘려 내는 젖은 선단을 미라벨라의 꽉 찬 입구에 붙이고 꾹 눌렀던 것이다. 아흑, 아, 아래가 터질 듯한 벅찬 압박감에 미라벨라는 울먹이는 신음을 쏟아 냈다. 하나만으로도 밑이 찢어질 듯 빠듯해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데, 그런 곳에 두 개를 넣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르시엘의 목을 끌어안은 가느다란 팔이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힘을 주었다.
“읏! 흐아, 아, 안 돼요……!”
“후으, 벨……. 잠깐만, 윽, 다 들어갔어.”
성기를 꽉 죄는 압박감에 에일레스가 섬세한 미간을 찌푸렸다. 힘 풀어, 뽀얀 엉덩이가 또다시 바짝 긴장하자 커다란 손바닥이 찰싹 매를 때렸다.
“……하윽!”
순간적으로 살짝 힘이 풀린 틈을 놓치지 않고, 젖어 번들대는 두툼한 귀두가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름다운 외모로만 봐서는 그런 흉흉한 걸 갖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되지 않았기에, 미라벨라는 그 검붉은 기둥 표면에 울퉁불퉁한 핏줄이 툭툭 불거진 기다란 성기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에일레스의 귀두는 유난히 굵고 위에 얹어진 큼지막한 갓이 뚜렷해서, 삽입할 때마다 예민한 신경이 가득 몰린 질 입구를 강하게 자극했다.
하, 젠장…… 르시엘이 짙은 눈썹 사이를 좁히며 목을 울렸다. 성기가 터질 듯 짓눌리는 압박감에 에일레스 역시 윽, 낮은 신음을 내보냈다. 아래가 한계치까지 확장되는 벅찬 감각이 두려워 미라벨라가 숨도 못 쉬고 호소했다.
“오라버니, 흐읏! 제발 빼 주세요…… 정말, 안 돼요, 찢어져요, 흐윽.”
“크윽, 진짜 좁네.”
“착하지, 벨. 후, 이제 정말 다 됐다.”
끝도 없이 길고 굵은 기둥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에일레스가 사기를 치며 어르고 달랬다. 다행히 가엾은 질구는 앞선 여러 차례의 정사로 어느 정도 녹진하게 풀려 있었고, 충분히 분비된 애액과 미리 잔뜩 쏟아 낸 정액도 부드러운 윤활제 역할을 해 주었다.
일단 가장 두꺼운 부분이 들어가자 나머지도 빠듯하게나마 진입이 가능했다. 그는 회음부를 문질러 풀어 주고 음핵을 자극해 주며 다치지 않게 천천히 삽입했다. 마지막으로 골반에 힘을 주어 앞으로 묵직하게 밀며 남은 부분을 박아 넣자, 비좁은 구멍이 최대한도로 벌어지며 두 개의 성기를 가까스로 모두 수용했다.
“후으, 하…….”
“윽, 벨라, 좆이 잘릴 거 같아…….”
“하아, 읏, 아흐……! 우, 움직이지 마세요! 으흑.”
질구 주변의 피부가 얇게 늘어나 팽팽해지고 바늘 하나 더할 수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찬 압박감에 세 사람에게서 동시에 가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미라벨라가 두 개의 좆에 적응할 때까지 잠시 시간을 주었다가 번갈아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아흑! 아, 흐으, 너무 빨라요! 천천히, 오라버니…… 하윽!”
두 사람 사이에 끼어 공중에 번쩍 들린 작은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거대하게 발기한 두 오라버니의 성기가 교대로 안을 들락거리며 여린 내벽을 거칠게 들쑤셨다. 앞은 두툼한 가슴 근육을 움찔거리는 르시엘의 넓은 상체에 떡하니 가로막혀 있었고, 뒤에서는 에일레스의 큰 손이 엉덩이를 꽉 쥐고 벌리며 사정없이 제 것을 처박았다.
“크, 읏…….”
“젠장, 벌써 쌀 거 같아…… 책임져, 벨라, 으윽.”
“흣, 으응! 읏, 못 하겠어요, 아흑……!”
턱 끝까지 차오른 숨 막히는 압박감은 곧 처음 경험하는 극한의 쾌감으로 바뀌었다. 빠듯한 속살을 빈틈없이 헤집으며 앞뒤로 건장한 남성의 장골이 퍽퍽 맞부딪혔다. 뽀얀 허벅지와 엉덩이의 보드라운 살결이 죄다 분홍빛으로 물들도록.
