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철혈이 그대를 거부한다 (2)
* * *
겨울을 코앞에 둔 황도의 분위기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로만의 수장 빌테인이 사실 절멸의 장로 중 하나였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수십 년 전 있었던 절멸 사태가 다시 제국인들의 기억 속에 되살아난 탓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전처럼 화려하지 않았을 뿐, 여전히 그 어떤 도시보다 화려한 곳이긴 했지만.
에반은 도시의 모습을 보곤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분위기가 좋지 않군요.”
아이린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은 많았으나, 하나같이 얼굴에 생기가 없었다.
에반젤리움은 여전히 화려했다.
허나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감정을 잃어버린 인형처럼 느껴져서,
작게 눈살을 찌푸린 아이린은 황궁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가 그대를 부른 이유를 것도 같네요.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야, 본인이 직접 나서야 겠다고 결심한 걸 수도 있죠.”
“황태자 전하께서는 아무래도 혼자서 벅차하시는 것처럼 보이셨으니까요. 아마 로만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로만이 가지고 있던 병력의 대부분이 절멸 손에 세뇌된 상태였다.
제국을 삼분할 하던 전력 중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셈,
당연하게도 순식간에 비어버린 전력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제국이었고,
세뇌당하지 않은 나머지 병력 또한 상당한 터라 그것을 수습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5대 가문이 4대 가문이 된 탓에 그 세력의 균형이 점차 깨져가는 것 또한 문제였다.
‘3대 가문이 될 수도 있지만.’
황태자가 언급했던 하탄. 메디브나 킬로그를 예상했던 나로썬 살짝 의외이긴 했으나,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은 그렇게 지목하여 이야기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에반은 잠시 가문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하탄과 함께 처리해야할 프리드를 떠올렸다.
프리드를 처리하면...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에반 프리드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엔, 이 나라에서 절멸과 엮인다는 인식이 상상이상으로 좋지 못했다.
잠시 이름에 대해 생각하던 에반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으며 아이린의 손을 붙잡았다.
자그마한 손을 덮는 손의 감각을 느낀 아이린이 고개를 돌리자, 에반은 자연스럽게 깍지를 끼며 입을 열었다.
“흠, 만약에 결혼을 하면 말입니다.”
“겨, 결혼이요.”
“만약일 뿐입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말이죠.”
아이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결혼이라니, 에반이 벌써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일까.
아이린의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꽃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에반이 자신과 결혼한다면, 동화책에서나 볼법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피식피식 웃고 있을 무렵,
에반은 아이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깨닫곤 손을 슬쩍 잡아당겼다.
“당신과 결혼을 하면, 제가 성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되나요?”
성을 바꾼다니, 에반의 성을 떠올린 아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혼하면 자신이 친정에서 사는...
“아.”
아이린은 입을 작게 벌렸다. 에반이 하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성을 바꾼다는 건, 그러니까 에반이 지금 말하고 있는 건. 그가 자신에게 데릴사위로 오겠다는 것이 아닌가.
쿵쿵 대며 울리는 심장소리에 잠시 가슴팍을 어루만진 아이린이 에반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에반 유리스가 되겠네요.”
“조금 어색하겠네요. 뭐, 당신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렇겠지만요.”
“결혼, 그렇죠. 결혼...”
아이린의 눈동자가 순간 빛을 잃었지만,
그것을 보지 못한 에반은 그저 가볍게 웃으며 황궁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정식으로 교제한다는 사실이 퍼진 것인지, 주변을 지나치는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 쳐다보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신분을 숨겼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남들이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아이린은 에반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반지가 끼워진 손을 남들에게 보여주려하는 마음이 더 컸으니,
애써 손을 바깥쪽으로 빼내려는 아이린을 본 에반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어차피 나중에는 모두가 알게 될 텐데, 너무 급하신 게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돌린 에반이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황도에 온 이상 이런저런 곳에 들르고 싶었지만...아무래도 지금은 황제를 찾는 것이 먼저였으니,
황궁 입구로 가자 에반을 알아본 기사들이 경례 자세를 취해보였다.
심장에 주먹을 가져다 대는, 영웅을 향해 표하는 자세에 잠시 머쓱한 기분이 들었지만,
에반이 따라 자세를 취하자 기사들은 영광스럽다는 듯 밝게 웃으며 입구를 막고 있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을 흔드는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늘 입고 있는 화려한 제복을 뽐내는 남자.
제국의 황제 다음으로 지고한 이, 황태자를 향해 에반과 아이린은 무릎을 꿇어 보였다.
“이런, 무릎을 꿇을 필요까지는 없는데. 일어나게, 오랜만에 보는 것인데 괜히 민망해지게 나에게 왜 그러나?”
카이셀은 에반을 보며 슬쩍 웃어보였다.
