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다과회(4)
* * *
“내가 뭘 잘못 한 거지.”
나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에 자리를 비킬까 묻자, 아이린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내가 오늘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대뜸 자신이 한심하냐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지 않나,일부러 모른척하고 있는 영애들의 시선들을 언급하고 있지를 않나.
오늘 하루를 되짚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아이린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나름 일정도 빡세게 유지했는데 말이야.
그런 탓에 오늘 호위 임무로 처음 마주쳤건만, 그렇다고 다과회에서 자신이 어떤 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아이린의 영문 모를 행동이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건 조금 너무하지 않은가.
이쯤 돼서 떠오르는 생각이란, 어쩌면 그녀가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처음 만나서 호칭을 틀린 것도 그렇고, 괜히 아이린의 홀로 있는 것이 외로워 보여 저 혼자 주절거린 것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 그 다음 날이지 않던가.
“이런.”
아무래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험이고 자시고, 애초에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갔다.
나를 볼 때면 그 푸른 눈이 더욱 시려지는 것이, 그 붉은 입술에서 악담이 튀어나오는 것이.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정원 한 구석에 걸터앉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나름 신경써준다고 혼자 좋아했건만, 정작 그녀의 속마음을 헤아리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름 아이린 유리스라는 소설 속 인물을 아꼈던 나로서는 가슴이 꽤나 아려왔으니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인정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첫인상부터 끝났다는 생각에 한숨이 하염없이 새어나왔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고 계세요?”
그렇게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을 때즈음, 귓가에 들려온 청아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로페나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냐며, 한 쪽 손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쿠키가 담긴 쟁반을 쥔 로페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쫓겼어.”
“...네?”
“내가 저리 갔으면 좋겠대.”
“어머, 아가씨가요?”
사실 아이린은 그런 말을 한 적 없었지만, 나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투덜거렸다.
나름 암살자 처리한다고 첫 살인도 겪어보고, 상처도 입었는데. 이 정도 투정은 그녀도 이해해주리라.
내가 입술을 삐죽이자, 로페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더니 내 옆에 살포시 앉았다.
“여기 있어도 돼?”
“아가씨가 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거든요. 어차피 할 것도 없어요. 쿠키도 받아왔고.”
바삭,
쿠키를 한 입 베어문 로페나가 행복한 표정으로 볼을 감싸 안았다.
그리도 좋을까, 나도 몇 번 먹어봤지만 너무 단 탓에 괜히 입맛만 버렸는데.
밀가루 대신에 설탕을 들이 부은 것만 같은 그 쿠키를 잘도 먹는 로페나를 바라보자 괜스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노란 머리카락이 한데 묶여져, 마치 어린 아이처럼 헤벌쭉 웃는 모습이란.
게다가 로페나의 체구가 나이에 비해 꽤 작은 편이었기에 그 모습은 꼭 어린 여동생을 보는 듯 했다.
“왜요?”
“풋.”
한 쪽 볼이 툭 튀어나온 로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 먹고 말해, 로페나. 안 뺏어먹을 테니까.”
우유라도 줄까, 내가 그녀 옆에 놓인 주전자를 들며 묻자 로페나는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어으, 고마워요.”
“...쿠키가 그렇게 좋아? 난 달아서 못 먹겠던데.”
“저는 이 쿠키에 좋은 기억이 있어서요. 나중에 질리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좋은 기억?”
그러고 보면 로페나가 자신의 얘기를 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이때다 싶어 되물었다.
그러자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고민하던 로페나가 입을 열었다.
“뭐, 그리 대단한 기억은 아니에요. 그냥 제가 처음 이 공작저에서 일하게 되고 나서 쿠키라는 걸 처음 봤거든요."
"그러고보니까 넌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된 거야?"
"그리 대단한 이유는 없어요."
"그래도 조금 궁금하긴 한데."
로페나는 아이린의 전속 시녀였으니까.
그런 그녀가 공작저에서 일하게 된 계기라면, 나름 호기심이 들 법 하지 않은가.
내가 그런 로페나를 빤히 쳐다보자, 로페나는 먹고 있던 쿠키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
#
쏴아아
비가 내리는 것은 퍽 익숙했다. 얇은 옷 사이로 저며 드는 그 추위도, 오래토록 굶주려 이미 뼈와 착 붙어버린 뱃가죽도.
누더기와 같은 옷으로 제 가슴팍을 가린 채, 그렇게 쓰레기장을 전전했다.
이따금 버려진 천을 발견할 때면, 그것은 훌륭한 이불이 되었으니까.
후우후우
비에 섞인 눈 탓일까, 오늘은 평소보다 춥다는 생각에 몸이 오슬오슬 떨려왔다.
차가워진 손바닥을 비벼 애써 열을 내며, 식어버린 입김을 손에 불어본다.
겨울의 밤은 매순간이 고비였다. 단순히 숨을 쉬는 것마저, 가슴 속을 할퀴는 그 추위에 코 속이 아려왔다.
바스락,
“앗!”
주변에 들려온 그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뛰어간다. 설령 잘못 들은 것이라도 이리 행동해야 했다.
만약 소리에 반응하지 못한다면 눈 깜짝할 새에 목숨을 잃는 것이 제국의 거리였고, 자신은 그런 거리에서 수년을 살아온 몸이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행동해야하는 지에 대해선 아마 자신 만큼 아는 이가 없으리라.
“...없겠지?”
그렇게 한참을 뛰어가서, 숨이 벅차오를 때 즈음이 되어서야 주변을 돌아본다.
제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자 후회섞인 숨이 새어나왔다. 아까 그 이불, 못 들고 왔는데.
손이 시렸다. 발도, 몸도. 하지만 가장 시린 것은 마음이리라.
