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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41화 (41/181)

〈 41화 〉 서임식(1)

* * *

“이제 진짜 괜찮으신 거 맞죠? 상처 다 나으신 거 맞구요? 어디 또 아픈데 숨기고 있는 건 아니죠? 만약 그런 거면 아가씨한테 말해서 기사님 묶어버리라고 할 거니까 솔직하게 말해요.”

“이제 괜찮다니까.”

솔직히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몸 상태가 썩 괜찮아진 건 사실이었다.

처음 내 모습을 봤던 로페나가 얼마나 울었던가.

지금이 되어선 울진 않았지만, 그래도 날 볼때면 울상을 짓는 것이 영 마음이 불편했으니까.

여전히 로페나는 불안한 듯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저번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지만, 목 부근에 있는 상처는 아직까지 채 아물지 않고 남아 로페나가 그걸 볼 때면 표정이 어두워지곤 했다.

“진짜 괜찮아.”

“...알아요, 괜찮은 건. 그래도 자기가 괜찮은 거랑 보는 사람이 괜찮은 거랑은 다르다구요.”

어쩌면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날 걱정해주는 사람이 둘이나 된다니. 상황만 평범했다면 행복에 겨워했겠지.

물론 지금은 신경 쓸 게 많으니 마냥 기뻐할 수는 없지만.

로페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자, 한숨을 내쉰 녀석이 입술을 삐죽였다.

“아, 진짜. 사람이 조금 걱정을 해주면 몸을 챙기란 말이에요. 도대체 왜 맨날 다쳐서 오는 건지 모르겠네.”

“왜 네가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는데.”

“서임식이 코앞인 사람이, 네? 그렇게 몸에 상처가 가득하면 어떡해요. 아가씨 체면이 말이 되겠어요? 뭐, 얼굴에 상처가 안 난 건 다행이긴 한데요.”

“어쩔 수 없잖아. 너도 트롤이랑 한 번 싸워볼래? 안 다치고 싸울 수 있나.”

“무, 무슨 그런 억지를 부리면 어떡해요!”

화를 내는 로페나에게 나는 그저 어깨를 한 차례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그럼에도 다쳤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흉터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었다.

그 트롤은, 지금 생각하더라도 과연 승산을 따질 수 있을지 의심이 들 만큼 강했으니까.

“눈 오네.”

창문을 바라보자 보이는 것이 눈이라서, 내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로페나가 내 시선을 따라 창문을 바라보았다.

올해는 눈이 적게 내리는 편이라고 했었나. 그럼에도 순식간에 소복하게 쌓이는 눈은 천천히 세상을 덮고 있었다.

조금 드러났던 흙이 다시 눈에 덮여 하얗게 물들고, 눈을 내리는 구름에 달마저 가려져 주변이 어두워진다.

허나 금방 녹겠지. 이제 이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저 눈이 모두 녹을 때면, 서임식이 모두 끝나고 내가 아이린의 정식 호위 기사가 될 때면.

아마도 봄일 터였다.

어느새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로페나의 눈에 비친 건 동심이라,

옅게 웃으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

“...하아.”

뜨거운 차를 머금었던 입김이 새어나오자, 이내 하얗게 변해 창밖에서 흩어졌다.

눈이 가득 쌓인 정원, 일부러 눈을 치우지 않아 균일하게 쌓인 눈에는 이따금 자그마한 발자국이 하나둘 찍혀있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면 보이는 건, 역시나 이 저택에서 가장 어린 아이.

“로페나.”

“악, 들켰다.”

이제 곧 생일이라 16살이 되는 주제에 왜 저러는 건지.

그 마음에서 동심을 잃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철이 들지 않았음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아마 걸리면 혼날 것을 자신도 알고 있을 텐데.

저 구석에서 빨갛게 변한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사람을 만드는 로페나를 보자 절로 웃음이 피식하고 새어나왔다.

창문의 턱에 팔을 걸친 채 그런 로페나를 빤히 바라보자, 녀석은 손을 허공에 휘휘 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가락을 입술에 걸친 채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작았다.

아마 다른 사람한테 들키는 것을 우려하는 건가. 그러면 애초에 이런 짓을 하질 말았어야지.

“뭐.”

“아, 아니. 거기서 그렇게 보고 있으면 이쪽으로 시선이 쏠리잖아요. 저리 가세요. 저도 곧 갈 거란 말이에요.”

“싫은데?”

“눈사람 관심 있어요? 만들 거면 빨리 이쪽으로 내려오던가요. 거기 있으면 또 정원사 아저씨가 와서 뭐라 한다구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로페나가 저런 짓 하는 걸 구경하는 게 재밌는 건데.

눈을 가늘게 뜬 채 킥킥거리며 웃자, 녀석은 눈살을 한껏 찌푸린 채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창문 닫아요.”

“나 경치 구경하는 거 안 보여? 갑자기 왜 그래.”

“아까부터 계속 제 쪽만 보고 있잖아요. 막 어린 여자한테 관심 있고 막 그래요?”

“...진짜, 못하는 말이 없네.”

따악­!

“아!”

