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다과회(3)
* * *
쏟아지는 시선을 받는 것이 퍽 익숙한지,
아이린은 그 고저 없는 시선으로 주변을 훑더니 이내 자리를 잡곤 저 혼자 슥, 하고 의자에 앉았다.
로페나는 그저 이 곳을 따라온 시녀에 불과했기에 다른 시녀들과 함께 차를 준비하러 사라졌고,
졸지에 덩그러니 놓인 나는 그 자리에 황망히 선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호위 기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그제야 다른 기사들을 보곤 부랴부랴 아이린과 거리를 둔 채 자리 잡자, 아이린을 바라보던 영애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새로운 호위 기사인가요?”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저번에 오셨던 분보다 훨씬 어린 듯한데.”
“어머, 그러고 보니 그 분 아닌가요, 천재라 불리는 그 프리드가의 자제분.”
아이린에게 쏟아지던 그 무수한 시선들의 세례가 내게 방향을 돌린 것이 워낙 순식간인지라,
나는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앞을 바라보았다. 남들에게 이리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이 얼마만인가.
나이와는 달리 꽤나 성숙한 외모를 지닌 여인들에게 시선을 받자,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져 무거운 숨을 토해냈다.
이런 관심은 영 별로인데 말이야.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도 아니고.
탁
허나 그 소란스러움은 마치 안개처럼 순식간에 흩어진다.
아이린이 들고 있던 찻잔을 무심히 내려놓으며 들린 소리에 조잘거리던 입들이 일시에 다물어졌다.
“......”
그녀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오는 일은 없었으나,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바라보자 영애들의 표정이 이내 새파랗게 질려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래지는 안색이 우스운 탓에, 나는 떨리는 입꼬리를 손으로 매만지며 다시 아이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이대로 이 곳에 서있으면 되는 걸까. 이 다과회가 얼마나 진행될지는 몰라도, 해가 질 때까지는 족히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방금 그 싸늘했던 분위기는 어디 갔는지 다시금 시끄러워진 원탁을 바라보며,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저 사이로 아이린이 끼어드는 것은 무리이리라.
저 영애들이 아이린을 무서워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린이 있다한들 하던 대화를 멈출 것 같지도 않았으니.
게다가 아이린도 저들을 마음에 들어하지도 않고.
“...답답하네.”
그런 영애들을 혐오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린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떨궜다.
답이 없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이렇게 사교의 장이 기껏 만들어졌어도, 유리스의 차기 가주는 그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녀가 겪을 그 비참한 말로를 조금이나마 막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속에 쌓인 답답한 마음만 커질 뿐이었다.
“에반.”
“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아이린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심한가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한심하다니,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아이린은 여상스럽게 탁한 음성을 내뱉었다.
비틀린 입꼬리가 꼭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그녀의 시선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다시 숙였다.
갑작스레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홀로 덩그러니 놓인 이 꼴을 스스로 한심하다 자조하는 것일까.
그렇게 그녀가 말을 꺼낸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도 잠시,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저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그저 이렇게 홀로 남겨진 내가. 한심 해보이냐 물었어요.”
“아니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의외로 대답은 단호했으니, 내 이런 대답이 의아했는지 의문섞인 시선을 보내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어 보였다.
한심하다니, 그렇게 생각할 리가 있나. 애초에 아이린이 이런 사교회를 꺼려한다는 것 즈음은 소설을 읽고 있을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애초에 이 장소에 도착한 시점부터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녀가 이 사교회에서 소외될 가능성은 차고 넘치리란 것을.
애초에 예상하고 있었으니, 그녀의 이런 처지를 동정하지도, 그렇다고 한심하다 여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여기 있는 영애들과 친해진다 한들 그녀가 얻는 이득은 없어보였고.
이리 수다를 좋아하는 여인들이었으니말이다.
그녀가 충성을 얻어야 할 것은 이런 시끄러운 참새들이 아니라,제 주인 만을 위하는 충직한 독수리였다.
“소가주님께서 여기에 나오신 것도, 원하셔서 나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잘 알고 있네요. 눈치가 없진 않은가 보죠.”
잠시 나를 바라본 아이린은, 이내 저 앞에 소란스런 광경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나요, 저 시끄러운 이들이 그대를 꽤나 입에 담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튀어나오려는 헛웃음을 겨우 집어 삼켰다.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었건만, 그녀 또한 이 시선들을 알아차리고 있던 건가.
마나가 흐르는 몸인 만큼 그 감각 또한 예민하여, 이미 이 장소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시선 뿐만 아니라, 나를 주제 삼아 아주 즐겁게도 이야기를 나누는 그 소리도.
게다가 그 시선 들 속에 담긴 그 뜨거운 감정을 어찌 모르리라.
부끄럽게도 내 외모는 꽤나 잘생긴 편이었기에, 한창 꿈같은 사랑을 바랄 영애들의 취향에 제대로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첫 눈에 반하기라도 한 걸까.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이었건만, 내게 향하는 그 질척이는 시선에 이따금 움찔거렸을 정도였으니까.
그 시선이 한 두 개도 아니고 여럿이 모이자 꽤나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괜찮습니다.”
