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첫 만남
“레시?”
“누구세요.”
“안녕.”
레시의 샛노란 눈에 날카로운 경계심이 덧씌워졌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막 잠자리를 펼치던 참이었다. 구질구질한 반지하 단칸방에 찾아올 사람이라고는 엊저녁에 술 마시고 집을 나간 아비뿐이다. 해지고 빛바랜 꽃무늬 이불을 구김 없이 펴고 있던 레시가 발걸음을 뒤로 물리고 으르릉,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기척을 숨기는데 능한 남자였다. 자신의 집 현관문이 열리는 것도, 심지어 문짝만 한 사람이 서 있는 것도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엄청난 덩치의 거구가 서 있기에는 신발장이 턱없이 협소해 보일 지경이었다. 낡은 철체 현관문의 문턱에서 일면식도 없는 낯선 남자는 독한 향을 머금은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레시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아 씨발 세상에서 제일 싫은 냄새…’
레시는 비흡연자다. 비흡연자가 독하고 매캐한 담배 냄새를 좋아할 리 없었다.
대체 백해무익한 거 뭐가 좋다고 그렇게들 피워대는 건지.
경계심으로 물든 목소리가 한없이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누구신데 남의 집 현관문에서 뻔뻔하게 담배를 쳐 피우세요.”
당돌하군. 남자가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입안에 가득 머금었던 시가 연기가 잇새로 피어오른다. 혹여나 돌연 공격을 해오지 않을까, 레시가 눈을 치켜 뜨고 남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척 봐도 아우르는 기백이 장난 아니었다. 얼마나 장난 아니었냐면 정말 장난 아니었다. 레시는 태어나서 이런 기백과 압박감을 가진 남자를 처음 만나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평생 사용해왔던 거친 언사가 어김없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레시는 좋게 말하는 법, 친절하게 구는 법 따위를 잘 모른다. 더더군다나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한 무뢰한에게는 더욱이 말이다.
남자는 대답 대신 두툼한 시가를 볼이 패일 정도로 깊게 한 모금 들이마셨다가, 후우- 길게 뱉어냈다.
‘주둥이가 있는데 대답을 안 해. 기싸움하자는 건가.’
풍채에서 나오는 강한 위압감도 있었지만 살벌한 얼굴도 그 기백에 한몫했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 칠흑같이 새카만 머리카락에 선명하고 두꺼운 눈썹, 쭈욱 찢어진 매서운 눈매 안에는 서릿발처럼 시린 은회색 빛 눈동자가 숨 쉬고 있었다. 또 높은 콧대와 뱀처럼 날렵한 입술, 굵직한 턱 선은 이목구비가 진해 말 그대로 금수의 낯이었다.
게다가 차림새 또한 남다른 포스를 풍긴다. 각잡힌 검은색 스리피스 정장, 어깨에 걸친 발목까지 오는 커다란 감색 코트, 사람 머리통 하나는 그냥 터트릴 것 같은 큰 손은 빽빽하고 번들거리는 검은 가죽 장갑이 감싸고 있었다. 잘 빠진 기다란 다리를 감싼 바지는 발목이 살짝 보이는 정도의 길이였다. 그 밑으로는 번쩍번쩍한 구두코가 보인다.
거대한 풍채 위로 걸친 값비싼 옷가지들은 살벌하고 서늘한 아우라를 정제시키고 있었다. 금수와 어우러지는 위험한 냄새는 결코 시가 따위에 묻히는 것이 아니었다. 은근하게 스며있는, 매캐한 시가 연기 속 아주 옅은 피 냄새를 맡은 레시가 손을 갈고리 형태로 만들었다. 우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툭 불거진 마디들이 각진 굴곡을 만들어 낸다.
남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눈앞의 먹이를 탐색하듯 아주 느리게 레시를 훑었다. 곧 유려한 손으로 시가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다. 씁쓰름한 향이 폐부 가득 들어왔다가 입술 틈 사이를 스산하게 비집고 나왔다. 그가 피식 웃으며 읊조렸다. 깊은 울림이 있는 지하 동굴처럼 낮은 목소리였다.
“내가 누구일 것 같은데?”
움찔, 은회색 빛 눈동자가 제게로 온전히 향하자 레시는 순간 온몸이 옥죄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 자신은 어딜 가서도 위용이 꿇리지 않는 한없이 포악하고 흉포한 맹수였다. 위압감에 눌린 몸이 잠시 주춤였으나 이내 흐트러지려던 호흡을 빠르게 가다듬는다. 레시는 애써 침착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힐난이 담긴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담배부터 끄시죠. 남의 집에서 담배는 예의가 아니지 않나. 가뜩이나 담배 냄새는 잘 빠지지도 않는데.”
두툼한 갈색 시가의 끝에는 불씨가 타닥타닥 거리며 쉬지 않고 타오른다.
남자는 생각했다.
맹랑하기도 하고.
굽신굽신, 얍실한 아첨을 하며 허리가 펴질 줄 모르던 아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남자가 시가를 흠뻑 들이마시고는 입을 벌려 뿌연 연기를 느른히 흘렸다. 짙은 시가 향기에 레시의 콧잔등이 찡긋거린다. 무거운 침묵을 유지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내가 내 집에서 담배를 피우겠다는데 뭐가 문제니.”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여기가 왜 지네 집이야? 내 집이지. 어이가 없어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저기 아저씨 착각하셨나 본데 여기는 우리 집인데요. 약주하셨으면 얌전히 택시 타고 집에 가세요. 모범 택시 불러드려요?”
“아저씨…”
레시의 말에 남자가 잠시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기다란 속눈썹이 나붓이 팔랑인다. 좁은 단칸방에 파도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저씨라는 발언이 충격이었던 걸까? 못 해도 30대 같은데… 실은 20대였다거나? 설마 10대는 아니겠지? 실없는 상념을 하고 있던 레시는 번뜩 정신을 다잡았다. 이렇든 저렇든 눈앞의 거구는 남의 집에서 담배나 뻑뻑 피워대는 반쯤 정신 나간 낯선 아저씨일 뿐이었다.
남자의 입술이 여트막이 틈을 보였다. 적막을 깨는 목소리는 여전히 낮게 잠겨있었다.
“아가 아직도 모르겠니.”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레시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갑작스레 밤늦게 찾아온 것도 모자라 담배를 피우지 않나, 이해 못 할 소리만 늘어놓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받는 건 자신을 아가,라는 되지도 않는 명칭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레시는 키 183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성인 남성이었다. 가진 건 없어도 악으로 깡으로 버텨온 인생이란 말이다. 그런 자신에게 애송이도 아니고 아가 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레시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결국 더러운 성질머리를 참지 못하고 으르릉, 이를 드러낸다. 더 이상 손 놓고 봐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누가 아기야!”
“나보고 아저씨라며, 그럼 너는 상대적으로 아가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웃기시네. 상대적으로 본다면 아무리 쳐줘도 어린이까지가 최대거든!”
“내가 칠십 먹은 노인네 면?”
아니 시발 그럴 수가 있나…?! 그러나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레시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이 험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혼신의 힘으로 무려 22년이나 살아온 어마 무시한 맹수였으니 이런 미친놈에 대한 대처법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예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며 손 모양이 갈고리처럼 구부러졌다. 상대방을 위협할 때 나오는 본능적인 자세였다.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지은 남자가 시가를 현관 바닥에 버리고선 성큼성큼 안으로 발을 들였다. 대치 상황이던 레시가 크게 경악했다.
“아악! 바닥 방금 닦은 건데! 신발장에 담배!!”
물론 꼬질꼬질한 노란 장판보다 남자의 값비싸 보이는 구두가 더 깨끗해 보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제 노고를 이런 식으로 치환하기는 싫었다. 기다란 다리로 좁은 단칸방을 거닐자 단 몇 걸음만에 레시의 지척에 당도했다. 남자가 눈을 내리깔고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시를 응시했다.
“괜찮아. 어차피 네가 여기에 발 디딜 일은 더 이상은 없을 테니까.”
“아니, 아까부터 자꾸 무슨 소리를…!”
헉, 언제…
두 명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또 하나의 낯선 사람이 현관문을 지키고 서있었다. 남자가 레시를 올곧은 눈으로 응시하며 손바닥을 뒤로 뻗는다. 곧 현관에 우직하게 서있던 남자가 다가와 서류를 하나 쥐여준다.
“아이고! 내 바닥!”
레시는 끝까지 방금 뽀득뽀득하게 닦은 노란 장판을 걱정했다. ‘구두 자국…!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아!’ 짜증을 부리고 있자 남자가 레시의 눈앞에 하얀 서류 한 장을 들이밀었다. 구두 자국이 몇 개인지 일일이 세던 레시의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사실 허연 종이와 불과 1cm 정도의 거리여서 애꿎은 눈만 안쪽으로 몰릴 뿐, 서류의 내용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뭘 어떻게 읽으라는 건지. 정말 매너라고는 개똥만큼도 없다. 그럼에도 레시는 서류의 위용에 조금 위축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끔 행동보다 말이 무서울 때가 있고, 말보다 활자가 무서울 때가 있는 법이다. 레시가 갈고리 형태의 손을 안쪽으로 말아 쥐었다.
“이게 뭐, 뭔데요…”
“이 집과 네가 내 것이라는 증거.”
??? 이게 뭔 개소리??? 물음표로 점철된 표정은 황당함을 뛰어넘어 백지가 되어버린다.
“으엉?”
“너 팔렸어.”
“네?! 내가 왜 팔려!? 아니 무슨 근거로요?! 누가 나를 팔아요! 내가 물건도 아니고! 내 집이 시장 바닥도 아닌데!”
시끄럽게 꽥꽥거리는 레시를 가만히 응시하던 남자는 ‘이게 근거.’ 읊조리며 입꼬리를 사악 끌어올렸다. 더욱 들이밀어진 서류는 이제 속눈썹까지 비벼질 지경이었다.
씨발 근거면 제대로 보여주던가. 눈알에 갖다 대놓고 뭘 보라는 거야.
“너하고 이 줘도 안 가질 낡은 집 오늘부터 내 소유란다.”
“무슨…!”
“네 아비가 카지노 빚을 탕감하려 헐값에 널 팔았어.”
“거짓말! 지금 하는 말 다 사,사실무근이죠!?”
레시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얼굴에 달라붙은 서류가 팔락였다. 뒤늦게 서류를 떼어낸 남자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내가 이 낡고 후진 집에 친히 찾아와서 굳이 너에게 거짓말을 하는 의미도 생산도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거니.”
“후진 집이라니 그 정도는 아니…!”
“그리고 근거는 이거라고 말했을 텐데.”
언젠가 아버지가 사고를 칠 거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그중 자신을 팔아넘긴다는 항목은 없었다.
“아니, 뭘 제대로 보여줘야…!”