미라벨라가 특히 잘 느끼는 질 윗벽의 스폿을 르시엘의 커다란 성기가 콱콱 쑤시고, 에일레스가 단단한 기둥의 넓은 면적을 이용하여 애널과 맞닿은 질 아래 벽을 강하게 비벼 댔다. 부드러운 탄력을 지닌 두툼한 귀두가 둥근 표면으로 내벽을 짓누르는 감각이 미칠 듯 야릇하고 좋았다. 두 개의 굵은 좆이 엇박으로 드나들며 쉴 틈을 주지 않고 질 점막을 빠짐없이 마찰하는 자극이 상상 이상으로 커서 미라벨라는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읍, 하으, 읏, 흐읍!”
“벨, 고개 돌려 봐, 후, 옳지.”
“하아, 하아…….”
르시엘의 목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미라벨라의 고개를 에일레스가 제 쪽으로 돌렸다. 그는 숨이 막혀 할딱이는 작은 입술을 제 혀로 축이고 살짝 열린 사이로 나른한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격렬한 행위에 흐트러진 백금발 사이에서, 파란 보석을 세공한 나비 모양의 머리핀이 아슬아슬하게 달랑거렸다.
젖은 살이 거듭 마찰하는 난잡한 효과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흠뻑 젖은 아랫도리에서 음란한 액체가 이리저리 튀고, 세 사람이 연결된 접합부에서 새하얀 거품이 부글거렸다. 미라벨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쾌락에 정말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끄러운 곳을 깊게 관통당할 때마다 납작한 아랫배의 얇은 피부가 불룩하게 튀어나오며 그들의 성기 모양이 고스란히 새겨졌다. 여린 내벽을 자극하며 푹푹 쑤시는 거대한 두 개의 좆 기둥이 살아 있는 듯 불끈거렸다. 셀 수도 없이 절정을 맞아 극도로 민감해진 점막에, 위압적으로 발기한 남성기를 휘감은 굵은 핏줄의 형태마저도 생생히 느껴지는 듯했다.
“으응, 아, 오라버니, 더 이상은…… 아흐윽!”
“하, 진짜, 내가 형이랑, 크, 한 구멍에서 좆 비비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큿…… 르시엘, 그 입 좀 닥치고, 후, 그만 나불대. 죽을 것 같으니까.”
거칠게 올려 치는 허리 짓이 점점 빨라졌다. 뜨겁고 거대한 성기 하나가 빠지면 즉시 또 다른 게 쳐들어오는 숨 쉴 틈 없는 자극에 밀려드는 쾌감으로 질식할 것 같았다. 엉덩이 안쪽에 깊이 처박힌 애널 플러그는 아직도 자잘하게 진동하고 있었지만 질 안에서 느껴지는 거센 오르가슴에 어느 순간 그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뒤, 르시엘의 넓은 등 근육이 꿈틀거리며 느릿하게 떨렸다. 미라벨라를 꽉 끌어안은 그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서서히 허리 짓을 멈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일레스 역시 섬세한 미간을 좁히고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며 사정했다. 절정의 쾌감으로 예민해진 점막에 오라버니들의 따뜻한 정이 흠뻑 끼얹어지며 잔뜩 달아오른 내벽을 달래 주었다. 미라벨라가 다급히 가쁜 숨을 토해 냈다. 한참 동안 활짝 벌린 채 르시엘의 단단한 허리를 감고 있던 다리 안쪽이 얼얼했고, 배꼽 아래로는 죄다 제 몸이 아닌 것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하아, 흑…….”
“르시엘, 안으로 들어갈까? 벨이 좀 추울 거 같은데.”
“좋아.”
가장 안쪽 내실로 자리를 옮긴 뒤, 기진맥진한 미라벨라는 무작정 침대 끝으로 파고들었다. 너무 지쳐서 옷을 찾아 입는다거나 알몸을 가릴 기운조차 없었다. 두 오라버니를 동시에 받다니. 처음 겪는 극한의 쾌락을 경험하며 한참 시달린 밑구멍이 아직도 떨리는 것 같았고 몹시도 화끈거렸다.
미라벨라의 그곳은 실수라도 한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음란한 행위의 흔적인 희뿌연 백탁 액이 비밀스러운 입구로부터 흘러나와 외음부 전체는 물론, 뽀얀 허벅지 안쪽까지 전부 점도 높은 액체로 죄다 축축했다. 물기를 머금고 촉촉해진 음모가 조그마한 소음순 양쪽에서 연한 살결에 엉기듯 이리저리 달라붙었다.
