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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40화 (40/181)

〈 40화 〉 눈이 붉게 물들 무렵(6)

* * *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키자, 아이린이 나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달빛에 비친 눈알이 새빨개서,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이 보인다는 생각에 검으로 땅을 짚은 채 살짝 웃어보였다.

“우셨습니까?”

“...안 울었어요.”

그러면서 제 눈을 비비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나저나 아직 시야가 흐릿했다.

이대로 있다간 또 기절하리라. 잠시 눈을 크게 끔벅였다가, 이내 부릅뜬 채 숨을 내뱉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한계까지 마나를 끌어 쓴 탓이겠지. 트롤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싸웠더라면 지는 쪽은 나였을 테니까.

입안에 비릿한 맛이 감돌았다.

목 안에 울컥거리며 치솟아 오른 피를 뱉어내자, 아이린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상을 입은 거라면, 빨리 치료를­”

“괜찮습니다. 그냥 조금 무리를 해서 내장이 꼬인 것뿐이니까요.”

솔직히 이런 말을 덤덤하게 내뱉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하지만 정말로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내장이 꼬인 정도, 뭐 몇 시간이면 나을 상처가 아니던가. 트롤이 내지른 공격은 전부 피했다.

얼굴이 조금 스치고 도끼를 튕겨내며 내상을 입긴 했지만, 상정했던 것보다도 훨씬 덜 다친 것이라 할 수 있겠지.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 말했지만 아이린의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 마음이 기꺼워서, 나는 슬쩍 웃으며 아이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렇게 아닌 척 걱정해주는 모습이 꽤나 놀랍지 않은가.

가면을 쓴 표정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푸른 눈동자에 일렁이는 것은 따스한 걱정이라,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한 차례 으쓱여보였다.

“...진짜 괜찮아요.”

“걱정 안 했어요.”

“압니다. 그냥 한 번 말해 봤어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자, 아이린이 돌연 눈살을 찌푸린 채 나를 째려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좋을 텐데, 누가 봐도 날 걱정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어쩌면 그렇게 시인하기 부끄러운 걸 수도 있었다.

그런 아이린을 빤히 바라보자, 이내 시선을 돌린 그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에 로만을 조사할 거예요. 혹시 아델 경한테 이상한 점이 있진 않았나요? 물론...저렇게 쓰러져 있는 걸 보아 크게 관련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요.”

“...뭐, 처음에 맞고 날아가신 게 전부라 이렇다 할 점은 못 느꼈습니다. 그런데, 원래 로만 가의 눈이 보라색입니까?”

아델이라는 이름을 듣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데려오고 싶지도 않았건만, 자기가 와서 싸운다고 해놓고선 처음부터 나가떨어지니 괜히 트롤에게 자신감만 불어 넣어준 꼴이 아니던가.

다행히 이기긴 했으나, 그가 없었다면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몰랐다.

다만 내가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지닌 보랏빛의 눈동자였다.

트롤이 지녔던 눈동자 색또한 보랏빛.

나중에 목을 베자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 걸 보아 아마도 흑마법이 있는 동안 보랏빛으로 물든 것 같았는데,

아델의 눈동자 또한 보라색이었으니 어쩐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아이린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마 원래부터 보라색이었을 거예요. 그런데...아델 경이 처음에 나가 떨어졌다면, 저 트롤은 순전히 그대가 잡은 거겠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잠시 트롤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이린을 쳐다보다가, 이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과장스럽게 웃는 그 웃음소리란, 아무래도 크리스 경이리라.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역시 크리스 경이었다. 내 어깨를 툭툭치며 다가온 크리스 경은, 이내 씨익 웃으며 아이린과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사이가 꽤나 좋으시군요. 막, 그렇게 안고 그래도 되는 겁니까? 누가보면 연인이라 착각해도 모르겠습니다.”

“...봤습니까, 그걸?”

“물론 나밖에 안 봤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델 경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으니. 사실 멀리서 부터 네가 그냥 잠든 걸 알고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아가씨가 워낙 심각해서 무어라 하질 못하겠더라고.”

“크리스 경.”

아이린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입안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더없이 싸늘해서, 그 목소리에 크리스 경이 어색하게 웃은 채 머리를 긁적였다.

“음...뭐. 사이가 좋으면 그것 나름대로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아가씨가 누굴 그렇게 걱정하는 건 저도 처음 봤으니까요. 호위 기사와 사이가 좋은 것이 결코 나쁘다 할 수는 없겠죠.”

“조용히 하세요. 머리 울리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한숨을 내뱉은 아이린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보이는데, 아무래도 크리스 경이 옆에 있으니 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쩐지 귀 끝이 붉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까 끌어안은 것을 들킨 게 영 부끄러웠던 건지.

내가 시선을 마주친 채 피식 웃자 아이린이 차갑게 대꾸했다.

“뭘 웃나요.”

“...아니, 그냥. 힘이 빠져서요.”

잠시 나를 흘겨보던 아이린이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자, 나는 크리스 경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봤다고 곧이곧대로 얘기하시면 어떡합니까? 안 그래도 수줍음이 많으신 분인데.”