남자가 레시의 얼굴을 지그시 훑어보더니 서류를 뒤에 있던 남자에게 휙 넘겼다. 그러고선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듯 멍하게 서있는 레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반사적으로 후다다닥 뒷걸음질을 친 레시가 벽에 등이 닿고 나서야 이를 악다물었다. 거리는 벌어졌지만 탈출구는 없다. 앞쪽은 문짝만 한 거구가 막고 있고, 설령 옆으로 비껴 빠져나간다고 해도 현관문 쪽에 남자 하나가 더 있다. 그는 눈앞의 거구보다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거구 못지않게 단단한 몸을 가진 것을 얼핏 봐도 알 수 있었다. 끽해야 위쪽에 있는 창문을 열고 탈출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데, 창문을 열고 상체를 집어넣는 순간 잡혀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레시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정면돌파지!
본인은 포악한 맹수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레시 특유의 호승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어쭈. 성깔 좀 있는 녀석이군.’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은 반항심과 경계로 얼룩져 있었다. 꽤나 재밌겠다고 슬슬 코웃음을 치는 순간, 성격 나쁜 레서판다는 참지 않아! 두 팔을 번쩍 든 레시가 쿠와아앙! 다가오며 매우 공격적인 위협을 가했다. 불청객을 제 집에서 내쫓겠다는 불굴의 의지였다.
그 순간 남자의 은회색 빛 눈동자가 섬뜩하게 희번덕였다.
“하하…!”
굳은 표정이었던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다가오는 레시를 향해 그대로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스스로 품에 안기려던 모양이었구나. 이리 와. 아가.”
아가 아니라니까 저 개새끼가 존나 징그러운 말을 처 씨불이고 있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씹, 이게 아닌데?! 왜 안 쫄지?! 분명 백이면 백, 다 쫄아서 도망갔었는데?!
이건 계산되지 않은 상황이다. 자신의 위협에 쫄아서 도망가버리는 것도 아니고, 두 팔 벌려 환영이라니.
순간 당황한 레시가 행동에 제지를 걸었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어어, 스탑! 스타아압! 속으로 간절히 외쳐댄 것이 무색하게 품에 들이받듯 가둬지는 것도 모자라 유연한 몸놀림으로 덜렁, 어깨에 들쳐매졌다. 순식간에 뒤집힌 시야에 노란 장판이 들어왔다.
“으아악! 뭐 하는 거야아! 놔! 내려! 내려줘!”
“안녕 아들? 이렇게 예쁜 몸짓으로 환영하고 반겨주니 좋네. 내 이름은 피에타야. 오늘부터 아빠라고 부르렴.”
남자가 부드럽게 웃으며 버둥거리는 레시를 가볍게 제압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사창가에 내다 팔려 했는데, 내가 키워야지.
◊
피에타는 아주 막무가내였다. 싫다는 레시를 어깨에 메고 억지로 차 안에 구겨 넣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얼결에 정신없이 납치당한 레시는 붉으락 푸르락한 얼굴로 시종일관 시끄럽게 굴었다.
“미쳤어?! 이건 납치야!”
“내 걸 내가 가져가겠다는데 어떻게 납치가 성립되지?”
“나는 내 소유야!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정말? 그렇다면 굉장히 놀라운걸. 그런데 그건 네가 팔리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 않을까? 작은 머리통으로 생각해 보렴.”
레시가 일갈하자, 피에타는 교묘하고 집요하게 곧은 심지를 흩트려놓는다. 품 안에서 바르작 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끌어안은 그가 답지 않게 다정한 손길로 허리께를 토닥였다. 가죽 장갑을 끼고 있는 커다란 손은 레시의 허리 한 면을 채울 만큼 큼지막했다.
“네 아비가 널 단돈 삼천만 베이트에 나에게 팔았단다. 가엾고 불쌍한 내 아들…”
은회색 빛 눈은 정말 동정이라도 하는것마냥 일렁인다.
이 새끼 진짜 날 아들로 보는 건 아니겠지? 눈을 마주한 순간 오싹함을 느낀 레시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렇다고 반박하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누,누가 네 아들이야! 이 미친놈!”
“그래그래 이리 와. 아빠가 안아줄게.”
“필요 없어!”
체온이 높은 따뜻한 품에 꼬옥 안아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한 '오늘부터 아들'은 벗어나려 크게 발버둥 쳤다. 그럴수록 몸을 감싸고 있는 팔로 족쇄처럼 꽉 물었다. 레시의 주황빛 머리카락이 피에타의 턱 부근을 간지럽혔다. 그다지 좋은 머릿결을 가진 건 아닌지라 부드럽기보다는 텁텁하고 까슬한 느낌이었다. 피에타가 복슬한 머리카락에 자신의 턱 께를 문질렀다.
“하지 마!”
처음 타 본 고급 세단은 200cm가 족히 넘는 장신이 타고 남을 만큼 널따랐다. 레시는 차 문을 열고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존나 말도 안 되는 모종의 이유로 피에타의 품에 아기처럼 안겨가야 하는 굴욕을 맛보는 중이었다. 자신은 몸집도 크고 맹렬한 포유류인데 이런 수치를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커다란 품은 창살 없는 감옥처럼 몸을 결박하고 놔주지를 않는다. 뜨끈뜨끈한 체온이 자꾸만 여기저기 비벼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무력감은 생각보다 더 씁쓸한 맛이었다.
본인 스스로 어딜 가도 꿇리지 않는 외모와 덩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달동네에서 레시만큼 큰 키를 보는 건 드물다. 못 먹고 자란 아이들이 대부분이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커다란 레시는 어릴 적, 달동네 골목길 대장이었다. 타고난 dna 덕분인 건지, 워낙에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녀서 잘 자라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183이라는 키와 막노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시비를 털려도 얻어터지지 않을 정도의 싸움 실력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커다란 남자의 앞에서는 먼지 한 톨 정도의 수준으로 무력하다.
“놓으라고오…! 존나 달라붙네 진짜! 진드기야?!”
“진드기라,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신선하군.”
“신선이 다 뒤졌나!”
아악 돌덩이야 뭐야! 놔!!! 허리를 감싼 팔을 떼어내려 손에 힘을 몰빵했건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완연한 힘의 차이에 레시는 한참을 버둥거리다 결국 체력이 소진되어 추욱 늘어졌다. 그때까지도 피에타는 빙글빙글 웃음을 지으며 마치 다른 나라 일처럼 제 품에서 반항하는 레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쩐지 작고 귀여운 것을 보듬고 싶어 하는 애정 어린 눈빛이었다. 원 맨 쇼를 즐기던 그가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다 했어?”
“아니! 아직이야!”
남자가 칼을 꺼냈으면 당근이라도 베야 하지 않겠어!
당근이 아니라 무라는 것도 모른 채 씩씩, 숨을 크게 몰아쉰 레시가 허리에 감긴 팔뚝을 밀며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상대는 미친놈이다. 예로부터 미친놈과 주정뱅이는 힘이 세다는 속설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정작 이 미친놈은 힘을 쓰기는 하는지, 아주 태연한 낯인데 본인은 물러터진 토마토처럼 흐물어졌으니. 레시는 오늘에서야 그 속설이 실재한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씨이…”
이윽고 레시는 코를 훌쩍였다. 날이 서있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간다. 제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이 미친놈은 힘으로 못 당해낸다는 걸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나서야 때늦게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절대 억울해서 우는 게 아니다. 이건 그냥 눈에서 땀이 나는 것일 뿐이야.
실시간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구경하던 남자가 태평하게 묻는다.
“우니?”
“안 울거든… 사나이는 아무 때나 안 울어.”
말하는 것치곤 목울대가 형편없이 떨렸다. 근 22년을 살아오며 온갖 풍파란 풍파는 다 겪어보았다. 빚쟁이들을 피해 거리에서 방랑자처럼 지내기도 하고, 도망치다 잘못 걸려 발목이 부러진 적도 있다. 부러진 오른쪽 발목은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비가 오는 날이나 심한 충격을 받으면 작열하는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그뿐이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레시는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지나쳐 왔다. 먹을 게 없어 자존심을 구긴 채 구걸도 해보고 도둑질도 해봤다. 그뿐이랴, 보름 정도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산에서 온갖 것들을 뜯어 먹다 독버섯을 잘못 먹어 죽다 살아난 전적도 있는 기구한 인생, 가난과 허기에 지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마약 운반을 돕다가 경찰에게 잡힐 뻔한 건 평생 안고 갈 비밀이다. 돌이켜 보면 참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이 정도면 솔직히 한 번쯤은 죽을만 한데 살아있는 걸 보면 꽤 끈질긴 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명줄이 길다고도 볼 수 있고. 험한 인생을 살았으니 무병장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병단수까지도 괜찮다. 짧고 굵게 살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런데 본인이 남에게 이 거지 같은 인생을 저당잡힐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코끝이 발개진 레시가 번들거리는 잘난 얼굴을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당신 아들 아니라고! 삼천만이고 뭐고 내가 벌어서 다 갚을 테니까 내려줘! 이 망할 미친놈아!”
커다란 목청은 고급 세단의 내부를 유유자적 맴돌았다. 가만히 들어주던 피에타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두터운 눈썹이 아래로 휘어졌다. 곧이어 그는 자신의 양아들이 될 레시를 엄하게 꾸짖었다.
“아빠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혼나야겠구나.”
참으로 기묘했다. 표정은 마치 달래주는 것 같은데 흘러나오는 말은 되레 혼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거 완전 미친 또라이 새끼 아니야! 쿠와아아앙! 잔뜩 심통 난 레서 판다의 위협은 10분 내내 계속되었다. 몸은 지쳐도 목은 지치지도 않는지 쉴 새 없이 욕을 하고 난동을 부리는 것에 피에타는 점점 지쳐갔다.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은 경우는 처음이기도 했다. 누가 감히 피에타에게 고함을 치겠는가. 결국 그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자신의 수족에게 조치를 요구했다.
“영재야.”
“예 보스.”
“입에 뭐 물릴만한 거 있니. 시끄러워서 안 되겠네.”
“예.”
짧게 대답을 마친 권영재가 곧 피에타에게 무언가를 건네었다. 검은색 가죽 줄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대형견 용 입마개였다. 은색 찡이 박혀있는 검은색 가죽 마개를 본 레시가 몸을 들썩일 정도로 크게 경악했다. 피에타의 팔뚝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반듯했던 검은색 정장이 볼품없이 구겨졌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입마개를 접한 곳이 하필이면 납치당하고 있는 차 안에서라니. 이보다 공포스러운 상황이 또 있을까.
씨,씨발 내 입에 저걸 물린다고!? 내가 개새끼도 아니고!!! 애초에 저게 왜 차 안에 있는 거야!!!
참 우스운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입마개를 피하려 보니 피에타의 몸에 더욱 달라붙는 꼴이 되었다. 약 10초 전만 해도 벗어나려 난리 치던 것이 무색하게 이제는 품에 꼬옥 들러붙는다. 한 마디로 진퇴양난이었다. 열이 받아 뜨끈해진 레시의 몸을 끌어안은 피에타가 쯧, 신경질적으로 앞 좌석 등받이를 쾅- 발로 찍었다.
“어떻게 아들한테 개새끼용 입마개를 물려. 대가리 안 돌아가니?”