그 때문에 내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아보였던 건지, 나를 바라보는 아이린의 푸른 눈동자에 한층 한기가 더해졌다.
“제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나를 신경써주고 있다는 것은 꽤 감동적으로 다가왔기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답했다.
그저 껄끄러워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름 저 영애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있던 걸까.
그녀의 눈에서 혐오감이 짙어졌던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리라.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이야기가 들려와서, 단지 궁금했을 뿐이니까요.”
이내 내게 시선을 떼어낸 그녀는 다시 무감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서린 한기가 사라지지 않아서,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볼 따름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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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한심한 이들이지 않은가. 볼 때마다 하찮아 절로 조소가 새어나올 정도였다.
이 세상의 한심함을 모두 담아내어 빚은 인형들이라 해도 좋을 만큼이나,이 자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영양가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것 들 뿐.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건만, 차라리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이 자리를 빠져나왔어야 했다.
그렇게 후회하며 애꿎은 차만 들이키는 그 때에 들려온 것은, 빠져있던 상념을 무참히도 부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공녀님의 새로운 호위 기사라 했던가요. 꽤나 수려하시더군요.”
“네, 저는 보자마자 가슴이 들뜨더라고요.”
“저런 게 기사가 아닐까요? 제 호위 기사는 실력은 좋지만 외모는 영 아니라서...”
“하.”
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갑작스레 나오는 에반에 대한 품평에 슬그머니 기어오는 생각의 편린 탓에 다시금 가슴이 답답해져서,
그 숨을 토해내며 즐겁게도 이야기하는 저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기사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꽤 멀리 떨어져 있어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지, 제 딴엔 조용히 얘기한다며 속삭이고 있는 저 족속들의 행태에 기가 찰 따름이었다.
저 소리는, 분명 자신의 호위 기사 또한 듣고 있으리라.
문득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렇게 홀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가 지켜보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저를 볼 때면 늘 흔들리는 그 녹안이, 이번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한심한가요.”
아마도, 제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온 것은 그런 이유였을 터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되었을, 마치 제 입장을 헤아려달라는 것만 같은 그런 질문이 튀어 나온 것은.
드레스 자락을 집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분명히 자신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난데없이 한심하냐니, 이런 우스운 질문이 어디있겠는가.
“아니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으니, 그 대답에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아니, 정확히는 저를 바라보는 그 녹안에 놀랐으리라.
이전과는 달리 흔들리지도, 그렇다고 이렇다 할 감정이 담기지도 않은 눈동자는,
제 대답이 진실이라 단호히 말하고 있었으니까.
“소가주님께서 여기에 나오신 것도, 원하셔서 나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미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자신을 정말로 한심하다 여길 거라 생각했다.
그날 밤에 했던 말은 그저 가식이었고, 한 순간의 환상과도 같은 그런 말이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그 녹색에 담긴 감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아서, 저를 미워하지도, 그렇다고 원망하지도 않는 시선에 문득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자신이 했던 그 모진 말들을 혹여 담고 있을지는 않을까, 자신이 저도 모르게 심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을까.
거슬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신경이 쓰였다.
입 안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계속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신경을 쓰게끔 만들었다.
그가 하는 말이, 그가 품는 영문 모를 감정이, 때때로 저를 볼 때면 젖어드는 그 숲을 닮은 녹안이 자꾸만 떠올라서.
하여 일부러 멀리하고 싶었는데, 자신의 호위 기사 직책을 스스로 포기하게끔 만들려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모질게 굴어봤자 꺾이는 것은 그가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의 마음만 불편해졌으니까.
어쩌면 자신은, 이번 호위를 내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에반 프리드. 그 이름을 곱씹다가 떠오른 것은, 그를 품평하며 조잘거리던 다른 영애들이었다.
그 생각에 무심코 시선을 돌리자, 어쩐지 수심에 잠긴 에반의 얼굴이 보였다.
점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저들의 행동이 꽤나 불편했던 것일까.
일그러진 에반의 표정을 바라보자 가슴 속에서 희미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아마도 짜증이리라.
기분이 나쁘지 않냐 물었다. 저를 마치 물건 다루듯 품평하는 저 멍청한 것들의 행동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에반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이내 고개를 저어보였다.
“괜찮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이 가슴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꼭 제게 선을 긋는 것만 같은 말투에 괜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허나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의 눈동자에 설핏 보인 것은 분명히 감동이지 않던가.
“......”
생각해 보면, 내가 에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던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언제나 에반이 먼저 물어 왔었고, 자신은 그 것을 무정하게 쳐내었으니까.
문득 치솟는 후회에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꼭 목을 죄이는 것만 같은 그 감정에 무거운 숨을 토해내었다.
사실 이런 감정을 품을 이유조차 없었거늘. 자신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 의문이 꼬리를 물고, 다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허나 자꾸만 제 시야에 들어오는 에반 프리드의 모습이 상념을 자꾸만 부수는 탓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스산해졌다.
“...물러나 있을까요?”
제 눈치를 바라보며 입을 연 에반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었으니까.
그렇게 사라지는 에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떠오른 감정이란, 약간의 미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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