“뭐...나는 보기 좋았다고 그렇게 말한 건데.”

“보기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놀리고 싶었던 거 아닙니까?”

“그것도 절반은 맞지.”

하도 어이가 없으니 웃음만 나온다.

내가 입을 작게 벌리자, 크리스 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내 익살스럽게 웃어보였다.

“아무튼 빨리 쫓아가기나 해라. 가서 토라진 거 달래드려야지.”

“...그래야죠.”

그 말을 내뱉고 나니 왠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아이린이 끌어안은 것에 대해 꽤나 당황하고 있던 차였다.

갑자기 사람을 그렇게 덥썩 끌어안는데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코에 진하게 풍겨오던 장미의 향이 아직 아른 거려서, 이곳이 숲이 아니라 장미가 가득한 정원이라 하더라도 믿을 수 있을 터였다.

몸에 닿았던 그 따스한 체온, 나를 바라보며 어김없이 흔들리던 눈동자.

그리고 미약하게 전해져오던 심장의 박동이 가슴을 간질이게 만들었다.

잠시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지만, 그럼에 두근거리는 심장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아 쓰게 웃었다.

사람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면 도무지 어찌 반응해야 할지. 이번에는 어째 넘어갔지만 다음엔...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긴 조금 힘들지 않을까. 비틀거리며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린을 향해 옮기는 발걸음은 이전처럼 무겁지 않았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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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숲은 위험합니다. 그렇게 혼자 가시면 제가 불안해집니다.”

“...그럼 빨리 따라왔어야죠.”

묘하게 툴툴거리는 것이 퍽 귀엽게 보여서, 나는 씰룩이는 입꼬리를 손으로 매만진 채 아이린을 보던 시선을 슬쩍 돌렸다.

“로페나는 공작저에 두고 오신 겁니까? 아까부터 영 보이질 않아서 말이죠.”

“같이 오려던 것을 말렸어요. 혹시 트롤이 있다면 로페나를 지키기 힘들 테니까요.”

로페나의 얼굴이 어째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리숙한 녀석이었으니, 아마 내 모습을 보곤 울지도 모르겠다.

아이린도 울지는 않았지만 거의 울기 직전까지 않았던가.

확실히, 그녀가 나를 그렇게나 걱정했다는 것이 조금 놀랍긴 했다.

물론 조금 꺼림칙한 점이 있다면, 아이린이 나를 바라볼 때 꼭 누군가와 겹쳐보고 있다는 점인데.

혹여 전에 이런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이 아닐까.

허나 직접 그녀에게 물어볼 수는 없으니, 나는 입맛을 다신 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분명 정상으로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꽤나 밝았는데,

이렇게 어두워진 걸 보니 시간이 흘렀다는 걸 비로소 알 것도 같았다.

이럴 거면 바닥에 눕지 말고 조금 버텨볼 걸 그랬나.

하늘에 깔린 별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서, 꼭 내가 트롤과 싸운 것이 그저 환상처럼만 느껴졌다.

쟌지르에게 들었던 이야기. 내 혈통과 마나에 대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또한 환상일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나를 끌어올려봤지만, 이제는 잔불만 겨우 남은 마나는 반응만 할 뿐 몸 밖으로 나타나진 않았다.

몸이 휘청거려 이내 바닥에 주저앉는다.

쓸데없이 힘만 뺀 격이라, 갑작스레 주저앉자 그 소리에 놀란 아이린이 나를 바라보며 이내 입술을 작게 벌렸다.

“에반?”

“돌부리에 걸렸습니다. 별 거 아니...윽.”

그냥 별 거 아니라 말하며 자연스럽게 일어나려 했는데, 아무래도 뼈에 문제가 있었는지 가슴뼈가 따끔거렸다.

아까 트롤과 싸우면서 스치기라도 했던 건가.

그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자, 어느덧 내 앞에 다가온 아이린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다쳤으면 아까 마법사들한테 말해서 치료를 받았어야죠. 도대체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걱정 안 하셨다면서, 왜 그렇게 울상을 지으십니까.”

입술을 삐죽이며 그리 대꾸하자, 아이린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내가 너무 토라진 것처럼 보였을까. 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을 텐데, 하고.

어쩌면 그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고, 그런 한 마디를 듣고 싶은 이 욕심에 쓰게 웃는다.

가슴이 고통이 사라졌을 때 즈음, 나는 아이린을 바라보다 이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별이 하늘을 스쳐 지나간다. 흐드러지는 달빛에 파고든 그림자가 우리의 사이를 갈랐을 때. 아이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걱정했어요.”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아이린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돌린 채 입을 다물었다.

허나 다시금 힐끔 나를 쳐다본 그녀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많이 했어요, 걱정.”

“......”

“다치지 말라고 손수건까지 메어줬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했을까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따금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려와, 이내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걱정을 했다는 말일 뿐인데도. 그 목소리가 가슴을 간질여 이내 마음에 닿는 듯 했다.

걱정 안 했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녀가 부끄러워서, 그저 그렇지 않았던 척 하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막상 그 말을 직접 들으니 표정이 조금씩 무너져 내려갔다.

