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오랜 날, 오랜 밤 (3)
* * *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평온을,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가 그런 것을 지킬 수 있다면 세상에 싸움 같은 건 없지 않았을까.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했고, 노력했고, 가끔은 그 과정에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허나 그럼에도 지키지 못했던 것이 내 과거였다.
손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잔뜩 박살난 피아노 앞, 나무 조각이 잔뜩 박혀 허연 뼈가 튀어나온 손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항상 아름답다고 평을 받았던 길쭉한 손가락은 흉특하게 뒤틀렸고,
그걸 본 부모님이 내게 무어라 소리를 쳤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들에겐 내 손이 나 자신보다 소중했을지도 모르지.
이제는 전부 상관없는 기억이었다. 별로 그립지도 않은 기억이었고,
미련을 놓아 가슴 한 구석에서 털어버린 기억이기도 했다.
...동생은,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녀석이었다.
늘 콩쿠르 준비 때문에 잘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뭐든지 해냈고, 그럼에도 내게 투정부리지 않았다.
용돈을 달라고도,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는 부모를 탓하지도 않았다.
오빠와 비교 당하면서도, 저 혼자 병을 앓으면서도 걱정할까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바보 같게도.
후회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씩이나 잃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되풀이 하지 않는다. 또, 그때처럼. 눈을 감았다.
어쩐지 눈가가 젖어있어서, 조용히 닦은 채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깨가 무거웠다. 카심 백작이 내게 했던 말, 분명 로만 공작이 마스터라는 것은 사실일 터였다.
테오라드 경은 그를 상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직 나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리라.
마스터와 익스퍼트는 단순히 한 단계의 차이라 할 수 없었다.
평생을 익스퍼트에서 헤매다 죽는 기사들이 흔했다. 검의 정점, 그렇기에 인정받는 것이 마스터.
질 생각은 없었다. 조용히 숨을 내뱉는다. 내가 죽으면 아이린 또한 위험했다.
순간 스쳐간 과거의 기억에 입꼬리를 비틀다가, 이내 쓰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로만과 제대로 싸우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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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늘에 보름달이 떠있는 날이었다. 별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의 밝은 달빛,
그 빛에 의지해 천천히 걷다가. 저 멀리서 보이는 한 인영을 보곤 옅게 웃어 보였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방금까지의 살짝 울적했던 기분을 싹 날린 채 입을 열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얘기는 잘 나눴나요?”
“뭐, 그렇죠.”
그녀를 구태여 걱정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로만 공작이 마스터라는 사실은 테오라드 경과 황태자에게만 전해주면 될 터였다.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자,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본 아이린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울었어요?”
이렇게 눈치가 빠를 줄은 몰랐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크게 떴다.
손사래를 치면서, 그녀에게 살짝 뒤로 물러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눈물은 잘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답해야 하는데,어째선지뻥긋거리는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턱 하고 막힌 기분이라, 그저 뒤로 물러나며 애써 웃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기다려 봐요.”
“...안 울었습니다.”
손목이 잡혔다. 떼어내려고 했지만, 의외로 힘이 쌘 아이린이 내 손목을 붙잡은 채 그대로 나를 벽에 몰아세웠다.
사실,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놓아버리면 다시 잡지 못할 거란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서.
손목을 붙잡힌 채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그 푸른 눈이 나를 응시하고, 당장이라도 무언가 말할 듯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울었네요.”
“아닙니다.”
“거짓말 하지 말아요. 내가 모를 것 같나요?”
꼭 엄마에게 무언가 잘못한 것을 들킨 꼴이 된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입을 가리며 한참을 끅끅대며 웃자, 그런 나를 여전히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린이 조용히 내 뺨을 쓰다듬었다.
“물기가 이렇게 남아 있잖아요.”
“아가씨.”
천천히 아이린의 손을 떼어냈다.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울고 싶다는 것을 들키지 않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복잡한 마음을 조금 정리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잠시...걸으시겠습니까?”
이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자, 이윽고 아이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도의 거리는 밤에도 밝았다. 허나 돌아다니는 사람은 적어서,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빛이 반짝이는 거리를 그렇게 천천히 걸었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손을 잡은 채, 이따금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느껴지는 어색함에 고개를 돌렸다.
울었다는 걸 들키고 싶진 않았는데, 참 이상한 부분에서 눈치가 빠르지 않은가.
정작 사람의 마음을 눈치 채는 건 그토록 오래 걸렸으면서.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이린 또한 내게 아무런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해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참 동안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었다.
