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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75화 (75/181)

〈 75화 〉 별 하나에 그대 (7)

* * *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잠깐, 찰나.

그 말로도 차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짧았던 열락이 끝난 뒤에.

나는 비로소 나를 빤히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를 쳐다볼 수 있었다.

“...음.”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미묘한 분위기였다. 입술이 떼어진 순간 얇은 실이 차마 끊어지지 않아서,

아직까지 아이린의 입술에 남은 은사(??)를 닦아내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충동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서, 또한 그녀가 솔직히 답하라고 했기에 그리 했을 뿐이었다.

허나 선을 넘은 것이 아닐까. 입술만 닿았던 게 아니라...혀까지.

차라리 그녀가 무어라고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시선을 살짝 피하다가. 이내 옅게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았습니다. 그...처음이었는데도 말이죠.”

“처음 맞아요?”

“...저를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를 향해 이런 걸 시도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름 잘 피했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내가 마음을 둔 사람과 하고 싶었으니까. 내가 작게 눈살을 찌푸리자,

피식 웃은 아이린이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건드리며 대꾸했다.

“글쎄요. 호색한?”

“떨어지시죠.”

“아, 미안해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이미 늦었다. 나보고 호색한이라니,

평소에 얼마나 조심하는지 그녀가 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내게 달라붙은 아이린을 떼어내자, 한 차례 딸꾹질을 내뱉은 그녀가 이내 머리를 붙잡은 채 내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 술기운이 덜 가신 걸까. 그 생각에 괜스레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해버리더니...혹여 그녀가 정신을 완전히 되찾은 뒤에 내게 무어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지지부진했던 진도를 이번에 성큼 밟아나간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허나 그건 내일이 되기 전까지 알 수 없겠지.

뜨거워진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리다가,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저택으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계절제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났다. 하늘을 비추던 폭죽은 사라졌고,

세이렌에 들렸을 때처럼 한참 동안 시간을 소비할 수도 없었다.

앉아 있는 아이린에게 손을 내밀자, 그 손을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손 말고 다른 거 해줘요.”

“...다른 거라면?”

“업어줘요.”

의자에 앉은 채로 다리를 붕붕, 휘두르는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업어달라니, 그 말대로 해줄 수야 있지만. 그대로 공작저에 간다면 어째 다른 이들의 시선이 따가울 것 같았다.

...그 전에 내려주면 크게 상관없으려나.

허공에 팔을 뻗은 채 눈을 감은 아이린을 한참 쳐다보다가,

이윽고 그녀를 향해 등을 돌린 채 바닥에 무릎을 굽혔다.

“업히시죠.”

“헤헤.”

귀에 닿는 웃음소리에 어쩐지 귀가 간지러웠다. 이렇게 자주 웃어준다면 좋으련만,

아마도 이 밤이 지난다면...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기 꽤나 힘들 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등에 아이린이 업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나 내 손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어딜 잡아야 하지?

아이린의 다리 쪽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던 손은, 이윽고 아이린의 허벅지를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업어야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 사심 하나 없이­”

“거짓말.”

내 귀에 그리 속삭인 아이린은, 이윽고 팔을 뻗어 내 목을 휘감은 채 다시금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로, 아무 사심 없어요?”

훅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물들었다.

무어라 답하긴 해야 하는데, 뒤에 업힌 아이린이 신경 쓰이는 나머지 우물쭈물 한 채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그녀는 싱긋 웃으며 쳐다보았고.

“변태.”

이어 들려온 대답에,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손에 닿은 아이린의 다리는 부드러웠다. 아무래도...그녀의 말이 조금은 맞는 게 아닐까.

애써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무시한 채 앞을 바라보자, 완전히 텅 비어 어두워진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마정석이 워낙 비싼 탓에 축제가 아니면 거리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조금의 불빛조차 남지 않은 거리에선 약간의 운치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침묵, 누구도 입 하나 뻥긋하지 않는 침묵이 흐르는 그 거리에서. 귓가에 미약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등에 얼굴을 파묻은 아이린의 모습이 보였다. 꽤나 피곤했던 것일까,

순식간에 잠든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 이내 다시 공작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조금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사람을 이렇게 업어서, 어쩌면 다른 이에게 보인다면 괜한 오해를 사게 될 지도 모르지 않은가.