로페나의 이마를 가볍게 때리자, 이내 녀석의 머리가 뒤로 넘어가 눈밭에 풀썩하고 쓰러졌다.

조금 세게 때렸나?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어린 애를 좋아한다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부류가 그런 사람인데 어찌 그러겠는가.

로페나는 그저 로페나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방에 있는 인형을 바라보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귀엽다,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동생 생각도 조금 나고.

로페나를 볼 때면 생각나는 것은 늘 동생이었다.

내게 딱 하나 있던 여동생. 특히나 나한테 딱밤을 맞을 때면 보이는 반응은 놀라우리만치 똑같았다.

붉어진 이마를 움켜쥔 채, 금방이라도 울 듯 일렁이는 눈을 가늘게 뜬 저 모습이.

“진짜 저번에 눈싸움할 때부터 나한테 왜 그래요?”

­진짜 저번에 눈싸움할 때부터 나한테 왜 그래?

참 신기하게도 닮아서, 로페나한테 무어라 화를 내질 못하겠다.

크리스 경은 간혹 로페나가 내게 너무 버릇이 없다며 혼 좀 내라고 했지만,

이렇게 내게 짜증을 부리며 눈을 이리저리 던지는 모습이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미안해.”

“지금 미안하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여기 이마 부은 거 안 보여요? 아무리 기사님이여도­”

“녹인 초콜릿 좀 먹을래? 좀 이따 요리장한테 부탁할 생각인데.”

“부탁드려요.”

순간 멍하니 로페나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염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방금까지 그렇게 화를 내다 태도를 확 바꾸다니.

“추우니까 이제 그만 들어와. 만약에 걸리면...뭐, 내가 했다고 할게.”

“진짜요?”

“그래, 창문으로 들어올래? 잡아줄게.”

“...흠, 고마워요.”

뾰루퉁한 표정은 어디 갔는지,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잡은 로페나가 이내 안 쪽으로 들어왔다.

머리에 쌓인 눈을 조심스레 털어주기도 잠시,

갑자기 재채기를 내뱉은 녀석이 코를 훌쩍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가끔 생각하는 건데, 기사님은 저한테 특히 잘해주시는 것 같아요. 리제 언니나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지 않잖아요.”

잘해준다, 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로페나에게 한없이 물러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그렇게 보여도 무리는 아니겠지.

나보다 한참 작은 로페나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자, 녀석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냥, 동생 같아서 그래.”

그게 전부였다. 내가 로페나에게 물러지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돌아가도 다시 볼 수 없는 녀석이었으니 이렇게 눈앞에 있을 때 잘해주고 싶은 거겠지.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뿐이었다.

로페나의 머리에 올렸던 손을 떼어내자, 로페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삐죽거리던 입술을 어느새 쏙 들어가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눈에서 얼마나 뒹굴며 놀았던 건지, 살짝 젖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가요. 초콜릿 먹고 싶으니까.”

“...그래.”

쓰게 웃는다. 과거의 감상에 너무 젖어있는 건 위험했다.

홀로 살 때도 동생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했는데, 로페나를 볼 때면 자꾸 동생 생각이 떠올랐다.

눈을 비비며 다시금 로페나를 바라보았다. 로페나의 머리색은 갈색이었다.

잘못 보면 주황색을 연상시킬 만큼이나 밝은 갈색. 동생과는 달랐다.

그러니 떠올리지 말자, 그만 과거를 잊을 때도 되지 않겠는가.

잠시 지그시 감긴 눈을 주무르다가, 이내 힘겹게 숨을 토해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사뿐거리는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로페나를 보자 다시 입꼬리가 올라가서,

어깨를 한차례 으쓱인 채 로페나의 옆에 다가갔다.

무언가에 들뜬 듯, 걸을 때마다 어깨가 씰룩이는 모습을 보니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초콜릿이 좋아?”

“당연하죠. 귀하잖아요. 아가씨의 전속 시녀인 저지만, 아무래도 자주 먹을 수는 없으니까요.”

“...종종 가져다줄게.”

“지인짜요?”

말이 길게 늘어나는 것이 어째 꽤 놀란 것 같다.

그깟 초콜릿이 무어라고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이제 곧 로페나의 생일이었으니, 그때 뭘 사줄지 조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고작 초콜릿으로 이렇게 좋아하는 데 선물을 받으면 도대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머리카락처럼 갈색을 띄는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가슴팍에 모인 앙증맞은 두 손이 꼭 쥐어져서, 나는 한 차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자그마한 입이 헤, 하고 벌려진다. 누가 봐도 잔뜩 신난 로페나가 발을 동동 구르더니,

이내 내게 손을 내밀어 가볍게 툭 하고 건드려주었다.

“몰랐는데, 기사님 성격 되게 좋은 것 같아요.”

"그걸 이제 알았어?“

그건 좀 섭섭한데, 장난스레 눈을 가늘게 뜨자 로페나가 황급히 내 팔을 끌어안으며 한껏 웃어보였다.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동생이 이런 행동을 자주 보이진 않았는데. 역시 동생과 로페나는 달랐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져서, 나는 전과는 달리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제야 내가 장난인 걸 알았는지, 팔에서 떨어진 로페나가 손가락으로 내 팔을 쿡 찌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장난치지 마요. 놀랐잖아요.”