“읏, 아흐…….”
엉덩이 안쪽에 삽입된 애널 플러그는 그사이 진동이 멎어 있었다. 하지만 최음 크림으로 인해 화끈거리는 내부의 점막을 자꾸만 건드리는 자극적인 이물감이 부담스러웠다. 미라벨라는 새하얀 시트 위에 옆으로 몸을 웅크리고, 손을 엉덩이 뒤로 돌려 직접 플러그를 빼내려 시도했다. 조그마한 애널 바깥으로 삐져나와 동그란 엉덩이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리본을 직접 더듬어 본 작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음란한 장난감의 크기는 생각보다도 더 커서 그걸 스스로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벨라, 혼자 뭐 해? 한 번 더 할까.”
“……앗, 으응!”
어느 틈에 다가온 르시엘이 등 뒤에서 제 몸을 가까이 밀착시키려 했다. 그사이 또다시 몸을 부풀리고 있는 그의 양심 없는 아랫도리가 눈에 확 들어와, 기겁한 미라벨라는 침대를 기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살살 박을게, 살살. 응?”
“읏! 아, 안 돼요! 더 이상은, 흐읍, 정말 못 해요…….”
한 번 더 할 기회를 노리는 르시엘을 피해 미라벨라는 휘장이 내려진 어두운 침대 중앙 쪽으로 도망쳤다. 성인 대여섯 명이 누워도 넉넉할 만큼 넓고 푹신한 침대 위를 엎드린 자세 그대로 기어 달아나던 그녀는, 그만 어딘가에 걸려 중심을 잃고 침대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읏!”
어두워서 누가 있는 줄 몰랐는데, 바로 앞에서 단단한 팔이 뻗어 와 넘어지는 그녀의 몸을 받쳐 주었다.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던 레이든이었다.
‘……시가 향?’
그에게서 언뜻 느껴지는 낯선 시가 향에 미라벨라는 속으로 갸웃했다. 흡연을 하는 건 에일레스 오라버니뿐인 걸로 알았는데……. 게다가 평소 약간의 흐트러짐조차 허용하지 않던 그는 오늘따라 슈트의 재킷을 아예 벗어 두고, 맞춤 셔츠의 위 단추마저 두어 개 풀고 있었다.
“저, 오라버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순간 그녀는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푸른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어느덧 침실 전체에 스며든 어스름 속에서도 그 시선은 너무도 뜨겁게 느껴졌다. 문득 부끄러움을 느낀 미라벨라가 저도 모르게 그의 눈을 피했다. 지금은 그와 몸을 섞고 있던 중도 아니었기에 발가벗은 건 그녀뿐이었고, 그래서인지 행위의 흔적이 역력한 알몸을 고스란히 보이는 게 더 창피했다.
“흐읏, 레이든, 오라버니…….”
“……하.”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은 레이든이 문득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사람처럼 깊게 내쉬었다. 미라벨라는 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입술만 달싹였다. 어둠 속에서 그녀를 응시하는 그의 깊은 눈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엉킨 채 서려 있었다.
“……흐읍!”
돌연 그녀를 제 품으로 끌어당긴 그가 입을 맞춰 왔다. 눈을 피하려 고개를 돌린 미라벨라의 턱을 당겨 자신 쪽을 보게 하고, 꼭 다문 아랫입술을 깨물어 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를 파고들어 온 혀가 그녀를 집요하게 휘어 감고 단맛 나는 타액을 숨이 부족해질 때까지 빨아올렸다.
흡, 흐읍, 호흡이 부족해 가냘프게 할딱이면서도 미라벨라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간절히 매달렸다. 입천장과 볼 안, 입술 안쪽의 보드라운 점막을 뜨겁게 핥고 말랑한 혀를 뽑아낼 듯 겹친 그가 하는 대로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고 팔을 뻗어 단단한 어깨를 끌어안았다.
“하아, 아…….”
“음…….”
마치 진득하게 몸을 섞기라도 한 것처럼 뜨겁고 농밀한 키스는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나른한 기분과 함께 한참 뒤에야 끝이 났다. 앞으로 넘어지려던 상체가 그에게 완전히 기대다 못해 밀착된 채, 미라벨라가 가쁜 숨을 색색거렸다. 그들은 언젠가 온천에서 넘어질 뻔한 걸 잡아 주었을 때와 같은 자세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와 달리 미라벨라 혼자만 알몸이라는 것과, 몸을 가려 주는 물이 없어 더욱 음란한 구도라는 점이었다.
“흣…….”