물론 아이린과 나를 알아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저 이 시간이 조금 더 오래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들켜도 좋았다. 설령 다른 이에게 오해를 산다 한들,

공작저에 돌아가 몇 시간동안 꾸중을 들어도 좋으니까. 이 시간이 조금 더, 아이린과 함께 있는 순간이 조금 더 길어지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하늘에 떠있는 반달처럼, 환히 웃은 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조용히.

“제가 아가씨를 많이...좋아하나 봅니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불어오는 더운 바람이 뺨을 간질였을 뿐이라,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길 따름이었다.

좋아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참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 네 음절이 만드는 마법이란 얼마나 대단한 걸까.

쿵쿵 거리며 뛰는 심장 소리를 잠시 느끼며, 그렇게 다시 공작저로 향했다.

#

머리가 무거웠다. 눈을 뜨려는 순간 머리를 관통하는 아찔한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길 잠시,

이윽고 입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에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울려댔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어쩐지 중간이 끊긴 것만 같은 기억에 좀처럼 정신을 되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자신이 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란 말인가.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로페나?”

가늘게 뜬 눈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흐리게 보일 따름이었다.

몽롱한 정신, 몸을 가눌 때마다 머리가 따끔거려서. 차분히 숨을 들이 쉬며 제 앞에 놓인 컵을 들었다.

손에 닿는 감각이 차가웠다. 아마도 냉수, 목으로 넘어가는 차가운 물에 조금 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곳이 자신의 방이라는 것도, 그리고 어제의 기억이...어쩐지 흐릿하다는 것도.

“내가 언제 여기에 돌아왔니?”

“음, 기억 안 나세요? 어제 기사님하고 같이 걸어 들어오셔서 직접 씻고 누우셨는데요.”

“내가 직접?”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천천히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에반과 공작저에 나와서, 계절제가 열리는 거리까지 도착한 것.

여기까진 선명하게 떠올랐다. 로페나에게 들은 얘기를 기억하며 에반의 손을 잡았다가 역으로 휘둘린 것도.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잡아당긴다. 괜스레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달아오르는 얼굴을 쓸어내리자,

자연스레 새어나오는 한숨 사이에 로페나의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음,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나 싶은데요...”

머뭇거리는 로페나를 빤히 바라보자, 멋쩍게 웃은 로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어제 취하신 것 같더라구요. 혹시 술 드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기사님은 아무런 말씀도 안 남겨주셨구...혹시 아가씨 취하신 게 아닌가 싶어서요.”

“...아.”

그제야 기억이 끊긴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어나 처음 마셔본 술,

스타우트를 입에 댄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어쩐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술을 들이켰고, 목에 넘어가는 그 뜨겁고도 화끈한 감각이 선명했다.

­키스해주던가요.

“음.”

기억의 편린 속에서 흘러들어온 목소리는 설마...자신의 것일까.

평소와는 달리 자신감에 가득찬, 달뜬 숨결과 함께 토해낸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자신의 입에서 새어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자신 스스로 저런 말을 내뱉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매만지다가, 이내 혀를 한차례 차며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움직였다.

“그 외엔 아무런 일도 없었니?”

“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그냥 조금 늦게 들어오셔서 기사님만 조금 혼났어요.”

에반이 혼났다니, 그 말에 잠시 눈빛이 스산해졌으나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두 눈을 깜빡였다.

조금 늦게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은가. 고작해야 그런 것으로 혼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호위 기사가 다른 사람에게 혼나는 것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혼내더라도 자신이 혼내야 한다...그런 생각을 품길 잠시, 이윽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자연스레 문으로 시선이 향했다.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일어나셨군요.”

늘 그렇듯, 살짝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새벽이면 하는 훈련을 오늘도 거르지 않은 것일까. 이윽고 눈이 마주치자, 한차례 옅게 미소 지은 에반이 입을 열었다.

“어제 일은...아무래도 기억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제 일이라면,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마치 중간에 끊긴 것처럼. 혹시 제가 술에 취해 이상한 행동을 하진 않았나요?”

“이상한 행동 말입니까.”

그렇게 말한 에반은, 잠시 자신을 빤히 쳐다보다 이내 헛기침을 내뱉으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글쎄요.”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더욱 불안하지 않은가. 가뜩이나 아까 떠오른 말이 신경 쓰이는 이 와중에,

짓궂게 미소 짓는 그 얼굴에 괜스레 짜증이 피어올랐다. 자신이 술에 취해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꽤나 곤란하다는 듯, 자신을 보는 눈동자에 서린 난처함을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로페나, 잠깐 나가 있으렴.”“저요?”