“죄송합니다.”
“영재야. 너 영재교육 좀 받아야겠다.”
가끔 제가 모시는 사장님은 터무니없는 언어유희를 즐기곤 한다. 문제는 그 언어유희를 즐기는 사람이 본인, 즉 피에타 자신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를 오래 모셔온 영재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띠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은 채 입마개를 거둬들였다. 그러고선 자신의 재킷 안쪽에서 진공 포장이 되어있는 대나무 모양의 막대 과자를 내밀었다. 실제로 대나무를 첨가하여 만든 과자는 색이며 모양이며 대나무와 흡사했고, 안쪽 빈 공간에는 사과잼 필링이 들어가 있어 판다들이나 초식이 주인 수인들이 환장하고 달려드는 별미 간식이었다.
미심쩍은 얼굴로 과자를 받아든 피에타가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
“네가 이런 걸 왜 들고 다녀. 너 스라소니 아니고 판다냐?”
“가끔 먹으면 맛있습니다.”
“하여간 독특한 새끼.”
육식 수인이 이딴 걸 처먹으니 저리 딱딱해지지. 오랫동안 권영재를 봐왔지만 감정의 동요를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무뚝뚝한 놈이었다. 저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피에타는 대놓고 혀를 쯔쯧, 차며 친히 포장지를 손수 깐다. 순간 레시의 눈에 초롱초롱한 별이 토독토독 기포처럼 올라왔다. 달콤한 사과잼 냄새는 예민한 후각을 유혹한다.
없어서 못 먹는 대나무다.
대나무 과자가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과자에게 정신이 팔린 레시의 입에서 침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배고프다…’
한껏 난리를 칠 땐 언제고 금세 멍한 표정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꼴깍 삼킨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점심시간에 먹은 빵 한 조각이랑 우유 한 팩이 전부다. 어제는 또 어땠던가, 어제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퍽퍽한 옥수수빵 하나와 제일 작은 사이즈의 우유 한 팩뿐이었다. 고로 레시는 지금 지독한 허기에 허덕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얼간이처럼 풀어진 얼굴을 내려다 본 피에타가 입술 끝을 부드럽게 올렸다. 레서 판다를 어떻게 회유해야 할지 쉽게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영재야. 있는 거 다 줘볼래?”
결국 권영재가 소지하고 있던 대나무 과자 다섯 개를 모두 갈취한 피에타가 즐거운듯한 미소를 지었다. 대나무 과자에 홀린 레시가 넋을 놓은 채 가만히 과자를 올려다보았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한 팔로는 레시의 등을 받치고 남은 손으로 과자를 든 피에타는 현재 매우 즐거웠다.
초롱초롱한 노란 눈이 눈앞의 먹이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동통한 입술 사이로 자꾸만 침을 꼴딱이는 소리가 흐르고 발개진 코끝은 아직까지 유지된 채였다. 얌전해진 레서 판다는 반항을 멈추고 홀린 듯 과자만을 응시했다. 피에타가 휙, 과자를 왼쪽으로 휘두르면 고개가 퍼뜩 따라온다. 그게 귀엽고 재미있어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사방으로 휘두르던 그가 하하,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흘러내리는 정신의 끄트머리를 잡은 레시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왜,왜 웃어… 우리 동네에서는 못 먹는 사람들이 태반이거든?”
“알아.”
“알면 내놓지? 먹을 걸로 장난치면 벌받아.”
레시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의식주, 그중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은 단연 ‘식’이었다. 옷이나 집은 없어도 살아갈만하다. 하지만 먹지 못하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거지 같은 인생이라도 생존 욕구는 있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과자를 잡기 위해 손을 휙 뻗었다. 물론 움직임을 읽은 피에타가 한발 더 빨랐다. 세단의 천장까지 높게 뻗친 팔은 현재 레시의 자세로는 닿지 않는 거리였다.
레시를 바라보며 피에타가 과자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빠, 해봐. 아빠라고 부르면 줄게.”
이 미친놈 또 아빠 타령하네. 지겹도록 나오는 아빠 타령에 레시는 볼썽사납게 턱을 뒤로 빼며 질색했다. 못난 표정을 지어도 피에타는 여전히 생글거리는 즐거운 낯이다.
“싫어…! 내가 아무리 배고프다고 해도… 아빠도 아닌 놈을 아빠라고 부를 리가…”
“정말? 이렇게 맛있는 게 눈앞에 있는데도? 하나도 아니고 무려 다섯 개인데.”
낮게 킬킬거린 피에타는 보란 듯이 대나무 과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와작, 소리와 함께 부스러기 몇 개가 레시의 얼굴 위로 흩뿌려졌다.
‘맛없네…’
입안에 들어차는 파삭이는 식감과 진득한 딸기잼이 혓바닥 위에서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결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피에타가 우매한 물고기를 낚는 것처럼 과자를 요리조리 눈앞에서 흔들었다.
‘아아 맛있는 향…’
홀린 것처럼 빼꼼, 나온 붉은 혀가 입술 위로 떨어진 부스러기를 스윽 핥아서 쏙 들어간다. 그립고 그리웠던 대나무의 향기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이 순간 레시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도 닦듯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 자존심과 긍지를 지켜낼 것이냐, 아니면 그깟 알량한 감정 따위 버리고 당장 급한 허기를 채울 것이냐.
“아, 아…”
답은 하나다.
레시의 얼굴이 햇빛 아래 놓인 토마토처럼 푹 익어간다. 목소리는 개미처럼 기어들어갔다. 두 손을 꽉 쥐고 고개를 푹 숙이는 건 덤이다. 그 행동이 과자를 얻기 위한 전조 현상이라는 걸 아는 피에타가 느른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아 뭐?”
“아, 아, 아빠… 저 배고파요…”
앞길이 흐릿해 막연하게 살아온 스물둘 인생. 별거 없다. 배 채우고 등만 따시면 그래도 그게 행복이었으니까. 레시는 얼굴을 잘 익은 토마토처럼 물들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그 능글거리는 얼굴이 안 보이고 오직 캄캄하기만 하다. 덕분에 한 번 뱉고 보니 생각 보다 괜찮네?라는 태평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딴 저질스러운 말을 시킨 장본인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레시가 한쪽 눈을 가늘게 떠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살짝만 훔쳐보고 은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찰나에 자신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은회색의 동공과 마주쳐 버렸다. 몰래 훔쳐보려던 속셈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눈이 마주치자 심연 같은 동공이 일순간 작아졌다. 레시가 기겁하며 눈을 다시 감쳤다.
“너…”
낮은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상한 분위기에 참을 수 없이 민망해져서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이야…’ 웅얼거리자 피에타가 말없이 과자를 입에 물려준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으로 수욱 막대가 들어오며 자연스레 턱이 벌어졌다.
줄 거면 곱게 주던가! 눈을 번쩍 뜨고 성질을 부린 레시는 과자를 입에서 꺼내고는 곧 알 수 없는 이물감을 느꼈다.
“아 근데 자꾸 뭔 딱딱한 게 닿아.”
옆 허벅지에 기다랗고 딱딱한 무언가가 아프게 살을 눌러댔다. 잠시간 얌전했던 몸이 불편한 듯 낑낑거린다.
불편해. 불만을 표한 레시가 몸을 뒤척였다. 딱딱한 막대 같은 것에 허벅지가 눌려 아프다. 피에타는 먹이를 쥐어 온순해진 레서 판다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곧 꾸물거리며 편하게 자세를 고쳐 잡은 레시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마치 부모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아이처럼 안락한 자세였다.
“아 이제 좀 편하네. 주머니에 뭘 들고 다니는 거야. 그렇게 무겁고 딱딱한거 들고 다니면 주머니 금방 해져. 나중에 기워 입어야 된다니까?”
금세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방금 전보다 예민함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피에타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본인이 아래에 깔고 앉은 것이 그 무언가가 절대적으로 좆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순진한 판다 새끼를 어떻게 구워삶아 먹어야 할까. 그는 진심으로 깊이 고심했다.
피에타가 유려한 곡선으로 뻗은 입술을 벙긋거린다. 그의 나른하고 낮은 음성은 나오지 않고 오직 입모양만 느리게 변했다.
‘…궁금해?’ 소리 없는 말을 좇으려 입술을 유심히 바라보던 레시는 곧장 뜻을 알아차렸다.
“아니.”
표정이 묘해지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가차 없이 단칼에 잘라내 버린다. 원래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거다. 밥 먹을 때만큼은 건드리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을 눈빛으로 쏴댄 레시는 곧 두 손으로 소중히 쥔 대나무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코끝으로 아주 달달하고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파삭, 입안에서 부서지는 과자의 식감과 진득한 사과잼의 향연은 레시를 흐물흐물 풀어지게 만들었다.
‘마이따… 얼마 만의 군것질이냐…’
오독오독 맛있게 과자를 먹는 레시를 보며 피에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놀려먹기 바쁘던 그는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라는 레시의 협박을 알아먹은 걸지도 모르겠다. 과자를 게 눈 감추듯 빠르게 먹어치운 레시는 이제 뵈는 게 없었다.
두 손을 모아 내밀며 피에타를 빤히 올려다본다.
“아빠 줘.”
역시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두 번째부터는 아주 그냥 과자를 먹을 생각에 ‘아빠.’라는 단어가 쉬이도 술술 흘러나온다. 정말 아쉬운 건 남은 과자가 네 개뿐이라는 것이다. 백 개 있었으면 백번 불렀을 텐데.
“어쭈.”
이게 애교도 부릴 줄 아네.
생각지 못한 행동은 역시나 피에타의 흥미를 끌었다. 과자 하나를 더 까서 손에 내려주자 곧장 입으로 직행한다. 아마 귀와 꼬리가 나와있었다면 귀엽게 팔랑이고 있을 터였다.
레시의 대나무 과자 섭취가 이어졌다. 슬슬 탄탄한 허벅지 살에 짓눌린 좆이 뻐근해지는 참이다. 피가 몰려 땅땅 해진 상황에 짓눌리기까지 하니 답지 않게 성급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부드럽고 통통한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가는 긴 막대과자를 보며 피에타는 생각에 잠겼다.
아다는 뗐을까? 떡치는 게 뭔지는 아나? 애인은 만들어 봤으려나? 만들어 봤다면 어떤 씨발놈이랑 아다를 뗐지? 처음 길을 내준 새끼가 얼마나 좆질을 해댔을까, 길은 제대로 트였을까, 첫 경험 때 아파서 엉엉 울었으려나. 아니지, 앞만 써봤을 수도 있잖아. 아, 이건 이거대로 열받는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도달한 결론은 없으며, 그저 출처를 알 수 없는 화가 올라왔다. 그동안 레시는 과자를 싹 먹어치우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쥐새끼 곡식 파먹듯 빠른 속도였다.
피에타는 자연스레 과자를 까주면서도 상념을 멈추지 못했다.
