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어둠을 가르고(1)
* * *
“......”
처음 마차를 탔을 때와는 달리, 공작저로 돌아가기 위해 탄 마차의 속은 불편한 침묵이 가득했다.
공작이 이렇게 되는 것에는 전조랄 것이 없었으니,
설령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나라 할지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아이린은, 나와는 달리 그저 이 갑작스러운 사실을 알게 된 아이린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공작이 쓰려졌다, 라.’
예상은 하고 있었고, 대비도 하고 있었다.
유리스의 가주인 가롯 유리스의 죽음은 아이린에게 닥칠 비극의 시발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원작에서는 공작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가문을 그대로 인계받고,
제게 충성을 다하지 않는 가신들을 수습하여 세력을 꾸려야 했다.
그 전에 겪었던 ‘질병’을 채 처리하지 못했기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녀가,
과연 그 일들을 멀쩡한 정신으로 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이라면...아마도 공작이 죽는다한들 원작처럼 흘러가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의 존재는 아직 필요했고,적어도 아이린은 아직 그를 필요로 했다.
아버지라는 존재, 설령 부녀 사이에 아무런 정이 없다하더라도.
가롯 유리스가 그리 쉽게 스러져서는 안됐다.
가롯 유리스가 아이린에게 했던 일들을, 이제 전부 들어 알고 있었다.
유리스의 차기 가주로 키우기 위해 했던 그 빌어먹을 행동들.
완벽을 추구하며 그녀에게 들이댔던 상상도 못할 잣대를.
그녀가 망가졌던 이유 중에 가주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이를 악물고, 홀로 가슴에 가시를 박아넣으며 그리 행동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일로 상처받은 아이린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아직 아이린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자신이 했던 그 모든 행동을, 단 한 마디에 사과도 없이 그렇게 죽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죽더라도, 그가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고 뉘우쳐 아이린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한 뒤여야 했다.
그러니, 가롯 유리스는 아직 죽을 수 없었다.
아마도 흑마법사과 연관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3년 전, 유리스의 공작령에서 처음 나타난 흑마법사도 사실 절멸과 관련되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던가.
3년 전부터 나타난 절멸. 그렇다면 이번에 쓰러진 공작도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저주’가 관련되어 있으리라.
저주, 아마도 지금 이 시점에 그 파훼법을 아는 사람은 단 한사람 뿐이었다.
황실에 요청한다면 또다른 파훼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좀 무리일 터였다.
흑마법사의 저주란, 흑마법을 잘못 이용하여 걸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로만을 조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가 괜히 꼬이면 시간이 꽤나 지체될 수도 있었다.
카심 백작에게 찾아간 것 또한 낱낱이 파헤쳐질 수도 있고.
‘...도움을 요청하면 와줄 사람이 한 사람 있긴 한데.’
이런저런 조사로 바쁜 그가 여기까지 와줄 수 있을 지.
허나 지금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아이린의 표정이었다.
늘 짓고 있는 무감한 표정, 허나 그 표정은 내가 알고 있는 평소의 아이린과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마치 처음 아이린을 보았을 때의 그 표정이라 해야 할까.
감정을 꾹 눌러 담아, 늘 반짝이던 푸른 눈동자가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금 가면을 꺼내 쓴 그녀의 모습을, 그리 오래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가씨.”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요.”
마차에 달린 창문 밖을 바라보던 그녀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리 대꾸했다.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수줍게 웃었던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그녀가 다시금 슬픔 속에 잠기려 하는 것이.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십니까.”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공작저까지 가기 위해선 족히 이틀이란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저런 상태의 아이린과 있으라니, 로페나도 없이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까지, 그녀의 관심이 조금이나마 나를 향하도록.
툭,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발달된 신체는 쉽사리 균형을 잡게 해주었다.
아주 가볍게,그렇게 아이린의 옆에 앉자 아이린이 그제야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이쪽을 봐주시는군요.”
“에반, 지금 뭐하는...”
“그런 표정을 보여주시는 것이 싫습니다.”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저런 말을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런 것보다는 솔직한 한 마디가 더 잘 먹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심란한 것을 알았지만, 적어도 조금은 희망을 품어주길 바랐다.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계시면, 보는 저는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
“저도, 똑같이 힘듭니다. 아가씨가 품고 계시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시면 저도...아픕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녀가 웃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연을 끊은 아비라 한들, 그런 사람이 쓰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쾌해할 자식은 없으니까.
