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연인인 듯, 연인 아닌 (2)
* * *
“옷 안 입을 거예요? 제 방에서 나타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는데.”
“로페나를 불러야죠. 어차피 로페나에게도 제가 돌아왔다는 걸 알려야 하니까요.”
아이린에게 가장 먼저 돌아오긴 했지만, 내가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이 꼭 그녀뿐 만인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라고 하면...아마도 로페나가 아닐까.
동생을 닮은 것도 있고, 조금 어린 탓에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그리 말하자, 무언가가 불만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린 아이린이 내 몸을 힐끗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로페나가 그 상처를 보면 뭐라 할지 궁금하네요. 울지는 않을지.”
“아가씨도 울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언제요.”
모르는 척, 고개를 슬쩍 돌린 아이린을 바라보기도 잠시.
언제까지고 이렇게 옷을 벗고 있기엔 꽤나 민망한 터라, 별 수 없이 로페나를 부르기 위해 종을 울렸다.
로페나 방에 위치하고 있을 종을 울리자,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저 멀리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로페나가 내 모습을 보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어쩐지 예상이 되는 그 반응에 실실거리며 웃자 이내 벌컥 하고 열린 문에서 로페나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잠이 덜 깬 듯, 졸린 눈을 비빈 로페나가 아이린을 잠시 쳐다보다 이내 내게 시선이 닿았을 때.
“...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허상이라 생각한 건지,
고개를 살짝 저은 로페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이내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참, 고요한 방 안에서 시계 째깍 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쭉 울려퍼지는 그 때에.
로페나와 나의 눈이 그렇게 허공에서 마주쳤다.
“기사님...?”
어느새 눈을 휘둥그레 뜬 로페나가 제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몸을 막 매만지던 로페나는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내 몸을 부둥켜안았다.
놓치기가 싫은 지 꼬옥.허리가 뻐근하리만치 꼬옥 안은 로페나가 얼굴을 들자,
눈물이 얼굴을 잔뜩 적신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죽은 줄 알았잖아요...어떻게 저한테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가실 수가 있어요...”
“미안해. 네가 너무 걱정할까봐.”
떠날 때 말하고 간 것은 크리스 경과 아이린, 그리고 아제스트 경뿐이었으니 어쩌면 섭섭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신경 썼던 걸까,
그렇게 한참동안 내 몸을 끌어안은 로페나가 훌쩍거리며 고개를 떼어냈다.
“지인짜...서러웠다구요. 어떻게 저한테 그럴 수가 있어요. 저 미우세요?”
“그럴 리가. 내가 널 왜 미워해.”
“근데 막, 저한테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가고. 미워하시는 거잖아요 그게.”
내가 아무 말 없이 간 것이 그토록 서러웠는지,
한참동안 내가 밉다며 칭얼대는 로페나를 달래주느라 시간을 꽤나 썼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고, 새끼손가락까지 걸어주며 약속하자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로페나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이 피는 다 뭐에요? 도대체 얼마나 다치신 거예요?”
“그냥, 조금 다쳤어.”
로페나에게 전부 말해주었다간 아까처럼 펑펑 우는 게 아닐까.
내 붕대를 매만지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로페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귓가에 들리는 싸늘한 목소리에 순간 흠칫 놀란 채 시선을 돌렸다.
“로페나, 이제 슬슬 떨어지렴. 에반이 아파하잖니.”
“아, 아프세요?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별로 아프진 않습니다. 이제 거의 나은...”
갑작스레 스산해진 분위기에 웃으며 대꾸하자, 눈을 가늘게 뜬 아이린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이상 말하지 말라는 것만 같은 그 시선에 입을 꾹 다물자,
잠시간의 적막을 뚫고 로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저는 근데 왜 부르신 거예요? 기사님이 돌아오신 거 알려 주려구요? 그럼 크리스 경도 부를까요?”
“아니, 내 옷 좀 가져다 줄 수 있어? 그것 때문에 부른 거야. 이대로 벗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아, 옷.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로페나가 방 밖으로 조용히 나가자, 이윽고 방에 감도는 어색한 분위기에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까 아이린이 내게 보낸 시선...그 의미를 모를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이내 아이린을 빤히 쳐다본 채 쓰게 웃어보였다.
“제가 설마 로페나에게까지 그럴 거라 생각합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뻔뻔하게 대꾸하는 그 모습에 순간 입이 작게 벌려졌다.
방금 로페나를 차갑게 바라본 사람이 어디 갔는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는 아이린이 나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내가 뭐 했나요?”
“...됐습니다.”
이런 태도를 무어라 하기에도 그렇지 않은가. 오히려 기쁘다면 기쁘다고 해야겠지.