아이린과 에반은 번갈아보는 시선에 에반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윽고 카이셀이 건넨 손을 붙잡아 악수하며 입을 열었다.
“교제하는 건 저희인데, 어쩐지 전하께서 더 좋아하시는 것 같군요.”
“들켰나? 옆에서 지켜보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알게 되는 기회였네.”
“전하께서도 언젠간 저희처럼 되셨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카이셀은 크게 웃으며 에반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실, 요즘 들어 평소 같은 삶에 질려하고 있는 참이었다.
많은 여인을 품는 것은 그렇다 쳐도, 에반과 아이린의 얘기는 이미 사교계에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두 사람의 사랑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자신이었으니,
문득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떠올린 카이셀은 머쓱한 나머지 볼을 긁적였다.
영애와 호위 기사의 운명적인 만남,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영애들이 흠뻑 빠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이린과 에반의 이야기였다.
한때나마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던 얼음장과도 같은 성격을 지녔던 여인이 호위 기사를 만나 변했다, 라.
자신이 들어도 괜찮은 이야기라며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이 현실에서 펼쳐졌으니.
그 어떤 사람이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이린 유리스는 5대 가문의 소가주였으며,
에반 프리드는 말로릭과 빌테인을 홀로 벤 기사인 것이 합쳐져 벌써 동화책 같은 것이 나온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짓는 에반과 아이린의 모습을 본 카이셀은, 자신의 행태를 떠올리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문란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에반의 말을 들으니 가끔은 그런 사랑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허나 그렇다고 생각에 빠져 이들을 서있게 할 수는 없을 터라,
카이셀은 아무렇지 않게 두 사람을 위해 길을 터주었다.
여러모로, 나눠야 할 얘기가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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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누가 먼저 고백했나?”
카이셀은 에반의 옆구리를 툭 치며 조용히 물었다.
두 사람 사이엔 이제 친우라 해도 괜찮을 만한 친분이 있었으니,
지난번 로만 토벌 이후로 조금 더 가까워져 에반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제가 했습니다. 아이린에게 먼저 고백하게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먼저 고백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흠, 좋아. 참고해두지.”
카이셀은 멋쩍게 웃었다. 세간에 들리는 소문에는 아이린이 고백했다,
에반이 고백했다, 하다못해 동시에 고백했다는 얘기가 들려서,
이왕이면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 물었건만.
에반이 먼저 고백했다는 얘기를 듣자, 자신의 예전 모습이 떠오르지 않던가.
어쩌면 그저 두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 일종의 팬심일 수도 있었다.
카이셀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을 은연중에 응원하고 있지 않던가.
이런저런 얘기를 더 듣고 싶긴 했지만, 자신과 에반이 가까이 있자 아이린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음을 깨달은 카이셀이 입을 열었다.
“음, 그래. 황제 폐하께서 그대를 불렀네, 그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스터가 된 것과...절멸에 관해서겠죠.”
아스칼론의 대한 언급을 일부러 피하며 말을 꺼낸 에반은 카이셀을 바라보았다.
카이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에 긍정했다.
정식으로 마스터란 것을 인정 받아야 하는 것은 둘째치고, 아직까지 잔존세력이 꽤 남은 절멸이 문제였다.
로만을 처리하면서 세력 한축을 꺾었다곤 하지만, 결국 한축을 꺾은 것이 전부였다.
말로릭을 처리하고, 빌테인을 처리하며 그들에게 큰 타격을 입힌 것은 분명했다.
허나 절멸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이미 그 조직은 제국의 에반젤리움을 함락시킬 뻔 했으며,
패퇴시킨 뒤에도 그 세력을 수십 년 동안 음지에서 불려왔다.
망자를 다루는 그들에게 수십 년이란 시간은, 전력을 몇 배로 불리는 데에 무리 없는 시간일 터. 카이셀의 미간이 좁아졌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네.”
“그렇습니까.”
“만약 빌테인을 그대로 두었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수도가 함락되었을 테니까. 자네가 싸워봐서 더 잘 알겠지만...마스터는 단순하게 볼 존재가 아니네. 그때엔 자네도 익스퍼트였으니까, 만약 그쪽에서 조금 급하게 움직였더라면 막을 방법이 딱히 있진 않았겠지.”
에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린의 손을 붙잡았다.
빌테인의 얘기만 나오면 급격하게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이 그녀인 터라,
안심하라며 옅게 미소 짓자 아이린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은 줄었고, 테오라드도 지금 당장 움직이긴 힘들지. 황실 기사단 운용에도 애로사항이 꽤 많네. 그렇다고 하탄을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고.”
“하탄에 대한 것은 확신하시는 겁니까?”
“8할.”
씁쓸한 듯, 시선을 내리깔은 카이셀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정도 확률이라 생각하고 있네. 여러 정황 증거들이 모이고 있어. 그리고 이건 내가 아니라...아버지께서 판단하시겠지.”
