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철혈이 그대를 거부한다 (3)
* * *
“폐하께서 그대를 보자고 할 때까진 자유롭게 있어도 괜찮네. 나름 바쁘신 분이라, 아마도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자네를 보자고 할 테니까.”
그 말에 아이린은 귀를 쫑긋 세웠다.
황제와 바로 만나지 않아도 된다니, 그렇다면 에반과 조금 돌아다닐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닌가.
아이린은 마시던 레몬 티를 내려놓은 채 에반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을 때, 옅게 미소 짓는 에반의 표정을 보고 샐쭉하게 미소지었다.
에반 또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아이린의 표정이 편해지자 카이셀은 에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마 며칠간은 여기서 머물러야 할 걸세. 그동안 황궁 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거야 자유지만, 묵을 곳을 주는 것은 내 소관이지.”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아이린의 말에 카이셀은 슬쩍 웃으려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에반의 눈빛에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너무하지 않은가? 나름 그래도 생사가 오가는 곳에서 함께 싸운 전우인데...
잠시 에반을 흘겨본 카이셀은 한숨을 푹 내쉬며 시선을 거두었다.
남녀가 쌍으로 제게 질투를 해대니, 이거야 이전처럼 가깝게 대하기도 힘들지 않겠는가.
에반 스스로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 또한 만만치 않게 다른 남자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저래서야 누가 저 둘에게 다가가겠는가. 두 사람을 바라보던 카이셀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사실을 알고 있나?”
“무슨 사실 말입니까?”
“자네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지도 모르겠군. 우스운 이야기야.”
책이라니, 잠시 아이린과 눈을 마주친 에반은 헛웃음을 흘렸다.
책이 나올 만큼 소문이 퍼졌단 말인가. 시간이 조금 지나 소문이 퍼졌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책이라니.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 소설을 읽다가 들어온 것인 만큼, 에반에게는 그 말이 어쩐지 새롭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동화책이라도 나오는 겁니까?”
“그렇겠지. 결말이야 뭐, 똑같지 않겠는가.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런 결말.”
에반은 카이셀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동화책 같은 결말이라, 어쩌면 그게 제일 힘들지 않을까.
동심이 남아있던 어릴 때에만 하더라도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살다보니 그런 것이 제일 힘들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남들처럼, 사람처럼, 동화처럼. 현실은 그리 이상적이지 않았고,
그렇게 끝나는 것을 마냥 기다리기엔...아직 할 게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군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그 말에 아이린은 에반을 바라보았다.
아이린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말에서, ‘함께’ 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함께 있긴 하지만, 나중에도 함께 있을 수 있을까.
만약 도중에 마음이 틀어져 그대로 끝난다면...상상만 하더라도 끔찍한 일이었기에,
아이린은 조용히 뺨을 매만지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이린은 결혼을 하기 전까진 마음을 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해야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물론 기정 사실을 만든다면 에반이 싫어도 결혼하게 되겠지만,
임신이 고작 하룻밤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던가. 여전히 텁텁한 입맛을 레몬티로 달래던 아이린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조르는 것은 부끄러웠으니,
에반을 힐끔 쳐다보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눈을 데구르르 굴려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에반의 머릿속에는 온통 앞에 있을 일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제 곧 있으면 등장할 스칼렛이 황태자와 엮이는 것은 그렇다 쳐도, 과연 원작대로 그녀가 나타날지도 의문이었다.
거기에 곧이어 처리해야할 하탄, 거기에 절멸의 잔존 세력.
그들이 얘기하는 붉은 달까지...허나 여기서 생각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터라,
에반은 지끈 거리는 머리를 한 번 꾹 누르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려는 겐가?”
“황도를 조금 둘러보려 합니다. 아이린과 함께요.”
아이린이라, 이제는 대놓고 이름으로 부르는 에반의 모습에 카이셀은 머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아서 하게. 두 사람이 뭘 하든, 이제는 두 사람의 자유 아닌가? 나는 그대를 위해서 묵을 곳을 마련해두지. 아마 나갔다가 돌아오면 준비되어 있을 걸세.”
“오래 나가진 않을 겁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아이린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카이셀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카이셀이 사라지고, 묘한 정적이 남아있는 방. 에반을 힐끔 쳐다본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달싹였다.
황태자 앞에서 자기를 이름으로 부를 줄이야...에반은 부끄럽지도 않은 것일까.
허나 에반은 표정은 의연할 따름이라, 아이린은 고개를 푹 숙이며 머리를 에반의 가슴팍에 들이밀었다.
툭
자연스럽게 닿는 머리에 에반은 아이린의 머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렇게 한참, 에반의 품속에서 심장 고동을 듣던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이제 놔도 돼요.”
“싫습니다.”
이렇게 안는 게 하루에 몇 번이나 된다고,
에반이 아예 아이린의 허리까지 잡아 당겨 끌어안자 아이린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에반의 등 위에 손을 올렸다.
