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Ⅸ. 데뷔탕트, 젖어 든 밤 (10/17)

Ⅸ. 데뷔탕트, 젖어 든 밤

시간이 흘러 마침내 데뷔탕트 무도회 당일이 찾아왔다.

“아가씨, 조금만 더요! 리본을 한 칸만 더 조일게요.”

“흐읍, 로, 로지나……! 나, 정말 숨이…….”

속옷만 입은 미라벨라는 침대 옆의 기둥을 끌어안고 애처롭게 호소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허리가 곧 끊어질 것 같았다. 바로 뒤에서는 로지나를 위시한 하녀들이 아가씨의 가느다란 몸을 코르셋으로 섬세하게 조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랜 기간 안주인의 자리가 공석이었던 라이오넬 공작가는 가문의 위세에 비해 분위기가 늘 차분한 편이었다. 그 때문에 막내 아가씨의 데뷔탕트를 준비하는 하녀들이 오히려 더 신이 났다.

무도회가 시작되는 건 늦은 저녁이었으나, 미라벨라는 새벽부터 꽃잎이 둥둥 떠 있는 장미수 욕조 안에 집어넣어졌다. 부드러운 피부를 유지시켜 준다는 전신 마사지를 받은 뒤에는 드레스와 그에 어울리는 보석을 하나하나 착용해 보며 종일 시달려야 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가씨. 제 친구는 따님만 셋인 백작가에서 일하는데, 그 집 아가씨들은 파티에 참석하기 사흘 전부터는 물밖에 드시지 않는대요. 음식 냄새가 나면 크게 화를 내셔서 그럴 땐 시중드는 하녀들도 다 같이 굶어야 한다고 하던걸요.”

로지나의 말에 미라벨라는 약간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굶는 거라면 성 루베이도 학원에서 천덕꾸러기로 지낼 때 수없이 해 본 일이라 끔찍했다.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녁이 가까워 올 무렵, 모든 준비를 끝낸 미라벨라의 모습은 봄날의 정원에 갓 피어난 꽃처럼 화사했다. 수도에서 가장 큰 고급 의상실의 수석 디자이너가 오늘을 위해 디자인한 드레스는 그녀의 체형을 그야말로 완벽하게 살려 주었다.

아이보리에 가까운 크림 컬러의 오간자 드레스는 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잘 어울려 사랑스러운 요정처럼 보였다. 작은 체구를 보완하기 위해 풍성하게 만든 금사 치맛자락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명에 반사되어 빛났고, 자잘한 보석들을 달아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가느다란 허리는 더욱 돋보일 수 있도록 그 부위에 라인을 넣어 살짝 강조했다. 자그마한 어깨와 팔은 가리기보다는 그대로 내놓는 쪽을 택했지만, 날씬한 몸에 비하여 유달리 사랑스럽게 부푼 가슴선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하게 되어 여성미를 더하는 효과가 있었다.

“정말 너무 아름다우세요, 미라벨라 아가씨!”

“오늘 데뷔탕트를 치르는 영애들 중 분명 우리 아가씨께서 가장 돋보이실 거예요!”

“저, 하지만 너무 벗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 위에 케이프라도 두르면…….”

경탄이 깃든 찬사에도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미라벨라는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처럼 본격적인 야회복의 용도로 만들어진 드레스를 입어 본 건 처음이었다. 데콜데를 거의 파지 않은 디자인이긴 했지만, 몸을 숙일 때마다 언뜻 보이는 부드러운 가슴 굴곡과 뽀얗게 드러난 어깨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아가씨,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입고 계신 건 아마 수도에서 제일 정숙한 무도회용 드레스일 거예요. 여기서 더 가리거나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정말 촌스럽다는 말을 듣게 된답니다. 역시 디자이너의 말대로 데콜데를 한참 더 파이도록 했어야 하는 건데…….”

로지나의 말대로 최근 수도 사교계의 레이디들 사이에는 기성세대의 혀를 차게 만드는 과감한 디자인의 드레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제 막 데뷔탕트를 치르는 비교적 어린 레이디들도 제 언니나 동경하는 귀족 부인을 따라 그런 의상을 고르는 분위기였고……. 작은 체구와 상반되는 풍만한 볼륨감은 아가씨의 가장 큰 장점이고, 장점은 드러내라고 있는 거라 역설하며, 로지나는 코르셋에 상아 버스크를 집어넣어 가슴을 더 강조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자자, 더 얌전한 옷은 도서관이나 교회에 갈 때 입으시고요. 일단은 어서 내려가세요. 공작님과 다른 도련님들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세요.”

“응, 알았어.”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서는 미라벨라의 얼굴은 긴장으로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아래층으로 가자 오늘 데뷔탕트를 치르는 여동생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기다리던 세 오라버니들이 보였다. 가장 먼저 눈을 마주친 건 정복 차림으로 1층의 큰 기둥에 기대어 서 있던 르시엘이었다.

늘 퇴근길에 위 단추를 두어 개 풀어 버리거나 겉옷을 벗어 던진 모습이 익숙한 그였는데, 기사단의 제복을 제대로 차려입으니 저절로 얼굴을 붉히게 될 만큼 남성적인 미남이었다. 딱딱하게 절제되어 있는 정복 아래로 관능적인 남자의 야성이 물씬 느껴졌다. 미라벨라를 발견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맹수처럼 날카로운 붉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바라보기만 했다.

“저…….”

근처에 있던 레이든과 에일레스는 각각 베이지와 아이보리 계열의 연미복 차림으로, 두 사람 역시 눈부시게 근사했다. 가까이 다가서려던 미라벨라는 그 자리에서 잠시 멈칫했다. 왠지 그들의 모습이 너무 완벽하게 느껴져, 그 사이에 제가 끼는 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두 오라버니 역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미묘해진 분위기를 깨닫고 미라벨라는 긴장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저, 그렇게 이상해요?”

다시 침묵. 르시엘은 여전히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고, 레이든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지그시 미간을 좁혔고, 로비 중앙의 탁자에 앉아 있던 에일레스는 약간 놀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며 턱 위에 대고 있던 긴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역시 이렇게 화려한 옷은…… 좀 안 어울리죠?”

그들의 침묵을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되돌아가려 했다.

“그,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얼른 올라가서 다른 걸로 갈아입고 올게요!”

“아니!”

“네?”

“왜 갈아입어? 하 진짜, 세상에서 제일 예뻐! 벨라.”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건 르시엘이었다. 한동안 참고 있던 숨을 터트리듯 감탄사를 내뱉은 그는 곧 언제 입을 다물고 있었냐는 듯, 자신이 아는 모든 긍정적인 형용사를 쏟아 냈다.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아름답다 등등……. 그 말에 동의하듯 에일레스가 옅은 미소를 띠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일레스 오라버니! 저 정말 괜찮아요?”

“그럼, 아주 예쁘고말고, 우리 벨.”

그를 돌아보며 조급하게 물은 말에 다정한 답이 되돌아오자, 그제야 미라벨라는 조금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한 사람의 칭찬만은 듣지 못했다…….

“자, 그럼 이만 마차로 갈까? 그리고 파티장에 도착해서 더우면 벗더라도, 일단은 좀 덮는 게 좋겠다.”

미라벨라의 어깨를 감싸듯 에스코트하며 에일레스가 말했다. 마차로 가는 길에 그는 로지나에게서 은여우의 털로 만든 보송보송한 케이프를 건네받아 눈처럼 하얀 어깨 위로 걸쳐 주었다.

문 앞에는 라이오넬 기사단 소속의 젊은 남성 기사들이 경호를 위해 늘어서 있었다. 그들 모두 진심으로 감탄하는 눈빛으로 데뷔탕트를 위해 성장한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아직 미취한 몇몇 기사들은 남몰래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레이, 벨에게 한마디 해 주지 그래?”

“늦었어. 빨리 타기나 해.”

“…….”

하지만 레이든만은 끝내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그녀의 기분이 아까보다 가라앉은 걸 눈치챈 에일레스의 권유에도 레이든은 그대로 돌아서서 마차로 향했을 뿐이다.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성큼 앞서 걷는 그의 넓은 등을 올려다보며 미라벨라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딸이나 여동생이 데뷔탕트를 치르러 갈 때는 그 집안의 가주나 공식적인 후계자가 에스코트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의 차가운 얼굴은 언제나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레이든은 예법에 따라 마차 옆에 서서 미라벨라가 오를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

조금 긴장한 채로 막 마차에 오르던 미라벨라는,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발이 살짝 미끄러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놀란 나머지 소리도 지르지 못한 그녀를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가 꽉 잡아 주었다.

“조심해, 미라벨라.”

“읏, 네…….”

“예쁘군.”

뒤이어 그가 혼잣말처럼 툭 던진 말에 미라벨라는 제 귀를 의심했다. 아무래도 잘못 들은 것 같아 동그랗게 커진 눈이 몇 번이나 깜빡였다.

“네?”

긴 드레스 자락에 밟혀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꽉 잡아 올려 주느라, 두 사람의 거리가 숨결이 닿을 듯 가까워진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까진 들리지 않을 나지막한 음성으로, 레이든이 다시 한번 덧붙였다.

“오늘 예쁘다고.”

“…….”

“무척.”

* * *

황궁에 막 도착했을 때, 마침 교대 근무 시간이 겹친 르시엘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일하러 갔다. 연회장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연회에 황태자 전하께서는 참석하지 않으신다면서? 몸이 좋지 않으셔서라던데.”

“어머! 그럼 설마 불치병에 걸리셨다는 소문이 혹시…….”

“그래, 아직 소문일 뿐이라 다들 쉬쉬하는 모양이지만, 듣기로는 매일같이 피를 토하신다더라.”

저마다 자신이 아는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며 수군대는 이들을 에일레스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레이든을 향해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레이, 녹스를 좀 만나 보고 올게.”

그는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긴장한 얼굴의 미라벨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벨,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잠시 다녀올게. 긴장하지 말고 잘하고 있어.”

“앗, 네, 오라버니.”

“그럼 이따 안에서 봐.”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하는 주인공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오늘 데뷔탕트를 치르는 영애와 영식들은 더 돋보일 수 있게 별도의 문으로 입장하도록 되어 있었다. 마침내 커다란 문이 열리자, 미라벨라는 공식적인 에스코트를 맡은 레이든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라이오넬 공작 각하와 공녀님께서 드십니다!”

드넓은 연회장은 눈부신 샹들리에의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수많은 사람들로 꽉 찬 공간은 어디나 반짝반짝했다. 어디선가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실내 곳곳을 장식한 아름다운 꽃들은 전부 생화였다. 그중에는 라이오넬 공작가의 수석 정원사가 유리 온실에서 키워 내는 것과 같은, 이 계절에 보기 힘든 종류의 꽃도 섞여 있었다.

부드러운 벨벳 카펫이 깔린 한쪽 옆에는 다양한 핑거 푸드가 놓인 긴 다과 식탁이 보였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조각 케이크와 설탕물로 코팅되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달콤한 쿠키. 춤추는 공간을 둘러싼 둥근 테이블마다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몇몇씩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은식기를 받쳐 든 황궁의 사용인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주류나 음료를 요청하는 이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미라벨라, 긴장했나?”

“아, 아니요. 괜찮아요, 오라버니.”

눈부시게 환한 조명이 기를 죽이려는 것 같았지만 미라벨라는 곧 적응했다. 잘 해내지 못하면 가문의 명예는 물론, 세 오라버니들에게도 누가 될 거란 생각에 그녀는 허리를 더 꼿꼿이 세웠다. 다행히 그간의 교육이 헛되지 않아 깍듯한 예법을 지키면서도 품위 있게 행동할 수 있었고, 레이든과 인사하러 온 다른 귀족들도 역시 라이오넬 공녀답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국의 빛나는 태양을 뵙습니다, 신의 축복과 광영이 늘 함께하시기를.”

“음, 라이오넬 공녀인가. 오랜만이군.”

이미 예정되어 있던 데뷔탕트 무도회의 축사를 위해 참석하긴 했지만, 젊지 않은 황제는 이미 시끌시끌한 연회장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던 차였다. 사실 그로서는 이런 형식상의 자리를 지키기보다는 빨리 안으로 들어가 아픈 아들의 상태를 돌보고 싶었을 것이다. 다소 지루한 얼굴로 높은 의자에 기대어 있던 그가, 알현하러 온 미라벨라를 보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등을 세웠다.

“확실히 예전에 인사하러 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인가. 참, 에펠 공국에서 네 초상화를 보내 달라 요청했으니, 조만간 황궁의 화가가 찾아갈 거다.”

“네, 황제 폐하.”

“오늘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에펠과의 국혼은 순조로울 것 같아 안심이야.”

역시 공작이 제대로 고른 것 같은데, 황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을 얼핏 듣고 미라벨라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마침 문밖에서 악사들이 연주하기 시작한 왈츠가 겹쳐져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들다가 자신을 바라보던 황제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치자 미라벨라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긴장한 탓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하지만 잠시 후, 황제는 별다른 말 없이 이만 물러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 * *

황궁의 악사들이 연주를 이어 나가자 아름다운 선율이 넓은 연회장의 중앙에 마련된 플로어를 가득 채웠다. 알현을 마친 미라벨라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대부분의 참석자가 입장을 마쳐 본격적인 무도회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반짝이는 샹들리에의 조명이 환한 빛을 뿌리는 가운데, 몇몇 이들은 벌써 파트너의 손을 잡고 설레는 얼굴로 중앙에 나서기 시작했다.

데뷔탕트 무도회의 첫 번째 춤곡은 그날 처음 사교계에 데뷔한 젊은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특히 두 번째 춤부터는 누구든 관계없지만, 처음은 반드시 그날 에스코트해 준 파트너와 함께하는 게 암묵적인 관례였다.

“레이디.”

정중한 태도로 허리를 숙인 레이든이 미라벨라를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저와 춤을 추시겠습니까? 그대와 함께할 기회를 주신다면 더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아…….”

미라벨라의 하늘색 눈이 약간은 놀란 채 동그랗게 커졌다. 이것은, 제국의 어느 예법서에나 가장 앞쪽에 나와 있는 숙녀에게 춤을 청할 때의 공식적인 인사말이었다. 무섭게 혼을 낼 때면 무릎 위에 엎어 놓고 엉덩이를 때리는 것도 서슴지 않던 엄격한 큰오라버니에게 이런 대접을 받다니 미라벨라는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약간은 으쓱해지기도 했다.