“그래서 저를 부르셨군요.”
“지금 당장 운용할 수 있는 전력이 자네뿐이니까. 자네에게도, 그리고 유리스에게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싶지만...그렇기엔 불안 요소가 너무 많아.”
아이린은 그런 카이셀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에반이 또 흑마법사와 싸운다, 라.
불안하긴 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에반을 신뢰해주는 것또한 자신의 몫일 터.
에반을 바라본 아이린은 조용히 입꼬리를 당겼다.
에반의 눈동자에 어린 것은 순전히 자신에 대한 걱정뿐이라. 그것에 안심한 아이린이 에반의 뺨을 쓸어내렸다.
“아이린, 저는”
“괜찮아요. 돌아올 거잖아요?”
“...당연한 얘기입니다.”
약속했으니까, 에반은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에반의 흔들리던 눈빛이 달라지는 걸 확인한 카이셀은 그대로 의자에 앉아 에반에게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황제가 내린 친서인가 하는 생각에 종이를 열은 에반은, 그 종이에 적힌 것을 보곤 카이셀을 바라보았다.
“용언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버지께서 자네에게 전하라고 한 걸세. 이미 자네가 용혈을 타고 났음이 자자하게 퍼졌으니, 이런 것을 조금 찾고 계셨던 것 같더군.”
용언, 그 이름을 들은 에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번 싸움에서도 용언을 활용했던 만큼,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빛의 정령을 활용하는 것보다도 더 효율이 좋을지도 몰랐다.
문제라면, 이제 곧 있으면 등장할 스칼렛 테라제인에 대한 문제인데.
‘이번에도 황태자와 엮일까.’
에반은 카이셀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문란한 생활을 즐기는 그였지만,
요즘 들어서 천천히 그런 행동을 줄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의 태도가 바뀐 것은 겉으로 보기엔 긍정적일 수 있었지만...만약 스칼렛과 엮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조금 지켜볼 필요는 있겠지.’
스칼렛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내년 봄이었으니, 에반은 조금 천천히 지켜봐도 될 거라 생각했다.
만약 엮인다면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린은 더 이상 악녀가 아니었고,
절멸과 엮일 여지가 어디에도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스칼렛이 이 소설 속 세상의 여자 주인공이라는 것은 큰 변수나 다름없었으니까.
게다가 이미 원작과 한참 달라진 전개가 아니던가.
원작에서는 이 시점까지를 다루지도 않았을 뿐더러,
스칼렛이 나타난 이후로도 로만은 멀쩡히 남아있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에서 황태자와 스칼렛을 적극적으로 도운 것이 로만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너무...많이 달라지긴 했어.’
이 변화가 어색할 만큼,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잠시 스칼렛을 생각하던 에반은, 아이린의 눈빛이 차가워졌음을 알아차리곤 옅게 웃었다.
물론, 아이린은 그런 에반을 흘겨보며 팔짱을 낄 따름이었다.
“에반.”
“네.”
“무슨 생각 했어요?”
아이린은 에반의 어깨가 흠칫 떨리는 것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에반이 저런 반응을 보일 때면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이 있을 때인데,
최근 들어 자주 느끼고 있는 여자의 감이 아이린을 자극했다.
아이린이 에반의 손을 움켜쥐자, 에반은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자꾸 그러면.”
“자꾸 그러면...?”
에반이 조심스럽게 되묻자, 잠시 고민하던 아이린은 자연스럽게 입술을 핥았다.
다른 생각을 한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제일 좋다고.
이전에 잠깐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린 아이린이 에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방금과는 조금 다른 시선, 며칠 전 밤에 보았던 눈빛을 떠올린 에반이 침을 삼켰다.
“...혼나야겠죠.”
어떻게 혼난다는 얘기는 없었으나, 에반은 어쩐지 혼난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아 뺨을 붉혔다.
에반의 반응에 샐쭉하게 웃은 아이린은, 이윽고 찻잔에 담긴 다즐링을 마셨다.
그윽한 향을 코 가까이에 가져가 느끼면서,
그 향을 조용히 즐기려던 아이린의 눈살이 갑작스레 찌푸려졌다.
늘 마시던 찻잎을 부탁했기에 같은 향을 느낄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 따라 맛이 텁텁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비릿하면서도, 조금은 미묘한 맛.
다시 마셨음에도 변하지 않는 향에 찻잔을 내려놓은 아이린은,
주변에 있는 시녀를 불러 다시금 차를 따라오도록 명을 내렸다.
“다른 다즐링 잎을 가져올까요?”
“아니요...”
아이린은 아직 다 마시지 않아 찰랑이는 다즐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금 입술을 달싹였다.
“레몬티로 부탁하죠.”
“알겠습니다.”
어쩐지, 신 맛이 당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