그녀는 문득 제 유두가 잘 손질된 그의 맞춤 셔츠 가슴팍에 계속해서 마찰하는 것을 발견하고 얼굴을 붉혔다. 한참을 괴롭힘당하여 부어오른 자그마한 젖꼭지는 끄트머리가 새빨갰다. 그게 좀 따끔거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미라벨라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어깨를 꽉 잡은 손이 놓아 주지 않았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오라버니를 부르며 셔츠의 소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저, 오라버니…….”
“…….”
“……아파요.”
레이든은 잠시 동안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왼쪽 눈매를 살짝 찡그렸다.
“미라벨라.”
침대 헤드에 기댄 몸을 고쳐 앉으며 지그시 미간을 짚었던 그가 마침내 낮은 한숨을 쉬었다.
“……흐읏!”
돌연 그녀를 끌어당겨 제 위로 올라 앉힌 레이든이 한 손으로 빠르게 버클을 풀었다.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수납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이미 무섭게 발기해 있던 그의 성기가 여린 음부를 예고 없이 푹 꿰뚫었다. 목 끝까지 쑤시고 들어올 듯한 묵직한 삽입감에 가느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새하얀 두 다리를 제 허리에 걸치고 그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급하게 중심을 잡느라 그의 가슴 아무 곳이나 짚었던 미라벨라가, 손끝에 닿은 단단한 돌기를 느끼고 얼굴을 붉혔다.
“아흡, 아! 잠깐만요, 흐읏!”
마주 보고 겹쳐 앉은 자세 탓에 위로 살짝 휘어 있는 그의 성기가 민감한 질 위쪽 벽을 더 깊게 푹푹 쑤셨다. 단단한 심지와 달리 부드러운 탄력을 가진 묵직한 귀두가 가장 예민한 스폿을 때리고 짓찧을 때마다 야릇한 신음이 거듭 숨 가쁘게 터졌다. 그가 허리를 깊게 쳐올릴 때마다 미라벨라의 엉덩이가 흔들리며 뒤에 박힌 리본에서 귀여운 방울 소리가 났다.
그는 허리를 높이 들었다가 다시 끝까지 주저앉히기를 반복하며 점점 더 빠르게 피스톤질을 했다. 벼락같은 쾌감에 작은 엉덩이가 들썩였다. 아래가 울리도록 세게 삽입할 때마다 거친 음모가 보드라운 살결을 할퀴고 잔뜩 부어오른 음핵이 단단한 치골에 문질러지는 짜릿한 감각에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아흐윽…… 아!”
마침내 머리가 돌 것 같은 깊고 긴 절정을 맞으며 미라벨라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찌릿찌릿한 기운이 흘렀다. 바들바들 떨리는 여린 몸을 고쳐 잡은 레이든이 허리를 느릿하게 돌려 끝까지 사정하며 낮게 억눌린 신음을 뱉어 냈다.
그는 제가 쏟아부은 정액 한 방울까지도 낭비하지 않고 전부 질 점막에 스미게 하려는 듯, 여동생의 둔부를 세게 쥐고 추켜올렸다. 부드러운 살이 큼지막한 손 안에서 짓눌리며 모양을 바꿀 때마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자극이 더해져 미라벨라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
“뭐야, 레이.”
발갛게 열린 구멍 안쪽으로 검붉은 좆 기둥이 뿌리까지 박혀 드나드는 적나라한 광경을 뒤에서 짙은 눈으로 감상하던 르시엘이 중얼거렸다. 여동생의 새하얀 알몸이 제 형의 위에서 이리저리 들썩이는 장면을 바라보며 그는 갈증이 이는 사람처럼 혀로 입술을 축였다.
“안 한다더니…….”
“흐읏!”
레이든은 한참 뒤에야 가쁜 숨을 할딱이는 미라벨라의 어깨를 지그시 잡아 제 상체에서 약간 떨어뜨렸다. 그는 물끄러미 시선을 아래로 주었다. 그녀가 바쁘게 색색거릴 때마다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흉곽. 귀엽게 발딱 선 두 개의 젖꼭지는 말끔한 셔츠 위에 사정없이 마찰하여 끄트머리가 붉게 벗겨져 있었다. 엄지로 발긋해진 유두 끝을 지그시 눌러 보며 그의 것이 미라벨라의 안에서 다시 몸을 부풀렸다.
“하아, 하아…….”
“벨라, 지금쯤이면 뒷구멍도 꽤 풀렸으려나?”