아무 말 없이 걷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항상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걸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아이린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단둘이서 얘기한답시고 갔던 사람이 울면서 돌아오다니, 아무리 봐도 오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더 이상 캐묻지 않는 아이린이 고마워서, 붙잡은 손을 쥔 채 가볍게 흔들었다.
“이제 기분 좀 풀렸어요?”
“글쎄요.”
아직 마음이 복잡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만약 로만에게 진다면 그 다음은?
아이린은, 혹시 소설의 결말을 그대로 겪는 것이 아닐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지만,
반드시 이길 확률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허나 그걸 말할 수는 없었기에, 옅게 웃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거울은 어떻게 사용하실 겁니까? 로만가에 직접 가신다면, 그건 반드시 말릴 생각입니다.”
“거기까지 직접 갈 생각은 없어요. 조금 사람이 많은 곳을 이용하든, 아니면 누군가를 몰래 보내 비춰보겠죠. 몰래 보냈을 때 성공할 확률은 낮겠지만요.”
확실히, 몰래 아티팩트를 사용하려다 걸리게 된다면 일이 꼬일 확률이 컸다.
만약 사용한다면 직접 사용하는 편이 나으리라. 허나 어떻게?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역시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꺼내 쓰는 편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손거울은 누구나 들고 다니는 치장품이었으니, 사람이 많은 곳에서 꺼내 쓴다 한들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아이린 또한 그렇게 생각했는지, 잠시 턱을 매만지던 아이린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 모습이 귀엽게 보여 피식 웃자, 당황한 그녀가 나를 보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왜, 왜 갑자기 웃어요?”
“귀여우셔서요.”
허공에 솟은 손가락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렇게 나를 빤히 쳐다본 그녀는,
이윽고 그 손가락을 보며 갑작스레 탄성을 내뱉었다.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뜬 아이린이 내 팔을 툭툭 두드렸다.
“에반, 이제 곧 황태자 전하의 탄신일이지 않나요?”
“그렇죠, 지금이 5월이었으니 말입니다.”
“우리도 참석하죠. 거기라면 로만가도 분명 참석할 테니까요.”
“참석하는 거야 좋지만, 가능하겠습니까?”
아이린과 무도회에 참석한 적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너무 자주 같이 갈 수는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실이라도, 어쨌든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허나 지금 당장은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비록 반지 하나 낀 적 없어도,
제대로 된 약혼식 하나 없이 그저 구두로만 성립된 약혼일지라도.
지금 당장은, 아델 로만을 무시할 수 없었다.
대외적으로 그녀와 나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 보이는 것도 피해야 했다.
가뜩이나 구설수를 좋아하는 영애들이 모이는 그런 자리에서.
특히나 황태자가 직접 열어 대부분의 귀족들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또 파트너로 참석했다간, 아무래도 이상한 소문을 피하기 힘들 테니까.
허나 아이린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참석한다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던 것일까.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자, 이어 나와 눈을 마주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잘하는 게 있잖아요. 누군가를 축하하는 상황과 어울리는 재주요.”
“...피아노 말씀하시는 겁니까?”
연주하는 것 자체에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종종 치기도 했고,
아이린에게 알려준답시고 몇 번 연주하기도 했으니까.
다만 놀라운 점은 그녀가 탄신일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연주를 허락했다는 점인데.
평소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연주하지 말라던 태도가 어째서 변한 걸까.
의문 섞인 시선으로 아이린을 바라보자, 이내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니요, 그냥...제가 거기에서 연주해도 괜찮으신 겁니까?”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지도 몰랐다.
아이린이 그런 것에 질투하는 사소한 모습에 기뻐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저도 모르게 축 처지는 어깨를 본 아이린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무슨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냥, 조금. 아주 많이 섭섭한 것뿐이었다. 입술이 조금 튀어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잡고 있는 손을 놓을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이대로 손을 놓은 채 아주 멀찍이 떨어져 걸을 지도 모르지.
“내가 그대를 혼자 보낼 거라 생각한 건가요? 같이 참석하자고 했잖아요.”
“같이 말입니까?”
“그대처럼 피아노를 칠 줄은 모르지만...나도 합주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합주, 그 말을 들은 내 눈이 순간 크게 뜨였다. 아이린이 나와 합주를 한다고?
합주라, 나쁘지 않았다. 아이린이 피아노를 수준급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그녀는 바이올린을 꽤 잘 다루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협주곡은 꽤 흔했고, 그녀의 수준과 맞춰서 연주한다면.
꽤 좋은 그림이 되지 않을까.
“흠.”
“설마 방금 삐친 건가요?”