그녀가 질투하는 대상이 로페나라는 점에서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화를 내지는 않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린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자 떠오른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로페나의 생일 때 준 목걸이를 보고 돌연 화를 내었다 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그에 대해 미심쩍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혹여 이번 일과 같은 이유라면...
“귀여우십니다.”
“...갑자기요?”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 말이 또 듣기 좋았는지, 괜스레 얼굴을 붉히는 아이린을 보며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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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가득 밝히던 달이 그렇게 지고, 어스름히 밝아오는 하늘을 빤히 바라본다.
이제 슬슬 공작저에 귀환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용인과 마주치기 전에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려 하자,
내 옷깃을 붙잡은 아이린이 조심스레 자그마한 천조각을 내밀었다.
“이건...”
“이번에 옷하고 같이 사라졌을 거 아니에요. 늘 가지고 있으라 했으니, 다시 가져가요.”
“이젠 의미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전에 의미도 모른 채 손수건을 건넸던 그녀를 떠올리며 묻자,
눈살을 찌푸린 아이린이 내 손에 손수건을 쥐어주며 차분히 대꾸했다.
“의미 같은 건 알아서 생각해요.”
“...알겠습니다.”
알아서 생각하라니. 전에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태도에 입꼬리가 샐쭉하게 올라갔다.
옷하고 같이 불타버린 손수건이 신경 쓰이긴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신경 쓰겠다는 생각과 함께 품에 넣자, 이내 나를 힐끔 바라 본 아이린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이제 할 말은 다 끝났다는 것일까.
여전히 퀭한 눈가가 신경 쓰여 말을 덧붙이려다가,한차례 머리를 긁적인 채 밖으로 향했다.
아직 새벽이 남긴 미명(??)이 감도는 복도,
촛불 빛이 미명과 섞여 희미하게 빛나는 복도를 천천히 거닐자 왠지 모르게 피어오르는 감상에 가슴이 울렁였다.
배를 뚫렸을 때만 하더라도, 아니 말로릭을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영락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아까부터 몇 번이고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살아있어서 여러모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용혈이란 것이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죽었으리라.
허나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게도 내 혈통에 관한 것이었다.
용혈, 도대체 그런 것이 왜 내게 있단 말인가.
[장미 가시의 그대]에서 용혈에 관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나온 적이 없었다.
애초에 용도, 이번에 나타난 말로릭도 조금의 언급 없이 지나갔으니까.
나라는 존재로 인해 전개가 개변 되었다기엔, 내가 한 일이 너무도 미약하지 않은가.
무언가 거대한 의식을 막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소수로 뭉친 흑마법사를 처치했을 뿐, 그들이 하던 의식 또한 미약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아제스트 머윈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카심 백작이라도.
물론 가장 정확한 것은 직접 본가로 돌아가는 것이겠지만...
어쩐지 프리드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미묘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온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만 같은, 그런 혐오감에 가까운 감정이.
며칠 전만 하더라도 다 죽어갈 것 같던 녀석이 변했으니까.
크리스 경이 내뱉은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빙의하기 전 에반 프리드에게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그 생각과 함께 떠오른 것은, 내가 흑마법사들과 싸운 뒤 수습했던 한 인장이었다.
바짓주머니를 뒤적거리자, 베르만을 쓰러트리고 그의 손가락에서 벗겨낸 인장 하나가 만져졌다.
하도 닳아 인장에 새각된 문양마저 알아볼 수 없어 그저 지켜보는 게 전부였지만,
이것이 나와 관련 있을 거란 감이 강하게 떠올랐다.
설마 흑마법사와 프리드 가문이 서로 관련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죽였던 베르만이 정말로 프리드 가문이라면, 나는 앞으로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잇따른 생각에 자꾸만 머리가 복잡해져서,
머리를 식히고자 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늘 가던 정원으로 향했다.
“왔느냐?”
그리고 그 정원 한 켠에 앉아있는 익숙한 얼굴을 보곤,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채 천천히 그 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이 근처에서 네 마나를 느꼈다. 예전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던데, 뭐라도 변화를 겪은 게냐?”
“그냥, 한 발자국 나아갔습니다. 마스터의 문턱에 걸쳤다고 해야 할까요.”
“괴물 같은 녀석.”
방금까지 검이라도 휘두르고 있었는지,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크리스 경이 끌끌거리며 웃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꽤나 정정했는데,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모습에 괜스레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이제는 칠순이라 했던가.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건만,
아직까지도 이리 열심히 사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다 관절 나갑니다.”
“말하는 싸가지 하곤. 네가 걱정할 만큼 늙지는 않았다. 아직 한창 때나 다름없다고.”
“...공작님 상태는 보셨습니까?”
그리 묻자, 이내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 경이 입을 열었다.
“그래, 며칠 전부터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하더구나. 아마 이제 곧 있으시면 일어나시겠지. 전부 네 덕이다. 에반.”