잠시 그 자리에 붙박인 채 눈만 깜빡이던 그녀는 급히 예법에 맞는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그의 입가가 보일 듯 말 듯 미세하게 올라간 것 같았다. 그가 내민 커다란 손을 미라벨라가 조심스럽게 마주 잡자, 레이든은 작은 손끝을 꼭 쥐고 자연스럽게 플로어로 이끌었다.

“아앗, 죄송해요! 오라버니…….”

“괜찮아.”

잔뜩 긴장한 나머지 시작부터 오라버니의 발등을 대차게 밟고 만 미라벨라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하지만 평소 신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굽의 구두에 체중이 제대로 실려 꽤 아팠을 게 분명한데도, 레이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오히려 태연하게 그녀를 잡아 주었다. 덕분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그녀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레이든 오라버니는, 정말 못 하시는 게 없구나…….’

최근에 와서 일이 더욱 바빴던 레이든은 연습할 때는 거의 상대가 되어 주지 못했었다. 때문에 두 사람이 한 곡을 전부 합을 맞춰 본 건 오늘이 유일하였음에도 무척 능숙했다. 실전이 처음인 미라벨라가 방향이나 순서를 착각하려 할 때마다 그는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었다.

‘왠지 기분이 좀 이상해…….’

춤을 출 때는 파트너와의 호흡을 위해 서로 눈을 바라보며 계속 시선을 맞추는 게 룰이었다. 그의 조각 같은 낯이 가까워질 때마다 미라벨라의 심장은 지나치게 크게 뛰었다. 그와 평소에 이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맞댈 일은 드물어서인지, 금방이라도 가슴이 터질 듯 꽉 조여들었다.

‘오라버니와 이렇게 가까이 있을 때는, 사실 항상…….’

견고한 조각 같은 그의 낯이 짙은 욕망으로 점철되어 균열이 생기는 순간을 안다. 반듯한 미간이 깊게 찌푸려지고, 잇새로 낮은 신음을 억누르듯 흘려 내는 그를 떠올리자 작은 얼굴이 사과처럼 달아올랐다. 고결한 청금석 같은 푸른 눈동자가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달아나고 싶은데, 마주친 시선이 놓아 주지 않고 그녀를 끝까지 따라왔다.

다행히 그 뒤로 미라벨라는 별다른 실수를 하지 않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무도곡의 경쾌한 선율이 거의 끝부분에 이르러 있었다.

“미라벨라,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나?”

춤이 끝나고 막 플로어 바깥으로 나왔을 때 레이든이 말했다.

“엇, 어디 가세요?”

“그래, 다녀올 곳이 있어. 절대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날 기다리도록.”

“네, 오라버니.”

연회장에 흐르는 음악은 어느덧 감미로운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내를 환히 밝히던 샹들리에의 조명 역시 처음보다 조도가 낮아져 전체적으로 어둡고 은은한 빛을 흩뿌렸다. 파티에 참석한 몇몇 귀족들은 벌써부터 밀회를 즐기러 정원으로 슬금슬금 나가는 중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도, 머리에 기름을 발라 멋을 낸 젊은 남자가 연보랏빛 옷을 입은 숙녀에게 다가가 은근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예상보다 늦더라도 에일레스가 여기로 올 거다. 미리 이야기해 뒀으니까.”

연보랏빛 드레스의 숙녀는 수줍은 듯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웃더니, 말을 건 남자를 따라 일어서서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그쪽으로 잠시 시선을 준 레이든이 다시 강조했다.

“에일레스나 내가 올 때까지 이 근처를 벗어나지 마. 특히 테라스나 정원 쪽은 위험하니 가지 말고. 만일 누가 말을 걸더라도 절대 따라가선 안 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미라벨라는 약속한 대로 근처의 작은 벨벳 의자에 앉아 얌전히 오라버니를 기다렸다. 일찍 일어난 데다 긴장이 슬슬 풀려서인지 약간 힘들기도 하고, 다리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 미라벨라?”

그녀는 언젠가 미라벨라가 집에 놀러 가기도 했었던 르웰린 후작가의 넷째 딸, 아리아드네였다. 납치 사건 이후 한층 더 조심하고 있어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꾸준히 서신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아리아드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미라벨라도 드디어 데뷔탕트를 치르는군요! 오늘 너무 예쁘네요. 이제 곧 좋은 가문에서 청혼서가 줄을 잇겠어요.”

그녀는 분명 좋은 뜻으로 말했을 테지만, 미라벨라는 의례적으로 미소 지으며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렸다.

“참, 약혼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늦었지만 정말 축하드려요.”

“정말 고마워요. 약혼식 장소가 먼 곳이라 가족들끼리만 간소하게 치렀답니다.”

얼마 전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젊은 귀족과 약혼식을 치른 아리아드네는 정략혼이긴 해도 상대가 꽤 마음에 들고 서로 잘 통하는 것 같다는 편지를 보내왔었다. 곧 있을 결혼식에 초대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저기 있는 저분이 바로 제 약혼자예요. 지금 아버님을 따라 지인분들께 인사를 다니는 중이라……. 잠시 후에 소개해 줄게요, 미라벨라.”

아리아드네가 들뜬 어조로 말하며 제 아버지의 곁에 서 있는 갈색 머리의 남자를 가리켰다.

“아, 미라벨라! 잠깐만요, 나중에 다시 올게요!”

때마침 약혼자가 손짓하며 부르자, 아리아드네는 미라벨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제 약혼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어디선가 본 것처럼 낯이 익었다.

“아…….”

미라벨라는 곧, 그게 르시엘의 동료인 델리나 경이 남편을 바라보던 눈빛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 보는 애정 가득한 눈빛. 문득 기분이 묘해졌다. 친구의 행복을 시기하는 건 결코 아니었으나, 순간적으로 부러움이 밀려왔다. 갑작스럽게 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쓸쓸해진 마음 안에 찬바람이 불었다.

‘오라버니들은 어디 가셨을까? 빨리 오셨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든이 사라진 방향을 살폈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만날 사람이 있다던 에일레스 역시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미라벨라는 넓은 연회장 안을 우아한 걸음으로 오가는 아름다운 숙녀들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오라버니들도 이런 날, 평소 마음에 두었던 레이디와 만나고 계신지도 몰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갑작스럽게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문득 매일같이 세 오라버니 앞으로 쏟아지는 핑크빛 편지들을 처리하며 ‘빨리 세 분 다 결혼을 하셔야 이 일도 좀 줄어들 텐데!’라고 한탄하던 공작저의 집사장이 떠올랐다.

오라버니들이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건 여동생으로서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인데, 어째서 이렇게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걸까. 최근 들어 감정의 변화가 종잡을 수 없긴 하였으나, 지금은 누군가 옆에 와서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실은 애써 모른다고 외면하려 했지만, 미라벨라도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년으로 예정된 에펠 공국 후계자와의 정략혼. 아까 황제를 알현한 뒤로 그 일이 고작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갑작스럽게 실감 났다.

낯선 타국으로 떠나는 건 솔직히 처음부터 두려웠다. 오라버니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던 이유는 달리 갈 곳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들 세 사람이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느낀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 또 가문에 대한 소속감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큰 것이라서. 그리고 함께 지내는 동안, 세 오라버니들은 미라벨라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오라버니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지금처럼 공작저에서 계속 함께 지내고 싶어.’

단지 그런 마음뿐이었다면, 오라버니들에게 전부 털어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결정된 국가의 중대사를 무를 순 없겠지만, 최소한 가족과 헤어지기 싫어하는 막내의 철없는 어리광으로 치부할 수는 있었을 테니.

시집가기 싫다 떼를 쓰면 엄격한 큰오라버니는 철이 없다 눈가를 찌푸릴까. 하지만 혼을 낸 뒤에는 분명 꽃이나 좋아하는 간식, 반짝이는 보석 같은 작은 선물을 보내 와 마음을 달래 주겠지. 섬세한 둘째 오라버니는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품에 꼭 안아 토닥여 줄 것이다. 기분을 풀어 준다며 지나치게 농밀한 키스를 해 와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지도. 무뚝뚝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다정한 셋째 오라버니는, 당장 번쩍 들어다 제 말에 태우고 답답한 가슴이 시원하게 뚫릴 때까지 달려 줄 거라 미라벨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제 감정이, 으레 품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지금껏 이성을 좋아해 본 적은 없었으나 그건 경험과 관계없이 알 수 있는 거였다. 지금 오라버니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동생으로서의 당연한 애정이 결코 아니라고, 미라벨라의 여자로서의 본능이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델리나 경이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 아리아드네가 약혼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이는 설렘 가득한 눈빛.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어느 순간 자신은 오라버니들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 피를 나눈 오라버니들을 남자로 여기는 마음을 처음 자각했던 날에는, 딛고 있던 발밑이 까마득히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오갈 데 없는 그녀를 데려와 기꺼이 동생으로 받아 준 유일한 보호자이자 가족. 정부의 딸을 굳이 책임질 의무가 없음에도 오라비들은 피가 반밖에 섞이지 않은 누이동생에게 최고의 혼처를 찾아 주었다. 그런데 감사하기는커녕 도리어 이런 말도 안 되는 감정을 품다니.

‘피가 섞인 오라버니들을 이런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없어. 내가 에펠 공국으로 떠나고 나면 오라버니들도 곧 결혼을 하셔야 할 테고, 또 후계를 이을 아기도…….’

하지만 그 순간, 세 오라버니들이 그녀에게 은밀한 가정 교육 시간마다 가르쳤던 부끄러운 일을 다른 사람과 한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슴속에 끓는 물을 확 들이부은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치솟아 목 안이 홧홧하게 타들어 갔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그 교육의 목적은 애초부터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혼자 이런 마음을 품은 걸 알면, 오라버니들이 날 얼마나 경멸할까…….’

미라벨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저, 영애?”

당장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목 안이 꽉 잠긴 느낌. 때마침 예쁜 빛의 음료가 찰랑찰랑 담긴 투명한 크리스털 잔 하나가 바로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황궁의 시종들이 술이나 음료가 담긴 은쟁반을 들고 연회장을 오가며 손님들에게 건네는 모습은 아까부터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 것 중 하나라 생각한 미라벨라는 잔을 받아 들고 꼴깍꼴깍 마셨다.

“흐읍……!”

색을 보고 주스라고 생각했던 음료는 사실 꽤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 목이 무척 말랐던 데다 맛과 향이 달콤해서 단숨에 마시면서도 몰랐는데, 뒤늦게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이 올라왔다. 미라벨라는 가느다란 목을 붙잡고 몇 번이나 잔기침을 했다.

“영애! 괜찮으십니까?”

“흐읏…….”

고개를 들어 보니, 눈앞에는 황궁의 시종이 아닌 다소 평범한 인상의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미라벨라의 눈가가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 그가 몹시 당황한 얼굴로 부축하려 들었다.

“죄송합니다, 레이디! 술을 못 하시는 줄 모르고…….”

“……아니에요, 처음 뵙는 분인데 무슨 일이시죠?”

“실은, 아까부터 말을 걸고 싶어 줄곧 기회를 보고 있었답니다. 영애만 괜찮으시다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해서요.”

그는 수도 출신이 아닌 듯, 말할 때 남쪽 지방의 억양이 묻어났다. 가무잡잡하게 그을린 얼굴이 쑥스러운지 약간 붉어져 있었다. 미라벨라에게서 답이 들려오지 않자 남자가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아!! 저는 절대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애. 백작이신 백부님을 뵈러 수도에 왔다가, 운 좋게 황궁의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영애를 뵙고 부끄럽지만 이렇게 용기를 냈습니다. 저, 저와 한 곡 추지 않으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구두가 익숙지 않아 춤을 더 추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아…….”

단번에 거절당한 남자가 또다시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권했다.

“그러시다면 함께 이야기라도 나누며 서로 알아 갈 수 있을까요? 아, 제 이름은 월터인데 편하게 월리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영애께서도 이름을 알려 주시면…….”

“죄송합니다, 먼저 가 볼게요.”

미라벨라는 사실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남자가 하는 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또다시 비죽비죽 새어 나오려 들었다. 라이오넬가의 공녀가 사람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일어섰다.

“영애, 같이 가요!”

춤을 청했던 남자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돌아볼 여력조차 없었다.

‘일단 바람을 쏘이면서 머리를 좀 식혀야겠어.’

다행히 연회장과 연결된 테라스 중 비어 있는 곳이 있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나갈 생각으로 미라벨라는 아무도 없는 테라스로 혼자 나갔다.

탁.

커다란 유리문을 닫자 조용하고 어두컴컴한 테라스는 연회장과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두운 정원이나 테라스는 위험하니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했던 오라버니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지만 장소를 옮기기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테라스의 긴 소파에 등을 깊이 파묻고 기대어 앉은 미라벨라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한참 더 울었다. 이제 완전히 자각해 버린 배덕한 첫사랑. 오라버니들을 상대로 품은 그릇된 애정을 어쩌지 못해 마음이 찢어질 듯 괴로웠다.

한동안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나자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연회장 내부가 다소 더워서인지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차가운 밤공기가 어루만지고, 가득 고인 눈물도 조금씩 앗아 갔다.

<내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도록. 이 근처를 벗어나지 마.>

아, 오라버니와 약속을…….

‘그 자리에 있기로 했는데, 내가 사라지고 없으면 분명 걱정하실 거야.’

연회장을 나와 있는 사이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다. 어쩌면 레이든이나 에일레스가 돌아와 그녀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울어서 화장이 지워진 걸 보면 분명 물어볼 것 같았지만, 콤팩트를 넣어 온 가방은 아까 황궁의 시종이 휴게실에 두겠다며 가져가고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예쁘게 꾸며 준 로지나와 하녀들에게도 무척 미안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소파 근처에 놓인 티슈 케이스. 연회장으로 돌아가기 전, 미라벨라는 서둘러 눈물 자국을 지워 냈다.

탁.

“영애! 이런 곳에 계셨군요.”

미라벨라가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테라스의 문이 열리고 아까 말을 걸었던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온 그는 상기된 얼굴로 들고 온 술잔 두 개를 소파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어디로 사라지셨는지 몰라 연회장 밖을 돌며 한참 찾아다녔습니다.”

“아, 네. 이제 그만 돌아가려던 참이었어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미라벨라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어지러워 그대로 다시 소파에 앉고 말았다. 몸을 꽉 조이는 데뷔탕트용 드레스가 익숙지 않았던 데다, 이른 새벽부터 쭉 긴장한 채로 시간을 보낸 탓이었다. 가벼운 현기증은 곧 가라앉았으나, 그 틈을 타 재빨리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남자가 어깨를 잡아 주며 부축하려 들었다.