르시엘이 아랫입술을 핥으며 맹수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다가왔다. 아까 르시엘과 에일레스를 동시에 받아 낼 때부터 쭉 미라벨라의 창피한 곳에 깊게 박혀 있던 애널 플러그. 질 안에 레이든의 성기를 품고 있는 그녀의 엉덩이 한가운데에는 귀여운 벨벳 리본이 여전히 장식되어 있었다. 르시엘이 리본을 힘주어 잡아당기자 미라벨라의 애널에 박혀 있던 달걀 모양의 장난감이 쑥 뽑혀 나갔다.
“오, 아주 따뜻하게 데워졌는데.”
“아흐, 아…….”
그는 주위가 부드럽게 이완되어 발름거리는 분홍빛 주름을 헤집고 굵은 제 손가락을 구멍 안에 푹 박아 넣어 더듬으며 그사이 뒤가 얼마나 풀렸는지를 가늠해 보았다. 아직 최음 크림의 효과가 돌고 있는 뒤쪽에서 참을 수 없이 강한 쾌감이 느껴져 미라벨라가 우는 소리를 냈다.
“벨라는 뒷구멍까지 전부 채워 주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으니까.”
“읏, 오라버니, 아, 흐읍……!”
제대로 풀린 뒤쪽을 겨냥한 굵직한 첨단이 선액으로 번들대는 표면을 꾹 누르며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레이든이 각도를 틀어 미라벨라의 엉덩이를 들어 주었다. 곧 르시엘의 육중한 신체 일부가 안으로 푹 파묻혔고 두 개의 굵은 좆에 앞뒤로 뚫린 그녀가 숨 막히는 삽입감에 바르르 떨었다.
“크으.”
“아아, 하으, 아…… 흐읏!!”
앞뒤 구멍을 꽉 채운 두 개의 크고 단단한 성기가 서로 엇박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두 사람 가운데 끼어 꼼짝도 못 하고 흔들리던 미라벨라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얇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번갈아 세차게 들이치고 빠져나가며 자지러지게 만드는 감각. 민감한 스폿을 계속해서 짓찧는 미칠 듯한 자극. 머리끝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펑 터지게 할 것 같은, 정말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은 두렵고 벅찬 쾌감…….
그때 드리워진 휘장을 걷고 침대로 올라선 에일레스가, 절정감을 못 이겨 우는 미라벨라에게로 다가왔다. 매끄러운 뺨을 적시고 가득 번진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 주며 그가 자상하게 토닥였다.
“왜 울어, 벨. 오라비 좆을 두 개나 맛있게 받아먹고 있으면서.”
“흐윽, 으, 흡……!”
“벨라는 욕심쟁이라서, 후, 윗입이 영 허전해서 보채는 거지.”
“그래? 그렇다면…… 막아 줘야겠네.”
흐읍, 자상한 오라비의 마음 씀씀이만큼이나 부들부들한 귀두가 입술을 문지르고 곧 비릿한 정액 맛이 느껴지는 뜨겁고 큰 성기가 입 안으로 끝도 없이 밀고 들어왔다. 미라벨라는 목구멍까지 깊게 건드리며 꽉 채운 압박감에 잠식되어 숨이 막혔다.
세 오라버니에 의해 전부 채워진 위아래의 구멍과, 숨 막히게 느껴지는 비릿하고 더운 수컷 향. 점차 고조되는 감각. 질식할 것처럼 힘들면서도 스르르 퍼져 나가는, 충만하고 기묘한 만족감. 그 진한 향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롯한 쾌감을 삼키며 미라벨라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흔들었다.
“윽…….”
“하, 읏.”
“크읍!”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정을 쏟아 냈다. 하아…… 목 안을 건드리던 에일레스의 성기가 특유의 진한 향을 풍기는 백탁 액을 퍼붓고 빠져나간 뒤에야 미라벨라는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점도 높은 뜨거운 액체는 목구멍 안쪽까지 고루 끼얹어져 점막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꼴깍.
그것을 삼킨 순간, 미라벨라는 알 수 없는 갈증이 깨끗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오라버니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지금만큼은 아무것도 주체가 되지 않았다. 모두와 함께 있는, 세 오라버니에게 둘러싸인 이 순간이 정말 끔찍하게 좋았다. 정말, 너무 완벽해서 두려울 정도로.
다른 사람들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쾌락의 정점과도 같았던 원초적인 정사가 끝난 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자세를 바꾸지도 않았다. 일을 치른 뒤의 미묘하고 더운 공기가 가라앉은 어두운 침실. 방 안에는 한동안 오라버니들의 품에 갇힌 미라벨라가 가쁜 숨을 고르며 색색거리는 소리와 벽에 걸린 시계의 일정한 초침 소리만이 가득했다.