작게 벌려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새어나와, 겨울의 찬바람을 타고 이내 하얗게 흩어져 스러졌다.

그림자가 걷어진다. 나무 사이로 들어온 빛이 아이린을 비추어, 그 푸른 눈이 어둠 속에서 더욱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시선이 닿는다. 가슴을 꿰뚫어 속마음을 모두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만 같은 그 푸른 눈에 숨을 삼켰다.

“...아가씨.”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는데. 당장이라도 무어라 내뱉으려 입이 근질거렸는데.

막상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그런 의미 없는 중얼거림이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몸을 휩싼 감정은 명백한 당황이라, 그저 눈을 끔뻑거리며 아이린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허나 아이린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기가 할 말은 전부 말했다는 듯, 미련 없이 등을 돌린 그녀가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그저 조용히 자리에 일어서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무언가 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서있는 그녀의 옆에 이렇게 서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의 색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비록 얼굴이나 몸엔 피가 잔뜩 묻어 이미 딱딱하게 굳을 정도였지만,

손수건 만큼은 처음 받았을 때처럼 새하얀 색을 띄고 있어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다치지 말라한 말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약속은 지킨 건가.

“돌려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손수건이 들린 내 손을 바라본 아이린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주는 것이 무엇이냐며,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럽히지 말라하시지 않았습니까. 품속에 넣고 싸웠습니다.”

“...그 와중에, 이런 걸 신경 쓰고 있었나요.”

“아가씨가 말씀하신 거니까요. 평소에 늘 가지고 다니시던 것 아닙니까.”

“손수건은 많아요. 애초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저한테는 소중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옅게 웃어보였다.

지금 하는 말이 전부 진심이라며, 그녀와 조용히 시선을 마주친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나한테는 소중했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하며 그런 표식을 주었다는 것이 처음이었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 처음이었으니까.

“처음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걱정해주는 것이.”

타고난 재능이란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악보를 보면 그 모든 음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음표를 볼 때면 새로운 음이 귓가에 들려온다는 것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에반 프리드가 아닌 나의 기억.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것은 에반과 나 사이의 공통점이었다.

허나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 재능이 내 삶을 옥죄여 결국 무너트렸다는 점이 아닐까.

재능이 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뛰어난 모습을 보였기에,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실수를 하면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이었고, 박수를 치던 이들은 손가락을 들어 나를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실수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일까. 왜 내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늘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일이 틀어지곤 하는 법이었다.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실수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까.

이제는 피아노가 아닌 검을 잡았지만, 그리고 그 재능 또한 충만하나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다.

아무리 마스터라 한들 화살이 심장에 꽂히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나라고 한들 언제나 모든 적들과 맞서 이길 수 있겠는가.

가슴 속에 늘 있는 것은 불안함이었다.

만약 내가 언젠가 실수하여 무너진다면, 혹여 내가 아이린에게 닥칠 비극을 막지 못한다면.

이따금 새벽에 나와 검을 휘두르는 것은 내가 부지런해서가 아닌, 그저 잠에 들지 못해서였기 때문이었다.

흔들린다. 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릴 때면, 이를 악물며 더욱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그런 내게, 그녀가 해준 걱정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 지 그녀는 알고 있을까.

어쩌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단지 그 말 한 마디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마음을 포기하려 고민 할 만큼.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그 말 한 마디였다.

다치지 말라고, 걱정했다고.

그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어 노력했던 소년은 아직 여기에 있었기에,

그렇게 아이린을 바라보며 다시금 미소 지어보였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린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살짝 놀란 것인지, 이전보다 조금 크게 뜨인 눈이 내게 향했다.

“...돌려주지 않아도 돼요.”

허나 그런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꽤나 의외인 터라, 나는 당황한 나머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니, 갑자기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렇게 말한 아이린은 이내 앞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를 내가 가만히 그 자리에 선 채로 바라보자, 잠시 뒤등을 돌린 아이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가지고 있어요. 더러워져도 되니까, 그냥 평소에도 늘 품 속에 지니고 있어요.”

“하지만­”

“...늘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처럼 또 무모하게 혼자 싸우지 말고, 다음부터는 좀 멀쩡하게.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

“......”

“조금 평범하게...웃으면서 돌아와요.”

어둠에 젖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잘게 떨리는 입꼬리를 숨긴 그녀가 다시금 고개를 돌렸음에도, 눈 앞에 보였던 그 푸른 빛을 나는 쫓고 있었다.

이윽고 적막이 흐른다. 고요한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운율이 주변을 감싸,

하얀 별빛과 검은 어둠으로 물든 숲이 마치 피아노처럼 보였다.

찌르르, 하고 울리는 풀벌레 소리가. 이따금 들려오는 흐르는 물 소리가.

그 백색의 소음 속에서도 들려오는 아이린의 숨소리가 바람에 섞여 하나의 운율이 되어 흐른다.

하여 웃었다.

그토록 싫어했던 음악이,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 선율이 지금에 와서는 그 어떠한 소리보다도 아름답게 들려서.

"꼭 그리 하겠습니다."

평범하게.

그렇게 웃어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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