“레이디! 괜찮으십니까?”

“……이제 괜찮아요.”

“영애, 아까 보니 눈물을 흘리시는 듯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걱정은 감사하지만 아무 일도 아닙니다. 이만 가 볼게요.”

“아, 곤란하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자는 들고 온 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고 유리 글라스에 반쯤 따라 미라벨라에게 건넸다.

“뭔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땐 한 잔 술이 위로가 될 때가 있지요. 이건 독한 술이 아니니 무리가 되진 않으실 겁니다.”

“……고마워요.”

그의 호의를 거절하려던 미라벨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글라스를 받아 들었다. 만약 이미 따라져 있는 술이었다면 뭐가 들어 있을지 몰라 마시지 않았겠지만, 지금 막 새 코르크를 개봉한 것이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대로 연회장으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게 오라버니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것이든 기분을 북돋아 줄 것은 필요했다.

딱 한 잔만 마시고 바로 일어서야겠어.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쁘고 사랑스럽군. 역시 수도의 레이디는 다르다는 건가.’

유리잔을 기울일 때마다 오르내리는 새하얀 목선과 아래로 내리뜬 긴 속눈썹을 훔쳐보며 남자는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남부 출신의 작위가 없는 귀족으로, 백작위를 가진 백부를 만나러 수도에 올라왔다가 운 좋게 사촌을 따라 황궁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게 됐다.

“사실 전 수도는 처음이랍니다, 영애. 오기 전까지는 막연히 무척 삭막한 곳일 거라 생각했지요. 수도의 레이디들 역시 드세고 계산적이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고……. 하지만 오늘 영애를 뵙자 제 생각이 완전히 편견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네…….”

남자가 가져온 와인은 흰 복숭아와 살구를 사용한 달콤한 술이었다. 봄여름의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꽃향기와 스위트한 과일향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이었으나, 미라벨라는 드레스를 입느라 저녁을 거의 먹지 않은 데다 아까 연회장에서 마신 술의 도수가 높았기 때문인지 알코올 기운이 금세 오르는 것 같았다.

“이런 말씀 드리긴 부끄럽습니다만, 실은 여자와 제대로 교제해 본 적이 없거든요. 한데 오늘 영애를 뵙고 첫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운명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영애? 제 말 듣고 계십니까?”

잠시 주저하던 그가 얼굴을 붉히며 고백했다.

<하하, 아직도 연애를 못 해 봤다고? 이런 파티에서 애인을 만드는 경우는 흔하니까 잘해 봐. 그렇고 그런 일도 많이 일어나니까. 특히 어두운 테라스나 정원, 알겠지?>

그는 소백작인 사촌이 연회장에 들어서기 전 했던 조언을 상기하는 중이었다. 여자들은 분위기에 몹시 약하며, 과감하게 리드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도. 마침 달이 구름 뒤로 반쯤 얼굴을 감추어 어두운 테라스에는 적절한 조명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소파 뒤쪽으로 반쯤 열려 있던 커튼을 닫았다. 유리문 바깥에서 흘러 들어오던 연회장의 불빛이 차단되어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소파가 더욱 어두워졌다.

“이렇게 떨리는 감정은 태어나 처음입니다, 영애. 저는 가벼운 하룻밤만 즐기려 드는 수도의 남자들과 달리 진심입니다. 고향에서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도 꽤 듣는 편이고요. 아, 제 심장 소리가 들리시는지요…….”

긴 소파의 옆자리에서부터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미라벨라에게 키스하려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내가 오라버니들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건 그 교육 때문인지도 몰라.’

미라벨라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두렵기만 했던 세 오라버니들의 은밀한 가정 교육. 몸을 섞고 나누며 오롯이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솔직한 그 행위가 미라벨라는 좋았다. 자신은 어쩌면, 그로 인해 느끼는 기분 좋은 쾌감과 자연스러운 육체의 기쁨을 사랑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의 경험이라고는 전무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지도.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 다른 사람과 뭔가를 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누구와 해도 똑같이 만족스러울 그 행위 자체를 사랑으로 착각했다는 것을. 물론 오라버니가 아닌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춘다고 생각하면 끔찍했지만, 그건 곧 남편이 될 에펠 공국의 후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 확인하고 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감정은 깨끗하게 정리될 거야.’

그러고 나서 오라버니들의 착한 여동생으로 돌아가야지.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미라벨라는 눈을 꼭 감았다. 남부에서 온 남자는 물론, 그것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가까이에서 본 사랑스러운 미모와 오늘 신이 자신에게 허락한 행운에 감탄하며, 남자가 막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려던 순간.

벌컥.

연회장과 테라스를 분리하는 유리문이 열렸다. 소파 뒤쪽 두꺼운 커튼이 휙 걷히고, 그 뒤에서 긴 은발을 하나로 틀어 올려 묶은 장신의 남자가 나타났다. 미라벨라를 향해 뻗었던 팔을 그에게 붙잡힌 남부 사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윽, 대체 뭡니까?”

“꺼져.”

찬란한 달빛이 스민 듯 반짝이는 긴 머리카락, 섬세하게 조각한 듯 높고 미려한 콧날과 턱선. 아름다운 외모와는 상반되는 낮고 허스키한 음성이 밤공기보다 더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다소 예민하고 날카로운 금안이 처음 보는 남자와 한자리에 있는 제 여동생에게 닿았다. 지금껏 뭘 했는지 화장이 다 지워진 말간 얼굴, 긴 소파 옆의 작은 테이블에 놓인 술병과 다 마신 유리 글라스, 그리고 대체 뭘 닦아 낸 건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젖어 있는 티슈 여러 장.

미라벨라에게 키스하려던 남자는 완전히 가까워지며 손으로 막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려던 차였다. 긴 소파에 앉은 그녀의 몸은 뒤로 약간 비스듬해졌고, 그는 상대적으로 앞으로 기울어 있었다. 누가 됐든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에겐 충분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자세로.

“벨.”

“……에일레스 오라버니?”

“뭐? 오라버니라고?”

남자는 손목뼈를 부러트릴 듯한 악력에 눈물마저 흘리고 있었다. 위압적인 기세에 눌려 납작해지긴 했지만 마침 적당히 오른 술기운이 더해져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모처럼 마음에 든 여자와 드디어 잘 되나 싶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에일레스에게 붙잡힌 팔을 빼내려 마구 흔들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자 그는 발끈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크억, 이거 못 놔? 지, 지금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군데.”

얼음처럼 차디찬 음성에 끅끅대며 신음을 흘리던 사내가 다시 주저했다.

“아, 아니 제가 아무리 작위가 없어도 어엿하게 황궁의 파티에 참석한 귀족인데 어떻게 이런 짓을…….”

“그래서 네가 누구냐고.”

“컥, 제발 이 손 좀……! 배, 백부가 황궁의 행정부에서 일하고 계시는 위고르 백작이라고…… 악, 솔직히 아무리 오라비라도 이렇게까지 간섭하는 건 월권 아닙니까? 다 자란 여동생이 파티에서 눈이 맞은 남자와 다른 곳을 좀 맞출 수도 있는…… 크어억!”

아악……! 순간 남자의 손목 안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그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에일레스가 팔을 놓아 주자 그의 손목은 인형의 것처럼 팔 아래 매달려 힘없이 덜렁거렸다. 강한 악력이 손목뼈를 완전히 으스러뜨리고 만 것이었다.

“밖에서 뭘 하고 다니든 내버려 두는 건 네 여동생에게나 하고.”

“크읍, 내 팔! 어떻게 이런 짓을……! 우리 가문에서 이 일을 알면, 컥,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그 자랑스러운 가문의 성을 계속 쓰고 싶거든 처신 잘해야지. 이 손으로 이름이라도 쓸 수 있으려면.”

“으윽…….”

방금 전까지 종잇장처럼 덜렁거리며 절대 회생 불가할 것처럼 보였던 그의 손목에 반투명한 하얀 빛이 쏘아졌다. 최상급 치유 마나가 닿자 산산이 조각났던 뼈는 거짓말처럼 다시 말끔히 붙었다.

“이번엔 다른 곳이 부러졌다가 다시 붙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팔이 부러질 때의 고통은 여전히 남아 눈물을 찔끔거리는 남자를 돌아보지도 않고 에일레스가 차갑게 경고했다.

“최대한 멀리 가는 편이 좋을 거야. 지금 내 기분으로는 한 번 더 보이면 진짜 죽일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유능한 치유 마도사라도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재주는 없거든.”

“가, 가겠습니다.”

제 팔을 붙잡고 바닥에 웅크려 있던 남자는 순식간에 구르듯 일어나 테라스 밖으로 기다시피 달아났다. 그의 모습은 곧 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에일레스 오라버니!”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는 미라벨라의 눈은 커져 있었다. 그녀는 에일레스가 그렇게 화난 얼굴을 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오라버니,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시고…….”

“왜, 내가 나타나서 방해가 됐어?”

“……네?”

“의외네, 벨. 내 동생이 그런 취향인 줄은 몰랐는데.”

처음 듣는 잔뜩 뒤틀린 음성에 미라벨라가 멈칫했다. 달을 반쯤 가리고 있던 구름이 서서히 옆으로 옮겨 가며 어둠 아래 있던 그의 표정이 드러났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긴 눈매에는 평소와 달리 무섭도록 시린 냉기가 느껴졌다.

“레이가 널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

“네? 아, 아니요.”

“그런데 왜 네 마음대로 나가. 그 남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당황한 미라벨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 반응을 긍정의 답이라 여긴 듯, 에일레스가 싸늘한 목소리로 문장을 조각조각 끊어 냈다.

“이런 곳에서, 밀회를 즐기는 걸 허락할 정도로?”

“오, 오라버니! 하지만 아직 아무 일도 없었어요…… 흐읍!”

“……아직은?”

그가 화가 난 얼굴로 미라벨라의 바로 앞까지 훅 다가섰다. 단단하고 긴 손끝이 뻗어 와 화장이 지워진 뺨을 문질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알아내려는 것처럼. 오라버니가 갑작스럽게 가까워지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짙은 눈빛에 왠지 속마음을 들켜 버릴 것 같았다. 제 시선을 피하는 눈과 조금씩 뒤로 옮겨지는 작은 발끝을 바라보며 그의 금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왜, 매일 다정하게 대해 주니까, 네 마음대로 행동해도 될 것 같아?”

“오라버니! 저, 저는 그런 게 아니고…….”

“……역시 오늘은 좀.”

부러질 듯 가느다란 손목이 커다란 손에 단단히 붙잡혔다. 미라벨라는 소리도 못 내고 오라버니에게 끌려 나와 테라스 바깥의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혼나야겠네, 벨.”

“흐읏, 이 손 좀…… 아파요!”

“입 다물어.”

구불구불한 나선형 계단을 몇 개나 오르자 인적이 없는 조용한 복도가 나타났다. 한 층 전체가 파티에 참석한 이들을 위한 휴게실로 조성된 공간. 가문의 위세에 따라 단독으로 쓸 수 있는 방이 주어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공용 휴게실을 사용하기도 했다. 새벽까지 계속되는 데뷔탕트 무도회는 이제 막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아직 쉬려는 사람도 없어 복도 전체가 고요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흑, 에일레스 오라버니! 제발 이것 좀, 읏, 놓고…….”

가느다란 손목을 잡혀 끌려가다시피 계단을 오르며 미라벨라는 계속해서 그를 불렀다. 평소라면 그녀의 부름에 다정하게 돌아보며 애칭을 불러 줄 오라버니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거의 복도 끝에 이르러서야 어느 방 문 앞에 멈춰 선 에일레스가 그녀를 흘끗 돌아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조차 의례적으로 띄워져 있던 사교적인 미소마저 간 곳 없이 무표정한 금안.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차가운 얼굴은 얼음 조각처럼 냉랭했다.

그가 걸음을 멈춘 문 앞에는 익숙한 황금빛 문장이 새겨진 패가 걸려 있었다. 라이오넬 공작가의 전용 휴게실로 준비된 공간. 팻말을 뒤돌려 놓는 건 다른 방문객이나 청소를 담당하는 시종들에게 휴식 중이니 안에서 하는 일이 끝날 때까지 절대 방해하지 말라 알려 주는 표시였다. 황금빛 패를 천천히 뒤집어 놓은 에일레스가 다시 냉랭한 눈으로 미라벨라를 응시했다.

“오라버니, 여기는……?”

미라벨라가 입을 열어 채 묻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고, 곧이어 연약한 손목이 휙 잡아당겨지며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 * *

공작 가문 전용 휴게실로 조성된 넓은 공간. 그 안에는 숙녀들이 메이크업을 점검하기 위한 파우더룸뿐 아니라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공간과 욕실, 새벽까지 이어지는 파티 도중 언제든 올라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커다란 침대와 소파를 갖춘 침실도 있었다.

쾅.

방문이 굳게 닫히고, 싸늘하게 가라앉은 금안이 미라벨라를 노려보았다. 본능적으로 작은 어깨를 떨고 있는 그녀를 에일레스가 단단히 붙잡았다. 투명한 봄 하늘빛 눈동자와 색을 맞춘 러플 드레스의 소맷자락이 어깨에서 벗겨지며 순식간에 허리까지 끌려 내려갔다.

“흐읍, 에일레스, 오라버니……!”

가느다란 비명과 함께 미라벨라는 양팔을 교차하여 앞을 가리려 들었다. 그녀의 저항에도 아랑곳없이 뻗어 온 오라버니의 단호한 손길은 가슴 중앙을 여민 실크 코르셋의 리본을 거침없이 풀어 버렸다.

얇은 속옷이 벗겨지며 섬세하게 짜인 직물에 부드럽게 짓눌려 있던 희고 말랑한 두 개의 구체가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튀어나왔다. 갑작스럽게 노출된 뽀얀 젖가슴의 정점이 양쪽 다 긴장으로 발딱 일어섰다. 흐읍, 미라벨라가 다급히 숨을 집어삼키며 작은 손으로 그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오라버니! 흣, 대체 갑자기, 왜…….”

“홀랑 벗고 집에 가고 싶지 않으면 정말 조용히 해, 벨.”

싸늘하고 낮은 목소리에, 그와 언뜻 눈을 마주친 그녀가 흠칫했다. 늘 이른 아침의 햇살처럼 따사로웠던 섬세하고 아름다운 금안이, 전에 없이 무서운 빛으로 짙게 타오르며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지금 죄다 찢어 버리고 싶은 걸 참고 있으니까.”