“저어, 오라버니. 이제 그만…….”
그리고,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 순간. 큭…… 뒤쪽에서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들려와 조용하고 위화감 드는 침묵을 깼다.
“젠장, 크윽…….”
“……르시엘 오라버니? 왜…….”
“하, 진짜 꼴사납게…… 큽, 보지 마, 벨라.”
커다란 손이 뒤돌아보려는 미라벨라를 꽉 잡고 저를 보지 못하게 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사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이 계획이 그들 모두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일이 틀어질 경우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서는 이미 각오했다. 하나 손 안에 쥔 모든 것들을 잃는 것보다도 어쩌면 미라벨라를, 그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영원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야말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다. 어쩌면 자꾸만 떠오르는 그 가정을 애써 피하기 위해 어리석은 육체의 쾌락에 의존하고자 더 거친 섹스에 몰두했는지도 몰랐다.
“아, 젠장! 벨라…….”
불안감은 지나치게 완벽한 순간의 정점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솔직하게 터트린 건 제 감정을 숨기는 데 형들만큼 능숙하지 못한 르시엘이었다.
“정말 어떡하면 좋지?”
“……오라버니?”
자잘한 검상과 흉터가 자리한 등 근육과 두툼한 어깨가 쉴 새 없이 들썩거렸다. 그는 제 몸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여동생의 자그마한 등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나, 널 어디에도 못 보내겠어…….”
* * *
탁.
침실과 이어진 응접실의 문이 조용히 닫혔다.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채로 생각에 잠겨 있던 레이든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는 에일레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라벨라는?”
“막 잠들었어.”
에일레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답하고는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미라벨라는 결국 벅찬 행위를 끝까지 이겨 내지 못했다.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든 그녀를 씻겨서 침대에 눕혀 놓고 나오는 길이었다.
“레이, 르시엘은 어디 갔어?”
“밖에.”
“나갔다고? 이렇게 비가 오는데.”
커튼이 반쯤 내려진 창밖을 힐끗 보며 에일레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점심때부터 흐려진 하늘을 가득 뒤덮었던 비구름은 어느새 거센 폭우로 바뀌어 있었다.
“잠시 몸을 풀고 온다더군. 시간이 필요하겠지. 차라리 찬물을 뒤집어쓰는 편이 마음을 정리하기엔 나을 수도 있고.”
자조적으로 느껴지는 어조가 어딘가 이상해서, 에일레스가 그를 바로 응시했다.
“레이든, 무슨 일 있지?”
“…….”
“왜 그래, 벨의 일이야?”
“……문제가 좀 생겼어.”
잠시 침묵하던 그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지난번 황궁 내의 화가가 미라벨라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나. 그게 전달된 뒤 에펠 공국의 후계자가 다른 여자와는 만나 보지도 않겠다고, 미라벨라가 아니면 절대 혼인하지 않겠다고 한다는 거야. 공국 쪽의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고.”
“뭐? 초상화는 그냥 형식적인 절차 아니었어? 황제 폐하의 반응은?”
“당연히 크게 기뻐하시지. 일단 미라벨라가 병이 났다고 운을 띄워 보긴 했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악화되기 전에 일정을 당기자고 하시더군. 에펠 쪽에서도 그걸 원할 거라면서. 사실 폐하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으니까.”
에일레스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당장 병사로 위장하는 건 의심을 사기 쉬울 텐데. 좀 무리가 있더라도 일단 미라벨라를 외국으로 보내고 봐야 하나.”
레이든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네 말대로 그건 지나친 무리수야. 황궁에서 그 애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간 게 불과 얼마 전인데 갑자기 병사했다고 하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고위 귀족의 장례를 확인 절차 없이 치를 수 있을 리도 없고. 이건 애초에 충분한 시일을 두어도 위험한 일이었어.”
“…….”
“에일레스, 이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냉정히 말해 녹스…… 황태자와는 완전히 틀어졌다 봐야 하지. 황제 폐하는 사적으로는 고모부가 되시지만, 그분은 군주다. 황권에 도움이 될 수도, 동시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우리를 신임하면서도 늘 경계하시는. 이 일은 심각한 황실 기만행위이고 언제고 우리 가문을 물어뜯을 기회만 엿보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에펠 공국과의 평화 협정을 우리 가문에서 망치는 그림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자고.”