개새끼들일까? 냄새나서 역겨운 종인데. 아니면 같은 종? …희귀 수인이라 찾는 게 더 힘들겠군. 아무래도 초식 수인 쪽이지 않을까 싶은데, 토끼나 햄스터처럼 작은 새끼들이려나. 아니면 기린이나 코끼리? 하 제기랄, 생각할수록 열받네. 씨발 내 건데 억울하잖아. …젠장 꾸물거리지 말고 조금 더 빨리 찾았어야 했군.
“…해?”
“….”
“무슨… 하냐고.”
“….”
“아저씨!!!”
커다란 목소리가 상념을 불쑥, 뚫고 들어왔다. 그제야 꼬리가 잘린 생각에서 벗어난 피에타의 눈에 초점이 맞춰진다. 몇 초 만에 다시 제대로 마주한 얼굴,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이고 있다.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이 레시의 뺨을 우악스레 구겨 쥐었다. 꽉 눌린 뺨의 포동한 감촉과 함께 도톰한 입술이 쮸, 붕어처럼 튀어나온다. 피에타의 상체가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워진다.
레시의 눈이 토끼처럼 치뜨였다.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선 치떴던 눈을 다급하게 감친다. 그의 시야에 마지막으로 담긴 건, 눈두덩 쪽으로 다가오는 검붉은 빛깔의…
“으욱…!”
얕은 눈꺼풀 위로 까슬까슬 축축하고 뜨거운 혓덩이가 내려앉았다. 눈두덩을 느리게 핥는 까칠한 돌기의 선연한 감각에 사색이 된 레시가 급하게 가슴팍을 팔꿈치로 밀어냈다. 의도적으로 살짝 밀려준 피에타가 싱긋 웃는다.
“뭐 하는 거야! 미친놈아!”
눈가를 팔뚝으로 벅벅 문지르며 소리를 지르니 피에타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도 모자라 씩씩거리는 레시를 향해 능청맞게 대답한다. 되레 왜 예민하게 구냐는 투였다.
“뭘 모르나 본데 고양잇과 수인은 친밀한 상대에게 그루밍을 해주는 게 습성이거든.”
“씨발 뭔 친밀한 상대야! 오늘 처음 봤는데!”
“하지만 넌 내 아들이잖니. 아빠가 아들 그루밍 해주는 거야 당연하지 않겠어?”
말이 안 통해! 아오! 그놈의 아들 아들! 이름을 아들로 바꿔야 하나! 아마 아버지에게 불린 평생의 아들보다 오늘 이 미친놈에게 불린 아들이 더 많을 거다.
답답함에 가슴이라도 팡팡 두드리려 했지만 레시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멈출 줄 알았던 미친놈의 기행이 재발했기 때문이었다.
할짝, 할짝, 혀의 돌기가 예민한 피부를 자극했다. 까끌까끌한 돌기는 여린 눈꺼풀 지그시 누르며 하얀 종이에 물감 번지듯 적셔갔다. 고양잇과 수인들의 특징인 혀의 돌기가 여린 피부를 헤집고 자극한다. 속눈썹이 축축이 젖어 버려 눈을 감았다 뜨기가 어려웠다. 질끈 감긴 덕분에 진하게 진 주름을 펴듯 혀를 넓게 펼쳐 지그시 눌러주면, 레시의 몸이 퍼뜩 튀어 올랐다.
“허윽…!”
몸에 눌려있던 성기가 크게 맥동했다. 눈앞에 놓인 먹이의 반응이 꽤나 만족스러운 듯했다. 질척한 혀놀림은 뱀처럼 아래로 기어가 입술 주변을 쓸어올렸다. 레시의 허리가 발칙하게 떨리는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과자 부스러기들을 모조리 핥은 그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뺨을 놓아주었다.
“너, 너 진짜…”
더 이상 빨개질 틈이 없을 만큼 달아오른 레시를 보며 피에타가 기가 찬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장갑을 천천히 벗고서는 굵고 긴 엄지로 레시의 입술을 스윽 닦더니 앙 다물린 틈으로 집어넣는다. 말캉한 입술 사이가 벌어지고 맞물려있던 잇새에 틈이 생겼다. 촉촉하고 말캉한 입술의 감촉을 즐기며 움찔거리는 혀를 꾸욱 눌러 농밀히 관찰해 본다. 뜨겁고, 축축하고, 자신과는 다르게 매끈하다.
레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시울을 적셨다. 눌린 혀의 안쪽 부근이 목젖을 찌를 듯 말 듯 아슬하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약하게 밀려오는 토기와 함께, 차마 삼키지 못한 타액이 입가를 타고 흘러 턱을 적셨다.
혀의 미세한 융기들이 부드럽게 엄지를 감싸고 움칠거린다.
“우윽…!”
“나이가 몇인데 칠칠치 못하게.”
핀잔 비스름한 말이었으나 피에타는 다정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커다란 엄지가 마지막까지 혓바닥 중앙 부근을 꾸욱, 눌렀다가 스르륵 빠져나왔다.
“하으!”
퉤! 재수 없는 새끼! 고개를 돌리고 침을 뱉는 시늉을 하는 작은 래서 판다 수인을 지켜보던 짐승이 번들번들한 자신의 입술을 혀로 슥, 훑는다. 방금까지만 해도 구렸던 달달한 사과 향기가 이번엔 제법 달갑게 느껴졌다. 짐승의 눈빛이 정염으로 번들거렸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혼나야겠구나.”
“지랄하지 마… 씨이…”
입 주변을 벅벅 닦아내는 게, 첫 키스도 못 해본 것처럼 억울해 보인다. 겨우 엄지와 혀를 섞은 주제에 말이다.
순간 아직 키스도 못 해봤나?라는 우습지도 않은 만족감이 치고 올라왔다.
피에타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성욕은 왕성하긴 했어도 이상 성욕은 딱히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작고 까칠한 레서 판다를 놀리면 놀릴수록, 궁지에 몰아넣을수록 울리고 싶다는 거친 음욕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젊은 나이에 큰 아들을 거둬들이게 되어 아빠,라고 불리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누군가의 처음에 집착한 적도 없었거니와 처음 보는 상대에게 이렇게 단시간 내에 성욕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붉어진 귀 끝과 못내 기어 나온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면 용솟음처럼 성기가 불끈 솟아올랐다.
뭐, 솔직히 얼굴은 취향이기도 하고. 몸매는 벗겨보지 않았지만 탄탄한 게 느껴져 오히려 포장 껍질을 하나하나 까는 맛이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입술을 손등으로 세차게 비비는 레시를 내려다보며 피에타가 백미러에 비친 권영재를 응시했다.
“영재야.”
“예 보스.”
“좀 빨리 가야겠다. 우리 아가가 너무 칭얼거리네.”
◊
얼마 가지 않아 피에타의 주거지에 도착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레시를 어깨에 들쳐 맨 그가 유유자적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호텔 로비에 들어서서 직원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크왕, 크아아앙! 거리는 시끄러운 레서 판다의 땡글한 엉덩이를 팡, 때렸다.
“윽! 뭐 하는…”
“조용히 좀 있으면 안 되겠니. 네가 이렇게 난동을 부리면 아빠 면이 안 서잖아.”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새끼란 새끼는 다 나오는 욕을 들으며 피에타는 그저 즐거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호텔 로비에 어깨에 덜렁 들려가는 것도 모자라 엉덩이까지 맞다니. 불꽃같은 수치심이 올라와 레시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이목을 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나가던 투숙객들이 흘끔거렸으나, 정작 소란을 관리해야 할 직원들이나 가드들은 보여도 못 본 척 딴청을 부렸다.
“좆까! 이 망할 아저씨야!”
“뭐? 좆을 까?”
“그래! 씨발!”
“우리 아가. 말이 험하구나. 괜찮아 괜찮아, 이 아빠는 다 이해해. 난세에 태어나 달동네에서 곱게 자라면 그게 또라이지 뭐겠어. 너에게 우아함이나 고상함을 바라진 않아. 레서 판다면서 닭처럼 시끄럽게 구는 게 신선하기도 하고. 매력적인 것도 같단다.”
매력? 매애려억?! 내가 뭔 개소리를 들은 거야. 레시의 표정이 단박에 팍, 구겨졌다. 너무 황당해서 발음이 꼬이는 것도 무시한 채 소리를 빽 질렀다.
“아빠 같은 소리 하네! 내가 당신 같은 아빠 피료업써!!”
“으응, 우리 아가가 정말 내 아들 같아서 그래. 아, 오늘부터 내 아들 맞구나.”
“악, 씨발 더러워!”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거야! 나 놀리려고! 끄아악! 질겁하는 목소리가 호텔 로비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레시가 팔에 힘을 실어 피에타의 뒷 허벅다리를 쾅쾅 내려쳤다. 씨발 바위야 뭐야?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는 매끈하게 쭉 뻗은 다리를 퉁쾅퉁쾅 내려치다 보니 어째 자신의 손이 더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단한 근육에 닿는 간지러운 주먹질은 외려 피에타의 정욕을 돋우는 불상사를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피에타의 굵은 눈썹 한 쪽이 미끄러지듯 위쪽으로 올랐다. 가소롭다는 미소를 픽, 지으며 이제는 엉덩이를 살살 토닥인다. 탱실한 엉덩이가 천 하나를 두고 맨손에 감겨왔다.
“악!”
“솜방망이 주먹으로 때려봤자 이 아빠는 하나도 안 아파서 어쩌지.”
“아, 엉덩이 만지지 마! 이 변태 아저씨야!!”
“세상에, 내가 어딜 가서 늘 이목을 끄는 남자기는 하지만 이렇게 이목을 끌어보기는 처음인데…”
뭐, 나쁘지 않네.
호텔이 더욱 소란스러워지기 전, 때마침 고급스러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걸음을 옮겨 올라탄 피에타가 카드 키를 센서에 대었다. 전자음과 함께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부드럽게 층수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시끄럽게 굴어대던 레시는 그제야 제 발로 땅을 디딜 수 있었다.
읏차, 부러 소리를 내며 허리를 숙여 가볍게 내려주자 곧장 매서운 주먹이 날아들었다. 허공을 가르는 주먹을 가느다란 눈으로 느긋하게 지켜보던 피에타는 그 살벌함이 가득 담긴 손이 눈앞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고개를 꺾어 피했다. 간발의 차로 허공을 때린 주먹이 탄력받아 다시 뒤로 당겨졌다.
씩씩대는 얼굴, 분을 못 이겨 본능적으로 나오는 주먹질,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 보통의 덩치보다 더 크기에 누군가는 살벌하다고 생각할 만한 장면을 보며 그는 알 수 없는 정욕이 서서히 끓는 걸 느꼈다. 팔딱팔딱 버둥버둥, 꽥꽥거릴수록 더욱 흥미가 생기는 것이다.
피에타는 빠르게 날아오는 주먹을 한 손으로 살포시 받아냈다. 손이 얼마나 큰 지 꽤나 큰 주먹이 쏙 들어가 폭 감싸인다. 쉽게 주먹을 잡힌 레시가 이를 악물고 힘을 실었다. 그러나 전혀 밀리지도, 심지어 미동조차도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이번엔 내빼려 하자 오히려 덥석 잡아 얼굴을 들이민다. 히익, 까무로치며 고개를 뒤로 빼니 피에타가 눈꼬리를 접어 나름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레서 판다 주제에 으르렁거리는 건 맹수 못지않게 난폭했다.