“그럴 리가요. 그냥...잠깐 어깨가 무거웠을 뿐입니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본 아이린은 잠시 피식 웃더니, 내 볼을 쿡 두드리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귀엽네요.”
귀엽다니, 그런 말은 나와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허나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라,
아이린의 손을 꼭 쥔 채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남은 손으로 쓸어내렸다.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마음이 복잡한 것이 이유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그 원인이 아이린이라는 점이었다.
카심 백작에게도 말했지만, 나는 아이린의 호위 기사였다.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흑마법사를 처리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걸 동시에 할 수 없다는 점이, 아마도 마음이 이토록 복잡해지는 이유이리라.
그렇기에, 마음속으로 조용히 각오를 떠올린다. 반드시 이기겠노라,
아이린이 우는 걸 또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번만큼은 몸 성히 그녀에게 돌아가리라.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듯 했다.
그제야 비로소 편히 숨 쉴 수가 있어서, 아이린의 손가락 사이에 깍지를 낀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구태여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생각을 이어갈 필요는 없으니, 하던 얘기를 마저하는 것이 나으리라.
“연주할 곡은 생각해 두셨습니까?”
“전에 세이렌에서 에반이 연주한 게 괜찮은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연주했던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처음에 연주했던 건 조금...누군가를 축하하기 위해 연주하기에 어울리지는 않으니까요.”
세이렌에서 두 번째로 연주한 곡이라면, 그 곡이 무엇인지 떠올린 나는 아이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누군가를 축하하기 위해 연주할 법한 곡은 아니지 않은가. 그 곡은...세레나데였다.
내가 아이린에게 마음을 전하고자 연주했던. 어지간하면 그녀에게만 들려주고 싶었으니,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안 됩니다.”
“바이올린으로도 연주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같이 연주도 했잖아요.”
“다른 곡으로 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누군가를 축하하기 위해 연주하는 곡이 아니니까요.”
“제 생일에 연주한 곡인데, 축하하기 위한 곡이 아니라면 뭐죠?”
음. 그 질문에는 차마 솔직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내 욕심이었다.
아이린에게만 들려주고 싶어서, 일부러 로페나가 없을 때만 그 곡을 연주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새로운 곡을 찾아 연습하는 것이 나을 성 싶었다.
황태자의 탄신일까진 아직 기한이 조금 남았으니까.
“말 안 할 거예요?”
“기사는 과묵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린 아이린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를 쏘아본 채로, 잠시 고개를 까딱인 그녀가 내 목덜미를 쥔 채 까치발을 들어 올렸다.
훅, 순간 닿은 숨결이 따스했다. 이렇게 가까워지는 것은 최근 들어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졌다는 말은 아니었다.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이윽고 아이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래도 말 안 할 건가요?”
“...안 할 겁니다.”
더 가까워진 거리, 서로의 코가 살짝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도 아이린은 얼굴 하나 붉히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것이 익숙해진 걸까. 저번에 내게 한 짓도 그렇고.
아무래도 기강을 잡을 필요가 느껴졌다. 이런 관계에서 우위를 잡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 아니던가.
까치발을 든 채 내 목덜미를 쥔 아이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린.”
“...네?”
순간 들린 자신의 이름에 놀란 것인지, 아이린이 살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단둘이 있을 때 이름을 부르는 것 정도는, 이제 슬슬 해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 들어 너무 담대해지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툭,
가볍게 이마에 닿은 입술이 떨어지자,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아이린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이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자세가 무너지지 않도록 허리를 잡아 당겼다.
이마를 시작으로 차츰 내려가는 입술이 뺨에 닿았다. 한 번, 그리고 다른 쪽에도 한 번.
“에, 에반. 잠시만요.”
비로소 얼굴이 붉어진 아이린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내 입술이 닿은 뺨을 남은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빈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훔쳤다.
버드 키스였지만, 조금 긴 시간 동안 닿아있었다. 스쳐지나갔던 두 번째보다도 더욱.
"이래도 쉽습니까?"
"......흐으."
그제야 내게 떨어질 수 있게 된 아이린은, 황급히 거리를 벌린 채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내가 물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가슴을 부여잡은 모습,
붉어지다 못해 완벽하게 붉게 물든 귀가 인상적이었다.
"하아."
조용히 한숨을 내뱉는다. 당분간은 아이린과 함께 연주할 곡을 연습하느라 바쁘지 않을까.
그동안은 잡념은 지운 채 그 일에만 집중하는 게 나을 듯 했다.
...그냥 모든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주도, 로만에 관련된 일도.
카심 백작이 주었던 것을 품속에서 매만지며,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천천히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