“읏…….”

“왜, 내가 그냥 하는 말 같아?”

정말 그녀의 몸을 감싼 천 조각들을 당장 찢어 버리고 싶은 기분을 꾹 참으며, 에일레스는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치는 화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다른 남자와 테라스에 있는 미라벨라, 미라벨라의 모습을 본 순간, 그를 지지하던 이성의 끈은 그대로 툭 끊어져 버렸다. 질투로 속이 뒤집혀 창자가 몇 번이나 뒤틀리고 뜨거운 용광로처럼 끓어 넘친 분노에 눈이 돌아갔다.

“……흐윽, 오라버니!”

“그렇게 부르지도 마.”

난 사실 네 오라버니가 아니니까.

성년이 된 누이동생의 연애사에 간섭하는 건 오라비의 월권이라고. 아까 미라벨라와 있던 남자가 했던 말을 당장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더 못 견디게 만들었다.

그의 말대로 미라벨라는 정말, 그를 오직 피를 나눈 오라버니로만 여겼다. 순결한 음부를 직접 뚫어 주고 기분 좋은 일을 가르치며 여자로 만들어 준 그를. 셀 수도 없을 만큼 아랫도리를 접붙이고, 발가벗겨 울 때까지 밑구멍을 빨고, 은밀한 꽃잎을 벌려 좆을 처박고, 배가 부르도록 자궁 안에 제 정을 쏟아 넣었음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아마도 끝까지 그렇게 믿고 살아가리라.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타국으로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고작 다정하고 친절했던 둘째 오라비라 기억하는 그에게, 제 남편과 낳은 아기를 보여 주려 한두 번쯤 친정을 방문할 테지.

그럴 때마다 자신은 그녀를 납치하여 그대로 감금하고 싶은 미칠 듯한 충동을 억누르고, 있는 동안 편히 지내라 반겨 주며 자상한 오라비의 역할 따위나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태연한 낯을 뒤집어쓰고 좆같은 매제의 안부나 물어야 할 테지. 실은 미라벨라를 차지한 그 운 좋은 사내를 당장 죽이고 싶은 욕망을 평생토록 참아 내며.

그럴 수 있을까, 과연.

“읏, 그만하세요!”

“여기가 왜 이렇게 됐어, 벨?”

늘 사이좋은 남매였던 두 사람 사이에 한 번도 흐른 적 없는 날 선 침묵. 그동안에도 미라벨라를 감싼 옷들은 착실하게 거둬지는 중이었다. 가슴 아래까지 끌려 내려온 드레스가 풍성한 치맛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드레스와 연결된 페티코트도 함께.

에일레스의 큰 손이 부드러운 공단 재질 슈미즈와 속치마를 찢듯이 벗겨 냈다. 그러고 나자 그녀의 몸을 가려 주는 것이라고는 리본이 죄다 풀려 배꼽 근처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실크 코르셋과 스타킹, 음부를 겨우 가린 얇은 속옷 하나가 전부였다.

“대체 뭘 했길래 젖꼭지를 꼿꼿하게 세웠냐고 묻잖아.”

“흣! 아얏…….”

짙은 정염이 인 사나운 금안이 진주처럼 뽀얀 알몸의 상반신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이미 남자를 아는 몸이었다. 단지 오라비가 시선을 준 것만으로도 쉽게 반응하여 앙증맞은 분홍빛 유두가 단박에 꼿꼿해졌다. 발딱 일어선 미라벨라의 젖꼭지를 아프도록 세게 꼬집어 비틀며 에일레스가 낮게 물었다.

“아까 그 남자가 여길 만졌어?”

“아흣, 아, 아니요! 오라버니,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설마 뭘 하기도 전에, 생각만으로도 흥분이 될 만큼 좋았던 건가?”

“흐읏, 그런 거 아니에요…….”

미라벨라는 입술을 깨물며 도리질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라버니 때문에 유두가 발기한 거라고는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집도 아닌 장소에서 일방적으로 발가벗겨져 몸을 검사당하고 있는 게 분명 수치스러운데, 평소처럼 다정하지 않고 무섭게 바라보는 오라버니의 시선에도 젖꼭지가 쉽게 단단해지고 아랫배가 꽉 조여들었다.

그는 단지 약속을 어긴 누이동생에게 화가 난 것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런 얼굴을 보일 때면 자꾸만, 자꾸만……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하자, 에일레스의 눈매가 차차 가느스름해졌다. 다른 변명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미라벨라가 막 입을 열려는데, 순간 번쩍 들린 작은 몸이 이동하여 곧장 어딘가에 내던져졌다.

“……하윽!”

전용 휴게실 안쪽의 넓은 침대 위에 내리꽂히듯 던져진 미라벨라는, 얼굴부터 시트에 파묻혔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대로 등이 꽉 짓눌렸다. 얼굴 역시 들 수 없어 단지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게 고작이라, 보드라운 한쪽 뺨이 푹신한 침구에 문질러졌다. 반항하는 두 팔은 너무도 쉽게 붙잡혀 결박하듯 등 뒤로 꺾였다.

상체는 납죽 엎드려서 동그란 엉덩이만 높이 치켜들게 한 부끄러운 자세로, 얇은 실크 스타킹과 속옷을 에일레스가 반쯤은 찢듯이 벗겨 냈다. 투둑, 옷 솔기가 뜯어지는 소리. 다리 아래로 끌려 내려간 얇은 속옷이 어떻게 저항할 틈도 없이 완전히 발목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아래가 서늘해졌다. 고스란히 드러난 뽀얀 복숭아 같은 엉덩이를 오라버니의 커다란 손바닥이 아프게 후려쳤다.

“흣! 아얏, 오라버니……!”

에일레스에게 혼나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눈이 마주치면 어김없이 웃어 주고, 잘못한 일이 있어도 나무라기보다는 따스한 품에 꼭 안아 타이르던 다정한 오라버니였는데, 오늘은 처음 보는 무서운 얼굴로 매를 때렸다.

은은한 노란 빛을 내는 간접등이 밝혀진 휴게실은 그때까지도 다소 어두웠다. 침대 위에서 미라벨라를 알몸으로 만든 에일레스는 벽에 걸린 실내등의 마력석 스위치를 눌러 환하게 켰다. 순식간에 대낮처럼 밝아진 방 안에서, 그는 발가벗은 채 엎드린 여동생의 뽀얀 허벅지를 양쪽으로 당겨 뒤에서 넓게 벌렸다. 밝은 불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음부를 관찰하는 시선에 수치심이 치밀었다. 작은 숨을 꼴깍꼴깍 삼키며 미라벨라가 다리 사이를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읏, 싫어요! 오라버니! 보지 마세요…… 으, 흣.”

“벨, 더 혼나고 싶지 않으면 엉덩이 똑바로 들어.”

“아, 흐으…….”

헐벗은 아랫도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데일 듯 뜨거운 시선. 세로로 갈라진 양쪽 날개가 곱게 맞물려 있는 조그마한 소음순을 오라버니의 긴 손가락이 단번에 가르고, 질 전정과 입구를 손끝으로 훑었다. 이미 따스한 물기를 머금고 촉촉해진 연약한 점막. 그의 손길이 민감한 곳을 스치자마자 긴장으로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어떻게든 피해 보려 바둥거릴 때마다 아플 정도로 빳빳하게 발기한 유두가 시트 위에 깊게 문질러졌다.

“이러니 널 어떻게 믿어 줘, 벨.”

“앗, 으응!”

“아무 데서나 보지가 젖어서는, 질질 싸고 다니는데.”

“흐윽, 저는 정말, 아무 일도…… 아흣!”

평소의 그답지 않은 거친 손길과 부끄러운 말에 미라벨라의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에일레스의 굵은 손가락이 예고 없이 구멍 안을 푹 쑤시고 한꺼번에 세 개나 질 안에 처박혀 배려 없이 안을 파고들었다. 이런 상황에도 그녀의 아래는 야속할 만큼 착실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낯 뜨거운 손길로 미라벨라의 음부를 헤집던 그가 안쪽에서 손가락을 구부리자 음탕하게 찰박거리는, 끈적한 물소리가 들렸다.

“혼나면서도 적시다니. 이 소리 들려, 벨?”

“흐읏…….”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리를 모으지 못하도록 넓게 벌려 놓고 치부를 들쑤시는 오라버니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끼며, 미라벨라는 엎드려 벌서는 자세로 수치스러운 쾌락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반응하지 않으려 해도, 긴 손가락을 빈틈없이 꽉 깨문 조그맣고 음란한 구멍은 말간 애액을 흠뻑 쏟아 내며 자꾸만 안을 부끄럽게 조였다.

“이 정도로 음란한 여동생이라면 어떤 오라비가 단속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흑, 하으…….”

그녀는 새하얀 시트에 파묻혀 있던 얼굴만 가까스로 옆으로 돌렸다. 바라본 자리에는 커다란 거울이 부착된 화장대가 침대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고스란히 비쳐 내고 있었다. 미라벨라는 알몸으로 엎드려 새하얀 엉덩이만 위로 한껏 치켜든 제 모습을 확인하자 눈물이 나도록 부끄러웠다. 갑작스럽게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흐윽, 제발! 흑, 이제 그만하세요!”

황궁에서 제공한 안락한 휴게실 안에서, 데뷔탕트 날 설마 이런 일을 당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닌, 평소 가장 다정하게 대해 주던 둘째 오라버니에게.

“에일레스 오라버니! 흡, 저는, 오라버니가 대체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미라벨라는 억울한 마음에 서럽게 흐느끼며 대들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물론 제 잘못이 맞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이런 곳에서 발가벗겨져 엉덩이를 맞고 아래를 검사당할 만큼 크게 혼날 일인가 싶었다.

그녀는 이미 성인이었고, 르페르트 제국은 그렇게 꽉 막힌 나라가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듣기로는 이런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남녀가 마음이 통해 밤을 보내는 일도 꽤 흔하다고 들었는데. 물론 엄격한 부모님이나 오라버니에게 들키면 혼이 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는…….

지금 그는 마치, 아내나 연인의 불륜 현장을 맞닥뜨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무섭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가. 단지 엄한 오라버니가 아닌, 오래전부터 때때로 그녀를 착각하게 만들었던 남자의 얼굴로.

“으흡, 흐, 제가 무슨 오라버니의 아내나 연인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아흑!”

짝.

그 말이 입 밖을 빠져나오자마자 에일레스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미라벨라를 세게 후려쳤다. 이번에는, 뽀얀 엉덩이가 아닌 말갛게 젖어 있는 음부 중앙의 여린 속살을. 단 한 대였지만 처음엔 어디를 맞았는지조차 즉시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그 주위가 전부 얼얼했다. 가장 예민하고 여성스러운 부위가 남자의 단단한 피부와 마찰하는 소음이 크게 들리고, 한 박자 뒤늦게 몰아닥친 충격과 아픔에 미라벨라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오라버니! 아흐, 읍…….”

“그래, 맞아. 나는 네 연인도, 남편도 아니지.”

엎드린 채 훌쩍이는 미라벨라의 목덜미를 그가 세게 깨물었다. 폭발할 듯 속에서 치미는 화를 애써 억누르느라 평소보다 더 낮아진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난 그저 빌어먹을 오라버니일 뿐이지. 네 남편이 널 데려갈 때까지 보호하고 양육할 책임이 있는.”

“으흡, 아, 흣…….”

“그러니 사생활엔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 동생?”

“읏, 오라, 버니, 하으, 제발 이것 좀 놓고…….”

그는 미라벨라가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뒤에서 꽉 누르고 있었다. 그간 의식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을 피해 온, 희고 부드러운 어깨와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선. 에일레스가 그 위에 화인을 찍듯 주저 없이 붉은 순흔을 남기고, 제 잇자국을 깊게 새겨 넣었다. 보이는 곳에 새겨 넣었다 한들 며칠이 지나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부질없는 증표. 비록 그렇다 해도, 눈앞에서 떨고 있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취했다는 낙인을.

“하지만 내겐 분명 방만한 여동생을 단속할 책임이 있지.”

“흐읏, 아야…….”

“네 말대로 내가 너의 오라버니이기 때문에, 난 널 제대로 훈육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뜻이야, 미라벨라.”

짝, 짜악. 그의 손이 또다시 뽀얀 엉덩이와 음부를 번갈아 내리쳤다. 연약한 살이 젖은 채로 마찰하며 호되게 매를 맞아 금세 발그스름해졌다. 참기 힘든 아픔에 작은 입술 사이로 서러운 울음이 비어져 나왔다.

“……아흑, 아파요!”

“이렇게 여동생이 아무 남자 앞에서나 보지를 적시고 다니는데, 그걸 내버려 두라고?”

“흐윽! 하지만 오라버니가 먼저, 남자를 유혹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셨잖아요!”

억울함을 참다못한 미라벨라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픔과 쾌감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부끄러운 곳에 매를 맞으면서도 흠뻑 적시고 있는 스스로에게도 눈물이 날 만큼 창피하고 화가 났다. 이처럼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몸이 된 건, 다 오라버니들의 그 가정 교육 때문이었다.

에펠 공국의 후계자건, 길에 지나다니는 모르는 남자건, 미라벨라에겐 사실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녀의 몸도 마음도 전부 오라버니들에게만 반응하도록 되어 버렸으니까. 어차피 다른 남자에게 보낼 생각이면서,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입 밖에 낼 수조차 없는 사랑을 품고 혼자 가슴 아파하는 자신이 너무나 서글펐다.

“으흑, 이게 다, 오라버니들 때문에, 이런 몸이 되어 버려서…… 흐읍!”

그 말에 에일레스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 남자를 유혹했어, 벨?”

“오라버니, 아야…….”

“우리가 한 교육의 결과로, 이렇게 음란해져 버려서는.”

“흐읏…….”

“이젠 네 오라버니들이 박아 주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만족이 안 됐어?”

어딘가 잔뜩 뒤틀린 목소리가 낮게 속삭였다. 그는 안쪽이 훤히 보이도록 미라벨라의 음순을 잡아 벌렸다.

“잘 알겠어. 그럼 오늘은 널 교육한 사람으로서 그간의 성과가 어떤지 확인해 볼까? 얼마나 음란해졌는지 말이야.”

“아흡! 아.”

단단한 손끝이 부푼 음핵을 즉시 압박하며 밀어 올렸다. 미라벨라는 제 오라버니 아래에서 흐느끼며 옅은 신음만 토해 냈다. 계속해서 아래를 자극하는 손길에 쾌감이 충실하게 차올랐다. 작은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할딱이며 흘러나왔다.