살짝 빳빳한 셔츠의 감촉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그 너머에서 전해져오는 체온에 미소를 짓는다.
동시에 들려오는 심장의 고동소리, 다시 그 소리와 섞여 들려오는 숨소리.
단단한 근육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은 손이 닿을 때마다 갈라져 있는 곳이 만져져서,
문득 지난밤의 기억을 떠올린 아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에반을 살짝 밀쳐냈다.
그것은 에반 또한 마찬가지라, 두 사람은 뺨을 붉힌 채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약속하기라도 한 것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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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이 밖으로 나와 찾는 것은 어떠한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바로 아직 황도에 남아있을 카심 백작,
그가 아니었으면 아이린을 구하긴 커녕 그대로 죽었을 테니.
아이린 또한 에반의 얘기를 듣곤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인사를 전해야겠죠. 만약 카심 백작의 도움이 없었더라면...여기에 두 사람 다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전하께서 아직 황도에 남아있다고 말했으니, 아마 지난번과 같은 곳에 계실 겁니다.”
에반은 카심 백작에게 꽤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전에 주었던 빛의 정령은 아직까지 몸속에 그 잔재가 남아있었고,
그로 인해 마스터로 다가갈 때 꽤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마스터의 영역, 그 영역을 전개하는 데에 생각보다 빛의 정령이 지닌 지분이 컸다.
만약 그때 그가 준 것이 없었더라면. 아마 빌테인과의 싸움이 조금 더 길어졌으리라.
이전에도 들렸던 카심 백작의 거처에 찾아가자, 대문이 열리기 무섭게 카심 백작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무척이나 기쁜 듯, 미소가 만연한 얼굴을 본 아이린이 옅게 미소지었다.
“이런, 젠장. 살아있었군 그래.”
“오랜만입니다. 백작님.”
“영락없이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살아있었다니. 소문을 듣고도 내심 반신반의 하고 있었네. 이 늙은이를 용서해주게나.”
용서라니, 에반은 그런 카심 백작을 보곤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의 눈동자에 깃든 것은 영락없이 고마움뿐이라, 그런 것이 꽤 부담스럽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사실, 빛의 정령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싸움에 제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죽은 건 빌테인이 심장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카심 백작을 탓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시원한 맥주와 소세지. 단 두 개뿐이었다.
“요새 드워프들의 에일 맥주가 꽤 인기더군요. 대접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접? 말만 하게. 내 얼마든지 내줄 수 있으니까!”
껄껄 웃는 카심 백작의 미소에 에반 또한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잔을 받은 에반은, 이윽고 술잔에 따라지는 노란 빛깔의 액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빛의 정령이 아직까지 심장에 남아있더군요. 설마, 앞으로도 쭉 남아있는 겁니까?”
“심장이 터질 만큼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될 걸세. 하지만...마스터가 심장이 터질 만큼 싸울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빌테인이 죽은 지금, 남은 것이라 해봐야 잔챙이가 전부일 터인데.”
“아직 절멸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니까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
“크흐...그렇겠지. 그나저나, 두 분이 그런 사이일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입니다.”
카심 백작의 말을 들은 아이린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비어있는 술잔을 보며 자신도 마실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들려온 말이 그녀의 상념을 깨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한 아이린은 자연스럽게 에반의 손을 잡아 자신의 무릎에 놓았다.
카심 백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하자, 태연하게 웃은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에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듣자하니, 빛의 정령에 대한 것이 그대의 도움이라고요.”
“준 것은 저였지만, 결국 에반 경을 위험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저에게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위험하다뇨?”
아이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위험하게 만들다니?
에반에게 들었던 얘기는 단지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였을 뿐,
그런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듣지 못했던 것을 떠올린 아이린이 카심 백작을 바라보았다.
마시던 맥주 잔을 내려놓은 채 새하얗게 질린 그의 표정에, 아이린은 이전과는 다른 더없이 싸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설명해보세요.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잠시 뒤, 카심 백작의 설명을 모두 들은 아이린은 에반을 흘겨보았다.
심장이 찔리지 않았더라도 죽었을 거라니. 그런 것을 자신에게 얘기하지도 않고 몰래 가지고 있었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화를 내고 싶었지만...자신의 눈치를 보는 에반의 모습에 화가 사르르 녹아드는 것만 같았다.
꼭 물에 젖은 강아지와 같지 않은가. 축 처진 눈썹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아릿해서,
아이린은 결국 에반에게 화를 내지도 못한 채 그냥 손만 움켜쥘 뿐이었다.
그래도 약간의 벌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에반의 손등을 살짝 꼬집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 그런 거 나한테 숨기지 말아요.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그러면...그때는 며칠 동안 손 안 잡아줄 거니까요.”
그 말에 에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자, 아이린은 만족스럽게 훗, 하고 웃어 보였다.