내가 그랬었고,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 편린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마법사가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이라면. 아마 공작님이 어째서 쓰러지셨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아이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여러 의문을 담고 있으면서도, 내게 질문 하나 던지지 않는 그녀의 마음이 기꺼워서. 옅게나마 미소 지어보였다.
“저를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공작님이 몸 상하는 일은 아마 없을 거라고,아가씨가 마음에 상처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만들 저를,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
침묵은 길었다. 어쩌면 그녀가 내 말을 건방지다 여길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허나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렇게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푸른색의 보옥을 닮은 눈동자가 일렁였다.
깊은 심해의 바다처럼, 어두컴컴한 푸른빛을 띄는 그 눈동자가 담는 감정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황한 것처럼도 보였고, 살짝 놀란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침내 희미한 기쁨을 읽어냈을 때.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돼요.”
조심스레 입술을 달싹인 아이린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천천히 손이 움직인다. 무릎에 있던 손이, 그렇게 천천히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끄러워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내 손 위에 그 자그마한 손을 겹친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믿고 있어요. 내가 누군가를 믿는다면, 그건 그대 한사람 뿐이니까.”
툭, 가볍게 내 뺨을 건드린 그녀가 옅게 미소 지었다.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후련해 보이는 표정으로.
#
“너는, 완벽해야 한다.”
아마도 첫 기억은 그것이라 생각한다.
가롯 유리스, 유리스의 가주였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게 한 말.
어린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때는 완벽이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다. 남들의 존경어린 시선을 받는, 타고난 위엄을 타고난 그처럼 되고 싶었다.
아마도 그때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아버지의 행동을 말렸을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내가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셨으니까.
나중에 웃을 수 있기를, 늘 행복하기를. 좋은 사람을 만나, 그렇게 꿈만 같은 사랑을 그릴 수 있기를.
허나 어머니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린.
그저, 흐릿한 기억의 편린 속에서 웅얼거리는 말만이 약간의 기억과 함께 맴돌 뿐.
아버지가 말한 완벽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완벽해야 한다. 단 하나의 결점도 허락하지 않는다.
6살이란 나이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지만,
다락방 속에 며칠 있다 보니 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 그 개념이었다.
차갑고, 삐걱거리는.
빛이라곤 다락방의 작은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이 전부인 그 곳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잘못했다고 울며 문을 벅벅 긁던 그 아이는.
결국 며칠 동안 그 다락방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 비좁은 곳에서 나왔을 때 아버지의 표정이 어땠더라,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를 타박하는 것처럼도 보였고, 나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던 아버지의 표정은...그래, 슬퍼보였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 스스로 행한 일이면서, 왜 그렇게 슬퍼하는지. 무언가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꼭 허기가 진 것처럼, 텅 비어버린 가슴 한켠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 뒤로 나를 돌보던 시녀가 바뀌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하루,
남들은 성인이 되어서야 익힌다는 학문을 접했다. 마법, 검술, 심지어 읽기조차 힘든 외국어를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쌓인 피로는 마법사가 와서 풀어주었다.
허나 어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아닌, 그저 지친 몸이 휴식하기 위한 잠이었건만.
누구도 자신에게 그런 배려를 베풀지는 않았다. 묵묵히, 그저 묵묵히 자신을 지켜볼 뿐.
그 시선이 싫었다. 공작의 유일한 여식이라며,
차기 소가주라 부르는 그들의 시선 속에 섞인 묘한 기대감이 부담스러웠다.
그토록 미소를 짓던 그들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했을 때 보여주는 시선이 그토록 차가워서.
그런 그들이 싫었고, 더 나아가 아버지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오했다. 미워했고, 그가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품었다.
완벽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영애들처럼 생각 없이 떠들며 악세사리를 자랑해보고 싶었다.
마음에도 없는 약혼자가 아닌, 정말로 마음이 맞는 사람과 만나 사랑이란 것을 논하고 싶었다.
허나 아버지가 말한 완벽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작님이, 쓰러지셨습니다.”
허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이 품은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시야가 어두워지는. 가슴이 울렁이고,
숨이 차올라 호흡하는 것을 방해하는 그 감정은 분명 슬픔이란 것이었다.
‘내가 왜...’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어찌하여 그런 감정을 품는 것인지,
분명히 증오했던. 그리고 끔찍하게 싫어했던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것에 이토록 동요하는 것인지.