레이든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의 뜻을 비로소 눈치챈 에일레스의 음성이 차갑게 낮아졌다.
“레이든, 설마 미라벨라를 그냥 보내자는 거야?”
“……그래.”
“하.”
그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제 형을 노려보았다.
“결국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크게 숨을 내쉰 뒤 그가 이번에는 다소 날 세운 어조로 말했다.
“벨을 보내지 않으려 했던 건 맞아? 애초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건 아니고?”
“이봐, 에일레스.”
“나나 르시엘이 섣불리 행동할까 봐 그걸 막아 놓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새파란 눈동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형 머릿속엔 가문밖에 없잖아. 가문의 이익 앞엔 누구의 희생이 따르든 아무렇지 않지? 미라벨라를 그렇게 쉽게 보낸다고? 하긴, 가족보다 작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
“선 넘지 마라.”
레이든이 한쪽 눈썹을 비스듬히 치켜올렸다.
“넌 애초에 이 일을 도모한 게 마치 나 혼자만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차분하고 침착한 중저음이 낮게 깔렸다.
“보내는 게 쉽다고.”
“…….”
“내 속이 정말 아무렇지 않을 것 같나?”
에일레스가 그 말에 멈칫했다. 사실 이성적으로는 그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제 형에게 화풀이를 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그들은 서로를 잘 알았다. 마주한 형제의 눈 속에는 자신만큼이나 괴로운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과거의 어리석은 결정에 대한 숨길 수 없는 후회의 빛이 짙게 떠돌았다.
“……하, 미안. 레이.”
“괜찮아, 사과는 됐어.”
마찬가지로 그의 눈에 서린 복잡한 감정들을 읽어 낸 레이든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떨지 아니 이해하지.”
그가 천천히 낮은 한숨을 쉬었다.
“에일레스, 나도 너만큼이나 간절히 미라벨라를 원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만큼.”
“…….”
“나도 저 애를……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다.”
늘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던 눈빛에 한순간 풍랑이 일었다. 서늘한 푸른 눈에 불꽃이 번뜩였다. 그는 드물게, 아니 거의 처음으로 제 개인적인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모든 여유를 바닥나게 하고 이성을 잠식하며 범람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고뇌와 고통. 그 마음은 결코 에일레스나 르시엘에 뒤지지 않았다.
“미라벨라는 좋은 아이야. 아니, 이젠 좋은 여자라고 해야 하나. 다정하고 상냥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하고.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용감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보내겠다는 거야.”
“에일레스, 넌 어떤 게 진짜 미라벨라를 위하는 길인지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가 설득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건 본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관계였어. 에펠 공국이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일이 순조로웠다 치자. 무사히 미라벨라를 빼돌리고 몇 년 후 신분을 세탁해 다시 데려온다고 하면, 그 애를 어떻게 할 건데. 숨겨 놓고 정부로라도 둘 건가?”
“정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릴.”
“우린 황실의 친인척이자 공작가의 사람이야. 이제 와 그게 싫든, 좋든 간에. 혼인할 땐 황실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하지만 미라벨라는 처음 데려왔을 때 이미 황제 폐하와 황태자에게 얼굴을 보였고 지금은 데뷔탕트까지 치렀다. 만일 가짜 신분이 발각된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운 좋게 넘어간다 해도 정상적인 사교 활동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
“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볼까. 운이 나쁘면 그 애는 평생 국내로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어. 대공비가 되더라도 외국에서 사는 건 마찬가지이니 받아들이라 할 건가? 또는 입국에 성공하더라도 떳떳한 귀족으로 권리를 주장하기는커녕 평생을 숨어서 마음 졸이며 보내게 될 확률도 있지.”
자신이 외국으로 나가 함께 지낼 거라고, 에일레스는 그렇게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레이든이 먼저 가로막았다.
“……그리고 만일, 떠나고 싶어 하는 아이를 우리가 억지로 붙잡아 두게 되는 거라면? 우리는 그 애의 인생에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짓는 거야. 최근 미라벨라의 방 책장을 보지 못했나? 에펠 공국의 문화나 기후에 관한 책, 스크랩이 가득하더군. 그 애가 요즘 입는 옷들도 전부 에펠 공국 스타일이고. 미라벨라는 진작부터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너도 진작에 눈치챘을 것 같은데.”
레이든이 툭 내뱉으며 그를 힐끗 보았다. 에일레스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끝까지 이기적인 욕심만 챙기는 사람이 되더라도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벨은 분명 우리를…….”
“남자로 보고 있다고.”