“이거 놔라… 그 재수 없는 면상 다 찢어발기기 전에.”
삐죽빼죽 모난 말투는 그가 얼마나 성질이 났는지를 짐작게 한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진동을 가만히 느끼던 피에타는 여유로운 얼굴로 한차례 늦게 대답을 꺼냈다.
“…워우 살벌해라. 근데 아가야 너, 이 호텔 층수가 몇인 줄 알아?”
“알 게 뭐야 씨발. 그게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지. 너에게 기회를 주는 건데.”
“개소…”
“78층, 최상층에 도착할 때까지 한대라도 나를 때릴 수 있다면 봐줄게.”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이목구비 뚜렷한 잘생긴 얼굴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항시 빙글빙글 웃는 낯이었다. 짙은 눈썹에 툭 튀어나온 눈썹 뼈, 날카로운 눈매를 가감 없이 쏘아보던 레시는 픽, 실소를 터트렸다.
“재수 없게 봐주긴 뭘 봐줘. 안 봐줘도 되니까 그냥 한판 뜨자. 어?”
뭔 개소리냐는 듯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피에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열 번 할 거 반으로 줄여주겠다는 소리야.”
씨발 맞짱을 열 번 뜨겠다는 소린가? 그건 좀 어렵겠는데…
피에타의 답변이 영 시원찮은 건지, 레시는 전혀 못 알아먹는 눈치다. 이 순진한 레서 판다는 본인의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는 중요한 사실도 모르는 것 같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미 다 읽은 그가 위로 향하는 층수를 슥 훑었다.
“빨리 시도해 보는 게 좋을걸? 지금 벌써 15층을 넘었거든.”
“오냐. 뒤졌다.”
스륵, 손이 풀리는 순간 두 번째 주먹이 다가왔다. 상체를 뒤로 빼 피한 그가 뒷짐을 지고 살몃 웃었다.
“이건 핸디캡. 막지 않을 테니까 잘 해봐.”
“진짜 존나 무시하네! 더 열받게!”
넓다 해도 그저 엘리베이터다. 3평 내지 3.5평 정도 되는 이 좁은 내부는 도망갈 곳도 마땅치 않다. 구석에 몰리는 건 분명히 피에타인데, 어쩐지 레시는 자신이 열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뒷짐을 지고 깃털처럼 뒤로 걸음을 물리는가 하면 순식간에 상체를 숙여 주먹을 벗어난다. 마치 한 수 앞을 내다보는듯한 기민하고,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느리네… 판다 종은 다 이렇게 느린가? 레서 판다는 판다와는 아예 다른 종이라고 들었는데, 비슷하군.’
피에타는 보통의 수인보다 촉각이 훨씬 뛰어난 편이었다. 때문에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는 일쯤이야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주먹 한 방 먹이고 싶어 애쓰는 게 안쓰러워 한대라도 맞아줄까, 했지만 이미 딱딱하게 발기한 좆은 뻐근하게 아려올 정도였기에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여 날아오는 주먹을 죄다 피했다.
하… 움직임이 무슨… 이렇게 빨라… 한참을 쉬지 않고 팔을 뻗던 레시가 이를 악다물었다. 그리 크게 움직이지도 않고, 핸디캡이랍시고 뒷짐도 졌는데 얄밉게도 슥, 스윽 잘도 피한다. 너무 약이 올라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묶어놓고 마구 패고 싶은 수준이었다.
“어쩌나 벌써 30층이 지나버렸네.”
“씹…”
“더 노력해 봐, 응?”
놀리듯 헤실헤실 웃으며 뱉는 말은 레시의 관자놀이에 핏줄을 불거지게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피에타의 잘난 면상에 주먹 한 방 먹여주지 못 한 채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78층, 문이 열리자마자 레시의 허리를 한 팔로 감싸 안은 그가 좁은 공간을 빠져나왔다. 널따란 복도에 두 사람만이 존재했고, 적막이 맴돌았다. 피에타의 커다란 손이 열이 오른 붉은 얼굴을 억세게 구겨잡았다. 톡 튀어나온 통통한 입술과 경악한 표정의 언밸런스한 조화가 꽤나 마음에 든다.
“윽…!”
“내가 이겼지? 이제부터는 내 차례야 아들.”
누군가에게 힘으로 압도당한 적이 거의 전무했던 터라 눈앞에 이 미친 인간이 과연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수인 종족 특성에 따라 힘의 승패가 갈리는 건 당연한 생리였지만 레시가 살아온 인생에서는 이렇게 뛰어난 종족의 수인을 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도 그럴게 달동네에서는 대부분이 흔하고 약한 먹이사슬의 하층계 초식 수인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푸, 으! 놔아! 노으라고!”
두꺼운 팔뚝을 두 손으로 꽉 부여잡은 레시가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그러나 사력을 다해 봐도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육식 수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당장 손에 칼이나 총이 쥐여져 있지 않는 한, 거의 없다.
“가만히 있어. 입술 물어뜯기기 싫으면.”
피에타의 얼굴이 점차 가까워진다. 기다란 속눈썹이 촘촘한 눈을 내리깔고 느릿하게 표적을 응시하며, 입꼬리는 유려하게 호선을 그린 채였다.
‘뭐야?! 이거 뭐야?! 왜 다가와!? 왜 가까워지는데?!!!’
어, 어어어? 어어어어어?! 내적 비명을 지르던 것도 잠시, 삐죽 튀어나온 입술 위로 뜨거운 입술이 겹쳤다. 말캉한 살결이 부대끼고, 고개를 모로 튼 피에타가 잡아먹을 듯 입을 벌리며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레시의 눈이 왕방울처럼 희뜩 커졌다. 훅 끼쳐 온 피에타의 강렬한 페로몬에 상대적으로 약한 그의 기운이 원치 않게 본능적으로 꼬리를 내렸다. 본의 아닌 쪽팔려 뒤질만한 굴종이었다.
소리를 지르려 입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 까슬한 혓덩이가 틈새를 가르고 밀려들어온다. 뜨겁고, 축축하고, 묵직하고, 까칠했다. 뭉툭하고 두꺼운 혓바닥이 뱀처럼 미끄러져 들어와 입천장을 사르르 간질였다.
“…!”
순간 레시의 허리가 발작했다. 크게 팔딱이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하고 다시 한번 입천장을 까슬한 혓바닥으로 문지르면 쿵,쿵,쿵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피에타가 피실 웃었다. 역시 마음에 드는 반응이다.
“우…!”
강한 악력에 속박당한 레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코끝이 발개진다.
첫 키스에 대한 로망은 딱히 없었지만서도 이 미친놈이 얼굴을 아무렇게나 구겨잡고 눈꺼풀부터 시작해서 뺨, 입술을 뱀처럼 핥는 건 진짜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그러니 괜스레 첫 키스에 대한 억울함도 드는 거다. 문득 술에 꼴아 집을 나간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난 레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끝이 찡해서 매운데, 그 와중에도 오늘 처음 본 상대에게 격의를 차리지 않는 거친 혓덩이는 입안 곳곳을 음미하듯 훑어댔다.
굳은 혀 밑으로 까슬한 혀가 파고들었다. 여린 점막을 쿡, 찌르고 까슬한 윗면으로 혓바닥 아래를 문질러 댄다.
“흐읍…!”
크게 숨 먹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품에 갇힌 레시의 갈 곳 잃은 손이 피에타의 재킷 뒷자락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 피에타의 혀가 쑤욱 빠져나갔다. 그의 은회색 빛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아 레시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한다. 붉어진 눈가와 눈끝에 달린 눈물방울,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도톰한 입술과 몸으로 전해지는 잔떨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빛은 저온을 띠었으나,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워 보이기도 했다.
“씨발…”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몹시 위협적이어서 몸이 굳어버렸다. 자신보다 우위의 짐승에겐 당연히 꼬리를 내리는 약육강식의 법칙이었다. 의도치 않게 쫄아버린 레시가 눈가를 파들파들 떨며 흐윽, 억눌린 울음을 뱉었다.
한 팔로 레시의 허리를 들어 올린 그가 성마른 몸짓으로 호텔 방을 열어젖혔다. 널따란 현관 위에 달린 자동 센서가 반응해 어둑한 조명이 사위를 조금이나마 밝혔다. 호텔 방의 전면은 통유리로 되어있어 도시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알록달록한 불빛이 달빛과 함께 스며들어와 어슴푸레 공간을 비춘다.
피에타는 진귀한 광경을 구경할 틈도 주지 않고 방으로 향했다.
장정 네 명이 누워도 남을 것 같은 널찍한 침대 위로 덜렁 들려있던 몸이 내려앉았다. 키스 같지도 않은 키스의 여운에 훌쩍거리던 레시는 더 큰 위험에 닥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짐승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발로 침구를 밀어내면서 몸을 뒤로 물렸다. 강한 기백이 온몸을 압박하는 기분이었다. 레시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낙뢰처럼 꽂혔다.
놈은 육식 수인이다. 게다가 차에서부터 자꾸만 여기저기를 물고 빠는 게… 혹시 나 여기서 잡아먹힐 운명인가… 뼈까지 꼭꼭 씹혀서 아주 잔혹하게….
이 미친놈의 종족을 얼추 때려맞혀 보자면 대형 고양잇과인데, 수화 때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정확한 종족을 맞추기란 어렵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추려보자면 호랑이, 사자, 퓨마, 치타 등등… 어쨌든 문제는 대형 고양잇과는 육식을 한다는 거고, 나라에서 살인과 인육은 금지되어 있지만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삽시간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손바닥에 맺혔다.
은회색 빛 눈은 한 번을 깜빡이지 않고 사냥 전 맹수처럼 똑바로 레시를 주시했다. 침을 꼴깍, 삼킨 레시가 누군가 틀어막은 듯한 목소리를 겨우겨우 짜내었다. 기저에 깔린 위협적인 페로몬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씨발 나는… 나는…”
그때부터 레시가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제아무리 불쌍한 인생을 살아왔거니, 이딴 식으로 개죽음을 당하기는 싫다. 자연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병사라던가, 피할 수 없는 교통사고라던가! 그렇게 죽는다면 받아들이겠는데 육식 수인한테 잡아먹히는 죽음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단 말이다!
“….”
“나는 맛이 없다고!! 먹어봤자!!!!”
피에타의 눈이 느릿하게 감겼다가 떠진다. 번뜩이던 섬광이 사라졌다가 다시금 존재를 드러냈다. 대답이 없으니 더욱 애가 타, 막힌 것 같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난 맛없어! 먹지 마!! 나는 삶아도 맛없고 구워도 맛없어! 국에 넣어도 맛없을걸! 대신 뭐든지 할게! 나 힘도 잘 쓰고! 어… 어 그리고… 라면! 라면도 잘 끓여! 참, 우리 집 바닥 봤지! 반짝반짝한 거! 나 청소도 무지 잘한다!”