넣어 줘, 벨? 그가 묻는 말에 미라벨라는 자존심도 없이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엎드린 채 얼굴만 옆으로 돌려져 있어, 발그레한 볼이 침대에 꾹 눌린 채로. 동그란 하늘색 눈에 투명한 물기가 어려 글썽글썽했다. 온통 뒤죽박죽 엉망이 된 마음 안에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마구 치솟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지금은 차라리, 눈앞이 아득해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쾌락 속에 잠식되고 싶었다.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드르륵.

그는 팔을 뻗어 침대 옆 탁자의 작은 서랍을 열었다. 미라벨라의 아래를 검사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자 확실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벌은 줘야겠지. 다시는 그런 시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서랍 안에 든 건 미라벨라도 용도를 잘 아는, 최음 효과를 가진 크림. 새벽까지 계속되는 파티에서 눈이 맞은 귀족 남녀들은 인적이 드문 장소나 밀실을 찾아 다른 곳도 맞추었다. 주로 어두운 정원이나 테라스, 또는 휴게실과 같은 곳에서. 이처럼 귀빈을 위해 마련된 프라이빗한 공간에는, 으레 즐거운 시간을 위한 배려로 밤놀이에 필요한 보조적인 물건을 넣어 두기 마련이었다.

“으, 하읏, 오라버니! 그, 그쪽이 아니라, 으응……!”

포장을 벗긴 둥근 통 안에는 연고에 가까운 재질의 반투명한 미색 크림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손끝에 듬뿍 덜어내자 꽃향기와 비슷한 은은한 향이 났다. 에일레스는 몸을 일으키려는 미라벨라를 꽉 눌러 그대로 엎드려 있게 했다.

기존처럼 엉덩이만 높이 치켜올린 자세에서 커다란 손이 부드러운 살을 각각 나누어 쥐고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미라벨라가 특히 부끄러워하는, 옅은 분홍빛을 띤 조그마한 구멍. 미라벨라는 가장 개인적인 일에만 사용해 온, 숨기고 싶은 부위가 오라버니의 눈앞에 낱낱이 보여지는 게 창피해서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아, 흐윽…….”

엉덩이 사이 작은 구멍 안팎으로 차가운 크림이 치덕치덕 발라지는 동안 미라벨라는 자꾸만 몸을 움츠렸다. 그는 촘촘한 분홍빛 주름 사이사이에 크림이 고루 스며들도록 꼼꼼히 문질렀다. 처음에는 온도가 낮아 차가웠던 크림은, 공기와 반응하자 뜨거워지기 시작해 바른 부위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푹.

“……아흑!”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에일레스의 굵은 손가락 하나가 미라벨라의 애널 깊숙이 푹 처박혔다. 본디 부끄러운 용도로 사용하는 작은 구멍은 이미 안쪽에서부터 야릇한 감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해 무언가를 기대하며 귀엽게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는 구멍 안을 파고들어 드나들기를 반복하며 차차 길을 들였다. 뒤쪽을 쑤셔 대는 손가락은 어느덧 세 개까지 개수를 늘렸지만 아프기는커녕 자꾸만 미묘하게 달아오르는 감각을 어쩌지 못해 속이 상했다.

엎드려 있는 그녀의 등 뒤에서 에일레스가 하의를 푸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조그만 애널 한가운데에 오라버니의 굵은 귀두가 맞춰지자, 미라벨라는 필사적으로 싫다고 도리질을 했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다치니까.”

“흐읍, 오라버니, 읏, 거, 거긴 싫어요…….”

“싫기는. 아무 데나 쑤셔 주기만 하면 좋다고 질질 울 거면서.”

“제발 원래 하던 곳으로…… 하윽!”

뭉툭한 끝머리가 젖어 있는 묵직한 선단이 발름거리는 입구를 꾹 눌렀다. 촘촘하고 작은 주름이 팽팽해질 만큼 압박이 가해졌다. 이윽고 숨 막히는 부피감과 함께 두툼한 귀두 끝이 빠듯한 안쪽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흐읍, 아, 오라버니! 아흐읍, 흐, 아…….”

가장 굵직한 귀두부를 먼저 욱여넣은 뒤 그는 잠시 시간을 주었다. 새하얀 엉덩이가 바짝 굳고, 넓게 확장된 항문이 커다란 것을 힘겹게 물고 파들거렸다. 회음부를 잡아당겨 공간을 늘리고 음핵을 만져 주며 울퉁불퉁한 핏줄이 올라선 크고 흉흉한 기둥을 푹, 푹, 몇 번에 나누어 삽입할 때마다 미라벨라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아, 으흡, 아…… 굵직한 성기가 비좁은 길을 열어젖히며 밀고 들어올 때마다 거센 이물감과 압박감이 엉덩이 안쪽을 때렸다. 그에 더하여 애널 입구부터 직장 내벽까지 죄다 홧홧하게 달아오르도록 만드는 열감도. 감각을 개발시키는 크림의 효과로 육중한 성기가 부끄러운 곳에 처박힐 때마다 아프기는커녕 아찔한 희열에 전신이 찌릿하게 울렸다.

“흣, 이제, 이제 그만요…….”

“후, 아직 반도 안 들어갔어. 귀엽다 귀엽다 해 주니 어리광만 늘어서는.”

“으윽, 하지만, 흑, 너무 깊어서…… 흐읏!”

하, 에일레스가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허리를 묵직하게 밀었다. 최음 크림으로 충분히 마사지했으니 아플 리 없다는 건 알았지만, 화가 난 중에도 그녀의 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여리고 소중해서, 혹시라도 다칠까 봐. 그는 진입을 멈추고 음핵을 좀 더 만져 주다가 마침내 골반을 단단히 쥐고 힘주어 꿰뚫었다.

아흑……! 마침내 절대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던 굵고 기다란 성기가 끝까지 파묻혔다. 내부를 꽉 채운 버거운 감각에 미라벨라는 작은 손으로 시트를 움켜쥐며 할딱였다. 뿌리까지 완전히 들어와 엉덩이 안쪽의 보드라운 살결에 에일레스의 음모가 마찰하고 묵직한 음낭이 회음부에 척척 들러붙었다.

넣자마자 싸게 만들 듯 사방에서 콱콱 조여 대는 감각에 에일레스가 미간을 지그시 좁혔다. 그는 오래 기다려 주지 않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촉촉하게 풀린 미라벨라의 애널은 그의 것을 잘라먹을 듯 빠듯하게 압박하면서도 성기 전체를 기특하게 감싸고 꽉 조이며 물어 댔다.

“나는 뒤를 쑤셔 주는데 왜 젖기는 보지가 더 젖었을까, 벨.”

“읏, 그건…… 아흐으, 아……!”

그가 손을 아래로 넣어 미라벨라의 음부를 길게 훑었다. 앙증맞게 부푼 음핵부터 팽팽하게 당겨진 회음부까지, 에일레스가 손가락 끝으로 훑는 자리마다 흠뻑 젖어 있는 게 그녀에게도 느껴졌다.

두툼한 선단을 위시한 커다란 성기가 뒷구멍을 파고들어 와 내벽을 휘저을 때마다 맞닿아 있는 질 점막이 함께 자극을 받았고, 미라벨라는 고조된 감각으로 인해 엉덩이와 허리가 자꾸만 이리저리 비틀렸다.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도 자꾸만 야릇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정한 오라버니에게 말 못 할 부끄러운 일을 당하며 미라벨라는 한동안 어쩔 수 없는 수치스러운 쾌감에 시달렸다.

“아흐읏! 오라버니, 시, 싫……!”

몰려오는 사정감을 참느라 에일레스의 날렵한 턱선과 콧날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성기 표면에 따뜻하게 밀착되어 꽉 조이는 건 질이나 애널이나 마찬가지라서, 사실 그가 받는 느낌은 비슷했다. 입이든, 아래든, 미라벨라이기만 하면 어디에든 좋으니까. 다만 싫다고 우는 걸 붙잡아 굳이 이쪽에 박은 건, 단지 미라벨라가 여기로 느끼는 걸 훨씬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수줍음 많은 여동생이 절대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 할 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고양감이 남자의 본능적인 독점욕을 얼마나 자극하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것이었다.

“후으.”

“아, 읏, 하아.”

“하…….”

뜨겁게 녹은 초콜릿 분수 안에 몸을 담근 듯 극진한 쾌감. 가늘게 떨리는 작은 몸의 진동에서 그는 그녀가 절정을 맞았다는 걸 알았다. 사정 직전의 고조된 감각을 잠시 참아 내고 골반을 슬쩍 들어 귀두 끝으로 내벽을 깊게 문지르며 에일레스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음핵을 자극해 주며 안에 박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새하얀 엉덩이, 쾌감을 참지 못해 시트를 움켜쥐며 바르르 떨리는 작은 손끝, 오라비의 좆을 받아먹으며 귀여운 소리를 내질러 놓고는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르며 훌쩍이는, 더없이 애처로운 내 여동생.

하,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를, 어떻게 보내. 대체 누굴 줘. 에펠 공국의 후계자든 뭐든, 다른 남자의 침실에 어떻게 넣으라고. 벨, 우는 얼굴도 왜 이렇게 예뻐서는, 진짜, 좆같게…….

“후으, 네 손으로 직접 만져 봐, 벨.”

“아흑! 절대, 절대로 싫어요…….”

그는 작은 손 하나를 붙잡아 굵은 제 성기가 뿌리까지 처박혀 있는 구멍 바깥을 만져 보게 했다. 팽팽하게 늘어난 입구를 확인한 미라벨라가 소스라치게 놀라 울먹거렸다. 에일레스는 그녀의 손을 그냥 놓아 주지 않고, 소변을 본 것처럼 흠뻑 젖은 아래와 예쁘게 부푼 음핵도 더듬어 보게 했다. 처음 여동생의 손을 잡아 수음하는 법을 가르쳤던 날처럼. 우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아, 정말, 왜 이렇게 사랑스러워, 벨.

“흐윽, 읍, 아…….”

아찔한 쾌감에 젖어 들어 미라벨라의 눈앞은 점차 새하얗게 변해 갔다. 그런 와중에도 음란한 제 소리가 두꺼운 문을 넘어 아무도 없는 복도에 울려 퍼질까 봐 겁이 나 입술을 깨물었다.

파정이 가까워 오며 에일레스가 허리를 치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결국 미라벨라는 높은 신음을 내지르며 또다시 부끄러운 절정을 맞이했고, 반쯤 울먹이는 가쁜 숨소리가 뒤따랐다. 윽…… 끝이 다소 갈라진 허스키한 저음으로 목을 울리며 그가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때까지 굳게 닫혀 있던 휴게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 * *

“에일레스, 미라벨라는…….”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레이든이었다. 그는 얼핏 평소와 다름없이 완벽해 보였으나 어딘가 무척 초조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침실로 막 발을 들이던 그가 미라벨라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

“레이, 왔어?”

미라벨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커다란 손이 이마를 꾹 눌러 짚었다. 깊게 찌푸린 미간에 복잡한 심경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찾아다니며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치미는지 잠시 말을 잃었던 그는, 한참 후에야 참았던 숨을 뱉듯 한 번에 내쉬었다.

“미라벨라.”

“읏, 레이, 오라버니…….”

“……대체 어딜 갔던 건가.”

그녀는 엎드린 채로 힘겹게 고개를 들어 가까이 다가온 자신의 큰오라버니를 올려다보았다. 작은 몸은 아직 가시지 않은 절정의 여운으로 바들바들 떨렸으며, 아래는 여전히 에일레스와 이어진 상태였다.

“내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라고 했지.”

“죄송해요…….”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그게, 흣, 테라스에, 갔었어요.”

“혼자 있었나?”

“……아니요.”

새파랗게 쏘아보는 시선을 받아 내며 미라벨라는 아까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레이든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졌다.

“……오늘 처음 본 남자와 함께, 테라스에 있었다고?”

어두운 밤의 테라스는 술이 함께하는 파티에서 마음이 통한 남녀가 일탈 행위를 하는 대표적인 장소였다. 그런 곳에 같이 간다는 것만으로도 여자가 몸을 허락했다고 믿는 얼빠진 놈들도 있을 정도로. 이제 막 데뷔탕트를 치르는 여동생에게 그가 절대 근처에 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곳이기도 했다.

“그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

“왜 그랬나. 거기서 대체 뭘 하려고 했지?”

미라벨라는 그의 질문에 꿀이라도 바른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왜 그랬는지를 말하자면 그녀가 오라버니들에게 품은 용서받지 못할 감정을 털어놓아야 한다. 절대 그럴 수는 없어서, 그녀는 단지 뒤의 질문에만 답하기로 했다. 그 남자가 입을 맞추려는 걸 허락하려 했다는 사실을.

“말해.”

“오라버니들과 교육할 때 하는 그 일을, 다, 다른 남자와 하면 어떨지, 궁금해서…….”

“……하, 미라벨라.”

그녀가 더듬거리며 대답하자, 레이든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렸다. 한참 뒤에야 그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럴 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 그렇지만 아무 일도 없었어요! 뭔가 하기 전에, 에일레스 오라버니께서 오셔서…….”

그의 시선이 천천히 이동하여 반쯤 찢어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미라벨라의 옷들과 열려 있는 서랍에 닿았다.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고 발가벗겨진 여동생의 알몸과 온 얼굴에 가득한 눈물 자국, 매를 맞아 빨개진 엉덩이에도. 새파란 눈동자가 제 나신을 훑자 미라벨라의 작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래서 한창 혼나는 중이었군.”

방 안에는 들어서자마자 눈치챌 수 있는 미묘한 열기와 비릿한 밤꽃 향이 부옇게 번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도록.

심지어 미라벨라는 여전히 에일레스에게 붙잡힌 채였다. 발가벗고 엎드려서 엉덩이만 들어 올린 창피한 자세로. 애널 안에 삽입된 오라버니의 성기는 약간 크기를 줄였을 뿐, 아직 발기한 상태로 빼 주지 않아 비좁은 결합부가 꽉 막혀 있다. 최음 크림의 효과로 화끈거리는 엉덩이 안쪽에서 듬뿍 쏟아 낸 정액이 찔꺽거리면서 음란한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네 친구인 르웰린 후작 영애의 말로는 네가 어떤 남자가 주는 술을 받아 마시는 모습을 본 것 같다던데. 설마 그것도 사실인가?”