덜덜 떨리는 몸을 부둥켜안고 있을 때,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누구지?”
이 겨울의 한기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였기에, 단숨에 정신을 확 들어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 푸른 눈동자에 움찔거리기도 잠시, 제 앞에 선 여자의 신분을 그제야 깨닫는다.
몸을 감싸고 있는 드레스, 자신이 입고 있는 누더기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이나 화려한 그 자태에 저도 모르는 사이 무릎이 꿇려졌다.
아무리 어린 소녀처럼 보이더라도, 신분이라는 이름 아래에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귀족.
그 이름을 떠올린 몸이 덜덜 떨렸다.
사람의 목숨을 벌레처럼 여기며,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목을 베어버리는 이라는 것을 얼핏 들은 적 기억이 떠올랐다.
어쩌면 자신도,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죄, 죄, 죄송합니...”
“추워 보이네.”
추위에 떨 때보다도 더 떨리는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때, 제 몸을 감싸는 무언가의 감촉을 깨달았다.
따듯한 천, 마치 누군가가 입고 있던 것을 덧씌워준 것 같이 체온이 전해져 오는 그 천을 멍하니 바라보자 앞에 서있던 귀족이 입을 열었다.
“따라와.”
나는, 내 영지에 있는 이가 추위에 떠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무심히 등을 돌린 소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것은 꿈일까, 허나 당긴 볼은 분명히 아팠고, 저를 감싼 천은 그 무엇보다도 따듯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푸른 눈동자가 눈앞에 아른 거렸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그 눈동자를 닮은 달이라서, 나는 밤바다에 빛을 쫓는 이처럼 그렇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질퍽이는 흙길 위에 새겨진 그 자그마한 발자국을, 아마도 저와 그리 큰 나이차이가 나지 않았을 그 어른과도 같은 소녀의 흔적을.
나는 마치 홀린 것처럼 따라갔다.
#
"그렇게 공작저로 가게 됐을 때, 거기서 처음 준 게 쿠키였거든요. 그 뒤로는 쭉 시녀로 일했고."
"...쿠키 좋아할 만 하네."
"그쵸?"
로페나의 얘기를 들은 나는, 로페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로페나가 자신의 성을 얘기하지 않았던 것은, 구태여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없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이 공작저에서는 희귀하다 할 수 있는 평민이란 신분이었기에.
괜스레 입맛이 쓰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페나가 이런 얘기를 하게끔 만들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신분이란 것은, 이 중세라는 배경에서 중요하다 못해 인생의 전부를 속박하는 일종의 굴레였으니까.
“미안해.”
“네? 뭐가 미안해요.”
“나한테 굳이 얘기 안했어도 될 텐데. 내가 괜히 물어봐서.”
"괜찮아요. 뭐, 오래 볼 것 같으니까요."
뺨을 긁적이며 말하자, 로페나는 이윽고 배시시 웃으며 쿠키를 집어 들었다.
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짓는 웃음이 영 마음에 걸려서, 나는 쓴웃음을 지은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로페나의 이런 얘기도 얘기지만, 아이린이 가진 의외의 모습에 살짝 놀라기도 했다.
소설 속에 나오던 악녀의 모습에 익숙해져있었고, 또한 요 일주일간 보았던 그 모습에 익숙해져있었으니까.
제 영지에 있는 사람에게 선뜻 도움을 내미는 그 모습이란, 그런 그녀를 어찌 악녀라 할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의외네. 나한테 하시는 거 보면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로페나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자, 그녀도 킥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이 내게 어떻게 말하는지 옆에서 들은 그녀였으니, 어느 정도 공감은 해주겠지.
“근데, 오래 볼 것 같다니. 난 이제 잘릴 지도 모르는데?”
“에이, 아니라니까요.”
“나를 볼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아지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냥 맘에 안 들어 하는 게 아닐까.”
한숨을 내쉬며 뱉은 말에 로페나가 그런 소리 하지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냥, 표현하시는 방법을 잘 모르시는 거에요.”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라.
하지만 나를 볼 때면 싸늘해지는 그 기색은, 아무리 보아도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것으로 보였는데 말이야.
“아가씨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세요? 막 맘에 안 든다고 그렇게 말할 만큼.”
“...아니, 그렇지는 않지.”
적어도 내가 일주일간 지켜본 아이린은, 악인이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맡은 바를 묵묵히 해내며,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제 주변 사람들을 퍽 챙겨주는 듯 했으니까.
로페나가 아이린에게 갔다 올 때면 언제나 쿠키를 입에 물고 있었으니, 그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좋은 분이지.”
이내 한때 붕대가 감겨있던 어깻죽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감았던 붕대를 바라보던 아이린의 눈에 서렸던 감정은, 미약했으나 분명히 걱정이었음을. 내가 어찌 보지 못했겠는가.
다만 그녀는 그것을 표현하지 못할 뿐이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스스로 제동을 걸며, 보다 완벽한 ‘소가주’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나는 영 성에 차지 않는 것일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 안에 쓴 맛만 더해지는 것 같아서, 다시금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에반.”
허나 곧 상념은 흩어졌으니, 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 서늘한 목소리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등골을 타고 그 한기가 흘러, 이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 했다.
하필이면.
속에서 피어오르는 낭패감에 몸을 일으키면서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자,
다시금 귓가에 그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와 화살처럼 박혀 들었다.
“참, 재밌는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어디서부터 듣고 있던 걸까.
내 표정이 썩어들어 가고 있음을 아는 건지, 그 스산한 음성이 바람을 타고 나를 지나쳤다.
“내가 그대를 싫어하는 것 같다니.”
“......”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려주겠어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내 표정은 이윽고 딱딱하게 굳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