그렇게 원치도 않는 자기 pr을 하기에 이르렀다.
또 무슨 소리를 하나, 가만히 지켜보던 피에타가 실소를 흘렸다.
“하….”
대체 이 꼬맹이가 어떤 오해를 했는지 훤하게 보인다. 쪼그마한 머리로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나 했더니. 물론 그에게 수인을 먹는 괴상한 취향 따윈 없었다.
어쨌든 상황 돌아가는 걸 정확히 파악 못 하는 것 보니… 이 꼬맹이는 아다가 분명하다.
조금 전, 차 안에서 홀로 열받았던 것이 무색하게 피에타의 기분이 수직 상승했다. 온몸을 벌벌 떠는 채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게 귀엽고, 또 잡아먹히기 싫다고 뭐든지 하겠다는 순진한 반응은 그의 강한 음욕을 이끌어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날아온 즐거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스스로 덫에 걸린 어리석은 불쌍한 레서 판다를 바라보며 피에타는 사냥에 성공한 금수처럼 나른하게 웃었다. 이 멍청한 레서 판다는 본인이 무슨 망발을 지껄였는지 평생 모를 것이다.
“뭐든지 하겠다고?”
피에타의 물음에 레시가 침을 꿀꺽 삼킨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그래, 살 수 있어!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다 정말. 근데 뭐든지 할게. 이 건물 창문 닦이 필요 없어?! 나 꽤 잘 하는데! 78층 정도야 껌이지! 하하하!”
허겁지겁 미끼를 답삭 물어버린 레시가 말을 마치고 혼자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뒤에는 ‘응응, 맞아 나 청소 잘해.’라는 꽤나 맹한 자화자찬이 따라온다. 그제야 움직임을 보인 피에타는 어느새 레시의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언제 이렇게 가까이 왔지? 생각하기도 전에, 다시금 얼굴이 손에 붙잡혔다. 침대 맡에서 허리를 숙여 얼굴을 마주한 피에타가 작게 미소 지었다.
“아가.”
“으,응?”
“그럼 지금부터 아빠라고 불러 볼래?”
살기 위해서 그까짓 거 못할쏘냐. 레시가 당장 눈앞에 들이닥친 생존본능을 발동시켜 재빠르게 피에타의 팔 소매를 부여잡고 입을 열었다.
“아,아,아,아빠.”
좀 삐끗하긴 했지만.
피에타가 입꼬리를 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듣기 좋네, 다른 때는 뭐라고 부르던 봐줄게. 앞으로 이 침대 위에서는 아빠라고 부르는 거야. 알겠지?”
“알겠어! 이 미친 변태 새… 아니 아빠. 으…”
죽어도 싫지만 죽어도 싫은 것보다 죽는 건 더 싫기에 막힘없이 아빠라는 단어가 술술 터져 나왔다. 물론 뒤따라 붙는 싫은 소리는 원플러스 원 같은 것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피에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고양감이 피어올랐다. 그의 모습을 긴장한 채 지켜보던 레시는 실실 웃는 잘생긴 얼굴에다 퉤,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레시는 일평생 중 가장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을 해버렸다. 얼굴을 놔준 피에타가 허리를 곧게 펴고 옷을 벗어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질 좋은 검은 재킷이 툭, 무거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갑작스러운 스트립쇼에 멍해져서 가만히 지켜보던 것도 잠시, 이윽고 목젖이 불룩 튀어나온 목울대가 울렁이며 새된 비명이 비집고 나왔다.
“아아악! 뭐해!”
“보면 모르니? 옷 벗잖아.”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 악!!! 바지! 바지를 왜!!!!”
찰칵, 바지 버클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스르륵 바지가 내려가자 드로어즈 위로 뚫고 나온 좆이 안녕? 하고 불뚝 서서 인사를 해왔다. 담고 있는 양물이 얼마나 큰지, 검은색 드로어즈가 묵직하고 두터운 살덩이를 다 담지 못하고 팽팽하게 늘어난 상태다. 매끈한 귀두 끝에선 하얀 선액이 고여있다가 줄줄 흘렀다.
“아니,아, 아니…”
레시의 말이 차마 이어지지 못했다. 흐릿해진 목소리의 끄트머리는 이렇다 할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을 넘어서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레시를 보며 피에타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곧 드로어즈마저 탄탄한 허벅지 밑으로 내려가자 묵직한 좆이 덜렁거리며 배꼽을 투둑, 친다. 흡사 흉기와도 같은 형태였다.
“아…”
현실성이 떨어져 머리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뻣뻣하게 굳은 고개는 하필이면 정확히 그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어마 무시한 흉물 말이다. 커다란 좆을 한눈에 담은 레시가 한 박자 늦게 억, 소리를 내었다. 고양잇과 수인들의 좆형태가 기이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태어나서 본 남의 좆이라곤 어릴 때 아버지와 갔던 목욕탕에서 봤던 생판 모르는 사내들의 좆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도도하기로 유명한 고양잇과 수인은 본 적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 떡 하니 있는 것이다! 가시가 울룩불룩 돋아 있는 몹시 끔찍한 형태로!
레시가 끄아아아악! 내적 비명을 지르며 최대한 뒤로 몸을 물렸다.
어릴 적, 옆집 할머니에게 들었던 사탕 사주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 어째서였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사탕 사준다 해서 따라나선 게 아닌 강제적인 납치였지만, 물론 대나무 과자에 홀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달콤함 뒤에는 어떤 이면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씁쓸할 수도, 더 달 수도, 어쩌면 파괴적인 맛이 돌지도 몰랐다.
한참을 억,억 거리던 레시가 소리를 뻑, 질렀다.
“씨,씨발 너, 아니 아,아빠! 너 좆을 왜 까!”
“왜. 아까는 좆까라며.”
씨발 좆까랬더니 진짜 좆을 까버리네! 이런 신박한 미친 새끼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었다니…! 내 인생 조졌다 씨발!
순간, 레시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싸한 장면이 있었다. 설마 설마 설마… 강제적으로 안겨있던 차 안에서 허벅지를 자비 없이 찍어대던 그 딱딱한 것이…
안 그래도 벌어져 있던 입이 턱이 빠질세라 내려왔다.
그딴 흉악한 게 좆일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
레시의 마음 따위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가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왜, 아빠 좆 보니까 흥분되니? 침이 줄줄 새? 먹고 싶어서 안달 나?”
“뭐, 뭐라는 거야… 헛소리 못 하게 잘라버리면 모를까, 미친… 내가 왜 당신…”
까지 말하던 레시의 입이 어물어물 다물어졌다. ‘당신’이라는 단어에 희열로 가득 차 있던 은회색 빛 눈빛이 사납게 번뜩여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것만큼 소름 돋는 게 없다. 포식자 앞에서의 피식자는 그저 꼬리만 말 수 있을 뿐. 한층 누그러진 경악이었지만 말을 더듬는 건 숨길 수 없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내, 내가 왜 아빠 좆 보고 흥,분을 해…”
씨발 대체가 어떻게 되먹은 상황이야 이게. 어느 날 갑자기 웬 덩치 큰 고양잇과 수인 변태 아저씨에게 납치당한 것도 억울한데, 아부지란 사람은 본인을 헐값에 팔아넘겼단다. 근데 자신을 헐값에 산 변태 아저씨 새끼가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지를 않나, 흉측해서 쳐다보지도 못할 좆을 지 혼자 덜렁 까 잡숴놓고 흥분했냐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저딴 흉기를 보고 흥분할 미친놈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극히 소수에 달하겠지만 우선 자신은 아니다.
이 모든 일이 대략 두 시간 만에 일어난 덕분에 레시는 평소에도 잘 돌아가지 않던 머리가 완전히 깡통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아빠는 지금 꽤 흥분되는데…”
그러면서 커다랗고 마디가 불거진 손으로 해괴망측한 좆을 슥,슥 부드럽게 문지른다. 균일하게 솟아 오른 가시 부분이 손에 따라 누웠다가 일어났다가를 반복했다. 심지어 선액이 흘러 끔찍한 가시에 번들번들한 광이 돌았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게 현실이 맞나…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수음을 한다고? 건장한 남자를 앞에 두고? 왜? 돈도 많아 보이는데 꼬이는 게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 아닌가? 왜 하필 나지? 이상한 페티시가 있는 게 분명해… 근데 그게 생각보다 범상치 않은…
“자. 아들 이제 벗을 시간이야. 아빠를 기쁘게 해야지?”
“어…?”
멍한 소리만 아주 잠깐 냈을 뿐인데,
“만세-.”
하는 부드러운 종용에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을 위로 쭉 뻗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레시는 얼간이처럼 어버버, 하다가 아주 깔끔한 나체가 되어버렸다. 극한의 상황은 오히려 머리를 백지장으로 만든다. 달동네에서 자라 배운 거라곤 기본적인 언어와 막일뿐, 보고 배운 건 별로 없지만 나름 백치는 아니라고 자부했던 순간들이 모래처럼 흩날렸다.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옷이나 벗겨졌으니 말이다.
피에타의 눈이 레시의 나신을 음미하듯 천천히 훑는다. 각 잡힌 어깨, 라인이 잘 잡힌 쇄골, 탄탄하고 봉긋한 가슴, 그 위로 솟아있는 통통한 유륜과 유두는 참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두툼한 가슴 밑에는 군살 하나 없는 복직근이 잘 짜여있었고, 흉통에 비해 얇은 허리와 이어지는 골반 라인은 자신이 지금껏 봐온 이들 중 가장 완벽했다. 탄탄한 허벅지와 적당한 근육이 붙어있는 종아리가 쭉 뻗어 기다랗다. 정말이지, 당장에 엎어놓고 엉덩이는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몸선이었다.
피에타는 자신도 모르게 검붉은 혀를 내어 입술을 쓸었다.
“왜, 그렇게 보는데… 사내새끼 몸 처음 봐…?”
희열로 가득 찬 은회색 빛 눈은 레시의 몸을 경직시켰다. 아무리 봐도 정황상 자신은 잡아먹히는 게 맞다. 물론 다른 의미에서의…
한참 몸만 내려다보던 피에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으로 침대에 기어오르니 폭신한 매트리스가 푹,푹 꺼진다. 스멀스멀 기어 오는 뱀 같은 치를 보던 레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대로 한 입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피에타가 레시의 허벅다리를 벌리고 사이를 파고들었다. 자연스럽게 벌어진 다리 사이로 축 늘어져 있는 좆은, 흉악한 상대방의 좆에 비해 매가리가 없다.
자신보다 한참 아래의 것을 깔보고 찍어누르는 살벌한 기에 질린 레시가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생존 본능에 몸을 이리저리 뒤튼다. 그래봤자 이 미친 커다란 놈 앞에서는 지렁이가 꿈틀대는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곧 커다란 손이 차분히 내려와 목덜미를 쥐었다. 절대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나 어쩐지 목이 졸리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베고 있는 베개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좆기둥을 타고 흐른 선액이 음낭에 맺혀 있다가 툭, 툭 레시의 고간 위로 떨어졌다.