“……맞아요.”

레이든이 침대 위로 올라서서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녀의 작은 턱을 들어 올리는 손짓은 품위 있고 우아했다. 떨리는 하늘색 눈동자와 그보다 더 새파란 시선이 서로 비스듬히 맞물렸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걸 왜 받아먹어.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가르쳤어야 하나?”

눈물이 번져 시야가 흐릿한 중에도 그녀는 레이든의 눈가가 이상하게 붉다고 느꼈다. 마치…… 울기라도 한 것처럼.

“미라벨라, 네가 몇 살이야. 뭘 해도 되고 안 되는지, 그 정도도 몰라?”

“죄송해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토 달지 마.”

엎드린 자세 탓에 아래로 부드럽게 쏟아진 둥글고 뽀얀 젖가슴이 사랑스러운 굴곡을 만들어 냈다. 레이든은 손을 뻗어 부드럽고 말랑한 구체의 모양을 망가뜨릴 듯 세게 쥐었다. 도톰하게 솟아오른 분홍빛 꼭지가 유방을 움킨 단단한 손바닥 아래에서 이리저리 짓눌렸다. 그에게 한쪽 젖가슴을 꽉 잡힌 미라벨라가 작은 소리로 아파하며 상체를 틀었다.

“하읏! 아야…….”

“에일레스, 다 혼낸 건가?”

“아직 멀었어.”

발기가 풀리지 않은 성기를 미라벨라의 뒤쪽에 그대로 꽂아 넣은 채로, 에일레스가 자세를 바꾸었다. 그는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으며 여동생을 일으켰다. 미라벨라는 곧 그의 넓은 가슴에 등을 맞대고 앉혀진 모양이 되었다. 엉덩이 안쪽으로는 여전히 오라버니의 커다란 신체 일부를 품고 단단히 꿰인 채로.

“흐윽, 아, 오라버니!”

뽀얀 허벅지 안쪽에 각각 손을 넣은 에일레스가 양옆으로 한껏 들어 올리며 활짝 벌렸다. 다리가 넓게 벌어지며 자극으로 발개진 음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광경을 레이든이 정면에서 물끄러미 응시했다. 미라벨라의 은밀한 곳은 물론, 아래쪽으로는 엉덩이 사이 조그마한 애널이 한껏 확장되어 에일레스의 것을 뿌리까지 삼키고 있는 모습까지도 그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자세였다. 여동생의 성기 주변에 난 부드러운 음모는 죄다 촉촉하게 젖어 더욱 음란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미라벨라, 별로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아흡, 너무, 다 보여서! 오라버니, 다리, 조금만…….”

“아래로 줄줄 우는 게, 오히려 기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

“흐읏, 아!”

“이래서야 벌이라 할 수 없겠지.”

“읏, 만지지 마세요, 흐으…….”

레이든의 긴 손가락이 천천히 앞으로 뻗어 와 미라벨라의 소음순을 열어젖혔다. 방종하게 벌어진 균열 사이로 말그스름한 애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연한 회음부를 타고 흐르며 팽팽해진 애널 주름 사이사이까지도 함빡 젖어 드는 부끄러운 감각에 미라벨라가 작게 훌쩍였다. 발갛게 상기된 작은 얼굴과 비슷한 색으로 달아오른 음부를 잠시 감상하던 그가 천천히 소매를 걷었다.

“다른 벌을 줘야겠군.”

“으읏…….”

굵은 핏줄이 선 남자의 단단한 팔과 그 아래의 커다란 손. 미라벨라는 펜대를 쥐고 우아하게 서명하던 큰오라버니의 긴 손가락이, 발그스름해져 움찔대는 자신의 질 입구를 툭 건드리는 모습을 고개를 내려 목격할 수 있었다.

레이든은 손바닥을 위로 가게 한 상태에서 약지와 중지를 겹쳐 여동생의 음부에 느릿하게 삽입했다. 이미 음란하게 젖어 발름거리던 조그맣고 귀여운 구멍은, 오라버니의 굵은 손가락도 무리 없이 받아 삼켰다. 오히려 더 큰 것을 달라 보채듯 삽입하자마자 그에게 밀착되어 착 감기며 꾹꾹 조여 왔다.

“아흑, 흐으!”

그는 긴 손가락을 끝까지 밀어 넣지 않고 정확히 두 마디까지만 들어가게 푹 처박았다. 그대로 손가락을 위쪽으로 구부려 촉촉한 내벽을 더듬다가 방광과 치골 사이의 어느 지점을 꾹 누르자, 오라버니가 뭘 하려는지 눈치챈 미라벨라가 싫다고 도리질을 했다. 레이든은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작은 얼굴을 힐끗 보았을 뿐, 가볍게 무시하고 안에서 손마디를 두어 번 구부렸다 폈다.

“흐읍, 이상해요! 그, 그거 하지 마세요…….”

“내가 하려는 게 뭔데.”

“읏, 흐, 오라버니! 흐윽, 저 그거 싫어요, 진짜 싫어요!”

“미라벨라, 잘못을 해서 혼나는 주제에 말이 많아.”

“하으, 아…….”

지난번 캄포 제국의 비밀 살롱으로 납치되었다가 돌아오던 길에 한 번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오라버니가 그날 마차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처음과 달리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스폿을 레이든은 단번에 찾아냈다. 그의 단단한 손끝, 마지막 마디의 지문부가 여동생의 연약한 질 안쪽 벽을 더듬어 위에서 조그맣게 부풀어 있는 부위에 닿았다. 그곳을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이내 지그시 눌러 압박하기 시작하자, 미라벨라가 옅은 신음을 토해 냈다.

“흐윽, 싫어! 흐, 오라버니, 그만요!”

가쁜 숨을 할딱이면서도 미라벨라는 제발 그만둬 달라 울먹이며 사정했다. 아래에서 뭔가 탁 터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앞이 급격하게 아득해졌던 강렬하고 아찔한 쾌감……. 감당하기 어려운 깊은 절정보다도 정확히 말하면, 실은 그 후가 싫은 거였다. 오라버니의 눈앞에서 다리를 활짝 벌린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뭔가를 잔뜩 싸는 느낌이 너무 창피해서. 수줍음 많은 미라벨라로서는 그게 소변이 아니라고 해도 부끄러웠다.

양옆으로 들려 달랑거리던 하얀 발끝이 달아나고 싶은 마음처럼 다급히 까딱였다. 그러나 레이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여동생의 질 안에 삽입한 손을 움직여 여린 점막을 훑는 행위를 지속했다. 드나드는 속도를 빨리하며 반복되는 행위에 자극의 세기는 점점 커졌다. 그는 겹쳐진 손가락을 안에서 완전히 구부렸다 펴며 질 윗벽의 볼록한 지점을 깊게 문지르고, 피가 몰린 부위를 중지 끝으로 힘주어 꾹 눌렀다.

“으, 흣, 아아!”

등 뒤에서는 에일레스가 작은 몸을 떠받친 채 안고 있었고, 아래는 작살에 꿰인 것처럼 그의 성기가 애널 깊숙이 박혀 미라벨라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벅찬 압박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예민해진 질 점막에 가해지는 자극이 감각을 더 부풀렸다.

“오라버니, 이제 그만요! 읏, 정말, 더는…….”

정말 당장에라도, 뭔가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은 절정 직전의 감각을 미라벨라는 그래도 꽤 오래 버텨 냈다. 하지만 이번엔 야속하게도 에일레스의 큰 손바닥이 부드러운 아랫배 위를 지그시 눌러 댔다. 배꼽 근처부터 음모가 난 치구까지 죽 훑어 내려가는, 도무지 버틸 수 없는 감각. 그와 동시에 레이든이 다른 손으로 미라벨라의 클리토리스를 건드렸다. 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일레스, 팻말이 돌려져 있던데…… 어?”

“르시엘.”

“여기서 뭐 해? 벨라는 왜 홀랑 벗겨 놨고?”

막 근무를 마치고 침실로 들어서던 르시엘이 세 사람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바로 그때, 음핵 중앙을 자극하며 꾹 눌러 돌리던 레이든이 질구 안에 박아 넣었던 다른 손가락을 확 뽑아냈다.

핏, 피잇.

“……아흐윽! 아!”

숨을 틀어막을 만큼 깊고 진한 오르가슴과 함께 미라벨라의 은밀한 곳에서 투명하고 말간 물줄기가 분수처럼 탁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세차게 내뿜어진 물그레한 액체는, 침대 바로 옆으로 막 다가서던 르시엘의 적갈색 머리카락과 보기 좋게 그을린 단단한 낯에도 보기 좋게 잔뜩 튀었다.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은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윽, 뭐야?”

“아, 흣, 하으…….”

“벨라, 울어? 왜 그러고 있어?”

“르시엘, 편들어 주지 마. 벨은 지금 벌 받는 중이니까.”

“왜? 무슨 일인데.”

“흐윽! 읍, 흐…….”

잘게 떨리며 수축을 반복하는 비밀스러운 부분은 물론이고, 뽀얀 허벅지 안쪽과 바짝 조여든 엉덩이 아래까지도 온통 물기로 축축했다. 미라벨라는 흠뻑 젖은 아랫도리를 오라버니들 앞에 낱낱이 내보이고 있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몹시 서러운 기분이 들기도 해서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였다.

젖은 머리카락과 얼굴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 내던 르시엘이 막내 여동생의 눈가에 반짝이는 눈물을 보고 멈칫했다. 그는 형들이 하는 일이나 훈육 방식에 관여할 마음은 없었으나 그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드물게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적당히 봐주지. 울려고 하잖아.”

“왜 혼나고 있는지 알면 그런 말 못 할 텐데.”

“벨라가 뭘 잘못했는데?”

그사이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자 르시엘이 급속도로 표정을 굳혔다.

“아, 진짜 혼날 짓 했네.”

“르시엘, 오라버니…… 흐윽.”

“벨라, 우리가 박아 주는 걸로 부족했던 거야? 하, 나한테 진작 말을 하지.”

결국 유일하게 편을 들어 주던 사람마저 돌아서고, 사납게 돌변한 그의 눈빛이 미라벨라를 훑었다.

그사이 레이든이 잠시 거둬들였던 손을 다시 미라벨라의 음부로 가져갔다. 물기로 촉촉이 젖어 있는 소음순을 양옆으로 젖힌 그는 또다시 손바닥을 위로 가게 하여 질 안에 삽입했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자극하는 위치나 깊이가 좀 달랐다.

굵은 손가락이 질 내벽을 문지르는가 싶더니 곧 안에서 전체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시에 엄지를 위쪽의 요도구에 딱 붙이고 지그시 눌러 자극했다. 갑작스럽게 요의가 확 몰리는 느낌에 놀란 미라벨라가 가느다란 비명을 내지르며 바둥거렸다.

“아흣! 아, 오라버니! 흐읍, 거기 누르지…… 읏, 자, 잠시만요!”

생각해 보니 그사이 시간이 꽤 오래 흘렀다. 게다가 황제를 알현하고 춤을 추는 등 여러 가지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 연회장에 온 뒤로 화장실에 한 번도 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고작 두 잔이긴 하지만 술도 마셨고……. 그 사실을 깨닫자 미라벨라는 순식간에 아랫배가 빠듯하게 당겨 왔다.

“읏, 에일레스 오라버니! 이 팔 좀……. 저, 흐, 잠깐만 다녀올게요…….”

미라벨라는 에일레스의 품에서 몸을 빼내려 엉덩이를 들썩이며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뒤에서 그녀를 꽉 안고 있는 단단한 가슴은 물론, 두 다리를 M자 형태로 활짝 벌리게 해 잡고 있는 팔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절정을 맞아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여린 신체……. 예민한 음부는 고작 손끝이 스치는 가벼운 자극에도 반응하여 자잘한 경련을 일으켰다. 잔뜩 긴장된 요도구에 효율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큰오라버니의 손길에 미칠 듯한 요의가 치밀어 올랐다. 곧 제가 처한 상황을 깨달은 미라벨라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빌기 시작했다.

“자, 잘못했어요! 흐윽, 레이 오라버니! 저 차라리, 다른 벌을, 흑, 받을게요……!”

정신이 바짝 들면서 온몸의 솜털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투명한 눈동자에 글썽이던 눈물이 달아오른 뺨을 적시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레이든은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 하려던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미라벨라의 질 내에 삽입된 단단한 손끝이 방광 근처를 마사지하듯 거듭 꾹 눌러 자극했다. 적어도 그는, 부끄러움 많은 여동생을 효과적으로 벌주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 흡, 제발 화장실에! 흐윽, 가게 해 주세요……!”

“미라벨라, 버둥대지 말고 좀 얌전히 있을 수 없나?”

“하지만, 흐읍, 저, 정말…… 급해서요…… 흑, 싸, 쌀 것 같아요.”

“그럼 싸, 여기서.”

“으흑! 싫어요! 아흐, 어, 어떻게…….”

어쩔 수 없이 창피한 표현까지 입에 올려 버린 미라벨라의 얼굴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레이든은 그녀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벼랑 끝에 몰린 듯 절박한 심정이 된 미라벨라가 이번엔 뒤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에일레스에게 울며불며 사정했다.

“에일레스 오라버니! 흑,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미안하지만 안 돼, 지금 벌 받는 중이잖아?”

“다른, 다른 벌을 받을게요…… 절대로 여기서, 흐, 그런 일은, 읏.”

“버티지 마, 벨. 참을수록 너만 더 힘들어. 처리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뿐이라서.”

“흐윽, 아, 정말 더는 못 참겠어요!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오라버니! 아흡!”

“자, 착하지, 어서 해 봐. 후으, 다 보여 줘도, 괜찮으니까…….”

애처롭게 바둥거리는 발끝을 지그시 누르며 에일레스가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참느라 새빨개진 귀 끝을 살짝 깨무는 허스키한 음성이 아까보다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그는 여전히 제 여동생과 연결된 상태였다. 미라벨라의 애널에 한 차례 사정 후 삽입을 풀지 않아 그대로 들어 있던 묵직한 성기가 안에서 다시 몸을 크게 부풀리는 게 두 사람 모두에게 느껴졌다.

어르는 듯한 손길이 아랫배를 토닥이고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와 부드러운 음모를 쓰다듬었다. 에일레스의 가장 긴 손가락이 치구 위에 걸쳐져 도톰해진 음핵을 지그시 누르고 시계방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민감한 부위를 자극하자 가까스로 억눌렀던 요의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거세졌다.

“……흐윽, 오라버니! 읏!”