“그래, 에반하고 할 얘기가 있으니까. 공적으로.”

사실 공적인 얘기를 그와 나누는 일은 없었지만, 심각한 자신의 표정을 본 로페나는 고개를 숙인 채 곧바로 밖을 향했다.

오로지 단 둘만 남은 방.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에반이 자신을 바라보며 몸을 움찔 떨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무언가가 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내가 술에 취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에반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거예요.”

“그렇습니까.”

“혹시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건 아니죠? 에반에게 윽박 지르기라도 했나요? 내가 심한 말을 했거나, 말실수를 했다면 말해줘요. 그런 거라면...사과할 테니까.”

“제가 무언가를 했다고 의심하시진 않습니까?”

그 말에 눈살을 찌푸린다. 자신이 에반을 의심할 리 없지 않은가.

설령 자신이 취해 무방비한 상태가 된다 한들, 그가 무언가를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술을 마신 것이었다.

이전에 믿겠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였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믿겠다는 의미.

하여 에반을 빤히 바라보자, 이내 한숨을 내쉰 에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금 아쉽긴 합니다. 저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는 말은, 내가 무얼 한 건가요?”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 입으로 직접 말하기엔 조금 민망해서 말입니다.”

민망하다니, 도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했으면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조심스레 기억을 떠올리자, 캄캄했던 머릿속에서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멍하니 에반을 바라보았던 기억, 그리고 에반의 목덜미를 잡아당긴 채. 그의 귀에 속삭였던 기억.

­그러면, 키스해주던가요.

“에반,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건데요.”

“예.”

“내가...그대에게...키스, 해 달라고 말했나요?”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 흔들리는 에반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만 같았다.

방금 떠올린 기억이 사실이라고. 술에 취한 자신이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인가?

여러 감정이 교차했지만, 떠오른 기억 또한 그 기억이 진실이었다는 것에 긍정하고 있었다.

피어오른 열기가 순식간에 얼굴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하는 기억들, 별을 보며 어렸을 때를 회상하던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던 에반의 얼굴이 그려졌다. 달빛에 반짝이는 금발이, 별처럼 찬연하게 빛나던 그 녹안이.

공원에 앉아 이제는 별을 보지 않는다 얘기했던 자신이 기억 속에서 보였다.

“아가씨.”

문득, 에반이 꽤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의 숨결이 맞닿을 만큼의 거리는 아니었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에반의 얼굴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기지도 않았다...자신을 걱정하는 표정이었지만,

어쩐지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새로운 기억에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자, 잠깐만요.”

공원에서, 자신은 그의 가슴팍을 누른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을, 코를, 입술을 바라보며 달뜬 숨을 내뱉었다.

몽롱하고, 뜨거운 열기에 잠식된 채 천천히.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단단했다. 그가 평소에 열심히 단련한 탓일까, 손가락을 타고 전해져오는 근육의 감촉은 순간 온몸이 짜릿할 만큼이나 탄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입술에 손가락이 맞닿은 순간, 에반은 지금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다시는 잊지 못할, 부드러운 미소를.

“이제야 떠올리신 겁니까.”

분명히, 저 입술과 닿았다. 마주한 입술은 한참 동안 닿아있었고, 그렇게...열락 속에 있었다.

말문이 막혔다.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데, 자꾸만 그의 입술이 눈에 밟혀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얽혔던 혀의 감각이 생생했다. 서로의 타액이 뒤섞여,

이윽고 입술이 떼어지며 만들어졌던 은색의 실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 으...”

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이불을 끌어안아 제 얼굴을 가렸다.

도무지 에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어제의 기억이 떠오를수록 온 몸이 수치심으로 뒤덮였다.

능숙하게 자신의 입을 범하던 그 기억이...싫지 않았다.

만약 다시 경험할 수 있다면 다시 허락할 만큼이나, 그렇기에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싫으셨습니까?”

싫을 리야 있겠는가. 마치 대답을 종용하는 것 같은 그 질문에 겨우 고개를 들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에반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기억과 함께 자꾸만 보이는 그 입술에 애써 시선을 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렇게 겨우 입을 연다.

“...좋았어요.”

훅 하고 달아오른 열기에 몸을 웅크린다. 술이, 원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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