“잘 버텨주신 공작님의 덕이죠. 3일이나 걸리지 않았습니까.”
“칭찬해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라. 도대체 뭘 그리 딴지를 거는 지.”
그렇게 말하며 내 등을 내려친 크리스 경은 이내 피식 웃더니,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달이라 들었다. 카심 백작이 그 아티팩트라는 걸 만들어 내는 기간 말이야.”
“그렇습니다.”
“만약 로만가가 정말로 흑마법사라면...아마도 공작과 싸우는 건 네가 되겠지. 테오라드 경이 거나.”
그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자,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 크리스 경이 조용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번만큼 무리하지는 말아라.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늘 기억하도록 해. 아가씨도, 로페나도, 그리고...나도.”
탁, 검을 땅에 꽂은 크리스 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많이 슬퍼할 게다.”
“...과분하네요.”
말과는 달리 입꼬리가 씰룩이는 탓에, 손으로 입가를 매만진 채 그리 대답했다.
과분했다. 나라는 사람이 그토록 걱정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허나 이 모든 것이 내게 주어진 현실이라는 것이 기껍기도 해서,
문득 벅차오르는 감정에 땅을 바라본 채 조용히 대답할 따름이었다.
“근데, 늙어서 흘리는 눈물은 주책 아닙니까?”
“분위기 깨기는, 방이나 돌아가서 잠이나 자라.”
“화내지 마십쇼. 저 이제 황태자 전하한테 영웅 취급 받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숙연해진 분위기를 깨고자 그리 말하자, 눈살을 한껏 찌푸린 크리스 경이 검집으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그러기를 한참, 내가 먼저 웃음을 터트림과 동시에 크리스 경 또한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이 행복이 조금이나마 오래 간다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고개를 들자,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이 보였다.
“...밥이나 먹으러 가죠.”
마침, 배가 꽤나 고프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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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그 시간동안 밥을 먹는 것을 걸러 있고 있었지만.
다시 깨달은 것은 내가 생각보다 밥을 많이 먹는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많은 양을 먹을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을 단번에 종식시키는 그 광경에 로페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체 하시겠어요. 천천히 드세요.”
“천천히 먹고 있는 거야.”
노릇하게 구워진 양고기의 뼈를 잡으며 대꾸하자,
옆에 있던 크리스 경마저 나를 질렸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허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3일을 굶었는데, 이렇게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텅 비어버린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손으로 쥐자 찢어지는 양갈비의 살점은 그야말로 촉촉하기 그지없었다.
며칠간 숙성한 탓에 비린내조차 사라졌고, 남은 것은 후추와 그 향을 부드럽게 감싸는 버터의 눅눅한 향이 전부였다.
입에 닿자마자 사르르 퍼지는 고기의 식감,
허나 쫄깃한 식감도 여전히 남아 고기를 씹는 즐거움 또한 더해지는 것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먹는 것을 그만두었다.
슬슬 배가 불러오는 것도 그 이유 였으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기척 때문이었다.
아마도 아이린이 아닐까, 그 기척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식당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이린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 있었네요.”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그녀는 내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한 손에 들린 서신, 꽤나 고급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종이 한 가운데 찍혀있는 것은 황실의 문양이었다.
아마도 황태자가 보낸 것이겠지. 이윽고 그녀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자,
그녀의 입에서 들려온 것은 내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서신을 보냈어요. 그대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유리스에게 공식적으로 보냈죠. 아무래도 그대가 한 일을 공식적으로 치하할 생각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조만간 황실로 부를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빠른 호출이었다.
흑마법사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 그토록 빨리 끝난 것일까.
어쩌면 이를 이용해서 다른 5대 가문에 경고를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었다.
흑마법사를 이토록 대규모로 토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그를 이용해 경고하는 것이 나름 효과를 지닐 수도 있으리라.
“그대의 공을 치하하고, 그를 축하하기 위해 직접 황태자가 행차하는 연회를 연다...라고 써있더군요. 그래서, 갈 생각이죠?”
“당연히 가야죠. 전하께서 부르시는 것이니, 다음 로만 토벌을 위해서라도 가야합니다.”
내가 그리 답할 줄 알고 있었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아이린이 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저도 갈 거예요.”
“...네?”
“황태자 전하에게 말씀드렸어요. 에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홀로 보내기에 걱정되니, 제가 같이 가도 되냐고요. 그리고 이렇게.”
품속에서 또 다른 서신을 꺼낸 아이린이 옅게 미소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허락도 받아왔죠.”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삼킨 채, 나를 바라보며옅게 미소 짓는 아이린을 그저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섭섭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그녀의 손에서 살랑거리는 서신이 아이린의 기분을 말해주는 것 같지 않은가.
하여 웃었다. 그녀가 좋다면 좋은 것이리라.
그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를 향해 기분 좋게 웃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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