그런 사람도 아버지라 내심 생각하고 있던 것인가.
속으로 조소를 흘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전조도 없던 아버지가 쓰러진 이유.
아마도 흑마법이 아닐까.
가롯 유리스또한 익스퍼트에 다다른 한 명의 기사였다.
비록 로만 공작이나 에반처럼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그 또한 제국을 수호하는 한 사람의 기사로써 나름의 무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병환에 쓰러진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런 전조조차 없었다. 자신에게 로만가에 대한 자료를 주었던 사람이 아버지였던 만큼, 그때까지 그가 건강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그리고 답을 하지 못했던, 한 가지의 질문도. 문득 떠오른 그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린다.
마차에 놓인 창문에 비친 자신의 표정이란, 전과는 달리 형편없게만 보였다.
조금의 감정조차 비추지 않는 무감한 얼굴. 저도 모르게 지어진 그 표정에서,
어쩐지 과거의 자신이 보이는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것을 물었을까.
늘 하던 것처럼, 제게 요구하던 것이나 말하던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표정이란, 자신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던 그 표정은 분명 아버지가 지을 법한 표정이 아니던가.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왜 자신에게 그랬던 것이냐며, 왜 어린 자신에게 그런 완벽을 요구했냐며.
다락방의 문을 긁다 남은 흉터가 아직 손끝에 작게 남아있었다.
허나 쓰러진 사람을 붙잡고 그런 것을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 흑마법사의 저주라면, 어쩌면 아버지는 죽을지도 몰랐다.
흑마법사의 저주를 파훼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설령 저주를 시전한 흑마법사를 처치한다한들, 저주는 여전히 남아 대상을 괴롭힌다.
그렇게 고통에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죽는 것이 저주가 아니던가.
입안에서 비릿한 맛이 감돌았다. 어느덧 입술을 깨물어, 깨물린 살이 찢어져 조금씩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쓰러진 제 아버지를,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부딪혀 흩어진다.
입술을 짓씹으며, 그렇게 창문 밖을 바라보는 시야가 천천히 흐릿해질 때즈음.
툭,
바로 자신의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그렇게 상념이 흩어진다.
익숙한 체온이었다. 익숙한 사람이었고, 익숙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그가 지닌 녹안이 자신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새로운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흐릿해진 시야가 맑아지며, 자신의 시야에 오로지 한 사람만이 담긴다.
에반 프리드, 자신의 기사는. 오늘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이쪽을 봐주시는군요.”
“에반, 지금 뭐하는...”
“그런 표정을 보여주시는 것이 싫습니다.”
에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단 한번도 제게 ‘싫다’라고 한 적이 없던 그가 처음으로 싫다는 얘기를 꺼냈다.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길래,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리면서도,
시선은 언제까지고 그를 향했다. 입꼬리가 수평을 그려, 어쩐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여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 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계시면, 보는 저는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
“저도, 똑같이 힘듭니다. 아가씨가 품고 계시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시면 저도...아픕니다.”
에반이 눈썹을 찡그렸다. 처음 보는 표정에 놀라기도 잠시,
이내 그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늘 반짝이던 녹안이 일렁여, 그 속에 비치는 것은 분명 슬픔이었기에,
저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이내 허공을 움켜쥐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감정이란 안도에 가까웠다.
그가 자신을 이해하려 한다는 게, 자신을 생각하며 눈썹을 찡그리는 것이 기껍게만 느껴졌다.
알고 있는 마법사가 있다며, 어쩌면 해결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에반을 바라보았다.
혹여 자신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염려가 섞인 그 시선에 가슴이 간질거리는 듯 했다.
에반은, 자신을 믿어달라고 말했다.
늘 그를 믿고 있는 마음을 모르는 것일까. 섭섭했지만, 간절해보이는 그 눈동자가 마음에 동했다.
녹안에 담긴 것은 오로지 자신이었다.
그런 사람의 말을, 어찌하여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애초에, 처음부터 그를 믿고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곁에 있으면 괜찮을 테니까.
에반이 자신의 옆에 있다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으니까.
툭,
그의 뺨을 살짝 건드리며, 조금은 후련하게 미소지어 보일 수 있었다.
"믿고 있어요. 내가 누구를 믿는다면, 그건 그대 한 사람뿐이니까."
앞으로도 에반이 자신의 곁에 있기를.
그것 하나를 간절히 소망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