뜨뜻하고 점성이 짙은 애액이 떨어지자, 몸이 흠칫 흠칫 떨렸다.
목덜미를 한 번 잡아본 손이 느릿하게 살결을 쓸고 내려와 오른쪽 가슴 위로 덮어졌다. 힘을 주면, 손안에 알맞게 차오르는 살덩이의 느낌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금 더 힘을 주자 중지와 약지 사이로 유두가 도톰하게 솟아올랐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큭, 신음을 뱉은 레시가 베개를 쥐고 있던 두 손을 피에타의 건장한 팔목으로 옮겨잡았다. 뜨거운 체온과 여기저기 불거진 핏줄, 단단한 근육이 손바닥으로 생경히 전달된다.
귀엽다는 양 레시의 두 손을 훑은 그가 힘을 주어 가슴을 주물 거렸다. 긴장해 딱딱하게 뭉쳐있던 근육이 억지로 벌어지고 늘어난다. 타인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 깨끗한 가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손을 바들바들 떠는 레시가 고개를 휘저었다.
“아,으윽! 뭐해! 아 씨발! 하지 마! 아파! 씹, 아! 가슴 뭉개진다고! 개새끼야!”
뚝, 손길이 멈췄다. 한참을 쥐고 누르던 감각이 사라지고 나서도 통증의 잔여감은 계속되었다. 아랫입술을 콱 깨물고 버티던 레시가 그제야 크게 숨을 내쉬다 문득 눈을 치켜떠 피에타를 바라보았다. 은회색 빛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져있었다. 어둠 속에서 피식자를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변화였다. 그가 느른하게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중지와 약지에 힘을 주어 유두를 꾸욱, 쥐어 압박한다.
“하윽, 아!”
유선이 무참히 짓눌리는 아릿함에 레시의 허리가 크게 뒤틀렸다.
“역시 처음부터 가슴으로 느끼는 건 어려운가 보네.”
“뭐? 무슨… 씹, 아윽!”
“아들 입에 걸레 물었어?”
“욕이 안 나오게 생겼냐고! 미친 아빠새…!!”
“그래도 꼬박꼬박 아빠라고 부르는구나. 그 점은 칭찬해 줄게.”
“그딴 칭찬 필요없,윽 허,윽! 아아!”
레시의 말허리가 비명에 의해 잘렸다. 피에타의 상체가 숙여지고 촉촉한 입술이 솟아오른 유두를 머금은 것이다. 말캉하고 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쏙, 들어간 유두가 흡입되어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으, 으! 하지, 하지 마!”
입속에 들어찬 유륜과 유두를 흡입과 동시에 까슬한 혀로 꾹꾹 짓눌러온다. 거친 융기에 쓸린 유두가 퉁퉁 붓고 불어 크기를 키워나갔다. 이제는 팔목에서 머리로 옮겨간 손이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발악했지만 그럴수록 유두를 빨아당기는 힘만 거세질 뿐이다.
“하으, 아! 이러다 젖꼭지 뽑히겠네!”
사내새끼 젖이 맛있냐?!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인데, 딱딱한 치아가 유두를 콱 깨물었다. 순간 눈앞에 별이 튀는 느낌을 받은 레시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악, 으! 이상,해! 하지 마!”
“흐음….”
부드러운 것보다 거친 쪽이 성감을 자극하는 건가…
물건이네 이 판다 새끼.
옅게 입꼬리를 말아올린 피에타가 지체 없이 왼쪽 가슴을 주무르며 오른쪽 유두를 자근자근 깨물었다. 레시의 비명 섞인 신음이 여과 없이 터져 나왔다.
부어오른 유두가 거칠게 씹힐 때마다 허리께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르르, 눈앞에 섬광이 번쩍였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묘한 쾌감으로 인해 힘없이 늘어져있던 성기가 조금씩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저릿저릿 발씬거리며 지잉, 울린다. 눈가에 그렁그렁 달려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한참을 집요하게 오른쪽 유두를 씹어대고, 크게 머금어 울혈 자국을 만들어낸 피에타가 드디어 떨어져 나왔다. 끈덕진 타액이 유두 끝에서 길게 이어져 입술에 닿아있었다.
혀를 내어 실을 끊어내듯 할짝이자 아슬아슬하게 이어져있던 타액이 톡, 끊긴다. 그가 퉁퉁 부어오른 가슴을 보며 히죽였다.
“가슴이 짝짝이네…”
씨발 장난하나! 지고 물고 빨아서 붓게 해놓고!
비대해진 오른쪽 유륜과 유두와는 다르게 왼쪽 가슴은 손자국만 옅게 남아있을 뿐 그대로였다. 유륜 전체를 감싸는 잇자국이 퍽 마음에 드는 얼굴이다. 발발 떨리며 조여 무는 허벅다리가 기분 좋아 다시금 고개를 숙여 가슴을 크게 베어 물었다.
“흐앗!”
그러면서 물 흐르듯 내려간 오른손이, 레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구멍 근처를 배회했다. 가슴을 혼이 나갈 정도로 빨리느라 아래쪽의 느낌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하다. 꽉 다물린 구멍을 중지로 후비려던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쉽지 않겠는데.’
성깔머리처럼 빡빡하네. 쉽게 침입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꽉 다물린 구멍을 몇 번 더 더듬거린 그가 손을 빼내와 비명을 내지르는 레시의 입속으로 욱여넣었다. 무방비하게 벌어져 새된 신음을 뱉던 입이 손가락 세 개로 빈틈없이 틀어막혔다.
입이 작아서 펠라라도 시키면 찢어지겠군.
“욱,윽!”
“빨아. 다치기 싫으면. 정성스레.”
타액이 잘 분비될 수 있도록 최대한 목젖 쪽으로 깊숙이 넣어주자, 토기와 함께 끈적한 침이 혀 밑에 고인다. 추삽질을 하듯 손가락 세 개를 쑤시던 그가 골고루 타액을 묻히려 혀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혀 밑의 기다란 세로 선을 손톱으로 주욱 긁자, 침샘에서 침이 픽 튀어나온다.
“후으윽!”
혀 밑은 혀의 윗면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부분이다. 미끄덩한 그곳을 손톱으로 간질이고, 꾹꾹 눌러 자극해 주면 가득 고인 침들이 손가락을 적시다 못해 입가 옆으로 질질 새었다.
레시의 얼굴이 틈 없이 붉어졌다. 선홍빛 물이 든 귀 끝과 곱아드는 발가락은 그의 몸이 얼마나 달았는지 보여준다.
‘역시 거친 쪽을 더 잘 느끼는군.’
레시, 본인도 모르는 성향을 파악한 피에타가 지체 없이 손가락으로 혀 밑을 푹푹 쑤셨다. 레시의 허리가 파르르 떨리고 허벅지가 피에타의 허리를 꾸욱 조여온다. 혀를 널찍하게 펼쳐 유륜 위를 문지르던 그가 스르륵 입에서 손가락을 꺼내자 쿨럭,쿨럭! 기침소리가 들리고 씨근덕거리는 흉통이 크게 호흡을 하느라 부풀었다가 줄어든다.
사고 회로가 혼망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고, 무슨 일을 당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흥분감이 서서히 몰려온다. 가슴 쪽에 흐르는 전류가 찌릿하게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어지럽게 흩트려놓았다.
“흐에……”
잔뜩 유린당한 혀가 벌어진 입술 틈으로 힘없이 삐져나온다. 잔뜩 유린 당한 혀 밑이 욱신욱신거렸다. 뱀처럼 내려간 손길은 다시금 구멍을 찾아들었다. 처음보다 긴장이 풀린 덕택에 빡빡함은 덜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가 침입하기에는 턱없이 좁다. 피에타는 지근지근 물던 유두를 아플 정도로 세게 빨아올리며 중지로 구멍 안을 파고들었다.
“흐윽!!”
“하아…”
오늘 안에 내 자지 넣을 수 있을까. 아까부터 눈앞의 구멍을 두고 모자란 놈마냥 침을 뚝뚝 흘려대는데.
귀두 구멍에 고인 선액은 끊임없이 레시의 아랫배와 고간 위로 떨어져 살갗을 서서히 적셔간다.
“빼! 아파! 우윽, 아…”
“이렇게 해야 안 다친단다. 힘 좀 풀어보렴.”
“씨이바알… 아프다고…”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욕뿐이었다. 자신의 하찮은 어휘력을 통탄하며 레시는 턱 근육이 불거질 정도로 세게 이를 악물었다. 처음 겪는 고통에 목이 멘다.
레시의 애원은 오히려 기폭제가 되었다. 은회색 빛 눈동자에 스친 희열을 보지 못하고, 눈만 질끈 감았다. 손톱만큼 파고든 중지를 힘 있게 넣으니 점막이 끈끈이처럼 달라붙어 물어 온다.
“빼라고! 아악, 흐, 으윽….”
“하아… 우는소리 더 내봐. 응?”
‘싫어 이 변태 새끼야!’ 속으로 냅다 욕을 던진 레시는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게 서러운 울음밖에 없어 겨우 고개를 저어 부정을 표했다.
“싫어? 왜 싫어?”
“흐악, 구,구멍을 왜 만져!”
“구멍? 무슨 소리니. 이건 보지야.”
흐익. 지금 뭐라고…? 미, 미, 미친 거 아니야? 저질스러운 언사에 레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파악하기도 전에 중지가 쑤욱 안쪽까지 단번에 꿰뚫었다.
“허윽…!”
“아… 좁아. 아빠 중지가 아프대.”
“그니까, 빼! 아윽, 흑…”
“으응, 처음이구나 우리 아들.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아빠 자지로 우리 아들 보지에 길 터줄게. 아빠 자지 모양대로….”
“그딴말 하지,윽! 마!”
수치스러워 씨발 씨발. 개 씨바알…
엄연한 수컷 성체인 자신에게 보,보지라니.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수치스럽고 치욕적이었다. 혈압이 오른 건지 가슴이 두근두근 두근 세차게 뛰어댔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시야까지 차단하자, 모순적으로 몸에 가해지는 감각에 더 집중되었다. 유두를 빠는 입술이 더욱 생경하게 느껴져 결국 귀를 막았던 손을 떼고 눈을 번쩍 떴다.
“젠장!”
이러나저러나 이상한 느낌인 건 똑같아!
“흐윽, 아아…!”
굵은 중지가 구부러져 내벽을 살살 긁는다. 뾰족한 마디가 한쪽 벽을 누르고 딱딱한 손톱이 여린 점막을 긁어내리자 아랫배에 힘이 바짝 들었다. 선명해진 복직근이 꿈틀거린다. 한참을 안을 헤집던 중지의 끝이 전립선을 스쳤다. 흥분해서 볼록해진 곳은 살짝만 스쳐도 알 수 있을 만큼 부풀어 있었다.
“아으윽! 하윽? 으읏…! 뭐,뭐…”
다시금 눈앞에 별이 번쩍 튀었다. 안쪽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손길에 허리가 절로 뒤틀렸다. 레시의 전립선을 찾은 그가 말없이 손가락을 빼내었다.