“...장난 아닌데?”

“아, 진짜.”

그렇게 웃기도 잠시,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발소리이지 않은가.

로페나또한 내가 고개를 들자 누군가 온다고 생각한 건지, 나를 따라 시선을 돌리곤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아가씨?”

“...어디에 있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네요.”

“찾으셨습니까?”

“얘기할 게 있으니까요.”

작게 고개를 숙이자, 손을 살짝 든 아이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평소에 자주 입는 검은색의 드레스가 아닌 푸른빛의 드레스라니.혹시 어딘가 외출이라도 하는 것일까.

내가 자신의 옷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는지,

자신이 입은 드레스를 잠시 내려다본 아이린이 나를 쳐다보았다.

“...별로에요?”

“아니요. 잘 어울리십니다.”

“다행이네요.”

“평소에 입으셨던 것과 조금 달라서 봤습니다. 음, 뭔가 색달라 보여서 좋네요. 눈동자 색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근데, 하실 말씀이 있다는 건...”

푸른 드레스를 보자 왠지 그녀의 눈동자색이 떠올라 그렇게 말하자,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확실히 늘 어두운 색만 입던 사람이 조금 바뀌니 색다르긴 했다.

나중에는 다른 색의 드레스를 입은 모습도 볼 수 있을까.

허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흩어냈다. 할 얘기가 있다하지 않았던가.

그에 대해 묻자, 아이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서임식에 관한 이야기에요.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으니, 그대가 알아야할 것들이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로페나, 요리장에게 가서 내가 달라고 했다 말하면 받을 수 있을 거야.”

“잘 먹을게요.”

그 말을 속삭인 로페나가 사라지자, 그런 녀석을 빤히 바라본 아이린이 넌지시 내게 시선을 던졌다.

꼭 내게 무언가 답을 요구하는 것 같은 시선에 갸웃거리자, 눈살을 찌푸린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로페나에게 무어라도 준 건가요?”

“아, 녹인 초콜릿을 주기로 했습니다. 로페나가 단 걸 좋아하니까요.”

“...음.”

무언가 불만스럽기라도 한 걸까.

로페나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쳐다보던 아이린은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이렇게 로페나와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터였다.

서임식을 하면 정식으로 그녀의 호위 기사가 된다는 얘기였고,

수습인 지금과는 달리 항상 그녀의 옆에 있어야 할 테니까.

물론 휴가라도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호위 기사가 휴가를 받을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실 이번 서임식은 여태 있어왔던 것들과는 달리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성인식조차 치르지 않은 기사가 정식으로 임명되는 것과 더불어, 그 유리스의 소가주인 아이린의 호위 기사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각오는 했다만, 각오를 했다고 한들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따금 공작저를 거닐 때 마주치는 기사들의 시선 속에 섞인 것은 질시였다.

운이 좋았다, 라며 다 들리도록 말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그 옆에서 동조하며 낄낄거리던 이들도 있었으니까.

따지고 묻자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허나 구태여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러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에도 저런 시선은 참 많이도 받았으니,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운, 재능 따위에 가려진다.

아무리 해명해도 그들 눈에는 운과 재능으로 이룬 무언가로 보일 뿐이었다.

그냥 무시하는 것이 제일 편했다.

“들어와요.”

그렇게 생각하며, 걷기를 한참. 어느새 아이린의 집무실에 다다르자 아이린이 문을 열며 말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늘 보았던 익숙한 방안의 풍경.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져 있었고, 아이린이 애용하는 찻잔은 커다란 책상 위에 다즐링을 담은 채 놓여 있었다.

다즐링 향을 맡을 때면 늘 마음이 진정된다.

처음에는 그토록 어색한 공간이었건만,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방을 바라보자 이내 아이린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요, 얘기할 게 꽤 많거든요.”

서임식 말고도 얘기할 것이 있던가.

내가 의자에 앉자,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이린이 이내 고개를 숙여 탁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탁자에 놓인 것은 늘 있는 찻잔과, 설탕으로 만들어진 쿠키가 담긴 접시.

그 쿠키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이린은, 이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로페나랑 꽤 친해진 것 같더군요. 좋아하는 것도 챙겨주고."

"...뭐, 그냥 동생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죠. 괜히 챙겨주고 싶은 아이니까요."

"동생이라."

잠시 그렇게 중얼거린 아이린은, 이내 다즐링을 한차례 홀짝인 뒤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푸른 눈에 깃든 것은 불안이라,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아이린을 응시했다.

갑작스레 불안해할 일이 무엇이 있던가.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찻잔을 내려놓은 아이린이 내뱉은 말에 눈이 크게 뜨였다.

"아무래도 이번 서임식에, 황태자가 올 것 같더군요."

"...네?"

"그대를 만나러 오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헛웃음이 지어진다. 몇 년간 마주치지도 못할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난데없이 나타난 황태자라는 이름이, 꽤나 거슬리게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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