“미라벨라, 내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

“으흡, 싫어요! 제발, 제발요……!”

“창피해?”

“네, 아흐, 흡…….”

“그러게 네가 감당할 수 있는 행동만 했어야지.”

아흑! 작고 새하얀 발끝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소용없는 발버둥을 쳤다. 주변이 아릴 정도로 참고 있던 아랫도리에 한순간 힘이 탁 풀리고, 끝내 눈물 나는 한계가 찾아왔다. 마침내, 세 오라버니가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미라벨라의 부끄러운 구멍이 빠끔거리며 따뜻한 물줄기를 졸졸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아, 흐읍…… 안 돼!”

“오, 생각보다는…….”

“꽤 요란하네.”

“얌전한 숙녀는 못 되겠군.”

한 마디씩 이어진 감상과,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운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길게 울려 퍼졌다. 그동안 아랫배를 꽉 채웠던 긴장과 압박감이 밖으로 배출되며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주인을 배반한 육체는 시원하고도 후련한 쾌감을 느끼며 차차 편안해졌지만, 대신 그녀를 머리꼭지까지 다 잠기게 하고도 남을 몇 배나 되는 수치심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젠장, 벨라는 싸는 것도 귀엽잖아.”

괴로운 시간을 오래 참은 대가는 가혹했다. 에일레스의 말대로 한참을 버틴 탓에 그만큼 일을 보는 시간도 더 길어져 굴욕적인 순간은 심지어 빨리 끝나지도 않았다. 잘 익은 사과라고 해도 믿길 만큼 새빨개진 얼굴로 소변을 보며, 미라벨라가 억울하고도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흐윽! 싫어…… 아, 흑.”

“안에 남겨 두지 말고 끝까지 싸. 참으면 나중에 배 아파.”

“어, 어떻게, 흐읍, 아…….”

두 다리가 M자 형태로 활짝 벌어져 있어, 감출 수도 없이 개방된 음부가 철저히 드러났다. 조용한 방 안에 한참 울려 퍼진 수치스러운 소음과 가쁜 숨을 연신 삼키며 서럽게 울어 대는 소리, 끝내 눈물범벅이 되고 만 작은 얼굴. 미라벨라가 울면서 부끄러운 일을 치르는 내내 오라버니들은 말없이 그 장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다 했어?”

한참 뒤, 에일레스가 손을 아래로 내려 긴장이 풀린 요도구를 부드러이 문질러 주었다. 화가 나 그녀를 벌주는 내내 차가웠던 음성이 묘하게 누그러진 게 믿기지가 않았다. 배뇨로 예민해진 젖은 음부에 타인의 손이 닿자 미라벨라는 바르르 떨며 몸서리를 쳤다. 오라버니들이 전부 보고 있는 앞에서 이런 일을 해 버렸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벨라, 시원해?”

“흐윽! 오라버니, 아…….”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현실감이 없던 미라벨라는 르시엘의 말에 완전히 정신이 돌아왔다.

레이든이 약간 젖어 있는 손을 털어 내며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평소 옷깃에 먼지 하나만 스쳐도 눈살을 찌푸리는 그가, 미라벨라가 잔뜩 싼 액체로 손이 더러워지는 건 어째서인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그는 제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단정하고 깨끗한 미색 손수건으로 흠뻑 젖은 음부와 그 주변까지 제법 꼼꼼하게 두드려 닦아 주었다.

“미라벨라, 이제 충분히 반성이 됐나?”

“흐윽, 네…….”

“또 그럴 건가?”

“흑! 아니요, 아니요.”

미라벨라가 수치심 가득한 얼굴로 울먹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로서 남에게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은밀한 모습을, 그것도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세 오라버니 앞에 전부 보이고 만 것이다…….

치욕감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더 절망스러웠던 건 그들이 그녀를 단지 훈육의 대상인 어린 여동생으로만 보고 있다는 걸 분명히 확인했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를 이성으로 사랑한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남자라면 좋아하는 여자의 이런 모습을 절대 보고 싶어 할 리 없을 테니까.

“흐윽, 오라버니, 아, 흡…….”

하지만 그건 미라벨라의 순진한 생각이었을 뿐. 세상이 끝난 듯 울고 있는 여동생을 바라보며 세 오라버니의 시선은 점차 짙어졌다. 성격도 취향도 각자 달랐으나 그들은 틀림없는 형제답게 기본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일맥상통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면, 미라벨라가 상상할 수 있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범위의 기준을 몇 배나 초과하는 강한 소유욕과 지배적인 욕망이라든가.

지금껏 아무도 보지 못한 그녀의 부끄러운 모습, 얌전하고 수줍음 많은 미라벨라가 가장 숨기고 싶어 할 내밀하고 개인적인 행위. 그녀가 그 누구에게도, 설령 미래의 남편이라 할지라도 결코 보여 줄 리 없는 배설 장면을 오롯이 소유한 데 대한 짙은 만족감이 동시에 번져 갔다.

그리고 그 순간, 세 사람의 뇌리에는 모두 같은 결심이 스쳤다.

이 사랑스러운 여자를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고.

“……지금은 네가 내 동생인 게 정말 싫군.”

그녀의 아래를 닦아 낸 손수건을 잘 갈무리하여 품에 넣으며 레이든이 말했다. 그 말뜻을 혼자만 다르게 이해한 미라벨라가 깊은 자괴감에 빠져 색색거렸다. 발기한 채로 뒤쪽을 채우고 있던 에일레스의 굵직한 성기가 순간 다시 크게 꿈틀거리며 안을 휘저었다.

“어쨌든, 다른 남자를 찾을 만큼 부족했다니 채워 줘야겠지.”

“……하읏! 으.”

아직도 정신이 없는 가운데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그녀를 안은 자세 그대로 에일레스가 몸을 뒤로 완전히 눕혔다. 그의 기다란 성기에 애널을 뚫린 채 뒤가 꿰여 있는 미라벨라는, 자연히 따라서 둘째 오라버니의 몸 위에 눕게 되었다.

“하나로는 영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자세가 바뀌면서 찌르는 자리가 약간 바뀌었고 체중이 실려 그의 성기가 더 깊이 안쪽을 파고들었다. 최음 크림의 효과로 인해 뒤로도 쾌감을 느끼고 있는 데다, 항문과 맞닿아 있는 질 아래 벽의 스폿이 눌리며 함께 자극되어 미라벨라는 저도 모르게 높고 짧은 신음을 터트렸다.

“둘이 동시에 박아 주면 만족하겠나?”

“흐읏, 레이든 오라버니……!”

“내 음란한 여동생.”

레이든이 느릿하게 앞섶을 풀며 바둥거리는 미라벨라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속옷을 약간 내리자마자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가 압도적인 기세로 튕겨 나왔다. 넓게 벌어진 미라벨라의 두 다리 사이에 무릎을 세워 몸을 지지한 그가, 부드러운 허벅지 안쪽을 감싸 쥐며 자세를 잡았다.

끄트머리가 젖어 번들대는 선단이 묵직하게 질 입구를 압박하고 이내 속살을 가르며 푹, 처박혔다. 피가 몰려 잔뜩 부풀어 오른 위압적인 굵은 기둥이 단번에 가장 깊은 곳까지 치고 들어와 제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 안 돼요! 동시에 하는 건…… 으흑!”

이미 에일레스의 것으로 뒤쪽이 꽉 차 있는 상태에서, 앞쪽에 또 뭔가를 넣는다는 걸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으나 그녀가 받아들이기도 전에 이미 그의 단단한 페니스는 속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배 속을 거침없이 뚫고 들어오며 터질 듯 밀고 들어오는 오라버니의 육중한 성기. 가장 민감한 지점을 단번에 짓찧으며 강하게 들이치는 삽입감에 미라벨라가 소리도 못 내고 입을 벌렸다. 미처 꼭 감지도 못한 하늘색 눈이 레이든과 마주친 채 크게 떠졌다.

“미라벨라, 천천히 숨 쉬어.”

“아흑, 아흐…… 읏, 아! 흐…….”

“쉬이, 괜찮아, 벨.”

“……읍, 하아, 오, 오라버니!”

“편하게 있어. 밑에, 너무 조이지 말고…….”

“아흐으……!”

앞뒤가 터질 듯 꽉 채워져 당장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은 강한 압박감. 처음 삽입된 후 잠시 동안, 미라벨라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엾게도 할딱이고 있었다.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눈동자와 레이든이 집요하게 시선을 맞추고, 아래에서 그녀를 떠받친 에일레스가 부드러운 살결을 달래듯 쓰다듬었다.

얼어붙은 듯 바짝 굳어 있던 작은 몸은 서서히 풀어졌다. 위쪽으로 살짝 휜 레이든의 페니스는 곧장 삽입했을 때 늘 미라벨라가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질 윗벽의 스폿을 정확히 자극했다. 뒤쪽까지 빠듯하게 차 있는 상태였기에 자연히 공간이 더 좁아 들었다. 연약한 점막을 콱콱 때리는 두툼한 귀두의 탄력은 물론, 질벽을 압박하는 굵은 기둥을 휘어 감은 울퉁불퉁한 핏줄의 형태까지도 선연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벨, 이제, 후, 움직일게.”

“흐읍, 오라버니! 아직은…… 하윽!”

“큿, 하.”

“후으…….”

레이든이 뽀얀 허벅지 안쪽을, 에일레스가 아래에서 골반을 잡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 다 평소보다 빠듯한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레이든의 반듯한 미간이 좁혀지고 목울대가 크게 꿈틀거렸다. 평소의 습관대로 아랫입술을 말아 슬쩍 깨물던 에일레스가 아래에서 미라벨라의 엉덩이를 감싸 쥐며 낮게 신음했다.

두 사람 사이에 갇힌 미라벨라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낯선 감각을 감당하기 벅차 흐느끼고 있었다. 하나만으로도 버거운 커다란 성기 두 개가 아래를 동시에 채우고 연쇄적으로 드나드는 자극, 정신이 나가 버릴 듯한 끊이지 않는 쾌감.

굵은 기둥이 번갈아 가며 앞뒤 구멍을 통과할 때마다 납작한 아랫배를 뚫고 나올 듯 울룩불룩한 윤곽이 두렵게 비쳤다. 미라벨라는 그칠 줄 모르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삽입에 쉴 새 없이 밭은 숨이 터져 나왔다.

“앗, 으응! 하으, 아래가, 흑, 너무 이상해요, 흐읍!!”

“으윽, 벨, 이러다, 읏, 잘리겠어.”

“후…… 미라벨라, 너무 힘주지 마.”

다른 날보다 몇 배나 더해진 감각에 아랫도리 전체가 바들바들 떨렸다. 배 속에 꽉 들어찬 굵직한 좆 두 개가 질과 애널 사이의 얇은 가림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벼지자 미칠 듯한 마찰감에 눈앞이 아득했다.

아흑……! 온통 아래로 몰린 쾌감이 척추를 타고 내달리며 퍼져 나가 전율했다. 가느다란 등줄기부터 새하얀 발끝까지 죄다 움츠러들었다가 쭉 펼쳐지며 아찔한 희열이 전신을 휘감았다. 잔뜩 퍼부어진 과도한 쾌감에 온몸이 덜덜 떨리고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하읏, 조, 조금만, 흐윽, 천천히…….”

“아, 젠장.”

곁에서 제 형들과 여동생의 난교를 관음하던 르시엘이 낮게 뇌까렸다. 그의 매서운 눈매가 눈물범벅이 된 예쁜 얼굴을 쓱 훑었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새하얀 젖가슴과 바짝 선 분홍빛 정점에 주로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그의 아랫도리는 속옷과 제복 바지를 거의 찢어 버릴 듯 부풀어 꽉 죄이고 있었다.

“하.”

르시엘이 다소 갈급한 손길로 제 앞섶을 풀었다. 그의 하의 안쪽에서 울퉁불퉁한 핏줄이 불거진 검붉은 성기가 거대한 뱀처럼 머리를 쳐들고 퉁겨 나왔다. 배꼽 위까지 한참 더 사납게 솟구친 흉포한 기둥을 휘어잡은 그가, 요도구에 고인 선액으로 번들거리는 귀두 끝을 제 엄지로 꾹 눌러 비볐다. 후윽…… 르시엘이 낮게 끓는 소리를 내며 기둥 끝에서 터져 나오는 멀건 액체를 윤활유 삼아 수음을 시작했다.

“크읏.”

어느 순간 르시엘의 커다란 그림자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그는 침대 옆에 서서 제 육중한 성기를 미라벨라의 부드러운 몸 이곳저곳에 끼우고 문질러 댔다. 이를테면 작고 보드라운 손바닥이라든가, 가느다란 팔과 어깨를 잇는 새하얀 겨드랑이의 오목하게 팬 안쪽에.

“……으응! 흣!”

자극에 취약한 미라벨라가 가장 먼저 절정을 맞았고, 에일레스와 레이든이 거의 비슷하게 그녀의 내부에 정을 쏟아 냈다. 삽입한 곳은 달랐지만 물리적인 공간이 압박으로 줄어들며 비좁은 느낌이 강해졌기에 두 사람 다 평소보다 사정이 빨랐다. 대신 기세는 죽지 않아 삽입한 자세를 풀지 않고 그대로 몸을 부풀리며 곧장 다시 허리를 쳐올렸다.

“아흣! 아, 그, 그쪽은, 흑, 아아!”

“미라벨라, 하……. 계속 이 정도로 시끄럽게 굴면, 누가 무슨 일인지 와 볼지도 모르겠군.”

“읍, 그건 절대, 안 돼요, 흐윽……!”

물론 레이든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곳은 위세 높은 공작 가문을 위한 전용 휴게 공간. 설령 야릇한 소리가 문을 넘는다 한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 그들의 휴식을 감히 방해할 리도 없거니와, 각자의 출중한 능력으로 정평이 난 유서 깊은 공작가의 자제들이 설마 이런 곳에서 누이동생을 발가벗겨 좆을 처박고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파티에 참석하여 그런 사실을 모르는 미라벨라는 큰오라버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작은 손으로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아 보려고도 했지만 달뜬 소리를 숨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벨라, 걱정되면 입 막아 줘?”

“……우읍!”

