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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154화 (154/181)

〈 154화 〉 8살 (1)

* * *

“아서, 여기서 뭐해? 아빠가 찾으시는데.”

“...신경 꺼. 알아서 할 테니까.”

“누나라고 해, 내가 너보다 3분이나 일찍 태어났잖아.”

로벨리아의 말에 아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훈련용 목검을 만지작거리다가, 이윽고 찰랑거리는 은발을 뒤로 넘기며 이내 고개를 돌렸다.

눈에 보이는 건 자신보다 아주 약간 키가 큰 여자아이. 도대체 쌍둥이면서 꼬박꼬박 누나라 부르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을 쥔 아서의 손이 꿈틀거리자, 로벨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도대체 누구 성격을 닮은 건지, 좋게 타일러도 짜증을 내는 건 엄마와 완전히 다른 점이었다.

생긴 건 엄마와 똑같이 생겼는데, 도대체 왜 성격은 저런 건지.

“넌 도대체 누굴 닮은 거야. 난 완전 아빠 닮았잖아. 봐봐, 크리스 할아버지도 나만 보면 아빠 닮았다고 한다구.”

“무슨 상관이야. 그럼 엄마 닮은 거겠지. 외할아버지도 그랬잖아, 엄마 어렸을 때랑 닮았다고.”

“엄마는 성격 좋아. 너처럼 매사에 짜증내고 툴툴거리지 않는다고. 게다가 동화책에서도 엄마는 그냥 차갑다고만 나왔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서도 의아해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본 엄마의 모습은 늘 나긋나긋한 편이었는데, 자신이 엄마를 닮았다니.

그런 말을 들어 조금 얌전하게 행동하려 노력도 해봤지만, 아서는 제 천성이 얌전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누나처럼 책을 읽는 것보다는 검을 쥐는 것이 훨씬 더 재밌었다.

애초에 아빠도 기사가 아니던가. 아서의 꿈은, 나중에 아빠처럼 커다란 용을 잡는 것이었다.

“너 또 용 잡는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니야.”

“엄마가 용 얘기만 나오면 가슴 부여잡는 거 알고 있지? 나는 네 누나로써 너를 지킬 의무가 있어. 그리고 너 나보다 검 못 쓰잖아.”

“누가 그래! 내가 너보다 잘해!”

아서의 외침에 로벨리아는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로벨리아는 영특한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다는 얘기를 들어왔을 만큼, 로벨리아는 자신이 타고난 무언가에 대해 아주 악하고 있었다.

아서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 성격과 열정이라면, 로벨리아는 그 재능을 물려받았다.

“뭐, 꼬우면 나랑 한 판 하던가. 카일을 심판으로 삼아서 말이야.”

“...됐어, 나 누나랑 안 놀아.”

“아빠가 너 불렀다니까, 빨리 가자.”

로벨리아의 손에 잡혀 끌려간 아서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조금 더 밖에서 놀고 싶었는데, 허나 아빠의 말을 안 들을 수는 없었으니.

이내 소매를 잡은 손을 떼어내곤 성큼성큼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

수많은 기사들이 도열해있는 곳은 연무장이었다. 지시에 따라 동작을 맞추고, 또한 진열을 다듬고 나아가는 것을 연습하는 곳.

기사에 관심이 많은 아서는 이곳에 올 때마다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기사가 되고 싶다, 정확히는 아빠 같은 기사가 되고 싶다­

아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로벨리아 또한 잘 알고 있는 터라,

아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사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진지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허나 검을 휘두르는 건 그다지 재미가 없지 않은가.

잠시 뺨을 부풀린 로벨리아는, 이윽고 저 멀리 서있는 한 사람을 보곤 폴짝 뛰었다.

“아빠! 여기!”

로벨리아는 그 소리를 듣고 다가오는 한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자신과 똑같은 금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이 세상의 단 하나 있는 아빠.

로벨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아빠를 좋아했다. 조금 차가운 인상의 엄마보다는, 아무래도 온화한 인상을 지닌 아빠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로벨리아, 아서는?”

“제 뒤에 있어요. 아마 기사 아저씨들 구경하고 있을 걸요.”

“아서는 기사를 좋아하는 것 같구나. 그리 좋은 직업은 아닌데 말이야.”

에반이 웃자, 로벨리아는 에반의 얼굴을 보곤 작게 탄성을 흘렸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보았는데, 그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다른 남자 아이들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아빠 때문인 건 아닐까.

데구르르 굴러가던 눈동자는 이윽고 머리에 엎어진 손에 툭, 하고 멈췄다.

자신을 멍하니 보는 로벨리아의 시선에 에반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빠 노릇을 하는 것도 어언 7년째지만, 그래도 나날이 커가는 딸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는 매일 같이 하는 고민 중 하나였다.

나중에 사춘기가 오면 어떡하나, 하고 고민 할 때도 있고.

지금이야 자신을 잘 따르는 로벨리아였지만, 나중에 이 사이가 나빠질까 항상 걱정할 따름이었다.

“나 여기 있는데, 무슨 생각해요?”

“흠, 오늘 아서를 데리고 오라 한 이유? 너한테도 할 말이 있고.”

“흐으으음,,,!”

“왜 그런 소리를 내. 애늙은이 같잖아."

"그래서, 싫어요?“

그 말에 에반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로벨리아는 에반을 완전히 쏙 빼닮아있었다.