“우리 아들 좋아하는 곳 찾았으니까 손가락 말고 다정하고 따뜻한 아빠 자지로 보내줄게.”
“후으, 으으…”
곧 흉악한 거대 자지의 귀두가 구멍에 닿았다. 화끈거리는 구멍을 질척한 선액으로 물들이고 위아래로 비벼대니 비음 섞인 신음이 흐른다.
“흐앗, 아! 서,설마 넣으려는…”
“으응, 넣을 거야.”
꾸드득, 소리와 함께 귀두가 좁디좁은 구멍을 파고들었다. 레시의 고개가 위로 꺾였다. 괴팍하고 거친 격통이 찾아왔다. 이제껏 침입한 적 없던 곳에 커다란 것이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온다. 컥, 삼키지 못한 침이 파드득 사방으로 튀었다.
“악, 으! 으윽 씹, 씨바알 악 존나 아파아! 좀! 제발! 아빠! 아파! 응? 아빠!”
“보지는 좋다고 받아먹는데? 하으… 엄청 조인다, 아들… 아빠 좆물이 그렇게 고팠어? 음란하네…”
자지 끊어먹겠어. 하하, 웃는 소리가 이처럼 사악했던 적이 없다. 뜨거워서 타버릴 것 같은 구멍이 침입한 좆을 힘 있게 밀어내려 수축 이완을 반복한다. 바들바들 처연하게 떨리는 허벅지의 살결이 피에타의 옆구리에 닿았다.
피에타는 잠시간 벌벌 떠는 레시를 내려다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채신머리 없이 넣자마자 사정감이 몰려왔다. 눈가를 벌겋게 물들이고 우는 모습은 분출 욕구를 상승시켰다.
결국 얼굴을 보고 할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선 그가 구멍을 파고든 귀두를 빼내어 레시의 몸을 뒤집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봉긋하고 작은 엉덩이가 가지런히 좆 앞에 놓였다. 커다란 좆이 엉덩이 골 사이에 안착되었다. 아직까지도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아프다는 말만 반복하는 목소리가 베개에 파묻혀 반쯤 먹혀들어갔다.
“하아 씨발…”
이렇게 참을성 없지는 않았는데.
피에타가 우느라 들썩이는 허리 밑으로 팔을 넣어 들어 올렸다. 그에 따라 엉덩이와 하체만 불쑥 솟아오른다. 무너질 것 같은 아랫배를 감싸 안고 다시 귀두를 구멍에 끼워 맞추었다.
“흐아아아악!”
뻐억, 강렬한 마찰 소리와 함께 구멍이 한계치까지 벌려지며 좆을 집어삼켰다. 최대한 많이 집어넣어 보았지만 손가락 한마디쯤이 남았다.
‘뭐 상관없나.’
지금도 싸버릴 것 같으니까…
흥분감에 열이 오른 얼굴로 잘빠진 등 근육을 눈으로 음미하던 그가 열락 어린 깊은숨을 내뱉었다. 잔뜩 돋은 가시가 움찔거리며 구멍 안을 짓눌렀다.
“흐으윽, 아윽! 아, 아아으…. 우으……. 끄으….”
안을 강하게 파고든 커다란 좆덩이가 아랫배를 빈틈없이 꽈아악 채웠다. 숨을 쉬기 버거울 정도로 견디기 힘든 묵직함과 두께였다. 게다가 좆에 잔뜩 돋아있던 가시는, 여린 점막을 헤치고 누르며 전립선까지 자극하는 통에 고통 어린 쾌락을 선사했다.
고개가 뒤로 꺾이고 눈동자가 위로 뒤집어졌다. 턱을 흠뻑 적신 침이 또다시 힘없이 흘러내렸다. 침대 시트를 움켜쥔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솟았다. 강한 고통과 뒤섞인 쾌락에 백치처럼 단어를 만들어 내지 못 하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만 쌔액- 쌕 뱉는다.
한동안 자신의 가시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 주던 피에타가 슬슬 허리짓을 시작했다. 즈즈즉, 잘 붙은 점막이 떨어지는 야살스러운 소리와 함께 허리께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흐악! 앙,아윽! 아으, 아, 하, 읏, 으윽!”
“아빠 자지 아프다… 근데 좋아… 하아…”
“아파아…! 아파요…! 으,악…!”
“후으… 하아… 큿, 씹… 보지는 맛있다고 잘 먹,는데? 후…”
본격적으로 허리를 흔들면 쩍,쩍 애액으로 진탕 된 살과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침실을 가득 울렸다. 레시의 시야가 허리짓에 따라 어지럽게 흔들렸다.
“우윽, 악, 으, 우응! 아아! 아파아! 아파! 흐엉, 아윽!”
“하아… 윽… 조여… 아빠 좆물 터질 것 같아… 아들…”
끊임없이 전립선을 눌러대는 좆기둥의 가시로 인해 폭발적인 쾌락이 일었다. 전신을 휘감는 번쩍이는 흥분감에 시야가 흐릿해진다. 허벅지가 벌벌 떨리고, 아랫배에 힘이 바짝 들어가 구멍이 더 좁아들었다. 그러면서 더욱 강하게 자극되는 전립선 덕분에 더 큰 쾌락이 찾아왔다.
“흐악! 시,시러! 아! 이상, 이상해! 아으윽! 아읏!”
“아, 못 참겠네. 씨발…”
가시가 돋은 자지가 내벽을 마구잡이로 버억,벅 긁어댔다. 여린 점막을 뭉툭한 가시 끝이 강하게 긁으면 짜르르, 전류가 통하는 가벼운 쾌락과 함께 말 못 할 고통도 잇따랐다. 덕분에 내장이 찢기는 기묘한 통각에 레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물만 흘려댔다. 안쪽을 짓이기고 쑤시고, 헤집고, 파헤쳤다. 그 모든 것들은 처음 맞아보는 새로운 느낌들이라 레시는 이 기분을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커다란 거구의 짐승에게 눌려 비명 같은 신음을 지르고, 얼간이처럼 침을 흘리고, 울보처럼 엉엉 울었다.
우는 소리에 집중하는 피에타 또한 추삽질을 얼마 하지 않았음에도 참을 수 없는 사정감이 몰려왔다.
기어코 쾌락과 고통에서 도망가려 버둥거리는 레시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대로 무게로 짓눌렀다. 떠있던 허리가 가라앉으며 침대에 바짝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폭신한 침대 시트에 바짝 선 좆이 비벼지고, 아랫배의 판판한 가죽이 피에타의 좆형태로 불룩해져 마구 짓눌렸다. 레시가 캬악 거리며 하얀 시트를 움켜쥐었다.
“하으윽, 우윽, 아악, 아! 으응! 숨, 막혀! 아! 너,너무 크다고! 아파! 싫어! 흐어엉!”
“쉬이… 괜찮아…”
그가 집요하게 엉덩이에 고간을 비비적거렸다. 어떻게든 더 깊숙이 들어가려는 본능적인 몸짓이었으나, 가장 안쪽을 파고들어간 귀두가 얇은 벽에 막혀 미수에 그쳤다. 아쉽긴 하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만족해야겠군. 이윽고 부풀어 오르는 귀두에 레시가 끄으윽, 고개를 꺾으며 죽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수컷이 번식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하는 본능적인 행위였다.
위험을 감지한 레시가 펑펑 눈물을 쏟았다. 직감적으로 피에타의 좆이 노팅을 할 걸 알아차렸다.
“허윽, 무,윽! 아아! 나, 나 암컷, 암컷 아니야!”
“으응 쉬이, 괜찮아. 괜찮아…”
“아악! 아프, 아프다고! 아파아! 나 수컷, 수컷이란 말야! 흐어어엉!”
씨발 진짜 존나 귀엽네. 판다 새끼 주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먹고 싶게…
피에타가 쾌락의 고양감을 온전히 느끼며 노팅을 시도했다. 상대방이 움직이지 못하게 모로 누워있던 가시가 세워지고 귀두는 평소보다 두 배로 부풀었다. 아랫배를 파헤친 끔찍한 감각에 레시가 우는소리를 내며 하반신을 경련했다. 머릿속의 모든 것들이 휘발되고 오직 아파,아파,싫어,아파 만 반복적으로 되새겨졌다.
고양잇과 수인이 노팅 중일 때는 위험 요소가 많다. 가시에 점막이 다칠 위험도 있고, 여차하면 피를 보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피에타가 으르렁거리며 귓가에 낮게 읊조렸다.
“움직이면 보지 찢어져. 가만히 있어.”
“아윽, 안 움직,여도 으아, 찢어질, 것 같,으, 아으윽! 망가진,다고! 흐악!”
“그리고 아가야. 뭘 모르나 본데, 수컷들도 희박한 확률로 임신할 수 있단다. 아빠 좆물로 아기 품어줄래?”
“나,는 임신 같은 거 안 해! 안 할 거야! 하으윽!”
“그걸 우리 아가가 왜 정할까? 네 몸은 내 소유인데.”
크릉, 위협적인 목 긁는 소리와 함께 움직임을 통제하려 뒷목을 콱 문다. 순간 레시의 동공이 작아지고 버둥대던 몸짓이 경직되었다. 레시가 다칠 위험을 감소하고자 하는 행위였다.
“하…, 흐윽.”
좆을 담은 구멍이 빠듯해 곧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움칠거리던 귀두 끝에서 폭포수 같은 정액이 터져 나왔다. 농축되어 진한 액체가 뜨거워진 점막을 마구 두드리며 아랫배를 채워갔다.
“흐아악! 아아!”
“후우…”
사실 노팅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누군가와 섹스를 했어도 번식을 위한 행동은 취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잠시의 쾌락과 유흥을 즐길뿐인 가벼운 사이에 생명체를 심는다는 것은 그의 냉철한 생에 있어서 절대로 없을 일이니까. 그러나 이 작고 까칠한 레서 판다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배게 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드글거렸다. 더 거칠게 몰아붙이고, 울리고, 절정에 빠트려 할딱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제 아이를 배게 하고, 산달이 차 배가 커지고, 무거운 배를 안고 뒤뚱뒤뚱 걸어다닐 모습을 보고 싶어서 소위 말해 눈깔이 돌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이를 악문 그의 남자다운 턱이 근육으로 불거졌다. 당장에 거칠게 허리짓을 해 안쪽을 마구 범하고 싶은 욕구가 기어오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인내하며 땀에 젖은 레시의 귓바퀴를 츄웁, 빨다가 뜨겁고 마른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씹, 존나 맛있다. 우리 아들 보지, 응? 어때. 아빠 자지 맛있어?”
“흐윽, 아프다고! 아파아! 미친,미친놈… 아윽! 아,들이랑 이딴 짓 흐으, 하는 아,빠가 어디있,어…!”
“왜 없어? 여기 있잖니.”
피에타가 매혹적이게 웃으며 애정 어린 버드 키스를 귓바퀴에 남겼다.
“잘 지내보자.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