카심 백작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허탈하게 웃다가, 예전에 잃었던 가족을 떠올리며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쓰디쓴 술이었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보리의 향이 입 안 가득 메워지자, 살짝 붉어진 얼굴을 매만지며 그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감사하다는 말씀 말고는 할 말이 없네. 절멸은...내 인생에서 반드시 처리하고 싶었던 원수나 다름없으니까.”
“아직 감사를 받기엔 이르지 않습니까. 절멸은 한참이고 남아있으니까요.”
“그렇다한들, 이전과는 달리 희망이 보이는 건 사실이지. 전부 그대 덕분이야.”
그리고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끔뻑인 카심 백작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라드가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 하더군. 제라드는 내 친구일세. 나처럼 가족을 절멸에게 잃은 야장 중 한 명이지.”
“...제라드 씨라면, 혹시 귀금속점을 운영하고 계시는 분입니까?”
“알고 있었나? 하기야, 북부에서 살고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만났을 수도 있겠군.”
제라드, 그 이름을 떠올린 에반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귀금속점에서 만난 그 깐깐한 장인이 설마 카심 백작과 친분이 있었을 줄이야.
그래서일까, 그때 요청한 반지의 질이 상당히 높은 것은.
여전히 새파랗게 빛을 내고 있는 사파이어 반지를 슬쩍 보다가,
이윽고 아이린과 시선을 마주치곤 반지가 있는 손을 자연스럽게 맞잡았다.
“그 반지가 혹시 그건가? 제라드가 만들어줬다는.”
“그렇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왜 이리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셨는지 알 것도 같군요.”
“...뭐, 어쩌면 이런저런 마법이 새겨져 있을 수도 있네. 자네를 알아보았다면, 그가 스스로 보답을 해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카심 백작은 커다란 오크통에 담겨진 맥주가 비워질 때까지 취하지 않았다.
한참동안 껄껄 웃으며 에반과 술을 마셨고,
올라온 취기를 마나로 지워낸 에반은 얼굴이 붉어진 카심 백작이 피곤하다며 들어갈 때까지 그의 술상대가 되어주었다.
아이린은 술을 애써 피했으니, 그런 아이린을 위해 차가운 아이스티를 만든 에반이 아이린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루하셨을 것 같습니다. 대작해줄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괜찮아요. 내가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에반도 잘 알잖아요.”
입술을 살짝 혀로 핥는 아이린의 모습에 에반은 쓰게 웃었다.
확실히, 술에 취한 아이린은 위험하긴 했다. 잠시 아이스티를 마신 아이린은,
입안에 감도는 달콤한 맛에 싱긋 웃으며 에반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 다시 황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 간단하게 카심 백작에게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곧바로 황궁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에반, 나에게 또 숨기는 건 없죠?”
“없습니다. 정말로요.”
굳이 있다고 한다면 자신이 소설 속에 빙의했다는 사실이겠지만,
이제 와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에반은 생각했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자신에게 소설 속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이미 자신은 에반 프리드였고, 이 세상은 제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에반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그 대답이 썩 마음에 들은 아이린이 그대로 에반의 팔에 팔을 끼워넣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붉어지는 뺨, 자신이 하고도 부끄러운 행동이라.
아이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에반과 발걸음 간격을 맞추는 것에 집중했다.
팔짱을 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않던가. 훅하고 불어오는 바람이 붉게 물든 귀를 툭툭 지나쳐서,
자꾸만 움찔거리는 어깨에 아이린이 침음을 삼켰다.
“...이렇게 부끄러워하실 거면, 그냥 빼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싫어요.”
잠시 에반을 힐끔 쳐다본 아이린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이런 것도 익숙해져야죠. 나중에는 항상 하고 있을 테니까요.”
“항상 하고 있을 생각입니까?”
귀엽기도 하지. 아이린의 귓볼을 살짝 쓰다듬은 에반은 팔짱을 낀 채 황궁으로 들어섰다.
경비병들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지만,
아이린은 되려 그들의 웃음에 더한 쑥스러움을 느낄 따름이었다.
"두분을 위한 방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녀들의 안내를 받아 내부로 향하자,
양 옆에 나란히 붙은 두개의 방이 있었다.
누가보더라도 꽤 호화로운 방, 그 방을 슬쩍 본 에반이 시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시죠. 이만 들어가보셔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녀들이 사라지자, 에반은 여태껏 끼고 있던 팔짱을 풀기 위해 팔을 빼내려했다.
허나 아이린이 팔에 힘을 꽉 준 채 에반을 바라보는 터라,
결국 팔을 빼지 못한 에반이 아이린을 보며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
"아이린, 이제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씻고 나올테니, 조금 뒤에 만나는 걸로 하죠."
"...그런 게 아니에요."
아이린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두 개의 방을 바라보았다.
왜 굳이 방을 나누었을까. 연인 사이라는 걸 알면 솔직히...방을 하나로 주어도 괜찮지 않은가.
팔짱을 낀 팔을 살짝 당기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에반을 바라보던 아이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 같이 잘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