이렇게 로벨리아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마다, 에반은 꼭 거울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제 딸이라지만, 이건 너무 닮은 것이 아닌가?

아이린이 이런 걸 들으면 뭐라 할지, 로벨리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은 에반은 이윽고 저 멀리 있는 아서를 불러들였다.

“아서, 이제 이리로 와.”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아서는 에반의 말을 꽤 잘 듣는 편이었다. 자신의 우상이자 존경하는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평소와는 달리 기사 제복을 입고 있는 에반의 모습에, 아서는 조금 상기된 표정을 지은 채 에반을 바라보았다.

‘설마, 나를 기사 견습생으로 삼으려는 건가?’

터무니 없는 생각에 가까웠고, 당연히 에반이 두 사람을 부른 이유란 그것과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이번에 태자 전하가 공작저를 들리셨는데, 내가 들은 얘기가 하나 있거든. 음, 아서. 나한테 할 말 없니?”

“...카일이 먼저 잘못했어요.”

맙소사, 에반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카이셀의 아들이 아서와 싸웠다고 할 때만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물론 카이셀은 그 사실에 대해 웃어 넘겼다. 애들이 싸우면서 크는 게 아니겠냐고,

어차피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고 하긴 했지만...

그 말을 하곤 스칼렛에게 혼났다고 했던가. 사실, 에반은 카이셀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었다.

허나 그냥 무시하기엔, 황태자의 아들이었다. 자주 보는 사이였고, 최소한 서로 불편한 일은 없어야 했으니까.

에반이 묻자, 아서는 조심스럽게 로벨리아를 바라보았다.

‘야, 네가 설명해봐. 나 잘못한 거 없다고.’

‘아서 네가 먼저 친 거 맞잖아.’

‘아니, 나 혼나는 거 지켜만 볼 거야? 누나라고 부를게. 진짜로.’

정말 혼날까? 순간 그런 의문이 들긴 했지만, 로벨리아는 그렇다고 아서가 혼나는 걸 보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동생인데, 누나인 자신이 챙겨주지 않으면 누가 돌봐줄까. 잠시 에반을 쳐다보던 로벨리아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애교를 부리는 건 영 별로인데, 나중에 이 대가를 톡톡히 받겠다고 다짐한 로벨리아가 에반의 팔에 가볍게 매달렸다.

“아빠, 아서는 잘못 한 거 하~나도 없어요. 내가 다 봤어.”

“...그, 그래?”

에반은 헤벌쭉해지는 입꼬리를 차마 숨기지 못했다. 남들보다 어른스러운 편인 로벨리아였으니,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 일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적었던 탓이었다.

그 자그마한 로벨리아의 팔에 이끌린 에반의 몸이 땅을 향해 내려앉았다.

로벨리아가 얼굴을 뺨에 비벼대자, 에반은 이내 로벨리아를 끌어안은 채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냥 카일 개가 나 귀찮게 해서 그런 거예요. 아서는 잘못 없어.”

“카일이 너를 어떻게 귀찮게 했는데?”

이걸 말해야 할까, 로벨리아는 에반의 팔에 매달린 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파장이 있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자신들 보다 한살 어린 아이이긴 해도,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때는 꽤 진지한 표정이었으니까.

로벨리아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아서는 에반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카일 걔가 누나한테 고백했어요. 좋아한다면서, 애초에 난 때린 것도 아니라니까요. 장난치지 말라고 꿀밤 하나 때린 게 끝이란 말이에요.”

어쩌면 고작해야 7살짜리의 치기어린 고백이라 할 수도 있었다.

허나 카일이 누구의 아들이던가, 한 때 여자 여럿과 잤다는 소문이 퍼져 황제가 골머리를 싸도록 만든, 그 카이셀의 아들이지 않은가.

고백, 고백이라니. 여전히 로벨리아를 끌어안고 있는 에반이었지만, 그 표정은 점차 싸늘해져가고 있었다.

순간 숨막힐 것만 같은 분위기에 로벨리아가 숨을 파, 하고 토해냈지만. 에반은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아서에게 입을 열었다.

“...그 싸운 거, 혹시 아서 네가 이겼니?”

“나는 태어나서 져본 적이 없어요.”

누나 빼고, 소심하게 덧붙인 아서였지만. 에반은 그 말에 흡족하게 미소지었다.

자신의 자식이 싸움에서 진다니,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카이셀은 황태자이기 이전에 자신의 친우였다.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알고 지내온, 사실 신분의 고하 없이 지내오던 것이 두 사람이었기에.

에반은 카이셀에게 무어라 말을 전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이전에 아이린에게 어떻게 이 일을 설명해야 할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카일도 괜찮지만, 로벨리아 너는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어.”

“에이, 그건 좀.”

“아니야, 이건 네 엄마도 항상 얘기하고 있단다. 우리 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렇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연무장에 모여있던 기사들은 에반의 표정에 흠칫 놀라며 그렇게 소리쳤다.

자신을 닮아 누구보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 로벨리아였다.

에반은 자신이 아빠여서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로벨리아만큼 아름다운 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헌데 자신의 딸에게 고백하다니.

“엄마는 지금 뭐하고 있니?”

“음, 아마도 로제랑 있을 걸요. 지금 이유식 먹이고 계실 거에요.”

로제, 둘째 딸의 이름을 떠올린 에반이 로벨리아와 아서의 손을 잡았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아마 부부간의 토론으로 진지하게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공작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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