“그래. 그 애가 우릴 바라볼 때의 눈빛을 보면 모르겠어?”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그렇게 당장 죽을 것처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레이든이 아까보다 더 낮은 한숨을 쉬었다. 평소 실내 흡연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그였으나, 에일레스가 답답한 마음에 시가가 든 틴 케이스를 꺼내 들자 피워도 된다는 눈짓을 보냈다.
“에일레스, 미라벨라가 지금 몇 살이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열여덟이잖아.”
“그래, 그 앤 이제 고작 열여덟이야. 고아원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기본적인 보살핌조차 받지 못하다가 성년이 된 직후 우리를 만났지. 그런 미라벨라에게 우리가 무슨 짓을 했나.”
“……레이, 그게 무슨 뜻이야?”
“모르는 척하지 마. 미라벨라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 간의 유대나 애정이 어떤 건지 전혀 배우지 못했어. 우리를 만나기 전까지 이성적인 접촉 역시 전무했고. 그러니 오라버니와 잠자리 교육을 하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믿을 수 있었던 거겠지. 만약 르시엘이 여동생이었다면, 넌 섹스하는 법을 몸소 가르칠 수 있었겠나?”
에일레스의 아름다운 얼굴이 험하게 찌푸려졌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말고 본론이나 말해.”
“그 애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단지 육체적인 끌림을 혼동한 일시적인 감정일 수도 있어. 우릴 남자로 느끼면서도 피가 섞인 오라버니라 알고 있으니 지금은 그저 혼란스럽겠지. 그 마음을 잡아 주는 게 너와 내가 할 역할이고.”
“…….”
“지금이 잘못된 걸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우린 그 아이의 보호자로서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진짜 미라벨라를 위하는 길이 어느 쪽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그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기에 에일레스는 말문이 막혔다. 실은 그 역시 모를 리 없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
“에일레스, 어른답게 굴어. 자상한 오라버니가 되려거든 끝까지 네 역할을 잘해야지.”
레이든이 제 동생의 넓은 어깨를 격려하듯 툭툭 두드렸다. 그가 마치 울기 직전의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나도 너나 르시엘처럼 울 수 있었으면 좋겠군.”
에일레스의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듯 말했다.
“처음부터 데려오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그랬으면.”
“차라리 미라벨라를 몰랐다면…….”
이렇게 마음 아플 일도 없었을 텐데…….
에일레스가 정말 울 것처럼 보여 표정을 부드러이 풀었던 레이든은 단호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 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런 감정을 온전히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는 라이오넬 공작가의 가주이자 동생들을 이끌어야 할 장자였다. 미라벨라를 위해서도 다른 두 동생들을 위해서도,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굴어야 했다. 결국 그는, 이런 순간마저도 끝까지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미라벨라가 공작가에 있었던 시간은…….”
늘 앞만 보고 달리던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부드러웠던 시간이었는지도.
“……아무것도 아니야. 금방 잊힐 거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테지.
“처음부터 이용할 생각으로 데려왔으면 끝까지 철저히 이용해. 어차피 미라벨라에게도 그게 가장 나은 미래일 거다. 우리가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 애가 어떻게 됐을 것 같나?”
손아래 동생을 다독이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는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했다. 평소보다도 더 딱딱하게 굳어 있는 무감한 얼굴에서 그의 속내와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우린 자선 사업가가 아니야, 에일레스. 이제 와 괜히 그 애를 안쓰럽게 생각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것 없어. 동생도 뭣도 아닌 갈 곳 없는 고아를 거둬 공녀로 만들어 주었으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
“……그래, 맞아. 사실 벨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남이지.”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오라버니라 부르며 따르는 아이를 철저하게 이용하려 한 쓰레기고.
이렇게 벌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자책하며 에일레스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레이든이 그런 그의 어깨를 다시 두어 번 두드렸다. 어두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는 그사이 몇 배나 굵어져 무서운 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든, 벨은…….”
“잠깐.”
톡. 문득 작은 기척을 느낀 레이든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에일레스 역시 같은 것을 느끼고 멈칫했다.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를 잘못 들었나 싶게 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확인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레이든이 긴 다리를 움직여 입구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
“레이, 왜 그래?”
그 자리에 붙박인 듯 멈춰 선 레이든이 천천히 몸을 숙여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조각 같은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옆으로 다가와 그의 손에 들린 걸 확인한 에일레스의 목 안에서 깊은 침음이 흘렀다.
파란 보석을 세공한 나비 모양의 머리핀.
아, 낯익은 미라벨라의 머리핀이 바로 문 앞에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