사냥감을 발견한 커다란 맹수처럼, 짙은 눈으로 다가온 르시엘이 끈적한 선액이 줄줄 흐르는 제 성기를 미라벨라의 작은 입에 쑤셔 넣었다. 바지 안에 수납되어 있었다는 게 신기한 크기의 묵직한 좆 기둥이 끝도 없이 꾸역꾸역 들이치면서 아기 주먹만 한 굵은 귀두가 목구멍을 콱 막았다. 채 반도 물지 못했음에도 볼이 불룩해질 만큼 입 안이 꽉 차 숨이 턱턱 막혔고, 정액 특유의 비릿하고 진한 내음이 혀끝에 확 번졌다.

보드라운 볼 안쪽의 상피 조직에 자지가 꽉 눌려 비벼지는 자극에 르시엘의 단단한 허리와 엉덩이 근육이 꽉 조여들었다. 굵은 좆 뿌리를 제 손으로 잡고 여동생의 입 안에 피스톤질 하던 그가 오래지 않아 등 커다란 근육질의 몸을 경직시켰다. 끈적하고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에 쏟아부어지고 강인한 막내 오라버니의 맛이 입 속에 훅 퍼지는 감각. 특유의 맛이 나는 끈끈하고 희뿌연 체액이 점막에 들러붙으며 목 안으로 꼴딱꼴딱 넘어갔다.

“읍, 흐읍! 으.”

“크읏, 빨리 뱉어, 벨라. 벌써 삼켰어?”

“으응…….”

도톰하고 예쁜 입술이 유백색 액체로 젖은 유혹적인 광경에 사정 후에도 금세 몸을 부풀린 르시엘의 성기가 진한 수컷 냄새를 풍기며 다시금 입 안을 채웠다. 격렬한 쾌감이 틈을 주지 않고 작은 몸을 쉴 새 없이 뒤흔드는 행위가 그 뒤로도 수차례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눈앞이 까마득히 점멸하는 버겁고 원초적인 감각. 비릿한 액이 묻은 커다란 성기가 목을 틀어막고 두 오라버니에 의해 찢어질 듯 꽉 들어차면서 미라벨라의 아래는 무자비하게 헤집어졌다. 앞뒤 부끄러운 구멍을 동시에 꿰뚫리는 자극을 감당하지 못하고 여린 신체가 끊임없이 전율했다.

“후…… 안이 너무 조이는군.”

“윽, 벨, 정말 널, 하, 어떡하면 좋지.”

“흐읏, 레이든, 에, 일레스 오라버니! 아흑…….”

미라벨라는 대체 몇 번이나 절정을 맞았는지 나중에는 셀 수조차 없었다. 머리끝까지 차올라 어질어질한, 눈이 멀 것 같은 쾌감. 연속적인 오르가슴이 반복되는 남매간의 배덕한 난교의 현장에서, 미라벨라는 가까스로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침대 옆의 화장대에 달린 큰 유리 거울 안에 비친 건, 음란하게 흐트러진 제 모습. 르시엘의 성기를 벅차게 담고 있는 뺨이 불룩했다. 레이든과 에일레스 사이에 몸이 끼어 있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터질 듯 꽉 채워져 있는 아랫배도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으흑, 아!”

이미 한참 전에 수용 가능한 한계치를 넘어선 엄청난 쾌감. 하지만 연약한 신체를 뒤흔드는 감각보다 더 두려웠던 건, 그 순간 완벽하게 깨달아 버린 감정이었다. 다리를 한껏 벌려 세 오라버니들을 함께 받아 내며 위아래의 모든 구멍이 꽉 채워져 있는 음란한 미라벨라.

그들에게 동시에 범해지며 온전한 기쁨과 충족감을 느끼는 자신. 부끄럽고 음탕한 제 모습을 본 순간 말로 표현 못 할 충만함이 일시에 밀려들었다. 자신이 세 오라버니와 함께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는지가 비로소 절박하게 와닿았다.

“후으.”

“하, 윽…….”

“흐윽, 어, 어떻게…… 오라버니, 아아, 흑!”

레이든과 에일레스가 또다시 막판 스퍼트를 올리려는 듯 허리를 쳐올리는 속도를 빨리했다. 크윽, 때마침 르시엘이 제 성기를 급히 뽑아내며 파정했다. 한 줄기의 유백색 액체가 입가에 흐름과 동시에 자유로워진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미라벨라는 세 오라버니와 교감하는 느낌이 진심으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섞는다는 게 얼마나 즐겁고 뿌듯한 행위인지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이 마음은 결코 전할 수도, 이루어질 수도 없을 배덕하고 서글픈 첫사랑이었고, 그것이야말로 자상한 세 오라버니가 그녀에게 행한 가정 교육의 애달픈 결과물이었다.

“미라벨라.”

그 선명한 깨달음을 상기하며 몸부림치는 미라벨라를, 단지 관계의 쾌감이 버거워 우는 줄 알고 레이든이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억눌린 한숨이 섞여 들어 평소보다 거칠어진 중저음이 타일렀다.

“가도 괜찮아.”

“흐윽! 싫어요…….”

“왜? 그냥 가 버려, 벨.”

이번엔 등 뒤에서 그녀를 떠받친 에일레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순간, 미라벨라는 정말 못 견디게 두려워졌다.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세 남자. 그들을 떠나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이. 언젠가 낯선 타국으로 떠나 영원히 그들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비로소 완벽하게 와닿았다. 그 끔찍한 미래가 가파르게 깎아지른 높은 절벽에 그녀를 세워 놓고 그대로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아아, 흑.”

“가, 미라벨라.”

싫어.

“벨라, 그만 가도 된다니까.”

오라버니들과 헤어져 에펠 공국에 가긴 싫어…….

“착하지, 이만 가 버려, 벨.”

난 오라버니들을 떠나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아……!

“흑, 싫어요……! 흐윽, 정말, 가기 싫어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미라벨라는 감춰져 있던 속마음을 토해 냈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서러운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평소 관계를 가질 때 힘들거나 부끄러워서 종종 운 적은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소리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을 알아챈 이들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행위를 중단했다.

“갑자기 왜 그러지, 벨?”

“으흑, 아, 오라버니……. 흐읍!”

“미라벨라, 몸이 안 좋은 건가?”

“아가, 다쳤니? 어디가 아파?”

서둘러 몸을 빼내고 일으킨 오라버니들이 미라벨라를 푹신한 시트 위에 바로 눕혔다.

“어디 봐, 응?”

지나친 행위에 아래를 다쳤거나 아파서 운다고 생각했는지, 에일레스가 두 다리를 벌리고 안쪽을 살피려 들었다. 어깨를 웅크리고 서럽게 흐느끼던 미라벨라는 다리 사이를 보이지 않으려 몸을 틀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울 것 같으니까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

“비켜.”

르시엘을 옆으로 밀어낸 에일레스가 우는 여동생을 껴안았다. 눈물로 엉망이 된 작은 얼굴을 보니 그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섬세한 조각처럼 아름다운 낯에 짙은 후회가 드리웠다. 곁에 선 레이든과 르시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 벨…….”

다른 사내와 테라스에 함께 있던 미라벨라를 본 순간, 그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이성적으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대체 왜 이 정도로 절제하지 못했을까. 격랑처럼 밀려든 저열한 질투심은 이성을 남김없이 쓸려 보냈다. 한순간 날카로운 칼이 되어 솟구쳐 그를 찌르고 난도질했다. 그는 미어지는 가슴을 갈라 생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 고통스러웠다. 아마 다른 형제들도 비슷한 기분이었으리라.

“미안해, 아가, 오빠가 잘못했어.”

“흐윽, 흑…….”

“어디, 여기가 아팠어? 아니면 아까 내가 무섭게 해서 그래?”

“흡, 흐윽! 아니에요, 흑, 그런 거 아니에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에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아서, 미라벨라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흐느꼈다. 투명한 눈물이 매끄러운 뺨을 타고 흐를 때마다 세 오라버니의 낯은 당장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람처럼 창백해졌다.

미안, 벨라…… 르시엘이 옆에서 미안한 얼굴로 사과의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괴로워 보이는 레이든이 낮은 한숨을 내쉬며 제 옷을 덮어 주었고, 희고 부드러운 알몸을 품에 꼭 끌어안은 에일레스가 거듭 속삭였다.

“제발 울지 마, 응? 네가 우는 걸 보니까, 내 마음이…….”

가슴이 아픈 듯 말을 다 마치지 못한 그가 그대로 마나를 이끌어 냈다. 새하얗게 빛나는 손끝이 미라벨라의 아래를 헤집으며 과도할 정도의 치유 마나를 마구 퍼부었다.

“하, 벨라,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야.”

“미라벨라, 좀 마셔 볼 수 있나?”

레이든이 긴 다리를 움직여 거실로 나가 비치된 컵에 미온수를 따라 왔다. 그가 천천히 물을 먹이는 동안 티슈를 챙겨 온 르시엘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여동생의 젖은 뺨을 닦아 냈다. 세 오라버니의 다정한 손길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저 울고 또 울던 미라벨라는,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이 들고 말았다.

* * *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호화로운 마차가 고요한 밤거리를 내달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미라벨라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제 무릎 위에 그녀를 눕힌 에일레스가 새하얀 이마 위로 흐트러져 내려온 앞머리를 가만히 쓸어 넘겼다. 옆에 앉은 르시엘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작은 몸을 감싸듯 덮어 주었다.

“…….”

맞은편에 긴 다리를 교차하여 앉은 레이든은 그 광경을 보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차창 밖을 응시하던 시선이 잠시 되돌아와, 희미한 실내등에 비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

곤히 잠든 미라벨라를 고려하여 마차 안에는 가장 조도가 낮은 벽등 하나만이 들어와 있었다. 세련된 원형의 바퀴가 잘 정비된 수도의 도로 위를 구르는 소음과 말발굽 소리만이 어렴풋한 어둠 속을 파고드는 새벽이었다.

“레이든.”

에일레스가 한동안 이어진 적막을 깨고 제 형을 불렀다. 어스름한 가운데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그를 향했다.

“말해.”

“아까, 어디 갔었어? 내가 녹스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말이야.”

“그냥, 잠시.”

레이든이 짧게 답하며 다시 눈을 돌렸다.

“……누굴 좀 만나느라.”

평소에는 딱히 숨기는 게 없었던 그가 여기까지만 말하고 침묵을 지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에일레스는 더 캐묻지 않았다. 잠시 후 레이든이 이어진 짧은 적막을 깼다.

“에일레스, 녹스의 상태는 어떻지?”

“별로 좋지 않아. 최근 들어 확실히 병이 더 악화된 모양이야. 황궁의의 말로도 각혈이 잦아졌다고 하고. 일단 연구 중인 새 약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먹을지는 모르겠네.”

“큰일이군.”

“하긴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긴 해. 추출이나 숙성 방식을 완전히 바꾸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새 약도 어차피 기존의 마력석을 사용한 거라서. 내 생각엔.”

에일레스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새로운 종류의 마력석을 사용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에펠 공국에서 새로 발견된 걸 말하는 건가?”

“맞아. 직접 본 게 아니라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원하는 성분이 들어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에펠 측에서 외부로 수출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그래. 대신 에펠 공국과 국혼이 진행되면.”

레이든이 무겁게 말을 이어 갔다.

“신부대로 보내올 품목 중 일정량을 포함해 주겠다고 했다.”

“그게 꼭 효과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긴 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긴 하지.”

대화는 다소 어색한 지점에서 끊겼다. 사실 그들이 진짜 서로 상의해야 할 이야기는 따로 있었기에, 형제간의 대화는 아까부터 어딘가 이질적으로 빙빙 겉도는 중이었다.

“레이든, 에일레스.”

그때까지 비교적 묵묵히 듣기만 하던 르시엘이 입을 열었다.

“형들한테 할 말이 있어. 벨라 말이야.”

레이든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잠든 미라벨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에일레스의 손이 한순간 멈칫한 것 같았다.

“나, 실은 벨라를…….”

하지만 그는 말을 꺼내 놓고 한동안 망설였다. 미라벨라를 사랑한다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형들이라 해도 이 마음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국혼 문제는 이미 수차례 문서가 오가며 거의 성사된 상태였다. 약 1년 뒤, 합방을 치르고 결과가 나쁘지 않거든 즉시 진행될 그 일을 이제 와 일방적으로 파기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자칫하면 양국 간의 큰 감정 문제로 번질 수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황제는 공식적으로 라이오넬가에 국혼 건을 일임했고, 미라벨라가 가짜 공녀라는 사실마저 알고 있었다. 그건 사전에 협의된 사항이었지만 일이 틀어질 경우에는 고스란히 가문의 약점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들 가문의 세가 아무리 높다 한들 그렇게 되면 심각한 황실 기만죄였기에, 어쩌면 미라벨라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만약 형들이 내 마음을 알고 벨라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라도 한다면…….’

또 하나의 걱정은, 자신 때문에 일을 그르칠까 걱정한 형들이 국혼이 무사히 치러질 때까지 미라벨라를 다른 곳에 숨겨 두려 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그런 마음을 읽어 낸 에일레스가 다소 자조적인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에일레스는 멈춰 있던 손을 다시 움직여 잠든 미라벨라를 토닥이며 긴 한숨을 쉬었다.

“마찬가지야, 르시엘.”

“어?”

“우리 다 마찬가지라고. 나도, 레이도. 너랑 똑같아.”

“형은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르시엘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묻자, 레이든이 무감한 낯으로 대신 답했다.

“르시엘, 네 마음을 몰랐을 것 같나?”

“그럼, 설마…….”

“그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르시엘이 믿기지 않는 듯 입을 딱 벌렸다.

“진짜? 레이든도? 그럼 에일레스랑, 둘 다 벨라를?”

“맞아.”

에일레스가 선선히 인정했다.

“허…….”

“그러니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해.”

좀 전보다 더 커진 눈을 하고 제 형들을 바라보는 르시엘을 그대로 두고, 레이든이 단호하게 말했다. 세 사람 다 입 밖으로 내기까지 신중하게 행동했을 뿐, 같은 마음인 건 확실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면 언제부터 그녀를 마음에 담았는지, 그 감정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 따위의 감상을 나누며 보낼 시간 따윈 없었다.

“결정…….”

“아니, 이미 결정은 했고 방법을 찾아야지.”

그 애를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지 않을.

에일레스가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일단 집에 가서 자세히 이야기할까. 벨이 깨면 안 되니까 말이야.”

“그러지. 도착하면 미라벨라를 방에 눕히고 다들 내 집무실로 올라와.”

“어째 오늘 밤 잠들기는 다 틀린 거 같은데.”

어둠 속에서 서로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혔다. 그 후 마차가 한참을 달려 공작저에 도착할 때까지는 세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라이오넬 공작가의 가정 교육 지침서』 4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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